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子[여자]의 一生[일생]
1. 시집難[난] 시집難[난]
내일 모레가 추석 ── 열사흘달이 천심 높다랗게 솟아 있다. 일 년 열두 달 그중 달이 좋다는 추석달이다. 거진 다 둥그렀고 거울같이 맑다. 밤은 이윽히 깊어 울던 벌레도 잠자고 괴괴하고…… 촉촉한 이슬기를 머금고 달 빛만 빈 뜰에 가득 괴어 꿈속이고 싶은 황홀한 밤이었다.
새댁 진주는 우물에 두레박을 드리운 채 자아올릴 생각을 잊고 서서 하도 좋은 달밤에 잠깐 정신이 팔린다. 무엇인지 저절로 마음이 흥그러워지려고 하고 이런 좋은 달밤을 두어두고 이내 도로 들어가기가 아까운 것 같았다.
언제까지고 내처 이대로 있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또 혼자서 이렇게는 더 아까운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아까운 것이 가만히 또 재미가 있기도 하였 다. 한 어리고 처녀답게 순진스런 감성일 것이다. 시집을 오고 머리쪽을 지 어서 이름이 각시니 새댁이니지 아직껏 그는 열두살박이 새서방 준호의 도 련님 시중이나 들고 이야기 동무나 하여 주고 하는 곱다시 처녀요 갓 열여 덟의 어린 나이였다.
철은 비록 나진 않고 애기새서방이더라도 진주에게 가장 가까운 그리고 유 일한 이성은 당연히 준호였다. 일상에 즐거운 일이 있을 때나 언짢은 일이 있을 때나 매양 준호가 먼저 생각이 나고 하였다. 일부러 그러자고 하여서 하는 노릇이 아니라 제풀에 마음이 그렇게 가지는 것이었었다. 곧 정(情)이 었다.
지금도 진주는 좋은 달밤이 혼자서는 미흡하던 끝에 저절로 생각나는 것이 역시 준호였다. 마침 이런 때 준호가 돌아와서 좀 같이 놀기도 하고 하였으 면 하였다. 논다고 하여도 물론 어려운 시어머니가 계시고 하인이랑 머슴이 랑 있고 한데 나이 어린 새서방을 데리고 점잖지 못하게 큰 소리로 지껄이 고 웃어대고 뛰어다니고, 달아달아 밝은 달아 창가 부르고 아이들처럼 이럴 수는 없었다. 또 한만히 오래도록 놀고 있을 수도 없었다. 잠깐 그저 나란 히 뜰을 거닐면서 달 이야기, 글방에 갔던 이야기, 추석 이야기 같은 것이 나 소곤소곤 서로 이야기하다가 웬만큼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로써 족하였다.
준호는 항용 열한시가 지나서 어떤 때에는 자정에 더러는 자정이 넘어서 돌아오고 하였다. 글방에는 시계가 없고 두꺼비라는 선생의 짐작으로 대중 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일정하지가 못하였다. 방금 안방에서 열한시가 거진 되는 것을 보고 나온 생각을 하고 진주는 혹시 오늘은 내일이 파접이고 하 니 일찍 돌아오는지도 모를까보다면서 갸웃이 귀를 기울인다. 마악 그러자 쉬었다 다시 시작인지 건넌마을의 글방으로부터 여럿이 어울려 읽는 글소리 가 감감하니 손에 잡힐 듯 분명히 좌악 들려왔다. 지금부터 참을 다시 시작 하였다면 여느날보다 이르기는새로에 더 늦었던 것이었다. 좀 섭섭하였으나 내일도 날이요 모레도 날이었다. 더구나 내일부터 한동안 글방에는 가지 않 고 하니 얼마든지 계제가 있을 터이었다. 그런 내일날을 기다리는 마음도 차라리 한 즐거움이었다.
진주는 천천히 두레박을 자아올려 우물 빈지 위에 놓았던 하얀 분원사기 (分院白磁) 대접에다 넘치지 않도록 팔홉은 되게 부은 후 남은 물도 버리지 않고 세수확으로 가지고 가 따른다. 그러고는 두레박을 줄을 고쳐 사려서 두레박 실겅에다 잘 얹어놓는다. 무엇 한 가지 얌전스럽지 아니함이 없다.
구름 한 조각 지나가는 자취 없고 달은 한결같이 밝다. 우물 저편쪽 한편 을 울타리한 동청(冬靑)나무 잎사귀가 달빛을 받아 수없이 매끄럽게 반뜩인 다. 우물 두던의 돌틈에서리라. 귀뚜리가 꼭 한 마리 생각난 것처럼 가르르 스러질 듯 울음을 낸다. 그 스러질 듯 가늘게 우는 소리가 조금도 이 밤의 적요함을 헤뜨리지 아니한다.
글소리는 꾸준히 들을 건너 가암감 들려온다. 어쩌면 처음보다 한결 가까 이 혹은 높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진주는 문득 여럿이 어울려 읽는 소리에 서 준호의 목소리가 따로이 들리기나 하나 하고 물대접을 집으러 오다 말고 서서 가만히 또 귀를 기울인다. 귀에다 온 총력을 모아가지고 이윽고 듣는 다. 그러나 목소리는 졸연하여 분간을 할 수가 없고 그 대신 여럿 틈에 끼 여 글을 읽고 있는 모양이 서언히 머릿속에 떠올랐다. 늘 듣는 이야기라 그 래도 상상이 되어지던 것이다. 한 무릎 꿇고 한 무릎 세우고 세운 무릎을 깍지손하여 끼고 앉아서 끄덱끄덱
“오묘지택(五畝之宅)에 수지이상(樹之以桑)이면 오십자 가이의백의(五十 者 可以衣帛矣)요……”
하고 『맹자』양혜왕장의 한 대문을 읽고 있다. 오늘 이 대문을 배우는 줄 을 진주는 알고 있다.
“계돈구체지축(鷄豚狗彘之畜)을 무실기시(無失其時)하면……”
끄덱끄덱 몸을 끄덕이는 대로 그 가느다란 목 위에서 커다란 상투가 무긋 무긋이 따라 흔들린다.(이 볼성없고 손질 성가시고 남의 조롱거리요한 상투 를 어머니가 두려워 차마 깎아버리지는 못하고 안타까와만 하는 준호를 위 해 진주는 또 얼마나 안타까왔던고. 하기야 안타깝기로 말하면 상투 외에도 이루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십상 졸 텐데…… 졸다가 그 사정없이 후린다는 선생의 매끝에 몹시 얻어 맞지나 않는지…… 이런 생각이 나면서 진주는 갑자기 아미가 흐린다. 밤이 나 낮이나 어린 준호의 그 고단하여 하는 양이며, 졸려서 졸려서 못견디어 하는 양이란 차마 애처로와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침 여섯시만 땡 치면 모친 박씨부인의 호령조로
“준호야!”
부르는 소리에 일분 어기지를 못하고 안 떨어지는 눈을 비비면서 일어난다.
만약 그 즉시
“네에.”
하는 대답과 함께 벌떡 일어나는 동정이 없어? 재우쳐
“이놈 준호야!”
“그래도 없어?”
그 다음은 곧 무서운 달초였다. 그러나 두 번째 불러서 안 일어날 적은 별 반 없다.
안방에서 잤으면 그대로 건넌방에서 잤으면 안방으로 건너와서 박씨부인 앞에 무릎을 꿇어앉아 우선 그 안날 밤 글방에서 배운 한문글을 강(講)해 바친다. 못 외바치면 물론 달초다.
한문을 강해 바치고 나서는 한 시간 가량 그 안날 낮에 학교에서 배운 과 정 전부를 복습한다. 그러고는 일곱시에 조반을 먹고 학교로.
마을에서 읍내의 보통학교까지 꼬바기 십 리다. 초립 쓰고 책보와 점심을 갈라 들고 십 리 걸어서 학교엘 가 온종일 여러 가지 학과를 배우고 체조랑 실습도 하고 참참이 뛰고 놀기도 하고,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서 다시 십 리 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면 날은 다 저물고 열두살박이 소년의 몸은 지칠 대 로 지친다. 저녁 수저를 놓던 길로 쓰러져 자더라도 오히려 잠이 나쁠 판이 다. 그러나 저녁 수저를 놓던 길로 소위 참글이라는 것을 배우러 글방엘 가 야만 하였다.
박씨부인은 학교 공부는 개글이었다. 시체는 그것도 조금 지녀야 원님(郡 守)도 하고 관찰사(觀察使 : 道長官[도장관])도 하고 한다니 마지못해 시키 기는 시키던 것이지만 글은 한문이 원글이요, 한문이라야 참글이었다. 풍월 한 수 할 줄 알고 깨끗한 글씨와 더불어 간찰 한 장 얌전히 꾸밀 줄 알고 눈 따악 감고 앉아서 사서삼경 어느 대문 서슴지 않고 좌악좍 외울 줄 알고 이래야 왈 선비요 글한 보람이 있고 양반이었다. 기집애들이나 하는 언문으 로 오정 친다 밥 먹어라, 옥히야 숭늉 다고 냉수는 차서 싫다 따위나 배우 고 왜붓(鉛筆) 꼬투리에다 침 묻혀가면서 오불탕꼬불탕한 것 그려놓고는 수 한답시고 하나에 둘 보태면 셋이요 따위나 배우고, 이런 것이야 어린애 장 난이요 개글이지 만날 학문일 턱이 없었다.
준호는 졸면서 건넌마을의 글방으로 간다. 가서는 뜻도 모르고 재미도 없 는 한문 한 대문을 졸면서 매로 후려갈기우면서 열한시까지 자정까지 꼬바 기 앉아서 읽는다.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밤참이나 먹고 하면 항용 한 시 때로는 두시가 가깝다. 이튿날 아침 여섯시까지 겨우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 밖에는 잘 시간이 없다. 대단한 무리였다. 잠은 그리하여 소년 준호에 게 가장 핍절한 욕망이요 큰 동경이었다.
“한 백 날만 실컷 자보았으면……”
“좀 아프기나 허지.”
“남의 집은 제사두 퍽 쉽게 돌아오구 허드만서두!”
아침에 일어나면서, 저녁에 글방엘 가려면서 곧 울상으로 가끔 혼잣말 같 이 그렇게 중얼거리고 하였다. 하도 고단하여 하도 졸려 갱신을 못하고 안 타까이 그러는 정상을 볼 때마다 진주는 그만 애처로와 눈물이 핑 돌 적도 있었다. 대신하여 줄 수 있는 노릇이라면 죄다 대신하여 주고 싶었다. 잠도 대신 많이씩 자주고 글방에도 대신 가주고 달초도 대신 맞아주고 하였으면 작히나 좋으랴 싶었다.
밤이 하 고요하여 그런지 당혜 바닥에서 징소리가 유난히 다그락거린다.
진주는 되도록 돌을 피해 디디면서 물대접을 집어 들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마당을 지나면서도 사풋사풋이 신발소리를 죽여 걷는다. 밤에 혼자라도 새 며느리란 건 본시가 걸음걸이 하나 함부로 하기를 삼가야 하는 법이지만, 남달리 엄한데다 겸해서 까다롭기까지 한 홀시어머니 밑에서 벌써부터 말 많은 시집이고 보매 일동일절 무엇 한 가지 각별히 조심되지 아니함이 없었 다.
이 밤의 조심은 그러나 조심이 재앙이었다. 아니 재앙은 진작에 마련되어 가지고 있었고, 조심과 또 우연한 사건 하나가 들어서 그 화약 노릇을 하였 던 것이다.
박씨부인이 퇴침을 돋우 베고 누워 『삼국지』를 보다가 잠깐 잠이 들었었 다. 그러다 어찌해서 깨어 보니 한옆으로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던 며느리 가 보이지 아니하였다. 바느질하던 것은 다 그대로 놓아둔 채…… 아마 소 피엘 갔나보다고 거기까지는 심상하였다. 그러자 우물에서 달그락 거리는 당혜 소리에 섞여 두레박 다루는 기척이 들렸다.
“? ……”
두레박을 다룰진댄 소피에 다녀 손을 씻으러 우물로 간 것은 아니었다.
‘우물엔 어찌? 야밤중에! ……’
괴이하다는 것이었다. 야밤중에 우물엘 갔기론 괴이할 것이 없을 수도 있 는 것이지만, 시어머니 따라 그때의 기분 따라 넉넉히 괴이할 수도 없지 아 니하였다.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꿈치가 달걀같이 고와도 흉이란 말이 있거 니와 참으로 며느리가 한번 눈에 벗기로 들면 한정이 없는 것이었다.
흔히 중년과부란 그 생활 조건과 심리 관계로 인하여 성질이 다소간 편협 괴벽하기 쉬운 법이요, 이윽고 그가 단산기(斷産期)를 당하여 히스테리증이 생기게 되고 보면 그 경향이 일단 더 짙어진다. 물론 병이다. 그러나 가벼 우면 사람이 좀 까다로운 정도에 그치고 말지만 병이 심한 경우면 신경이 몹시 예민 쇠약하여져 가지고 성격과 생활에 큰 어지러운 변화를 일으킨다.
변덕이 죽끓듯하고 억지가 엿가래 같은 것쯤 차라리 초기적인 현상이다. 환 상적인 엉뚱스런 독단을 하여 놓고는 남은 웃을 일을 울고 남이 울 일을 웃 는다. 한번 무엇이 이렇다 하고 생각을 하면 꼭 그 곬으로만 그 곬으로만 무섭게 심각코 날카론 천착을 일삼는다. 그러나 필경 얼토당토 아니한 결론 에 빠져가지고 과대망상증이니 피해망상증이니 하는 데까지 이르는 수가 왕 왕 있다. 보아야 겉으로는 신수 멀쩡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구할 수 없는 병인이다. 박씨부인이 불행 그러한 병이 골수에까지 깊은 병인이었었다. 그 리고 그 병독이 똘똘 몰아 죄다 와서 떨어지는 곳이 어느 곳이냐 하면 며느 리 진주였다. 잘하는 일이거나 잘못하는 일이거나 간에(별로 잘못하는 일도 없지만) 며느리가 하는 일이면 덮어놓고 마음에 맞지 않고 새김질하여 보아 지고 하였다. 발뒤꿈치가 계란같이 맵시 있어도 흉인 것처럼 말이었다. 그 래서 야밤중에 우물에 간 것도 예사롭지가 않고 괴이하던 것이었다.
남이 박씨부인을 일러 여장부라고 한다. 혹은 여걸이라고도 한다. 언변 좋 고 감대 괄괄하고 한문이 웬만한 선비 뺨쳐 먹을 만큼 도저하고 체집 크막 하고 기운 세고 진시 여장부였다. 삼백여 호나 되는 이 향교골(校洞[교동]) 온 마을을 쥐락펴락한다. 마을은커녕 한번인가는 세미(稅米 : 納稅[납세]) 로 갈등이 나 가지고 동헌(東軒 : 郡廳[군청])엘 쫓아들어가서 원님을 다 혼을 내준 여인이었다. 서른한 살 때 갓 제 돐 잡힌 외아들(준호) 하나를 데리고 과부가 되어 이래 십 년 남짓한 동안에 적수로 백여석거리 성세를 장만하였으니 그 또한 장한 일이었다. 그러나 여장부는 여장부요 병든 홀시 어머니는 따로이 또 병든 홀시어머니였다.
‘자리끼 숭늉이 있는데 하필 냉수며…… 정히 냉수를 먹을 양이면 부엌 물독에도 있을 터요, 또 하인이 그 옆에서 저렇게 자고 있으니 깨서 시킬 일이지 바느질은 몰렸으면서 굳이 제가 우물엘 가야 할 일이 무어란 말인 고?’
‘으응! ……’
단박이었다. 삽시간에 눈과 얼굴은 험하여진다.
‘맘이 달떠서! 달밤에 맘이 잔뜩 달떠서!’
무어 영락없었다.
‘나이는 찼겠다, 서방은 어리겠다, 으음 오두가 나서! 발광증이 나서!’ 커다랗게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인다.
‘그러면 그렇지! 누가 아니랬어!’
박씨부인은 며느리를 대하여 저것이 외양으로는 제법 얌전을 부리고 끔찍 다 흠선히 하는 체하지만 서방 명색이 나이 어려 아무 흥도 없고 한데 속도 저렇듯 태연 심상할까? 태연 심상할까? 이런 의혹을 한동안 품어왔었다. 하 다가 그것이 어느 겨를에 그렇거니 하는 인정으로 변하였다. 분명 속은 딴 속이지. 미흡해서 만사에 뜻이 없고 저 혼자 있을 때면 호올홀 한숨이나 쉬 고 하지. 팔자 자탄을 하지. 이렇게…… 했던 것이 아니나다를까 오늘 밤에 보니 짐작은 외수없이 들어맞은 것이었었다.
‘내가 무슨 탁에 남의 어린 자식 데려다 애먼 혐의를 두어? 다아 번연한 노릇이길래 그런 것이지. 내 눈이 어떤 눈이라고!’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더니 옛말이 하나 그른 말이 없어! 제마다 얌전하다는 칭찬이요, 생김새도 밉지 않고 무던하길래 혼인을 했더니 아뿔싸 그만!’
‘아무렴. 나도 홀에미로 자식을 길렀지만 에미 애비 없이 할멈 할아범 손 에서 함부로 자란 자식이란 어디가 표가 나도 나거든! 할 수 없어!’ ‘저 저 숭포스런 것이! …… 시방 누가 알세라 들을세라 사풋사풋 신발 소리 안 내고 걷느라고 앨 쓰는 거동 보래도! 에잉 천하 요사스런 것!’ 벌떡 일어나 앉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뭇 동네방네 떠나가게 그 우렁찬 목청을 질러
“삼월아!”
불러댄다. 하인년 삼월이가 죄 있을까마는 여느때대로
‘새악아?’
하고 직접 부를 계제도 아니요 겸하여 고함을 지르잔 노릇이라 만만한 삼월 이던 것이다.
잠이 들어놓으면 묶어가도 모르는 삼월이가 한번에 냉큼 대답이 있을리 없 었고, 또 부르는 편에서도 고함지르며 들레기가 주장이지 대답은 문제 밖이 었다.
장죽을 집어 놋재털이가 깨어지도록 땅따앙 두드리면서 연거퍼
“이년 삼월아!”
불러 외치는 소리를 받아
“네에.”
하는 며느리의 연삽한 대답이 대뜰 바로서 들린다.
‘얌사한 것!’
눈을 그쪽으로 잔뜩 흘기다가 문득
‘진작 좀 내다보들랑 아니하고……’
하면서 얼른 영창 앞으로 다가앉는다. 영창에는 유리가 한칸 붙여 있어 그 리로 달 휘영청 밝은 바깥이 환히 내어다보인다. 그 유리쪽에다 바싹 얼굴 을 대고 앉던 박씨부인은 그러다 다음 순간 거진 소리를 내어
“응?”
하면서 가볍게 놀란다.
‘용길이가? ……’
머슴 겸해 와서 의탁하고 있는 용길이었다. 며느리는 물대접을 들고 마악 대뜰로 올라서는 참이고 용길이가 뚝배기를 들고 성큼성큼 우물 두던으로 올라가고 하고 있었다.
‘마침 물을 뜨러 들어오던 길인지?’
아니어야 할 것 같았다.
‘두 것이 여지껏 같이 우물에서 있었지?’
그런 것 같고 속이 후련하였다.
‘그렇지만 용길이놈은 지금 마악 들어오고 있는데?’
이 번연한 사실이 어떤 심술꾸러기처럼 밉광스러웠다. 잠시 혼란이 있은 뒤에
‘아니, 그건 달리 무슨 까닭이 있었고…… 분명 두 것이 같이 있었어!’ ‘정녕? 그럼 정녕!’
‘하! 이런 변괴가? ……’
당장 벼락치듯 영창을 열어젖히면서
‘이 죽일 년놈들!’
하고 호통을 하겠는데 용길이를 꺼려 참는다. 머슴은 며느리처럼 만만한 것 이 아니었다. 또 친정 사촌형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데려다 이내 자식 다음 가게 길러오던 아이라 어디로 치나 싸고 돌아야 할 의리였었다. 그도 증거 가 역력하다면 모르거니와 기연가미연가 한 생각만 가지고 일을 지레 떠벌 려놓기는 제아무리 좀 주저롭지 아니치 못하였다. 장차 형세를 두고 보는밖 에 없는데, 그러나 이 자리를 이대로 참고 넘길 수는 없었다. 어쨌든 간 한 바탕 화풀이는 하여야만 하였다.
진주는 마당 한가운데쯤서 시어머니의 고함 소리를 들었다. 소스라치게 놀 라 하마터면 물대접을 놓칠 뻔하였다.
정신이 황망하고 그런데다 연다른 고함소리와 재털이 뚜드리는 소리에 막 히어 등 뒤에서 차면 안으로부터 나는 밭은기침 소리도 성큼거리고 우물로 걸어가는 발자죽 소리도 통히 들리지 아니하였다. 따라서 용길이가 들어온 줄도 까맣게 끝까지 그는 몰랐었다.
‘주무시다 별안간 웬 일이실까? 잠드실 때까지도 아무 다른 기색 없이 책 보시다 이야기하시다 하시던 어른이. 하기야 느닷없이 잘 역정을 내시는 어 른은 어른이시지만…… 혹시 바느질하다 말고 나왔다고 그러시나. 그럼 잘 못 했게? 좀 참을걸 괜히 나왔지…… 그래도 잠깐 우물에 나왔다고 저다지 역정이 나실까? 그렇지만 또 누가 알아?’
어찌해서 났던지 큰소리가 난 것만은 사실이요, 큰소리가 난 이상 책망은 당해 둔 것이었다. 그 사정없은 책망…… 아뜩 겁이 질렸다. 마루로 올라섰 다. 가슴이 맞방망이치듯 두근거리면서 문고리를 쥐려는 손끝이 바르르 떨 렸다. 그때였다.
‘어려운 일을 당하거든 마음을 먼저 갈앉혀라. 당황하지 말고 태연해라.
네가 눈 큰 값을 하느라고 겁이 많아. 부디 어려운 일을 당하거든 마음을 먼저 갈앉혀라. 당황하지 말고 태연해라.’
이 말이 방금 할머니가 거기 계신 것처럼 또렷이 귀에 울렸다. 시집오던 그 안날 밤 할머니가 마지막 앞에 앉히고
“첫째 분수를 지키고…… 세상 만사가 제가끔 다 분수가 있는 법이니라.
작은일이나 큰일이나 꼬옥 제 분수에 맞추어 분별을 하고 아야 억지를 하질 랑은 마라! 애들 신발을 어룬이 신자고 드는 것도 분수에 어긋나는 일이요, 창칼로 정자나무를 자르자고 드는 것도 분수에 벗는 일이니라. 그러고 어려 운 일을 당하거든……”
하시면서 타이르시던 두 가지의 신칙이었다. 시집 온 지 반 년 그동안 분수 에 대한 것은 이렇다고 할 겪음이 없었으나 어려운 일은 (주장 시어머니의 책망 듣기였지만) 많이 당하였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의 그 말씀이 생각나 고 그러면서 마치 배 아플 때 할머니가 손으로 쓸어주시면 시원하고 아픈 기가 가시듯이 이상히 마음 당황하던 것이 갈앉고 태연하여지고는 하였었 다. 오늘밤도 곧 그러하였다.
‘그럼! 이왕 당하는 일이니 더 잘못이나 않도록 잘이나 당해야지! 정신을 차려가지고 조심해서……’
배운 바를 일에 임하여 능히 행할 줄 아는 지각이었다. 열여덟 살, 물론 어리었다. 아직 소녀요 한 안해로서는 어리었다. 그러나 한 며느리로서는 훨씬 철이 나고 어른스러웠다.
조용히 윗문을 여닫고 들어서 그대로 소곳하고 문치에 가 선다. 문치에 가 소곳하고…… 우선 대죄(待罪)였다.
아랫목으로부터는 깜박 아무 동정이 없다.
이내 아무 동정이 없다고 언제까지든 그러고만 또 서 있어서는
‘자, 어서 죄를 내리시오.’
하는 것 같아서 이짐스럽고 도리어 어른의 성정을 돕는 것이 되는 것이다.
적당히 잠시 후 진주는 가만히 걸음을 옮기어 뒤 곁으로 건너가 손의 물대 접을 넌지시 한옆에다 치우듯 비껴서 내려놓고 그러고는 자리에 앉아 바느 질을 집어 든다. 바느질은 추석날 새서방 준호가 칠 모시행전이었다.
“무어냐? 명색이……”
마악 한코 뜨려고 할 즈음 비로소 박씨부인은 한소리 모질게 지른다. 밑도 끝도 없이 첫마디가 그렇게 나오는 말투도 말투려니와 더욱 그 음성은 방금 삼월이를 불러대더니와는 자못 달라 곧 살기가 뎅겅뎅겅 듣는 듯하였다. 그 것은 며느리의 뺨에 가 못질한 듯 박혀 있는 독한 눈매와 더불어 어른으로 아랫사람을 질책하는 음성이요 눈매요 하다기에는 너무도 노골히 어떤 독특 한 반감과 증오를 머금은 음성이요 눈매요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비밀이었 다. 어리고 아직 감정이 정갈한 진주는 말할 것도 없는 것이지만 당자 박씨 부인 자신으로도 그런 줄을 모르는 맹랑한 비밀이었다. 동시에 이미 쩔어져 만성 된 비밀이기도 하였다.
박씨부인은 실상 며느리가 방으로 들어서기가 멀다하고 잔뜩 벼르고 있었 다. 무릎을 도사리고 장죽은 재털이를 두드리던 채 그대로 느직이 올려들고 윗문께를 부릅떠보고 앉아서 마침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서는 즉시 한통 ‘그래 너는 어디를 갔다 오느냐?’
하고든 무어라고든 하여간 추상같이 ── 하되 우선 준절히 ── 꾸짖어 잡 도려댈 참이었었다. 그러나 막상 며느리가 들어서 호흡을 다스리느라 잠깐 그를 노려보아 하는 동안 문득 한 맹렬한 적의(敵意)가 무럭무럭 잡도리고 호통이고는 한옆으로 밀어젖히고 따로이 가슴 저 밑으로부터 치달아올랐다.
고운 살쩍 아래로 도독이 살진 연한 뺨! 가서 박박 할퀴어놓고 싶게 그 앳 되고 화사함의 시기스럽기더라니…… 치렁치렁 뽀얀 버선등 위를 치렁거리 는 남갑사 치맛자락! 박박 가서 뜯어발기고 싶게 그 칠보족도리 갓 벗은 듯 새각시태 면면함의 시기스럽기더라니……
들였던 병아리를 이윽고 쪼아쌓고 독살 부리는 암탉이라면 모르되, 이른바 만물의 영장(靈長)된 체면이 무색할 일이었다. 그러나 인류가 나이는 비록 몇백만 살 더 먹어 어른 뻘이랄값에 좀처럼 프로이드라더냐의 해괴한 저술 (著述)을 서재로부터 용감히 끌어내어 불사르지 못하는 약점이 무릇 거기에 있는 것일진댄 속절없은 노릇이었다.
눈이 뒤집힌다, 혹은 무엇이 바뀐다 하거니와 박절한 대로 박씨부인이 시 방 그러하였다. 그렇더라도 방금 아까도 보던 번연히 그 며느리요 그 차림 차리였건만 며느리가 무단히 그렇게 젊고 어여쁘고 새각시태 면면하고 한 것처럼 금시로 비위가 더욱 거슬리면서 밉새웁고 울화가 나고 하는 것이니, 도저히 신경 건전한 사람에게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위험스런 환자가 아 닐 수 없었다.
“으응? 무엇허는 명색이냐?”
눈도 깜짝 않고 여전히 며느리의 뺨을 지질 듯 노리고 앉았다. 이번엔 손 의 장죽이 상앗대질까지 쑥 나가면서 또 한번 고함청을 지른다. 그러고는 곧 같은 소리를 다시
“무엇허는 명색이야? 명색이……”
소리는 같은 소리라도 노기는 무섭게 더하여 거의 머리끝이 곤두설 지경이 었다.
숨도 쉬는 듯 마는 듯 진주는 소곳하고 앉아 한코 한코 바느질만 뜨고 있 다. 또옥또옥 바늘코 소리조차 그는 조심되고 민망스럽다. 항차 말대답이리 요. 그러나 참새는 찍하여도 죽이고 짹하여도 죽이고 찍짹하여도 죽이듯이 며느리란 사람은 시원시원 대답을 하면 말대답한다고 흉이요 아니하면 아니 한다고 탓이었다.
“아니, 별안간 꿀먹은 벙어리가 됐단 말이냐아 으응? ……”
“………”
“내 말이 동네 개 짖는 소리만두 못헌가보구나?”
이러는 데야 유구무언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얼굴을 조금 드는 듯하고 “어머님 잘못했어요! 다신……”
“듣기 싫구나! 누가 그런 소리 듣겠다드냐?”
“………”
“어디 무엇허러 갔드냐?”
“………”
“시에미 잠든 새 살금 나갔다 오는 데가 어디야?”
심상치 아니한 말이었다. 진주는 가슴이 선뜩하면서
“하두 갈증이 나서…… 시언한 우물물을……”
“핑계는 좋구나? 냉수가 먹구 싶으면 하인이 없드냐아? 부엌 물독에 물이 없드냐?”
“………”
“요망스런 것 같으니로고! 누가 제 속 모르는 줄 알구?”
“………”
“흥! 맘두 들뜰 만허지! 오두발광두 날 만허지! 서방은 어려, 나인 찼어, 달은 휘영청 밝어…… 맘두 들뜰 만허구말구! 오두발광두 날 만허구말구.” 진주는 기가 막혔다. 시집 온 지 다섯 달, 그동안 하루가 멀다하고 큰 소 리가 나고 책망을 듣고 하였지만 이런 무정지책은 처음이었다. 김치가 너무 짰느니 너무 싱겁느니, 새서방 두루마기가 품이 너무 컸느니 깃이 너무 처 졌느니 따위의 트집과는 판이히 다른 것이었었다. 억색하여 눈물이 핑 돌았 다. 부엌 물독에는 물이 없었다. 삼월이는 깨우기가 시끄럽고 성가실뿐더러 어린 년이 곤히 자는 것을 깨워 일으키느니 내가 잠깐 수족을 놀리기만 못 하였다. 그러나마 밤중에 우물엘 내려가기가 새삼스런 일이었을새 말이 지…… 달도 무심코 나가서 보니 그렇게 밝았지, 달이 밝거니 하고 나간 것 이 아니었다. 더우기 새서방이 어리네 마음이 달떴네 소리는 하늘이 내려다 보시지만 진정 애매하였다. 일찌기 새서방이 어린 것을 미흡히 여긴 적도 없었거니와 도대체 무엇을 가르쳐 마음이 달뜬다 하며 오두발광이 난다 하 는 것인지 그것부터가 똑똑히 모를 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시어머니가 저대도록 성정이 났을 바엔 무슨 잘 못이든 잘못이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무엇일까?’
‘어디가 잘못되었을까?’
‘하시던 말씀대로 잠드신 새 나간 것이?’
‘물이나 냉큼 떠가지고 들어오들랑 않고 한참 충그린 것이?’
억색하던 것은 그 순간이요 진주는 잘못을 찾아내기에, 얼른 잘못을 찾아 내지 못해 마음이 급하고 애가 쓰였다.
박씨부인은 한호흡 깊이 들이쉬더니 호통은 고함으로 돌변하여
“으응? 날 만두 허구말구우! ……”
하고 끝목을 길게 빼어 지른다. 그 높고 거친 품이 흡사 황소의 영각이었 다. 진주는 하마 바느질을 떨어뜨릴 뻔하였다.
머슴 사랑에서랑 이웃에서랑은 아닌밤중에 비상한 음향에 놀라 일단 잠들 이 깨기는 깨었으나 곧 그 정체를 알고는
‘또야? …… 또!’
‘가끔 한번씩 저 짓거리를 해야만 밥이 잘 내리는감!’
하고 시들하여 하면서 도로들 잠이 들어버린다. 삼월이년만은 그나마 깨지 도 않고. 혹 산에 갔다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듣고 무서하는 꿈을 꾸는지 몰라도. ──
“오두발광이 날 만두 하구말구우! 날 만두 허구말구! 보구 밴 것이 그뿐 이구말구우! 그뿐이구말구! 으응? ……”
어깨를 휘저으면서 구들장이 꺼지라고 밑을 구르면서 발작은 각각으로 심 하여 가 지르는 소리도 마침내 인간이라고 하기보다는 더 많이 맹수의 성난 울음에 가까운 포효였다.
“서방 어리다구우! 으응? 달밤에 오두발광 나서어! 으응? …… 자알 배워 먹었구나아! 자알 배워먹어! 으응? 으응? ……”
불끈 떨치고 일어선다.
“예라! 예라! 나는 못본다! 그런 꼴 나는 못본다아! 나는 못본다! 못보지 이, 못보지! ……”
상인의 집안에서는 시어머니가 예사로 며느리를 두들겨패는 풍습이 없지 아니하다. 머리끄덩도 움키고 꼬집어뜯고 물어떼이기도 하고 간혹 방망이찜 도 하고. 그러나 소위 선비네 집안에서는 아무리 어떤 일이 있더라도 며느 리를 손찌검토록은 하는 법이 아닌 것으로 엄연히 법도(法度)가 되어 있다.
만일 그러한 법도의 제약이 아니었다면 이 밤에 이 자리는 무난히 수라장으 로 변하고 말았을 것이었다. 며느리의 뺨에는 흉한 손톱자죽이 여러 개 나 고, 몸은 함부로 피멍이 지고, 많은 머리칼이 뽑히고, 남갑사 치마는 발기 발기 찢어지고 하고라야 말았을 것이었다.
그러기만 하였으면 박씨부인은 약간 좀 직성이 풀릴 수도 있는 것인데 그 러지를 못하니 사뭇 몸부림이 나는 것이었었다. 쾅쾅 두 발을 구르면서 그 큰 몸집을 뒤흔들면서
“예라아, 썩 내 눈앞에 뵈지 마라! 당장 네 집으루 가거라! 썩 네 집으루 가구 내 눈앞에 뵈지 마라아, 당장! 당장! ……”
“어머님! ……”
푹 엎드러질 듯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진주는 거진 울음 섞어 애절히 빈 다.
“다신…… 다신 그러거든 죽여주시구 한번만 참아 주세요! 어머님!” “당장! 네 집으루 가거라! 못보지! 나는 그런 꼴 못보지이. 썩 네 집으루 가거라아 썩!”
“어머님! 어머님!”
“썩 못 가느냐? 썩 못 가? 으응?”
“제발 어머님! 이 자리서 죽여주시지 어머님! 제발……”
“못 가아? 썩 못 가아? 으응?”
한 고함에 성큼 한 발짝 또 한 고함에 성큼 한 발짝 세 발짝만에 며느리의 바짝 앞에 이르러 그들먹히 막아선다. 그대로 원비(!)를 늘여 덤쑥 머리끄 덩을 움킨다면 정히 큰 솔개미가 병아리를 채인 형국이 도는 판이었었다.
과연 박씨부인은 팔이 움칫움칫 얼마나 거기 눈 아래로 며느리 맵시 나는 머리쪽을 와락 움켜 태질치고 싶었던고.
숨을 허얼헐 기운을 부려댈 무엇 만만한 것이 없나 하고 둘러보면서 일변 “으응? 으응? ……”
하고 을러메다가 마침 바느질꾸리가 눈에 뜨이자 그대로 번쩍 들어 윗문에 다 대고 동댕이를 친다. 쾅 와시르르, 문이 힘없이 삐그덕 열린다.
“나가거라! 당장 네 집으로 가거라! 하누님이 말려두 네 꼴 못본다! 당장 어서 네 집으루 가거라!”
진주는 그저 죽어지이다고 빌 뿐이었다. 그러나 박씨부인은 좀처럼 갈앉기 는새로에 점점 기승이 더하여만 가더니 그러다 필경엔
“정녕 네가 이럴 테냐? 정녕 이 이퉁을 쓰고 앉았을 테냐? …… 오냐, 으 응 두구 보아라! ……”
하고 우르르 아랫목 발치의 장롱 앞으로 달려가 벼락치듯 문짝을 열어젖히 고는 주섬주섬 옷을 꺼내면서 일변 갈아 입으면서
“내가 나가지! 내가 나가지이, 내가…… 내가 쫓겨나가지! 으응! 내가 나 가지이! ……”
일은 졸연치 아니하였다. 단순한 역정이나 책망이 아니라 기어코 친정으로 쫓을 거조 같았다. 진소위 청천벽력이었다.
시어머니가 한번 죽으라는 영이면 곧 그 자리에서 죽는 시늉이라도 하여야 하는 것이 며느리요, 그런 중에도 남달리 순종하는 진주였다. 그러나 진주 는 이 깊은 밤 들을 건너고 산을 타는 오십여 리 친정집을 느닷없이 간다는 것도 감히 생의치 못할 일이거니와, 가사 교군을 차려주어서든 혹은 바로 이웃간이어서든 가기가 어렵지 아니한 형편일값이라도 쫓겨서 친정으로 가 는 그 행보 그 영만은 선뜻 거행할 수가 없었다. 친정으로 쫓겨가기를 저어 함은 일반으로 며느리의 본능이라고도 할 것이었다. 친정으로 쫓겨가기처럼 며느리에게 무서운 것은 없었다. 호랑이보다도 귀신보다도 무서운 것이 그 것이었다. 하루 아침 시집을 못 살고 친정으로 쫓겨가는 날이면 그로써 여 자는 일생을 그르치는 것이었다. 죽은 목숨이나 일반이었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나았다. 강선달네 양념이는 시집을 갔다 쫓겨오더니 어떤 활량의 첩으 로 들어가더니, 갈리고 오더니 그럭저럭 몇 손길 넘나들더니 마지막 술에미 로 떠나가고 말았다. 정자나무집 큰딸은 공방이 들어 친정으로 시집으로 오 락가락하더니 머슴과 배가 맞아 종적없이 어디로 달아나 버렸다. 인물 좋기 로 소문난 최학자네 필순이는 소박데기로 친정살이가 섧다고 들보에 목을 매고 죽어버렸다. 그야 제마다 다 그 신세가 되랄 법은 없는 것이지만, 열 에 아홉은 시집을 쫓겨나 성히 평생을 마치는 사람이 드물었다. 또 성히 평 생을 마친다 하더라도 따라진 목숨이지 좀 기구할 바 없는 것이었다. 여자 는, 며느리는 그러므로 시집 쫓기기를 죽음보다 두려워하며 한사코 그를 면 하려고 든다.
그와 같은 원리(며느리의 본능) 말고도 진주는 따로이 또 한 가지의 위협 이 있었다. 진주가 가고 보면 단 하루를 부지할까 싶지 아니한 새서방 어린 준호를 혼자 두고 가는 것이었다. 애처로와 차마 못할 노릇이었다. 만일 불 행하여 정말로 쫓겨가고 마는 것이라면 쫓겨가서 장차 신세가 어찌 되고 할 걱정이나 그런 것보다도 준호와 함께 있어 주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더 절 박한 고통이요 슬픔이었다. 아닐말로 어린 자식을 떼어놓고 가지 못하여 하 는 어머니나 진배없는 안타까움이었다.
어디로 보든 가지는 못하는 것이요 가서는 아니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불 같은 저 시어머니의 성화는? …… 일시 엄포가 아니라 짜장 당신이 나가 시기라도 할 채비인 걸 어떻게 가만히 보고만 있더란 말인고.
박씨부인은 연방 그 내가 나가지, 내가 쫓겨나가지를 외치면서 고름을 매 면서 아래 영창을 크게 열고 거침없이 앞마루로 나선다.
바느질고리 뒤엎은 것을 주워 담고 있던 진주는 윗문으로 달려나가 앞지르 듯 시어머니의 팔에 매달린다.
“어머님! 한번만 참으세요! 절 죽여주세요 어머니!”
“예라 비껴라! ……”
허잘것없이 뿌리쳐버리고 도방으로 내려서면서
“네 고집이 이기나 내 고집이 이기나 보자! 두구 보아!”
벽에다 머리를 부딪고 쓰러진 진주는 정신이 아찔하였으나 얼른 몸을 일으 켜 천방지축 버선발로 달려내려간다. 고요한 뜰에는 아까와 다름없이 달빛 만 가득히 괴어 있다.
진주는 시어머니의 앞으로 나서서 아랫도리를 얼싸안고 주저앉는다.
“어머니! 그럼 지가……”
“갈 테냐? 네 집으루 갈 테냐?”
“네!”
“정녕?”
“………”
“정녕?”
“네!”
“가거라! 당장 이 길루…… 뒤두 돌아볼라 말구 당장 이 자리서!” “어머님?”
“어서!”
“날이나 새거든 낼 아침에 가께요!”
“요망스런 것! 구미호 같은 것!”
비웃듯 그러면서 떼쳐버리고는 쿵쿵쿵 팔을 휘젓고 차면께로 걸어나간다.
진주는 급한 대로 꾸며댄 말이었었다. 우선 가마고 하여놓고 그랬다가 날 이 밝거든 그야말로 작두를 베고 거적에 누워 빌려니…… 하면 밤 사이 역 정도 많이 삭고 하실 터인즉 웬만큼 풀어지시려니 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재치를 낸 것도 아무 보람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벌써 보이지 않는다. 울 안에서라면 죽으동살동 언제까지고 매 달리고 빌고 한다지만 행길까지 쫓아나가는 수는 없었다. 마당 가운데 주저 앉은 채 두 손으로 얼굴을 싸고 흐느껴 운다.
대문 밖에서부터 시작하여 손뼉을 땅땅 목청껏 지르는 왜장 소리가 새판으 로 인다.
“동네방네 다아들 듣소오! 엊그제 시집온 며느리한테 수절과부 시에미가 쫓겨난다네에! 동네방네 다아들 듣소오 다아들 들어! 김진사 김학선네 집에 서 며느리가 시에미 쫓아냈다네에 시에미를! 이 밤중에 시에미를 쫓아냈다 네!”
이웃에서 젊은 양주가 또 한번 잠이 깨었다. 소곤소곤 주고받는 이야기 가……
“오늘 저녁은 유난히 더허우?”
“저 아씨가 올에 몇?”
“마흔둘이라든가? 셋이라든가……”
“아직두 멀었구면! 영감이나 하나 얻겠지? 저 병엔 신효한 약이니……” “그럴래믄야 여태 수절했겠어요?”
“저럴래서야 어디 수절한 생색이 있나? 개가살이하니보다 더 망신이지!” “며느리가 그 어린 것이 무슨 죄다짐이람! 쯧쯧!”
“난 애야, 사십 전에 죽는다면 이녁더러 삼년상만 치르구 나서 팔자 고치 라구 수결 한 장 써놓구 죽을 테야!”
“숭헌! ……”
2. 사랑 있는 둥우리
고의적삼 바람에 초립만 쓰고 읽던 『맹자』를 옆에 끼고 새서방 준호가 대문간을 지나 차면 안으로 들어선다.
집안은 안방에만 불빛이 환하고 건넌방은 깜깜하고 두루 조용하고 하여 전 과 아무 다름이 없었다. 따라서 그 사이 큰 풍파가 일었던 것을 알 바가 없 고 소년은 오직 매일 밤의 버릇대로 이 밤이 즐거우냐 불행하냐를 가슴속에 점치면서 총총히 섬돌 아래까지 다다른다.
섬돌로 올라서면서는 제법 어른스럽게 밭은기침과 함께
“삼월아?”
하고 부른다. 삼월이를 찾는 것이 아니라 모친한테(모친한테보다도 장가를 든 뒤로부터는 새댁 진주한테) 제가 들어온 기척을 하는 뜻이었다.
부르는 소리와 동시에 윗문이 가만히 열리면서 새댁이 방긋이 웃는 얼굴로 마루로 마주 나온다. 준호는 우선 마음이 놓이고 즐거웠다.
집에 들어 졸연히 즐거움이라고는 없는 준호에게도 꼭 세 가지는 즐거움이 있을 수가 있었다. 석양에 학교로부터 돌아와서나 글방으로부터 돌아와서나 준호는 새댁이 누구보다도 먼저 그리고 방긋이 웃으면서 마주 나와주는 것 이 첫번의 즐거움이었다. 반대로 새댁이 얼른 보이지 아니하거나 보여도 기 색이 좋지 못하거나 하면 그만 마음이 언짢고 슬프다.
준호의 그러는 근경을 잘 알고 있는 진주는 방금 어떠한 일이 있었더라도, 가령 오늘 밤 같은 풍파를 겪고 나서도 정신을 수습하고 마음을 평화히 가 졌다. 웃는 얼굴로 그를 맞아들이기를 범연히 하지 아니한다. 밤이요 어둔 마루건만 준호는 직감적으로 새댁의 얼굴이 웃는 것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만큼 예민함이 있었다.
그 다음이 모친이었다.
안방으로 들어가 무릎 꿇고 앉아서
“어머니 다녀왔읍니다!”
한다.
“글 잘 읽었느냐?”
“네에!”
“………”
박씨부인은 말없이 고개만 가볍게 끄덕이다 이윽고
“건너가 자거라!”
하는 영을 내린다.
준호는 비로소 가슴 조마조마하던 것이 갈앉고 살아난다. 둘쨋번의 즐거움 이었다.
그렇지 않고 건너가 자거라 하는 대신 며느리더러
“이부자리 가져오느라!”
하면 준호는 둘쨋번의 즐거움이 물론이요 그 다음에 올 세쨋번의 즐거움마 저 잃어버려야 한다. 실망하여 밤참도 마다하고 새댁이 모친의 옆에다 펴주 고 물러가는 자리에 꼬부리고 누워 고달픈 꿈을 맺는다.
뜻밖에 모친이 방에 있지 아니한 것을 보고 준호는 뒤따라 들어오는 새댁 더러 눈으로 묻는다. 진주는 섬뻑 무어라고 대답할 바를 몰라 주저주저한 다. 준호는 기다리지 못해
“어디 가싰수?”
“저어 외삼춘댁에……”
준호의 외가 즉 박씨부인의 친정집이었다. 한 동네요 해서 무시로 서로 오 고가고 할 뿐 아니라 화가 나서 나가는 날이면 그건 영락없이 친정집이었지 갈 곳 없었다.
“언제?”
“조금 아까……”
“………”
준호는 눈을 깜작깜작 무엇을 생각하다가
“그럼 지무시구 오시우?”
“아마……”
준호는 얼굴에 안도의 빛이 서언히 떠오른다.
부친을 일찍 여의고 없고 오직 하나의 어버이요 어머니였다. 웬만만 하여 도 그 어머니를 한시라도 못보면 아쉬워할 열두살박이 소년이 도리어 어머 니 없은 시간을 은근히 다행스러할 이치가 없는 것이었다.
‘홀에미 자식일수록 다잡고 엄히 길러 행신과 처세 범백이 빠짐없고 단정 해야만 남에게 후레자식 소리를 아니 들으며 가문에 욕을 아니 끼치는 법이 다.’
이것이 박씨부인의 이른바 훈육방침의 대방이었다.
장가까지 가고 한 어른놈이 하인을 점잖스럽게
‘삼월아!’
이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동무나 부르듯이
‘삼월아? 삼월아!’
한다고 얼마나 꾸중을 들으며 종종 매도 맞았던지 모른다.
아침 일어나기를 몇 분 더디 하였다고 글을 못 외어 바친다고 매질이 난 다. 걸음걸이가 의젓하지 못하다고, 의관을 똑바로 아니한다고 가벼워야 꾸 중이요 그렇지 않으면 역시 매질이다. 제향날 지방을 한 획만 함부로 그었 거나 축을 한 자만 잘못 읽은다치면 이튿날 반드시 볼기를 맞아야 한다. 누 구와 혹시 싸우거나 다툼질을 하였단 보아 ── 별로 싸우거나 다툼질을 하 는 아이도 아니지만 혹시 말이었다 ── 연유와 시비는 어디 가있던 반 죽 고도 남는다. 돈 같은 것은 여간하여서 피천 한푼 제 마음대로 쓰라고 손에 쥐어주지를 아니한다. 소년은 위태한 가지에 깃든 새와 같이 저무나 새나 불안코 조심이 되어 일시도 지기를 펴볼 날이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 벌써 모친이 있고, 모친의 온갖 간섭과 책망과 매질이 있고, 상투와 피곤함과 글 읽기가 있고 한 하루가 변함없이 기다리고 있다. 그만 가슴이 납덩이를 삼 킨 것처럼 무겁고 저절로 이마가 찌푸려진다. 이리하여 소년은 좀처럼 마음 이 거뜬하고 편안할 겨를이 없고서 늘 찌뿌듬하니 걱정스럽다. 들거나 나거 나 공부를 하면서나 쉬며 놀면서나 혹시 또 재미있는 일이 있을 때까지도 마음은 언제든지 한 가드락이 뜨윽 걱정스러 가지고 있고 한다.
자식을 엄히 길러서 물론 나쁠 며리는 없었다. 그러나 박씨부인은 없는 남 편을 대신하여 그 엄격한 아버지 노릇도 하여야 하던 것이지만 일변 지극한 자애를 가지고 임하여야 하는 실로 어머니로서의 의무가 없지 아니한 몸이 었다. 그리하건만 자애란 고물도 비치는 것이 없고 그저 엄히 엄히 하면서 가혹히만 굴기로 주장이었다. 그도 남의 어머니거든 하물며 그 자식이 어떤 자식이라고 마음에까지 소중하고 사랑겨웁지 아니하다면 오히려 빈말이리 라. 사실 마음으로는 끔찍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그러면서도 일체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어 말 한마디 낯색 한번 상냥히 하여 주지를 아니하였다. 결 국 그리하여 박씨부인은 자식을 엄히 기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학대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는 어머니라기보다도 소년의 사지를 꽁꽁 결박짓고 머리를 내리누르고 하는 무형의 밧줄이요 무형의 바윗돌이요 할 따름이었 다. 그의 훈육방침은 활발히 뛰놀고 맘대로 웃고 소리지르고 하면서 씩씩히 자라갈 열두살박이 선머슴더러 부처님같이 얌전하고 시집 온 새각시같이 말 치 없기를 고문하는 형틀(刑具[형구]) 밖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두렵기만한 어머니고 보매, 소년이 정을 붙이고자 한들 붙일 길이 있 으며, 따르고자 한들 따를 길이 있을 바 만무한 것이었다.
진주와 준호 저희들끼리의 비둘기 둥우리 건넌방에서……
진주가 삶은 밤을 벗겨 쟁반 한옆에 놓고 놓고 하는 것을 준호는 그 앞에 가 앉아서 첨사로 찍어다 입에 넣고 넣고 한다. 뒷문에 드리운 발로 간간이 바람이 스며들어 놋촛대의 육촛불이 너울너울 흔들린다. 잘 닦은 장롱과 반 닫이가 그 백통장식들이 불빛을 받아 으리으리 윤이 난다. 진주가 밤을 벗 기고 있는 은장도(銀粧刀)도 손가락의 굵은 은가락지도 또한 빛난다.
“안 먹우?”
“난 먹구 싶잖어요!”
준호가 밤을 또 한 알 찍어올리면서 권하고 진주는 웃으면서 대답이다. 밤 참에 입맛을 다시는 적이 없는 줄 알면서도 준호는 언제나 몇 번이고 권하 기를 마지 아니한다. 그는 진주가 정말로 먹고 싶지 않아서 먹지 않는 것이 아닌 줄을 모르지 않는다.
마침 쪽밤이 나왔다. 준호는 그 한쪽을 찍어 들고
“쪽밤 혼자 먹으믄 덧니 난대?”
“한쪽만 잡숫지?”
“한쪽만 먹으믄 응…… 쪽니가 나구!”
“그럼 어떡허나아?”
“그러니깐 둘이 노나먹어예지!”
그러면서 찍은 밤쪽을 진주의 입 바투 가져다 대어준다. 진주는 까르르 웃 어지려는 것을 손등으로 입을 가린다.
“자아!”
“이따가 먹으께요!”
“시방! ……”
“………”
진주는 할 수 없이 밤쪽을 뽑아다 입에 넣는다. 그리고는 둘이 서로 보면 서 새로이 웃는다.
정신적으로 큰 압박이 있는데다, 겸하여 휴식과 수면을 충분히 하지 못하 기 때문에 소년 준호는 한창 자라기 시작할 나이면서도 발육이 정지된 듯 살도 오르지 아니하고 더 크지도 아니하고 빼빼 야위어 가지고는 밤낮 고만 하고 있다. 가냘픈 몸집, 가느다란 목, 그 위에 가 올라앉은 커다란 머리 통, 어웅한 눈…… 보기에조차 위태위태하다. 체질이 본판 약한 것이라고 인삼과 녹용으로 보약을 장복시키나 살을 깎아내고 피를 졸여주는 과로와 정신적 압박이 있는 이상 아무런 소용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소년에 게 일맥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 지나간 봄 혼인을 한 이후부터 시작 된 진주의 다정스런 마음성과 알뜰살뜰한 거천이었다.
잠은 소년의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욕망이요 낙이었다. 글방으로부터 돌 아오는 그는 눈을 뜨지 못한다. 그러던 그가 새댁이 마루로 마주 나서주게 되면 단박 눈이 초롱초롱하여진다. 그러고는 저희들의 비둘기 둥우리로 들 어와서는 밤참도 먹고 하면서 잠시 동안 이야기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잠을 잔다. 또 그래야만 잠이 오는 것이다. 이것이 소년의 집에 들어 세쨋번의 즐거움이요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지금에 만일 소년에게서 진주를 빼앗아버 린다고 하면, 그의 실망과 타격은 말할 수 없이 심각할 것이었다.
“바느질 또 허우?”
이부자리를 펴고 있는 진주더러 준호가 묻는다.
“행전허구 쾌자허굴 못다 마쳐서……”
“그럼 왜 일러루 안 가지구 오우?”
“안방으루 가서 해예죠! 어머님이 혹시 오시드래두……”
“안 오신다믄서?”
“오신다구두 아니 오신다구두 아녀셌은깐 막상 몰라 기대려 드려예죠!” “그럼 난?”
“얘기허다 잠드신 거 보구서 가께요!”
처음부터 진주는 아까 인 풍파는 씻어 덮어두고 말을 비추지 아니하기로 하였다. 눈이 부으면 눈치를 채일까 보아서 그런 생각을 하고 울음도 이내 거두었었다. 내일이건 언제건 종차 아는 때 알고야 말값에 구태여 미리서 알게 하여 일껏 편안한 마음을 흐트려주고 싶지가 아니하였던 것이다.
준호는 초립과 망건을 벗다가 그 끝에 문득 생각이 나서
“난 언제나 머릴 깎우!”
“그래두 아무때구 어머님이 깎아라 헤세예죠!”
“꼭 죽겠는걸!”
“애야 어머님 허락 없인 깎지 말아요 응?”
“서울루 유학 갈댐 깎으라실까?”
“서울루 공부 가라시나요?”
“지끔은 한문 공분 만날 소용 없대! 서울 가서 신학문 학교공부 많이 해 예지 허지……”
“그랬으믄야 좋지만서두 어머님이……”
“안 보내주시믄 난 머 몰래 도망해 갈꺼!”
“에구우! ……”
“일없어! 난……”
“그럼 못써요!”
“지끔은 신학문 못헌 사람은 아무것두 못헌대! 병신이래!”
“건 그렇지만서두 어머님 몰래 그랬다 어떻자구요? 학비랑은 누가 대주 구……”
“밥값이 십 원이구. 십 원만 더 있으믄 된대!”
“다달이?”
“응!”
“어머님이 안 대주시믄 다달이 이십 원이 어디서 나우?”
“외삼춘더러…… 후제 도루 다아 갚아 드리마구……”
“외삼춘이 그리 넉넉하세야죠?”
“………”
“지금 삼학년인깐 내년 내후년 아녜요? 그러니깐 안직 여기 학교공부나 부지런히 허지 벌써버틈 그렇게 맘 떠가지구 그럼 되려 못써요! 응?” “응!”
고집이 노상 없는 바가 아니나 이른 말도 잘 듣는 소년이었다. 진주의 말 이면 더구나 잘 들었다.
어느덧 숨결 소리가 고르게 들렸다. 진주는 베개며 처네 같은 것을 다독다 독 잘 고쳐 주고 다스려 주고 한 후에 살며시 그 옆을 일어선다. 기다렸던 듯 닭이 홰를 치고 운다. 이어서 멀고 가까이 닭 우는 소리가 요란하다. 안 방에서 괘종이 땡땡 두 번을 친다.
‘벌써! ……’
오래지 않아 날이 밝을 생각을 하고 비로소 밝는 아침의 걱정이 일시에 눌 렸던 머리를 쳐들면서 가슴에 탁 맞힌다.
별수 없었다. 내일 조반 후에 삼월이나 앞세우고 시외삼촌댁으로 쫓아가는 것이었다. 시집 온 지 겨우 다섯 달, 아직껏 대문 밖에도 나서 보지 아니한 새각시로 쓰개치마 뒤쓰고 행길을 나간다는 것이 심히 온당치 못함이 아님 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니 가는 수는 없었다. 가서 시외삼촌 내외 분의 만류와 권념도 있고 하는 자리에서 그저 죽여 주십시오 손이 발이 되 게 비는 것이었다. 그렇게 가서 빌어서 들으시면 만행이요, 아니 들으신다 치더라도 그러는 것이 나 할 도리를 하는 것이었다.
너무 선선할 것 같아서 진주는 발을 걷고 뒷문을 닫는다. 그러고는 촛불을 끄고 나오기 전에 방안을 미진한 것이나 없나 하고 한 바퀴 둘러보다가 눈 이 새서방의 무심히 잠든 얼굴에 멎은 채 오래도록 옮기지 못한다. 그러다 훨씬만에 가벼운 한숨과 더불어 이슬이 눈가를 적신다. 사랑스럽고 애처로 운 그 두 정이 그새보다 유난히 더 샘물 솟듯 곡진하게 솟아오르던 것이었 었다.
3. 마지막 犒饋[호궤]
준호는 뒷짐을 넌지시 지고 가만가만 걸어나온 것이 대문 밖 연자방앗간까 지 나왔다.
한낮이 훨씬 많이 겨웠고……
멀찍이 두레마당에서 치는 풍장 소리가 단조로이 들려온다. 동네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있는 대로 끌어나 절반은 두레마당으로 쏠리고 절반은 읍 내 난장으로 쏠리어 텅 빈 동네같이 길이고 고샅이 헤성헤성하다.
한낮 겨운 해는 아직도 칠팔월 노양이라서 제법 싱싱하게 불볕을 내리쪼이 고 있다. 이삭이 무긋무긋 숙은 텃논에서는 좋은 햇볕에 벼가 마지막 익느 라고 솨아 소리가 금시로 이는 듯하다. 쓰러지게 벼가 잘 되었다. 그리고 늦더위에 잘 익어가고 있다. 텃논뿐 아니라 들녘도 고래실도 도처가 농사가 잘 되었다. 밭곡식도 잘 되었다. 금년은 풍년이다. 대풍이다.
풍년이 드니 추석이 우선 푸짐하다. 햇벼 장만하여 섬쌀로 술을 빚고 떡을 치고 통소 잡고 도야지 잡고 오색 과일 따다 놓고 배불리 먹으며 취토록 마 시며 노래 부르고 춤추면서 저마다 새옷으로 호사요 동네마다 즐겁게 노는 빛이다. 위청(양반축)에서는 재인 불러 풍악 잡히면서 놀고 아래청(농민축) 에서는 고깔 쓰고 풍장 치면서 논다. 어른들은 골패를 하고 투전을 뽑고 윷 을 논다. 아이들은 돈을 친다. 읍내는 난장이 터져 씨름이야 노름판이야 걸 궁패야 협률사(協律社 : 移動舊派劇團[이동구파극단]) 같은 여러 가지 놀이 와 굿으로 더욱 흥청벙청한다. 낮에는 동네서 놀고 밤이면 읍내로 난장 구 경을 간다. 아침에 읍내로 들어가 온종일 난장 구경을 하고 돌아와서 밤이 면 동네서 놀기도 한다. 추석은 이렇게 얼마든지 푸지고 즐거웠다. 놀기 좋 기로는 그리하여 추석이 설보다 더 치는 명절이었다.
그런 푸지고, 남들은 다들 즐거운 추석이었으나 오직 소년 준호에게만은 명절이 도리어 심심하였다. 장가를 가서 상투 짜고 갓(草笠[초립]) 쓰고 한 명색은 어른이었다. 그러나 열두살박이 초립동이로 짜장 어른들 청에 감히 어찌 참예는 하며, 붙연들 줄 이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럼 그렇다고 장가 간 새서방이요 상투 짜고 갓 쓰고 한 명색이 어른 쳇것이 또래의 동자패 선 머슴들 축에 끼여 콩조각으로 윷이나 놀고 돈이나 치고, 돈치던 흙 묻은 손 으로 주머니 속에서 밤 ․ 대추나 꺼내 먹고 하면서 함부로 놀 수는 없었다.
그야 한 낫세의 학교도 같이 다니고 글방에도 같이 다니고 하는 동무가 없 는 것이 아니었다. 머리채 늘어뜨린 놈도 있고, 사포 쓴 중대가리도 있고, 또 두엇이나는 같은 초립동이도 있고 하였다. 그렇지만 그애들은 단순히 글 동무로서의 동무였지 섭쓸려 장난하고 놀 바의 동무는 아니었다. 그애들은 학교에서랑 학교와 글방엘 가고 오고 하는 길초에서랑 곧잘 ‘지구쌈’ 도 하고 ‘기와쌈’ 도 하고 ‘팔방’ 도 하고 ‘비석치기’ 도 하고 한다. 읍내 이께다네 가게 앞을 지나면서는 으례 모지떡을 사먹는다. 엿장수를 만나면 사서 먹기도 하고 ‘엿치기’ 도 한다. 밤 이슥토록 글방에서 글을 읽고 나 서는 일쑤 ‘서리’ 들을 한다. 남의 콩 뽑아다 삶아먹는 ‘콩서리’ , 남의 참외 따다 먹는 ‘원두서리’ , 남의 닭 잡아다 먹는 ‘닭서리’ , 때로는 남 의 집 뒤 울안에 쪄다 논 고사떡을 시루째 들어다 먹는 ‘떡서리’ 까지 한 다. ‘서리’ 는 풍속이요 글방 도령들에게 눈감아 주는 장난으로 선생이나 부형들이나 항용들 보고도 모른 체하고 심히 말리지 아니하거니와 피해를 당한 편에서도 대개는
“허! 그놈들 참!”
하고 입맛이나 다시고 말지 깊이 미워를 한다든지 말썽을 일으키는 법은 별 로 없다. 자기의 어려서 일을 여겨서 혹은 자기네 자제 역시 그런 글방 도 령의 하나임을 여겨서 그러기도 하고, 철없는 아이들의 한때 장난을 허물치 아니하는 너그러움과 순박함으로 그러기도 하였다. 하기야 현장에서 들키어 가지고 무섭게 쫓기는 수도 있고, 그러다 오줌독에 빠지는 아이도 있고, 또 사람 따라 뒤를 밝혔다 글방으로 쫓아와서 기어코 말썽을 일으키어 선생을 책망한다, 선생으로 하여금 이면상 아이들을 달초하지 아니치 못하게 한다, 서리 맞은 것을 도로 빼앗아 간다, 값을 물린다 하는 경우가 노상 없는 바 가 아로니되 극히 드물었다.
하옇든 ‘서리’ 란 짓궂은 장난이요 악동(惡童) 짓임엔 갈데없으나 그런 만큼 글도령들은 ‘서리’ 가 큰 매력이었다. 가서 ‘서리’ 를 하는 그 아슬 아슬한 맛이나 ‘서리’ 하여 온 것을 먹는 맛이라니, 천하에 거기 덮을 재 미는 돈을 주고 사자 하여도 없었다.
이다지도 재미있는 ‘서리’ 하며 그 밖에 동무아이들이 하고 노는 장난이 소년 준호에게는 그러나 모두가 그림 속의 떡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 장난 을 엄히 금하는 단속을 늘 받으면서 만약 범하였다 탄로가 나든지 하면 무 서운 형벌을 당하면서 골샌님 본으로만 치어난 그는 영영 아주 주눅이 들어 가지고 좀처럼 장난판에 낄 생심부터 하지를 못한다. 또 혹시 어찌하다 한 몫 끼더라도 줄창 하여 보지 않는 노릇인데, 일변 겁을 먹기 때문에 손이 잘 맞지 아니하여 매양 숙맥짓이나 하고는 핀잔이나 듣고 하였다. 그것이 금년 봄 장가를 든 뒤로부터는 더우기 그놈 상투가 야속히 남의 눈에 뜨이 는 물건이 되어서 모친이 두렵기 이전에 스스로 상투가 꺼리어 차마 못하는 적이 가뜩이나 많았다. 이께다네 가게의 그 달고 설설 녹는 모찌떡을 한 개 나 사먹자 하여도 머리 딴 도령 적에는 단지
‘어머니가 보시지나 아니하시나!’
‘누가 보고 가서 어머니께 일러바치지나 아니하나?’
이런 걱정뿐이요 사먹는 그 자리는 비교적 거리낌이 덜하고 하던 것이 장가 를 들어 상투 짜고 갓 쓰고 다니면서부터는 보는 사람마다
‘하하, 저 초립동이가 모찌떡 사서 우물우물 먹는 꼴 좀 보아!’ ‘끌끌 어른허군 알뜰하지! 행길에서 군것질하고 섰고!’
하고 조롱을 하는 것 같아서.
더구나
‘저게 죽은 아무개 자식이지? 온 저 무슨 장난이람? 어린애도 아니요 창 립한 자식이!’
하고 욕하는 아는 사람한테 띄면 어찌하나 하는 저어운 마음이 앞을 서서 사먹고 싶은 생각이 나다가도 곧 움츠러지고 하였다. 그리하여 상투는 결국 박씨부인 대신으로 소년의 머리 위에 올라앉아 그의 일동일정을 감시 제약 하는 눈초리와도 다름이 없었다. 그러노라니 자연 본시부터 그닥 길지 못한 소년의 생활 행동은 반경이 더욱더 졸아들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여지껏 준호는 안마루에 가 걸터앉았다. 집 후원으로 들어가 감 나무의 감 열린 것을 세어보다 사랑마당으로 나와 오락가락 거닐다 수없이 이 짓을 되풀이하였다. 하다가 문득 나온 것이 지금 겨우 대문 밖 연자방앗 간이었다. 그도 마침 모친 박씨부인이 나들이를 가고 집에 있지 아니함에서 오는 제풀안심에서였다.
글방은 그믐까지 파접을 하였으니 물론 말할 것이 없고, 학교도 추석이라 서 보름날부터 오늘까지 사흘 동안 임시로 방학이었다. 준호는 그 사흘을 밤과 낮으로 꼬바기 잘 놀 수가 있었다. 그러나 준호에게는 차라리 그것이 심심한 사흘이었다. 보름날 하루는 성묘를 갔다 오느라고 그럭저럭 넘겼으 니 치지 않는다고 하고. 어제와 오늘은 고스란히 심심하였다. 놀러 갈 곳이 있나, 놀러 갈 수는 있나, 놀러 오는 사람은 있나. 끈 떨어진 말처럼 혼자 비잉빙 집 안팎을 감돌면서 몸이 비비 꼬이도록 지리한 시간을 지웠을 따름 이었다.
아무리 박씨부인으로도 이 사흘 동안만은 첫새벽 여섯시 땅 치는 소리에 맞추어
“준호야아!”
하고 불러 일으키거나 글을 외어바치라고는 하지 아니하였다. 덕분에 아침 늦잠을 조금은 잘 수가 있었다. 그 졸려 죽겠으면서 고단하여 쓰러지겠으면 서 억지로 억지로 가던 저녁 글방을 아니 가는 것이며, 또 평소에는 세철 방학때는 물론이요 일요일이나 축제일 같은 학교를 노는 날이면 그 날은 낮 글까지 가서 읽어야 하던 것을 역시 면한 것이며, 생각하면 그만하여도 명 절 보람이 크지 아니한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다만 그뿐이었다. 하고 적극 적으로 나아가 마음대로 놀지를 못하니, 일껏 노는 날이 막상 고통스럴 지 경이었다. 따라서 늘 그
‘좀 놀았으면! 하루고 이틀이고 실컷 마음 턱 놓고 놀아보았으면!’ 하던 것이 아무 생색이 없었다.
연자방앗간 기둥을 한팔로 안듯하고 우두커니 지여 서서 먼산바라기에 세 월이 없던 준호는 그러다 얼마만인지 문득 무료히 떨어뜨린 한손이 허리에 찬 빨강 염낭을 만진다. 한푼의 반원(半圓 : 五十錢[오십전])짜리 커다란 은전이 손가락 끝에 만힌다. 미소가 떠오른다. 추석날 아침 새옷 갈아 입을 때 새댁이 가만히 넣어서 채워 준 것이다. 생전 처음 가져보는 큰돈이었다.
무시로 그것을 겉으로 만져도 보고 꺼내서 손에 쥐고 보기도 하고 하면서 만족하여 하는 노리개거리였다. 그 돈 한푼이 염낭 속에 들어있음으로 하여 심심하다가도 얼마나 마음이 무긋한 그 돈 무게처럼 마음 느긋하고 재미가 나는지 모른다.
떼새가 시꺼멓게 내려앉아 벼를 먹는다. 새막은 죄다 비고 아무 논에서도 새 보는 소리가 없다. 추석은 새들도 명절이다. 쉴새없이 지저귀고 푸덕이 고 하면서 허리띠 풀어논 셈으로 막 먹고 막 노는 판이다. 준호는 새들까지 가 명절이 즐거운 양이 부러웠다.
읍내로 난 신작로다. 논을 가르고 퍼언히 깨어나가다 산 모롱이로 휘어졌 다. 그 휘어진 모롱이로 좇아 한떼의 사람이 나타난다. 흰옷 입은 어른들과 무색옷 곱게 입은 아이들이다. 읍내로 난장 구경을 갔다 오는 패들이다.
‘참! 나도 읍내나 갈걸!’
준호는 깜박 생각이 나고 반가왔다.
‘그래 참!’
진작 그 생각을 못한 것이 이상하였다. 가도 상관없었다. 어제는 모친이나 집에 있었다지만 오늘은 아까 벌써 이른점심 마치고 나들이를 가고 없는 걸……
박씨부인은 재작년부터 시작하여 절골 약수터로 추석물을 마시러 다녔다.
삼년 동안 눌러 추석마다 그 물을 먹고 그 물로 아픈 자리를 씻고 하면 체 증도 가슴아피도 냉도 사족 쑤시는 것도 부스럼도 피풍도 그 밖에 온갖 병 이 다 낫는다는 흡사 장거리의 약장수 약 같은 약수였다. 박씨부인은 냉과 피풍이었다.
그 절골이 마침 친정 사촌 즉 용길네가 사는 동네가 되어서 박씨부인은 계 제가 썩 좋았다. 미리서 낮때쯤 떠나 우선 용길네 집엘 들러 저녁도 먹고 밤을 묵으면서 첫닭 울기를 기다렸다 부리나케 약수터로 달려가는 것이었 다. 되도록 남이 물을 더럽히기 전에 정히 맞아야 효험이 더하다는 진주가 붙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들이를 간 길이라, 오늘로 당일에 모친이 돌아오지 아니할 것은 번 연하였다. 일러야 내일 낮이요 그렇지 않으면 내일도 저물녘에나 돌아올 것 이었다. 그러니 오늘 아직도 많이 남은 해와 그리고 오늘 밤 온밤은 어디 가서 무슨 짓을 하고 놀아도 마냥 걱정 없을 참이었다.
“부질없이 나가 돌아다니지 말구 집에서 놀아!”
모친은 떠나려면서 이렇게 단속까지 하였으나 누가 고자질이라도 하여 바 친다면이거니와 달리는 좀처럼 발설이 될 염려가 없었다.
그러나……
두루 그만큼 안전하고 그래서 가 놀다가 와도 아무 탈이 없기는 없을 터인 데 웬일인지 처음 그렇게 와락 반갑고 당기던 것이 정작은 선뜻 나설 강단 은 나지를 않고 슬며시 한편으로 뒤가 나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긴치 못 한 노릇 같았다. 혹시 들려나면…… 하는 사후(事後)의 두려움보다도 우선 먼저 사람 의젓스럽지 못하게 난장판엔 가서 구경을 하고 놀고 다니고 한다 는 사실 그 자체가 스스로 불가하고 위험스럽던 것이었다. 마치 그것은 무 슨 무서운 것을 ─ 화약덩어리나 호랑이꼬리를 만지기처럼 지레 겁이 나서 팔이 내뻗쳐지지를 않고 연방 뒤로 움츠러들기 같은 것이었다.
‘어떡할까?’
‘가?’
‘글쎄……’
‘가지 말아?’
‘글쎄……’
무수히 이렇게 망설이면서 넋을 놓고 섰다. 바짝 등뒤에서
“준호 무어허니?”
하고 갑자기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윤석이라고 한 반에 다니 는 학교 동무였다. 나이는 준호와 한동갑 열두 살이라도 걸대가 크고 기운 이 부룩송아지 같고 천하 장난괴수요 또래 중에서 왕 노릇을 하는 악동대장 이었다. 사철 동저고리 바람에 다 낡은 사포 하나만 들얹고 못가는 데 없이 싸다니는 놈이 그래도 추석이랍시고 검정물 들인 삼베 두루마기에다 새 미 투리 신고 새 모자까지 떨쳐 썼다.
“무어 해?”
재차 그러면서 싱글벙글 일변 풋밤을 꺼내어 이빨로 페페 번데기를 벗겨 뱉으면서 껑충 개울을 뛰어넘어 연자방앗간으로 들어서더니
“읍내 안 갈늬?”
정 마음이 내키거나 아쉰 소리를 할 때 외에는 놈이 남의 집 새서방더러 깍듯이 해라한다.
준호는 간다든 싫다든 대답이 없고 애매한 얼굴이면서 빙긋이 웃을 뿐이 다. 준호는 노상 이 윤석이 부러워 못한다. 그 늠름한 체격이 부럽고 활달 한 기상이 부러웠다. 아이가 퍽도 험히 굴건만 저희 부모는 통히 간섭을 아 니하고 놓아먹여 기를 꺾어주지 않는 것이 부러웠다. 집이 몹시 간구하였 다. 의복은 항상 남루하고 어쩌다 사게 되는 학용품도 여일히 사쓰지 못한 다. 점심을 가지고 오는 날이 별반 드물다. 그렇것만 그런 것이 하나도 흉 이 아니요, 아무한테도 기를 앗기거나 눌려 지내는 법이 없다. 배고픈 줄을 모르고 더럽거나 해어진 옷 입고 다니지 않고, 그러면서도 늘 마음이 편안 할 적이 없이 찌뿌듬하니 걱정스럽고 아무 재미도 즐거움도 없고 한 저보다 도 준호는 누더기를 걸치고 끼니를 굶을망정 활달하고 세상이 거침새가 없 으며 언제나 즐거운 윤석이 영웅이었다. 지금도 그런 흠망의 빛이 가득한 눈으로 곰곰이 윤석을 보아 마지않는다.
남이 대꾸야 하거나 말거나 윤석은 저 할 소리만 부옇게 떠들어놓는다.
“너 읍내 구경 참 좋다아! 난장이 터지구 협률사가 들오구, 그리고 초라 니패두 들왔어. 너 협률사 굿 못 봤지 어때? 홍동지 박첨지 허는 초라니패 랑?”
“………”
“난 어저끼두 갔다 왔어…… 너 참 나 어저끼 씨름 몇 허리 이긴 줄 알 아?”
“………”
“스물세 허리 이겼어. 스물세 허리! …… 스물세 허린깐 상이 모두 넷이 냐? 이 대님이랑 그리구 이 염낭이랑 또 그리구 울어머니 드린 왜포 수건이 랑 모두 어저끼 탄 거야.”
“………”
“너 그리구 참 오늘이 마지막이다! 난장두 마지막이구 협률사랑 초라니패 랑 오늘꺼정만 놀구 나간대. 난장은 그리구 오늘이 소씨름야 소씨름…… 하, 소씨름 참 무섭구 재밌다아. 소 따가는 소씨름……”
“………”
“느머니가 못가게 허니?”
“………”
준호는 고개만 잘래잘래 젓고 윤석이 고쳐
“그럼?”
“………”
“그럼 초립동이 싸개 맞을까바서?”
“………”
“나허구 가믄 일없어. 깐놈들 내가 다아 혼내줘.”
“갔다 언제 오구?”
비로소 준호가 한마디 묻는다.
“밤에 오지 머. 소 나가는 소씨름 구경허구 와예지 아니해? 그리구 협률 사 굿이랑 초라니패 굿이랑 낮엔 놀지 않아요 밤에 놀지……”
“………”
“일없어. 나허구 오믄 무섭지 않아. 그리구 우리 동네서 간 사람들허구랑 함께 오구 헐 텐깐……”
“그리음……”.
준호는 깜작깜작 생각하다가
“나 옷 입구 나오께?”
하고 돌아선다.
“응. 얼른 입구 나와예지 헌다?”
“응!”
“그리구우 준호야?”
“응?”
“돈 가지구 가예지 헌다?”
“돈?”
그러면서 준호는 도로 돌아선다.
“그래. 돈 있어예지 협률사랑 초라니패랑 구경 헐 끼 아냐?” “을마나?”
“협률산 아이들은 십 전야. 초라니팬 오 전이구…… 넌 그렇지만 초립동 이깐 으런표 사라구 헐 끼다? 으런푠 아이들 곱장이 내예지 해!” “………”
“그리구 또 배고플 텐깐 무어 사먹어예지 헐 거 아냐?”
“………”
준호는 그런 것도 걱정이었다. 염낭 속에 그 돈 오십전짜리 한푼이 있으니 돈이 없는 바는 아니었다. 물론 돈이라기보다도 보배스런 노리갯감인 걸 써 버리기가 아깝기야 할 터이지만 반드시 써야 할 경우라면 못 쓸 것도 또한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여사당패(협률사) 구경을 하고 장거리의 주막집에 들어 음식을 사먹고 하는 것이라면 졸연한 일이 아니었다. 일찌기 해본 적 이 없는 짓이었었다.
윤석으로 인하여 처음엔 갈 편으로 마음이 기울었던 것이 뒤미처 돈이니 협률사 구경이니 음식 사먹기니 하는 소리가 나는 바람에 그만 꺼리는 생각 도 더럭 더하여 결국은 피장파장이 된 셈이었다. 그리하여 또다시 그 ‘어떡할꼬?’
‘가?’
‘가지 말아?’
하고 망설이기를 되풀이하고 섰는데, 그런 속도 모르고 악동은 제딴엔 한참 돈 나올 구멍을 훈수한다는 수작이
“너 돈 가진 거 없건 느이 각시더러 달래. 새각신 시집오믄서 으례껀 함 에다 좀씩 돈 넣어가지구 오는 거래. 어여 가 달래!”
준호는 부끄럼을 타 얼굴이 빨개진다. 그러나 그 얼굴은 빛났다.
‘새댁! 옳아 참! ……’
새댁이 있다는 것을 그는 윤석의 그 말에서 깜박 깨우쳤던 것이다.
새댁더러 물으면 될 것이었다. 새댁은 이 답답한 산술을 속 후련하게 풀어 줄 것이었다. 보나마나 선뜻 가라고 할 것이었다. 새댁이 가라고만 하는 날 이면 거뜬한 마음으로 갈 수가 있는 것이었다. 혹시 가지 말라고 하여도 하 릴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어떻게든 가도록 하여 주었지 가지 말라고는 아니 할 것이었다.
“댕겨 나오께? 기댈려? 응?”
그러고는 총총히 대문 안으로 들어간다.
새댁은 마악 건넌방에서 마루로 나오고 있었다. 새각시요 추석이라 곱게곱 게 호사를 하였다. 금자박이 자주호장 낀 노랑 저고리에 연분홍 치마를 받 쳐 입고 치마끈에단 한 묶음의 은패물을 찼다. 세면하고 분바르고 윤나는 머리쪽에는 크고 작은 은비녀가 골고루 꽂혔다. 준호는 새댁이 이렇게 노랑 저고리에 연분홍 치마로 차렸을 때가 그중에도 제일 이쁘고 더 좋았다.
준호는 싱그레 웃으면서 연방 새댁을 위아래로 씻어보면서 꽃당혜를 신고 있는 옆으로 다가선다. 우선 쥔마나님이 나들이를 가고 없는 바람에 실컷 동네집으로 마을을 싸다니는지, 삼월이년도 보이지 않고 하여 둘이는 마음 놓고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다.
“밤엿 좀 꺼내다 드리우?”
새댁이 그러는 것을 준호는 고개를 젓고 나서
“저어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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