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술은 계영의 앞으로는 한덜음 더 들어 가며, 『 이 봐라, 지금 한 말은 정신 있어 한 말이냐, 내가 누군 줄을 알고 한 말이냐, 철없는 어린 계집이 실수로 한 말이냐, 다시 한번 바로 혀를 놀려 보아라!』 하고 소리를 질렀다.
김술이 계영아기 앞으로 대드는 것을 보고 시월이 두팔을 벌리고 김술의 앞을 막아 서며 또렷또렷한 목소리로, 『 비켜라! 아무리 예법을 모르는 북방 오랑캐의 종이기로 어는 안전이라도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느냐 비켜라!』 하고 대든다.
김술이 더욱 노하려 주먹을 들어 시월의 뺨을 치며, 『 요 년! 요년!』
하고 벌벌 떠니, 김술을 모시는 두 사람 달려들어 시월을 끌어 낸다.
시월이 아니 끌리려고 몸부림을 하며, 『 어느 놈이든지 우리 댁 아가씨 몸에 손가락 하나만 대어 보라. 그 놈의 간을 씹어 먹고야 말리라.』 하고 자기의 팔을 붙든 사람들의 손을 물어 뗀다.
김술이 허리에 찼던 칼을 빼어 둘러 메며, 『 내 서불한 김성마마를 몰라 보는 년의 모가지가 쇠로 되었는가를 시험 하리라.』 하고 계영을 위협한다.
계영이 상긋 웃고 일어나며, 『 좋은 말이로다. 그 칼로 내 목을 치라. 천년 신라의 우로를 받고도 오랑캐 왕건의 개가 되어 그 발을 핥고 제 임금을 배반하는 역적 김성의 집칼이 무엇으로 되었나 시험하여 보리라. 시중 유렴의 딸이 칼이 무서워 할줄 알았더냐? 자 쳐보아라!』 할 때에 그 소리는 하늘에 오를 듯이 힘이 있고 눈에는 불이 번쩍이는듯 하였다. 숲속에 앉았던 사람들은 모두 큰일났구나 하고 일어나서 무서워- 251 - 감히 가까이는 오지 못하되 먼 발치에서 어찌되는가 하고 주먹을 땀을 쥐고 보고 있다.
김술은 계영의 얼굴과 말에 두려움이 생긴 듯이 한걸음 뒤로 물러간다.
이때에 시월이 자기를 붙들었던 사람들의 팔목을 물어 떼어 입에 피를 묻혀가지고 뛰어가 계영의 앞을 막아 서며, 『 허, 못난놈! 전장에를 나가면 쥐구멍만 찾아도, 힘 없는 부녀 앞에서는 호기가 당당하구나.』 하고 빈정거렸다. 밤으로 도망하여 온 것을 가리킨 것이다. 이 말만 들으면 김술은 부끄러움과 분함을 못 이기어 죽을지 살지를 몰라, 어떤 친구 하나의 목을 벤 것으로 유명하다.
과연 김술은 칼을 들어 시월을 치려 하였다. 그러나 김술의 칼이 미처 시월의 목에 떨어지기 전에, 『 이 놈아, 내 몽동이 맛부터 보아라.』 하고, 지금까지 김충과 함께 소나무 그늘에서 보고 있던 두껍쇠가 내달아 김술의 뒤통수를 방망이로 대가리가 깨어지라고 내려 갈겼다.
김술은 칼을 던지고 땅에 거꾸러졌다.
두껍쇠는 나는 기운을 억제하지 못하는 듯이 김술을 따르는 두 사람 중에 칼을 들고 덤비는 한 사람을 갈기니, 그 사람은 거꾸러지고 나머지 한 사람은 칼을 끌고 달아난다. 두껍쇠는 댓 걸음 그 사람을 따라 가다가, 『 허, 이놈들 허울만 좋았지 기운은 한땀도 없구나.』 하고 껄껄 웃었다.
그러는 동안에 김술이 겨우 정신을 차려 비씰거리고 일어나나 코와 입으로는 피가 나온다. 김술이 일어나 칼을 버리고 달아나는 것을 보고, 두껍 쇠 몽둥이를 들고 따라 가니, 김술이 두껍쇠를 보고 겁하여 땅에 자빠지며 두 손을 합창하여 차마 말을 못하고 살려 주기를 빈다.
두껍쇠는 몽둥이를 짚고 김술의 피 묻은 얼굴을 들여다 보며, 『 이 놈 몇 푼어치 못되는 놈이 건방지게 —————우리 댁 나리마님 분부만 아니시면 대번에 골을 까서 주린 까마귀나 한밥 먹이련마는 따라지 목숨을 살려 주는 것이니, 하늘 높은 줄이나 알아라!』 하고 고개를 돌려 「퉤!」하고 침을 뱉고 몽둥이를 끌고 돌아 온다. 계영과 시월이는 놀라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여 잠시 기절을 하였다. 사람은 많이 계영의 장막 앞으로 모여 들어 약량에서 약을 내어 주는 이도 있고, 기절 한두 사람의 팔다리를 주무르는 이도 있다. 그러나 김술의 후환이 두려워 모두 뒤를 힐끗힐끗 돌아 본다.
- 252 - 김충은 여전히 아까 섰던 나무 밑에 서 있다. 두껍쇠는 것을 보고 몽둥이를 메고 뛰어 간다, 사람들은 두껍쇠가 뛰어 가는 곳으로 눈을 보내어 거기 김충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두껍쇠는 가만히 김충을 바라보았다. 김충은 두껍쇠가 한 일을 옳이 여긴다는 뜻으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김술은 여러 사람의 부액을 받아서 간신히 제자리에 돌아 가 누웠다.
사람들은 다투어 김술의 얼굴에 피를 씻고 팔다리를 만지고 약을 먹이고 김술의 칼날도 없는 빈 칼집을 떼어 들도 울지 웃을지 어찌할 줄을 몰랐다.
김술은 숨을 돌리자마자 곁에 있는 사람들을 못 견디게 굴었다. 공연히 발길로 차고 팔로 둘러치고 짜증을 내었다. 사람들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삥 둘러 서서 서로 눈치만 보았다.
『나를 때린 놈이 어떤 놈이냐?』
하고 김술은 소리를 벼락같이 지르고 일어났다.
『대아손 김부(大阿飡金傅) 집 종 두껍쇠놈이요.』
하고 한 사람이 아뢰었다.
『김부? 효종의 아들!』
하고 김술은 경멸하는 어조로 말하였다. 김술이 김충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김충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인손인 자기의 체면에 옳지 아니한 것 같고 이손이요 시중이던 효종이 겨우 자기와 동등한 듯하였던 까닭이다.
김충의 집 종놈의 손에 몽동이로 얻어 맞은 것이 골이 쪽쪽으로 흔들리고 눈망울이 빠지는 듯하여 기운을 쓸 수가 없어 도로 펄썩 주저앉는 것을 사람이 사방으로 붙들었다. 그제야 김술이 좀 기운을 내어, 『 그래 너희들 중에는 그 두껍쇠놈의 모가리를 잘라 오는 놈이 한 놈도 없단 말이냐—————저 유령이놈의 식구를 모조리 도륙을 하고 효종이 놈의 집안을 씨도 아니 남기도록 없애 버리지를 못한단 말이냐? 아이고 분해라!』 하고 이를 뿍 간다.
그러나 아무도 두껍쇠의 몽동이를 대적하려고 나서는 이는 없고, 『 진정하오, 진정하오.』
하고 어름어름할 뿐이다.
김술은 더욱 분개하여, 『 진정이 무슨 진정이냐? 두껍쇠놈이 왔을 양이면 그놈의 상전이 왔을 터이니, 우선 두 놈의 모가지를 베어 내수레 뒤에 달기 전에는 이 자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 253 - 하고 살기가 등등한 눈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 내가 두 놈의 모가지를 베어 오리다.』
하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사람들은 두껍쇠의 몽둥이와 김충의 칼이 무서운줄을 안다. 김충은 해인사에서 어떤 신전에게 삼년 동안 칼 쓰기를 배워 칼을 두르면 몸이 공중에 날고 전신이 칼빛이 되며, 소나기가 쏟아지더라도 몸에 비 한 방울 아니 맞는다는 소문을 듣는 사람이요, 두껍쇠의 몽 동이는 대야성 싸움에 혼자서 삼백명 군사를 두들겨 내었다는 무서운 몽둥이다.
나무를 치면 나무가 중동이 뚝뚝 부러지고 서악(西岳) 바위를 때리매 바위가 벙싯하고 틈을 내었다는 무서운 몽둥이다. 서뿔리 덤비다가 한 개 얻어 맞으면 눈코도 분별치 못하게 육장이 되고 말 것이니, 그런 일은 생각만 하여도 진저리가 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에서 김충과 두껍 쇠를 대적하는 것이 이롭지 아니하니 차라리 돌아 가 금군을 풀어 임금의 명이라 하고 김충과 유렴의 일족을 잡아 들여 마음껏 원수를 갚는 것이 좋은 뜻을 말하였다. 그러나 김술은 듣지 안하고 몸소 김충과 자웅을 결단 하기를 주장 하였다.
『내 칼, 내 칼. 이 겁 많은 놈들아, 내 혼자 두 놈의 모가지를 베리라.』
하고, 칼을 찾을 때에 한 사람이 빈 칼집을 두 손으로 받들어 김술에게 드렸다.
『칼날은 아까 넘어진 곳에 버리고 오시었소.』
하고 칼집을 들고 선 이가 대답을 한다. 김술은 빈 칼집을 받아 들고 칼날 꽂히었던 구멍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고 섰다.
이때에 두껍쇠가 한손에 뭉투툭한 몽둥이를 끌고 한손에 김술의 칼날을 번쩍번쩍 내아 두르며, 『 칼날이 여기 있소.』 하고 소리를 치며 가까이 온다.
사람들은 모두 황겁하였다. 김술도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도망 할 처지도 못되어 일제히 칼자루에 손을 대고, 『 이 놈!』
하고 두껍쇠를 노려 보았다.
두껍쇠는 잠깐 멈칫하던 몽둥이를 어깨에 들려 메고, 김술의 칼도 어깨에 둘러 메고 태연히 가까이 와서, 『 여기 있소. 우리 댁 나리마마께서 이 칼 갖다 드리라 하오.』 - 254 - 하고 칼을 공중에 던지어 칼끝을 손으로 받아 쥐고 칼자루를 김술에게 쑥 내밀었다.
김술은 손을 내밀아 그 칼을 받아 드는 듯 마는 듯 그 칼로 두껍 쇠를 치려 하였다. 두껍쇠가 몽둥이를 들어 칼을 막으며, 『 망년 이 시오. 모처럼 칼을 갖다 주는 사람을 상급은 못 줄망정 칼 로치는 것이 당하오? 나는 혼자요 대감은 여러 무리를 거느렸으니 나를 죽 이기는 바쁘지 아니하되, 우리 나리마마 전갈이나 다하거든 죽일지라도 칼은 칼집엔 넣으시오.』 하였다.
김술은 하릴없이 두껍쇠의 몽둥이에 눌린 칼을 들어 흙을 떨어 칼집에 꽂았다.
두껍쇠는 김술과 모든 사람을 한번 둘러 보더니, 『 전장에 나아가 군사는 버리고 도망할지언정 위로서 내리신 칼일랑 버리고 도망하시지 맙소사고. 대장군마마 체신에 빈 칼집을 차고 달아나는 꼴이 하도 창피하니 이 칼날은 돌려 보냅니다고.』 하고 몽둥이를 끌고 물러났다.
김술은 두껍쇠의 말에 두 발을 동동 구르며 다시 칼을 빼어 들고, 『 이 놈 닫지 말아.』
하고 두껍쇠를 따른다.
두껍쇠 우뚝 서서 돌아 보며, 『 닫기는 천병 만마가 몰아 오기로 달을 내가 아니오마는 볼 일을 다 보았으니 돌아 가는 것이요. 만일 싸울 뜻이 있거든 이번엘랑 칼을 아니 잃도록 옷고름에 단단히 비끄러매도 여러 놈이 한목 대드오. 한놈 싸우기 파리 잡는 것 같에서 시끄럽소.』 두껍쇠가 껄껄 웃고 달아나는 것을 김술이 따르고 삼십여 명 김술의 사람들도 모두 하릴없이 칼을 빼어 들고 따른다.
두껍쇠는 김충이 하라는 대로 김술이를 끌고 김충의 앞으로 와서 몸을 비켜 김충의 뒤에 섰다. 김술은 칼을 두러 멘 채로 김충의 앞에 선다. 숨만 씨근거리고 말을 못한다.
김충은 칼도 빼려 아니하고 팔짱을 낀대로 소나무에 기대어 서서 웃으며, 『 칼날 보낸 것은 받았소?』
하고 물었다.
『그래 받았다. 그 칼로 네 모가지를 베러 왔다.』
하면서도 김술은 얼른 대들지를 못한다.
- 255 - 김충은 여전히 웃으며, 『 그렇게 함부로 칼을 빼지도 말려니와, 부득이 칼을 빼더라도 던지고 달아나지는 마시오. 보기 흉업소.』 하였다. 김술은 한걸음 뒤로 물러나면서, 『 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을 모르고 함부로 주둥이를 놀려 감히 싸우기를 겨루느냐? 내가 네 모가지를 저종놈의 모가지와 한 끈에매어 내 수레 뒤에 달지 아니하고 돌아 갈 줄 알았더냐? 내 마땅히 금군을 풀어 너희 집 씨를 멸할 것이로되 대장부 울분한 일을 보고 시닥을 참을 수 없어 너와 한 칼로 싸우려 하니 개 같은 모가지를 눌여 내 칼을 받거나 감히 싸울 생각이 있거든 대들라!』 하고 자못 호령이 추상과 같다.
김충은 또 한번 김술을 비웃어 덕을 한번 쳐 들고, 『 개라 하니 네야말로 대대로 왕건의 개어니와, 내 십년에 갈은 칼을 너 같은 하룻강아지의 피로 더럽힐까 자하하였거니와, 마일 그처럼 네 소원 이어든 내 칼의 매운 맛을 보여도 꺼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던지시 칼자루에 손을 대어 서리 같은 칼날을 빼어 들고 나섰다.
김술은 칼을 들어 삼십명 자기 무리를 돌아 보며, 『 사정 없이 이 진헌의 강아지를 엄살하라.』
하고, 소리를 지르고 자기는 뒤로 물러서 소나무 하나를 등지고 서서 두 손으로 칼자루를 붙들고 어름어름한다.
삼십명 무리는 일제히 칼을 빼어 들고 김충을 엄습하나 김충은 다만 칼을 들어, 들어 오는 칼을 막을 뿐이요, 나아가 사람을 찌르려 하지는아니한 다. 그러하여도 김충의 한 칼이 능히 삼십여 명의 칼을 막았다.
이 광경을 보고 두껍쇠는 몇 번이나 몽둥이를 들었다 놓아다 하면서도 상전의 말이 떨어지기 전에는 두 다리만 들먹거리고 침을 삼키고 보고있었다.
삼십명 무리가 김충의 한 칼에 쇠꼬리를 피하는 하루살이 떼 모양으로 이리 저리로 밀리는 것을 볼 때에 김술은 겁이 났다. 김충이 하려고만 하면 삼십명 무리를 대번에 베어 버리고 그 무서운 칼날은 자기의 가슴을 겨눌것만 같았다. 김충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데리고 장난 하는 어른 모양으로 칼을 둘렀다. 삼십명 무리도 차차 겁이 났다. 그래서 아무쪼록 뒤로 돌며 소리만 질렀다.
한바탕이 이렇게 한 뒤에 김충이 칼을 내리고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것을 보고 두껍쇠가 몽둥이를 들고 나섰다.
- 256 - 『 나리 마님 칼이 울겠소. 저런 스라소니 무리는 소인의 몽 두 이가 제격이요.』
하고,
『이놈들 내 몽둥이에 대가리 맞을라. 대가리가 아깝거든 땅바닥에 납작 엎 디어 꼼짝 말아라.』
하고 껑청껑청 뛰며 몽둥이를 내어 둘렀다.
두껍쇠 몽둥이 바람에 칼 몇 개가 부러져 떨어지고 선필 장군( 善弼將軍) 의 아들이 이마빼기에서 피를 쏟고 아이고 하고 쓰러지었다.
피를 본 두껍쇠는 피를 본 호랑이 모양으로 더욱 기운을 얻어 날뛰었다.
삼십명 사람들은 두껍쇠 바람에 칼을 끌고 달아나 버렸다. 이것을 본 김술은 얼굴이 흙빛이 되어 나무로 깎아 세운 사람 모양으로 소나무에 등을 딱 붙이고 벌벌 떨었다.
두껍쇠는 사람들이 다 달아난 뒤에도 남은 기운을 억제할 수 없는 듯이 몽둥이를 한참이나 두르다가 껄껄 웃고 사방을 돌아 보고, 『 허허, 잘도 달아난다. 달아나기로는 모두 명장들이로구나.』 하고, 벌벌 떨고 섰는 김 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몽둥이가 들먹들먹한다.
이때에 김충이, 『 두껍 쇠야.』
하고 불렀다.
그제야 두껍쇠가 몽둥이를 끌고 김 충의 앞으로 간다. 두껍쇠가 돌아서서 가는 것을 보고 김 술은 겨우 팔다리를 수습하여 달아나고 선필 장군의 아들도 비씰거리고 칼 하나를 쥐어 들고 달아난다.
그런 뒤에야 먼 발치로 피하여서 보던 사람들이 다시 몰려나와 김 충과 두껍 쇠를 에워 싸고 말은 못하고 이 무서운 두 장수를 보기만 하였다.
『저이가 못난이 대아손의 아들이야.』
하는 이도 있고, 『 응, 역시 속에 든 재주가 있으니까.』
하는 이도 있었다. 못난이 대아손이란, 김 충의 아버지 김부의 별명이다.
사람 줏대가 없다 하여 못난이 대아손이라는 별명을 들으나 기실은 그다지 못난이도 아니었다.
김 충은 두껍쇠를 시켜 계영아기를 집으로 모시고 가게하였다. 작별 할 때에 계영아기는 김 충에게 무수히 사례하였으나, 김 충은 다른 말이 없이다만 계영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계영의 마음에 여우다운 김 충의- 257 - 모양이 깊이깊이 박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장안에는 김 충과 김 술의 싸움 이야기로 찼다. 보고온 사람들은 못 본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고, 또 그 이여기흘 들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온듯이 다른 사람에게 또 전하였다. 모두 김 술이 패한 것을 고소하게 여기고 김 충과 두껍쇠를 더할 수 없이 칭찬하였다.
『하지마는, 김술이가 가만히 있을까?』
하고 김 충의 장래를 걱정하는 이도 있었다. 물론 더 할 수 없는 창피를 당한 김 술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김 술은 집에 돌아 오는 길로 그 조부 김 성에게 오늘 불국사에서 김충에게 수모당한 말을 하였다. 그리고 두껍쇠의 몽둥에게 얻어 맞아 닭의 알만큼이나 부르터 일어난 뒤통수를 보였다.
아들도 일찍 죽어 버리고 손자 하나만을 애지 중지하던 김 성은 깜짝 놀라는 양을 보이고 인하여 그 무서운 눈에 분노하는 불이 번쩍하였다.
『그래, 그놈의 모가지를 베어 왔느냐?』
하고 김 성은 소리를 질렀다.
『못 베어 왔어요.』
하고 김 술은 고개를 숙였다.
이 말에 김 성은 서안을 치며, 『 그래, 그렇게 수모를 당하고도 원수를 못 갚고 그 꼴을 하고 집으로 돌아 온단 말이냐? 내 가문을 더럽히는 놈 같으니. 김 충의 모가지를 들고 들어 오기 전에는 다시 내 눈앞에 보이지 말아라.』 하고 호령을 하였다.
김 술은 같이 갔던 무리들이 모두 겁이 나서 달아났단 말과 자기는 끝까지 싸왔으나 혼자서는 당할 수 없더란 말을 하고, 금군을 풀어 원수를 갚아 달란 말로 주부에게 빌었으나 김 성은 듣지 아니하고 머리를 흔들며, 『 가문을 더럽히는 놈은 집에 들일 수없다. 네가 가진 벼슬도 내일부터는 파직이 될 것이니, 김충 부자와 유렴 부녀의 목을 베어 오기 전에는 집에 들지 말라.』 하고 입을 다물었다. 김 성은 이번 기회에 김 술의 분을 돋우어 항상 말썽 되고 미운 두 강적을 없애 버리려 한 것이다. 아무리 김 성이라 하더라도 조그마한 자기의 사사 혐의로 금군을 움직일 수는 없는 까닭이다.
김 술이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것을 보고 김 성은 안석에 몸을 기대며 빙그레 웃고 혼잣말로, 『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유렴 김부 두놈을 어떻게 처치할까 하였더니- 258 - 이제는 걸려 들었구나 허허.』 하고 마침 꽃 같은 받들고 들어 오는 인삼 달인 것을 유쾌하게 들이킨다.
시녀가 약 그릇을 가지고 물러나간 뒤에 김 성은 이윽히 눈을 감고 무엇을 생각하더니 방에 모시는 동자를 불러, 『 재 암 성 장군 부르라 하여라.』 하고 분부를 내리고는, 또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으로 퍼렁거리는 촛불을 바라보고 있다.
이때에 마침 재 암 성 장군 선필(載岩城將軍善弼)은 그 아들 민홍( 敏弘) 이김 충의 종 두껍쇠의 방망이에 얻어 맞아 이마가 붓고 터지고 겨우 사람들에게 붙들려서 집에 돌아 온 것을 보고, 또 김 술이 그와 같은 봉변을 하였다는 말을 듣고 김 성의 집을 찾아 온 것이다.
벼슬로 말하면 일개 장군에 지나지 못하지만 선필은 김 성의 심복으로 처음부터 김 성과 왕건 사이에 뜻을 통하는 셋사람이 된 것이다. 선필을 재암성 장군으로 둔 것도 재암성이 고려에 가는 통로의 중간에 잇기 때문이다. 벼슬은 비록 재암성 장군이러 하더라도 재암성에 가 있는 일은 얼마 없고, 대개 서울에 있어서 김 성의 모사가 된다. 선필이 서울 떠나 임지( 任地) 로 가는 날은 반드시 김 성이 왕건에세 무엇을 은밀히 통할 일이 잇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왕건이 김성에게 무엇을 통할 일이 있는 때문이다.
선필은 키가 작고 눈이 가늘고 노란 수염이 아랫턱에만 조금 나고 목소리가 가늘고 얼른 보기에, 한 궁한 선비와 같건마는 그 조그마한 눈에서는 끝없는 꾀가 흐르고 목소리는 가늘망정 언변이 좋아 거짓말이 다 참말 같았다. 본디 미미한 다문의 출생으로 어찌어찌하다가 왕건의 눈에 들어 마침내 김 성의 심복이 된 것이다.
선필은 들어 오는 길로 허리에 찼던 칼을 떼어 동자에게 주고 공손히 김성의 앞에 절을 하고 나서 김 성이 가리키는 자리에 앉으며, 『 작은 대감께서 김 충에게 봉변을 하시었다 하오니, 얼마나 염려 되시오니까?』 하고 가정 공손한 어조로 인삿말을 한다.
김 성은 껄껄 웃으며, 『 나는 술이놈을 내어 쫓았네. 가문을 더럽히는 놈을 집에 들일 수가 있다. 자네도 그리하소.』 하였다.
선필은 눈을 깜박깜박 하며,- 259 - 『 내어 쫓으시면?』
하고 물었다.
『김부 부자와 유렴 부녀의 목을 베어 가지고 오면 다시 문에 들인다고 하였네.』
하고 김 성은 선필의 눈치를 슬쩍 본다. 선필은 잠깐 고개를 숙이고 한번 침을 삼키며, 『 과연 지당하시오.』
하고 상긋 웃는다. 그것은 김 성의 뜻을 알았단 말이다. 김술을 내어 쫓는다 함은 아무리 하여서라도 김 부 부자와 유렴을 없이하라는 뜻이요, 김 성이 선필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그리하였으니 선필도 김 술을 도와 이일이 이루도록 힘쓰라는 뜻이다. 이만큼만 말하고 한번 빙긋 웃으면 다 알았다는 것이요, 또 선필이 한번 웃으면 김성도 선필이 알아 들은 줄을 알아 보는 것이다.
선필은 이윽히 눈을 감고 고개를 기웃 거리 더니, 『 소인도 대감을 본받아서 자식놈을 내어 쫓겠읍니다.』
하고 갑저기 얼굴에 수색을 띄우며, 『 그러하오나 한 가지 걱정이 있읍니다. 김 충은 검술이 비범하옵고 또 듣 사온 즉, 김 충이 불측한 뜻을 품어 많은 도당을 모은다 하며 그 도당이란 것이 모두 무뢰난화지배(無賴難化之輩)라 죽기를 노라리로 아는 놈들 이 온 즉 가벼이 볼 수 없사옵고, 또 김 부를 건드리면 진헌이 가만히 있을 리만 무하 옵고, 유렴 시중을 건드리면 민심이 요란할 듯하오니 장히 어려운 일인가 하옵니다.』 선필의 말에 김 성도 고개를 끄덕이고 얼굴에 수색이 돌았다.
조물성(曹物城)싸움 이래로 왕건은 진헌을 두려워하며 신라에 대하여 모르는 체하는 태도를 취하고, 진헌을 왕이 자기에게 대하여 무신한 것을 분히 여겨 이를 갈고 있으니, 만일 김 부의 집을 건드려 진헌에게 또 한 핑계를 주면 진헌은 반드시 싸움을 돋을 것이요, 그리하더라도 왕건 이 움직이지 아니하면, 진헌의 군사는 무인지경 같이 서울로 밀어 들어 올것이요, 또 시중 유렴은 백성들이 높이 우러러 보는 사람이니 가볍게 그 를 건드려 민원을 사는 것도 무서운 일이다. 김성도 자기가 백성들 중에 미움 받는 줄을 모르는 바가 아니요, 뭇백성들의 힘 없는 입이 어떻게 무서운것인 줄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건댄, 아무 때라도 유렴과 김 부를 없애 버려야 할 것이다. 그 두 사람을 두고는 마치 두 팔에 무슨 무거운 것이 매어 달린 듯하여 마음대로 일을 할 수가 없을뿐더러- 260 - 못난이 대아손이라는 김 부가 결코 못난이가 아니요, 가딱하면 진헌을 등에 지고 자기를 내려 누를 줄을 김 성은 알아 본다. 김성에게 무섭기는 시 중유 렴보다도 도리어 김 부다.
김 성은 오래 침음 하다가, 『 선필의 지혜도 마침내 끝이 있었던가?』
하고 웃으며 선필을 한번 긁었다.
선필은 김 성의 긁는 뜻을 벌써 알아 차리고 역시 웃으며, 『 모내기( 蛟川)에 물이 마르기로 선필의 꾀가 마르리까.』 하였다. 이것은 자기에게만 맡기라는 뜻이다.
두 사람은 밤이 깊도록 은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 의심중에는 유렴과 김 충을 없이하여 아주 후환을 끊어 버릴 계책이었다.
김 술이 집을 쫓기어나 서악(西岳) 밑에 집을 잡고, 칼쓰는 장사와 자객을 많이 모아 들여 마당에 볏짚으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우고 밤낮으로 칼 쓰기를 익힌다는 소문이 서울에 낭자하였다. 그것은 김 충과 계영 아기에게 원수를 갚으려고 함인 것은 누구나 다 알았다. 이런 일 도선 필이가 꾀를 낸 것은 물론이다.
김 충은 김 술이 금군으로 자기 집을 에워 쌀 줄만 알았다가 그렇지아니한 것을 의외로 생각 하였을 뿐더러, 그 일이 있은 지 십여 일 후 김충의 조부 효종의 팔십 되는 생신에 김 성이 몸소 와서 치하하고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더욱 의의로 생각하였다. 그때에 김 성은 「 어린것 들 싸움에 무슨 계관하랴」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날 김 충은 김성에게 인사 도하지 아니하고 몸을 피하여 버렸다. 그것은 김 성에게 절하기를 싫어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김 충의 집에서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 짐 술은 원수 갚을 준비를 하면, 다른 편으로 김 성은 모르는 체하는 속에 도리어 무서운 흉계가 있는 것을 의심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김 성은 다만 효종을 찾아 볼 뿐이 아니요, 남교(南郊)에 류렴을 찾았다.
지금 진헌이 날로 군사를 모아 조련하고 서울을 엄습한다고 장담하니 이일을 어찌하랴 하는 의논을 한다는 것이 김 성이 유렴을 찾아 본 핑계였다.
그때에도 유렴은 도리어 김 술이 불국사에서 계영에게 무례한 말을 한 것을 사례하고, 이렇게 국보 간난(國步艱難)한 때에 아이들의 조그마한사 혐으로 피차에 정의가 소원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말하였다. 유렴도 김성의 말에 감동하여 진헌을 대할 계책을 말하고 크게 정사를 혁신 하여나를 바로 잡기를 김 성에게 권하였다.
- 261 - 김 성은 떠날 때에, 『 내가 어두웠소. 지금 생각하면 대감의 말씀이 다 옳았소. 왕건은 분명히 이심(二心)을 품은 모양이요.』 하고 왕건을 잘못 믿었던 것을 후회하는 뜻을 간곡히 말하였다.
유렴이나 김 부가 그렇다고 김 성을 믿게 되기는 어려울 것이로되, 이렇게 찾아 가서 은근하게 정을 보이는 것을 보고는 다소간 마음이 아니 풀릴 수가 없었다. 더구나 유렴은 정직한 사람이요, 김 부도 못난이라는 별명을 들을 이만큼 충후는 한 사람이기 때문에 김 성의 뜻을 아주의 심하려고도 아니하였다.
그뿐더러 김 성이 도리어 김 충과 유렴의 집에 찾아 가 사례 하였다는말을 듣고 세상 사람들도 이 일을 다 의외로 생각하고, 『 그래도 서불한은 서불한이다.』 하고 김 성에게 대하여 호의도 가지게 되었다.
유렴은 불국사 사변을 듣고 날로 김 술의 원수 갚을 것을 두려워하다가 김 성이 왔다 간 뒤에야 비로소 적이 마음을 놓고, 하루는 사람을 보내 어김 충과 두껍쇠를 청하여 딸 계영을 구원하여 준 뜻을 감사하는 잔치를 베풀었다.
그날에 김 충은 유렴 집에 상객이 되어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유렴은 아들이 없고 오직 후실에 계영 하나가 있었을 뿐이므로 유렴 내외는 김충을 친아들같이 귀애하는 저을 표하였다.
계영도 한자리에 앉아 김 충을 대접하고 맛있는 먹을 것을 권하였다.
계영은 이날에 약간 얼굴에 상기가 되어 그 뺨이 복숭아꽃같이 불 그 레하고 눈에는 수삽한 태도를 가진 중에도 억제할 수 없는 기쁜 웃음을 띄었다.
무슨 일이 있어 하얀 계영의 두 발이 사뿐사뿐 꽃 무늬 놓인 돗자리 위를 걸어 갈 때에 은은한 향기가 김 충의 코에 맡히는 듯하였다. 계영은 옷속에 당나라에서 온 울금향을 찬 모양이다.
유렴 시중도 술이 반쯤 취하여 난간에 의지해 후원의 녹음을 바라보며나라 일이 점점 글러 가는 것과, 이 나라 일을 바로 잡을 사람이 없는 것을 말하고는 길게 탄식하고 김 성의 죄상을 말하였다. 그러나 유렴의 말은 아무리 슬픈 말이라도 과도한 슬픔을 보이지 아니하고 비록 김 성의 죄상을 말 할 때에도 예를 잃은 말을 쓰지 아니하였다. 그의 그리 길지 아니 한성 긋한 흰 수염과 크도 적도 아니한 얼굴은 모두 온화하기 춘풍과 같다.
그러나 그의 부드러운 말에는 마디마디 추상과 같이 변할 수 없고 범할 수 없는 의리가 품겨 있었다. 김 충은 전부터 유렴의 덕행을 모르는 것이- 262 - 아니다. 오늘 사사로이 접하여 더욱 그의 덕을 흉모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계영의 아름다운 모양에, 한편으로는 유렴의 온후한 덕에 김충은 일찍 이 세상에서 맛보지 못한 기쁨을 맛보고, 유렴이 주는 대로사 양치 않고 술잔을 받아 먹었다.
『옛날은 세상이 이렇지 아니하였더니, 내가 젊었을 때만 하여 도세상에는 악인보다 선인이 많았고 경문대왕 시절에만 하여도 그래도 누구 누구하면 나라 일을 제 일 보다 먼저 하는 선비가 많았더니마는, 위홍( 魏弘) 이 때부터 세상이 아주 뒤집혀 버렸나니. 그때에 우리는 아직 젊었거니와 국학(國學) 선비들은 위홍을 베려고 도끼를 메고 상소를 하고, 하다가는 죽건마는 그래도 뒤를 이어 또 하였더니. 그러다가 거인( 巨人) 선생이 옥에 매일 때에 나도 저 죽는 일길손 신홍과 동학 한 선비들과 같이 섬거적을 쓰고 대화문 앞에 엎디어 상소를 하였더니. 거인 선생은 참말 우리 신라에 마지막으로 나신 어른이었다니. 글로 말 하면, 고운( 孤雲) 이 나을는지 모르지마는 거인 선생은 대의(大義)를 듣고 사람 을화( 化) 하시는 큰 힘이 있어서 선생이 일찍 한번이나 자기 몸이나 집을 생각 해 본 일이 있었을까 ————없었을 것이로세. 그 어른이 주야로 생각 하는것은 대의려니 ————충성이러니. 그래도 우리 나라 명운이 오늘날까지 부지해 오는 것도 그 어른의 힘이나. 응 또 한 분 있었네. 백의 국선( 白衣國仙)이라고 세상에는 나오지 아니하고 주류 천하하면서 보국 안민( 保國安民)을 가르친 이가 있었다니. 궁예와 진헌도 백의 국선에게 배웠다 하나 도리어 나라에 환이 되었지마는 ————그런데 이제는 없네. 아주 우리 신라의 의인의 통(統)이 끊어졌네.』 하고 유렴은 길게 한숨을 쉰다.
유렴의 회구담에 김충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자기가 나라 일이 뜻대로 아니 된다 하여 청루 주사로 방랑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비록 뜻 같은 사람을 차아 하나 둘 의를 맺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자기는 거인 선생에게 비겨 여러 층 떨어지는 하잘 것 없는 사람같이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의인이 통이 끊어질 리가 없다. 내가 의인의 통을 이를 사람이 아니냐.>
하는 자부심도 생겼다. 그래서, 『 설마 의인이 통이 끊어질 리가 있읍니까? 하늘이 우리 신라를 버리지아니하실진 댄 반드시 의인이 나리라고 믿습니다.』 하고 정색하고 옷깃을 바로하며 말하였다. 이 말에 유렴은 대답이 없이 물끄러미 김 충을 바라보더니,- 263 - 『 하늘이 우리 신라를 버리시었네.』 하고 고개를 수그린다.
유렴은 김 충이 충의의 마음을 줄을 안다. 그러나 김 충의 상을 보고말하는 바를 들으매, 비록 재주도 잇고 충의도 있으나 백이숙제와 같이 열사는 될는지 몰라도 회천의 웅도를 이를 영웅 기상이 없었다. 연 전 조정에서 김충이 왕건의 사자를 베라는 말을 할 때에도 유렴은 김충의 뜻을 가상하였으나, 그 용모를 보고 어성을 들을 때에 큰일을 이룰 영웅 기 상이 없는 것을 속으로 한탄하였었다. 지금 보아도 역시 그러하다고 생각하였다.
태평성대에 태어났다면 간간 악악(侃侃㗁㗁)의 사는 될 것이언마는, 난세에 태어난 김 충은 오직 충렬사(忠烈士) 밖에 못되리라고 유렴은 본 것이다.
김 충은 유렴의 말에 심히 불안하였다. 자기의 큰 뜻과 재주와 큰 충성을 몰라 보는 듯하여 마음에 한껏 노여웠다. 그러나 유렴의 말은 언언 구 구가다 진리인 듯하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김 충은 슬펐다.
『그러면 이 나라와 이 창생을 어찌하시려 하옵니까?』
하고 김충은 정색하고 물었다.
유렴은 이윽히 침음 하더니, 『 내 어찌 차마 말하리——하늘의 뜻을 낸들 어이 알리.』
하고, 처마 끝에 흩날리는 꽃이 바람도 없는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며, 『 늙은 몸이 오직 죽을 날을 기다릴 뿐이로세.』 한다.
그 말이 심히 수참하여 곁에서 들던 부인도 눈물을 떨어뜨리고 계영도 고개를 돌린다.
칠십 평생을 충의로써 나라를 붙들려고 싸우다가 마침 내 뜻을 이루지못하고 죽을 날을 기다리는 늙은 재상의 이 말은 과연 슬펐다.
김충도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었다.
『설마 그러리까. 천년 구방에 그런들 영웅 열사가 없으리까.』
하고, 계영은 느끼는 소리로 늙은 아버지룰 위로하고 새로 술 한잔을 따라 드렸다.
밖에서는 두껍쇠가 술이 취하여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려 온다.
유렴은 술잔을 권하는 딸의 등을 어루만지며, 『 가엾다. 너는 말세에 태어났으니 내가 죽은 뒤에 너는 어찌되리?』 하고 술을 마신 뒤에, 『 계영아, 내 마음이 심히 비감하는 네 거문고나 한 가락 아뢰라.』
하고 김 충을 향 하여,- 264 - 『 변 변치 못한 거문고언마는 제가 늙은 아비를 위로한다고 애써 배우는것이니 들어 보라.』 한다, 김 충은 눈물 머금은 눈을 들어 계영을 보았다. 시녀가 자져 온 거문고를 무릎 위에 놓은 계영의 자태는 이 세상 사람들과는 같지아니하다. 불국사에서 계영을 볼때에는 「석굴암 부처님 」 이라고 생각 하였으나 이제 보건대, 마음에 술픔만 가득히 찬 사람과 같았다 ———— 그것이 더 아름다왔다.
계영은 옥으로 깎은 듯한 손가락으로 줄을 고른다.
계영이 타는 곡조 중에는 귀남교(貴南郊)라는 것이 있었다.
『갈까나 갈까 나남 교를 갈까 나이 몸이 늙었거든 머물러 무엇하 리세상을 하직하고 남교를 돌아 갈까 나남 교가 어드 메냐 구름 밑에 밭이로다 남 교의 거츤 발 을소 몰아 갈까 나 봄바람 불어 오니 만물이 즐기거든 수심 둔 마음 이 매 즐길 줄 모르 놋 다 왕사( 王事) 를 못 잊으니 봄바람도 시름인지 언덕에 외로이 앉아 슬픈 노래 부르더라.』 이것은 시중 유렴이 손수 지어 계영을 시켜 거문고에 올린 것이다.
계영은 아버지의 뜻을 아는지라 이 노래를 읊을 때에 아버지와 같이 수심하고 같이 슬퍼하였다.
유렴은 계영의 노래를 듣고 나서, 『 낙 이불 음( 樂而不淫) 하고 애이불상(哀而不像)하는 것이 군자의- 265 - 소리 언 마는, 마음에 슬픔이 깊으니 자연 상(傷) 하는 소리를 내게 되네.』 하고 한탄하였다.
석양이 되어 바람이 일어나니 늙은 시중 집 후원의 꽃이 눈같이 날리고 새들은 꽃 날리는 것을 슬퍼하는 듯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어지러이 날며지 저 귀 었 다.
김 충은 날이 이미 늦은 것을 말하고 일어나 시중과 부인께 절 하고 다시금 계영에게 은근히 예하고 물러나왔다.
계영도 얼굴을 붉히고 인사를 하였다.
집에 돌아 온 뒤에도 김 충의 눈에는 계영의 모양이 아른거렸다. 무엇을 하여도 손에 붙지 않고 남교곡을 타는 계영의 손만이 생각혔다.
그러나 저녁에는 동지들이 모이는 곳에 아니 갈 수가 없었다. 모이는 곡은 모기냇가(蛟川岸) 어떤 술집, 거기는 아무렇게나 웃을 입은 무리들 이 벌써 모여 앉아서 술상을 앞에 놓고 술 파는 계집을 회롱하고 있었다. 그 집은 개천가로 뒷문이 나고 뒷문 밖에는 조그마한 배가 늙은 수양버들에 매여 있었다. 개천 가로 향한 창에는 발갛게 불이 비치고 거문고 소리, 북 소리, 계집의 가느란 노랫 소리며, 술 취한 사내들의 굵은 노랫 소리가 흘러 나오고 개천 위에도 등을 켠 놀잇배가 서너 개 가는 물길을 일으키며 물을 따라 흘러 내려 가는 것이 보였다.
김 충도 함께 작은 재를 저어 늙은 수양버들을 찾아 내려온다. 잔잔한 물에는 사월 보름의 물 머금은 달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노 짓는 소리가 연하게 찰찰 들린다.
이 동네는 이름조차 버들골인 청루 주사만 있는 장안의 혼락향이다.
집집의 미인이 손을 기다리고, 집집의 익은 술이 용수 언저리에 철철 넘는다. 장안의 부호가 자제들은 황혼이 되면 이곳으로 모여 들어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 추고 삼경이 넘도록 놀다가 놀다가 지치면 향기 나는 강남 비단 이불에 술 팔던 미녀로 더불어 붉은 꿈을 맺는다. 이 모양으로 오늘은 이 집, 내일은 저 집 새로운 환락을 따라 헤매는 것이 장안 소년들이 하는 일이다.
김 충은 근엄한 집에 자라 이러한 곳에 발을 들여 놓기를 꺼렸다. 이삼 년 내 로 나라 일에도 마음이 떨어지고 세상도 시들하여 친구가 끄는 대 로이 곳으로 발을 들여 놓기 시작하였다. 술이 취하고 아름다운 계집의 노래를 들고 앉았으면 모든 시름은 다 없어지는 듯하였다. 그러다가 차차 새로운 일을 깨달았다. 그것은 이곳에 와서 술을 먹고 노는 사람들 중에 범상하지아니한 인물이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미친 듯 무심한 듯 술을 마시고- 266 - 계집을 회롱하건마는 마음에는 큰 뜻을 품은 자가 적지 아니함을 깨달은 것이다.
김 충은 이리하여 이곳에 수십명 친구를 얻었다. 그 중에는 김 충과 같 이제일 골의 귀족도 있으나 대개는 시골서 올라 온 선비가 호반들이었다. 몸에 글이나 칼이나 활의 한 가지 재주를 가지고도 때를 만나지 못하여 비분 강개한 마음을 술과 노래를 잊는 무리들이다. 술이 대취하여 담론이 임립 할 때에 그들은 간혹 본색을 탄로하여 혹은 강개한 시를 읊으며 혹은 일 어나 술춤을 추어 천하를 덮을 듯한 기운을 보였다. 그러나 성명을 물을 때에는 대개, 『 주도( 酒徒)!』 하고 껄껄 웃고, 성명을 말하는 이가 드물었다. 주도리함은 물론 술군이란 뜻이다. 김 충도 성명을 바로 말한 일은 없었다.
술 파는 계집들 중에도 일점 의기가 있어 비록 차림차림은 허 술 하더라도 의기 있는 남아를 좋아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한 계집의 집에는 그러한 의기 있는 건달이 많이 모여 들었다. 지금 충이 찾아 가는 난 희( 蘭姬)라는 가희( 歌姬) 도 그러한 계집 중에 하나다. 그 이름이 난희가 된 것도 일 길손 신 홍이 난희를 사모한 것이라고 한다. 나이는 아직 이십이 넘지못하였으나, 예전 난희와 친구로 지냈다는 그의 어미가 원래 글 잘 하고 의기 있는 노기이기 때문에, 그의 딸 되는 난희도 결코 녹록지 아니하였다.
만일 돈푼이나 있는 젖 비린내 나는 아이들이 자기를 희롱하러 들면, 말이나 노래로 빈정거려 망신을 시켜 돌려 보내기가 아수였었다. 한번 김술이 난희의 아름다움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부를 때에 난희는 웃으며, 『 김 술아 불러? 난희의 집 강아지도 사람을 알아본다고 일러라.』 하였다고 한다.
김 충이 난희를 안 것은 지난 해 가을 어떤 건달 친구에게 끌려 간 때다.
그 친구는 대야주(大耶州) 사람이요, 기골이 장대하여 글도 잘하고 칼도 잘쓰는 의기 남아다. 성명을 알 수 없으나 목소리가 크다 하여 통칭 쇠북이라 하는 사람이다. 그가 김 충과 몇 번 어느 주석에서 만난 뒤에, 『 나를 따라 오라 좋은 것을 보이리라.』 하고, 김 충을 난희의 집으로 끌고 와서 김 충과 난희를 마주 앉히고, 『 이제 제자와 가인이 서로 만났다.』
하고 술을 내어 즐겼다.
『영웅이 때를 만나기 어렵고 가인이 제자를 만기 어려우니 모두 다 천추의 한사(恨事)라. 내 오늘에 양인의 천추 한을 풀었노라.』 - 267 - 하고 쇠북은 혼자 좋아하였다.
그때부터 김 충은 난희를 알게 되고, 또 쇠북을 더욱 믿고 사랑 하게 되었다. 그런지 얼마 후에 쇠북은, 『 때가 오면 다시 만날 날도 있으리라.』 하고 어디로 가 버리고말고는 이내 종적이 묘연하였다. 김 충은 난 희에게 쇠북의 말을 물었으나 난희도 거의 본색을 알지 못하였다. 김 충과 난 희기 알기 전에 쇠북은 날마다 난희의 집에 와서 술을 마시고 난희의 노래를 듣고는 금 한덩이를 내어 주며, 『 받으라 이것으로 의기 남아가 오거든 술 대접이나 하라.』 하는 것이 예사였다고 한다.
쇠북의 종적이 묘연하게 된 뒤에도 쇠북은 항상 이 버들골의 이야 깃 거리가 되었다.
김 충은 그가 비범한 사람인 줄을 알거니와, 그의 종적을 찾을 길이 없었다. 김 충의 배는 난희의 집 앞 수양버들 밑에 닿았다. 달빛에 버들은 안개를 머금은 듯하였다.
김 충이 오는 것을 보고 방에 벌여 앉았던 사람들은, 『 어찌 늦은고?』
하고 앉기도 전에 술잔을 권하였다. 난희도 반기는 듯이 김 충을 맞았다.
모두 다 취홍이 도도한 모양이나 김 충은 전과 같이 흥이 나지아니하였다. 오늘 시중 유렴 집을 다녀 온 후로는 모든 것이 다 변한듯 하여 이 자리에 앉았을 생각도 없는 듯하였다.
여러 친구들은 김 충에게 억지로 술을 권하였다. 김 충도 용렬 하게 권하는 술을 사양할 사람은 아니라, 권하는 대로 받아 먹기는 하나 흥은 나지 아니하였다.
이 눈치를 먼저 알아 차린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난희다. 사랑의 눈은 살을 꿰뚫어 본다.
『어디 편지 아니하시오?』
하고, 참다 못하여 난희가 김 충을 보고 물었다. 그 눈에는 아끼는 빛과 근심하는 빛이 찼다.
『때 못 만나 대장부가 마음이 편한 날이 있으랴. 마음이 편치 못하 거니 몸인들 편하랴.』
이 말에 떠들던 사람들도 잠잠하고 김 충을 바라보았다. 과연 김 충의 얼굴에는 무슨 근심하는 빛이 있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다 김 충이 누구인 줄을 알 만한 극히 가까운- 268 - 친구요 동지들이다. 말하자면, 지나간 삼년 동안 버들골에서 골라 사 괴인 인물들이다.「김 성을 없이 하자」,「한번 천하의 의사와 호걸을 모와 회천의 웅도를 세워 보자」하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다. 모두 천하의 의기 남아로 자처하여 목숨을 보기를 터럭같니 난다는 무리들이다.
그중에서 김 충은 두목이다.
김 충의 칼을 쓰는 재주나 빈재로도 두목이 될 만하거니와, 또한 그 의지 위와 재산으로도 두목이 된 것이다. 이 무리들은 대개는 집을 버렸거니나 애초에 집이 없거나 또는 무슨 죄를 저지르고 세상에 숨어 다니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불사 가인 생업하는 무리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먹이고 입히는 이는 김 충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누구에게 고개를 숙일 작자들도 아니요, 당장 의식과 술을 얻어 먹고 있는 김충에게라도 고개를 숙일 위인들은 아니다. 오직 그들을 휘일 수 있는 것은 의리뿐이었다. 그러므로 김 충이 어떠한 귀족인 줄을 안 뒤에도 그들은 너, 나하고 말과 대우를 고치지 아니하였다.
고울부(高蔚府) 사람으로 장군 능문(將軍能文)을 베려다가 하마터면 죽을것을 옥을 깨뜨리고 도망한 정보(廷輔)라는 사람이 김 충을 보며, 『 웬일이야? 김 술이 놈이 자네 집을 치려고 한다더니 무슨 일이 생기는 모양인가? 그걸랑 염려 마시오. 내 잇거니 그까진 김 술이 놈의 오합지졸을 두려워하랴. 자, 술이나 마시오, 에라 난희야 술 쳐라.』 하고 제 무릎을 툭 친다.
김 충은 넘치는 술잔을 받아 반쯤 마시고 술상 위에 놓으며, 『 여보 소, 이 사람들아, 내 오늘 시중 유렴을 뵈웠거니와 진실로 국가의 명운이 경각에 달렸은즉, 우리가 이렇게 술이나 마시고 놀 때가 아닐쎄.
내일 북으로 왕건이 들어 올는지도 모르고, 모레 서로 진헌이 엄살 할는지 모르거든 조정에는 이것을 막으려 하는 충신이 없고 오히려 도적을 끌어 들려 하는 적신이 찼으니, 이 일을 장차 어찌하랴? 우리가 진실로 회천에 웅 도를 둔다 할진댄, 이러고 잇을 때가 아니로세. 내 오늘 시중 유렴을 뵈오니 시중은 국가의 명운이 다한 뜻을 말하고 천년 종사를 버틸 인 길이 없음을 한탄하였으나, 내 스스로 등에 찬땀이 흘렀네. 김 술이 비록 내 집을 불사르기로 그것은 두려워할 내 아니언마는, 국가의 흥망이 경각에 달렸거든 아무 일도 하는 바 없으니, 살아서 하늘을 바라볼 낯이 없고 죽어서 선조를 어찌 대할까? 우리 무리 이미 뜻이 같고 또 사 ㄱㅚ 인지 오래 거니 와, 아직 술 벗이라 의로써 서로 맺지 못하였으니, 왕사를 위 하여 사생을 같이 하기로 오늘밤에 맹세를 하지 아니하려는가? 내 이제 왕건과- 269 - 진헌을 물리치기까지 다시 이 술잔을 아니 잡기로 이 잔은 깨뜨리노라.』 하고, 옥잔을 들어 소반 위에 던지니 잔이 부서져 조각조각이 사방으로 뛴다.
갑자기 방안에는 살기가 등등하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엄숙한 기운 이돈 다.
김 충이 술잔을 깨뜨리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 그대와 사생을 같이 하리라.』
『천하가 다시 태평하거든 태평연에서 다시 잡기까지 술잔을 잡지아니하리라.』
『진헌의 피를 마시기 전에는 다시 술을 마심이 없으리라.』
하고 각각 잎에 놓인 술잔을 깨뜨렸다. 그것을 보고 김 충은, 『 그대들은 오늘밤으로 각각 떠나 천하에 두루 다니며 의사와 호걸을 모으라. 나라에 큰일이 임박하였으니 시각을 지체할 수가 없다. 큰일은 반드시 가을이 지나기 전에 오리라.』 하였다. 이것은 김 충이 유렴 시중의 집에서 돌아 오는 길에 「김 성 이진호를 죽이려 자객을 고려로 보내었다 」 하는 말을 들은 까닭이다.
사람들은 한참 잠잠하였다.
김 충은 다시, 『 그대들은 가려는가?』
하고 재촉하였다.
『가리라.』
하고 사람들은 허락하였다.
이리하여 삼십명 호걸들은 천하의 의사와 호걸을 모으려고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김 충은 사람이 다 나간 뒤에, 『 난 희야, 너는 다시 나를 보려고 생각지 말아라. 좋은 장부에게 시집 가잘 살아라.』 하고 견대에 남은 금은을 쏟아 주고 일어나려 하였다.
난희는 김 충의 소매를 붙들며, 『 국사라 하옵시니 첩이 막지 아니하리이다. 그러하오나 첩의 몸은 이미 마마께 바치었거든 다른 사람에게 갈리는 만무하옵니다. 몸이 비록 마마를 따르지 못하더라도 첩의 일편 단심은 마마를 따르는 줄 아옵소서.』 하고 느껴 울었다.
- 270 - 김 충이 이 결심을 한 것은 물론 오랜 일이다. 오늘 이곳에 동지를 모은것도 이러한 일을 의논하려 한 것이어니와, 유령 집에 갔던 것이 이렇게 급격한 처결을 하는 동기를 주었다.
시중 유렴의 말도 말이어니와, 계영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려 거의 모든 것을 잊어 바릴 만한 것을 보고 집에 돌아 와서 눈에 계영의 모양만 아른거림을 볼 때에, 『 대장부의 뜻이 이로 하여 꺾이리로다.』 하고 분연히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다정한 젊은 김 충은 사랑하는 분 연히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다정한 젊은 김 충은 사랑하는 난희가 울고 매어 달리는 것을 볼 때에는 창자가 끊어지는 생각이 아니 나지 못하였다. 김충은 다시 앉아 난희의 손을 잡고, 『 진실로 네가 아름답다. 얼굴보다도 마음이 더욱 아름다운 줄을 내가아노라. 그러나 나는 큰일에 몸을 바친 사람이라 인정을 돌아 보지못하리라 ————난희야, 잘 있으라. 난희야, 부디 잘 있으라.』 하고 나와 버렸다.
김 충은 이로부터 가슴 속에 움 돋는 사랑을 죽여 버리기로 결심하였다.
계 생각지 말자 난희도 생각지 말자 난희도 생각지 말자 하였다.
도
의리는 큰 것이요. 사랑은 작은 것이었다.
과연 며칠 아니 되어 진호(眞虎)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문이 왔다.
『진호가 죽었다?』
하고,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큰일이 날 것을 짐작하였다. 진호는 진헌의 사위다. 진호가 죽으면 진헌은 반드시 가만히 있지 아니할 것이다.
게다가 진호가 죽은 것은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신라에서 온 사람과 술을 같이 먹고는 그날 밥으로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소문 참이다.
왕건은 진호를 친조카 모양으로 대우하였다. 그에게 좋은 집을 주고 많 은비 복을 주고 무시로 궁중에 들어 오기까지 허하였다. 왕건은 진호를 후대하는 것이 진헌을 누르는 수단인 줄을 왕건을 원망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왕건은 진호의 시체를 왕자의 예로 실어 진헌에게 보내고 깊이 슬퍼하는 뜻을 표하였으나, 진헌은 왕건을 원망하여 왕건이 보낸 볼모왕 신( 王信)을 종로에서 효숭하여 그 목을 젓 담아 왕건에게로 보내었다.
포석정(鮑石亭)
진호가 죽은 것을 진헌은 크게 노하여 곧 아들 금강(金剛)에게 군사- 271 - 일만을 주어 곰의나루(熊津)까지 치게 하였다. 곰의나루는 본래 신라 땅이던 것이 연전에 고려로 가 붙은 것이다. 금강이 곰의나루를 들이 칠 때에 거기 있던 고려 군사와 관인을 모조리 죽일새 그중에 신라 왕이 고려왕에게 보내는 사신을 붙드니, 그는 고려로 가는 길에 곰의나루에서 묵던 사람이다. 금강은 사신을 붙들어 몸에 지닌 신라 왕의 국서와 김 성의 편지를 빼앗고 그 국서와 함께 그를 증거로 진헌에게로 압송하였다.
김 성의 편지에는 신라 조정에서 아직도 진헌의 편을 드는 이가 있으니, 그는 곧 시중 유렴과 대아손 김 부다. 더구나 김 부의 아들 김 충이 불측 한 뜻을 품고 감히 고려왕을 모욕하니, 이제 이 세사람을 없이하며, 아주 후환을 끊은 뒤에 대사를 도모하리라는 말이 있고, 왕의 국서에는, 『甄萱違盟擧兵天必不祐若大王奮一〇之威甄萱必自破矣( 진헌이 맹약을 어기고 싸움을 일으키니 하늘이 반드시 돕지 아니할 것이라. 만일 대왕이 한번 북을 치사 위엄을 떨치시면 진헌이 반드시 피하 리이다) 』 하는 구절이 있었다.
이 국서를 받아 본 진헌은 더욱 진노하였다. 그는 잡혀 온 신라 사신을 앞에 꿇 리고, 『 분명히 너희 왕이 이 글을 보내더냐?』 하고 물었다.
사신은 황겁하여 다만 고개만 숙였다.
진헌은 다시 진호의 죽은데 대하여 사신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대답 하지아니하였으나 혁편으로 등을 갈기고 둥근 몽둥이로 주리를 틀어 몸에 유혈이 낭자하게 하고, 까무러치기를 여러 번 하다가 마침내 김 성 이 자객을 보내어 진호를 죽인 뜻을 바로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을 때에 진헌은 복받치어 오르는 분노에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진헌은 다시 진호의 죽은데 대하여 사신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대답 하지아니하였으나 혁편으로 등을 갈기고 둥근 몽둥이로 주리를 틀어 몸에 유혈이 낭자하게 하고, 까무러치기를 여러 번 하다가 마침내 김 성 이 자객을 보내어 진호를 죽인 뜻을 바로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을 때에 진헌은 복받치어 오르는 분노에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진헌은 사신을 아직 죽이지 말고 옥에 내려 가두라 하고 아들 신검( 神劍)· 용검( 龍劍) 과 문무 제신을 분려 신라 왕의 국서와 김 성의 편지를 보이고,- 272 - 『 신라 왕의 좌익이 관영하여 옛날의 맹세를 저버리고 자객을 보내어 짐의 부마 진호를 죽이고, 이제 또 왕건을 달래어 짐을 법하게 하니 진실로 불공 대천지수라. 짐이 이제 전군을 들어 먼저 신라를 쳐, 무신 무도 한 왕을 내 칼로 베고, 그런 후에 오랑캐 왕건을 잡은 후 칼을 평양의 다락에 걸고 말을 패강의 물에 먹이기를 맹세하노니, 경들은 짐의 뜻을 본받아 충용을 다하라.』 하였다.
백관은 일제히 절하여 왕의 뜻을 쫓기를 맹세하고 곧 온 나라에 있는 군사를 몰아 신라를 엄살하되 감히 반항하는 자여든 일호 사정 두지 말고 죽이라 하고, 또 수군을 동해로 돌려 동편의 빈 틈을 타 고울부를 지나 바로 서울로 엄살할 것을 명하고, 『 서울에 들거든 거기 있는 금, 은, 보화와 젊은 여자는 취하는 자에게 주리라.』 하였다.
그런 뒤에 진헌은 이전 시라의 고울부 장군이던 양문(良文)을 불러고울 부로서 서울에 들어 갈 길을 묻고 거기 앞길을 인도하기를 명하였다.
양문은 왕건에게 들어 가 붙으려다가 왕건이, 『 고 울 부는 서울에 핍근한 곳이니 아직 물러가 있으라.』
고, 물리침을 당하고 일변 창피하고 일변 왕건을 원망하여 진헌에게 여러 번 죽을 변을 당하고, 마침내 김 성에게 쫓기어 진헌의 밑에 와 분풀이 할 기회를 기다리던 터이라 진헌의 말에 응 성하여, 『 신이 십년을 고울부에 있었사오니, 고울부에서 서울로 가는 길은 대로 소로를 말할 것 없이 손바닥에 꿰어 들었사오며, 신이 대왕의 하늘 같은 성은을 입사옵다가 이제 중하게 쓰실을 받사오니 비록 재주 없 사오 나충성을 다하여 견마 지도를 사양치 아니하리라.』 하였다.
진헌의 전략은 이러하였다. 곰의나루를 점령한 금강의 군사로 고려를 경유하여 신라와 고려와의 교통을 끊고, 숯고개(炭峴)를 중심으로 한 신라의 서부 국경을 침략하여 신라 군사의 힘을 그리로 집중케 한 뒤에 동 해변이 빈 틈을 타서 해로로 고울부에 상륙하여 대번에 서울을 들이치자는 것이다. 그래서 금강이 거느린 북부 군사와, 신검이 거 느린 신라 서편 군사더러는 깊이 신라의 내부에는 들어 가지 말고 일 일 진퇴 하면서 신라 군사를 끌어 내기에만 힘을 쓰고, 마침 가을이니 들에 익은 곡식을 베어 신라의 양식이 끊어지게 하기로 하고, 진헌은 몸소- 273 - 일만의 정병을 끌고 영산강을 흘러 내려 동해로 가마메(釜山)를 지나고울 부에 오르기로 하였다.
이때에 신라에서는 진헌의 군사가 서편 국경으로 구석구석이 뚫고 들어와 일변 들에 익은 곡식을 베어 가고 일변 젊은 부녀와 장정을 사로잡아가고 골과 마을에 불을 놓고 설레는 것을 보고, 창황 망조하여 전국에 남아있는 군사에게 녹쓴 무기를 주어 서편 구경을 지키기에 힘을 쓰며, 거의 날마다 사신을 고려로 보내어 구원하는 군사를 속히 보내기를 왕건에게 청 하였으나 더러는 금강의 군사에게 붙들리고 더러는 동쪽으로 돌아 무사히 고려에 갔으나 왕건은 『吾非畏萱俟惡盈而自犟耳( 내가 진헌을 두려워함이 아니라, 진헌이 죄악 관영하여 스스로 거꾸러지기를 기다리노라) 』 하는 말로 신라의 청에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이에 김 성은 최후의 결심으로 시중 유렴과 대아손 김부와 그 아버지 늙은 효종과 그 아들 김 충과 및 평소에 왕건으로 좋지 않게 생각 하는 무리를 잡아 가두고 그 뜻을 왕건에게 말하여 왕건의 호의를 사기로 하였다.
이때에 김 충은 이런 일이 잇을 줄을 미리 짐작하고 은밀히 각처로 사람을 보내어 전국에 흩어진 동지를 모아 이 기회에 김성의 힘을 꺽어 버리 기를 꾀하였다.
김 성도 김 충을 꺼려 정면으로 충돌하기를 피하였다. 염탐하는 자의 말을 듣건대, 김 충의 무리는 그 수효를 알 수 없고 서울뿐 아니라 전국 각처에 널려 있으며, 또 이번에는 진헌의 군사를 끌어 들인 것도 김 충의 계책이라 하고, 김 부는 왕위를 엿보아 김 충을 시켜 그리함이라고 하였다.
이에 김 성은 왕께 이러한 말을 아뢰고 만일 이 무리를 진작 없이 하지아니하며 고려의 후환을 받을 근심이 있을뿐더러 난시를 타서 무슨 불측 한일을 할는지 모른다 하였다.
왕은 효종과 유렴을 믿고 또 비록 어진 사람이나 김 충을 보고 사랑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역모를 하리라고는 생각지 아니하였으나 워낙 마음이 약한 왕은 김 성의 말을 아니라고 물리칠 수도 없어, 『 국사를 의논할 일이 있으니, 효종과 심 부와 김 충과 유렴을 부르라.
짐이 몸소 말하여 보리라.』
하였다.
김 성은 왕의 이 말을 다행하게 여겨 칙사를 보내어 효종과 유렴에게 소명( 召命)을 전하였다.
- 274 - 그때는 벌써 날이 이미 늦었다. 효종은 계하에 내려 칙사를 맞고 곧 아들과 손자를 불렀다.
『위로서 곧 들라 하오시니 차비하여라.』
하고 효종은 곧 입궐할 차비를 명하였다. 김 부도 왕명과 부명을 거 스리 지못하여 마음에는 다소간 꺼림이 있건마는 입궐 차비를 명하였다.
오직 김 충이 나서서 조부의 앞에 읍하고, 『 이 부르심이 반드시 김 성의 흉계인 듯하오니 깊이 생각하시옵소서.』 하고 아뢰었다.
『위로서 부르시거든 무슨 생각을 하리. 차비하여라.』
하고 효종은 김 충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효종이 아니 듣는 것을 보고도, 김 충은 한번 더 조부의 앞에 읍하고, 『 이렇게 날이 이미 늦었거늘 소명을 내리심은 반드시 무슨 좋지 못 한 연유가 있는 듯하오니 아직 청병하시옵고 하회를 기다리심이 좋을듯 하옵니다. 만일 지금 들어 가시다가 김 성의 술책에 빠지시면 무슨 변이 있을까 두려워하옵니다. 지금 김성이 우리 집과 시중 유렴의 집을 없이 하여, 왕건의 환심을 사기에 급급하오니 깊이 생각하시옵소서.』 하고 간곡히 아뢰었다.
그러나 효종은 급급히 조복을 갈아 입으며, 『 임금이 부르시거든 두 말이 없는 법이니라. 네 이름으로 충성충 자를 준 것은 충신이 되라 함이니, 충신의 몸은 임금께 바친 것이라. 죽이시고 살 리심이 오직 임금께 달렸나니라. 어서 차비하라!』 하고 엄명하였다.
김 충은 하릴없이 자기 방에 물러나와 두껍쇠를 불러, 『 내 지금 입궐하거니와, 아마 집에 돌아 오기 어려우니 집 일을 네 게 맡기노라. 또 이 길로 유렴 시중 댁에 달려 가 무근 일이 있는가 알아 보고 만일 김 술이 그 집을 범하거든 네가 알아 막고, 만일 유렴 시중도 집에 못 돌아 오거든 계영아기를 도와 무슨 일이 없도록 하라.』 하고 곧 동지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 『 만일 정보(廷輔)나리 오시거든 이것을 드리라.』
하여 분부하고, 조복을 갈아 입고 안으로 들어 가 어머니에게 하직하고 인사를 하였다.
『지금 입궐하오면 십상 팔구는 다시 집에 돌아 오지 못할 듯하 오니, 만사를 두껍쇠가 여쭙는 대로 하시되, 만일 어디로 몸을 피하시게 되옵기든유렴 시중의 딸 계영 아기도 데리고 가시옵소서. 유렴 시중도 아마 오늘- 275 - 입궐 할 듯하옵고 입궐하오면 다시 나오지 못할 듯하오니, 그리되 오면 김술은 상필 계영아기를 엄습하올 것인즉 충신의 의로운 딸을 어머니께서 돌아 보아 주시옵소서.』 하였다.
어머니의 백화부인(白華夫人)은 아들의 말을 듣고 놀래었다. 그러나 우는 낯에 씩씩한 기운을 띄우고, 『 고래로 속아 죽은 충신이 몇몇 인고 충신은 속으되, 속이지아니하나니라. 충신은 임금을 믿고 사람을 믿다니, 임금의 부르심에 의심을 가지는 것은 충신답지 아니한일이니라. 위로 나라에 큰일이 있어 부르시니가라. 충신은 집을 잊나니 집을 걱정하지 말라. 계영아기는 네 부탁대로 하려니와, 충신의 딸이 제 몸을 지킬 줄 모르랴. 뫼시고 다녀 오라.』 하고 울음을 참으려고 입을 꼭 다물고 눈을 감는다. 백화부인이 감는 눈에서 눈물 방울이 흘러 나온다.
김충도 소매로 눈물을 씻고 차마 어머니의 낯을 바라 뒤론,ㄴ 몸에 병이 생겨 다시 생산을 못하였고, 아버지 김부는 몸에 병이 생겨 다시 생산을 못 하였고, 아버지 김부는 색을 좋아하여 많은 첩을 들이고 내었다.
그리하나 백화부인은 일찍 남편 김 부를 원망하는 말이 없을뿐더러 원망하는 빛도 보이지 아니하고 다만 방에 외로이 앉아 염불로 세월을 보내었다.
『어서 가라.』
하고 백화부인은 고개를 숙이고 차마 일어나지 못하는 아들을 향하여 높은 소리로, 『 대장부 무슨 문물인고!』
하고 책망하였다.
김 충은 일어나 백화부인께 절하고 물러나왔다.
효종과 김 부와 김 충이 수레 셋에 갈라 타고 입궐할 때에는 벌써 해가서 악을 넘고 싸늘한 늦은 가을 바람이 불어 왔다. 시중댁 대문 밖에는 많 은비 복들이 까닭은 모르나 상전댁에 무슨 길하지 못한 일이 있는 듯 하여 수레가 아니 보일 때까지 바라보고 수레가 아니 보이게 된 뒤에도 문밖에 서서 서로 바라보고 언짢은 빛을 보였다.
두껍쇠가 깁 충의 명령대로 유렴 시중 집에 갔을때에 는 벌써 밤에 들었었다. 남교 조그마한 촌락에는 등잔불이 반짝가릴 뿐이요, 죽은 듯이 고요한데 두껍쇠의 말 발굽 소리에 놀란 개들만 대문 구멍으로 머리를 내아 밀고 콩콩 짖는다.
- 276 - 『 별일은 없는 모양이로군.』
하고 두껍쇠는 안심한 듯이 혼자 중얼거리며 말에서 내려 말을 길가의 나무에 매고 곧 동내 맨뒤 끝에 있는 시중 집으로 향하였다. 대문 밖에는 시중 집 하인 사오인이 댓돌에 걸터앉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두껍 쇠가 오는 것을 보고 모두 일어나며, 『 어허, 두껍쇠 아닌가? 나는 누구라고…… 』 하고 반가와한다. 그들은 얼마 전 두껍쇠 덕에 한밥 잘 얻어 먹은 것을 잊지 못하는 까닭이다.
두껍쇠는 그 말에는 대답도 아니하고, 『 대감 마마 계신가?』
하고 물었다.
『대감마마 입궐하신 줄 모르는가? 의로써 돕시라 하시와, 저녁 진지도 반만 잡수시고 들어 가시었다네.』
하고 한 하인이 말하면 다른 하인 하나가, 『 아 떠 우리 대감마마 아마 상대등이나 서불한으로 들어 가시나보데.
그리기나 하길래 이 밤에 입시하라 아니하시겠나?』
하고 또 다른 하인 하나가, 『 그야말로 우리 댁 대감마마 상대등만 되시오면 우리네 도 한번 흥청 거릴 게다. 그놈을 김 성 서불한 집 그 종놈들 다 목이 하늘 높은 줄을 알려라.』 하고 팔을 뽐내고 좋아라고 웃는다.
두껍쇠는 이 하인들이 영문도 모르고 기뻐하는 것이 기가 막히나 그런 눈치는 보이지도 아니하고, 『 아! 이 사람들아, 안에 들어 가서 마님께와 아기씨께 두껍쇠가 우리 댁나 리마님의 전갈을 받아 가지고 왔읍니다 아뢰오.』 하였다.
『응 전갈이야? 임자네 댁 나리마님이 우리 댁 아가씨에게 장신이 다 빠져나보다. 작히 좋을까. 우리 댁 아가씨 시집만 가시면 우리네도 한 밥 먹는 판이로구나.』 하고 어슬렁어슬렁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그런데 대관절 웬일이야, 들아 가신지가 벌써 보리밥 세 솥 지을 때는 되었는대 어찌하여 아직 아무 소식이 없을까?』 하고, 늙은 하인이 하나가 유렴 시중을 위하여 근심되는 모양이다.
『아따 글랑 걱정 마오. 하늘이 아시는 우리 댁 대감마마시다. 설마 무슨- 277 - 일 있을라고.』
하고 다른 하인이 말을 막는다.
처음 말하던 늙은 하인이 길게 한숨을 쉬며, 『 무사만 하였으면 작히 좋겠나마는 통쇠놈의 말도 있는데 김 성 서불 한 이 우리 댁 대감마마를 얼마나 무서워 하는지 아나…… 』 하고, 발자취를 엿듣는 듯이 앞길을 향하고 귀를 기울이다가, 『 아직도 아니 돌아 오는걸, 마님께서 곰바위놈더러 무사히 입궐 하신 여부를 알고는 곧 오라 하시었거든!』 하고 염려를 놓지 통쇠는 모양이다. 통쇠란 것은 서불한 집 작은 사랑 하인으로 김 술의 심복이다. 그 놈이 어는 주석에서 유령 집 하인들과 말다툼을 하다가, 『어, 이놈들 며칠만 기다려 봐라!』 하고 무슨 뜻이 있는 듯이 장담한 일이 있다. 퉁쇠는 계영아기의 시비 시월에게 마음을 두고 유렴 집 하인들을 만나기만 하면 시월이로 하여 말다툼을 하고 이따금 때리고 차고 하기도 하던 터이다.
그래도 두껍쇠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안에 들어 갔던 하인이 돌아나오기만 기다리고 별이 총총한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인들은 유렴시중이 서불한이 되느니 상대등이 되느니 상대등이 되느니 그리만 되면 어느 집 어느 놈에게는 어떠한 앙갚음을 하고 퉁쇠놈은 어떤 모양으로 흠씬 때려 주고 그리만 되면 버들골에를 가더라도 당할 놈이 없을 것을 떠들고 웃는다.
이윽고 두껍쇠는 안으로 불려 들어 갔다. 부인과 계영아기는 불의에 시 중이 소명(召命)을 받을 것을 보고 마음이 놓이지 아니하여 회보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던 차에, 두껍쇠가 왔단 말을 듣고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흉한 소문이 있는 듯하여 가슴이 두근거렸다. 두껍쇠는 대청 앞에가 서 허리를 굽혀 문안을 사뢰고 김 충이 자기를 보내더란 말과 효종 시중과 김 부 대아손과 김 충 대내마도 급거히 부르심을 받아 입궐 하였다는말과, 김 충 대내마가 들어 갈 때에 다시 돌아 오기 어려움을 말하고, 이 것은 필시 김 성 서불한의 조작이니 유렴 시중도 입궐하였을 듯 한 즉, 유렴 시중 댁에 무슨 일이 있든지 두껍쇠더러 받들어 드리라고 하더란 말을전하였다.
두껍쇠의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들을 때마다 시중 부인과 계영 아기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만일 유렴 시중이 진실로 김 성의 손에 붙들렸다 하면, 아들도 없는 모녀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 갈까? 더구나 김 술의 야료의- 278 - 어떻게 견디어 낼까?
김 성은 세 번이나 시중 유렴에게 계영아기와 김 술과 혼인 하기를 청 하였다. 첫번과 둘쨋번은 계영이 아직 나이 이런 것과 슬하에 딸 하나밖에 없으니 아직 내어 놓을 수가 없다는 뜻으로 사절하였으나, 세째 번에 김 술이 또 사람을 보내어 만일 허혼을 하면 이어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후환을 면치 못하리라는 위협을 할 때에 유렴 시중은 노발이 지관 하며, 『 유렴의 눈이 감기기 전에 딸을 김 성의 자식에게는 주지 않으 리라고 일러라.』 하고 소리를 쳐 돌려 보내었다.
그러한 지 사흘 만에 오늘 일이 있는 것을 생각하매, 시중 부인은 더욱 근심이 되었다.
『내가 무어라더냐? 아예 허혼을 하였더면 좋을 것을 너무도 고집 하시다가 이 변을 당하는구나.』
하고 계영아기를 돌아 보았다. 시중 부인은 시중을 보고 누누이 김 성의 청혼을 허하기를 주장하였다. 부인의 생각에는 일국의 정권을 손에 쥐고 흔드는 김 성 집과 싸우는 것이 이롭지 못함을 아는 까닭에, 그 집과 인척 관계를 지어 일가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득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시중은 부인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다.
『유렴이 죽을지언정 내 혈육을 김 성의 자식에게 주어 누명을 천재 후에 끼치지 아니하리라.』
하고 고집하였던 것이다.
부인은 계영을 향 하여, 『 악아, 김 성 서불한이 만일 네 혼인 거절한 것을 원혐으로 여길진 댄, 필시 내일이라도 다시 말이 잇을 듯싶으니, 그때에는 내가 너를 허락 하리라.』 하였다.
계영은 이윽히 묵묵하다가, 『 나는 죽을지언정, 김 성의 집에 몸을 허하기를 원 치아니 하옵거니와, 만일 내가 김 성 집에 허혼하여 아버지를 벗어나시게 한다 하면, 어머님 마음대로 하시옵소서.』 하고 울었다.
이때에 후원에서 까마귀 우는 소리가 시녀 소리 들린다. 부인은 까마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 이 어인 밤 까마귄고?』 - 279 - 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대청 정면에 놓인 커다란 옥등잔가에 가을 벌레들 이모여 든다.
계영은 두껍쇠를 보고, 『 김 충 대내마께 뵈올 도리가 있을까?』
하고 물었다.
두껍쇠는 허리를 굽히며, 『 만일 아가씨께서 보내실 말씀이 있사옵거든 소인이 아무리 하여 서라도 전하 겠 읍니 다.』 하였다.
계영은 한참 주저 하다가, 『 계영은 시중 유렴의 딸입니다고 여쭈어라. 그 말 밖에 무슨 말을전하랴.』
하고 다시고개를 돌려 눈물을 감춘다, 두껍 쇠는 이 말 한 마디에 계영의 뜻을 알았다, 『 소인이 무엇을 아리까마는 무슨 어려운 일이 있사옵거든 불러 주 시오 면견 마 지역을 사양치 아니하겠나이다.』 하고 다시 부인과 계영아기에게 절하고 물러나오려 하였다.
부인은 계영의 말이 마땅치 못한 듯이, 『 응 , 응 .』
하고 방으로 들어 가 버린다.
그때에 계영이 나가려는 두껍쇠를 다시 불러 왼손 무명지에 꼈던 남산 옥( 南山玉) 가락지를 빼어 조그마한 합에 넣어 주며, 『 이 것을 대내마께 드리라. 생전에 다시 뵈옵지 못하더라도 이것이 내 뜻이라고 사뢰라.』 하였다.
두껍쇠가 물러나간 뒤에 계영은 홀로 기둥에 기대어 섰다. 하얀 달이 벌써 수풀 위로 올라 오는 것이 보이고 동산 벌레 소리는 달빛을 맞아 더욱 요란한 듯하였다.
계영은 아버지의 말을 생각하였다. 김 충은 충의의 정 기상이 없으니, 반드시 망명의 신세가 되리라고 시중은 이 연유로 사랑하는 딸 계영을 김충에게 허락하기를 주저하였다. 그러나 계영은 이렇게 아버지께 사뢰었다.
『변화한 영웅 기상보다도 충의 정신이 여아의 원하는 바로소이다.』
그때에 시중은 눈을 들어 계영을 보고 말없이 한숨을 쉬었다. 그것은 시 중이 보기에 자기의 딸의 얼굴에도 번화한 기상이 적고 지나치게 맑은- 280 - 기운이 있는 것을 본 까닭이다. 「인연이라 하면 어찌하랴」하고 단념하여 버린 것이다. 늙은 시중의 눈에는 딸의 장래가 여러 가지로 비치는 것이다.
마음 같에서는 사랑하는 오딸을 번화한 영우의 짝을 지어 일생을 즐겁게 영화롭게 살아 가게 하고 싶거니와, 세상이 말세를 당하니 충의지사는 모두 불우의 처지에 있는 세상에 들날리는 사람은 모두 김 율 김술 따위다. 내딸을 누구에게 위탁하게 할까? 이것이 아버지로의 늙은 시중의 나라를 근심하는 여가에 쉴 새없는 근심이었다.
두껍쇠는 계영아기의 전하는 말과 가락지를 받아 가지고, 집 일이 걱정이 되어 대문을 뛰어 나와 길가 나무에 매었던 말을 끌러 타고 채찍을 들어서울로 향하고 몰았다.
주인의 일이 급한지라, 시비 시월도 잠깐 지나가는 낯을 보았을 뿐이요, 말 한 마디 붙여 보지 못하였다.
두껍쇠가 달 아래 말을 몰아 포석정 앞에 다다랐을 때에 앞에서 일대인 마가 휘몰아 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밤중에 어떤 인마가 어디로 갈까?
옳다, 김 술이다 시중이 없는 틈을 타서 계영아기를 데리려 가는 것이다.
하고 두껍쇠는 말 머리를 돌려 포석정 수풀 속에 몸을 숨기고 가만히 엿보았다.
이윽고 말 탄 사람 이십여 명이 바람같이 앞으로 지나가고 그 뒤에는 발늘인 수레가 따라 간다.
이것은 분명히 계영아기를 담아 가려는 것이다.
두껍쇠는,
『응, 이놈이?』
하고 주먹을 부르쥐고 입을 다물었다. 풀 잎사귀를 뜯고 있는 말 머리를 들어 인마의 뒤를 따라 나섰다.
이때에 시중의 집에서는 궐내에서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을 굼굼히 여겨 사람을 서울로 보내기로 하였다.
시주 집 사자가 집 앞에서 얼마를 나오지 아니하여 김술이 보내 인 마를 만났다.
『그 누고?』
하고, 앞선 사람이 물을 때에 시중 집 사자는 궐내에서 나오는 사람으로만 알고, 『 남교 시중 댁 청직이요.』
하였다.
그 말에 앞선 사람은,- 281 - 『 이 놈을 묶어라.』
하고 호령을 하였다.
대궐로 들어 가는 유렴 시중 집 사자를 잔뜩 결박을 지어 말 꼬리에 달고, 김 술이 보낸 장사 패들은 잠들어 고요한 동네로 달려들었다. 개들은 잠들어 놀래어 짖고 백성들도 놀라서 문 틈으로 바라보다가 달빛에 번쩍 거리는 칼빛을 보고 문을 닫아 걸고 이불 속에 들어 박혔다.
『진헌이 온 것이 아닌가?』
하고 방안에서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헌이라는 생각이 나자, 부녀들은 젖먹이를 안고 떨고 분노들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말 발굽 소리가 시중 집 앞으로 들어 간 뒤로는 잠잠한것을 보고, 백성들은 입사하였던 시중이 돌아 나오는가 하고 마음을 놓았다.
이때에 시중 부인과 계영은 두껍쇠를 돌려 보내고 안심이 되지 않아 청직이를 서울로 보내고 회보를 기다리던 차에, 대문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므로 분명 시중이 돌아 온 줄만 알고 계하에 내려 중문까지 마주 나와 시월을 시켜 문 계하에 내려 중문까지 마주 나와 시월을 시켜 문 빗장을 열게 하였으나, 기다리던 시중은 아니 들어 오고 난데 없는 호반 서너 사람이 성큼 뛰어 들어오며 부인께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이 모양을 보고 계영은 얼른 몸을 피하여 대청에 올라 몸을 숨졌다.
부인 앞에 허리를 굽힌 호반은 다시 한번 허리를 굽히며, 『 소인들은 대장군 김 술마마 댁에서 왔사오며 대장군 마마께옵서 이 밤으로 아가씨를 모시어 오라 하옵니다.』 하였다.
부인은 깜짝 놀라 한걸음을 뒤로 물러서서 또렷또렷 한소리로, 『 내 집을 어디로 알고 그런 소리를 한단 말이냐? 내 딸이 창녀가 아니어든 밤으로 데려 오라 함이 무슨 말이냐? 이봐라 네 이놈을 다 모조리 끌어 내어라.』 하고 치를 떨었다.
이 말에 호반들은 껄껄 웃으며, 『 시중 유렴마마도 높으시려니와, 서불한 김 성마마를 어찌 당하오리까?
소인네를 끌어 내라 하시어도 하늘 아래 소인네들 당할 사람이 나지아니하였 사오니, 시중마마께옵서 무사히 댁에 돌아 오시기를 바라시 옵거든 아가씨를 내어 주시옵소서. 우선 서불한 댁으로 모시어 간 뒤에 다시 예를 갖추어 친영 절차를 하옵신다 하옵니다.』 - 282 - 하고, 부인의 대답도 듣기 전에 중문을 내다보며 깨어진 쇠북 소리 같은 목소리로, 『 들으라! 일로 사정 볼 것 없이 아가씨를 내어 모시라. 거행 등한 하면 너희 놈들 목이 없으니 그리 알라.』 하였다. 중문 밖에 있던 호반들은 시중 집 지키는 호반과 하인들을 모두 결박 지어 놓고 기다리다가 우루루 달러든다.
부인은 대청 보석 위에 두 팔을 벌리고 서며, 『 내 목숨이 붙어 잇기까지 아무도 내 딸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리라.
너희들 돌아 가 서불한마마께 아뢰이되, 날이 밝기를 기다려 청혼하 심이 마땅합니다 하여라.』
하였다.
계영은 후원 별당으로 시월을 불러, 『 시월아, 나는 이제 죽으리라. 나 죽은 후에 너는 어마마마를 모시라.
내 몸을 김 술에게 주어 아바마마 이를 아시면 반드시 살아 계시지아니하리라. 이몸을 개 같은 도적에게 주어 가명을 더럽게 할진댄, 차라리 내 칼로 내 목숨을 끊어 버리리라.』 하였다. 계영의 손에는 비수가 들렸다.
시월은 울며 계영의 팔을 붙들었다.
『가벼이 마옵소사. 대감마마 덕이 높으시거든 설마 하늘이 돌아 보시지아니하리까? 때는 늦지 아니하오니 참으시고 가벼이 마옵소서.』 하였다.
이때에 김 술의 사람들은 부인을 밀어 넘어뜨리고 신신은 발로 이 방 저 방으로 두루 찾으며 한 떼가 후원으로 뛰어 들어온다.
후원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에 계영은 자기의 팔에 매어 다린 시월을 보고, 『 ㅏ 를 붙들지 마라. 네가 내 몸이 더렵혀지기를 원치아니하거든 내 팔을놓아 나로 하여금 깨끗한 혼이 되게 하라.』 하였다.
시월은 사람들의 발자취가 점점 가까와지는 것을 보고, 『 만류 하지 아니하리이다. 아가씨 깨끗하신 몸에 더러운 손이 닿지 않게 하리이다. 아가씨 돌아 가시옵거든 소녀도 그 칼로 뒤를 따르리이다.』 하고 잡았던 팔을 놓았다. 그리하는 시월의 얼굴에는 자고 맑은 빛 이보이고 옥둥잔불 빛에 눈물에 젖은 두 눈이 푸른 구슬 모양으로 반짝거렸다.
- 283 - 계영이 바야흐로 칼을 들어 자결하려 할 때에 밖에서, 『 이 놈들아, 두껍쇠의 몽둥이를 아느냐?』 하고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두껍쇠란 말에 시월은, 『 아가씨 두껍쇠! 두껍쇠!』
하고 창문을 열었다. 달빛에 두껍쇠의 몽둥이가 번뜻거리는 것이 보이고 칼을 빼어 든 사람들의 그림자가 이리 쫓기는 양이 보였다.
계영은 그것을 바라보다가 시월의 어깨에 손을 걸고 몸이 쓰러지며, 『 고마워라 고마워라 』 하고 기색하여 버렸다.
두껍쇠는 삼십명 김 술의 사람을 반이나 때려 엎드리고 반이나 때려 내어 쫓고 마당에 기절하여 쑤러진 시중 부인을 안아 방에 들여 누이고 나중에는 후원 별당으로 돌아 갔다.
이때에는 계영아기는 정신 없이 드러눕고 시월은, 『 아가씨, 아가씨!』
하고 게영을 흔들어 깨우려 하였다. 그러다가 두껍쇠가 오는 것을 보고 시월은 너무 억하여 그의 팔에 매어 달리며, 『 고마워라 고마워라. 조금만 늦었더면 아가씨는 돌아 가셨을 것을!』 하였다.
두껍쇠의 얼굴은 불고 눈에서는 불길이 일고 숨은 씨근거려 불을 토 하는듯 하다. 두껍쇠는 팔에 매어 달린 시월의 얼굴을 이윽히 보더니 손을 들어 시월의 뜨거운 뺨을 만졌다.
계영이 정신을 일어나 부인에게로 뛰어 갔다. 부인은 계영의 손을 잡고, 『 대감이 아니 돌아 오시니 우리 모녀는 어찌하면 좋을까? 오늘 욕은 면 하였거니와, 내일 일은 어찌할까?』 하고 한탄하였다.
계영은 두껍쇠의 말대로 이 밤으로 효종 시중 댁으로 옮아 가기를 권하였다.
거기는 두껍쇠가 잇고 또 김 충 대내마의 친한 장사가 있으니 아직 화를 면 할 것이요, 만일 거기서도 견디기 어렵다 하면 몸을 피하여 어느 집에 들어 가 화를 면할 것을 말하였다.
부인은 시중의 고집으로 서불한 집과 혼인하기를 거절하여 이 변을 당한다고 무수히 원망하나 그래도 이 욕을 당하고는 다시 그 집에 딸을주어 화친을 빌 도리도 없으니, 아직 두껍쇠에게 몸을 의탁할 길 밖에 없다하여 계영의 말을 좇았다.
- 284 - 그날 밤으로 두껍쇠는 유렴 시중 부인돠 계영아기를 수레에 태우고 떨고있는 유렴 집 하인들에게 무기를 들어 옹위하게 하고 자기놈 말을 타고 수십 보나 앞서서 앞길을 잡았다. 포석정 모퉁이에서와 계림 앞에 두 어번이나 아까 왔던 무리의 습격을 당하였으나 다 싸와 물리치고 기나긴 늦은가을 밤이 거의 다하여 오경 쇠북이 백만 장안에 울어날 때에 두껍 쇠는 유렴 시중 부인과 계영아기를 모시고 김 충 집으로 들어 왔다.
김 충 집에서도 입궐한 후로 이내 돌아 오지 아니하므로 밤새도록 등잔불을 끄지 않고 근심하다가 유렴 시중 집 가족을 마나 서로 붙들 고통 곡 하였다.
고울부에 유진한 진헌이 군사가 오늘 들어 온다 내일 들어 온다 내일 들어 온다 할 때에 조정에서는 고려로 보낸 청명 사신이 돌아오기고대 하였다.
김성은 시중 유렴과 효종을 잡아 가두고 그 뜻을 들어 왕건에게 보고 하고 지금 진헌의 군사가 고울부에 유진하여 서울을 엿보니 시작이 급한지라, 이 때를 놓치면 후회막급할 것을 누눈이 말하고 만일 이번에 구원병을 보내어 도와 주면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하여 아무러한 일이라도 할 것을 말하였다. 그리고 국보(國寶)로 내려 오는 금과 옥으로 된 왕관과 진평 대왕( 眞平大王) 이 띠시던 금과 옥으로 만든 띠를 예물로 보내었다.
이것은 대대로 나라의 보물로 소중하게 보관하던 것이다. 그것을 왕건에게 보내려고 할 때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 그러면 고울부에 온 진헌의 군사를 어찌하랴?』 하여 그 말은 서지 못하였다.
『나라는 망하였다.』
하고 늙은 조신들이 이 말을 듣고 울었다.
그러나 사신을 보낸 지 한 달이나 되도록 회보가 없어 김 성은 밤에 잠도 이루지 못하고 거의 하루에 하나씩 새 사람을 뒤 따라 보내었다. 나중에는 유렴과 효종의 머리를 보내려고도 하였으나 그것은 구원병이 서울에 들어온 때에 할 것이 도리어 왕건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리라 하였다.
그러다가 동짓달 초하룻날 김 율이 돌아 왔다. 천신 만고로 고려의 구원병을 얻어 가지고 왔다고 김성에게 회보하였다. 고려의 구원병을 사흘 안에 서울에 오리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웅진성에 진헌의 군사가 웅거 하기 때문에 거기를 피하여 댓재로 돌아 오는 까닭이라고 한다.
『고려에서 구원병이 온다.』
- 285 - 는 말에 조정에서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진헌의 군사가 들어 온다고 하면 피난을 할 양으로 경보를 묶어 놓고 밤잠도 잘 못 자던 귀족들과 대관들도 적이 안심하였다.
왕도 김 율의 공을 장하게 여겨 손수 김 율의 손을 잡고 『 나라를 구한 것은 경이로다.』
하고 칭찬하였다.
김성은 사람을 놓아 고려의 청병이 일간에 올 터이니 백성들은 염려 말라고 소문을 들리고 김 율이 데리고 온 고려 사신을 위하여 포석정에 큰 잔치를 베풀기로 하였다.
이날에 장안은 큰 자치라고 야단이 났다. 이 잔치 구경을 한다고 남녀 노유는 이른 새벽부터 동짓날 찬 바람에 부들부들 떨며 포석정을 향하고 나갔다.
포석정에는 차일이 펄렁거리고 깃발이 날리고 햇발이 퍼질 때부터 기생과 광대와 음률 잘하는 이, 춤 추는 이, 그림 잘 그리는 이, 익살 잘 피우는이, 대체 장안에 재주 있는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라는고는 모두 포석정으로 모여 드는 듯하였다.
그 후 얼마를 지나서 귀족들과 대관들의 수레가 모여 들었다. 날은 좀차나 청명하여 하늘에 구름 한점 없고 바람도 깃발을 겨우 흔들만 할 뿐이었다.
오정때나 되어 거동이 대궐을 떠났다. 연 앞에는 유량하게 음악이 울 고수 없는 깃발이 날고 창검이 번쩍거렸다. 근년에 와서는 나라의 일이 많으므로 왕이 거동을 하시더라도 이렇게 굉장한 일은 없었다.
왕의 바로 뒤에 서불한 김 성이 따르고 그 뒤에 고려 사자가 따랐다. 그 뒤에는 귀한 사람들이 따르고 부인들과 아기씨들도 발 드리운 수레를 타고 따랐다.
장안에는 태평이 하늘에서 떨어진 듯하였다. 백성들까지도 오랫 동안 찌푸렸던 얼굴에 화색이 돌고 고려의 고마움을 칭송하는 말이 이 입 저 입에서 나왔다.
왕의 연은 첨성대 앞을 지나 계림 앞에서 첨배하고 탄탄 대로 포석정으로 간다.
『상감마마!』
하는 소리가 나자, 포석정 안에 먼저 모였던 사람들은 동구 밖으로 밀려 나갔다. 깃발과 창검이 유난히 멀리서부터 번쩍거리고 길가에 늘어 섰던 백성은 두어 걸음씩 길 아래로 내려 서서 엎드렸다. 어린 아이들까지도 길- 286 - 아래 엎디어 눈만 들어 소리 없이 지나가는 왕의 연을 우러러 보았다.
왕은 앞뒤에 세 봉우리 있는 금관을 썼는데 관에 박힌 수없는 옥이 왕의 머리가 흔들리는 대로 번쩍번쩍 오색 빛을 낸다. 왕과 왕후의 연은 열 사람씩 여섯 줄로 육십명이 메고 뒤에 따른 비번과 대관들은 말 메운 수레를 탔는데 서불안의 수레는 말이 다섯이요, 고려 사신의 수레와 김술의 수레는 말이 셋이요, 그 밖에는 혹은 말이 둘이요, 혹은 말이 하나요, 관등을 따라 말이 다르며 수레의 빛과 제도도 다르고 부인들이 탄 수레에도 남편의 관등을 따라 다르고 아기들이 탄 수레는 다 외 말이요 늘인 발 빛 이 분홍 이었다.
왕과 왕후의 연이 포석정 동구에 이를 때에 좌우에 벌려 섰던 사람들은 「 상감 마마 만세 만세!」를 몇 번인지 모르게 목을 길게 빼어 불렀다.
왕은 용안에 약간 웃음을 띄우고 연에서 연에서 내려 꽃 같은 시 녀들의 부액을 받아 가만가만히 황토만 깔린 길로 걸음을 옮겼다. 포석정 안에서는 유랑한 풍악 소리와 길게 뽑는 만수악(萬壽樂)의 노래가 일어난다.
『어아이 우리 상감 마마 만세나 살아지이다 만세나 살아지이다 나라에 일이 없고 백성이 배 불러 격양가 부르오니어아 우리 상감 마마 만세 만세나 사옵소서.』 왕은 아직 사십이 넘지 못하였다. 얼굴이 옥같이 희고 아랫턱에 수염이 조금 나고 키는 작은 편이나 날씬한 맛이 있었다. 왕후는 왕과 나이 같으나 아직 스무 살이 넘을락말락한 듯이 젊고 아름답고 비빈(妃嬪)들도 모두 하늘에서 내려 온 이들과 같이 꽃답고 속된 기운이 없었다.
왕의 걸음이 포석정에 가까울수록 풍악은 더욱 높아지고 어디서 일어나는지 모르는 「만세 만만세!」 소리는 먼곳에서 울려 오는 소리 와같이 한가로이 울려 왔다.
왕이 옥좌에 앉으신 뒤에 오늘 잔치에 모든 종친 외친 대관들은 다시 들어 와 하나씩 국하며 왕께 하례함을 올렸다.
사십 간 폭이나 되는 큰방에는 오색이 찬란한 회문석을 깔고 정면에 옥좌가 있고 우편에 왕후가 앉고 차례로 왕의 총애를 받는 비빈이 비단- 287 - 보료 위에 늘어 앉고 그 앞으로 서불한 고려 사신, 이 모양으로 가장 높고 귀하 신하들이 열을 지어 앉았다.
해가 하늘 중천을 지나 서쪽으로 기울어지게 된 때에는 술도 취하고 배도 불러 흥이 높을 대로 높아 북을 찢어져라 거문고 줄은 끊어져라 젓대는 터져라 하고 불고 소매는 떨어져라고 춤을 추었다.
취안이 몽롱하게 되매, 젊은 귀인들은 혹은 은밀한 후궁(後宮) 방에서, 혹은 잎 떨어진 나무 그늘에서 젊고 꽃다운 아기들을 따라 희롱하였다.
아기들도 술에 붉은 얼굴이 더욱 붉어 젊은 귀인들이 따르는 것을 피 하는듯 하면서도 맞아 들이는 태도를 보였다. 이리하여 포석정 넓은 별궁 안에는 술 취하고 홍에 겨운 남녀들의 추파와 정담 판이 되었다.
고려 사신도 북망 무변으로 천년 묵은 신라 문화에 무르녹고 아름다운 술과 음식과 풍악과 미인에 취하여 거의 체면을 잃도록 풀어져 버리고 왕도 귀비의 무릎을 베고 누워 말로 환락에 취하여 있었다.
날이 다하면 밤새도록 놀 양으로 초와 솔깡과 기름까지 준비하고 음식여 투는 곳에서는 십수명 사람들이 눈 코 뜰 새 없이 밤새도록 먹을 음식을 차리기에 바빴다.
옥좌 앞에서는 술도 이미 취하고 풍악도 지리하여 다만 한 사람이 하나씩 미 희를 끼고 은밀히 음란한 이야기만 소근거리고 있었다.
원림에 돌아 가는 까마귀 소리도 그치고 추운 바람이 잎 떨어진 나뭇가지를 흔들어 이따금 창을 흔들었다.
여기 저기서는 술 취하여 어음이 분명치 아니한 노래가 한 마디 두 마디 끝을 맺지 못하고 들려 왔다.
김 성과 김 율과 고겨 사신은 왕의 옆실에 모여 하나씩 미희를 끼고 비스듬히 누워 있고 곁에 놓인 술상에는 안주는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술잔만 비는 대로 꽃 같은 시녀가 병을 안고 들어 와 다시 채웠다.
이 모양으로 환락의 세월은 소리 없이 흘러 끝이 없을 뜻하였다. 나라 일이야 어찌되거나 환락한 좋은 것이었다.
김 성은 그래도 아주 취해 버리지 못하고 취담을 하는 주에도 여러 가지 새 앆을 하였다. 고려 청병이 들어 오는 날에 유렴과 효종 삼 조 손을 종로에서 베어 고려를 기쁘게 할까? 그렇지 아니하면 진헌을 물리치고 개선하는 날까지 그대로 두었다가 고려 군이 돌아 갈 때에 고려 왕에게 보내는 선물로 네 사람의 목을 벨까? 그래서 네 머리를 젓을 담아 왕건에게 선물로 보낼까? 어찌하였으나 모든 일이 자기의 뜻대로 된 것이 기뻤다.
밤은 점점 깊었다. 그러나 환락에 취한 무리는 돌아 갈 줄을 모르고- 288 - 사람들은 술과 환락에 취하여 취하여 졸기도 하였다.
이때에 금군 도독(禁軍都督)이 창황히 김 성의 방 앞에 와서 뵈 옵 기를 청 하였다.
시녀가 들어 와, 『 서불 한 마마 긴급한 일이 있다 하와 금군 도독 대령이시오.』
하고 아뢰었다.
김 성은 졸던 눈을 뜨며, 『 내일 마을로 오라 하라. 이 깊은 밤에 일이 무슨 일이랴, 술이나 먹으라 하라.』 하였다.
시녀가 나와 그 뜻을 전하니 금군 도독이 발을 구르며, 『 시방 진헌의 군사가 물 밀듯 들어 와 벌써 고함 소리 이곳에 들리니, 곧 상감마마 뫼시고 피신하소서 하여라.』 한다.
시녀는 깜짝 놀라 김 성이 있는 방으로 들어 오며, 『 진헌이 진헌이 진헌이.』
하고 말이 나오지 아니한다.
김 율이 깜짝 놀라며, 『 무엇이? 무엇이?』
하고 벌떡 일어난다.
시녀는 겨우 정신을 진정하여, 『 진헌의 군사가 물 밀듯 들어 온다 하옵고, 곧 상감마마 뫼 시 옵고 피난하 소서 하옵니다.』 하고 말도 끝나기 전에 시녀는 밖으로 뛰어 나가 버린다.
시불한은 눈을 번히 떠서 고려 사신을 보며, 『 진 헌이가 와? 술이나 한잔 먹으라지.』
하고 믿지 아니한 모양을 보인다.
이때에 먼 고함 소리 들린다.
금군 도독이, 『 아이, 어이하리.』
하고 매어 달리는 시녀들을 뿌리치고 김성 있는 데로 뛰어 들어온다.
『경각에 달렸소. 상감마마 뫼시고 피난하시오!』
하고 소리를 친다.
또 먼 고함 소리 들린다.
- 289 - 그제야 김 성이 일어나려 하나 늙은 몸에 술이 취하여 다리가 서지를 아니한 다.
김 율과 고려 사신이 일어나 비슬비슬 뛰어 나간다.
금군 도독은 발길로 김 성과 김 율을 걷어 차고, 『 죽일 놈들! 상감마마는 두고 너희만 달아나느냐?』
하고 왕의 방문을 연다.
김 성은 금군 도독의 발길에 채여 문밖으로 뛰어 나갔다가 밖에서 고함 소리가 점점 높아지는 것은 듣고 황겁하여 다시 발을 돌려 왕이 계 신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금군 도둑이 왕의 방문을 열 때에는 왕은 한 귀비의 무릎을 베개로 하고 또 한 귀비의 무릎 위에 발을 얹고 다른 두 귀비의 무릎 위에 한손 씩을 올려 놓고 잠이 들었고 왕후도 그 곁에 시녀들이 돌아 앉은 새에 누워서 늙은 궁녀의 옛 이야기를 들어 가며 반은 졸고 반은 깨어 있었다.
이때에 금군 도독이 문을 열치고 들어 가, 『 폐하! 진헌의 군사가 지척에 임하였나이다. 문을 지키던 군사들도 다 칼을 버리고 도망하였사오니 어서 피하시옵소서.』 하였다.
『무어? 무어?』
『진헌이? 진헌이?』
하고 귀비들과 시녀들은 두 손으로 머리를 안고 일어나 떨었다.
왕후도,
『진헌이 온단 말이냐? 설마 진헌이 온단 말이냐?』
하고 뛰어 일어났다.
이때에 또 고함 소리 들리고 남창으로 화살 하나가 날아 들어 와 떨고 섰는 한 귀비의 가슴에 꽂히어 귀비는「악!」하고 붉은 피를 쏟고 거꾸러진다.
그때에야 왕이 눈을 깨어, 『 무엇을 이리 설레느냐?』
하고 팔을 들어 한 귀비의 목을 안고 다시 잠이 들려 한다.
이때에 김 성이 뛰어 들어와 쓰러지며, 『 폐하! 폐하! 인제는 마지막이옵니다.』
하고 방바닥에 쓰러진다.
바깥에서는,
『사람 살려라! 사람 살려라!』
- 290 - 하고 우짖고 뛰는 여자들의 소리가 들린다. 그들도 모두 몽롱하던 환락의 꿈에서 깨어난 것이다.
금군 도독은 참다 못하여 왕의 팔을 잡아 일으키어 한 팔로 두리쳐 업고, 왕후의 손목을 잡아 끌고 문을 박차고 뛰어 나갔다.
문밖은 캄캄한 어둠이다. 그 어두운 밤 속에 늙은이 젊은이 남자와 여자들은 울고 떨어지고 서로 붙들고 넘어지고 밟고 이리 왔다 저리 갔다 빙글빙글 술래잡기를 하였다.
금군 도독은 왕을 업고 큰문으로 나오려 하였으나 큰 문 앞에 벌써 횃불이 비치는 것을 보고 발을 돌려 수풀 사이를 지나 남별궁 넘어가는 등성이에 올라 섰다.
등성이에 왕과 오아후를 쉬게 하고 포석정을 굽어 보니 벌써 한손에 횃불들고 한손에 칼을 든 진헌의 군사가 달려들어 사나이는 닥치는 대로 죽이고, 계집이면 닥치는 대로 겁간하며 구석구석이 왕을 찾는 모양이다.
왕과 왕후는 말도 못하고 덜덜 떨기만 하고 간신히 뒤를 따라 온 비만 사오 인과 시녀 사오인은 왕과 왕후의 옷에 매어 달려 소리도 못 내고울었다.
지옥의 형벌을 받던 무리들까지 오글오글 끓는 포석정에서, 『 의를 저바리는 신랑 왕아, 나오라!』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이때에 김 성이 관도 다 잃어 버리고 손과 얼굴에 피투성이가 되어 왕이 계신 곳으로 기어 올라 오는 것이 별빛에 희미하게 보인다. 그 뒤에도 하나씩 둘씩 기어 올라 와서는 왕과 왕후의 앞에 쓰러져 버리고 만다.
금군 도독은 다시 왕의 앞에 팔을 내어 밀며, 『 폐하! 이곳에 오래 머무시면 화단을 면치 못하시리나 어서 가사이다.
보시옵소서, 저 횃불이 이리로 오나이다.』
하였다.
그러나 왕은 일어나려 하지 않고, 『 가면 어디로 가랴? 경은 왕후나 피하게 하라. 나는 이곳에서 진헌을 만나리라.』 금군 도독은 왕의 앞에 꿇어 엎드려, 『 그런 생각을 마시옵소서. 폐하의 적자 중에 아직도 충의지사 적지아니하오니 일시 화를 피하시와 후일을 보시옵소서.』 하였다.
『충의지사 누군고?』
- 291 - 하고 왕은 고개를 숙였다.
『대내마 김 충의 무리는 모두 일당백하는 충의지사라 반드시 폐하를 위하여 적군을 물리리라 하나이다.』
하고 어서 이곳을 떠나기를 재촉하였다.
『대내마 김 충이 아직 살았을까?』
하고 김 성을 돌아 보았다.
김 성은 이마를 땅에 조아리고, 『 아직 죽이지는 아노고 옥에 가두어 두었나이다.』
하였다.
왕은 길게 한숨을 쉬고 왕후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 무슨 면목으로 김 충을 보리?』
하고 금군 도독이 인도하는 대로 허둥지둥 어두운 산을 내려 간다.
일생에 발로 흙을 밟아 본 일이 없는 귀인들이라 걸음걸음 무릎을 끌며 엎 더지며 자빠지며 그러면서도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겨우 언덕을 내려 섰을 때에 벌써 아까 있던 산마루터기에 횃불이 보이고, 『 왕아, 나서라.』 하고 무엄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고?』
하고 왕은 땅에 앉으며 물었다.
이때에 계림으로 향하는 큰길에도 벌써 횃불이 보인다.
『이제는 아직 남별궁으로 피할 수 밖에 없사옵니다.』
하고 금군 도독은 손으로 남별궁 있는 곳을 가리키었다.
왕은 다시 일어나 금군 도독에게 손을 끌리어 걸음을 옮겼다.
남별궁예는 문 지키는 군사 사오인이 화롯불 가에 서있다가 어 두운 그늘에 사람 한떼가 오는 것을 보고, 『 거 누고?』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할 때에 금순 도독이 왕과 왕후를 이끌고 군사들 앞에 다다라 화롯 불빛에 나서게 되매, 군사들은 깜짝 놀라 창을 들어 왕을 맞고 문을 열었다.
왕은 창 든 군사의 낯을 대하기도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이고 문 안으로 들어 가 버리고 만다. 그 뒤로 김 성이 피투성이사 되어 가 버리고 만다.
금군 도독은 다시 문밖으로 나와, 『 누가 와서 묻든지 상가마마께옵서는 아까 환궁하옵시었다고 하여라.』
하고는 들어 가 버렸다.
- 292 - 군사는 영문도 모르고 눈이 둥글하여, 『 웬일인가? 누가 모반을 하였나?』
『어쩌면 상가마마께옵서 버선발로 저렇게 창황하신가?』
『서불한은 모두 피투성이가 되었어.』
『저 횃불이 환궁하는 횃불로만 여겼더니…….』
하고 근심스러운 듯이 사방을 돌아 본다.
마루터기에 잇던 횃불은 무엇을 찾는 모양으로 여러 길로 갈려서 점점 가까와 오고 계림 길에 오던 횃불도 세갈래로 갈려서 살같이 서울을 향 하고 달려들어 간다.
왕은 별궁예 들어 가 어두운 방에서 왕후를 붙들고 울었다. 비빈 들과 궁녀들도 입을 막고 울었다.
횃불을 남별궁을 에워 쌌다. 진헌의 군사에게 죽기를 면한 남녀의 무리는 옷이 찢기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둘씩 셋씩 남별궁 문 앞에 와서는 문 지키는 군사더러, 『 상감 마마 어디로 가셨느냐?』 하고 물었다.
『아까 이 앞을 지나시와 환궁하시었소.』
하고 문을 지키는 군사는 시킨 대로 대답하였다.
『어이하리 어이하리?』
하고 벌벌 떨고 사방을 돌아 보며 어둠 속으로 다리를 끌고 숨어 버렸다.
망대에 올라 가 사방을 바라보면 금군 도독은 사방으로 횃불이 남 별 궁을에 워 싸고 모여 드는 것을 보고 왕이 계신 방으로 뛰어 내려와, 『 폐하, 진헌이 당도하였사오니 이제는 더할 길이 없사온고 신은 문 에나가 혼자 진헌을 막으려 하오니 살아서 다시 용안을 뵈올 길이 없 사올까 하나이다.』 하고 왕과 왕후의 앞에 절하고 물러 나간다.
금군 도독이 나가는 것을 보고 왕은 김 성을 돌아 보며, 『 서불한 이 일을 어찌하려는고?』
하고 눈물을 흘린다. 왕후도 소매로 낮을 가리고 우니 비빈들과 궁녀들도 일제 히 소매로 낯을 가리고 운다.
김 성이 고개를 들어 잠깐 왕을 우러러 보고 다시 고개를 숙이어, 『 이제는 진헌에게 항복하여 아직 위급한 것을 면하고 고려 구원병이 이른 뒤에 서서히 진헌을 물리칠 길을 도모하심이 상책인 줄로 아뢰나이다.』 - 293 - 하였다.
왕은 고개를 흔들더니 어성을 높여, 『 불 켜라! 간신 김 성이 물러나라! 내 이곳에 앉아 진헌을 맞으리라.
천년 종사를 내 목숨이 있고는 도적의 앞에 항복하지 않으리라. 누구나 살기를 원하는 자는 가라! 나를 홀로 이곳에 있게 하라.』 하였다.
궁녀들은 네 구석에 있는 초에 불을 켰다. 방안은 환하게 밝은데 사람들의 얼굴은 눈물에 젖었다.
김 성은 방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왕은 궁녀를 시켜 김성을 밖으로 밀어 내어라 하였다. 왕은 궁녀들은 김 성을 끌어 문밖으로 밀어 내쫓았다.
왕은 좌우를 돌아 보며, 『 너희들은 다 물러가 진헌에게 목숨을 빌라!』
하였다.
그러나 비빈 궁녀는 하나도 몸을 움직이는 이가 없이 죽더라도 왕과 같이 할 뜻을 표하였다.
이때에 진헌이 몸소 일대 병마를 거느리고 남별궁예 다다랐다. 문에는 금군 도독이 십여 인의 문 지키는 군사를 데리고 길을 막으며, 『 어디라고 무엄하게 말을 타느냐?』 하고 진헌을 노려 보았다.
진헌이 한번 칼을 들매, 뒤 따르던 군사들이 일제히 금군 도독을 에 워 싸고 엄살을 하였다. 금군 도독은 칼을 들어 십여 명 진헌의 군사를 베었으나 마침내 칼에 맞아 거꾸러지었다. 그러나 피를 흘리면서도 다시 일어나 두 팔을 벌리고 문을 막아 섰다. 그 무서운 모양에 진헌도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마침내 금군 도독은, 『 네 이 문안에 한 발만 들여 놓으면 내가 죽어 귀신이 되어 네게 원수를 갚으리라.』 하고 그만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진헌은 군사를 시켜 금군 도독의 시체를 끌어 내게 하고 문으로 들어갔다.
이때에 왕과 왕후는 옷깃을 바르고 촛불에 대하여 단정히 앉고 비빈 궁녀들도 모두 죽을 결심을 하고 눈물을 거두고 단정히 벽에 기대어 앉았다. 문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되 태연하였다.
진헌은 이 방 저 방 두루 찾다가 마침내 후궁예 불이 켜 있는 것을 보고- 294 - 그리로 달려 들어 갔다.
그때에 보석 밑에 엎드렸던 김성이 두 팔을 합창하여 들고 꿇어 앉아, 『 후백제 대왕마마! 살려 주소서.』
하였다.
진헌은 김 서응ㄹ 바라보며, 『 네가 무엇이냐?』
하고 소리를 질렀다.
『신은 신라 서불한 김 성이오나 이로부터 대왕께 충성을 다 하겠 사오니 살려 주소서.』
하였다.
진헌은 김 성이란 말을 듣고 곧 칼을 들어 김 성을 치려 하였다. 그러나 김 성은 진헌의 칼이 내려 오기 전에 벌써, 『 대왕 마마 살려 줍소서.』 하고 땅에 엎드려 버렸다.
이것을 보고 진헌은 칼을 도로 쳐 들며, 『 어허, 못난 놈이로구나. 하마터면 내 칼을 더럽힐 뻔 하였다. 네 목숨을 아직 살려 주거니와, 너희 왕을 불러 내라.』 하였다.
김 성은 차마 왕을 부를 수도 없어 그저 머리만 들었다 놓았다 하였다.
이때에 왕이 영창을 얼떠 리며, 『 내 여기 있으니 진헌은 들라!』
하고 소리를 쳤다.
진헌이 선뜻 계상에 올라 서며, 『 오 네더랴, 오늘 잘 만났도다.』
하고 뒤 따르는 군사를 돌아 보며, 『 들어 가 신라 왕을 결박하라! 결박하되 아직 목숨을랑 건드리지 말라.
내 죽이기 전에 몇 가지 보일 것이 있노라.』
하였다.
진헌의 군사는 왕의 방으로 달려들어 곧 왕을 범하려 하였다.
이때에 왕후가 일어나 두 팔을 벌리고 왕을 가려 서며, 『 너희 무지한 오랑캐 무엄하게 어디를 범하느냐? 물러라, 너희 괴수 진헌더러 목을 늘이고 들라 하여라.』 하고 손에 들었던 왕의 칼을 뽑아 들었다.
진헌이 밖에서 왕후의 모양을 보고,- 295 - 『 어허, 아름다운지고, 오늘 밤엔 부인과 백년 가약을 맺으리라.』 하고 껄껄 웃을 때에 왕후는 칼을 들어 진헌을 향하고 던지었다.
그러나 진헌은 몸을 비켜 칼을 피하고 달려 들어 왕후를 껴안아 무릎 위에 놓고 왕을 보고 웃으며, 『 내 올 때에는 네 목숨을 취하려 하였더니, 이제 의의 선물을 받았도다.
네 죽으매 비빈은 쓸데 없을 것이니 내 맡아 사랑하리라. 마음 놓고 눈을 감으라.』
하였다.
이때에 벌써 진헌의 군사는 달려들어 왕의 두 팔을 붙들어진 진헌의 앞에꿇렸다.
진헌은 손으로 왕후의 등을 쓸어 만지며, 『 네 나를 몇 번이나 속였던고? 몇 번이나 배반하였던고? 내 너를 도우 려 하였거든 네 왕건에게 사자를 보내어 나를 비방하고 나를 치기를 꾀하였 도다. 내 마땅히 주먹을 들어 미쁨 없는 네 골을 바술 것이로되 네 신라의 왕인 것을 대접하여 이 칼을 주니 손수 네 목숨을 끊으라. 만일 그러할 용맹조차 없거든 내 군사로 하여금 돕게 하리라.』 하고 왕후가 진헌을 향하여 던지었던 칼을 주워 오라 하여 손수 왕의 앞에 내어 던지었다.
왕은 말없이 손을 내어 밀어 진헌이 던지는 칼을 집었다. 칼을 들고진 헌을 보고 진헌의 무릎 위에 안기어 기절한 왕후를 보고 돌아 선 비빈을 보고 장차 칼을 들어 칼 끝을 가슴에 대려 할 때에, 『 폐하! 폐하!』 하고 김 성이 뛰어 들어와 왕의 팔을 잡으며, 『 폐하! 이것이 다 신의 죄오니 원컨대 폐하는 그 칼을 드시와 먼저 신의 죄 많은 머리를 베이소서.』 하였다.
그러나 왕은, 『 물러나라. 삼생에 다시 내 눈에 보이지 말지어다!』
하고 김 성을 뿌리치고 날카로운 칼끝을 왼편 가슴 젖 밑에 대고 우는 비빈과 궁녀를 돌아 보며, 『 잘 있거라!』 한마디를 남기고는 몸을 앞으로 굽혔다. 붉은 피가 방바닥에 쏟아지고 왕의 몸은 모로 엎더지었다.
비빈과 궁녀들은 일제히 손을 들어 머리를 뜯어 풀고 왕의 옷자락에 매어- 296 - 달려 소리를 내어 통곡하였다.
유렴과 효종과 김 부와 김 충과 네 사람은 추운 옥 속에서 죽을 날이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김 충의 집에는 유렴 부인과 계영아기가 우 거 하여있고 여러 번 김술의 무리에 습격을 당하였으나, 두껍쇠의 몽둥이로 때려 물렸다.
포석정 큰 잔치가 있는 날 김 술은 잔치에도 참례하지 아니하고 밤이 깊기를 기다려 다시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김 충의 집을 에워 싸고 사방으로 불을 놓았다. 두껍쇠는 문객을 데리고 혼자 죽을 용기를 다 내어 대적 하였으나, 중과 부적할 줄을 알고 가족을 끌고 뒷문으로 나가 문을 지키던 김 술의 무리를 때려 죽이고 그날 밤에 어두운 것을 이용하여 좁은 골목을 돌아 멀리 백률사로 피하여 버렸다.
백률사(栢栗寺)는 김 충 집이 대대로 다니든 절이기 때문에 주장 노승은 단가( 檀家) 의 어려움을 보고 분연히 나와 맞아 으슥한 방에 숨기고 두껍 쇠만 얼른 머리를 깎고 중의 옷을 입고 대문 밖으로 향한 방에 숨어서 따라오는 이가 있는가 하고 귀를 기울였다.
『이 잔치가 끝나면 모두 내어 목을 베어 고려로 보낸다던데?』
하고 유렴 부인은 울며 김 성의 청혼을 물리친 것을 수없이 원망하였다.
그러나 김 충의 어머니 되는 백화 부인은 염불을 외우며 태연하고 계영 아기는 아버지의 김충을 생각하여 얼굴이 쏙 빠져 버리고 정신 없이 한 곳에만 바라보고 있었다.
백률사 중에도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공연히 헛기침을 하고는 창을 열고 밖을 바라보았다. 김 충의 집에 붙은 불은 사방 민가에 번지어 화광 이 충전 하였다. 대체 장안이 우수수하는 것은 불 때문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김 술의 무리가 따라 오지 않은 것만 다행으로 여겼다.
그러나 장안은 물 끓듯하였다. 모두 처음에는 큰길에 휘황한 횃불에 문밖으로 바삐 지나가는 말 발굽 소리가 포석정 잔치가 파하고 돌아 오는것으로 만 알았으나, 그것이 무인지경 같이 스치어 들어 오는 진 헌 의군 사인 줄을 알고 또 겨우 목숨을 주워 가지고 포석정을 빠져 나온 사람의 입에서 오늘 밤 포석정에 생긴 일을 듣고 또 왕이 간 곳을 모른다는 말을 듣고 진헌의 군사가 사나이면 닥치는 대로 죽이고 계집이면 닥치는 대로 겁탈 한다는 말을 듣고, 백성들은 아내와 딸을 끌고 지동 지서로 좁은 골목을 찾지 못하여 울고 헤매었다. 문을 열었다 닫은 소리, 산을 끄는 소리, 아이 어른이 울고 부르짖는 소리, 영문도 모르고 짖어대는 개 소리,- 297 - 화광에 놀래어 부르 짖는 온갖 짐승의 소리, 신라 천년에 이처럼 큰 난리는 껶지 못하였다.
진헌의 군사들은 죄없는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는 아니하니 큼직한 짐이 면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가 세간을 뒤지어 값가는 물건이면 빼앗고, 얼굴이 어여쁘고 당년한 여자면 말에 싣고 달아났다. 백만 장안에 이 액을 면 한 집이 몇 집이나 될까? 다행이 진헌의 군사의 눈에 띄지 아니하고 서울을 빠져난 사람들은 산으로 들로 향방도 없이 헤매었다.
진헌의 군사는 버들골에도 달려들고 향나무 골도 내놓지 아니하였다.
김 충이 정 들인 난영은 진헌의 군사가 몰아 와서 젊은 부녀는 모조리 잡아 간다는 말을 듣고 어미더러, 『 딸은 이 길로 김충 대내맛 댁으로 가려 하나이다. 이 몸이 이미 대 내 맛댁 사람이니 죽기 전에 그 댁 문안에 발이나 들여 놓고, 대부인마마께 뵈 온 후에 그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어머님은 늙으시오니 여기 계신들 설마 어떠하리.』 하고 김충 집에 심부름 다니던 아이놈의 옷을 입어 머슴으로 차리고 그 아이 놈을 따라 으슥한 골목을 가리이 김 충 집을 향하였다. 헤매는 사람들의 틈을 뚫고 천신 만고로 분황사(芬皇寺) 길에 다다랐을 때에는 벌써 온 동네는 불바다가 되고 말았었다.
『놈아! 어디가 대내맛 댁이냐?』
하고 난영은 아이놈에게 물었다.
아이놈은 아직도 다 쓰러지지 안하고 불길에 싸인 대문을 가리키며, 『 아씨 저기 저 대문이 대내맛 댓 대문이요.』 하였다.
난영은 도리와 서까래가 온토 불에 싸이고 지붕 기왓장 밑으로서 혀끝 같은 불길이 남설남설 내뿜는 김 충 집 대문을 이윽히 바라보더니 아이 놈을 보고, 『 네 만일 살아 남고 대내마도 살아 남으시거든, 내가 대내맛 댁 대 문안에서 죽더라고 아뢰어라. 설마 하늘이 계시거든 대내마야 버라시랴.』 하고 합창하고 세 번,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을 부른 뒤에 나는 듯이 김 충 집 대문 불길 속으로 달려 들어 갔다.
불길이 난영의 머리와 옷에 달려 한번 환하게 난영의 뒷모양이 보이고는 아주 불길에 싸여 버리고 말았다.
후세에 이곳을 열녀문이라고 부른 것은 난영을 두고 이른 말이요, 난영이- 298 - 타 죽은 자리에는 열녀 정문과 「난영 낭자사(蘭英娘子祠)」라는 것이 있는것이 이 까닭이다. 지금도 그 자리를 파면 난영의 피 묻는 흙이 나온다. 옛 노인의 말에 충신과 열녀의 흘린 피는 지하 삼천 척을 뚫고 들어 간다고 한다.
날이 새었다. 불도 꺼지었다.
서울 방방 곡곡에는 대행대왕(代行大王)이 남별궁예서 돌아 가신 것과, 왕후는 대행대왕을 따라 자결하신 것과, 대아손 김 부가 새로 왕위에 오르신 것을 백성들에게 고하는 방목이 붙었다.
그리고 진헌의 군사는 밤새도록 약탈한 금은 보화와 삼천 삼백명이라는 신라의 젊은 여자와 금장이· 은장이· 대장장이· 석수장이· 대목· 소목· 산학 박사( 算學博士), 역 박사(歷博士), 의 박사(醫博士)·오경박사(五經博士) 같은 장색 과학자를 오천여 명을 사로잡아 가지고 삼십리에 뻗은 긴 행렬을 지어 북을치고 피리와 소라를 불며 깃발을 날리며 태종무열왕 능( 太宗武烈王陵) 의비 석을 깨뜨리고 서악재(西岳峴)를 넘어 금척능(金尺陵)을 지나 달구벌( 達之火————— 지금의 大邱)로 향하였다. 사흘 안에 고려 군사가 온다하였으니 그것을 중로에서 맛아 깨뜨리려 함이다.
진헌이 서울에서 물려간 뒤에 새 왕은 남멸궁예 내어 버린 경애왕( 景哀王) 의 신체를 대궐로 옮겨다 침전에 모시고 몸소 수상( 受喪) 하여 통곡하고 전국에 국상을 하였다.
경애왕이 진헌의 손에 어떤 모양으로 돌아 가신 것을 들은 백성들은 통곡하고 슬퍼하여 날마다 대궐 문 앞에 망곡하는 무리가 끊이지아니하였다. 왕으로 경애왕은 백성들에게 그다지 사모함을 받지못하였거니와, 그 왕이 진헌의 손에 참혹한 욕과 변을 당한 것을 알 때에 백성들은 이를 갈고 슬퍼하였다. 그 표로 백성들을 부모상을 당한 것과같이 모두 소복을 입고 인산날까지 철시하고 살생과 가무를 일체 아니하였다.
새 왕은 대행대왕의 반전에서 밤을 새워 애통하고 음식까지 폐한 것을 신하들이 권하여 겨우 미음과 죽을 잡수시게 하였다.
포석정 변에 각처로 유리하였던 살아 남은 대관들과 백성들도 하나씩 둘씩 돌아 들었다.
그러나 목숨이 살아 돌아 와 본즉, 혹은 집이 불에 타고, 혹은 아내와 딸이 진헌의 군사에게 붙들려 가고, 혹은 아들이 죽고, 혹은 아버지 가죽고, 가장 즙물은 산락하고 값가는 것은 다 없이지고 말았다.
- 299 - 대궐 앞에 와서 이마로 땅을 조아리며 목을 놓아 통곡 하는 것만은 다만 대행 대왕의 불행하게 돌아 가심을 슬퍼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천년 고국 이진 헌 같은 오랑캐에게 욕을 당하는 것이며, 또 제 각각 제 시세를 운것이었다.
왕은 인산이 끝나기까지는 가족도 대하지 아니하였다. 경애왕이 승하 하신지 열흘 만에 왕건에게서 조상하는 사자가 왔다. 왕건의 조상하는 말은극 히 간곡하고 측달하였다. 그래서 평소에 왕건을 좋게 여기지 아니하던 왕과 유렴 시중도 왕건의 국서를 읽고 더욱 슬피 울었다. 더구나 신라에 오던 구원병이 곰의나루에서 진헌의 군사를 만나 오천 병마가 천명도 못 남고 다 죽어 버린 뒤인 것을 생각할 때에 왕건의 국서는 더욱 신라 조정에 감격을 준 것이다.
오 호 경 순 경애왕은 게눈이(蟹目嶺)에 묻히고 효종은 옥에서 나오는 길로 며칠이 못 되어 죽으니, 신흥대왕(新興大王)이라고 추존하고 왕의 어머니는 왕태후라 하고 부인 백화마마는 왕후가 되고 아들 김충은 태자를 봉하 고시중 유렴으로 상대등을 삼았다.
김 율은 포석정에서 도망하다가 진헌의 군사에게 잡히어 죽고, 김 성은 남 별 궁예서 목숨을 빌다가 얻지 못하고 산채로 껍질을 벗기어 죽여 버리고, 김 술은 포석정에 가지 안하였던 까닭에 살았으나 인산날에 백성들에게 맞아 죽고, 김 성의 식구는 사내는 진헌에게 죽고 부녀들은 진헌에게 붙들려 가고 어린것들고 계집애는 살렸으나 사나이는 다 죽여 버렸다.
새 왕이 들어 서기는 하였으나, 사람들은 진헌 난리에 죽지 않으면 잡히어 가고 남았던 사람들도 국운이 오래지 아니할 것을 보고는 혹은 세력 있는 진헌에게로 달아나고, 혹은 왕건에게로 달아나고, 간혹 나라에 충성을 가진 이는 차마 다른 임금을 섬기기를 원치 아니하여 혹은 선랑( 仙郞) 이 되어 폐포 파립으로 강호에 방랑하고, 혹은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산에 숨어 버리고 그렇지 아니하면 전원에 돌아 가 밭을 갈고 풍월에 숨어 버리고 각색 장색조차 혹은 진헌에게 사로잡혀 가고, 혹은 항복 하는 장군들을 따라 고려로 달아다니, 서울에 남은 것은 할 수 없는 백성뿐이 되었고 또 구고의 재물과 장안에 있던 모든 재물을 진헌이 몽탕 실어 가고 촌락에 있던 곡식조차 수레에 싣고 배에 실어 백제 가까운 고을에서는 백제에게 빼앗기고, 고려 가까운 고을에서는 고려에 빼앗기니, 백성의- 300 - 양식도 끊어지었거든 나라에 무슨 재물이 있으랴?
게다가 새 왕이 고려와 통한다는 말을 듣고 진헌이 군사를 발하여 변읍을치고 불을 놓고 장정과 젊은 부녀를 사로잡아 가고, 재물을 노략하고 이 꼴을 본 장군들은 다투어 진헌에게 항복하니 강주 장군 유문( 康州將軍有文) 이 진헌에게 항복할 것이 왕이 즉위한 이듬해 오월 일일이요, 팔월에는 진헌이 양산(陽山)을 빼앗아 그 곳에 성을 쌓고, 구월에는 진헌이 대야성(大耶城)을 빼앗고 군사를 보내어 대목 고을( 大木郡) 곡식을 모조리 베어 가고, 시월에는 무곡성(武谷城)을 쳐 빼앗고, 이듬해 칠월에는 진헌이 의성부(義城府)를 치니 왕이 하릴없이 고려에 청병 하였으나 고려 장수 홍술(궁예의 신하로서 왕건에게 돌아가 붙은 사람) 이 싸우다가 이기지 못하고 죽어 버리고 순 주장군( 順州將軍) 원봉( 元逢) 은 진헌에게 항복하여 버렸다.
이 모양으로 진헌의 군사는 도처에서 이기고 왕건의 군사는 도처에서 이기지 못하였다. 그러할 때마다 한 고을씩 또 한 고을씩 신라 고을 은진 헌에게로 돌아 가 붙었다. 천하는 모두 진헌의 천하가 되는가 싶었다.
신라 조정에서는 마침내 고려를 버리고 백제로 돌아가 붙을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안하여 이렁저렁하는 동안에 마침내 큰일이 생겼다. 그것은 고창병메(古昌甁山) 싸움에 진헌이 왕건에게 대패 한일이다. 사년 동안 일찍 패하여 본 일이 없던 진헌의 군사가 여지없이 패 한 것은 신라 조정에 큰 충동을 주었다.
이 싸움에 진헌이 살아 남은 군사를 끌고 완산주로 달아나매, 후백제에 속 하였던 영안(永安)·하곡(河曲)·직명(直名)·송생(松生) 등 삼십여 고을이 고려에 항복하였다. 이 큰일이 정월 한달 동안에 일어난 것이다.
이월에 왕건은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진헌을 이긴 전말을 보하였다.
이렇게 진헌과 싸운 것이 모두 신라를 위하여 전왕의 원수를 갚으려 한 것임을 말하고, 끝에 신라 조정에서 은근히 진헌과 통한 자가 있다는 소문이 있음을 힐책하는 뜻을 표하였다.
왕은 왕건의 국서를 받고 군신을 불렀다. 왕건이 이제 진헌을 패하고 형세가 융륭하니 이를 어찌하랴 하는 것이 의논하는 제목이었다.
문제 중에 가장 큰 것은 왕건이 왕과 한번 서로 만나기를 청한 것이다.
김 성과 김 율이 진헌의 손에 죽으니, 왕건은 신라 조정에 믿을 만 한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러할뿐더러 상대등 유렴은 강직한 사람이라 도저히 이 로나 꾀로 휘어 넣기 어려울 줄을 알므로 이번 기회에 직접 왕을 만 나왕의 마음을 휘어 보려고 생각하였다.
- 301 - 그러면 고려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할까 하는 이것이 큰 문제였었다.
군신들은 이 일에 대해서도 아무 말도 아니하고 서로 눈치만 보았다.
그들은 대부분 지금까지 왕건이 믿지 못할 것을 말하여 진헌에게 붙기를 주장 하던 자들이다. 그러나 진헌이 여지없이 패하게 된 이때에 다시 진 헌을말하 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혀끝에 침이 마르기도 전에 오아건과 친하기를 주장 할 수도 없었다. 그뿐더러 만일 다시 왕건의 세력이 서울에 들어 오는 날이면 지금까지 진헌의 편이 되기를 주장하던 사람들은 무리 장사가 날 염려가 있었다.
상대등 유렴도 한숨만 쉴 뿐이요, 아무 말이 없었다. 자기가 상대등이 된지가 사오년이 되건마는 만조한 백관은 다 썩은 무리어서 동풍이 불면 동 으로 서풍이 불면 서로 이익 있을 듯한 곳으로만 쓰러지고 그뿐 아니 라서로 편당을 지어 시기하고 먹고 속이고 백성들은 벌써 마음이 풀어지어 나라에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믿지 아니 할 뿐더러, 『 이제는 세상이 끝났어.』 하게 되어 버리니 뜻있는 자는 산이나 술에 숨어 버리고 뜻없는 자는 혼자 살 도리만 생각하여, 피난처를 찾아 유벽한 산촌으로 찾아 들어 갔다.
그래서 군사를 모집하여 도 와서 응하는 이가 없고, 온다 하면 한 들 두 달만에 달아나 버리고 납세를 재촉하여도 낼 생각을 아니하였다.
게다가 새 왕은 등극한 후부터는 잠룡(潛龍)때에 가지던 뜻조차 잃어버리고 젊은 계집을 구하여 들이며, 노래하는 자와 춤추는 자와 음률 하는 자를 불러 들여 밤 낮으로 연락을 일삼고, 또 남은 여승을 궐내에 불러 일신 일가의 복을 빌었다.
이 모양이매, 유렴은 해보려던 일이 다 뜻대로 되지 아니 할 뿐더러, 『 이러하다가는 망국 군주의 이름을 천추 만세에 끼치시리이다.』 하고 자주 간하는 유렴을 왕이 향기롭지 아니하게 여기게 되었다.
이리하여 유염은 여러 번 해골을 빌어 남교로 돌아 갈 것을 생각 하였으나 태자요 사위 되는 김 충이, 『 상대등마저 가면 나라를 어이하리.』 하고 눈물을 흘리며 붙드는 까닭에 그날 그날을 보내던 것이다.
이제 왕이 왕건을 만날 뜻을 가지니 왕건이 왕을 만나려 함은 다른 뜻을 둔 것이 분명한 줄을 아나, 이제 말하더라도 서지 못할 줄을 알뿐더러 또말 할 기운도 없는 듯하여 다만 한숨을 쉬고 있을 뿐이다.
왕은 다만 유렴을 싫어할뿐더러 태자 김 충도 귀찮게 여겼다. 그것은 김충이 바른말을 하는 것이 귀에 거스르는 까닭이다,- 302 - 마침내 왕은, 『 짐은 고려 왕을 만나리라.』 하고 윤음을 내려 버렸다.
그리하여 고려에 회답하는 국서를 가진 사자가 그날로 서울을 떠났다.
그리고 고려 왕을 맞기 위하여 임해궁과 안압지를 일신하게 수리 하고 율객과 가희(歌姬)와 무희(舞姬)를 모으고 각 수령·방백에게 명하여 그 땅에 나는 물산 중에 가장 아름답고 진기하고 값가는 것을 성화같이 올 리라하고, 또 백성에게 부역을 명하여 곰의나루에서 서울에 이르는 길을 수레 세 체가 늘어서서 올 수 있도록 치도하기를 명하고, 또 만일 고려 왕 이 오는 데 대하여 요언을 돌리거나 무엄한 일을 하는 자는 엄벌할 것을 말하였다. 이리하여 큰 역사가 시작되었다.
농시 방장에 인민을 부역하여 일변 오백리 큰길을 닦고 일변 대궐과 진 헌 난에 말 못된 포석정을 수리하며 안압지(眼壓池)를 더 깊이 파고 드는 위에 그림 그린 배를 띄우고 오늘이나 내일이나 하고 고려 왕 왕건 이 오기를 기다리니, 민원은 창천하고 국고는 경갈하여 대소 관원의 녹이 두 석 달이나 밀리고, 금영 군사의 녹조차 삼사 삭을 밀리니 군사들은 달아나고 관원들은 집에 있어 밥벌이할 일을 구하는 형편이었다.
구월에는 국동 연해주(國棟沿海州)의 모든 고을과 부락이 고려에 항복하고, 재암성 장군 선필 장군도 볼 일을 다 본 듯이 왕건에게 항복 하여 상보( 尙父)라는 존칭을 얻고 고려 서울 송도에 큰 저택과 만석 녹과 아름다운 많은 비복을 주어 영화를 누리게 하니, 신라의 대소관원은 일찍 고려에 돌아 갈 반연 없는 것을 한탄하게 되었다.
태자 김 충이 비록 상대등 유렴과 함께 나라를 바로 잡기를 꾀하나 큰집이 무너질 때에 외기둥이 버틸 수가 없었고, 백사가 다 뜻대로 되지안하니 태자도 세상에 뜻이 없어 다시 술을 마시고 음률과 미회를 꾀게 되었다.
이것을 본 왕후 백화 부인과 태자비 계영 부인은 누누히 태자의 생각이 그릇됨을 말하였으나 태자는 다만 길게 한숨을 쉴 뿐이었다.
온다 온다 하고 아니 오던 왕건이 경순왕 오년 이월에 서울로 온다는 선문이 왔다. 왕건은 거느린 군사를 곰의나루에 머무르게 하고 오십 여기의 시 위병만 데리고 서울에 들어 올새 왕은 백관을 거 느리고서 악재( 西岳峴)까지 나가 맞았다. 태자와 유렴도 왕을 따라 서 악재까지나 갔다.
이날이 아직 이른 봄날이라 산 그늘에는 녹다 남은 눈조차 있건마는- 303 - 백성들은 고려 왕의 행차를 보리라 하여 금척능 십리 길에 좌우로 수없이 늘어 서 있었고 장안 백성들도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길가에 나섰다.
길가에는 해 뜰 때부터 엿 장수와 떡 장수와 술 장수의 한 댓 가게가 벌였고 아이들은 새 옷을 입고 기뻐하였다.
문무 백관들은 찬란한 관복의 소리 좋은 패옥을 차고 긴 칼을 차고 홀을 들고 수레에 내려 길가에 늘어 서 왕건을 기다리고 왕은 맨 뒤에 자암 속에 앉았었다.
해가 낮이 기울어 바람이 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할 때에 서쪽에서 보얗게 먼지가 일고 기치와 창검이 번쩍거리며 고려 왕의 행차가 가뭇가뭇 오는것이 보였다. 그중에 둥 두렷이 높은 연이 바람에 둥둥 떠오는 듯이 흔들리지도 않고 온다. 그것이 왕이 보낸 연이다.
왕건의 연이 점점 가까이 오매, 이편에서는 일시에 풍악이 일어났다.
바람결에 저편에서도 풍악 소리가 들려 온다. 천지는 온통 풍악에 찬듯 하였다.
오아건의 연은 점점 가까와지고 말 탄 군사의 얼굴이 보일 만할 때에 이편에서는 더욱 풍악을 울리고 목소리 좋은 악인으로 하여금 만 세악( 萬歲樂)을 부르게 하였다.
신라 천년에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태종무열왕이 백제와 고구려를 통일한 후로 이 천지에 신라 왕 밖엔 연을 타고 서울로 들어 올 이는 없었던 것이다. 하물며 그연을 타고 들어 오는 이가 경문대왕 시절에 미미한 일개 한산주 도독(漢山州都督)이던 왕률의 아들이요, 역적 궁예의 신 하일 줄을 누라서 알았으랴? 이런 일을 생각하는 늙은 사람들과 유렴과 태자는 눈물이 흐름을 금치 못하였다.
그러나 왕건의 연이 앞으로 지나갈 때에 길가에 늘어섰던 신라의 왕족과 귀족과 대관들은 다투어 허리를 굽히어 이마을 땅에 대고, 『 신라 이손 아무 아뢰오.』 『신라 급손 아무 아뢰오.』
하고 완건이 눈이 한번 자기 위에 떨어지기를 애걸하는 듯하였다. 그런 것을 왕건은 연 위에서 슬쩍 내려다보았다. 신라 대관들은 왕건이 지나간 뒤에도 굽혔던 허리를 펴지 아니하였다. 왕건의 신하들의 눈에는 찬 웃음이 있었다.
마침내 왕건의 연은 왕의 행재(行在)앞에 이르러 머물렀다. 왕건은 연에서 내리고 왕은 옥좌에서 일어나 서너걸음 왕건의 앞으로 나왔다.
왕건은 진평대왕이 쓰시던 왕관과 띠시던 보대(寶帶)를 띠었다. 어느- 304 - 것이 진실로 신라 왕인가?
왕이 왕건을 보고 허리를 굽히려 할 때에 왕건이 먼저 허리를 굽히며, 『 대왕은 과인보다 연치가 위시니 먼저 절하심이 마땅하지 아니 하신가하나이다.』 하였다.
왕은 적이 무안한 듯이, 『 대왕이 짐을 위하시와 진헌을 물리치시고 이제 또 몸소 짐의 나라를 찾아 주시니, 대왕은 짐의 은인이라 어찌민저 절함이 마땅치 아니하리까?』 하였다.
태자는 왕의 거동을 보고 심히 마음에 불쾌하여 왕건에게 절 하지아니하니 왕건이 태자를 한번 바라보고 말이 없었다.
왕은 태자가 왕건에게 절하지 아니함을 보고 낯을 찌푸렸으나 말이 없고, 왕건의 손을 잡아 행재를 인도하여 꼭 같이 차린 자리에 인도하였다.
그러한 뒤에 먼저 왕건의 거느린 신하가 왕께 절하고 그것이 끝난 뒤에 왕의 백관들이 왕건에게 절하되 왕께 하는 예로 무릎을 끓었다.
상대등 유렴이 무릎을 끓려 할 때에 왕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유렴의 팔을 붙들고, 『 유렴이 아니시뇨?』
하고 물은 뒤에, 『 과인이 선생의 성화를 들은 지 오래고 또 선생의 높은 덕을 사모한 지 오랜지라 관인이 선생에게 집지(執贄)하려는 뜻이 있거니 절이 당하리오.』 하고 손수 붙들어 자리에 앉히었다.
그 후에 왕건은 시신을 불러, 『 낙랑 공주(樂浪公主)를 부르라.』
하였다.
이윽고 시녀의 부액을 받아 꽃같이 아름다운 왕건의 맏딸 낙랑 공주가 들어 와 왕의 앞에 섰다.
『공주는 대왕의 앞에 절하라.』
하는 왕건의 명을 듣고 낙랑 공주가 공손히 무릎을 꿇어 왕의 앞에 절하 였다.
왕은 고려 왕의 낙랑 공주가 아름답다는 말을 들었고 또 이번에 같이 온다는 말도 들었으나 이처럼 아름다울 줄은 생각도 못하였었다. 공주는 이제 십 팔세다.
왕은 위선 술을 내어 고려 왕께 권하고 또 양국 백관에게 준 후에 연을- 305 - 가지런히 하여 서울로 들어 와 양국 백관에게 준 후에 연을 가지런히 하여 서울로 들어 와 새로 수리한 임해전에 왕건의 숙소를 정하였다.
그날 하루을 편히 쉬게 하려고 모든 음률을 그치고 임해전 근방에 있는 민가에서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큰소리 내기를 금하고 각 절에 명 하여야 반에 종 치기를 금하였다.
왕건은 왕이 위해 보내는 미희(美姬)를 물리치고 신하들께 명하여 일체 계집을 가까이하기를 금하고 또 호위군(扈衛軍)을 명하여 민가에 출입 하기를 엄금하였다.
이튿날 토함산(吐含山)에 해 떠 오를 때에 장안 팔백 팔십 사에서는 일제 히 종을 울려 고려 왕의 천추 만세를 축원하는 재를 올렸다. 옛날 당나라 황제를 위하여 재올리던 것과 꼭 같은 예법으로 하였으나, 중들 은신이 나지 아니하여 다만 쇠만 올리고 입은 벌리지 아니하였다.
황룡사(皇龍寺) 담 뒤 느티나무는 경문대왕 때보다 더 늙었다. 서 편쪽으로 벌었던 가지는 지난 겨울 모진 바람에 부러지고 그때 모여 앉았던 노인들의 무릎에서 놀던 아이들이 이제는 귀 밑에 백발이 보이게 되었다.
『왕건이 왜 왔지?』
하고 백성들은 가지 부러진 느티나무 밑에서 근심스러운 얼굴을 물었다.
그들의 품에도 또 어린 아이들이 안겼었다.
『황룡사 탑이 기울어지고 느티나무가 말라 죽으면 나라가 망한대.』
하고 사람들은 황룡사에서 꽝꽝 울어 나오는 쇠북 소리를 들으며 기울어진구 층탑과 거의 다 말라 버린 나무를 바라보았다.
『이 느티나무가 탈해 임금(脫解王) 말 뫼시던 나무래.』
하는 노인들의 말에 젊은 사람들은 혀를 찼다.
『금년에 또 잎이 피어 볼까? 작년에도 한 가지 밖에는 아니 피었는데.』
하며 사람들은 근심스럽게 항상 나뭇 가지를 바라보았다. 반이나 너머 썩어진 몸뚱이, 모지랑비 같은 가지 끝, 거기도 다시 잎이 필까 싶지아니하였다.
『우리야 다 산 늙은이지마는 어린것들이 불쌍하지.』
하고 어떤 늙은이는 손에 매어 달린 손자를 굽어 보며 눈물을 떨어뜨렸다.
『오늘은 임해전에 큰 잔치가 있다는데 안 가 보려나?』
하고 젊은이 하나가 말 하면, 『 큰 잔키 무섭더라 —————포석정 큰 잔치나 아니 되려나?』
하고 한 젊은이가 대답하고 그러면 곁에 있던 노인이,- 306 - 『 쉬! 그런 소리 말아.』
하고 눈을 부릅떴다.
아침 동자하는 부녀들이 황룡사 앞 큰 우물에서 물을 길어 들고 올 때에는 이 추운 날 아랫도리 벗은 아이들이 종종 걸음으로 뒤로는 도랭이먹은 여윈 강아지가 꼬리를 등에 바짝 붙이고 따라 온다.
그렇게도 깨끗하던 집들이 모두 다 낡았다. 새로 단장한 처녀의 얼굴과 같던 보얀 분벽(粉壁)들이 군데 군데 떨어지고 황룡사 벽까지도 쓰러지고 무너지어 그 위로 쥐들이 뛰어 다녔다.
거지 떼들이 잿밥을 얻어 먹으려고 황룡사 문 앞으로 모여 든다. 군데군데 살이 보이는 누더기에는 묵은 지푸라기가 여기 저기 달렸다. 손에는 깨어진 열바가지와 뒤웅박을 들고 두 손을 배에 대고 허리를 꼬부렸다. 그때 묻은 얼굴에서는 보얗게 입김이 오른다. 그래도 어린 것들은 좋아라고 뛰고 늙은이들은 염불을 하는 자, 입을 우물우물하며 행여 무엇이 떨어졌는가 하고 길가를 돌아 본다.
해마다 추수 때가 되면 진헌의 군사가 들어 와 곡식을 모조리 베어가므로 농민들은 먹을 것을 잃고 떼거지로 돌아 다니는 것이다. 이 거지들은 무너진 담 밑과 빈 집에서 겨울을 난 사람들이다.
황룡사 문밖에는 이백명은 모인 것 같다. 서로 앞을 다투어 발을 벋디디고, 팔을 내어 밀었다. 중들이 큰 함지박에 김이 나는 밥을 들 고서서 주먹밥을 만들어 사람들 속에 던지면 꺼멓게 때묻은 수십의 손이 하얀 밥 덩어리 하나를 따라 공중에 들린다. 만일 밥덩어리가 땅에 떨어지면우하고 수십 명의 허리가 한꺼번에 구부러져, 『 아야, 아야.』 하고 부르짖는다.
한 덩어리를 집은 사람은 우선 두 볼이 불룩하도록 입에 들어 먹고 손가락마다 밥풀이 묻은 손을 또 내어 민다. 젊은 중들은 빈 함지박을 뒤집어 사람들에게 보이고 웃고 뛰어 들어간다.] 밥을 못 얻어 먹은 거지들은, 『 밥 주우, 밥 주우!』
하고 열 두 층 돌 층층대로 밀려 올라 갔다.
불그레한 해가 동대문 위에 높이 솟고 장안에는 보얀 엷은 안개가 덥 혔 다. 피란 가는 백성들이 그리운 듯이 연해 뒤를 돌아 보며 동대문으로나 간다.
그러나 길에는 임해전 잔치에 가는 고관 대작들의 비단 장막 늘인- 307 - 수레들이 소리를 내며 달렸다. 임해전 안에서는 벌써 북 소리가 둥둥 울려 나왔다.
임해전(臨海殿) 천 사람이 들어 앉는다는 큰 방에는 정면에 왕과 고려왕이 주객의 예를 따라 동서로 갈라 앉고 정전 뒤에 있는 전내에는 왕후와 태자비와 고려의 낙랑 공주를 중심으로 높은 부인들과 젊은 아름다운 딸들이 모였다.
낙랑 공주는 태자비 계영아기와 겨를 만큼 아름다왔다. 게다가 계영 아기보다 나이 어리고 아직 다 피지 못한 꽃봉오리 같아서 돌리어 더 아름다와 보였다. 공주가 아직 신라 궁정의 예법에 익숙지 못하고 또 말에 고구려 사투리가 있는 것이 도리어 귀여워 왕후는 사랑하는 딸과 같이 손을 잡고 등을 만지고 귀여워하고 다른 부인들과 아기들도 이 먼 곳에서 온 귀한 손님의 손을 한번이라도 만져 보고 말 한 마디라도 붙이어 그 억센고구려 사투리를 들어 보려 하였다.
낙랑 공주도 왕후의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기뻤다. 더구나 공주는 왕후의 어머니와 같은 인자함과 태자비의 형과 같은 정다움이 큰 감동을 주었다. 그러할수록 공주의 마음은 괴로왔다. 그것은 송도를 떠날 때에 아버지 왕건이, 『 너 신라 태자에게 시집 가려느냐?』 한 것을 생각한 때문이다.
낙랑 공주는 어젯밤을 내전에서 바로 왕후의 이웃 방에서 잤다. 왕후는 아들 하나 밖에 없고 딸이 없는 이이므로 공주를 딸같이 귀애하여 손수 자기 전에 자리를 만져 보고 아침에 일어날 때에도 궁녀를 보내어 먼저 문안하라 하고 아침 수라(임금에게 드리는 밥)는 한자리에 앉아 자시었다.
그런 뒤에 태자비는 자기 옷을 내어 손수 공주에게 입히고 머리 장식과 패물과 신라 일습을 다 손수 입히고 머리도 신라 궁중제로 쪽 찌게 하고 다시금 거울을 들여 다 보고 기뻐하였다.
아침 조회에 백관이 들어 오기 전에 왕과 왕후는 태자와 태자비와 함께 고려 왕과 낙랑 공주를 만나고 형제의 예로 서로 인사하였다. 왕 이 왕건보다 나이 위이므로 왕이 형이 되고 왕건이 아우가 되었다.
그 자리에서 왕은 왕건의 손을 잡고, 『 내 덕이 없어 나라에 환란이 끊이지 아니하여 진헌이 방자히 침노 하여 창생을 도탄에 넣으되 내 어찌하지 못하니 아픔이 어찌 그지 있으리오.』 하고 눈물을 흘렸다. 이것을 보고 곁에 있던 이들도 모두 눈물을 흘리고 왕건도 소매로 눈을 씻으며,- 308 - 『 폐하는 슬퍼 마옵소서. 내 있거니 진헌이 다시 어찌하오리까?』 하였다.
왕은 왕건의 이 말에 더욱 감격하여 한번 더 왕건의 손을 잡으며, 『 만사를 오직 대왕께 맡기노라.』
하였다.
그러나 태자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무슨 말을 하려고 왕을 바라보다가 머리를 흔들고 일어나 나가 버렸다.
왕은 태자의 행동이 혹 왕건을 노엽게 하지나 아니할까 하여, 『 태자는 때때로 행동이 상궤를 벗어날 때가 있어 그것이 근심이라.』 하고 자탄하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왕건은 태자의 뜻이 무엇 인지를 알았다. 왕은 듣던 바와 같이 호인이요, 태자는 듣던 바와 같이 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왕건이 낙랑 공주를 데리고 오기는 태자의 뜻을 낙랑 공주의 색으로 휘어 보려 함이었다.
『소제(小弟)가 아직 아들이 없고 오직 한 딸을 두니 잠시도 곁을 떠나지못하여.』
하고 웃으면서 낙랑 공주를 데리고 온 변명을 하였으나 기실은 낙랑 공주는 신라라는 나라를 낚을 미끼로 데리고 온 것이었다. 그러나 아침 조회에 태자의 눈이 낙랑 공주에게로 한번도 돌지 안할뿐더러 태자의 쌀쌀한 태도를 볼 때에 왕건은 잠깐 실망하였다. 그러나 그 실망은 오래 가지아니하였다.
그것은 태자가 북풍같이 대신에 왕이 낙랑 공주에게 뜻이 깊음을 깨달은 까닭이다. 진실로 곁에서 보기가 낯이 간지럽도록 왕은 낙랑 공주를 귀 애하 였다. 아저씨라는 것을 핑계로 공주의 손을 잡고 등을 만지었다.
왕건은 심상히 보고 있었으나 마음에는 의외의 효과가 난 것을 기뻐하였다.
왕건은 「불인 일병(不〇一兵)」이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지금까지 궁예나 진헌이 싸움을 일삼아 민심을 잃은 것을 생각하고 될 수만 있으면 싸울지 아니하고 삼국통일의 대공을 이룰 것을 꿈꾸었다. 궁예와 진 헌 뿐 아니라 신라도 병력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동일하러 하였기 때문에 비록 일시 통일의 공은 이루었다 하더라도 마침내 진헌은 백제의 유민을 거 느려 신라를 괴롭게 하였고 자기는 고구려의 유민을 거느려 금일의 패를 이룬것을 안다. 그러므로 만일 자기가 병력으로 신라와 후백제를 통일 한다하면, 반드시 백년이 지나지 못하여 혹은 시라를 빙자하고 혹은 백제를 빙자하고 일어날 자가 있음을 안다. 나라를 잃은 원한을 이백년 삼 백년으로- 309 - 가시지 아니함을 왕건은 알았다.
그러하기 때문에 왕건은 신라와 같이 쳔여 년이나 오랜 나라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직 건국한 수십년 밖에 못된 후백제까지라도 될 수만 있으면 「 불인 일병」하고 「수공 병장(垂拱平章)」하는 방법으로 통일하려 한 것이다.
그러함에는 가장 속한 길이 첫째로는 우선 인척의 관계를 맺는 것이요, 둘째로는 힘있는 사람을 자기 편으로 끌어 당기는 것이다. 선필( 善弼)을 상보( 尙父) 로 대우하는 것은 둘째 모책이요, 낙랑 공주를 신라로 데리고 온것은 둘째 모책이요, 낙랑 공주를 신라로 데리고 온 것은 첫 계책이다.
신라 왕이 이미 늙었으니 왕을 사위로 삼으려고는 왕건도 생각 지못하였고 태자를 사위로 삼아 후일을 가다리려 하였던 것이 아들 잡으려고 놓은 덫에 아비가 걸린 셈이 된 것이다. 왕건이 속으로 기뻐하는 것이 이 까닭 이었다.
이리하여 임해전 잔치에 임한 것이다.
왕은 항상 웃는 낯으로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는 낯으로 왕건과 이야기하고 군사들과도 이야기하였다.
『신라와 고려는 형제 국이라.』
하고 큰소리로 외치었다. 왕의 뜻을 받아 신하들은 왕건을 대할 때에 왕을 대하는 것과 같이 하였다. 그렇지 안하더라도 이때에 왕건의 눈에 들어 두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으리라 하여 여공 불급하게 왕건의 비위를 맞추려하였다. 왕건도 왕의 체면을 잃지 아니할 만한 정도에서 극히 공손하게 손님으로 주인 집 식구에 대하는 태도로 부드러운 말과 웃음으로 대하였다.
『이런 기쁜 날이 또 있으랴.』
하고 왕은 가끔 말을 내어 흥을 돋우었다.
『진실로 기쁜 날이로소이다.』
하고, 신하들은 왕의 말씀에 화답하였다.
남창 여창의 노래가 나오고 남무 여무의 춤이 나왔다. 반년을 두고 고르고 고르고 익히고 익힌 노래요 춤이요 장단이라, 그야말로 부절을 맞추는 것과 같이 똑똑 맞아 들고 부르는 소리, 춤추는 소매, 줄 타는 손가락 이 모두다 가락이 있고 법제가 있어 가슴에 다른 뜻을 품은 왕건조차 이 신선의 풍악에 가끔 정신을 이로는 듯이 망연한 빛을 보였다.
그러다가는 이래서는 안되겠다 하고 꿈에서 깨는 듯이 한번 몸을 움직이고는 빙그레 웃었다.
풍악이 점점 가경에 들어 가니 사람들은 모두 취한 듯 정신을 잃은- 310 - 듯 하였다.
그러나 왕의 눈에는 낙랑 공주의 모양이 아른거렸다. 그의 넓으레한 입은 맛나는 음식을 대한 입 모양으로 벌어져 닫힐 줄을 몰랐다. 오십이 넘고 육십이 가까와 머리에 센 터럭이 희끗거리는, 하늘 아래 제일 높은 왕으로서도 낙랑 공주의 색에 정신을 잃어 버린 것이다. 왕건은 이 것을 알아 기뻐하였고 유렴은 이것을 알아 슬퍼하였다. 태자는 실신한 사람 모양으로 혼자 중얼거리며 왔다 갔다하였다.
태자가 실신한 모양으로 중얼거리고 돌아 다녀도 아무도 그를 돌아 보는이가 없다. 다만 태자가 술 취한 듯이 비틀거리고 올 때에 사람들은 그 를위하여 길을 비킬 뿐이었다.
자치가 질탕하여 갈수록 태자는 점점 미친 사람과 같이 되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아무나 붙들고, 『 이 봐라, 오늘이 뉘 죽은 날인고?』 하였다.
『동궁마마 이 무슨 말씀이시니까? 오늘이 나라의 큰 잔치에 늘 죽은 날이 무슨 죽은 날이니이꼬?』
하고, 신하늘이 대답하면 태자는 울어 나오는 풍악 소리에 이윽히 귀를 기울이다가, 『 이 봐라, 어떤 사람이 죽었기로 저다지 통곡들을 하는고————흉한 소리를 하는고? 』 하였다.
『동궁마마 어이한 일이시니까? 풍악 소리를 통곡 소리로 들으시니 딱하여라.』
『내 딱함이 아니라 네가 딱함이로다. 통곡 소리를 풍악 소리로 듣는 네가 딱하지 아니하면 뉘 딱한고? 제 딱한 줄 모르는 딱한 무리들만, 장마 개천의 올챙이 떼와 같이 옥시글거리니 딱함도 딱한지고.』 하고 태자는 신하들을 비웃었다.
신하들은 태자의 태도와 말에 놀래어 서로 돌아 보며, 『 그 뉘 죽은고 하시니, 죽기는 뉘 죽으리 딱하시어라.』 하고 서로 수근거린다.
태자는 신하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들은 체 만 체 눈을 감고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이더니 잊어 버렸던 것을 생각 낸 듯이 고개를 번쩍 들고 손으로 무릎을 치며, 『 옳거니 옳거니 죽기는 죽었거니! 큰 것이 죽었거니, 모두 다 울어라- 311 - 죽을 때까지 울어라.』 하고 소리를 지르고는 신도 신지 아니하고 나가 버린다.
태자의 부르짖는 소리에 놀래어 왕이, 『 이 무슨 소린고?』
하고 물었다.
『동궁마마께옵서 어이한 일이신지?』
하고 좌우는 어떻게 이를 바를 모른다.
왕은 얼굴을 찡기며, 『 술이 과하였는듯하니, 동궁으로 돌아 가시라 하여라.』
하였다.
그러나 왕도 태자의 이상한 부르짖음을 들을 때에는 무슨 흉한 일이 생기 는가 싶어 마음이 괴로왔다. 왕도 태자의 심사를 모르는 바가 아니요, 또 자기가 신라의 왕으로서 왕건에게 대하여 하는 행동이 마땅하지 아니 한 줄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러나 왕은 이렇게 밖에 더할 도리가 없는 줄을안다. 그래서 태자를 철없는 젊음 사람이라고 돌려 보내려고 애쓰나, 그래도 어느 구석에 태자가 두려운 듯하고 불쌍한 듯한 생각도 났다.
왕건도 왕의 마음을 알아 아무쪼록 왕의 눈을 피하고 가만히 풍악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를 보였다.
왕은 뒷간에 가는 듯이 가만히 일어나 방에서 나와 종용한 방에서 태자를 불렀다. 태자는 여전히 실신한 사람 모양으로 왕의 앞에 읍하고 섰다.
왕은 좌우를 물리고 태자더러, 『 어찌하여 동궁은 불평한 빛이 있는가?』
하고 물었다.
태자는 물끄러미 왕을 보며, 『 도리어 용안에 길치 못한 그림자가 보이오니, 아마 나라에 상스럽지 못한 일이 아니한가 하나이다.』 하였다.
왕은 깜짝 놀래다가 그 빛을 가리고, 『 나의 괴로움은 동궁으로 말미암음이라.』
하였다.
태자는 웃으며, 『 자고로 성군은 자비로우시거니와, 또 성군은 만민을 위하여 슬퍼하시되 한낱 아들이나 한낱 이웃 나라 공주를 위하여 슬퍼하지 아니 하신다하였나이다.』 - 312 - 하고 풍악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 어허, 시끄러운 통곡 소리여……하기는 나라가 죽으려 하거니, 새 짐승인들 통곡하지 아니하랴, 울어라 울어라.』 하고 태자도 우후후후하고 소리를 내어 운다.
왕은 소매로 낯을 가리며, 『 물러나라, 물러나라.』
하고 손을 내어 두른다.
태자의 말은 언언 구구가 왕의 가슴을 찔렀다. 차마 태자의 말에 견디지못하여 물러나라고 손을 내어 두른 것이다.
『물러나라 하시면 신은 물러나리이다마는, 폐하의 마음이 물러나지아니하시니 괴로움은 면치 못하시리이다. 천년 사직을 등에 지시니 폐하의 약하신 등이 휘어 굽으시는가 하나이다. 아니 지시었더면 피차에 좋았을것을 국운과 가운이 모두 불길하여 폐하께서 높으신 자리에 오르시니, 완손으로 오랑캐를 불러 들이고 오른손으로 역적의 발에 매어 달리는 변 변치 못한 재주를 부리시게 되었나이다. 신이 듣사오니, 북한주 도독 왕륭의 아들이 이미 천하에 군림(君臨)하고 이전 신라 왕은 새 왕의 공주 의치 맛 자락에 싸여 헤어나지를 못한다 하나이다. 왕은 왕건의 손을 핥고 신하들은 왕건의 발을 핥을 새 어리석은 김 충이 홀로 아니하려 하오니, 신하들은 김 충을 미쳤다 하고, 폐하는 신더러 물러나라 하나이다. 폐하의 아들로 태어난 신도 전생의 죄 크려니와, 신을 아들로 두신 폐하도 금생의 죄 적지 아니하신가 하나이다. 나라가 망하거니 가슴을 치고 통곡함이 마땅하려든, 소리는 무슨 소리며 춤은 무슨 춤이니꼬?』 하고 태자는 꺼리는 바 없이 울며 웃으며 팔을 두르며 발을 굴으며 말하였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하고 왕은 견디지 못하여 벌떡 일어나 태자를 버리고 방에서 나가 버린다.
태자는 왕의 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 가엾은 늙은이!』
하고 고개를 숙여 버린다.
그러나 이 모양으로 잔치는 계속되었다. 밤 낮으로 한 달을 계속하였다.
왕은 태자가 잔치에 참례하기를 금하고 동궁예 가두어 버렸다. 유렴은병이 났다 칭하고 집에 드러나지 아니하였다. 그 밖에도 다소간 뼈가 굳은 이는 혹은 병탈로, 혹은 친환을 빙자하고 집에 숨기도 하고 시골로 내려가기도 하였다.
- 313 - 왕은 날이 갈수록 체면을 유지하지 못하였다. 왕건은 어느 때나 위의 를 잃지 아니할 때에 왕의 모양은 너무도 창피하였다. 처음에는 신하들의 마음에 부끄러움도 있었으나 마침내는 신하들의 마음은 왕건에게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왕건은 신라 조정의 대관들과 친히 알게 됨을 따라, 혹은 금 덩어리를, 혹은 은덩어리를, 혹은 값가는 보물을 선물로 주고, 단둘이 대할 때에는 마치 친구를 대한 것과 같이 겸손하고 친밀하게 하였다.
대관들은 다투어 왕건을 찾았다. 왕건은 악 발토 포( 握髮吐哺) 로그 사람들을 맞았다. 찾는 자가 뒤를 이었다. 처음에는 아무쪼록 남의 눈을 피하였으나 이십여 일 넘은 뒤에는 마음 놓고 왕건을 찾았고 도리어 그것을 자랑으로 알게 되었다.
대관들은 진헌의 손에 죽고 남은 사람들이라, 모두 경험도 없고 식견도 없고 꾀조차 없는 무리들이었다. 그 사람들이 영웅 왕건과 서로 대할 때 에손에 주물리고 손을 빼일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왕건은 많이 듣고 적게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대관들은 왕건을 자기의 손에 집어 넣을 수 있는 것같이 생각하였다.
왕건은 속으로 웃었다. 만사가 너무도 힘 안 들게 뜻과 같이 되는 것을 도리어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왕은 갈수록 더욱 낙랑 공주에게 장신을 빼았겼다. 더구나 왕건이 나라 떠난 지 오랜 것을 말하고 칠팔일이 지난 뒤부터 돌아 갈 것을 말 하기 때문에 왕의 마음은 더욱 초조하였다. 그러다가 하루하루 붙드는 것을 이십여 일을 붙들었으나, 왕건은 더 오래 머물지 못할 것을 말하고 돌아 갈 행장을 수습하게 되매, 왕의 마음은 더욱 초민하였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낙랑 공주를 만나기를 꾀하였다. 차마 어찌하지는 못하고 오직 하루 이틀 오래 머물게 할 생각만 하였다.
그러나 왕건이 서울에 온 지가 벌써 한 달이 가깝고 또 왕건이 하려던 또 왕건이 하려던 일도 다히였다. 하려면 일이란 별것이 아니요, 첫째 신라의 힘을 알고, 둘째 신라 조정의 대관들의 마음을 사고, 세째 신라 왕이나 태자의 마음을 사로 잡는 것이었다. 이 일은 한 달 동안에 다 되어 버렸다.
처음 왕건이 서울에 온다는 말을 들을 때에는 왕이나 조정 제신은 반드시 왕건이 무슨 어려운 문제를 끌어 내려니 하여 그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왕건은 일갓집에 온 손님처럼 또 구 한 우객처럼 그저 유쾌하게 놀고 온 정답게 이야기할 뿐이요, 국사에 대하여서는 아무러한 말도 하지아니하였다. 그는 마치 천하사에 대하여서는 야심이 없는 것 같았다.
- 314 - 이 것을 보고 더러는 왕건이 음흉한 것이라고 하였으나 왕을 머리로 하여 대관들은 왕건의 덕과 성의를 믿어 버리고 말았다. 낙랑 공주는 아주 왕과 왕후에게 맡겨 버리고 일체 찾지도 아니하였다. 공주는 항상 왕후와 같이 있었고 그 때문에 왕은 전에 없이 왕후궁예 자주 출입하였다.
왕은 태자가 낙랑 공주에게 가까이하기를 엄금하였다. 왕자는 여전히 실신한 사람으로 대궐안에서 이라 저리로 거닐고 가끔 노래도 부르고울 기도 하였다. 어떤 날에는 밤이 깊도록 어원(御苑) 속으로 거니는 모양을 보았다.
하루는 초어스름에 태자가 월정교(月精橋) 위로 거닐다가 역시 궁녀의 옹위를 받아 월정교로 오던 낙랑 공주를 만났다. 태자는 돌로 연 꽃을 아로새긴 난간에 기대어 외면하였다.
궁녀들은 그것이 태자인 줄을 알고 합창하고 허리를 굽히며, 『 동궁 마마!』
하고 불렀다. 낙랑 공주도 합창하고, 『 동궁 마마, 누이를 몰라 보시나이까?』
하고 고개를 숙였다. 궐내에서는 왕과 왕건이 형제지의를 맺었으므로 이렇게 촌수를 찾은 것이다.
태자는 하릴없는 듯이 고개를 돌려 낙랑 공주에게 답례하고, 『 낙랑 공주시니까? 부왕이 근일에 새로 총첩(寵妾)을 들이셨다 하기 로나는 그 사람으로 알고.』 하였다.
낙랑 공주는 태자의 말 뜻을 알아 듣는다. 태자는 자기를 대할 때마다 공주는 괴로왔다. 그것은 공주의 눈에 태자가 말할 수 없이 불쌍함을 깨다고 또 알 수 없는 힘이 자기의 마음을 태자에게로 끌어 붙이는 것을 깨달은 때문이다. 그것은 다만 오라비 없이 자라난 처녀의 외로움뿐만 아니었다.
낙랑 공주는 태자가 있는 서울을 떠나 고려로 돌아 갈 생각이 슬펐다.
왕이 자기를 귀애할수록 왕에게 대하여서는 점점 반감이 생기고 태자가 자기를 배척할수록 태자에게 대하여서는 더욱 애착하는 생각이 났다.
그래서 비록 잠시라도 태자의 낯을 대하기로 원하였고 태자의 낯을 대 할 때마다 잠시라도 더 오래 같이 하기를 원하였다.
공주는 태자의 곁으로 한걸음 가까이 가며, 『 동궁 마마, 사흘을 지나면 고려로 돌아 간다 하나이다.』
하고, 왕건에게서 들은 말을 태자에게 전하였다.
- 315 - 태자는 한걸음 공주에게서 비켜 서며, 『 사흘 후에 가신다?』
하고 놀래는 빛을 보였다.
『아이 사흘 후에! 사흘 후에는 북방 나라 고려로……아직 버들 눈도 안 트는 고려로…….』
하고 공주는 슬픈 듯이 한숨을 쉬었다.
『오늘 밤에 떠나시더면 좋을 것을————사흘 안에 또 무슨 흉한 일이 생길줄 알고————사흘은 멀어라, 사흘은 멀어라.』 하고 몸을 돌려 두어 걸음 가다가 태자는 다시 돌아 보며, 『 공주여 아비를 섬길지어다. 어는 아비나 아비를 섬길지어라.』 하고 유심히 공주를 바라보며, 『 공주 후생에라도 망국하는 왕의 아들로 태어나지 말 것이, 천하에 욕심 둔 왕의 딸로도 태어나지 말 것이————나를 형이라 부르시니 부디 이 부탁 잊지 말 것이.』 하고 또 몸을 돌려 다리 저편으로 건너 가려 한다.
태자가 다리를 거의 다 건너 간 것을 보고 공주는 참다 못하여 서너 걸음 태자의 뒤를 따라 가며, 『 동궁 마마, 동궁마마!』 하고 불렀다. 공주는 가슴에는 타오르는 정열을 누를 수 없는 듯이 숨이 찼다. 월정교 밑 깊은 물에는 별 빛이 비치이고 임해궁예선 벌써 밤 잔치의 풍악 소리가 울어 왔다.
태자는 공주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체하고 어원을 향하고 걸어갔다. 태자의 움직이는 그림자가 어둠 속에 어른거리는 것이 보인다.
공주는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몇 걸음을 나가며, 『 동궁 마마! 동궁마마!』
하고 한번 더 불렀다.
공주를 모시던 궁녀들은 다리에 서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엾으시어라!』
하고 한 궁녀가 말하면 다른 궁녀가, 『 뉘 가엾으신고.』
한다.
『동궁마마 가없으시어라.』
『어이하여 가엾으신고?』
『그처럼 총명하시고 인자하시더니 근래에 정신이 없으신 듯하니.』
- 316 - 또 한 궁녀가, 『 공주도 가엾으시어라. 동궁마마와 짝이 되실건댄.』
『그러하건마는.』
이러한 말을 하고 있다. 입 밖에 내서는 말하지 아니하더라도 꽃 같은 공주가 왕의 손에 꺾이는 것이 아까운 듯이 생각하였다.
태자는 공주가 부르는 소리에 우뚝 섰다.
공주는 빠른 걸음으로 태자의 곁으로 가서, 『 한 말씀만…… 』 하고 말이 막혔다.
『무슨 말씀이니꼬……내 길이 바쁘니.』
하고 태자도 고개 숙인 공주를 굽어 보았다.
『바쁘시다 하시니 이 밤에 어디로 가시나이꼬?』
하고 공주는 고개를 들었다.
『귀신을 만나러 가는 길.』
하고 태자는 남산을 가리키었다.
『누구를 만나시려?』
하고 공주는 놀랐다.
『귀신을! 죽은 사람들의 혼백을.』
공주는 태자의 말씀이 무서운 듯이 입을 벌리고 말이 없었다.
태자는 웃으며, 『 귀신이 산 사람보다는 사귀기 좋으니————귀신은 믿을 수도 있나니 ———— 그 중에도 목 잘려 죽은 귀신이 가장 의리 있고 절개도 높으니 ———— 충신· 열사를 귀신이 아니고 어디서 찾아 보리————열녀는 귀신 아니고 어디서 찾아 보리? 귀신도 아니면 내 누구더러 말을 하리? 남산에는 귀신이 많아 밤이면 모여 서울을 바라보고 통곡하나니, 나도 그 자리에 참례 하러 가는 길이 바쁘거니와.』 하고, 정신 없는 사람이 혼자 중얼거리는 모양으로 말하다가 문뜩 공주가 앞에 있는 것을 깨달은 듯이, 『 아 ———— 낙랑 공주시오? 고려의 누이시오? 나를 불러 무슨 말씀이니꼬?』 하였다. 그 말소리는 심히 은근하였다.
공주는 소매를 들어 눈물을 씻었다.
『눈물을 흘리시나뇨?』
공주는 느끼며, 『 자연 비감하여지어!』
- 317 - 하고 태자를 우러러 보았다.
태자도 비창하게 고개를 숙이며, 『 고려에는 아직도 눈물이 남았던가? 우리 신라는 너무 오랜 나라라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마른 지 오래여라……가끔 눈물을 흘리는 이있더라도 그 눈물은 맹물이요, 짠 맛이 없어라……그러나 무슨 말씀 이 신고?』 하였다.
임해궁 풍악 소리가 은은히 울려 오고 어느 절에서 저녁 재를 울리는지우 렁찬 쇠북 소리 들려 온다.
공주는 태자가 비록 이렇게 횡설 수설하더라도 그 말에는 다 깊은 뜻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태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더욱 깊어지고 또 자기도 태자와 같이 슬픔을 나누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였다.
공주는 손을 들어 태자의 소매를 조금 잡으며, 『 동궁 마마! 이몸이 불원 천리하고 온 것이 무슨 일인 줄을아 시나이 꼬?』 하고 물었다.
『아는 듯도 하고 모르는 듯도 하여이다.』
『그러면 무슨 일로?』
하고 공주는 태자의 소매를 약간 끌었다.
『아마 황룡사 기울어진 탑을 보려고, 그럴지 아니하면 남산에서 우는 귀 신의 소리를 들으려고, 또 그도 아니면 공연이 하품을 보려고 ———— 요사이는 고양이도 잡아 먹을 쥐 없으므로 하품을 먹고 사 나니 하품이 피 없으매, 고양이 입은 언제 보아도 희더이다.』 한다.
공주는 한숨을 쉬며, 『 그것도 아니나이다.』
태자는 한손을 들어 다리를 치며, 『 옳거니 알았도다. 공주 오신 것은 궁 우물의 늙은 구렁이를 낚으러 오신 것이어니, 옛날 당나라 사람이 부소(扶蘇) 서울에 백마를 미끼 하여 용을 낚았다거든 그러나 용은 낚었어도 백마는 잃었다거든, 신라 늙은 용을낚는 미끼로 공주는 너무도 아름다운 미끼가 아닐까? 내 바로 알지아니하였는가?』 하고 고개를 들어 바라보며 웃는다.
태자의 말은 마디마디 공주의 마음을 찔렸다. 전신에 소름이 끼치고 등에- 318 - 찬 물을 내려 붓는 듯하였다.
『그것도 아니로소이다.』
하고 공주는 더욱 고개를 숙였다.
『그것도 아니라?』
하고, 의아한 듯이 태자는 공주를 보았다. 푹 수그린 공주의 태도는 바람만 잠깐 불어 와도 금시에 땅에 쓰러질 듯이 연연하여 보였다.
『그덧도 아니라 하면, 그 무엇일까? 어허———— 미친 사람의 정신이 희리 바람처럼 돌아 감이여,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는구나.』 하고 문득 남산을 바라본다. 남산에서는 사람의 불인가 귀신의 불인가 파란 불이 반짝반짝하고 어원에서는 잠자다가 무엇에 놀란 새가 지저귄다.
궐내에 야순(夜巡) 돌던 군사들이 등불을 들고 오다가 태자와 공주가 섰는것을 보고 도로 뒤로 물러간다. 공주는 잠깐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태자의 곁으로 오며, 『 이몸이 불원 천리하고 온 연유를 모르시거든 이 몸이 말씀하리이다.』 하고, 말하려는 하는 것을 태자가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 내 길이 바쁘니 짧은 말이어든 하시되 긴 말이어든 후생에 만나서하 사이다.』 하고 갈 뜻을 보인다.
공주는 황황히 태자의 소매를 따라 잡으며, 『 소매를 잡기로 이몸을 허물하시거든 허물하소서. 짧은 말로 오직 한마디 말로 아뢰나이다.』 한다. 태자는 하릴없이 공주에게 소매를 븥들려 우뚝선다.
공주는 죽어도 안 놓치려는 듯이 두 손으로 태자의 소매를 잡으며, 『 이몸이 오옵기는, 이몸이 오옵기는.』
하고 차마 말을 못하여 맥맥할 때에 어디서, 『 동궁 마마를 따라! 동궁마마를 따라!』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다리 위에 섰던 궁녀들의 소린인지 공중에서나 는 소리인지 모르거니와 공주는, 『 오, 그 누구뇨? 그 누구뇨? 이몸이 하려고 생각하는 말을 한 이는 그 누구 뇨? 그러하나이다. 이몸이 오옵기는 동궁마마 따라 동궁마마 따라 길이 천리 아니라, 만리라도 양길의 딸 난영이 궁예왕을 따르듯이 동궁 마마 따라.』 하고, 두 손을 태자의 어깨에 걸고 매어 달린다.
이때에 궁녀 하나가 태자와 공주 있는 곁으로 뛰어왔다. 공주는- 319 - 태자에게서 물러났다.
궁녀는 황 망하게, 『 동궁 마마! 상감마마 행차시니이다.』
공주는 놀랐으나 태자는 태연히, 『 네 그릇 보았도다. 임해궁 잔치에 가신 상감마마께오서 아직 초 어스름 이어든 오실 리가 있으랴. 네 다시 보라.』 궁녀는 당황하게 다리 저편에 오는 등불을 가리킨다. 거기는 과연 초롱한 쌍이 앞을 인도하고 불빛에 보이는 이는 용포에 금관을 쓰고 흰 수염을 늘인 왕이 분명하다. 궁녀는, 『 분명히 상감마마 아니시이까?』 하였다.
태자는 가리킨 곳을 바라보며, 『 아니다. 남산에서 나를 기다리던 귀신들이 나를 찾아 오모이로다.
그렇지 아니하면 지하에 계신 선왕의 혼령이 내게 하실 말이 있어서 발동 함이로다.』
그 등불이 다리에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 태자는 웃으며, 『 오, 아니로다 아니로다 상감마마의 혼령이시로구나.』 『아이 어인 말씀이신고? 살아 계신 상감마마시니 혼령이 다니시료?』
하고 궁녀가 태자를 본다.
태자는 여전히 웃으며, 『 아니로다, 아니로다. 상감마마의 영혼이 아니시면 상감 마마의 몸이로구나. 근래에 상감마마는 마음이 미치신 곳이 계시어 혼과 몸이 떨어져 다니신다 하더니, 그 말이 허사 아니로구나. 임해전에 몸을 두 시 고혼이 여기 오시였거나 임해전에 몸을 두시고 혼이 여기 오시었거나 임해 전에 혼을 두시고 몸이 여기 오심이로다. 아무러나 괴이한 일이로다.
네 가서 혼이시어든 날지 말게 하고, 몸이시어든 쓰러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여라. 괴이한 일이로다.』
하고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궁녀는 태자의 앞을 막아 서서 불빛이 태자에게 비치지 않도록 하면서, 『 동궁 마마, 잠깐 피하옵소서. 동궁마마 공주마마와 같이 계심을 보시오면 이 일을 어찌하리————아아, 이 일을 어찌하리, 동궁 마마, 동궁 마마.』 하고 궁녀는 발을 동동 구른다.
이때에 왕은 다리에 다다라 낙랑 공주 모시던 궁년가 다리 위에 선 것을- 320 - 보고, 『 낙랑 공주 어디 계시뇨?』 하고 사방을 둘러 보았다.
궁녀들은 대답할 바를 몰라 두리 번 두리 번하다가, 『 낙랑 공주마마는 잠깐 저편에.』
하고는 말이 막혔다.
왕은 낯빛이 변하며, 『 잠시도 공주를 떠나지 말라 하였거든.』
하고 엉성을 높이어, 『 동궁은 어디 계시뇨?』
하였다.
궁녀는 일부러 먼 곳을 바라보며, 『 동궁 마마는 아까 저 남산으로———상원(上苑)으로 돌어가셨 사오니…….』
하고는 또 말이 막혔다.
왕은 더 말하지 아니하고 다리로 건너 간다.
이때에 태자는 궁녀가 원하는 대로 몸을 피하여 길가 늙은 행나무 뒤에 몸을 숨긴다. 태자는 마무에 머리를 기대고 멀리 하늘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숙인다.
왕이 오시는 것을 보고 공주는 읍하여 왕을 맞으며, 『 상감 마마 임해전 잔치는 벌써 파하였나이꼬?』
하고 묻는다.
왕은 손을 들어 공주의 어깨에 얹고 웃는 낯으로, 『 잔치는 지금 시작이어니와, 잠시 공주를 대하고 싶어 왔노라. 공주는 어이하여 오늘 잔치에 참례하지 아니하였던고? 어이하여 아직 밤 바람이 차거든 이곳에 오래 머무는고?』 하고, 더욱 공주의 곁으로 가까이 가 공주의 등을 만지며 등불 든 시신과 궁녀들을 보고, 『 잠깐 자리 저편으로 물러가라.』 하고 좌우를 물려 버렸다.
왕의 명대로 모시던 사람들은 다 이편으로 물러 왔다. 다 무슨 큰일이 있을 것을 겁내는 듯이 말은 못하고 서로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다 물러간 것을 보고 왕은 공주의 허리를 안으며, 『 공주는 모레 떠나가려 하나뇨?』
- 321 - 하고 은근히 물었다.
『부왕께서 가자 하시면.』
하고 공주는 읍하고 대답하였다.
왕은 손을 들어 공주의 머리를 쓸며, 『 갈 줄이 있으랴. 가지 말지어다. 신라에 있으라.
와 같이 신라에 있으라. 신라에 있을진댄, 무엇은 공주의 것이 아니랴?
왕관까지도 공주의 것일 것을———가지 말라. 공주 가면 나는 어찌하리오.
그래도 가려는가? 가지말라. 부왕이 가자 하시어도 아니 간다 하라. 그래도 가려는가? 아니 간다 하라. 지금 대답하라. 임해전 갈 길이 바쁘니 지금 대답하라.』 하고, 왕은 손으로 공주의 머리를 쓸었다.
공주는 왕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더니, 몸을 돌려 왕의 손에서 빠져나가며, 『 있으라 하시니 황감하여이다.』
하고 냉랭하게 대답하였다.
왕은 다시 손을 내밀어 공주의 어깨를 잡으며, 『 그러면 아니 가는가? 그러면 나와 같이 신라에 있으려 하는가?』 하고 기뻐하였다.
공주는 다시 왕의 손에서 빠져 나가며, 『 가고 아니 가기는 동궁마마의 뜻에.』
하였다.
왕은 깜짝 놀라 몸을 흠칫하였다. 그리고는 이윽히 공주를 바라보더니다시 웃으며, 『 공주는 몰랐도다. 동궁은 미친 사람이다. 미친 사람이 무슨 말을 하랴.
겉으로 보면 번뜻하거니와, 벌써 미친 지 오랜 사람이라. 비록 태자를 봉하 였거니와, 공주 만일 아들을 낳으면 태자로 봉할 것이라…… 태자의 말에 속지 말라. 태자는 미친 사람이라. 공주는 언제 태자를 보았나뇨?
태자는 미친 사람이니 만나지 말라. 해를 받을까 두려워하라.』
하였다.
공주는 노염을 발하는 듯이 왕께 외면하고 돌아 서며, 『 상감 마마 다시 생각하시옵소서. 아들을 헐어 말씀하시는 아버지를 믿기 어려워라. 동궁마마 미쳤다 하니 그 어느 미치신고?』 하였다.
왕은 공주의 손을 잡아 끌며,- 322 - 『 동궁 미친 줄을 천하가 다 아나니, 벌써 미친 지 오래거든.』
[상기 저작물은 저작권의 소멸 등을 이유로 저작권 보호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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