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전체 글900

강경애 나의 유년시절 나의 유년시절(幼年時節) 5세에 아버지를 여읜 나는 일곱 살에 고향인 송화를 등지고 장연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어머니는 생계가 곤란하시므로 더구나 장차 의 지할 아들도 없고 다만 딸자식인 나를 믿고 언제까지나 살아가실 수 없는 고로 개가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때에 의붓아버지에게는 남매가 있었으니 남아는 16,7세 가량이었으며 계 집애는 내 한 살 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온 지 이틀도 지나기 전 에 벌써 우리들은 싸움을 시작하였습니다.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속상하실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의붓아버지까지라도 적지 않게 실망을 하여 나중에는 몇 번이나 헤어지려고까지 한 기억이 아직 껏 남아 있습니다. 우리들이 싸움을 하고 울 때마다 어머니는 너무 속상해서 우시면서, “경애야 너 싸우지 .. 2022. 7. 16.
김윤식 하늘의 옷감 하늘의 옷감(H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 W·B·예이츠 내가 금과 은의 밝은 빛을 넣어 짠 하늘의 수놓은 옷감을 가졌으면 밤과 밝음과 어스른 밝음의 푸르고 흐리고 검은 옷감이 내게 있으면 그대 발 아래 깔아 드리련마는 가난한 내라, 내 꿈이 있을 뿐이여, 그대 발 아래 이 꿈을 깔아 드리노니, 사뿐히 밟고 가시라, 그대 내 꿈을 밟고 가시느니. 2022. 7. 16.
박다정 아버지의직업 장려상-고등부 근화여자고등학교 박다정 아버지의 직업 아버지는 매일 아침 공시디 한 무더기를 들고 오셨다. 시디들이 변신하기까지는 ‘딸칵’ 소리만 있으면 됐다. 마우스를 쥔 아버지의 손가락만 있으면 그들은 모 연예인의 인기 앨범으로, 영화 DVD로, 모 회사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변신했다.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그저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소개하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마법사 같았다. 마우스 하나만으로 상상 이상의 것을 만들어 내다니!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와아, 내가 좋아하는 가수 앨범이네!” 아버지 몰래 시디를 가져다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아이들은 나를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부러워하면 부러워할수록 나는 아버지가 더욱 자랑스러웠다. 성적도 평균에 비해 낮고.. 2022. 7. 16.
김동인 김연실전 김동인 1 연실(姸實)이의 고향은 평양이었다. 연실이의 아버지는 옛날 감영(監營)의 이속(吏屬)이었다. 양반 없는 평양서는 영리( 營吏) 들이 가장 행세하였다. 연실이의 집안도 평양서는 한때 자기로라고 뽐내던 집안이었다. 연실이는 부계(父系)로 보아서 이 집의 맏딸이었다. 그보다 석 달 뒤에 난 그의 오라비 동생이 그 집안의 맏상제였다. 이만한 설명이면 벌써 짐작할 수 있을 것이지만, 연실이는 김영 찰의 소실―---퇴기(退妓)―--- 소생이었다. 김영찰의 딸이 웬심인지 최이방을 닮았다는 말썽도 어려서는 적지 않게 들었지만, 연 실이의 생모와 김영찰의 새의 정이 유난히 두터웠던 까닭인지, 소문은 소문대로 젖혀 놓고 연 실이는 김영찰의 딸로 김영찰에게 인정이 되었다. 조선에도 민적법(民籍法)이 시행될 때는 .. 2022. 7. 15.
신채호 조선역사상일천년래제일대사건 朝鮮歷史上[조선역사상] 一千年來[일천년래] 第一大事件[제일대사건] 1. 緖[서] 論[론] 민족(民族)의 성쇠는 매양 그 사상(思想)의 추향 여하에 달린 것이며, 사 상 추향의 혹좌혹우(或左或右)는 매양 모종 사건의 영향을 입는 것이다. 그 러면 조선 근세에 종교(宗敎)나 학술(學術)이나 정치(政治)나 풍속(風俗)이 사대주의의 노예가 됨이 무슨 사건에 원인함인가. 어찌하여 효(孝)하며 어 찌하여 충(忠)하라 하는가. 어찌하여 공자(孔子)를 높이며 어찌하여 이담을 배척하라 하는가. 어찌하여 태극(太極)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가 팔괘 (八卦)를 낳는다 하는가. 어찌하여 신수(身修) 연후에 가제(家齊)요, 가제 연후에 국치(國治)인가. 어찌하여 비록 두통이 날지라도 관망(冠網)을 끄르 지 않으며 티눈이 있을.. 2022. 7. 15.
채만식 여자의 일생 女子[여자]의 一生[일생] 1. 시집難[난] 시집難[난] 내일 모레가 추석 ── 열사흘달이 천심 높다랗게 솟아 있다. 일 년 열두 달 그중 달이 좋다는 추석달이다. 거진 다 둥그렀고 거울같이 맑다. 밤은 이윽히 깊어 울던 벌레도 잠자고 괴괴하고…… 촉촉한 이슬기를 머금고 달 빛만 빈 뜰에 가득 괴어 꿈속이고 싶은 황홀한 밤이었다. 새댁 진주는 우물에 두레박을 드리운 채 자아올릴 생각을 잊고 서서 하도 좋은 달밤에 잠깐 정신이 팔린다. 무엇인지 저절로 마음이 흥그러워지려고 하고 이런 좋은 달밤을 두어두고 이내 도로 들어가기가 아까운 것 같았다. 언제까지고 내처 이대로 있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또 혼자서 이렇게는 더 아까운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아까운 것이 가만히 또 재미가 있기도 하였 다. 한 어리고.. 2022. 7. 15.
강경애 어둠 어둠 툭 솟은 광대뼈 위에 검은빛이 돌도록 움쑥 패인 눈이 슬그머니 외과실을 살피다가 환자가 없음을 알았던지 얼굴을 푹 숙이고 지팡이에 힘을 주어 붕 대한 다리를 철철 끌고 문안으로 들어선다. 오래 깎지 못한 머리카락은 남바위나 쓴 듯이 이마를 덮어 꺼칠꺼칠하게 귀밑까지 흘러내렸으며 땀에 어룽진 옷은 유지같이 싯누래서 몸에 착 달라 붙어 뼈마디를 환히 드러내이고 있다. 소매로 나타난 수숫대 같은 팔에 갑 자기 뭉퉁하게 달린 손이 지팡이를 힘껏 다궈쥐었다. 금방 뼈마디가 허옇게 나올 것 같다. 의사는 회전의자에 앉아 의서를 보다가 흘끔 돌아보았으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얼른 머리를 돌리고 검실검실한 긴 눈썹에 싫은 빛을 푸르르 깃들이 고서 여전히 책에 열중한 체한다. 저편 침대 곁에서 소곤소곤 지껄이던 .. 2022. 7. 15.
윤동주 별 헤는 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별 헤는 밤 - 윤동주 -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 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 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 케.. 2022. 7. 15.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