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篇[상편]
허 두 『 허, 오늘도 비가 아니 올 모양인걸.』
신라 서울 황룡사(皇龍寺) 절 담 모퉁이 홰나무 그늘에는 노인 사 오인 이모여 앉았다. 그중에 한 노인이 까만 안개 속으로 보이는 빨간 해를 보며 이렇게 한탄한 것이다.
『비가 무슨 비야.』
하고 다른 노인 하나가 무릎에서 기어 내리려는 발가숭이 어린 아이를 끌어 올리면서, 『 칠월 칠석도 그대로 넘겼는데 비가 무슨 비야.』
『글쎄 말이야.』
하고 커단 새털 부채를 든 노인은 긴 수염을 내려 쓸고 휘 한숨을 쉬며, 『 초저녁에 빗방울이 똑똑 떨어지더니 그만 소식이 없고 말았어.』
『이대로 사흘만 더 가면 문내(門川)물도 마르겠다던걸.』
『문내 물이야 설마 마르겠냐마는 대궐 안일 정교( 日精橋)· 월 정교( 月精橋) 밑에는 벌써 물이 말랐다던걸.』
『안압지(雁鴨池)에도 물이 말라서 자라·거북이가 다 달아나서 요새는 우물 물을 길어 댄다는데 우물 물도 거의 말랐대여.』
『대궐 큰 우물에서 용이 올라 가 버렸다니까 물도 마를테지…… 아무 려나 큰 재변이야.』
그중에 머리카락이 눈같이 희고 너무 늙어서 허리와 등이 꼬부장한 노인 하나가 길단 눈썹 밑으로 까만 눈을 반짝반짝하면서, 『 내가 근 백년을 살았지마는 근년처럼 이렇게 재변이 많은 것은 처음 보았어. 아아, 어서 죽어서 좋지 않은 모양은 압 보아야 할 터인데.』 하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고 황룡사 법당 있는 편을 향 하여 합장 배례를 한다.
『참 영감 말씀이 옳으시오. 내가 알기에도 금상(今上)때 처럼 재변 많은것은 처음 보았어. 글쎄 이렇게 가문적이 있었나………허, 흉한 일이어.』 하는 것은 새털 부채를 들고 파리를 날리는 점잖은 노인이다.
『아이들 말이 북문 밖 대숲에서는 지금도 밤에 바람만 불면 귀 기리 죽으리 귀기리죽으리 하고 응용하는 소리가 난다던걸.』
하고 이번에는 어린애 안은 노인이 무서운 듯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하는- 1 - 말이다.
『쉬———』
하고 맨 처음에 말하던 자주 옷 입은 노인이 손을 내어 부르며 말소리를 낮추어, 『 그것은 작년 오월 근종(近宗)의 난이 있은 후————말하자면, 종로에서 근 종과 그 삼족을 오차를 해 죽인 때부터 나는 소리어, 근종이가 죽으 면서이를 아드득 아드득 갈고 하는 말이, 저 당나귀가 나라를 망한다. 내 가죽어 혼이 되어서라도 저 당나귀를 찢어 죽이고야 말리라 ———— 이러지 않았나.』 하고 자주 옷 입은 노인은 누가 엿듣지나 어니하나 하는 듯이 시방을 둘러보더니, 안심한 듯이 어성을 좀 높이어, 『 허기야 근종의 말이 옳지 아니한가. 금상이 즉위하신 뒤로 나라이 하루나 편안할 날이 있었다. 십 오년 동안에 역적 난리가 세 번이나 나고 해마다 흉년이 들어 병이 돌아 살벌이 떠……본디야 여간하시었나.
국선(國仙)으로 계실 적에야 풍채 좋고 글 잘하고 여간했으면 헌 안대왕께서 임해 전( 臨海殿)에서 한번 보시고 당장에 부마를 삼으시고 그리고는 곧 태자를 봉하시었겠나. 하지만 사람은 알 수 없는 일이어, 그렇게 총명하고인 방 있던 이가 어찌하면 즉위해서 삼년이 못되어서 그만 그렇게 되고말까. 허기야 김 이손(金伊飡) 때문이지마는 다 국운이 불길해 그리하여.』 『다 국운이지.』
하고 새털 부채 든 노인은 부채를 재우 흔들며, 『 그게 다 둘째마마 탓이어, 그 어른이 돌아 가시자 뒷대궐아기를 죽여, 또 금상께 독약을 드리고 예방을 하여서 이상한 병환이 나게 하여서 저렇게 귀가 길게 되시고 총명이 흐리시지 않았나 ——— 내가 다 아는 일인 걸.』 하고 자랑 삼아 말을 한다.
이때에 어디서 급히 달려 오는 말 발굽 소리가 나더니 붉은 옷 입은 이, 푸른 옷 입은 이가 말을 달려 황룡사로 들어 간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없어질 때를 기다려서 새털 부채 든 노인은, 『 대궐에서 나오는데 아마 상감마마께서 위중하신가 보군. 국사( 國師) 를 부르시는 모양인데.』 하고 이 말에 꼬부라진 노인은 또 합장을 하고 나무아미타불을 부른다.
여러 노인의 눈앞에는 풍채는 좋으나 두귀가 흉헙게 길게 솟은 금상의 거동 하시는 모양이 눈에 띈다. 이윽고 금빛이 번쩍번쩍하는 찬란한 가사를 등에 건 국사(國師)가 까만 칠하고 장식에 금으로 아로새긴 가마를 타고- 2 - 대궐에서 나온 두 벼슬아치의 옹위를 받아 황룡사 문을 나와 대궐로 들어간다. 노인들과 길가에 있던 백성들은 모두 합장하고 허리를 굽히고 국사의 가마가 다 지나갈 때까지 눈을 치어 들지 못한다.
대궐 안에는 상대등(上大等)·시중(侍中)·이손(伊飡)이하 만조 백관이 반 렬 찾아 모이어 말없이 대내에서 나오는 소식을 기다리고, 금상 마마 침전에는 큰마마·버금마마 두 분과 왕자 세 분, 공주 한 분, 황룡사 중들, 시위들이 상감마마의 앓아 누우신 자리 가으로 둘러 서서 용안( 龍顔)에 점점 깊어 가는 검은 기운을 보고 혹은 눈물을 씻고, 혹은 고개를 돌린다.
아직도 스물 아홉 밖에는 아니 되시었건마는 오랜 병과 근심으로 용안은 뼈만 남게 수척하시고 이상한 병으로 한 뼘이나 넘게 솟은 두 귀가 베개 위에 힘없이 놓여 있다.
상감마마는 어젯밤에 근종(近宗)이 피묻은 칼을 들고 들어 와서 두 귀를버히는 꿈을 꾸시고 놀라신 때부터 병세가 갑자기 위중하게 되었다.
새벽에는 대궐 뒷마당에서 고구려 군사와의 백제 군사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하여 더욱 성상의 환후를 근심하게 되었다.
무열왕(武烈王)·문무왕(文武王) 때부터 대궐 뒷마당에서 백제 군사, 고구려 군사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면 반드시 국상이 난다고 하기 때문이다. 헌안대왕께서 승하하실 때에도 백제 충신 계백(階伯)이가 칼을 들고 침전에 들어오는 꿈을 꾸시었다고 한다. 이렇게 백제와 고구려 의원 통한 흔들은 백년 이백년이 되도록 스러질 줄을 모르고 기회만 있으면 신라를 괴롭게 한다.
이윽고 황룡사의 늙은 국사가 들어 왔다. 두 분 마마는 국사 앞에 합창을 하고 열 네 살, 열 세 살, 열 살의 세 왕자와 일곱 살 된 만 공주( 蔓公主) 도두 분 마마 모양으로 국사를 향하여 합창하였다. 눈물 머금은 여러 눈은 모두 국사에게로 몰렸다. 국사는 떠나 가려는 상감마마의 목숨을 불러 들이려면 들일 수 있는 힘을 가진 것 같이 사람들은 믿었다. 국사는 들어오는 길로 연해 합장 하여, 『 나무아미타불.』 을 불렀다. 열 번이나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나서는 방안에 있는 사 특 한 귀신을 다 몰아 내는 모양으로 장삼 소매를 두르며 방안으로 일곱 바퀴를 돌고 나서 옥체 가까이 앉았다. 상감마마는 무엇에 놀라시는 듯이 잠깐 눈을 뜨시더니 다시 감으시고 몸을 한번 떨었다. 두 분 마마께서는 놀라서 상감의 곁으로 오시었다. 상감마마께서는 다시 한번 눈을 뜨시어, 『 버금 마마.』 - 3 - 하고 한 마디를 부르시었다. 버금마마를 큰 마마보다 더 사랑하시고 잊지못하 심이다. 큰마마께서는 잠깐 얼굴을 찡기시었다.
『태자.』
하고 열 네 살 되신 왕자를 가리키시었다. 태자는 뛰어와 부왕폐하 옆에 앉아 울었다.
상감께서는 국사를 돌아 보시고 두 분 마마를 돌아 보시고 세 분 왕자와만 공주를 이윽히 보시고 가만히 눈을 감으시었다.
그리하고는 다시 뜨지 못하시었다.
국 상 칠월 초여드렛날 오시나 지나서 천아상 아뢰이는 소라 소리가 서 울 장안에 울렸다.
『뚜뚜우 뚜우.』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무엇이 타는 듯한 누린 냄새를 머금은 까만 안개가 천지에 자욱하여 바로 반월성 대궐 위에 비치인 해는 피에 찍어 낸듯이 빨갛다. 바람 한 점 없고 장안 이십만호의 지붕 기왓장에서는 금시에 파란 불길이 팔팔 일어날 것 같다.
『다 죽었네, 다 죽었어.』
『물 마른 웅덩이에 오글오글하고 올팽이 떼 모양으로 다 익어 죽고, 말라 죽네.』
하고 백성들은 옷 소매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으며 한탄들을 하였다.
황룡사 담 모퉁이의 홰나무 그늘에는 노인들이 더 많이 모 여서 수군수군 한다. 할아버지 무릎에서 기어 내리던 어린 아이는 잠이 들고 꼬부라진 영감은 무슨 불길한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합창하고 나무아미타불을 부른다. 흰 새털 부채를 든 노인은 여전히 옛날 일, 지금 일을 끌어 내 어나 라가 망할 날이 가까운 것을 예언한다. 이 노인들뿐 아니라, 요새에는 백성들이 모여만 앉으면 입만 벙끗하면 모두 불길한 소리뿐이었다.
『나라이 망한다.』
『세상이 뒤집힌다.』
『끝날이 온다.』
『인제 사람이 파리 죽듯 죽는다.』
모두 이런 불길한 소리뿐이다. 손자를 무릎 위에 안은 할아버지도, 『 웬 걸 이것들이 자라나서 낙을 보겠노. 세상이 몇 날 안 남은 것을.』
- 4 - 하였고 장가 드는 신랑이나 시집 가는 신부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도 노인들은 휘하고 한숨을 지었다.
봄에 커다란 살별이 스무 날이나 두고 대궐 위에 비친 것이나, 지동이 세 버너이나 난 것이나, 금상께서 새로 지어 재작년에 낙성한 황룡사 구 층탑 추녀 끝에 세 발이나 되는 구렁이가 매달려 죽었다는 것이나, 대궐 안에 밤이면 근종의 원혼이 울고 돌아 다닌다는 것이나, 북문 밖 대숲에서 「 귀 기리 죽으리 귀기리죽으리」하고 흉한 소리를 한다는 것 이 너, 대궐 우물에에 용이 올라 가 버리고 일정교·월정교 밑에 물이 마르고 문 내 물빛이 핏빛이 되었다는 것이나 어느 것 하나도 불길치 아니한 것이 없었다.
『세상이 몇 날 없어.』
백성들은 이렇게 가엾은 한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뚜뚜우 뚜우.』
하고 천아상 소리가 길게 느리게 슬프게 장안에 울어날 때에는 더구나 금시에 세상 끝이 온 것 같았다. 이 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은 하던 일도 그치고 하던 말도 그치고 숨쉬기조차 그치고 길 가던 사람들은 우뚝 서고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바깥으로 뛰어 나왔다.
『뚜뚜우 뚜우.』
더욱 길게 더욱 가늘게 끌다가 소리가 사라질 때에 백성들은 대궐 위에 덮인 까만 안개 낀 하늘을 바라보았다 ————— 마치 슬픔에 찬 나라와 백성들을 뒤에 두고 하늘로 올라 가는 젊은 임금의 혼령을 바라보기나하려는 듯이 ————— 그러나 누린내 나는 까만 안개뿐이요, 푸른 하늘도 흰구름도 보이지를 아니하였다.
이윽고 장안 팔백 여든 절이라는 수많은 절에서 슬픈 쇠북 소리가 웅웅울어 나온다. 길게 느리게, 길게 느리게 웅웅 울어난다. 천년 장안의 백만백 성의 가슴 속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설움이 부그르 끓어 올랐다.
노인들은 눈물을 씻고 나무아미타불을 수없이 불렀다. 깊고 깊은 대궐 속에서도 울음 소리가 울어난다. 공중에 나는 까막까치들도 소리를 그치고 슬퍼하는 듯하였다.
젊은 임금님이 오래 앓으시다가 돌아 가시었다는 것만 해도 슬픈 일이다.
백성들은 국상 났다는 소문을 듣고는 소복을 입고 대궐 문 앞으로 몰려들어 눈물을 흘리고 소리를 높여서 망곡하는 이가 그치지 아니하였다.
『그 어른이 잘못인가 모두 간신놈들일래.』
하는 이도 있고,- 5 - 『 버금 마마 때문에.』
하는 이도 잇고 나라 일을 그르친 것은 대행마마의 허물이 아니라고, 대행 마마는 어디까지든지 총명하시고 인자하신 이라고 이렇게 백성들 간에는 말이 돌았다. 평소에 다소간 원망하던 일까지도 그런 말은 입적도 아니하고 오직 승하하신 상감님을 위하여 슬퍼하는 것이 옳은 줄 로만 여기었다. 어른들은 깃것과 베옷을 입고 아이들도 쌍상투에 흰 댕기를 늘였다. 한 고을 또 한 고을 국상 난 기별이 펴지는 대로 소복과 흰 댕기와 울음이 퍼지었다. 천년 동안 임금을 높이고 사모하던 정은 아직도 가시지를 아니하였다. 이때 서울서 동쪽으로 백리나 가다가 개목이라는 포구에서 한 삼 리나 북으로 치우친 활터라는 동네 앞 모래판에서는 열 너덧 살로부터 팔 구세 된 장난 군이 아이들 수십명이 모여 놀고 있다. 아이들은 허리에 나무 막대기 군도를 차고 어께에는 장난감 활과 전통을 메고, 그 중 ㅓ 떤 아이들은 수수깡 말을 타고 병대 조련을 하는 중이다. 구령을 부르고 칼을 두르는 대로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오고 가끔 고함도 지르고 달려가기도 하고 매우 위의가 엄숙하다.
누구나 그중에서 깨아진 철바가지투구를 쓰고 긴 활도를 둘러 전군을 호령하는 애꾸눈이 아이를 보았을 것이다. 비록 애꾸눈일망정 두 귀 위에 달린 윤 흐르는 검은 머리의 쌍상투라든지 장대한 골격이며 위풍 있는 용모와 풍채라든지, 그 어리지마는 웅장한 음성이라든지 나이는 십 삼세밖에 안되어 보여도 어딘지 모르게 점잖은 태도가 있는 것이라든지, 누가 보아도 범상한 아이가 아닌 것은 짐작할 것이다. 아이들이 돌을 모아 성을 쌓고 관혁을 세우고 활을 쏘고 탈을 두르며 내닫고 한창 어우러져 놀때에는 동내 앞에 어떤 부인 한가 나서며, 『 미륵아, 미륵아.』 하고 부른다. 이 소리에 애꾸눈이 대장은 원망스러운 듯 하고 부른다. 이소리에 애꾸눈이 대장은 원망스러운 듯이 헌 바가지 투구와 활과 칼을 내어던지고 부르는 부인 곁으로 달아난다. 대장을 잃어 버린 다른 아이들도 흥이 깨어지어 하나씩 둘씩 이리로 저리로 나무 환도를 내어 두르고 소리를 지르면서 달아난다. 그중에서 두 아이만 차마 미륵이를 떠날 수 없다는듯이 뒤로 슬슬 따라 간다.
『글쎄, 또 장난이야 ———— 그렇게 일러도 또 장난만 한단 말이냐?』하고
부인은 미륵의 손을 끌고 조그마한 집으로 들어 간다. 그러나 아이를 때리지도 아니하고 크게 꾸중도 아니한다. 그날 밤에 부인은 미륵을 앞에 불러 놓고,- 6 - 『 내가 오늘은 너에게 할 말이 있다.』 하고 미륵을 바라보며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미륵은 어머니한테 장난 만 고글을 배우거나 일을 하라는 꾸중을 거의 날마다 들어 왔지마는 오늘처럼 이렇게 한밤중에 엄숙하게 꾸중을 들어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미륵이도 웬 셈을 모르고 눈이 둥글하여 어머니의 입만 바라보았다. 어머니도 비록 누 추한 옷은 입었을망정 그 얼굴과 태도에는 어딘지 모르게 예사 마을 여자가 아닌 빛이 있다. 중늙은이의 주름과 고생에 초췌함이 있다 하여도 어느 구석에 귀골스러운 것이 있다. 어머니는 미륵을 앉히어 놓고 일어나서장 속에서 무슨 보통이 하나를 꺼내어 미륵의 앞에 놓고, 『 자 이것을 끌러 보아라.』 하고 미륵에게 명령을 하였다.
아 버 지 미륵은 먼지 묻은 낡은 보통이를 앞에 놓고 한참 주저하면서 그 어머니의 얼굴 울 쳐다본다. 어린 생각에 그 속에는 자기의 장난 값으로 나오는 무슨 무서운 것이 있는 것 같았다. 미륵은 마침내 끄내어, 매어 놓은 끄나불을 끄 르고 한 껍데기를 벗기었다. 그 속에는 미륵이가 평생에 보지 못한 비단 보자기가 나왔다. 미륵은 그 부드러운 비단 저고리 하나가 나왔다. 미륵은 그것을 치어 들어 떨어 보았으나 아무 것도 다른 것은 나오지 않았다.
미륵은 실망한 듯이 어머니를 바라보며, 『 이게 무엇이요?』
하고 저고리를 내어 던지었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서 두손으로 미륵 이 가내어 던지는 저고리를 받아 들면서, 『 이 옷이 승하하옵신 상감님 입으시던 옷이다. 이 등과 가슴에 해 무늬와 달 무늬가 있는 것을 봐라. 이것은 나라님 밖에는 못 입으시는것이다.』 나라님 입으시던 저고리라는 말에 미륵이는 이상한 듯이 눈을 크게 떠서 그 저고리를 한번 더 보았다. 과연 앞 뒤와 팔에 둥그런 무늬가 있다.
『나라님 저고리가 왜 우리 집에 있어요?』
하고 미륵은 어머니의 눈물 그렁그렁한 얼굴울 보았다. 어머니는 그 저고리를 무릎 위에 놓고 이윽히 눈물을 흘리고 앉았더니 두 손으로 눈물을 거두고 미륵을 바라 보며, 『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내가 너를 기르기는 하였지마는 너를 낳으신- 7 - 어머님은 벌써 돌아 가신 지가 오래시다…….』 이 말은 미륵에게는 청천에 벽력이다. 무슨 말인지 그뜻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기를 보고 아버지가 없는 자식이라고 빈정거린 것이며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어디 갔느냐고 물을 때마다 분명히 죽었다고도 아니하고 또 어디 있다고도 아니한 것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장난에 취한 어린 미륵이에게는 아버지가 잇고 없는 것이 그리 큰일은 아니었었다.
그러나 내 아버지와 나라님의 저고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고 미륵은 호기심 많은 눈을 어머니에게로 향 하면서, 『 그럼 나는 뉘 아들이야요?』 하고 물었다.
『너는 이번에 돌아 가신 임금님의 아드님이다. 이번에는 돌아 가신 나라님께서 네 아버님이시다. 어머님은 돌아 가시고…….』
『무어요? 나라님이 우리 아버지요?』
하고 미륵은 놀랐다.
『그렇단다. 이 저고리가 네 아버님의 저고리다. 그때에 네 어머님 되시는 뒷대궐마마께서 너를 이 저고리에 싸서…….』
하고는 차마 말을 다하지 못하고 그만 목이 메어서 운다. 그 이야기는 이러하였다 ———— 경문대왕(景文大王)께서 아직 헌 안대왕( 憲安大王) 의 부마가 되시기 전에 응렴(膺廉)이란 이름으로 풍채 좋은 국선( 國仙)으로 공부 하러 다닐 때에 설형이라는 친구의 집에서 그의 누이와 서로 알게 되었다. 그 누이는 얼굴이 아름답고 재주가 있어 도리어 그 오라비보다 글도 잘하였다. 그래서 장차는 혼인까지도 하려고 하였다. 마침 그 떼에 임해 전( 臨海殿) 잔치에서 헌안대왕의 눈에 들어 곧 대왕의 맏따님이신 영화공주의 부마가 되시고 이내 헌안대왕이 승하하신 뒤를 따라 임금이 되시었다.
즉위하신 지 삼년, 즉 열 여덟 살 되시던 해에 왕은 영화 공주의 동생 되는 정화 공주를 버금왕후로 맞아 들이고, 또 다음 해에 옛정을 잊이못하여 아직도 시집을 아니 가고 있던 설부인을 맞아 들여 뒷대궐에 계시게 하였다. 처음에는 둘째 왕후 정화 공주에게 왕의 사랑이 갔으나, 설 부인이 들어 오신 뒤로는 왕의 사랑은 설부인 분 왕후에게 대하여서는 점점 서어 하시었다.
왕의 총애가 설부인에게만 모임을 보고 영화·정화 두분 왕후께서는 무서운 질투가 생기시었다. 정화 공주가 버금마마로 들어 오신 때에는 영화 왕후께서는 형제의 정도 잊이 버리고 정화마마를 시기하였으나 설 부인이- 8 - 들어 오신 후에는 두 분은 하나가 되어 설부인을 미워하게 되었다. 더구나 뒷 대궐 마마가 잉태하신 뒤로는 두 분 왕후의 질투는 더욱 심하여졌다.
그래서 일변으로는 궁녀를 뒷대궐로 보내어 왕과 설부인의 하시는 말도 엿 듣게 하고, 일변 무당과 술객을 시켜 설부인이 죽기를 빌었다. 그러 나술 객과 무당들의 예방과 기도도 아무 효험이 없이 왕의 총애는 더욱 깊어질 뿐이요, 뒷대궐마마의 얼굴은 더욱 아리따와지는 듯하였다.
그러할 즈음에 뒷대궐마마가 순산을 하시어 왕자를 낳으시었다. 왕께서는 욍자의 용모와 울음 소리가 웅장하고 동에 임금왕자 뼈가 뚜렷하다 하여 그 왕자를 심히 사랑하시며 용덕(龍德)왕자라고 이름을 지으시었다. 이 때에 큰 마마께서는 잉태 중에 계시었다. 뒷대궐마마가 왕자를 낳고 또 왕께서 그 왕자를 사랑하시는 눈치를 보고는 영화·정화 두 분 마마께서는 심히 마음이 편안치 아니하여 여러 가지로 꾀를 생각하였다. 하루는 뒷 대궐 염탐으로 보냈던 궁녀가 영화마마께서 와서 이런 놀라운 말씀을 아뢰었다.
『어젯밤에 가만히 엿들으니 뒷대궐마마께서 상감마마께 매어 달려우시며 아들이 나면 무엇합니까? 태자 되실 이는 따로 계신 걸, 하시오니 상감 마마께 오 서는 염려 말아, 이 애로 태자를 삼으리라, 그러나 아직 발 설치 말라 하시었읍니다.』 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을 때에 영화마마께서는 얼굴이 흙빛이 되어서, 『 응, 고것을 내가 살려 들 줄 알고.』
하고 이를 갈으시었다. 영화 왕후는 그날 종일 정화 공주와 또 궁녀 중에 늙고 꾀많은 이를 모아 여러 가지로 의논한 결과로 왕께서 가장 믿으시는 일관( 日官) 대내마(大奈麻) 간서이란 사람을 비밀히 내전으로 별 입시를 시켰다. 간성 일관은 천문과 지리를 무불능하고 사람의 길흉 화복을 미리 판단하여 나라의 믿음이 두터운 사람이다. 왕후는 간성 대내마를 보고 뒷 대궐 마마와 용덕왕자의 말을 한 후에 조금도 왕자를 미워하는 빛을 보이지 아니하고 도리어 왕자의 전정을 근심하는 듯이 용덕왕자의 전 정이 어떠한 것을 물었다. 일관은 이렇게 아뢰었다.
『용덕왕저께서 탄강하옵시던 날에 왕자께서 탄생하시던 집( 의 가다)에는 흰 서광이 비치고 또 천정성(天□星)이 사흘을 두고 그 집 위에 비취 었을 뿐더러, 왕자께서 탄생하신 날이 오월 오일이온즉 오의 오는 즉 다양이라 용덕 왕자는 천정성 정기를 타서 탄강하시옵고 우리 신라에 크신 임금이 되시어 나라를 빛내실 성군이 되실 줄로 아뢰옵니다.』 일관의 말에 왕후는 더욱 놀라고 슬펐다. 그날은 일관을 돌려 보내고 다른 날 다시 사람을 보내어 폐백을 후히 한 후에 용덕왕자를 없이할 꾀를- 9 - 물었다. 일관은 처음에는 주저하였으나 어느 명이라고 거역할 수도 없을뿐더러, 또 후히 상 준다는 말에 혹하여 왕후의 명대로 하기를 승낙하였다.
그런 뒤에 왕후는 왕께 뵈옵고 용덕왕자 탄강하신 기쁨을 아뢰었다. 왕은 왕후께서 용덕왕자 나신 것을 기뻐하심을 보고 마음에 흡족하여 왕후의 등을 어루만지시었다. 그때에 왕후는 왕께, 『 용덕 왕자의 상을 보시었읍니까?』 하고 여쭈었다.
『아직 안 보였소.』
『왜 간성 일관께 일생 행운을 안 보이십니까?』
하고 왕후는 일관에게 용덕왕자의 상을 보이기를 권하였다.
『참 좋은 말이요.』
하고 왕은 곧 일관을 부르시었다. 왕께서는 천히 용덕왕자를 무릎 위에 놓으시고 일관더러 왕자의 상과 일생의 행운을 보라고 명하였다. 일관은 용상에서 서너 걸음 앞에 꿇어 엎드리어 이윽히 용덕왕자를 바라보더니, 『 아뢰 옵기 황공하오나 좌우를 물리치시오면 바로 아뢰오리다.』 왕은 얼굴에 근심하는 빛을 띄우시더니 마침내 일관의 말대로 좌우를 물리고 또 왕자도 뒷대궐로 들여 보내고 일관을 보시며, 『 무슨 불길함이 있느냐?』 하였다. 일관은 여러 번 이마를 조아리며, 『 아뢰 옵기 황송하옵니다.』
하고 용이히 말을 아니한다.
왕은 더욱 조급하시어, 『 어서 아뢰어라, 아무러한 불길한 것이라도 거침 없이 아뢰어라.』
하신다. 그제야 일관이 사양타 못 하여, 『 왕자 탄강하옵신 날이 오월 오일이옵고 또 그날에 왕자 탄생하시던 집위에 흰 빛이 비치었사오니 흰 빛은 사특한 빛이라 반드시 이 왕자의 상을 뵈오니 눈과 이마에 살기가 어리어 임금이나 아버지를 시역할 기상을 띄웠 사오니 반드시 후일에 큰 화단을 일으킬 상인 줄로 아뢰옵니다.』 하고, 이마를 땅에 붙이고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한다.
왕께서는 일관의 말을 들으시고 심히 슬퍼하시었으나 일관을 깊이 믿으시는 바이라 그의 말을 의심하려 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측은한 애정을 생각할 때에는 차마 그 귀여운 왕자를 어찌할 수도 없었다.
『설마 그러랴.』
하고 왕은 일관을 꾸짖으시었다.
- 10 - 『 폐하께옵서 신의 말을 안 믿으실진대 신의 늙은 목을 버히시되 눈만 빼어 황룡사 구층탑 추녀 끝에 달아 주옵소서. 반드시 얼마 아니하여 신의 말이 명백함을 보오리이다.』 하고 일관은 수없이 머리를 조아리되 말소리는 극히 엄숙하였다.
왕께서는 슬픔과 근심을 이기지 못하여 일관더러 물러가라 명 하시고 옥좌에서 일어나시려 할 때에 일관은 다시 왕의 앞에 꿇어 엎드려, 『 아뢰 옵기 황공하오나 신은 국록지신이라 감히 성명(聖名)을 기 일수가 없 사오니 죽을 죄로 한 말씀을 더 아뢰올 바가 있읍니다.』 하고 더욱 머리를 조아린다.
왕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 또 무슨 불길한 말이 남았느냐?』
하고 일관을 노려 보신다.
『다름이 아니옵고 뒷대궐에 가끔 요기스러운 기운이 침범하오니 필 시상서 롭지 못한 일이 있는 것이 분명하옵고, 또 용덕왕자의 용모를 뵈 옵건대 이 손( 伊飡) 윤훙과 흡사하오니 폐하께서 밝히 살피시옵소서.』 하고 수없이 고개를 조아린다.
왕께서는 발을 구르시며, 『 물러나라!』
하고 어성을 높이시었다.
왕은 이손 윤훙이 설씨 집과 친근한 줄을 알 뿐더러, 윤훙이 힘이 있고 풍채가 좋으며 여색을 좋아하는 줄도 아신다. 또 궁중에 밤이면 어떤 사람이 내왕하는 기색이 있단 말도 돌았고, 또 그 수상한 사람이 뒷 대궐로 배회 한다는 것이며, 왕이 뒷대궐에서 주무시지 아니하는 날에는 뒷 대궐 마마의 방에서 남자의 소리가 들린다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 그러 나설 부인을 총애하시는 왕께서는 그것이 다 영화·정화 두 마마의 질투에서 지어 내는 말로만 여기고 믿지를 아니하였다. 지금 일관의 말을 들으시매, 왕의 가슴에는 의심과 질투의 무서운 불길이 일어났다.
<과연 용덕왕자는 윤훙과 흡사하다.>
왕도 마침내 이러한 생각을 하시게 되었다. 겨우 열 아홉 살 밖에 안되신 왕은 오래 두고 생각할 새도 없이 곧 용덕왕자를 죽이고 설 부인을 국문 하기로 결심하였다.
사흘이나 왕께서 안 오시는 것을 보고 뒷대궐마마는 심히 맘이 괴로우시었다. 하루에는 두 번씩은 꼭 왕자를 보시던 왕께서 사흘 동안이나 한번도 아니 오시는 것은 무슨 곡절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근심이 되었다.
- 11 - 마마는 밤이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왕자의 유모와 함께 왕자의 시름없이 자는 양을 보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을 즈음에 평소에 뒷 대궐 마마를 따르던 궁녀 하나가 황급히 뛰어 들어와, 『 마마, 마마, 지금 용덕아기를 죽이러 옵니다. 벌써 내전 문에 들어왔 읍니다.』 하고 어찌할 줄을 모른다.
마마는 정신 없이 아기를 껴안았다. 이때에 벌써 쿵쿵하고 사람들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마마는 왕께서 벗어 놓으시었던 저고리를 내어용 덕왕자를 쌌다. 왕자에게 맡기어 가지고 도망을 시키시려 함이다.
누구에게 말을 들은 것도 아니언만 마마는 여자의 직각으로 이것이 어찌 된 일인 지를 짐작한 것이다.
그러나 유모가 왕자를 받아 들기 전에 왕의 사자들은 벌써 방문 밖에 왔다. 그중에 한 사람이 벼락같이 문을 열고 들어 서며, 『 상감 마마의 명으로 용덕왕자를 모시러 왔읍니다.』 하고 뒷대궐마마 앞에 허리를 굽히었다. 마마는 용덕왕자를 꼭 껴안으며, 『 이 깊은 밤에 어디로 모시어 간단 말이요?』
하고 반항을 하였다.
이때에 문밖에 섰던 다른 사람 하나가 손에 번쩍번쩍하는 칼을 들고 뛰어들어오며, 『 왕명이 지엄하시니 시각을 지체할 수 없읍니다.』
하고 마마의 곁으로 바싹 대든다.
마마는 왕자를 안은 대로 그 사람을 피하여 돌아 서며, 『 상감 마마 분부시라면 거역할 수도 없거니와, 죽이더라도 내 손으로 죽일 터이니, 이 아기의 몸에 손을 대지마오.』 하였다. 죽이러 온 사람들은 아기를 안고 애쓰는 어머니의 정경에 감동이 되어 마마의 말대로 하기를 승낙하고 손에 들었던 칼을 마마에게 드렸다.
마마는 칼을 받아 입에 물고 왕자를 안고 마루로 나와 화정지라는 연못 가에 있는 청련각에 올랐다. 거기서 마마는 어스름한 달빛에 품에 안긴 왕자를 다시금 보다가 크게 통곡하고 나서 아버지의 저고리에 싼 왕자를 늠 실하는 연못을 향하고 집어 던지었다. 그러고는 차마 아가 떨어진 곳을 바라보지 못하고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그 자리에 엎드러져 울다가 죽이러 온 사람들을 향 하여, 『 상감 마마께서 피 묻은 칼을 올리라 하시거든 이 칼을 올리오.』 하고 칼끝을 입에 물고 마루 위에 엎드러지시었다.
- 12 - 그때에 유모는 미리 마마의 뜻을 알아 차리고 청련각 밑에 서 있다가 떨어져 내려 오는 왕자를 물에 떨어지기 전에 두 팔로 받았다. 그때에 유모의 손가락에 왕자의 바른편 눈을 찔러 왕자는 한 눈을 잃어 버렸다.
이야기를 여기까지 하고 나서 어머니는 미륵의 앞에 놓인 저고리를 뒤집어 옷깃에 묻은 검은 것을 가리키며, 『 미륵아, 이것이 그때 네 눈에서 나온 피다. 내가 너를 받다가 내 손가락이 네 눈을 찔러 너는 한 눈이 멀고, 여기는 이렇게 피가 묻었구나.』 하고 눈물을 짓는다.
어머니(그렇다 길러 준 어머니다)의 이야기를 듣고 난 미륵의 눈에는 이상한 빛이 번쩍한다. 미륵은 어머니 손에 있는 피 묻은 저고리를 보고 손을 들어 보지 못하는 바른편 눈을 만지었다. 그러할 때에 전신에 피가 끌오어 올라 미륵은 마치 숨이 막힐 듯하였다. 비록 열 세살 살이라 하여도 숙성한 미륵은 지금 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당시의 광경을 그려 볼 수가 있었다.
미륵은 연못에 집어 던지는 자기를 받아다가 지금까지 친자식같이 길러 준 어머니의 얼굴을 볼 때에는 분한 마과 슬픈 맘이 부글부글 끓어서 고마운 맘으로 변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친어머니를 모함한 두 왕후와 듯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친어머니를 모함한 두 왕후와 그 꾀임을 듣고 어머니를 죽이게 한 아버지를 생각할 때에 미륵은 두 주먹을 불끈쥐고 이를 부드득 같았다. 어머니는 미륵이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부드득 갈았다. 어머니는 미륵이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가는 양을 보고 놀랐다. 장난군이 어린 미륵의 속에 이런 무서운 분노가 들어 있 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던 까닭이다. 또 아 장난을 그치게 하자는 것과 이미 왕 이돌아 가신 양반이 아버지인 것이나 알리어 주자는 뜻에 지나지 못하였다.
그리하였던 것이 미륵이가 이처럼 무서운 분노의 상을 보이는 것을 볼 때에 어머니는 아니 놀랄 수 없고,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을 후회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 넌들 얼마나 슬프고 분하겠느냐? 그러나 참아야 한다. 만일 네 가용 덕왕자라는 말이 나기만 하면 나와 너와 두 목숨은 금시에 없어지고 말것이다. 내가 너를 안고 도망한 뒤에도 연못에 시체가 없다고 하여 필경 내가 너를 안고 도망한 것이라고 사방으로 수탐을 하였던 것이다. 나도 몇번을 잡힐 듯하다가 천행으로 벗어나서 너도 이만큼 자랐으니 이제야 너만- 13 - 잠자코 있으면 누가알랴. 어서 아무런 생각 말고 공부나 잘해서 후일에 귀히 되어라. 그러면 돌아 가신 뒷대궐마마께서도 혼이라도 넋이라도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애걸하듯이 타일렀다.
미륵은 이윽히 고개를 숙이고 앉았더니 벌떡 일어나 피 묻은 저고리를 발로 밟고 두 손으로 잡아 당겨 드윽 찢었다. 어머니가 일어나 막으려 하였으나 그럴 새가 없었다. 미륵은 찢어진 저고리 조각을 입에 물고 미친 사람 모양으로 수없이 물어 뜯었다.
『어머니 나는 이 원수를 갚고야 말아요! 이 원수를 갚고야 말아요!』
하고 부르르 떨었다.
미륵은 갑자기 어른이 된 듯하였다. 장난군이 모양이다 사라지고 말았다.
이삼일 동안 미륵은 밖에 나가 놀지도 아니하고 이야기도 아니하고 가만히 집에만 있었다. 어머니의 맘은 심히 슬펐으나 벌써 미륵은 자기 품속에 들어 올 장난군이 아들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 그럴 때에 퍽 슬펐다.
하루는 미륵은 어머니 앞에 절을 하였다.
『나는 가요!』
하는 미륵의 눈에는 눈물이 있었다.
깜짝 놀란 어머니의 미륵의 팔을 불들며, 『 그게 무슨 소리냐……나를 두고 가기를 어디로 간단 말이냐?』
하고 떼쳐 버리고 가는 남편에게 매어 달리는 아내 모양으로 미륵에게 매어 달려 울었다. 미륵도 울었다. 그러나, 『 나는 가요! 어머니의 은혜는 일생에 잊지 아니하리다……그러나 나는가요!』 하고 미륵은 울어 쓰러진 늙은 어머니를 내어 버리고 문밖으로 나 가버리었다.
어머니는 울며 불며 따라 나가 온 동네를 두루 찾았으나 미륵을 보지못하고 허둥지둥 뒷 고개에 뛰어 올라가 저 멀리 끝없는 길로 가물가물 가는 미륵의 그림자를 보았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 엎드러져 끝없이 울었다.
미륵은 십 삼년 동안 길러 낸 유모의 집을 떠나 서울로 향하였다.
친어미니로 알고 여태껏 길러난 정에 미륵은 가다가는 멈칫멈칫 서서 그리워하는 눈물을 흘렸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뒤를 돌아 보고, 개천을 건널 때마다 뒤를 돌아 보고, 동네에서 늙은 부인네가 나와도 어머니 나 아닌가 하였다 ———— 그리고는 눈물이 흘러서 두 주먹으로 씻어 버리고는- 14 - 코를 풀었다.
그러나 자기를 낳은 어머니가 칼을 물고 엎드러진 것이 눈에 번뜻 보일 때에는 전신의 피가 모두 얼굴로 거꾸로 흘러 오르고 숨결이 씨근거렸다.
『원수를 갚고야 말 테다! 이 원수를 갚고야 말 테다.』
하고 두 주먹을 불끈불끈 쥐었다.
절을 만날 때마다 미륵은 부처님께 빌고 고개턱에서 길 서낭을 만날 때마다 길 서낭께 빌었다.
『이 원수를 갚게 해줍소사! 어머니 원수를 갚게 해줍소사!』
하고 빌고 빌고 또 빌었다.
며칠을 걸어 미륵은 수리재(□述嶺)에 다다랐다. 수리재에는 인산( 因山) 구경 가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 나무 그늘을 찾아 쉬었다. 모두 깃것과 베것으로 소복을 하고 혹은 늙은이를 모시고 혹은 어린 아이를 데리고 간다. 어떤 사람은 수레를 타고, 어떤 사람은 가마를 타고, 어떤 사람은 말과 나귀를 타고, 그렇지 못한 이는 지팡이를 들었다. 미륵이도 사람들 틈에 끼어 앉아서 찌는 볕에 흘러 내리는 땀을 씻었다. 벌써 가을이 언 마는 여름과 같이 덥다. 여름내 가뭄에 길가에 풀 입사귀들은 맘대로 자라 보지도 못하고 말라 붙고 키 작은 흰 국화꽃이 겨우 어서 기운 없이 졸고 있을 뿐이다.
인산 구경 오는 사람에게 파느라고 떡과 술과 엿과 옥수수 삶은 것 과감과 이런 것을 길가에 벌이고 앉은 사람들도 많다. 먹을 것을 보니 미륵은 더욱 배가 고팠으나 사 먹을 돈이 없었다. 그중에도 감과 인절미가 몹시 먹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은 같이 가는 부모에게 돈을 얻어서 맘대로 사먹는다. 어떤 아이는 한손에는 옥수수를 들고, 한손에는 인절미를 들고이것 한 입 먹고 저것 한 입 먹고 두 볼룩하도록 입에 넣고 좋아한다.
미륵은 참다 못하여 떡장수 앞에 가서, 『 여보 내가 시장하여 떡 한 개만 주오.』
하였다.
떡 팔년 노파는 미륵이를 물끄러미 보더니 주름 잡힌 손을 내밀며, 『 돈 내라.』
한다. 미륵은, 『 미륵은 돈은 없소마는 재주는 있으니 재주를 보고 떡 한 개만 주오.』
하였다. 노파는 내밀었던 손을 끌어 들이며, 『 병신 맘 고운 데 없다고 애꾸눈이 녀석이 뻔질뻔질도 하다. 재수없다.』
- 15 - 하고 소리를 빽 지른다.
미륵은 옥수수 장수 엿장수한테 차례 차례로 청을 하였으나 하나도 들어주지를 아니하였다. 할 수 없이 고개를 숙이고 생각할 즈음에 웬 사람이 뒤 로서 미륵의 어깨를 밀치면서, 『 네가 재주가 있다니 무슨 재주가 있느냐?』 하고 묻는다.
미륵은 고개를 돌렸다. 그 사람은 키가 크고 얼굴이 검고 눈이 움푹 들어간 무시운 사람이다.
『달음질 팔매진 또 활이 있으면 활 쏘는 재주도 있지요.』
하고 미륵은 고개를 번쩍 들어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럼 어디 팔매부터 한번 던져 보아라.』
『먼 팔매요?』
『팔매란 멀리만 가시는 쓸데 없는 것이니까, 가까운 것이라도 바로 맞혀야 쓰는 것이다.』
『그러지요.』
하고 미륵은 손에 맞는 돌 한 개를 골라 들고 여남은 걸음 뒤로 물러섰다.
곁에 있던 사람들은 구경 났다고 미륵의 곁으로 모여 들었다. 떡 팔던 노파는 영문을 모르고 눈이 둥그렇다.
미륵은 오른손에 돌을 들고 두어 번 팔을 둘러 보더니, 『 자 보시오, 이제 저 떡 파는 마누라의 귀고리를 맞힙니다.』
하고 미륵은 빙긋 웃었다. 떡 한 개 아니 준 원수를 갚으려 함이다.
『바로 맞히기만 하면 내 베 한 필 줄란다.』
하고 구경군 중에서 한 사람이 나선다.
『정말 사람은 다치지 말고 꼭 귀고리를 맞히면 나는 송아지 하나를 줄란다.』
하고 또 한 사람이 나선다.
『네 말대로 바로 맞히기만 하면 나는 네게 좋은 환도 하나를 주마.』
하고 키 크고 얼굴 검고 눈 움푹한 사람이 자기가 찼던 환도를 떼어 든다.
그 환도는 썩 좋은 것이다. 번쩍번쩍하는 칠한 집에 호피로 끈을 달고 자루를 금은으로 아로 새겼다. 환도를 준단 말에 미륵은 가슴이 두근거리도록 좋았다. 그중에 혼난 것은 떡장수 노파다.
『저 애꾸눈이 녀석이 누구의 코피를 내려고 저래!』
하고 손으로 낯을 가리고 날아 오는 돌을 피하는 듯이 좌우로 왔다 갔다한 다.
- 16 - 『 나간다!』
소리가 나자 들은 「앵!」하고 소리를 내며 미륵의 손을 떠났다.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래지어 떡장수 노파를 바라보았다. 떡장수 노파는 「 앵!」하고 돌 지나가는 소리를 겁결에 흉내를 내면서 손으로 귀를 만지었다. 동그렇던 귀고리는 길쭉하게 찌그러져 버렸다.
『저런!』
『아이!』
『참말!』
하고 사람들은 일을 벌리고 빙그레 웃고 섰는 미륵이를 보았다. 미륵의 얼굴은 공명과 기쁨으로 불그레했다. 사람들은 이 팔매 잘 치는 미륵이를 가까이 보려고 한걸음 두 걸음 바싹바싹 들어 섰다. 조그마한 미륵이는 의기 양양하여 둘러 선 사람들을 돌아 보았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 이 떡과 엿과 옥수수를 사다가 미륵의 손에 쥐어 주었다. 미륵은 그것을 다 손에 들지 못하여 받는 대로 땅에 놓았다.
미륵은 무명 한 필, 송아지 한 필 준다던 사람들을 돌아 본다. 그들 은기가 막혀 저 뒷줄에 물러섰다. 환도를 준다던 사람도 눈이 휘둥그래서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섰다.
미륵은 그 사람의 앞으로 가서 손을 내밀어, 『 이 환도는 내 것이요!』
하고 그 사람의 손에 든 환도를 가리켰다. 그 사람은 아까와서 차마 내놓지못하는 듯이 환도를 한번 보더니 그것을 뒤로 감추며, 『 아니다. 네가 팔매는 잘친다마는 활이야 웬걸 쏘겠느냐? 네가 만 일 활로 저 망부석 위에 앉은 독수리를 쏘아 맞히면 내 이 환도와 활까지도 너를 주마.』 한다.
사람들은 망부석을 바라보았다. 미륵도 바라보았다. 과연 커다란 독수리한 마리가 앉았다. 미륵의 마음은 솔깃하였다.
『그걸 못 맞혀요? 활만 있으면.』
하고 사람들을 돌아 보았다.
그 얼굴 시커먼 사람은 미륵의 대담한 말에 한번 더 놀래었으나 여럿 이보는 데 한 말을 도로 거둘 수가 없어서 자기의 활과 살을 빌려 주었다.
미륵은 제 키만이 나 한 활에다가 휘청휘청 살을 골라 한 대는 등에 꽂고한 대는 줄에 메어 들고 그 시커먼 사람을 향 하여, 『 저 독수리를 맞히기만 하면 이 활과 그 환도는 내 것 이지요?』 - 17 - 하고 한번 다쳤다.
그 사람은 하릴없이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사람들은 아까보다도 더 많이 모여 들었다.
미륵은 사람들을 한번 돌아 본 뒤에 가만히 활을 들어 삐긋이 당기면서, 『 첫 살은 독수리를 날리는 살이요.』
하고 오른손을 투겼다. 살은 휙 소리를 내고 바로 독수리의 등을 스칠 듯날아 올랐다.
미륵은 둘째 살을 메어 들고 하늘을 향하였다.
수 리 재 미륵은 하늘을 향하여 둘째 화살을 튀겼다. 살은 놀라서 나는 독수리를 향하고 꼿꼿이 날아 올라 간다. 독수리는 살을 피하려고 날던 방향을 돌리려 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미륵의 쏜 살은 독수리를 따라 올라 가 바 로그 해끄무레한 가슴패기를 뚫었다.
살에 맞은 독수리는 두어 길이나 더 솟더니 살에 달랴 너훌너훌 땅으로 떨어져 내려 왔다. 보던 사람들은 「우와!」하고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굴렀다.
『장사다!』
『참 잘 쏜다!』
하고 사람들은 미륵을 보고 혀를 찼다.
미륵은 활을 어깨에 메고 땅에 놓인 전통(箭筩)을 등에 지었다. 그리고는 시커먼 사람을 향 하여, 『 내 환도.』
하고 손을 내어 밀었다.
시커먼 사람이 머뭇머뭇하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속으로 밉게 생각 하였으나 감히 무어라고 한 말을 하지 못하고 대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 속에서 얼굴 희고 키가 작달막한 젊은 사람 하나가 뛰어나서면서 시커먼 사람더러, 『 약조대로 그 환도를 이 아이에게 주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 소리에 다른 사람들도 기운을 얻어 환도 주 어라하고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이 바람에 그 시커먼 사람은 하릴없이 환도를 미륵에게 주었다.
미륵은 환도를 받는 길로 칼날을 쭉 뽑았다. 그것은 서리 모양으로- 18 - 햇빛에 뻔쩍하며 푸른 무지개가 뻗치었다. 미륵은 막대기 칼 둘러 보던 법대로 그 크고 무거운 칼을 한번 둘러 보았다. 사람들은 「 에쿠 에쿠 」 하고 물러섰다. 미륵은 아주 마마에 흡족하여 칼을 집에 도로 꽂아 한번 만져 보고 허리에 둘러 찼다.
시커먼 사람더러 환도를 주라고 호령하던 얼굴 희고 키 작은 젊은 사람은 미륵의 등을 만지면서 무수히 칭찬 한 후에, 『 네 성명은 무엇이고 집은 어디냐?』 하고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미륵의 성명과 사는 곳을 알고 싶어서 귀를 기울였다.
미륵은 성명이 없었다. 자기가 경문왕의 아들이라 하면 자기의 성은 김가다. 그러나 자기는 김가 성을 말할 수가 없는 줄을 안다. 또 그때에는 성 있는 삼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잇기 때문에 구태여 성을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미륵은, 『 나는 성명도 없고 집도 없어요.』 하고 대답을 하였다. 사람들은 이 대답에 놀랐다.
『신인(神人)이다』
하고 의심하고 탄식하는 이도 있었다.
그 얼굴 흰 젊은 사라마이 이윽히 미륵의 얼굴을 보더니, 『 귀가 대단히 크다.』
하고 고개를 기웃기웃하고 나서, 『 네가 활을 잘 쏘니 활이라고 이름을 짓자.』
한다. 다른 사람들도 미륵의 귀가 큰 것을 보고 또 활이라는 이름이 좋 은줄로 생각하였다. 미륵도 속으로 활궁 자를 생각하였다. 이리하여 미륵은 후일에 궁예(弓裔)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조그마한 미륵이가 활을 메고 전통을 지고 환도를 찬 모양은 기특하 기도하고 우습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웃을 생각은 아니하고 칭찬 하기를 마지 아니하였다.
서울에는 각처에서 인산 구경하러 올라 온 사람들이 가뜩 차서 이십 만호, 백만 인구가 산다는 서울은 이때에는 온 나라 사람이 다 모여 든 것같이 북쩍북쩍 하였다. 한 입 건너 두 입 건너 미륵의 말이 온 장안에 퍼지었다.
애꾸눈이 아이만 보면「활이 활이」하고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이 때문에 미륵이는 서울에 들어 오는 길로 서산촌(西山村) 백면 국선( 白面國仙) 의집에 숨어 있었다.
백면 국선은 곧 수리재에서 시커먼 사람더러 미륵에게 환도를 주라고- 19 - 호령을 하던 사람이다. 그는 어떠한 사람인지 알 수 없으나 동네 사람들 이백면 국선이라고 부르고서 김 유신 대각산(金庾信大角干) 무덤 밑 조그마한 집에 살았다.
원 수 미륵은 밤이 깊도록 수리재에서 얼굴이 검고 키가 큰 사람에게 얻은 활과 칼을 보고 만지고 좋아하다가 잠이 들었다. 칼과 활 얻은 기쁨에 원수 갚을 생각도 잊어 버리고 있었다. 더구나 수리재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칭찬 받던 것을 생각하니 억제할 수 없이 맘이 기뻤다. 미륵은 자면서도 벙긋벙긋 웃었다.
서울이라 하여도 한편 구석인 서산 마을은 반이 깊으매 극히 고요하여 벽틈에서 씰씰하는 귀뚜라미 소리나 뒷산에서 이따금 울려 오는 쓱덕 재소 리도 미륵의 곤한 잠을 깨우지는 못하였다. 문밖에서 자박자박 사람 걸어오는 소리가 나더니, 『 미륵아!』 하고 문을 방긋이 연다. 미륵은 어슴푸레 들었던 잠을 깨어 일어나 바라보았다. 문을 열고 들어 온 이는 입에 칼을 문 젊은 여인이다. 칼날 이반이나 입속으로 들어 가고 칼 자루에서 시뻘건 피가 뚝뚝 흐른다. 미륵은 무서워서 몸을 피하여, 『 그 칼 빼 놓아요!』 하고 그 여인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그 여인은 눈물을 흘리고 고개를 흔들며, 『 이 칼은 너 밖에 뽑을 사람이 없다 ———— 내 아들아!』
하고 손을 내밀어 미륵의 머리를 만지려 한다. 미륵은 그손을 피하였다.
미륵은 눈으로는 칼 문 여인을 보면서도 몸으로는 한편 구석으로 피하 면서, 『 그 칼을 뽑아요 ———— 뽑아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가 제 소리에 놀라서 꿈을 깨었다.
꿈에 깨는 대로 벌떡 일어나서 훤한 문을 바라 보았다. 문밖에는 짤짤 신 끄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전신에 소름이 끼치고 찬 땀이 흘렀다.
미륵은 한참 동안 정신 없이 꿈 생각을 하고 앉았다가, 『 어머니!』
하고 불렀다. 피 흐르는 칼을 입에 문 어머니의 모양이 눈앞에 보이는듯 하였다. 미륵은 그 모양을 붙잡으려는 듯이 두 손으로 허공에 내어- 20 - 두르며 어머니를 불렀다. 그리고는, 『 어머니 내 원수를 갚을 께요! 이 칼로 이 활로 어머니 원수를 갚을께요.』 하고 벽에 걸었던 환도와 활을 만지어 보았다. 어머니의 눈물 흘리는 아름다운 얼굴이 미륵의 눈에서 떠나지를 아니하였다.
닭이 운다. 귀뚜라미도 운다. 미륵은 날이 새기만 기다렸다. 아침을 먹고나서 미륵은 활을 메고 환도를 차고 백면 국선의 집에서 나왔다.
『너 어디로 가니?』
하고 백면 국선이 물을 때에 미륵은, 『 어머니 원수 갚으러 가오.』
하고 대답을 하였다.
국선은 미륵의 말에 놀라는 양을 보였으나 더 묻지도 아니하고, 『 또 오련?』
하고 물었다.
『못 오지요.』
하고 미륵은 국선을 바라보았다. 국선은 다만 고개를 끄덕끄덕할 뿐이었다.
미륵은 국선의 집에서 나오는 길로 문내 물을 건너 향방 없이 서 울 바닥으로 들어 왔다.
오늘이 인산날이라고 아직 이른 아침이언마는 종로 네거리에 소복한 사람들이 담을 쌓았다. 미륵이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활이 활이 」 하고 부르는 소리도 들렸다. 말 탄 군사들이 바쁘게 떼를 지어 달려 가고 달려온다.
미륵은 사람 사이를 뚫고 임해전 앞 큰길을 지나 흥륜사(興輪寺) 골목을 빠져 반월성 대궐을 향하고 갔다. 가면 어찌할 것은 몰라도 대궐 가까이만 가면 원수를 갚을 기회가 잇을 것 같이 생각한 까닭이다.
미륵은 마침내 대궐 문 앞에 다다랐다. 하늘에 닿을 듯한 높은 문에는 대화 문( 大化門)이라는 큰 현판이 붙고 삼문 중에 가운데 문은 아직도 열지아니하였다. 열린 두문에는 큰 활도 빼 들고 활을 멘 군사와 뻘건 상모 단창든 군사들이 지키어 서고 가끔 소매 넓은 옷 입은 사람들이 혹은 수레를 타고 혹은 가마를 타고 문턱까지 와서는 탔던 것을 내려 옷을 떨고 고개를 수 그리고 슬픈 모 길에는 빨간 황토를 깔아 그 황토 위에 사람의 발자취와 수레 바퀴 자국이 난다.
미륵은 사람들의 사이를 뚫고 가까스로 맨 앞줄에 나섰다. 문을 바라볼 때에 그 문은 자기가 맘대로 들고 나고 할 수 있는 것같이 생각했다. 그 문- 21 - 안에는 내 아버지의 해골이 있지 아니한가, 내기 왜 저 문을 들어 가지못 할 것인가 하고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늘이어 가운데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진시라는데 아직 안되었다.』
사람들은 이런 소리들을 하였다.
『뒷대궐마마께서 불쌍하시지.』
하는 소리가 미륵의 귀에 들렸다. 미륵은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 보았다.
거기는 웬 노파 이삼인이 지팡이에 턱을 받치고 모여 서서 사람들 때문에 앞은 바라보지도 못하고 이야기들만 하고 있다.
『애매하시지 애매하시고말고, 그게야 큰마마께서 관성 일관을 꾀여서 그렇게 시키신 게지.』
하고 한 노파가 지팡이로 땅바닥을 두드리면 다른 한 노파는, 『 그래서 상감마마께서도 나중에는 그런 줄을 아시었더래. 그래서 가끔 청련 각 연못 가를 거니시며 마마 마마 하시고 한숨 지시는 것을 궁녀들 이 여러 번 보았다던데.』 하고, 그러면 또 한 노파는, 『 용덕 아기는 살았다지?』
하면 둘째 노파가, 『 그럼은 ———— 왜 처 용덕아기 젖 드리던 모량아씨가 안고 도망 하지 않았어? 그 후에 사람을 놓아서 찾아도 못 찾았지 ———— 에구, 그 아기도 사셨으면 벌써 열 세살이지 그 아기 낳으실 때에 집에 서광이 비치고 나시면서 이가 났더라오. 그이가 살아 계시면 가만히는 안 계실걸 ————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겠어.』'하고 곁에 사람에게는 들 락말락 나무아미타불을 몇 번 부른다.
『그 아기가 살았으면 이번에는 나설 테지, 아바마마승하하신데 가만히 있을라고.』
하고 노파가 곁에서 듣고 섰는 미륵을 흘끗 본다.
그러나 미륵의 우스운 꼴을 잠깐 볼 뿐이요, 다시 이야기를 계속한다.
조그마한 아이가 남루한 의복에 제 키만한 활을 메고 전통을 지고 긴 환도를 찬 모양은 참 우스웠다.
『용덕아기가 살아 계시더라도 영결에 참례를 못하면 무엇하오?
자식이라도 영결에 참례를 못하면 제사에도 참례를 못한다던데.』
하고 한 노파가 또 미륵을 본다.
미륵은 영결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그러나 그 말 뜻을 알아야 할 것 같이- 22 - 생각 하였다.
『영결이 무엇이요?』
하고 마침내 미륵이가 물었다.
『이 애가 영결도 모르나 네 어디서 왔니?』
하고 한 노파가 묻는다.
『나 시골서 왔소. 영결이 무에요?』
『어느 시골서 호호호호, 아주 활량인데.』
하고 세 노파는 미륵을 보고 웃는다. 그중에 한 노파가, 『 영결이란 무엇인고 하니, 사람이 죽어서 장렛날이 되어서 관이 집에서 떠날 때에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다.』 하고 다른 노파들을 돌아 보며, 『 아마 대궐에서는 지금 영결을 하시겠지?』
한다.
『영결에 얼굴도 보오?』
하고 미륵이 다시 묻는 말 에그 노파는 고개를 끄떡끄떡 한다.
미륵은 영결 말을 듣고 아바마의 얼굴을 한번만 보고 싶은 맘이 간절하였다. 더구나 왕께서 뒷대궐마마를 생각하시었다는 아까 그 노파의 말에 미륵은 아바마마를 원망하던 생각이 없어지고 도리어 이 세상에서 다시 보지 못할 아버지의 낯을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미륵은 사람 사이를 뚫고 대화문을 향하고 뛰어 들어갔다. 처음에는 어떤 장난군이 아인고 하고 모두 심상히 여기었으나 대궐문에 다다랐을 때에는 문 지키던 군사가 붉은 상모 단 창으로 미륵의 가슴을 겨누고, 『 이 놈 어디를!』 하고 소리를 질렀다. 미륵은 굴하지 아니하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부릅뜨고, 『 무엄한 버릇을 말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다른 군사들도 우 달려 와서, 『 이 놈 어떤 놈이냐?』
『이놈 애꾸눈이 놈이.』
하고 미륵을 에워 쌌다. 미륵은 허리에 찼던 환도를 쭉 빼어 들고, 『 나는 용덕왕자! 아바마마 영결에 참례하러 바삐 가는 길인데 내 길을 막는 놈은 이 칼로 베이리라, 비켜라!』 하고 칼을 내어 들었다.
문 지키는 군사들은「왕자」라는 말에 또 미륵의 위엄과 내두르는 칼에- 23 - 기운이 줄어서 모두 뒤로 물러섰다. 그 틈을 타서 미륵은 대화문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문안에서 지키는 군사는 칼과 창으로 미륵의 앞을 막았다.
미륵도 칼을 두르며, 『 나는 용덕왕자, 아바마마 영결에 가는 길 막는 놈은 이 칼로.』
하고 호령을 하였다. 이 말에 늙은 군사 하나가 나서며, 『 용덕왕 자시면 표를.』
하고 손을 내어 밀었다. 미륵은 그 저고리를 아니 가져 온 것을 후회 하고 잠시 주저하였으나 얼른 손으로 자기의 귀를 가리키었다. 군사들은 미륵의 가리키는 귀를 보았다. 과연 승하하신 상감마마의 귀와 같이 크다. 그래서 젊은 군사들은 길을 막았던 찬과 칼을 거두었으나 늙은 군사는 여전히 길을 막고, 『 표를 보이시기까지 한걸음도 못 들어 가시리다.』 하고 두 팔을 벌리고 일면 사람을 내전으로 보내어 용덕왕자라고 자칭 하는 애꾸눈이가 칼을 두르며 영결 참례로 들어 온다는 말을 전하였다.
이때 내전에서는 종전과 대신들이 모이어 영결과 인산의 절차를 서 루 다투고 있었다. 상대등(上大等) 위진(魏珍)은 모든 것을 옛날 우리 나라 법대로 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고, 시중(侍中) 인홍(藺興)은 모든 것을 당나라 법대로 하자고 주장하여 서로 지지 아니하였다. 이것은 이 날에 시작 된 것이 아니요, 대행마마 승하하실 때 초혼(招魂) 절차에서부터 다툼이 생기어 석 달이나 끌어 온 것이다. 상대등 위진이 주장하는 바는 비록 상감마마께서 당나라의 벼슬을 가지시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 형식적 예절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니 우리는 우리 주상(主上)의 장례를 옛날부터 우리 나라에서 하던 전례대로 즉 임금의 예로 할 것이라 함이요. 시 종인 홍의 주장은 그것이 옳지 않다, 상감마마께서는 당나라 벼슬로 대 도록 계림 주 제군사(大都督雞林諸軍事)요, 상주국 신라 왕( 上主國新羅王) 이란 것을 봉작(封爵)한 직함에 불과한 것이니, 옛날 모양으로 무식한 오랑캐의 일로 황제와 같이 모든 예전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새로 당나라에서 과거하고 돌아 온 최 치원(崔致遠)도 무론 인홍의 편이었다. 위진은 비록 일 국의 제일 높은 상대등(上大等)의 자리에 있으나 새로 당나라에 나녀 와당인 모양으로 외자 성과 두 자 이름을 갖는 무리의 세력을 당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위진은 굴하지 아니하고 당나라 법을 주장하는 젊은 벼슬 아치를 보면, 『 너희들은 당나라에 가서 살아라!』 하고 소리를 지르는 일이 있었다.
- 24 - 위진 파와 인홍파의 싸움이 가장 격렬하기는 대행대왕의 명정을 모실 때다. 그때에 위진은 경문대왕이라고 쓰는 것이 옳다고 하고, 인홍과 최치원은 당나라 법을 주장하는 젊은 벼슬아치를 보면, 『 너희들은 당나라에 가서 살아라!』 하고 소리를 지르는 일이 있었다.
위진파와 인홍파의 싸움이 가장 격렬하기는 대행대왕의 명령을 모실 때다. 그때에 위진은 경문대왕이라고 쓰는 것이 옳다고 하고, 인홍과 최치원은 당나라 벼슬로『개부의동삼사검교대위 지절 대도록 계림주 제 군사상 주 국 신라 왕 김응렴( 開府儀同三司檢校大尉持節大都督鷄林州諸軍事上柱國新羅王金應廉) 』이라고 쓰자고 주장하였다. 이날에는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만조 제신이 두 패로 갈라 큰 싸움을 하였다. 더구나 새로 당나라에서 돌아 온 최 치원의 말은 누가 감히 꺾는 이가 없었다. 그때에 상내등 위진은, 『 너희들은 오늘도 배를 타고 당나라로 가 살아라! 우리 신라에는 당나라 사람은 없는 것이 좋다.』 하고 얼굴이 주홍 빛이 되어 소리를 질렀다. 그때에 태자께 서도, 『 아바마마는 신라 임금이시다.』
하고 인홍과 최 치원을 책망하시었다. 이 때문에 인홍일파도 하릴없이지고, 상대등 위진의 주장대로 명정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인홍 일파는 기회 있는 때마다 위진과 다투었다.
이날도 모두 상복을 입고 위의를 갖추고 영결과 인산 절차에 마지막 싸움을 하느라고 진시가 지나도록 다투던 판에 용덕왕자라는 이가 영결에 참례 하러 들어 온 나는 고목이 들어 왔다.
『용덕왕자!』
하고 일동은 놀랐다. 그리고 여태까지 떠들던 사람들이 모두 잠잠하게 일을 감추었다. 그리고 상대등만 바라보았다. 책임 있는 말을 먼저 내는 것보다 상대등이 말을 내거든 만대하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인 까닭이다. 위진으 곧 빈전( 殯殿)으로 들어 갔다. 거기 금상마마와 두 분 마마께서 계신 까닭이다, 위진이 들어 오는 것을 보고 어린 금상마마는 낯을 찡기며, 『 아직도 다투나? 진시가 안되었나?』 하시었다. 위진은 황송하여 이마를 마루에 대고 엎드렸다.
『그 사람은 당나라로 보내지 못할까?』
하고 왕은 더욱 불쾌한 빛을 보였다. 위진은 여러 번 이마를 조아린 뒤에, 『 큰일이 생겼읍니다.』
- 25 - 하고 입을 열었다. 왕은 위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 또 당나라 사람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나?』
하시었다. 당나라 사람이란 물론 인홍· 최 지원 등을 가리킨 것이다. 왕은 아직 열 네살 밖에 안되셨으나 심히 총명이 있으시었다. 위진은 용덕 왕자라고 자칭하는 이가 대궐 문에서 대행마마 영결에 참례 한다고 야료 한다는 말을 아뢰었다.
왕은 용덕왕자라는 말을 듣고 곁에 있는 어마마마이신 영화마마를 돌아보시었다. 영화마마는 용덕아기란 말에 까맣게 질렸다. 지금까지도 어디가서 살아 있으리라고 생각은 하였으나 이렇게 대담스럽게 찾아 오리라고는 믿지 못하였던 까닭이다. 영화마나는 겨우 정신을 수습 하여, 『 시각이 늦는데.』 하고 아무 말이 없었다. 정화마마가 나서며, 『 용덕 아기가 분명할진댄, 곧 들어 오시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죠.』
하고 상감과 위진을 보고 짐짓 정화마마는 보지 아니한다. 영화 마마의 아드님이 왕이 되시고 당신은 남편마저 잃어 버리니 설 곳이 없어 자연 전보보다도 영화마마가 미워지는 까닭이다. 정화마마의 말에 영화 마마는 왕의 앞에 한걸음 가까이 들어 가 어성을 높이어, 『 못하 오. 용덕왕자는 대행마마께서 이손 윤홍의 씨라 하여 죽이라 고명 하신 죄인이어늘 이제 다시 용덕왕자라 하여 궐내에 들임이 부당하오 ——— 만일 윤홍의 씨를 용덕왕자라고 들인다 하면 내가 물러 나겠소.』 하였다.
왕도 용덕왕자 말을 몇 번 들엇다. 그러나 별로 생각 해 본 일은 없었고다만 용덕이가 살았으면 자기보다 나이가 한 살 아래라는 말을 기억 하였을 뿐이다. 그러다가 불의에 용덕왕자가 왔단 말을 듣고 왕은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맘 같아서는 곧 불러 들여서 대면이라도 하고 싶건마는 태후 마마가 그처럼 야단을 하니 어린 맘에 어찌하면 좋으냐고 묻는 듯이 상대등을 바라보았다.
위진은 뒷대궐마마의 아버지의 친구로 그 집 일을 본래부터 잘 알았고 뒷 대궐 마마도 어렸을 때부터 위진이 귀애하던 바다. 그러하기 때문에 위진은 뒷대궐마마가 애매한 죄로 원통하게 죽은 줄로 알고 더구나 이 손( 伊飡) 윤흥(允興)과 관계가 있다는 말을 정화마마가 윤흥을 미워하는데서 나온 모함인 줄을 잘 안다. 윤흥이 무슨 일로 내전에 들어 왔을 때에 평소에 윤흥의 인물을 못 있어 하던 정화부인이 윤흥을 끌었으나 듣지아니한 원혐으로 그 형님 되는 영화마마에게 애매한 소리를 일러 바친- 26 - 것이다. 영화마마는 뒷대궐마마를 해치기 위하여 윤흥까지 끌어 넣은것이다. 그래서 뒷대궐마마가 칼을 물고 돌아 가신 뒤에 곧 왕은 윤흥을 죽이려 하였고 또 이에 대하여 윤흥은 숙흥(夙興)·계흥(季興) 두 아우로 더불어 이 여화마마를 폐하여 한다고 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하여 삼 형제가 다 종로에서 오사를 당하여 죽었다.
그 후에 위진이 뒷대궐마마와 윤흥이 애매한 것을 왕께 말하여 여러 원혼의 원망을 풀려 하였으나 후환이 무서워 아직까지도 발설을 못 하고 왔었다. 그러다가 이제 용덕왕자가 왔으니, 이때를 타서 여러 사람 의원 통한 일을 귀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위진은 왕께 여쭈었다 —————『 여쭈 옵기 황송하오나 용덕왕자 일은 만민이 다 원통히 여기는 바오니 이 때에 성덕을 베푸시어 폐하께서 형제로 대면하옵시고 뒷 대궐 마마와 운흥의 원통한 혼을 위로하시는 것이 지당하온 줄로 아뢰오.』 하였다. 이 말에 태후는 발을 동동 구르고 위진을 향 하여, 『 물러나라! 늙은 것이 무슨 망령된 소리를 하노!』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위진은 왕의 하교가 내리기만 기다리고 몸을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태후는 왕을 보고, 『 위진 상대등은 나를, 사람을 모함한 요망한 사람으로 아는가? 때때로 우리 형제를 해치는 말을 하노.』 하였다. 왕은 아직도 말이 없다.
위진은 한번 고개를 들어 왕을 보고 다시 엎드려, 『 임금은 하늘의 해오니 만민이 다 바라보는 바오니, 용덕왕자의 원통한 뜻을 푸시옴이 백성을 화하는 일이옵니다.』 하고 또 한번 정성으로 간하였다. 왕이 무슨 말씀을 하시려 할 때에 태후는 다시 받을 구르며, 『 상감 마마는 간신 위진을 내리어 내 앞에서 목을 베지 못하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정화마마 다시 입을 열려 할 때에 영화 마마는, 『 너는 물러가 있으라!』
하고 악을 쓴다. 왕은 이윽히 생각하더니 위진을 보고, 『 물러나라! 즉각으로 영결 지내고 인산 모시라.』
하고 하교를 내렸다.
『용덕왕자는 어찌하오리까?』
하는 위진의 말에 왕은, 『 다시 분부 있기까지 물러 있으라 하되, 야료 있거든 잡아 가두라.』
- 27 -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뭇잎 떨어지는 바깥을 바라보신다.
미륵이가 군사들과 한바탕 승강하고 있을 즈음에 금성 태수( 金城太守) 중아 손( 中阿飡) 왕륭(王隆)이 입내(入內)하는 길에 이 고아경을 보았다.
왕륭은 수상히 여겨, 『 웬일이냐?』
하고 군사더러 물었다. 미륵의 앞을 막던 늙은 군사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으로 미륵을 가리키며, 『 이 아기가 용덕왕자라 하옵고 영결에 참례한다 하와 야료를 하오.』 하고 아뢰었다. 이 말을 듣고 미륵을 물끄러미 보던 왕륭이 미륵 앞에 꿇어 엎드리며, 『 용덕아 기오니까?』
하고 물었다. 미륵은 씨근씨근 하며, 『 그러하오.』
하고 대답한다. 왕륭의 금으로 아로새긴 오동 환도가 미륵의 눈에 띄었다.
왕륭은 한번 더 절하며, 『 금성 태수 중아손 왕륭이 현신이오.』
한다. 금성 태수 왕륭은 한주 도독(漢州都督)망에 오른 사람이요, 상대등 위진이 극히 사랑하는 바다. 풍채 좋고 말 잘 타기로 이름 높으며 더우기 칼을 잘 쓴다 하여 왕칼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다. 왕륭도 위진과 같이 나라이 날로 어지러워지는 것을 개탄하고 어찌하던 두 분 마마와 인 홍의 무리를 물리치고 나라의 운명을 한번 새롭게 해볼까 하는 야심을 가진 사람이다. 왕륭은 금성 대수로 간 지 삼년에 정병 일만을 기르고 군량과 마초도 삼년 쓸 것은 장만하였고 전하며 그 때문에 조정에서는 왕륭이가 역심을 품었다는 말까지 수군수군하게 된 사람이다. 이러한 왕륭이 미륵의 앞에 엎드려 절을 하니, 지그까지 길을 막던 군사들도 하나씩 둘씩 왕륭 모양으로 땅에 엎드렸다.
왕륭은 일어나 미륵의 오른 편 팔을 두 손으로 붙들어 부액을 하고내전을 향하여 들어 갔다. 묵묵히 지키던 군사도 감히 말하는 이가 없었다.
× × 그러나 이때에 빈전에서는 큰일이 생겼다. 태후는 왕께 매어 달리어 즉각으로 위진의 상대등을 면하고 인훙으로 상대등을 삼지 아니하면 목숨을 끊는다고 몸부림을 하였다. 왕이 여러 가지로 말하나 듣지 아니하고 위진의 목을 베기 전에는 살지 아니한다고 악을 썼다.
- 28 - 정화 마마는 자기를 빈(嬪)으로 대접하려던 인흥이다. 상대등이 되면자 기도 죽어 버린다고 야단을 하였다. 황(晃)아기며 만(曼)공주는 곁에서 울었고 근시하는 신하들은 먼 발치에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왕도 하릴없이 상대등 위진과 시중 인흥을 파직하고 태후의 뜻을 받아 즉각으로 이 손위 홍( 魏弘)을 상대등으로 하시고, 대아손(大阿飡) 예겸(乂兼)으로 시중을 하시었다. 대내(大內)에 모였던 만조 백관은 인산 날 갑자기 정변에 눈이 휘둥그래지었다.
파직되는 길로 전 상대등 위진은 태후께 불경하였다는 죄로 옥에 내 리우고 전시중 인흥은 집에 안치(安置)하라 하시는 전교가 내렸다.
인흥은 왕께서 마땅히 않게 생각하신 까닭이다.
새로 상대등이 된 위홍은 본래 태후와 좋지 못한 말이 있던 사람이다.
태후의 내명을 받아 위홍은 용덕왕자를 잡되 만일 그를 두호하거나 도망 케하는 자는 용덕왕자와 같이 벌하리라는 엄명을 내리었다. 위홍은 나라의 정권이 태후의 손에 있음을 알기 때문에 더욱 태후의 맘에 들기 위 하여 이러한 것이다. 예겸은 어진 사람이었으나 위홍의 매부였다. 미륵이 왕륭의 부액을 받아 거의 내전 문에 다다랐을 때 한떼 군사가 문 뒤에서 달려나와, 『 이 놈 섰거라!』 소리를 치며 미륵과 왕륭을 위에 쌌다. 왕륭은 군사들을 향 하여, 『 누구 신 줄 아느냐 ———— 용덕아기시다.』
하고 호령을 하였다. 그러나 군사들은 벌써 위진이 파직을 당하고 위홍 이 상대등이 된 줄을 알기 때문에 왕륭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무례하게 왕륭에게 육박하였다. 왕륭은 형세가 그른 줄 깨닫고 칼을 빼어 달려드는 군사 몇을 베고 미륵을 앞세우고 일변 따르는 군사를 막으며 대궐 북문인 현무문을 향하고 달아났다. 그러나 현무문에는 벌써 복병이 지키고 있다가 미륵과 왕륭을 엄습하였다. 왕륭은 현무문에서 복병이 내달음을 보고 미륵을 돌아 보며, 『 금성 태수 저 군사들과 싸우는 동안에 아기는 도망하시오.』 하고 칼을 들고 복병을 향하여 나가며, 『 너희들 금성 태수 왕륭을 아느냐?』
하고 시살하였다.
미륵은 늙은 은행나무 뒤에 숨기고 전통에 살을 빼어 복병을 향 하여 쏘았다. 한 살이 한 군사를 거꾸려뜨리나 전통에 살은 몇 개 안 남고 군사는 수없이 많았다. 미륵은 있는 대로 다 쏘아 십여 명을- 29 - 거꾸러뜨리고는 남은 살 하나를 메어 내전을 향하여 들여 쏘았다. 그 살은 푸르르 날이 바로 혜화전(惠化展) 뒷기둥에 박히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미륵은 왕륭이 군사들을 유인하여 빙고(氷庫)쪽으로 치우치 어간 틈을 타서 현무문을 빠져 나와 샛길로 돌아 달아나 버렀다. 이 일 때문에 오시나 지나서야 겨우 인산이 대궐문을 떠났다. 용덕왕자가 왔다 ——— 대궐 안에서 싸움이 났다 ——— 금성 태수가 반(叛)하였다, 하는 소 문 이상 안에 퍼지자 모였던 백성들은 무슨 큰일이난 줄 알고 수군수군 들먹들먹 하였다. 혹은 불원에 큰 난리가 벌어지리라 하여 달아나는 이도 있고, 혹은 용덕왕자가 병법이 신통하여 단신으로 능히 대궐 안에 있는 군사를 당하고 임금이 되시리라는둥 되었다는둥 별별 소문이 다 돌다가 마침내 영여 뒤에 나오시어야 할 왕이 아니 나오시는 것을 보고는 더구나 백성을 사이에 의심이 많았다.
혜화전 뒷기둥에 살이 박힌 것이며 용덕왕자와 왕륭이 문 지키던 군사를 다 죽이고 도망하였다는 말에 대궐 안은 물 끓듯하였다. 태후는 상대등 위홍을 명하여 세 영문 군사를 풀어 용덕왕자와 왕륭을 잡으라고 하였으나 마침내 잡지 못하고 북문으로 들어 오는 백성의 입으로 어떤 장군 하나가 혼자 말을 타고 북으로 달아났단 말을 듣고야 비로소 왕륭이 장안에 없는것은 다행이어니와, 용덕왕자의 간 곳을 몰라 태후는 발을 구르고, 사람들은 겁을 내었다.
「그저께 수리재에서 활 잘 쏘던 애꾸눈이가 용덕왕자이다」하고 다 알게 되매 더우기 대궐 안에서는 근심이 되어 왕께서는 옥체 미녕( 玉體未寧) 하시다는 핑계로 행행(行幸)이 없으시기로 결정을 하고 이러노라고 오시가 지나서야 인산을 모시게 된 것이다.
인산 행렬이 장안 대로로 나아갈 때에도 뒤에 따르는 대관들은 잠시도 맘을 놓지 못하였다. 참새 한 마리가 대관들은 잠시도 맘을 놓지 못하였다.
참새 한 마리가 대관들은 잠시도 맘을 놓지 못하였다. 참새 한 마리가 휘날아 지나가도 이것이 용덕왕자의 살이나 아닌가 하여 고개를 흠짓하고 공작 터( 孔雀址) 능에 다다른 뒤에도 어디서 용덕왕자의 살이 나오지아니하는가 하여 사람들은 힐끗힐끗 하늘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마침내 용덕 왕자의 살은 날아 오지 아니하고 말았다. 인산에 참례했던 사람들은 저녁때 집에 돌아 와서야 비로소 휘유하고 맘을 놓았다. 그러나 잠깐 맘을 놓은 뒤에는 다시 새 무서움이 생겼다. 왕륭이가 금성 정병을 거 느리고 서울로 치러 들어 오면 어찌하나, 용덕왕자가 수없는 살을 가지고 와서 장안으로 쏘아 들여 보내면 어찌하나, 그중에도 대궐 안에서는 더욱- 30 - 무서움이 많았다. 용덕왕자의 무서운 살———— 대궐 기둥에 박혀 부르르 떨던 살이 눈에 보이어 궁녀들은 밖에 나가기도 무서워하였다.
태 백 산 미륵은 천신 만고로 서울을 빠져 나왔다. 그러나 애꾸눈이를 잡으라는 영이 내려 애꾸눈이면 늙은이나 젊은이나 모두 붙들려 가는 판에 미륵은 며칠 동안을 낮이면 산에 숨고, 밤이면 정처 없이 북으로 달아났다. 그러나이려다가는 마침내 붙들린 근심이 있으므로 미륵은 한 꾀를 생각하였다.
미륵은 활과 환도를 거적에 싸서 질머지고 지팡이 하나를 짚고 아주 장님 행세를 하기로 하였다. 사람 없는 것에서는 한 눈을 뜨고 가다가 사람 이오는 기척이 있으면 곧 한 눈을 마저 감아 버리고 지팡이로 길을 찾았다.
이 모양으로 동네마다 밥을 빌어 먹으며 며칠을 가서 태백산( 太白山) 동구에 다다랐다.
미륵은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 늙은 소나무 뿌리를 베개 삼아 한 잠을 자다가 솔솔 부는 깊은 가을바람에 나뭇잎이 떨어져 굴러 다니는 소리에 잠이 깨니 벌써 석양이다. 몸뚱이에 검은 점 박힌 다람쥐가 도토리를 입에 물고 뛰어 오다가 미륵을 보고는 우뚝 서서 길단 꼬리를 흔들었다.
미륵은 다람쥐 모양으로 마른 보습나무 밑을 헤치고 쓰디쓴 도토리를 한바탕 주워 먹고 나서는 쫄쫄쫄 물소리 나는 데를 찾아 넓적 엎드린 주린 배를 찬물로 채웠다. 물을 먹고 나서는 또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도토리를 주워 먹으며 돌아 다닐 때에 어디서, 『 이 놈아, 웬 놈이냐?』 하는 소리가 들린다. 미륵은 깜짝 놀라 둘러 보니 웬 중 늙은이 중 하나가 여남은 살 된 상제를 데리고 오다가 지팡이로 턱을 받치고 서서 쉰다.
미륵은 얼른 소경 모양으로 턱을 받치고 서서 쉰다. 미륵은 얼른 소 경 모양으로 지팡이를 내어 두르며, 『 길 가던 애요.』
하였다.
『길 가던 놈이 길은 안 가고 거기서 무엇을 해?』
『배가 고파서 도토리를 주워 먹어요.』
『이놈아, 도토리를 주워 먹으면 다람쥐는 무엇을 먹고 겨울을 나?』
『다람쥐 먹을 것은 내놓고 먹어요.』
미륵의 말에 중은 껄껄 웃었다. 미륵은 여전히 소경 모양으로 두리 번- 31 - 두리 번하며 지팡이를 내어 둘었다. 그것을 보고 어린 상제가 깔깔 웃으며, 『 하하, 쟤가 장님이야요.』 한다. 미륵은 옳다 되었다 하고 속으로 기뻤다. 그러나 미륵이가 거의 다 길에 나왔을 때에 중이 지팡이를 들어 미륵의 머리를 딱 붙이며, 『 허 이놈! 어른을 속이고.』 미륵은 한손으로 얻어 맞은 데를 만지며, 『 아니요, 정말 소경이요.』
하였다.
『소경이 도토리를 주워. 이놈 네가 애꾸눈인 줄을 내가 다 아는데.』
미륵은 자기를 븥들려는 사람이나 아닌가 하여 머리가 쭈뼛하였다.
그러나 중은 말을 이어, 『 요사이 용덕왕자 잡노라고 애꾸눈이 잡는다니까 너도 용덕 왕자를 알까봐 서? 하, 그놈 네까진 놈을 누가 용덕왕자로 알어?』 하고 중은 지팡이 끝으로 미륵의 눈깔을 찌르려 한다. 미륵은 안심 하고 선한 눈을 번쩍 떴다. 그 눈은 석양 빛을 받아 빤짝하였다.
『참말 애꾸눈일쎄.』
하고 어린 상제가 좋아라고 웃는다.
눈 뜬 미륵을 보고 중은 뚱뚱한 배를 흔들고 가늣한 눈을 감고 한참이나 유쾌한 듯이 웃더니, 어찌할 줄을 몰라서 멀뚱멀뚱하고 섰는 미륵을 보고, 『 너 어디 사는 아이냐?』 하고 귀여운 듯이 묻는다.
『나 저 저 수리재 살아요.』
『이름은 무엇이고?』
『애꾸눈이고.』
『하하, 이름 좋다.』
하고 중과 상제는 또 한바탕 웃는다. 이때에 어디서 꽝꽝하고 쇠북 소리가 울려 온다.
중은 울려 오는 쇠북 소리를 듣고 얼른 웃음을 그치고 합창하고 쇠북 소리 오는 편을 향하여 여러 번 절하고 입으로 무엇을 중얼거리고 어린 상제도 늙은 스님 하는 대로 조그마한 두 손뼉을 마주 대고 고깔 쓴 머리를 굽혔다 들었다 한다.
미륵은 우두커니 그것을 보고 있었다. 늙은 중의 반들반들한 머리에 떡갈나무 잎 하나가 떨어져 미끄러져서 먹물 들인 칡베 장삼 등으로 굴려 내 린다. 수없는 금 화살 같은 저녁 볕이 잎 떨어진 나무 사이를 뚫고- 32 - 서에서 동으로 가로 달아난다. 쇠북 소리는 그치었다. 웅웅하는 남은 울음이 고요한 수풀 속에 갈길을 잃고 헤맨다. 미륵은 문뜩 자기의 고요한 수풀 속에 갈 길을 잃고 헤맨다. 미륵은 문뜩 자기의 신세를 생각 하고 설움이 생겼다. 며칠 동안 도망해 다니기에 정신을 못 차려 미처 생각할 새 없던 기억이 한꺼번에 솟아 올랐다. 미륵은 다른 곳을 보는 듯 고개를 돌리어 흘러 나오는 눈물을 얼른 주먹으로 씻어 버렸다.
<꼭 원수는 갚고야 만다!>
하고 미륵은 이를 악물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중은 예불을 마치고 한번 크게 기침하여 가래를 뱉아 버리고 다시 능글능글 웃으며, 『 그래 부모 계시냐?』
하고 미륵에게 묻는다.
『다 돌아 갔어요.』
하고 미륵은 코를 풀었다. 미륵은 아바마마를 생각하고 입에 칼을 물고 꿈에 오셨던 어마마마를 생각하고 떨리는 몸을 억지로 눌렀다.
『그러면 어디로 가?』
하고 중이 또 묻는다.
『밥 얻어 먹으러 가요.』
『어디로?』
『아무 데나.』
중은 물끄러미 미륵의 괴로와하는 얼굴을 보면서도 여전히 능글능글하게, 『 너 우리 집 가련? 우리 집에 가서 볼 때어 주면 밥은 먹여 주마.』
하고 웃는다.
미륵은 서슴치 않고, 『 가요.』
하고 대답하였다.
중은 또 웃으며, 『 너 이놈 눈깔이 하나 밖에 없으니까, 밤낮 한 아궁이에만 불을 뗄레?
우리 부엌에 아궁이 둘이다.』
미륵도 웃으며, 『 두 아궁이 아니라 스무 아궁이라도 때요. 나무만 대면 때기는 내가 때요.』
하고 손에 들었던 지팡이를 부지깽이 삼아 길에 깔린 많은 나무를 한편으로 밀었다. 중이 그것을 보더니,- 33 - 『어 그놈 불을 곧잘 때겠다. 그렇지마는 너무 처때면 밥은 눋고 장판은 타는 법이다.』 하고 껄껄 웃는다.
『눋는 냄새가 나면 얼른 불을 물리지요.』
하고 미륵은 부지깽이로 마른 나뭇잎을 제 앞으로 끌어 당기었다.
『하하하하, 눋는 냄새가 날 때에 불을 물리면 안 눋겠다. 하하 하하, 어리석은 놈 같으니.』
『그러면 아주 태워 버리지요.』
『하하하, 그놈 우스운 놈일쎄, 어서 가자.』
하고 중은 걷기를 시작한다. 상세와 미륵도 뒤를 따른다. 중은 길을 가면서 뒤는 돌아 보지 아니하고 혼자 웃어가며, 『 이 놈 장판을 눌렀다 봐라. 네 껍질을 벗겨서 널 테다. 하하하하.』 하고 뚱뚱한 몸을 이찔이찔한다.
『내 껍질이 눌으면 그담에는 스님 껍질을 벗겨서 바르지요.』
하고 미륵이가 상제를 보고 눈을 꿈쩍하였다.
이 말에 중은 우뚝 서서 뒤를 돌아 보더니 미륵의 웃는 애꾸눈을 보고 또하 하하하 웃으며, 『 허, 그놈 앙큼한 걸. 아무려나 내 껍질이 눋거든 얼른 냉수나 떠 다쳐라! 하하하, 엉큼한 놈 다 보겠거든.』 이런 이야기를 하며 낙엽이 부걱부걱하는 길로 고개를 넘고 시내를 건너고 산 모퉁이를 돌고 침침한 수풀 속을 들락들락하여 마침내 병목같이 된 좁은 모퉁이를 돌아 서니 큰절의 지붕들이 질펀히 보인다. 이 것이 태백산 세달사(世達寺)라는 절이다.
미륵은 중과 상제를 따라 절 법당 앞을 지나 만나는 중들에게 애꾸눈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십왕전(十王展) 모퉁이에 있는 초막으로 들어갔다. 초막 일각문에는「보광암(普光庵)」이라는 흰 바탕에 파란 칠 한 현 판이 걸렷다.
미륵은 그 중의 한 초막에서 불을 때아 주고 있게 되었다.
그 중의 이름은 허담이라고 하는 젊은 중들은 그를 「익은 스님 」 이라고 불렀다. 허담의 얼굴이 붉고 눈썹도 없고 머리도 훌떡 벗어진 것이 마치 삶아 낸 중 같다고 해서 그렇게 별명을 지은 것이다. 「익은 스님 」 하고 장난군의 젊은 중들이 부르면 곧잘 「왜야?」하고 대답을 하면서도 어떤 때에는 「 이 놈들!」하고 성도 냈었다.
그러나「익은 스님」은 좀처럼 성낸 빛을 보이지 아니하고 평생 그- 34 - 가늣한 눈을 벙긋벙긋 웃고 젊은 중들을 보고는 농담하고 웃기를 좋아하였다. 가끔 중으로 입에 담지 못할 추한 소리도 하였으나 그는 일생에 계집을 접해 본 일이 없다고 누구나 허락한다.
이 스님은 날마다 별로 경을 읽는 모양도 아니 보이고 그렇다고 참선을 하는 모양도 안 보이고 그렇다고 참선을 하는 모양도 안 보이고 그저 웃고 농담하고 산으로 돌아 다니고 무엇보다도 낮잠 자기를 좋아 하였다. 아침 먹고 나서 한바탕 떠들다가 목침 하나 베고 누우면 낮이 되거나 저녁때가 되거나 코를 드렁드렁 골았다.
세달사(世達寺)는 큰절이라 중이 오륙십명은 되었고 날마 들고 나는 객 승도 일이십명은 되었다. 그러나 「익은 스님」은 누가 오거나 말거나 도무지 아랑곳 아니하고 젊은 중들과 장남하기로 세월을 보내는 듯하였다.
그래서 그렇게 공경이나 대접은 못 받아도 그를 미워하는 이는 없었다.
마른 중들 같으면 이만한 나이면 권속도 여러 사람 되련마는 지렁이라는 별명 듣는 어린 상제와 미륵과 둘 밖에 없었다. 그동안에 상제도 여러 사람 정 하였으나 어린 것을 길러서 낫살이나 막게 되면 대개는 달아나 버리고 어떤 놈은 돈푼 가는 세간을 훔쳐 가지고 달아나 버리고 좀 똑똑하고 글자나 말 마디나 하는 놈은 다른 중에게 빼앗겨 버렸다고 한다.
달아나거니 빼앗긴 대야 별로 슬퍼하거나 괴로와하는 빛도 없고 만일 누가 동정하는 말을 하면, 『 나무아미타불 다 인연이어.』
하고 웃어 버린다.
이번에도 밥 지어 주던 놈이 달아나서 며칠 동안 「익은 스님」이 손수 밥을 짓고 불을 때던 판에 마침 미륵을 보고 붙들어 온 것이다.
미륵은 지렁이와 함께 물을 긷고 불을 때고 방과 마당을 쓸고 밤이면 막대기 스님이라는 팔십이나 넘은 귀머거리 노스님께 경도 좀 배우고 또 이따금 범패(梵唄)도 배웠으나 대개는 둘이서 장난으로 세월을 보냈다.
「익은 스님」이 낮잠 들기를 기다려 미륵은 활을 들고 지렁이는 환도를 들리고 산으로 올라 가 새도 잡고 토끼도 잡았다. 지렁이는 나이 어리나 심히 날래고 기운이 있어서 칼을 빼어 들고는 토끼나 너구리를 따라 가서는 기어이 잡고 말았다. 더구나 겨울이 되어 눈이 오면 두 아니는 「 익은 스님 」 잠 들기를 기다려 부리나케 산으로 올라 갔다. 그래서 미륵이가 활을 쏘아 잡은 것, 지렁이가 칼로 쳐 잡은 것은 마른 나뭇 가지를 주워다가 불을 피워 놓고 구워서 배껏 쳐먹었다. 무론 절로 가지고 오면 살생( 殺生)이라고 야단이 날 것이다. 가끔,- 35 - 『 이 놈들 어디 갔었어?』 하고 스님께 꾸중을 들을 때도 있었으나 별 일은 없었고 한번은 스님이, 『 이 놈들아, 웬 누린내가 이리 나니?』
하고 코를 킁킁하였으나 그만하고 말았다.
허담 집에 간 지 한 달만에 미륵도 머리를 까고 중이 되었다. 막대기 스님이 웃으며 미륵더러, 『 네 스님은 익은 중이니 너는 선 중이라고 하려무나.』 하는 것이 재미 있어서 미륵은 자칭 선종(善宗)이라고 하였다. 지렁이라 던상 제도 소허(少許)라고 이름을 지었건마는 그 이름을 지어 준 허담 스님조차 그 이름을 잊어 버리고 「지렁아」하고 불렀다. 미륵이도 처음에는 사람들이 「애꾸야」하고만 부르고 선종이라고 점잖은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였으나 선종이란 것은 「 선 중」이라는 뜻인 줄 알게 된 뒤에는 모두 재미 있다고 해서「선종아」하고 불렀다. 그러나 익은 스님은 자기가 지어 준「태허(太虛)」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한해 이태 지나갈수록 선종의 장난은 더욱 심하게 되었다, 비록 나 많은 중이라도 자기 맘에 들리면 곧 들이세고 그리고도 맘에 차지 안히라면 두들 기도 하였다. 한번은 노전(爐殿) 중이 자기더러 재 울리러 온 시 줏집 처녀를 따라 다녔다고 빈정대는 소리를 듣고 분을 참지 못하여 그 논전중을 당그렇게 들어다가 눈 구덩이에다가 거꾸로 박고 절구질을 하여서 사중이 크게 소동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선종은 그렇게 발끈발끈 성을 잘 내는 삶은 아니었다. 그는 평소에는 장난을 하고 사람에게 친절하였다.
다만 선종이 참을 수 없는 것은 빈정대는 것과 교만한 것과 속이는 것이다.
이런 일을 당할 때에는 선종은 얼굴이 주홍빛이 되고 숨이 씨근거리고 팔을 부르걷고, 『 이 놈 내가 너를 죽일란다.』
하고 대들었다. 이런 때에는 잘못한 편이 얼른 비는 것이 상책이었다.
『엑, 곰 같은 놈!』
『소 같은 놈!』
하고 한번씩 혼 나 중들은 슬슬 피해 가면서 선종이 못 들을이만큼 원망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선종은 약한 사람에게 대하여서는 동정이 깊었다. 세 달사( 世達寺) 수많은 중들 가운데 좀 젠 체하는 큰 중들은 대개 선종에게 한두 번씩 혼이 났어도, 좀 못 난 듯한 중이나 약한 중 어린 중들은 대개 선종에게 한두 번씩 혼이 났어도, 좀 못난 듯한 중이나 약한 중 어린 중들은 선종의 무슨- 36 - 어려운 일이나 억울한 일이 있으면 혹은「선종 스님 」 혹은 「 애꾸 스님 」 하고 선종에게 하소연을 하였다. 선종이 그 하소연을 들어 보아서 이 치가 그럴 듯하기만 하면 마치 제 일이나 되는 듯이 분 낼 데는 분을내고 슬플 때는 눈물을 흘리면서, 『 응, 해내 주마!』 하고 남의 싸움이라도 가로 맏았다.
이 모양으로 선종은 거의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그는 상제도 없고 돈도 없는 중이 병이 나면 밤을 새워가며 병구원을 하노라고, 약한 중이 강한 중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면 대신 원수를 갚아 주노라고 늘 바빴다.
이러하기 때문에 세달사 중들이 선종을 미워하기도 하면서도 일변으로는 무서워하고 또 존경도 하였다. 그래서 누가 감히 선종을 건드리지 못 하고 선종을 보면 힐끗힐끗 곁눈질만 하고는 슬슬 피하였다.
선종에게 혼이 난 중들은 억울한 김에 선종의 스님 되는 허담 스님께 하소연을 하였다. 그러면 허담 스님은 껄껄 웃으면서, 『 선종은 미륵불이라네, 모든 백성의 원통한 것을 풀어 주려고 오 신 미륵불 이어 하하하.』 하고 웃어 버렸다.
스님이 자기를 미륵불(彌勒佛)이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선종은 맘이 솔깃하였다. 자기의 아명이 미륵인 것도 무슨 깊은 인연이 있는 것 같고, 또 유모의 말에 뒷대궐마마가 미륵블을 꿈에 보고 자기를 낳았다고 하던말 대궐 마마가 미륵불을 꿈에 보고 자기를 낳았다고 하던 말도 무슨 깊은 인연이 있는 듯하였다.
<오냐. 내 어머니의 억울한 것을 풀기 위하여는 천하사람의 억 울 울 풀자.>
선종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모든 괴흉한 놈, 모든 남을 해치는 놈, 모든 불의한 놈, 모든 젠 체하고 남을 못견디게 구는 놈을 모조리 대가리를 바숴 버리자 ———— 선종의 맘속에는 이런한 생각 이 들어 가게 되었다.
선종이 이 이십세기가 넘어서부터 가끔 혼자 우두커니 앉아서 무슨 깊은 생각을 하는 양을 사람들이 보았다. 그는 세달사에 들어 온 지 오륙 년에 어머니의 원수도 잊어 버리고 장난에 미쳐 어름어름 세월을 보낸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또 남아가 이십이 넘도록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어 이 사람 저 사람 싸움이나 하고 지나는 것이 스스로 부끄럽기도 하였다.
더구나 자기보다도 세 살이나 나이 어린 소허(少許)가 힘써 글 공부를 하고 밤이면 몰래 모양을 볼 때에 더욱 부끄러웠다. 대체 지렁이는 밤마다- 37 - 어디를 가는고————선종은 이것이 알고 싶었다.
백의 국선하 룻 밤은 선종의 잠을 이루지 아니하고 소허의 거동을 지키었다. 익은 스님이 잠이 들어 코를 골기 시작할 때에 소허는 가만히 일어나서 밖으로나 갔다. 선종도 가만히 일어나서 소허의 뒤를 따랐다.
소허는 사방을 휘휘 둘러 보더니 사람이 없는 것을 본 후에 상봉( 上峰)으로 가는 길로 올라 갔다. 별들이 깜빡깜빡하고 부엉이가 울고 이따금 혹은 왼편에서, 혹은 오른편에서 산 짐승들이 놀라서 뛰는 소리가 들리고 어떤 때에는 호랑이 눈인 듯한 불이 번쩍번쩍하는 양도 보인다.
이 모양으로 얼마를 올라 가서 한 모퉁이를 돌아 서니 쾅쾅쾅 내려 찧는 폭포수 소리가 들린다. 이것은 대왕폭포라고 일컫는 폭포다. 선종은 살살 소 허의 뒤에 따라오다가 오똑 서서 가만히 솔포기 뒤에 몸을 감추었다.
소허는 폭포 앞에서 옷을 활활 벗고 폭포 물에 몸을 씻는다. 그리고 나서는 또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다시 담벼락같이 깍아 세운 벼랫길을 올라간다. 선종도 따라 올라 갔다.
나무 속 산꼭대기를 다 올라 가서 소허(少許)는 잠시 바위 위에 앉아 쉰다. 선종은 한 여남은 걸음 될이만큼 가까이 기어 가서 또 한 바윗돌 뒤에 숨었다.
소허는 이윽고 일어나서 주머니에서 부시와 부싯돌을 내어서 치기를 시작한 다. 딱딱 소리가 날 때마다 빨간 불똥이 이리로 저리로 휘 임하게 흩어지어 떨어진다. 얼마만에 부싯깃에 불이 빨갛게 댕기고 거기 서는 연기가 몰씬몰씬 올라 간다. 소허는 바위 밑에 쌓았던 마른 칡 백향 가지와 마른 풀을 베어 부싯깃에 붙은 빨간 불을 대고 후후 불었다. 무엇에나 약 고 규모 있는 소허의 행동을 선종은 무척 부러워하였다.
이윽고 불이 향나뭇 가지에 붙어서 첫 불길이 펄떡하고 구부러진 붉은 혀끝을 내어 둘렀다. 알맞추 부는 첫 가을 바람에 불이 일어 순식간에 불길이 활활 피어 오른다. 어둠 속에 붉은 불기둥이 하늘에 오르려고 애쓰는 듯 하였다. 신종은 일찍 지렁이라는 별명을 듣던 소허가 그 처럼 엄숙하고 위품 있고 웅장한 양을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그가 얼굴과 가슴에 불빛을 담뿍 받아 가지고 북녘을 향하여 합장 배례할 때에 소 허는 마치 거룩한 중도 같고 도사도 같았다. 선종은 너무도 놀라와서 숨이 막힐듯 하였다. 평소에는 자기에게 눌려 이래라 하면 이리하고 저래라 하면- 38 - 저리 하여 못나디 못나던 지렁이가 저렇게 위풍이 늠름한 대장분 줄을 선종은 몰랐다. 소허가 매양 공부에 힘을 쓰고 말이 적고 꾀가 많고 한 것은 보았다. 그저 한 못난이로 알아 왔던 것이다. 선종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달사 중들을 다 소허를 「지렁이 지렁이」하고 못난이로만 여겨 왔던 것이다. 과연 그 얼굴이 까무잡잡한 것이라든지, 나이를 먹어 갈수록 더욱 몸이 가늘고 키가 늘씬한 것이라든지, 말이 분명치 못한 것이라든지, 남이 아무리 못 견디게 굴어도 모르는 체 못 들은 체하는 것이라든지, 누가 보아도 못난이라고 아니할 수는 없었다. 선종이가 어디서 온 어떠한 사람인 지를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모양으로 지렁이의 일도 아는 이가 없었고 또 누가 그리 알아 보려고도 하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지렁이는 범상한 사람이 아니다.』
하고 선종은 바위 뒤에 숨어서 더욱 유심하게 소허를 바라보았다.
소허가 북녘을 향하여 수없이 합창 배례할 때에 난데 없는 흰 도포 입고 오각 건( 鳥角巾)을 쓴 노인이 붉은 얼굴에 흰 수염을 날리고 나타난다. 그 노인이 나타나자 소허는 두 손으로 땅을 짚고 넓적 꿇어 엎드린다. 그 노인이, 『 일어나거라.』 할 때에야 비로소 일어난다. 노인은 불붙은 왼편 바위 위에 걸터 앉고소 허는 그 앞에 두어 걸음 떨어져서 꿇어 앉는다.
노인은 이윽히 소허를 내려다보더니, 『 네가 과연 뜻을 세웠느냐?』
하고 엄숙하게 묻는다.
불길이 한번 춤을 춘다.
소허는 공손히 고개를 들어 노인을 우러러 보며 그 조그마한 눈을 깜박깜박 하며, 『 네, 뜻을 세웠읍니다.』
하고 대답한다.
노인은 다시, 『 네 세운 뜻이 무엇이냐?』
『창생을 도탄 중에서 건지는 것입니다.』
『네 몸의 안락과 부귀 영화를 누리려는 사욕이 없느냐?』
『없읍니다.』
『언제부터 없느냐?』
『다시 그러한 사욕을 아니 가지기로 어떠한 맹세를 하겠느냐?』
- 39 - 이 말에 소허는 좀 주저한다. 노인은 소허가 주저하는 양을 이 윽 히 보더니, 『 창생을 건지려 할 때에 하늘이 너를 도와 네 칼이 불의를 베려니와, 사욕을 채우려 할 때에 하늘이 너를 버려 네 칼이 네 살을 베리라. 이 제나라이 어지러워지어 창생이 건지어 줄 이를 찾의되 하나도 나서는 이가 없구나. 하늘을 바라보매, 살기와 요기가 하늘에 찼으니 반드시 오 래지 아니하여 천하가 물 끓듯하고 사람이 삶일 듯하려니와, 이때에 창생을 도탄에서 건질 이가 누구냐? 이제 네 얼굴울 보니 비록 지혜와 용맹이 있으나 의와어짐이 부족하구나. 의 없으면 네 지혜와 용맹이 불의를 크게 할 것이요, 어짐이 없으면 백성이 네게 오래 붙지 아니하리라. 내 이창 생을 도탄에서 건질 사람을 찾아 삼국(三國)을 두루 돌엇거니와 만나지못하고 이제 너를 만났으되 네 또한 의와 어짐이 넉넉지 못하니 슬프다. 이나라를 어이하며 이 창생을 어이하랴. 아아 ———— 하늘이 무심함이냐? 이 백성이 죄 많고 복이 엷음이냐?』 하고 하늘을 우러러 길게 한숨을 쉰다.
소허가 한번 더 일어나 절하며, 『 스승 이 시여, 소자를 버리지 마시고 소자에게 창생을 건질 도략과 재주를 주옵소서.』
하고 무수히 이마를 조아렸다.
『도략과 재주!』
하고 노인은 불쾌한 듯이 낯을 찡그리더니, 『 네 구하는 것이 도략과 재주냐? 창생을 건질 길이 도략과 재주에 있는줄 아느냐? 빨리 나는 재주는 새만한 이 없고, 빨리 뛰는 재주는 이 리와 범만한 이 없고, 변화 난측하기는 구름만한 이 없고, 눈에 아니 보이고 자취 있기는 바람만한 이 없고, 천 길 물속으로 만리의 바다를 가기는고 기만한 이 없거늘, 사람이 무슨 재주를 배우려는고. 재주로 창생이 건지어지고 도략으로 나라이 편안할진댄, 무슨 근심이 잇으랴. 나라와 창생을 건지는 것은 도략도 재주도 아니요, 네 맘이니라———— 의 와어 짐이니라. 나라이 어이하여 어지럽고 백성이 어이하여 도탄에 드는고 ———— 의 없고 재주 있는 이 많으므로 됨이니라.』 하고 일어나 도포 소매를 한번 후리치니 문뜩 붉은 구름이 산을 싸고, 또한 번 후리치니 일진 광풍이 불어 와 그 구름을 다 걸어 버린다. 그동안이실 로 순식간이언마는 전본 만화가 일어난 듯하다. 소허는 「 스승님 」을 부르고 땅에 엎더지고 선종은 눈이 휘둥그래지었다.
- 40 - 『 네 지혜를 버리고 의를 배워라.』
하는 한 마디를 남기고 노인은 문뜩 어둠 속으로 스러지고 말았다.
선종은 곧 뛰어 나가 그 노인을 붙들려 하였으나 미처 그리하지못하였다. 그리고는 살그머니 일어나 소허보다 먼저 집으로 내려 와 아무 일도 모르는 체하고 자리에 누웠다. 익은 스님은 그런 줄도 모르고 코를 골고 자다가 잠깐 코 골기를 그치고 돌아 눕는다. 이윽고 소허가 가만히 문을 열고 들어 와 선종의 곁에 눕는다.
선종은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노인의 말에 깊은 뜻이 있는것 같고, 그 말은 다 자기를 위하여 하여 준 말과 같이 생각하였다. 나라는 어지럽고 백성은 도탄 중에 들어 건지어 줄 이를 기다린다, 의로써 백 성의 맘을 끌고 어짐으로써 백성의 맘을 잡아 맨다, 그것은 과연 옳은 말이다.
그것은 내가 꼭 해야만 할 일이다, 하고 속으로 으쓱하였다.
이튿날 선종은 아무 것도 하는 체 아니하고 소허의 하는 모양만 주목 하였다. 소허는 그날 종일 매우 괴로운 모양이다.
밤에 익은 스님이 잠이 들고 소허가 가만히 일어 나가는 것을 보고 선종도 따라 일어나 나갔다. 선종은 소허의 눈에 안 띄울이만큼 뒤를 따라서 어젯밤에 가던 길로 가다가 폭포로 너머어가는 등성이에서, 『 소 허야!』 하고 불렀다.
소허는 깜짝 놀라 우뚝 선다. 선종은 얼른 뛰어 가 소허의 손을 잡았다.
예전 같으면, 『 이 녀석 어딜 가?』
하고 뺨이나 한 개 붙일 것인데 그리 아니하고, 『 소 허야, 너 어디 가니?』
하고 정답게 물었다.
소허도 선종의 행동이 전 다름을 보고 적이 안심도 되었으나 자기의 비밀을 말할 수 없으므로 잠깐 머뭇머뭇 하다가, 『 언니, 내가 여기 오는 줄 어떻게 알았소?』 하고 되물었다.
선종은 소허의 어깨에 팔을 얹으며, 『 네 밤마다 어디로 가는 것을 내가 다 안다. 알기는 알지마는 네 입으로 하는 말을 듣고 싶다. 너와 나와 사형사제(師兄師弟)로 십여 년이나 같이 자랐으니 사생이라도 같이 해야 할 터인데 서로 속여 쓰겠느냐——— 어디를 밤마다 가서 무엇을 하느냐? 바로 말을 해라!』 - 41 - 하고 어둠 속으로 선종의 애꾸눈이 빤짝거리는 것이 보인다.
소허는 처음에는 선종을 속이려 하였으나 선조이가 말하는 눈치가 자기를 몇 번 따라 와서 모든 일을 다 아는 듯하므로 속일 수가 없었다.
이 좋은 스승을 자기 혼자 가지고 혼자만 배우고 싶었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 싫을 뿐더러, 장차 천하를 얻으려 하여도 거추장거리는 다른 인물이 잇기를 원치 아니하는 까닭이다. 더구나 선종과 같이 뛰어나는 힘과 재주가 있는 사람을 이러한 스승에게 끌고 가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다.
할 수 없이 소허는 선종에게 대강 말을 하였다. 그러나 아무쪼록 그 스승이라는 이가 그리 신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중언 부언하여 아무쪼록 선종의 맘을 끌지 아니하려고 애를 썼다. 선종은 물론 소허의 약은 속을 다 아니 별 로이 눈치도 아니하고 둘이 같이 목욕한 뒤에 둘이 같이 산을 올라갔다. 이로부터 선종과 소허는 백의 국선에게 대하여서도 사형 사제가 되었다.
백의 국선은 항상 소허더러는 사욕을 버리기를 말하고 선종더러는 계집과 허욕을 삼가기를 말하였다. 그리고 더욱 힘 있게, 『 너희 둘은 다루지 말고 합심하여 창생을 건지라. 높은 자리를 바라지말고 창생을 건지기를 바란다 ———— 너희들은 다투지 말고 하나이 되라.
다투어 갈리면 둘이 다 다른하나에게 망하리라.』
하고 선종과 소허가 합심하여 하나가 되기를 훈계하였다.
이로부터 삼년 동안 선종과 소허는 날마다 백의 도인에게 병법과 기타 여러 가지를 배웠다. 그동안에 선종이나 소허나 백의 도인의 정성된 훈계에 감동 되어 서로 속이고 서로 시기하기를 그치고 사랑하는 형제 모양으로의 좋게 지내었다. 봄철 날 따뜻한 때나 가을 바람 살랑살랑할 때 또는 마을에 재 울리려 가서 밤 새우는 동안에 선종과 소허는 단둘만 있을 기회만 있으면 어찌하면 나라를 바로 잡을까, 어찌하면 창생을 건지어 태평 세계를 만들까 ———— 이러한 의논을 하고 또 무슨 일이 있든지 서로 돕고 어려운 일이나 죽을 일에는 둘이 같이 하기를 굳게 굳게 맹세하였다.
헌강대왕이 승하하시고 만공주(蔓公主)께서 즉위하였다는 소문이 돌자 천하는 다시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였다. 어느 이손이가 모반을 하다가 발각이 났다는둥 만공주가 날마다 얼굴 잘난 젊은 사람을 밤이면 둘씩 궐내로 불러 들인다는둥 이번에야말로 용덕왕자가 나서리라는둥 여러 가지 뜬 소리가 돌고, 또 이러한 산중인 세달사에도 수상한 사람들이 둘씩 셋씩 왔다 갔다하게 되었다.
- 42 - 징 조 미륵이가 대궐에서 야료을 하는 때에 즉위하신 헌 강대왕( 憲康大王) 도 즉위 하신 이듬해에 역시 스물 다섯 살에 돌아 가시었다. 해마다 국상을 당하매 민심은 가라앉을 바를 모르고 물 끓듯하였다.
헌강대왕은 즉위하신 지 십 일년 동안을 그 어머니 되시는 문의 태후( 영화 황후) 와 상대등 위홍의 손에 쥐어 만승의 임금으로도 무슨 일 한 가지를 맘대로 해보지 못하였다. 왕은 본래 총명한 천품을 타고 나서 또 학문을 숭상하여 혹은 황룡사(黃龍寺)에 백고좌(百高座)를 베풀고 친히 불도의 설법도 듣고, 혹은 국학(國學)에 가시어 여러 박사들의 강론도 들으시고 도당나라나 일본서 오는 사신이 있으면 여러 날을 두고 궐내에서 불려 들여 친히 그 나라의 여러 가지 문물과 사경을 들으시었으며 또 가끔 국내로 순행하여 혹은 민가에서 숙식하고 혹은 광야에 장막을 치고 숙식 하면서 자세히 민정을 살피시었다. 그래서 당나라나 일본 사신의 말에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이 나라에 행하려 하였고 또 민가에 옳지 못한 일이 있으면 곧 그것을 고치라고 상대등과 시중에게 명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왕은 옛날 어진 임금과 같이 어진 임금이 되어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바로 잡아 보려고 무척 애를 쓰시었다.
그러나 왕의 힘쓰심도 아무 효력이 없었다. 어머니 문의태후와 상대등 위홍이 하나이 되어 벼슬에 사람 쓰기를 사정으로서 하고 매사에 왕을 속이고 눌렀다.
왕의 뜻을 알아 주고 왕과 같이 나라를 근심하는 사람은 시중 예 겸( 乂兼) 과 이손 민공(伊飧敏恭)이었다. 그러나 예겸도 태후에게 등을 댄 사아 대등 위홍을 대항할 힘이 없고 민공은 더구나 벼슬 자리에 있지아니하니 힘이 없었다.
예겸은 여러 번 왕께 간하여 상대등 위홍을 내치고 문의태후가 국정에 간섭 못하시도록 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문의태후는 왕이 십 칠세가 되 기를 기다려 국정을 왕에게 맡긴다고 하였고, 왕이 십 칠세가 지난 뒤에는 어찌 모르는 체하랴 하여 전혀 모든 일을 맘대로 하였다.
문의왕후가 위홍과 불의의 관계가 있기는 경문왕이 앓아 누운 때부터다.
그러다가 경문왕이 승하하시고 상대등 위진을 내어 쫓은 뒤로는 아무도 꺼리는 바 없이 위홍은 주야를 불철하고 태후의 침전에 모시었다.
왕도 나이를 먹을수록 이 눈치를 알고 조정에서도 입 밖에 내어서는 말하는 이가 없어도 아는 이끼리는 서로 눈을 끔쩍끔쩍하고 점점- 43 - 여항에까지 이러한 소문이 나게 되었다. 한번은 예겸이 참다 못하여 위홍을 보고, 『 경문대왕을 생각하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위홍은 얼른, 『 시중이야말로 전왕을 생각하오!』
하고 도리어 호령을 하였다. 이것은 위홍이 자기가 문의태후와 불의의 관계 있는 것을 감추기 위하여 예겸과 정화마나 사이에 관계가 있는 것처럼만 들려는 꾀였다. 예겸은 얼른 그 꾀를 알아 차렸다. 그러나 위홍이가 한 번만들이 내려고 생각한 일은 아니하는 없는 줄을 알기 때문에 이 때부터 예 겸은 어느 날 어느 시에 자기의 머리에 벼락불이 내려 오려는가 하였다.
그러나 예겸은 위홍의 음흉한 보복의 불이 떨어지기 전에 먼저 손을 쓰기로 결심하였다. 이왕 위홍의 흉계와 세도에 몸이 위태할 것이면 한 번왕께 말하여 나라를 바로 잡는 일을 하자고 결심을 하였다.
때는 마침 삼월, 서울 장안 양달에는 앵두꽃 복숭아꽃이 방싯 터지려 할 때다. 예겸은 왕께 여쭈어서 경치 좋은 동해 바닷가 여러 고을을 순행하 시기를 청하였다. 왕을 모시고 서울을 떠나서 순행하는 동안에 여러가지 일을 꾀하자는 뜻이다.
젊은 왕은 예겸의 말을 기뻐하였다. 더구나 대궐 안에 있으면 뒤 숭숭 한 일만 많고 만에 하나도 맘대로 되는 일은 없고 태후는 밤낮으로 위홍과 불의의 쾌락에 취하는 꼴을 볼 수 없고, 이러한 속에서 젊은 가슴을 아프게 하던 왕은 잠시라도 그런 대궐을 떠나가 동해 바닷가의 시원한 봄바람을 쏘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그래서 곧 순행을 떠나시기로 전교를 내리시었다.
위홍은 여러 번 왕께 간하여 멀리 서울로 떠나시는 것이 마땅치 아니 함을 아뢰었다. 그는 예겸이가 왕을 모시고 순행하는 동안에 어떠한 꾀를 지을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왕은 굳이 듣지 아니하고 또 태후는 항상 거추장거리고 눈을 꺼리던 왕이 멀리로 떠나는 것을 좋게 여 기기 때문에 마침내 왕은 뜻대로 예겸 이하 수십명 가까운 신하와 간략한 시위하는 군사를 거느리고 순행의 길을 떠나시었다.
왕이 순행을 떠나신 뒤에는 위홍이 왕이나 다름 없었다. 이로부터 위홍은 밤낮 내전에 묻히어 대궐 밖에 나오지를 아니하고 배후와 의논 하여 내직· 외직에 많은 벼슬을 갈아 자기에게 싫은 자를 물리치고 자기의 뜻에 맞는 자를 세웠다.
- 44 - 그 뿐 아니라 항상 말썽이 되는 정화마마를 황(晃)왕자와 함께 뒷 대궐로 쫓아 보내고 말았다. 상궁들 중에도 태후와 위홍의 눈에 안 드는 것은 다 내보내고, 혹 위홍이가 두 번 거들떠 보거나 말 한 마디라도 붙이는 궁녀가 있으면 곧 태후의 명으로 혹은 위홍의 눈을 끌던 뺨을 도리고, 혹은 위홍의 말 대답을 한 입을 도리고, 혹은 젖을 도리고, 하문을 도리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위홍이만 내전에 들어 오면 궁녀들은 모두 고개를 돌리고 피신 하였다.
위홍은 나이 오십이 넘었건마는 아직도 서른 댓 밖에 안되어 보이고 얼굴이 잘나고 풍채가 좋아 젊어서부터 수없이 남의 딸과 아내를 버려 준 사람이다. 사람들은 위홍이가 계집의 맘을 빼는데 무서운 조화를 가지었다고까지 말한다. 길에서라도 위홍의 눈에 한번 띄면 그 여자의 혼은 벌써 위홍에게 빼앗겨 위홍의 수레 뒤로 정신 없이 따라 간다고 한다.
위홍은 이 조화로 문의태후가 아직 경문왕의 왕후로 잇을 때부터 그 혼을 뽑았다. 맘으로 나이 더 젊고 자색이 더 아름다운 버금마마를 취하 였으나 세력을 위하여 문의태후에게 혹한 양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위홍 은정화 마마도 필요만 있으면 자기 손에 넣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벌써부터도 태후는 만공주의 어리고 예쁜 자태에 대하여 일종의 질투를 가지어서 위홍이 들어 온 때면 공주를 가까이 못하도록 힘을 썼다.
대궐 안에서 태후와 위홍이 맘 놓고 행락을 하고 맘 놓고 벼슬을 들이고내고 하는 동안에, 왕은 예겸과 함께 동햇가 모든 고을의 아름다운 봄 경치를 보고 돌았다. 순박한 백성들은 아직도 천년 왕가의 옛정을 못 잊어당 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 남녀 노유가 길가에 나와 엎드려 왕을 맞고 혹은 싱싱한 생선과 닭과 맛난 음식을 만들어 왕께 드렸다. 그리고는 젊은 잘나고 인자한 왕의 얼굴을 보고 말을 듣고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였다.
하루는 어느 마을 앞을 지날 제 길가에서 나물을 캐다가 호미와 바구니를 곁에 놓고 허리를 굽히고 왕이 타신 연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처녀를 보았다. 비록 의복이 수수할망정 그 얼굴과 태도는 마치 돌 틈에 떨어진 야광 주 모양으로 빛이 났다. 왕은 타신 수레를 세우라고 명하고 그 처녀를 가까이 불렀다.
왕을 따라 가던 신하들도 모두 머물러 고개를 돌려 왕과 그 처녀를 바라보았다. 스무 살 밖에 아니 되는 젊은 왕의 얼굴에는 전에 못 보던 기쁨과 웃음이 떠돌았다. 왕은 손을 내어 밀어 처녀의 손에 든 바구니를 달라고 하였다. 처녀는 황송하여 어찌할 줄 모르다가 바구니에 호를 받아 그 속에 담긴 향기 있는 나물을 뒤적뒤적 만지다가 그중에서 난초 잎사귀와- 45 - 같이 생긴 풀 하나를 지어들고 처녀더러, 『 이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처녀는 잠깐 눈을 들어 왕을 우러러 보며, 『 제비 꼬리요.』
하였다.
『제비꼬리?』
하고 왕은 처녀를 바라보았다. 처녀는 얼굴이 빨개지며 고개를 숙였다.
왕은 이름이 무엇이며 나이 몇 살이며 부모가 있고 없는 것을 자세히 물었다. 처녀는 들릴락말락한 가는 목소리로 아비는 사냥군이요, 나이는 열 여섯 살, 이름은 큰 아기라고 대답하였다.
왕은 모시는 신하를 돌아 보고 그 처녀를 뒷수레에 태우고 가기를 명 하였다. 처녀는 어미가 기다리오니 보내달라고 울며 애걸하였으나 왕은 듣지 아니하였다. 그날 밖에 왕은 우레벌이라는 고을에 행재( 行在) 를정 하였다. 우레벌 백성들은 임금이 오셨다 하여 행궁(行宮)앞에 마른 행 나무로 크게 횃불을 지피고 소리 잘하고 늙은이들을 불러 밤이 늦도록 두드리고 부르고 춤을 추었다. 왕은 백성들의 뜻을 가상히 여겨 남자들에게 술, 여자들에게는 피륙을 주라고 명하시었다. 밤이 깊어 갈수록 술이 취한 백성들이 흥이 더욱 깊어져서 백성들의 노랫 소리는 더욱 크고 횃불은 더욱 밝아졌다. 맨 나중에 동녀(童女)열 사람이 소매 넓은 자주 옷을 입고 머리에 꽃을 꽂고 왕께서 앉으신 방 앞 마당에 나섰다. 그들의 얼굴은 횃불 빛에 비추어 갓 핀 모란꽃같이 빛나고 그중의 한 처녀가 손에 든 조그마한 북을 땅땅 울리며, 『 뉘 은혜로 우리 사나.』 하고 선 소리를 주면 다른 처녀들도 각기 손에 든 방울을 흔들며, 『 우리 임금 은혜로다.』
하고 회답하고 또 북 든 처녀가, 『 동해 바다 마르도록.』
하고 선 소리를 주면 방울 든 처녀들은, 『 우리 임금 살아지라.』
하고 춤 추고 돌아 간다. 그 소리를 따라 둘러 섰던 백성들도, 『 동해 바다 마르도록 우리 임금 살아지라.』
를 외친다.
이 모양으로 열 차례 스무 차례 주고 받고 춤 추고 돌아 가는 동안에- 46 - 사람들은 모두 태평의 기쁨에 취한 듯하고 임금도 취한 눈을 들어서 시중( 侍中) 예겸을 돌아 보시며, 『 백성이 기뻐하니 나의 기쁨이 크다.』 하시었다.
횃불이 네 번이나 새로 피인 뒤에 백성들은 흩어졌다. 그러나 우레 벌의 태수( 太守) 는 노래하던 처녀 열 명을 황의 앞에 불러 세우고 그날 밤 왕을 모실 처냐를 왕이 스스로 택하시라는 뜻을 보였다. 그러나 왕은 아까 나물 캐던 처——의 모양만 눈에 있으므로 앞에 서서 왕의 택하는 눈이 오기를 기다리는 열 처녀는 한번 슬쩍 볼 뿐이요, 아무 말이 없으므로 태수는 무료하여 열 처녀를 데리고 물러나갔다.
왕은 오늘같이 행복된 날을 처음 본 듯하여 심히 기뻐하였다. 그러나 한가지 거리끼는 것은 예겸이다. 시중지 않게 여기는 줄 알고 또 예겸이 밤이 깊도록 사처로 물러가지 아니하고 왕의 곁에 있는 것이 그 때문인 줄을아는 까닭이다.
좌우를 물린 뒤에 왕은 안석에 의지하여 가만히 눈을 감고 조는 모양을 보였다. 이것은 왕이 예겸의 뜻을 미리 짐작하고 그 말을 막으려는 꾀다.
예겸은 두 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가끔 고개를 들어 바라보아 왕이 눈을 뜨 기를 기다려도 끝이 없다. 좌우에 켜 놓은 촛불은 거의 닳아서 구부러진 불길이 꿈틀꿈틀할 때마다 벽에 비추인 왕과 시중의 그림자가 컸다 작았다한 다. 그러나 예겸은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과 왕께 바라는 생각이 클수록 예 겸의 결심은 굳었다. 마침내 예겸은 왕이야 듣거나 말거나 할 말은 하리라고 고개를 숙여 이마를 방바닥에 대고, 『 상감께 아뢰오. 지금 백성은 도탄에 있고 구백년 종사가 누란과 같이 위급할 때에 상감께서 옛날 은나라의 탕 임금의 본을 받아 몸으로 희생을 삼아 희천에 웅도를 가지심이 옳으신 줄로 아뢰오. 이제 백성들의 마음 이 상감께 로 돌아 와 부모와 같이 믿고 바라는 것이 크으니 조그마한 일로왕의 덕을 손하게 마시기를 바라오.』 하였다.
왕은 그제야 번히 눈을 뜨며, 『 시중의 말을 명심하고 듣소.』
하고 옳이 여기는 뜻으로 두어 번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왕의 대답에 예겸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일어나 세 번 절하고, 『 그러면 뒷 수레에 실어 오신 처녀는 지금으로 돌려 보내오리까?』
하였다.
- 47 - 이 말에 왕은 적이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돌려 춤 추는 촛불을 바라보며, 『 이제 밤이 깊었으니 내일 아침에 일찌기 보냄이 어떠하오?』 하고 왕은 예겸이 아무리 말하더라도 돌려 보내지 아니하리라고 굳게 결심 했다. 예겸은 더욱 극진한 말로 어진 임금이니 큰 영웅이 정사를 어지럽게 하고 인망을 잃는 것이 열의 아홉은 여자에 관한 일인 것을 중 언 부언으로 간한 끝에, 『 상감께 그 여자를 지금으로 돌려 보내라시는 분부 계시기 전에 신은 이 자리에서 물러나지 아니하오리다.』 하였다. 왕의 얼굴에는 괴로운 빛과 부끄러운 빛과 성난 빛 이 오락가락 하였다. 그러나 예겸의 말이 옳은 줄을 알고 또 지금 자기가하려는 일이 반드시 후일에 무슨 불길한 결말이 있을 것같이 생각하였다.
그러나 미미한 양심의 소리는 청춘과 술에 취하여 고삐를 끓고 날뛰는 왕의 마음을 붙들어 땔 힘은 없었다. 그래서 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 사람이 살면 얼마를 사오. 인생의 봄날이 길면 얼마나 기오. 나도 시중과 같이 나이 많아진 뒤에 나라 일만 생각하겠소.』 하고 예겸을 돌아 보지도 아니하고 장지를 열고 결방인 침실로 들어 가버리고 말았다. 예겸은 왕이 들어 간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일어나길게 한숨을 쉬고 왕의 침실을 향하여 한번 절하고 안 돌아 서는 발을 억지로 돌려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였던 마당에는 사람의 자취 하나가 없고 타다 남은 횃불만이 어둠속에서 번쩍번쩍한다. 예 겸 은별이 총총한 하늘을 우러러 보고, 『 돌아 가는 운수를 마침내 돌릴 길이 없나보다.』 하고 자기 숙소로 돌아왔다.
예겸은 지금까지 마음에 바라던 것을 다 잃어 버린 듯하여 슬펐다. 돌아가신 경문왕도 왕 되기 전에는 그렇게 총명하고 뜻이 크던 사람 이언 마는 한번 환락의 길을 밟은 뒤로는 언덕의 굴러 내려 가는 수레와 같이 걷 잡을수가 없이 마침내 백성들에게 원한과 비웃음거리가 되는 임금이 되고말았다. 새 왕도 마침내 이렇게 되지 않는가 할 때에 예겸의 늙은 눈에는 충성의 눈물이 흘렀다.
이튿날 왕은 늦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예겸은 마음이 초조하여 몇 번인지 모르게 왕의 숙소까지 갔다가는 돌아 왔다. 왕을 따라갔던 모든 신하들도 백성들도 그렇게 규모 있고 부지런하기로 칭찬 받던 왕이 늦도록 일어나지 아니하는 것을 한끝 이상하게도 생각하고 한 끝 우습게도 생각하여 돌아 서는 곳마다 수군수군이야기가 되었다. 예 겸은- 48 - 이번에 왕을 모시고 순행하던 목적이 다 틀어진 줄을 깨닫고 왕께 여쭈어 명주( 溟洲)까지 가시려던 것을 중도에 그치고 곧 서울로 돌아 가시 기를 청 하였다. 마침 왕이 서울을 떠나신 뒤로 우금 반삭에 상대등 위홍이 여러가지 그릇된 정치를 한다는 소문과 영화·정화 두 마마 사이에 큰 싸움이 생기어 정화마마는 왕자 황(晃)과 함께 뒷대궐에 유폐되었다는 소문과 기타 여러 가지 상스럽지 못한 소문을 가지고 일길손(一吉飡) 신홍(信弘)이 온것도 왕을 곧 돌아 가시게 하는 한 힘있는 이유가 되었다.
술이 깨고 한바탕 환락의 꿈이 깨이며, 왕은 예겸을 대하기가 부끄러워 예 겸이 말하는 대로 대가(大駕)를 돌리는 애겸을 꺼려 그러하지 못 하고수 삽하여 하는 처녀의 손을 잡고 머리를 만지며 차마 떠나기 어려운 은근 한정을 표하였다. 그리고 신표로 왕이 몸에 지니었던 쌍룡을 아로새긴 둥근거울을 준 뒤에 그 곳을 떠났다.
왕은 나물 캐던 처녀를 들이셨다 하는 소문이 바람결과 같이 전국에 흩어졌다. 서울로 돌아 오시는 길에 백성들이 왕을 사모하는 정이 전번 가실 때보다 훨씬 냉랭하였다. 예겸이 그것을 보고 슬퍼함은 물론 이요, 총명한 왕도 백성들이 자기에 대한 사모하는 뜻이 변한 것을 볼때에 마음 이괴로 왔다. 그래서 왕은 전과 같이 아무쪼록 한 곳에 오래 머물려 하지아니하고 아무쪼록 자기 얼굴울 백성들에게 보이지 아니하고 수레를 급히 몰아 부랴부랴 서울로 돌아 왔다.
서울 백성들은 갈 때나 다름 없이 반갑게 왕을 맞는 듯하였다. 그 래서왕이 다시는 아무 데도 가지 아니하고 대궐 속에만 있으리라고 마음으로 작정을 하였다. 이렇게 작정을 할 때에 왕의 마음은 어둡고 슬펐다.
왕이 떠난 지 이십일이 못되어 대궐 안은 말이 못되게 변천되었다.
정화마마와 황아기가 뒷대궐로 간 것이며 많은 궁녀들이 혹은 악형을 받아 죽임을 받고 혹은 쫓겨난 것이며, 내직 외직의 많은 벼슬이 함부로 변동 된것이며, 모든 것이 왕을 괴롭게 하는 일뿐이다.
왕은 돌아 오신 이튿날 상대등 위홍을 불러 왕이 없는 공안에 여러 가지 큰 변동을 시킨 죄를 책망하였다. 왕은 낯을 붉히고 어성을 높이 고용상에서 발을 구르며 울분한 말씀을 하였다. 그러나 위홍은 다만, 『 태후의 명이옵니다.』 하는 한 마디로 방패 막이를 하고 자기는 어디까지든지 발을 빼려 하였다.
왕은 항상 위홍의 벼슬을 갈고 싶었으나 태후를 무서워하는 왕은 그럴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위홍은 여전히 일국의 정권을 한손에 쥐고 백관의 출 척과 궁중 부중의 크고 작은 일을 아무도 거리낌 없이 제 마음대로- 49 - 하였다. 이때에 젊은 왕족들 중에는 위홍을 내몰지 아니하면 나라가 망할것을 말하는 이가 점점 늘고 그중에도 말 잘하고 글 잘하고 사람 자나기로 이름난 일길손 신홍은 가만히 여러 동지를 모아 일변으로 위홍을 내어 쫓을 꾀를 생각하고, 일변으로 자주 예겸을 찾아 이 일에 수령이 되 기를 간청 하였다. 그러나 예겸은 왕께 대하여 한번 실망 한 뒤로는 점점 세 상일에 뜻이 없어 모든 것을 버리고 물러가 쉴 생각을 하였다. 이리하여 서 울안에는 불온한 기운이 안개 모양으로 떠돌기 시작하고 백성들은 불원간에 큰 난리가 나리라고 수군거리게 되었다.
사돌(沙梁部)에 일길손 집이라 하면 일대 호걸 신홍의 집으로 아무 도모를 이가 없었다. 신홍은 문벌 좋고 사람 잘나고 문무를 갖추면서도 벼슬에 뜻이 없고 주사 청루에 출입하며 천하 호걸과 사귀어 놀기를 좋아하였다. 누가 나라 일을 근심하거니 세상을 걱정하는 말을 할 때에는 손을 홰홰 내두르며 부어라 부어라 취하여 이 세상을 살자 하고 한량 없이 술을 마시었다.
그러나 뜻이 같은 벗을 만나 밤이 깊고 술이 취한 때에는 칼을 빼어 춤을 추며 슬픈 노래와 장한시를 읊었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들은 신홍을 한 호화로운 사람으로만 여기기니와, 적이 사람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은 신 홍의 마음속에 큰 뜻을 품은 것을 알아 보았다. 더구나 근년에 위홍이 정권을 잡아 궁중 부중을 어지럽게 하고 총명한 왕의 뜻을 펴지 못함을 볼 때에 신 홍은 울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임금의 곁에 있는 간사한 도둑을 베어 버릴 결심을 굳게 한 것이다. 그래서 일변 사랑문을 넓히며 천하의 호걸을 모 아들이고, 일변 조정에 있는 대관들중에 예겸 민공(敏恭) 같은 이를 찾아 뜻 있는 바를 말하였다. 그러나 대관들은 일길손의 뜻을 반대 하지아니하면서도 힘을 같이 하자고 허락할 용기가 없어서 요리조리 말을 피하였다. 그러할 때마다 신홍은 분김에, 『 너희도 다 같이 죽일 놈이다. 국록을 먹고 나라이 기울어지는 줄을 못 보는 체하는 놈들아.』 그래서 선홍은 이미 조정의 무리들과 더불어 의논할 자격이 없다 하고 세상에 이름도 드러나지 아니한 충 있는 열혈 있는 남아를 모아 썩어 진나라를 새롭게 하리라는 결심을 하였다.
그래서 신흥은 충성과 용기가 있는 이니만큼 주밀한 꾀를 생각하는 힘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또 신흥이 밑에 모인 사람들도 대개는 비분 강개 하여 가슴을 풀어 헤치고 칼 앞으로는 들어 갈 사람들이라도 꾀로 꾀를 막을 꾀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 50 - 더구나 신홍의 집에 근래에 이상한 인물들이 자주 출입한다는 소문 이나고 또 민간에도 불원간에 무슨 큰일이 생긴다 하며, 『 사 돌에 사돌에 큰사람이 나와서.』 하는 도요까지 돌아 다니게 되매, 위홍은 벌써 의심이 나서 많은 염탐군을 거미줄 늘어 놓듯 놓아 신홍의 행동을 엿보게 하였다.
위홍과 신홍은 삼종 간이다. 위홍은 신홍보다 십여 년이나 나이 많으나 젊어서 서로 희롱할 때에도 항상 신홍은 위홍을 누르고 위홍은 신 홍을 골리 러 들었다. 그래서 이 두사람은 자란 뒤에도 서로 상종이 드믈었다.
그러나 위홍도 신홍은 결코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받아 버릴 녹록한 남아가 아님을 도리어 그 의기가 자기보다 승한 것을 알므로 그에게 대하여 항상 일종의 시기와 의심을 가지고 왔다.
그러므로 위홍의 마음속에는 이번 일을 기회로 하여 신홍을 아주 없애 버리자는 생각이 들고 신홍만 없어지면 감히 자기와 겨룰 사람이 신라 천지에는 없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위홍은 일변 염탐군을 늘어 놓은 동시에 일변 신홍의 집에 다니는 문 객에게 뇌물을 주어 신홍의 일을 염탐하여 본 결과 시농의 세력이 생각 하던 바보다 큰 것을 알고 위홍은 놀랐다. 만일 이대로 내버려 두면 장차는 자기의 몸이 위태해질 것을 깨닫고 일이 벌어지기 전에 얼른 신 홍을 처치 해 버릴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신홍 편에서도 위홍이가 자기의 뜻을 벌써 알고 사방으로 염탐하는 줄을 알 일이 생겼다.
유월 유두가 앞으로 사흘을 남겼을 때다. 사돌 신홍의 집 후원 연당에 연꽃이 방싯방싯 피기 시작하여 식전과 황혼이면 맑은 향기를 놓았다.
신홍은 날마다 마시며 노래도 읊었다. 신홍을 가까이 모시는 사람들은 수 상지인이 집 가까이로 왕래를 한다 하여 신홍이 혼자 후원에 소요 하는것을 걱정하였으나 신홍은 그런 일은 염두에도 두지 않는 듯하였다.
그러다가 일전에 과연 심홍의 집 후원 나무숲에서 신홍을 엿보던 자객 하나를 잡았다. 그는 몸에 비수를 품고 있었다. 그는 몸에 비수를 품고있었다. 사람들이 그 자객을 붙들어 신홍의 앞에 끌어 왔을 때에 신 홍은 웃으며, 『 이 놈 나를 죽이러 왔던?』 하고 어린애에게 묻듯이 물었다.
『네, 그저 죽을 죄로.』
하고 그 자객은 벌벌 떨었다.
『나를 죽이고 가면 무엇을 준다던?』
- 51 - 하고 신홍은 또 물었다.
『금 백 냥.』
하고 자객은 땅에 엎드렸다.
신홍은 사람을 불러, 『 네 금 백 냉을 이놈에게 내어 주고 상대등 대감께 자객이 너무 약해서못 쓰겠다고 편지하라.』
하고 크게 웃어 버렸다. 자객은 금 백 냥과 위홍에게 가는 편지를 받아가지고 신홍 집 앞대문으로 나왔다.
신홍은 연당으로 돌며 반쯤 핀 연꽃과 그 밑에서 팔딱 팔딱 뛰는 고기와 개구리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원종(元宗)·애노(哀奴) 두 사람을 보고, 『 오늘 밤 달도 좋고 연꽃도 볼 만하니 한잔 마시지 아니할까?』 하였다.
원종과 애노는 신홍이 가장 심복으로 믿는 사람이다. 원종은 의기가 있고 애노는 모략이 있었다. 그래서 이 두사람은 신홍의 두 팔과 같이 신 홍의 곁을 떠나지 아니한다. 원종과 예노는 본래 첫뼈(第一骨)도 아니 언 마는 신 홍은 문벌 같은 사람이나 다름 없이 두 사람을 사귀고 또 두사람은 어떤 연유로 죽을 지경에 빠진 것을 신홍의 의기로 살아 났기 때문에 신 홍에게 대하 여서는 목숨의 은인으로 충성은 다하는 터이라. 원종과 애노는 신 홍의 뜻을 안다. 사흘을 지나 유월 유두 날이면 왕이 만조 백관을 데리고 표 석 정물 맞이 놀이를 한다. 이 기회를 타서 위홍 이하 모든 무리를 한 그믈에 싸집 기도 계책을 정한 것이다. 지금 신홍이가 달 좋고 꽃 좋은 것을 기회로 한잔 술을 마시자 하는 것은 성패와 성사를 앞에 둔 큰일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룻밤의 연락을 하자는 뜻인 줄을 두 사람은 안다.
길던 여름날도 다 가고, 왔다갔다하는 구름장조차 낙일을 따라 스러져 버리고 하늘에는 맑은 별과 거의 만월이 된 밝은 달이 걸리고 땅에는 연잎에 맺힌 이슬이 고기에게 놀라 굴러 떨어지어 거울 같은 물 위에 실물 결을 일으킨다. 못가에 포기포기 칼같이 잎사귀를 뽑은 창포 잎이 이따금 간들간들 흔들리는 것은 붕어와 잉어의 꼬리에 스친 까닭이다.
안압지(眼壓池) 본을 받아 못가에는 봉우리 셋 가진 조산이 있고 봉우리 끝마다 노송이 있고 노송 밑에 조그마한 정자가 있고 장자 앞 물가에는 혹은 버드나무가 긴 머리를 풀이 늘이고 혹은 조밥 꽃나무 빨간 꽃을 날리고 있다. 연당 한가운데 밑둥을 피석으로 쌓은 조그마한 팔각 정자가 있는데 거기는 「봉래도(蓬萊島)」라 「심진각(尋眞閣)」이라 이렇게 한 현 판이 도로라 붙고 기둥마다 글귀를 새겨 붙이었다.
- 52 - 나무숲에서 밤새가 울고 풀속에서 벌레 소리 나기 시작할 때에 잔치도 시작 되었다. 부드러운 거문고 소리와 처량하고 비장한 옥퉁소 소리에 맞춰 아름다운 화랑(花郞)과 기생의 맑은 노랫 소리가 떠올랐다. 신홍은 난간에 기대어 울리고 술잔이 지나가는 툼에는 두렷한 깁 부채를 한가로이 흔들었다. 사십이 넘을락말락한 신홍은 아직도 창춘의 호화로운 피가 넘치었다. 신홍의 곁에 모여 앉은 객들도 모두 술이 반이나 취하여 노랫가락을 맞추어 무릎 장단을 쳤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사나 천년을 사나 만년이나 사 나영랑( 永郞)· 술랑( 述郞) 도 소식이 없네 살아 생전에 놀아 볼까나.』
하고 한 화랑이 노래를 끝내자 넓은 깁소매를 이마에 대고 덩실덩실 춤을 추던 다른 사람들은, 『 좋다!』
하고 무릎을 친다.
그러면 이번에는 한 기생이 작은 북을 들고 나서서 얼씬얼씬 한 바퀴 돌아 가다가 땅땅!하고 조그마한 손으로 북을 두어 번 울린 뒤에, 『 인생이 꿈이라 네 덧 없는 꿈이라 네 인생이 꿈이 라면은 청춘은 꿈에 꿈을 꿈에 꿈 닭 울기 전 에놀고 놀까 하노라.』 하고 깁소매를 한번 둘러 향기로운 바람을 내며 풍정이 가득한 눈으로 모인 사람을 한번 둘러 본다.
칼과 활로 일생의 벗을 삼는 장사들도 무르녹은 여름밤 연꽃 향기 몰려오는 바람결에 철석 같은 마음이 녹는 듯하여 모두 난간에 몸을 기대고 반 쯤 눈을 내려 감았다. 달빛을 담은 술잔이 오락가락할수록 취홍은 밤과 밤으로 더불어 더욱 깊어 갔다.
신홍은 도도한 흥을 이기지 못하는 듯 종을 불러 난희를 나오라 고명 하였다. 난희는 삼년 전 장안에 이름이 높던 명기로 여러 귀 공자의 사랑을 받다가 마침내 신홍의 총희가 되어 일시도 신홍의 곁을 떠나지아니한 미인이다. 상대등 위홍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절대가인 난 희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난희는 춤을 잘 추기로 이름이 있었다.
- 53 - 신 홍은 취홍이 깊어 갈수록 마음 한편 구석에 일종 비감이 생겨 난 희의 춤을 한번 보아야 그 비감이 풀릴 것 같이 생각한 것이니 일좌에 모인 사람들도 이러한 자리에 난희를 불러 내는 것을 의외로 생각하였다.
두어 번 사양한 뒤에 마침내 시녀 두 사람에게 옹위되어 난희가 수 삽 한 태도로 자리에 올라 왔다. 몸에는 소매 넓은 붉은 갑옷을 입고 머리에 향기 높은 난초 한 송이를 꽂았다. 달빛에 비추인 난희의 얼굴에는 말할 수 없는수 심의 푸른 빛이 도는 듯하였다.
난희가 올라 오매, 다른 사람들은 잠깐 일어나 자리를 피하고 신 홍이난 희의 손을 끌어 자기 곁에 앉히었다.
난희가 가장 추기를 좋아하는 춤은 「가야선무(伽倻仙舞)」라는 춤이다.
가야선무는 가야산에 살던 신선이 추던 춤이라 하여 가야금 가락에 아울러 추는 춤인데 춤 중에 가장 어려운 춤으로 이 춤을 아는 이가 몇 사람이 되지 못한다 하며, 가야선무를 잘 추면 구름 밖에서 신선의 옥퉁소 소리가 울려 온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신홍의 권에 이기지 못하여 난희는 손에 든 흰 깁부채를 동으로는 드는 듯 서를 가리키고 뒤로 던지는 듯 앞으로 던져 옷 소리도 없고 발자취 소리도 없이 가볍게 부드럽게 춤을 출 때에 그것은 마치 연못 위에 떠 노는 달 그림자와 같이 볼 수는 있어도 잡을 수는 없는듯 하였다. 그러나 어떤 연고인지 난희의 춤 추는 소매에서는 알 수 없는 슬픈 바람이 일어 보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스며 들어 가는 듯하였다.
일좌가 천연하게 비감에 잠겼을 때에 늙은 청지기가 급히 들어 와, 『 대감께 아뢰오. 대내(大內)에서 칙사가 와 계시오. 직각으로 입시하 시 랍 시오.』 『칙사, 칙사?』
하고 신홍도 놀래고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다 놀래었다.
신홍은 오랫 동안 궐내에 들어 간 일도 없고 불린 일도 없었다. 위홍이가 권세를 잡은 이후로 신홍은 일절 궐내에 발을 끊고 설, 가위 같은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 아니면 궐내에 가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닌 밤중에 직각 입시하라는 칙교가 내리기는 심히 수상한 일이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위홍의 간계라는 생각이 번쩍하였다. 난 희도 어찌 하려는고 하고 손에 들었던 부채를 던지고 신홍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신홍은 잠깐 생각하는 모양이더니 벌떡 일어나며, 『 왕명이니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원종을 향 하여, 『 뒷일을 잘 알아 하라.』
- 54 - 하고 다시 난희를 보고 곁애 있는 화랑을 불러 이윽히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 너희들이 일생을 같이 살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난희는 신홍이 소매에 매어 달려 울고 원종과 애노도 신홍의 앞을 가로막고 가볍게 원수의 꾀에 빠지지 말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신홍은 듣지 아니하고 단신으로 몸에 환도 하나를 차고 칙사를 따라 성화같이 대궐로 들어 갔다.
신홍이 대궐로 간 뒤에 신홍의 집은 울음 판이 되었다. 아무도 무슨 일로 신 홍이 입시하는 줄을 아는 이가 없건마는, 아무도 신홍이 살아서 돌아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아니한 까닭이다.
원종과 애노는 곧 사방으로 사람을 보내어 장안 군데군데 숨어 있는 장사들을 즉각으로 황룡서 마당으로 모이라고 분부를 하고 애노로 하여금 집에 있어 모든 일을 지휘하게 하고 원종 자신은 신홍의 집에 있던 오십 명의 장사를 거느리고 신홍의 뒤를 따라 대궐로 달려 갔다.
지금까지 잔치가 벌어졌던 신홍의 집 후원 봉래도 심진각에는 울고 쓰러진 난희의 연연한 몸이 푸른 빛에 싸여 있을 뿐이었다.
신홍이 불려 간 곳은 반월성 대궐이 아니요, 임해궁이었다. 신 홍은 이 제나 저제나 하고 무슨 일이 생기기를 기다렸으나 아무 일도 없 이임 해전에 들어 갔다. 임해전 안압지로 향한 영월루(迎月樓)에는 왕 이 예 겸과 기타 무엇 가까운 신하를 데리고 술상을 대하여 계셨다.
신홍은 곧 왕의 앞에 꿇어 엎드려 명이 내리시기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왕은 좌우를 물리고 예겸과 신홍만 앞에 불러 앉히고 국사가 날로 그릇되어가는 것과 이것을 바로 잡으려면 힘있는 사람이 나서야 할 것을 한탄 하여 은근 히 신홍의 뜻을 물었다.
왕의 말씀은 심히 간절하였고 또 그 음성에는 굳은 결심의 빛이 보였다.
비록 달 아래에 한잔을 마신다는 것을 핑계로 앞에 술을 벌였으나 왕은 조 금도 술 취한 기운이 없었다.
동해안을 순행하고 돌아 오신 뒤로 왕은 국사가 날로 그릇되어 가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고, 또 예겸도 나물 캐는 처녀 일을 말하여 일 천년 사직의 흥망 융체가 오직 왕에게 달린 것을 피눈물로 누누이 간하였다.
그러한 결과로 왕은 마침내 예겸의 말을 믿어 단연히 상대등 위홍과 그 의 무리를 몰아 내고 널리 어진 사람을 구하여 정사를 일신하기로 뜻을 정 하였다.
- 55 - 그러나 궁중 부중에는 모두 위홍의 무리요, 심지어 근시 하는 궁녀들까지도 태후와 위홍의 뇌물을 먹는 염탐군이며 십 이 영문 군사의 두목이 모두 위홍의 무리인 것을 볼 때에 왕은 자기가 만승인 지위에 있으면서도 수족을 잘라 버린 사람인 것을 깨달았다.
차라리 깊은 뜻이 없을 때에는 근심도 없더니 큰일을 생각하고 보니, 왕은 힘없는 슬픔을 깨달았고 또 돌아 가신 부왕의 슬프던 일생을 생각 할수가 있었다.
여러 가지로 들려 생각한 끝에 마침내 왕은 예겸의 말대로 만사를 일 길손 신 홍에게 맡기어 건곤 일척(乾坤一擲)의 대사업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왕의 맘을 여기까지 끌어 오는데 예겸의 힘이 얼마나 컸던 것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왕이 신홍을 불러 보실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 일 신 홍을 불러 보시는 일이 태후나 위홍의 귀에 들어만 가면 만사는 와 해가 될 줄을 아는 까닭이다. 그래서 임해전 달 구경을 핑계로 별안간에 미행을 하시어 치사를 신홍에게로 보냈던 것이다.
신홍은 왕의 간곡한 말씀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왕께 이러한 뜻이 있으면 만사는 뜻같이 되리라고 속으로 기쁘고 하늘 나라를 도우시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신홍은 일어나 세 번 왕께 절하고, 『 신 홍이 비록 우둔하오나 간뇌 도지(肝腦塗地)하와도 천은 만일을 봉답 하겠나이다.』 하고 아뢰었다.
왕은 신홍의 손을 잡고 손수 신홍에게 술을 권하시었다.
날이 샌 뒤에 여차여차히 할 일을 예겸과 의논한 뒤에 사람의 눈에 띄기를 꺼려 신홍은 오래 머물지 아니하고 곧 임해전에서 물러나왔다.
신홍이 관해문(觀海門)에 나와 마침 수레에 오르려 할때에 좌우로서 일대 복병이 신홍을 에워 싼다. 위홍은 벌써 왕이 신홍을 부르신 줄을 염탐 하고 군사를 임해궁 사문에 숨겨 두었던 것이다.
신홍은 칼을 빼어 싸왔으나 한 몸이 여러 사람을 당하지 못하여 마침내 위홍의 군사에게 사로잡혔다.
신홍이 반월성 대궐로 입시한 줄만 알고 그리로 갔던 원종이 거 느린 군사가 임해궁으로 달려 왔을 때에는 벌써 신홍은 어디로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다만 관해문 앞에 피에 젖은 시체가 가로 세로 쓰러진 것을 보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을 짐작할 뿐이다. 원종은 임해문을 지키는 군사에게 신 홍이 간 곳을 물으나 알지 못하고 하릴없이 일변 사람을 황룡사로 보내어- 56 - 거기 모인 군사로 반월성을 들여 치라 하고 자기는 수병(手兵)을 몰아 문지기는 군사를 베고 임해궁을 들이쳤다. 원종의 거느린 장사들은 임해 궁내에서 가장 잘 싸왔다. 그러나 하나씩 둘씩 죽어 없어지는 것이 임해 궁을 거의 다 둘려 찾은 때는 원종과 아울러 사오인 밖에 아니 남고 원종도 오른 팔에 칼을 맞아 왼팔로 칼을 쓰지 아니하면 아니 되게 되었다. 그래도 신 홍이 간 곳은 찾을 길이 없었다.
원종은 간신히 몸을 빼어 피 흐르는 팔을 안고 반월성으로 달려 갔다.
대화문 앞에서는 신홍의 군사와 위홍의 군사와 사이에 큰 접전이 일어났다.
위홍의 군사는 몇 번이나 반월성 안으로 쫓겨 들어 갔다가는 도로 나오고 쫓겨 들어 갔다가는 도로 나오고 쫓겨 들어 갔다가는 도로 나왔다. 그 많은 군사가 삼백명도 못되는 신홍의 군사를 무서워하여 손발을 놀리지못하였다. 만일 원종이 반월성을 스쳐 들어 가려고만 했으면 곧 하였을것이다. 그러나 신홍을 원수의 손에 넣고 그렇게 범궐(犯闕)을 하면 신 홍의 몸과 명예에 해로울 것을 생각하고 대화문 밖에서 엄포만 한 것이다. 이 소동에 깊이 잠이 들었던 장안은 모두 깨어 일어나 무슨 큰 변이 나는가하고 벌벌 떨었다. 사람은 커녕 강아지 하나도 문밖에 나오지 못하고 장안대로 상에는 파수하는 군사들의 동으로 서로 달리는 말굽 소리 뿐이었다.
열 이틀 달이 서악재에 걸리고 새벽을 재촉하는 쇠북 소리들은 에 와 다름없이 응응 온 장안을 울렸다. 이러하는 동안에도 대화문 앞에서는 군사와 군사의 칼이 마추쳐 불꽃이 일고 화살이 푸르르 울 때마다 붉 은피가 흘러 땅을 적시었다.
이때에 신홍은 황쇄 족쇄로 금영군(禁營軍) 철정 속에 혼자 갇히어있었다. 이튿날 평명에 신홍은 금부 나졸 네명에게 끌리어 어떤 방으로 갔다. 거기는 위홍이 친히 나와 좌기(坐起)를 열었다. 신홍은 높이 앉은 위홍을 바라볼 때에 전신에 피가 끓어 오르는 듯하였다.
위홍은 나졸을 명하여 신홍을 자기 앞으로 가까이 끌어 오라 하였다.
나졸들은 묶어 놓은 돼지 모양으로 신홍을 번쩍 들어다가 위홍의 앞에꿇렸다.
위홍은 수족을 묶이어 땅바닥에 엎더진 신홍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픽웃으며, 『 이 놈 내가 네 삼동 형은 되거든 인륜을 몰라 보고…… 그래 이놈 네 가나를 어쩔 테냐?』 하고 소리를 쳤다. 신홍은 엎더진 대로 고개를 돌려 위홍을 노려 보며, 『 짐승의 입에서 인륜이라는 말이 당치 않다. 군부(君父)를 몰라 보고- 57 - 나라를 도둑질하는 너 같은 대역부도 놈의 썩어진 간을 내어 선왕( 先王) 의영 앞에 제사를 못지낸 것만 분하다. 국운이 불길하고 네 죄악이 아직 관영 치를 못하여 내가 네 손에 잡혔거니와, 나 죽은 혼이 잇고만 보면 삼 생 구사를 하더라도 불충 불의한 대역 위홍의 간을 씹어 피를 뿜고야 말리라.』 하고 입술을 부쩍 깨물어 위홍의 얼굴을 향하고 뿌렸다. 붉은 피는 방울방울이 위홍의 얼굴과 옷에 묻었다. 위홍은 얼굴에 묻은 피를 씻으려고도 아니하고 도리어 껄껄 웃으며, 『 허, 충신의 피는 푸르다더니 네 피가 붉은 것을 보니 아직 멀었구나.』 이 말에 신홍이 머리를 들어 깨어져라 하고 땅바닥을 구르며, 『 내 어찌 충신이라 하랴. 너 같은 놈을 오늘까지 살려 두었으니 내 어찌 충신이라 하랴.』 하고 소리를 내어 울 때에 위홍의 얼굴과 웃에 묻은 신홍의 피가 유황 불같이 푸른 빛을 발하고 신홍의 눈에서는 붉은 불꽃이 뛰었다. 이 것을 보고 좌우에 섰던 사람들은 무서워 떨고 위홍의 눈도 한참은 죽은 사람의 눈과 같이 빛을 잃었다. 이에 위홍은 정신 없이 찼던 칼을 빼어 신 홍의 목을 겨누고 부르르 떨었다. 신홍은 붉은 불꽃이 뛰는 눈으로 위홍을 노려보며, 『 오냐, 내 목을 베어라. 그러나 이 후 몇 날이 못하여 네 목에도 칼이 들어 갈 날이 있으리라.』 하고 껄껄 웃었다. 위홍은 칼을 들에 메어 힘껏 신홍의 목을 쳤다. 붉은 핏기 둥이 방안에 뻗고 신홍의 목이 떨어지어 방바닥에 굴렀다. 눈에서는 여전히 불꽃이 일고 입에서는 푸른 피가 흘렀다.
위홍은 곧 금군 대장에 명하여 신홍의 머리를 종로에 높이 달고 신 홍 이 사당( 私黨)을 거느리고 승야 범궐(犯闕)한 죄상을 기록하여 바방 곡곡에 방을 붙이라 하였다. 이윽고 졸로에는 높은 기둥이 박히고 거기는 피 흐르는 신홍의 목이 달리고 그 곁에는 대역 신홍(大逆信弘)이라고 대자를 써 붙이었다.
하나씩 둘씩 모이는 백성들은 문득 인산 인해를 이루었다. 모인 백성들은 차차 울기를 시작하여 점점 울음 소리가 커지어서 마침내 울음 바다가 되었다. 백성들은 오늘 이곳에서 위홍의 머리가 달린 것을 보기를 기다렸던것이다. 백성들은 자기네를 살려 낼 마지막 사람이 죽은 것을 볼 때에 천지가 아득하여진 듯하였다. 처음에는 금영군 군사들이 우는 백성을 해치려고 하였으나 백성들의 울음이 더욱 커지는 것을 보고는 군사들 중에- 58 - 더러는 손에 들었던 창을 땅에 집어 던지고 백성들과 어우려지어 울고더러는 슬며시 뒷골목으로 빠지어 달아났다.
『위홍의 머리를 베어라!』
하는 소리가 백성들 중에서 일어나자, 울던 백성들은 고함을 지르고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렸다.
이때에 어떤 사람이 「대역 신홍」이라는 패를 떼어 분지러 내버리고 「 충신 신홍」이라는 새 패를 세웠다. 이것을 본 백성들은 「 충신 신 홍 」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다시 소리를 높여 울며 신홍의 버리를 단 곳을 향하고 합창하였다. 신홍의 부릅뜬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러 내렸다.
『역적 위홍아!』]
하고 또 백성들은 소리를 질렀다. 백성들의 얼굴은 상기와 더위로 핏빛이되고 눈에는 피와 눈물이 넘치는 듯하였다.
이때에 또 어떤 사람이 높은 장대 끝에 위홍의 화상을 그리고 그 곁에 「 대역 무도 간신 위홍(大逆無道奸臣魏弘)」이라고 대서 특 서하 여신 홍의 머리를 단 기둥 곁에 세웠다. 이것을 본 백성들은 「와!」하고 소리를 치고 달려들어 위홍의 화상을 끌어 내려 찢고 밟고 입으로 물어 뜯었다.
이때에 한 사람이 피 흐르는 신홍의 머리를 내리어 두 손으로 받 들고, 『 위홍을 잡아라!』
하고 반월성 대궐 가는 길로 나섰다. 백성들은 「우와 우와」하고 혹은 몽둥이를 들고, 혹은 돌멩이를 들고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힘없는 백 성의 무리는 마침내 구름같이 몰아 오는 위홍의 군사의 칼과 창에 반은 줄 고상하고 나머지는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이리하여 신홍의 계획은 틀어져 버리고 위홍은 여전히 태후와 불의의 쾌락을 누리면서 일국의 정권을 농락하였다. 신홍마저 없어지니 위홍은 끼릴 것도 없는 듯하였다.
이 일이 있은 후로 예감은 마침내 쫓겨 나고 왕은 더욱 의롭게 되어 국가와 정사에는 조금도 참례할 수가 없었다. 그리되매 왕은 만사에 뜻을 잃고 오직 주색에만 침윤하여 밤낮을 잊었다. 이리하여 그렇게도 총명하던 왕은 반이나 폐인같이 되었다. 점점 몸과 정신이 쇠하여 즉위하신 지 십이 년 스물 다섯이라는 한청 살 ————청춘에 그만 승하하시고 말았다.
헌강대왕이 승하하시매, 궁중에는 또 더러운 난리가 났다. 태후는 그 따님이신 만공주를 세우려 하고 정화마마는 당신의 소생인 황( 晃) 왕자를 세우려 한 것이다. 그러나 만사는 위홍의 손에 달린 것이 물론이다,- 59 - 위홍은 태후가 싫어졌다. 벌써부터 태후보다 나이도 젊고 자색도 아름다운 정화마나에게 뜻이 있었건마는 권세를 위하여 아직까지 태후의 맘을 맟춰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헌강대왕이 승하하시니 이때야말로 평소의 뜻을 달할 때라 하여 태후의 간청을 물리치고 황왕자를 왕으로 세웠다.
정화마마는 오랫 동안 형님 되는 태후에게 학대를 받아 오는 분풀이를 할 때를 당하였다. 그는 태후에게서 나라와 사나이들을 한꺼번에 빼앗아가지고 의기 양양하였다. 태후에게서 받은 것을 고대로 갚노라고 태후와만 공주를 뒷대궐로 내쫓아 가두고 반월성 대궐을 혼자 맡아 위홍과 함께 불의의 쾌락을 누렸다.
그러나 태후는 이 분을 참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다. 아무 리하 여서라도 동생 되는 정화마마의 원수를 갚고 국권과 위홍을 빼앗아 오지아니하면 안될 것이다. 그리하자면 사람을 잡으려면 그가 탄 말을 쏘는격으로 새왕을 없이하는 것이 첩경이다. 이리하여 영화태후는 새왕을 죽일 무서운 꾀를 품게 된 것이다.
새 왕은 즉위할 때에 벌써 신병이 있으시었다. 왕은 본래 잔약한 몸으로 맘이 극히 어질고 약하여 날마다 궁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스럽지 못 한일에 항상 맘을 아프게 하고 병은 더욱 골수에 사무치게 되었다. 그러다가 즉위 하신 후로는 어머니 되시는 정화마마의 추한 행동을 차마 못 보아 식음을 전폐하신 일이 자주 있었다. 이리하여 병은 점점 중하여 마침내자리에 누워 약 잡수시기로 일삼는 몸이 되시었다.
왕이 어서 돌아 가시게 하기 위하여 영화마나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다하였다. 술객과 무당히 밤이면 뒷대궐로 도둑 고양이 모양으로 소리도 없이 들고 났다. 술객과 무당은 왕의 병이 더하게 하는 일 외에 또 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밤이면 꿈에 나타나 영화마마를 괴롭게 하는 뒷 대궐 마마의 혼령 이었다. 영화마마가 뒷 대궐에 옮아 온 첫날밤에 자리에 누워 잠이 둘려 할 때에 문뜩 몸이 으쓱하여 입에 칼을 문 뒷대궐마마의 혼령이 보인 뒤로는 며칠을 몸이 몹시 아팠다. 그런 뒤에 병은 나았으나 가끔 뒷 대궐 마마가 눈에 띄고 어떤 때에는 낮에도 눈앞에 어른어른하였다.
『늙어서 이런가?』
하고 영화마마는 자탄을 하였다. 대개 지금까지 서슬이 푸를 때에는 그러한 일이 없었던 것이다. 어떤 늙은 무당은 정직하게 이렇게 말하였다.
『귀신들로 운수 좋은 사람에게는 못 덤빕니다. 사람이 운수가 기울어지게 되면 귀신들도 운수 좋은 사람에게는 못 덤빕니다. 사람이 운수가 기울어지게 되면 귀신들도 업신여겨서 맘대로 덤빕니다.』 - 60 - 영화 마마는 이 무당의 말을 마땅하게 들었다. 아무리 귀신이기로 감히 자기를 거역하고 자기를 건드릴 생각은 못 내리라 하던 기운도 즐어 지고, 근 일에는 모든 귀신이 자기를 비웃고 자기를 건드리려고 손을 내미는것같이 생각하였다. 첫째에 뒷대궐마마, 둘째에 남편이시던 경문대왕, 그 담에 위홍과 좋아한다 하여 젖을 도리고 팔목을 도리고 눈을 도리고 입을 도리고 하문을 도려서 죽인 수없는 궁녀들이 모두 피 흐르는 몸을 가지고 사방으로서 달려들며, 『 오, 이냔! 이제도? 이제도!』 하고 자기를 건드리려는 듯하였다. 혼자 자리에 누웠으면 이런 흉물스러운 귀신들이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창 틈으로 병풍 틈으로 모여 드는 듯 하여 전신에 소름이 끼치고 찬 땀이 흘렀다.
<위홍과 한자리에 있으면 이런 일이 없는데.>
하고 영화마마는 위홍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새 왕이 즉위하신 후로는 반년이나 넘도록 이내 위홍의 얼굴을 대해 본적이 없었다. 위홍은 동생 되는 정화마마의 자리 속에 전신이 타는 듯하였다. 위홍의 그 늠름한 풍채, 그 건강한 몸, 그 힘 ———이런 것이 모두 언제까지나 자기의 것으로만 알았더니 이제는 남의 것이다. 할 때에 영화마마는 참다 못하여 울고울다가는 이를 갈고.
<이놈! 내가 너를 가만 둘 줄 알고.>
하고 치를 떨었다. 독한 눈쌀로 한자리 속에서 즐기는 청화마마와 위홍을 노려 보고 빨간 독을 바른 칼로 둘의 허리를 싹 잘라 버리기를 여러 번하였다.
그러다가 또 한번 더 위홍을 자기 것을 만들 생각을 한다. 경문왕이 여러 해 병으로 누워 영화마마가 홀로 있을 때에 국사를 의논한다는 핑계로 위홍과 자주 만나다가 마침내 자기가 앞에 엎드린 위홍의 몸에 매어 달리고 위홍도 자기 몸이 으스러져라 하고 껴안아 주던 생각이 난다. 그것이 벌써십 오년 전이다. 십 오년 동안 뻗치었던 악운이 인제는 다한 듯하여 모든 귀신이 꿈과 생시를 물론하고 영화마마를 건드렸다.
그러나 영화마마는 아직도 힘과 운수가 자기의 손에 있는 주 생각하였다.
그래서 아무리 하여서라도 금상(今上)을 없이하고 권세와 위홍을 도로 제 손에 넣으려고 애를 썼다. 눈을 뜨면 왕과 정화마마를 없이할 독약 과에 방이요, 눈을 감으면 사방으로서 피 흐르는 손을 내미는 원통한 귀신 들이있다. 영화마마의 얼굴 빛 눈매까지도 점점 무섭게 변하였다. 잠이 들면 무서운 잠꼬대를 하고, 깨어 있을 때에도 가끔 미친 사람과 같이 소리를- 61 - 질렀다. 그래서 근시하는 궁녀들은 마마의 곁에 있기를 무서워하였고 가끔 깜짝깜짝 진저리를 쳤다.
하루는 서악에 있는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의 능이 터지고 비가 큰소리를 내고 넘어가고 그날 밤에는 대궐 뒷 뜰에서 백제 군사와 신라군 사의 우짖는 소리가 들렷다. 보았다는 사람의 말을 듣건대, 어떤 젊은 장수가 백달마를 달려 와서 말채찍으로 태종대왕의 능과 비를 쳤더니 능이 터지고 우뢰 소리를 내고 넘어갔다 하며, 또 어떤 사람의 말에는 고구려 옷 입은 여자 하나가 와서 마리채로 비를 감아 넘어뜨렸다고도 한다. 아무 려나 이 것은 백제의 원혼과 고구려의 원혼이 나와 다니기 시작한 것이요, 그것 은나라에 큰 쇠운이 올 징조라고 노인들은 눈을 끔쩍거리며 수군거렸다.
대궐 뒷들에서 백제 군사와 고구려 군사의 우짖는 소리가 들리매, 영화 마마는 때가 왔다고 기뻐하였다.
모든 것은 마마의 뜻대로만 되는 듯하였다. 정강대왕(定綱大王)은 칠월 사일에 미음 한 그릇 잡수시고 환후가 더쳐 승하하시고 왕위는 대왕의 유칙( 遺勅)으로 왕매되시는 만공주(蔓公主)께서 이으시게 되었다.
영화마마는 이렇게 모든 일이 뜻대로 되는 것을 기뻐하여 며칠 동안은 무서운 귀신들이 피 묻은 얼굴과 손을 내밀고 모여드는 꿈도 꾸지 아니하고 다시 태후로 나라의 권세를 잡을 것과 한참 동안 빼앗겼던 위홍을 다시 내 것을 만들 것만 생각하고 웃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마침내 헛웃음이 되었다.
새 왕이 즉위하시고 아직 대행 왕의 인사도 지나기 전 어느 날 밤에는 영화 마마를 모시는 늙은 궁녀 하나가 무서운 소식을 마마에게 전하였다.
그것은 상대등이 쌍초롱에 불을 들라고 상감마마의 침전(寢殿)으로 들어가더라는 소식이다, 이 말을 듣고 마마의 얼굴은 흙빛이 되어 한참 동안 은어 안이 벙벙하였다. 얼마 있다가 마마는 겨우 말문이 열려, 『 들어 가 오래 있더냐?』 하고 물었다.
궁녀는 두려운 듯이 마마의 낯빛을 엿보며, 『 대감이 들어 가신 뒤에 상감마마께서는 술을 많이 올리라 하시 옵고 방안에서는 웃음 소리가 나더이다.』 하였다.
마마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발을 동동 굴렀다. 동생에게 빼앗겼던 위홍을 인제는 딸에게 빼앗긴 것이다.
마마도 그날 밤을 뜬 눈으로 새우고 이튿날 평명에 왕의 침전으로- 62 - 가시었다. 문밖에 지키던 궁녀들은 왕께서 아직도 일어나시지 아니한 듯고 하였다. 마마는 분기였으나 궁녀들은 마마의 앞을 막았다. 마마는 보석 위에 가지런히 놓인 남자의 신 한 켤레를 원망스럽게 노려 보았다. 그러나 딸은 왕이다. 대궐 안에 모든 사람들은 왕의 신하다. 자기도 왕의 신하다.
왕이 위홍과 함께 수라를 잡숫고 난 뒤에야 마마가 들어 가는 허락을 얻었다. 마마는 들어 가는 길로 피곤한 듯한 왕을 보고, 『 어젯밤에 이 방에 누가 있었소?』 하고 물었다.
왕은 빙그레 웃으며, 『 나하고 위홍하고.』
라고 대답하였다.
마마는 눈이 뒤집히고 입에 거품을 물며, 『 그것이 옳지 않소!』
하고 소리를 질렀다.
왕은 퍽 웃으며, 『 남편을 살려 놓고 남편의 신하와 한자리에 자는 이도 있거든 어머니의 곁 서방을 좀 빼앗기로 그리 옳지 못할 것이 있소? 좋은 서방은 늙으신 어머니가 가지는 것보다 젊은 내가 가지는 것이 더 옳지 않겠소?』 하고 시들한 듯이 고개를 돌렸다.
이리하여 영화마마는 권세와 위홍을 영영 그 따님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하고는 다시 밤이나 낮이나 산 귀신과 죽은 귀신이게 부대끼는 불쌍한 신세가 되어 버렸다.
새로 왕이 되신 만공주는 스물 네 살이었다. 얼굴이 아름답지는 못하나 골격이 장대하고 힘이 세고 호협한 기운이 있어 마치 대장부와 같았다.
그래서 꾀가 많고 몸이 건강하고 수십년 권세에 많은 경험을 가진 위홍도 왕의 앞에서는 기운을 펴지 못하고 쥐어 지내 왔다. 위홍을 희롱할 때에 마치 어른이 어린 아이를 희롱하듯 하였다. 육십을 바라보는 위홍이 어린 여왕의 장난감이 되는 양을 궁녀들도 가끔 보고 웃었다.
『위홍아!』
『네.』
『몇 살이니?』
『쉰 다섯 살이요.』
『아따 쉰은 떼어 버려라.』
『그러면 다섯 살이요.』
- 63 - 이 리하면 왕은 웃고 두 손을 내밀어, 『 손 다오.』
하면 위홍은 어린 아이 모양으로 왕의 앞으로 가서 주름 잡힌 두 손을 왕의 포동포동한 손에 올려 놓았다. 그러면 왕은 위홍의 두 손을 왕의 잡아끌어서 어머니 모양으로 위홍을 번쩍 안아 쳐들어 무릎 위에 놓고 뺨과 등을 어루만지며, 『 둥개 둥개 둥개야.』 를 부르고 웃었다. 그럴 때에는 위홍은 짐짐한 듯이 입맛을 다셨다.
왕은 가끔 불쾌하시면 위홍을 견디게 굴었다.
『대가리가 허연 것이 이게 무슨 짓이야.』
하고 위홍의 등을 밀어 문밖에 내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리고 나시는 곧다시 끌어 들여서 사랑하는 뜻을 표하였다.
『왜 늙었어? 왜 늙었어?』
하고 왕은 위홍의 허연 머리카락과 수염을 잡아 뽑았다. 아무리 늙은 줄울 모르는 위홍도 오십이 넘어 육십이가 가까우면 백발이 생겼다. 왕은 그것을 불만 히 여겼다. 그래서 젊은 남자도 여려 번 불러 들여 보았으나 모두 위홍만 못하여 하루나 이틀을 데리고는 조그마한 골 원이나 한 자리씩 주어서 내쫓았다. 그리고는 다시 늙은 위홍을 불러 들였다. 그리고는 또 늙은 위홍이 그리워 그 젊은 사람들을 도로 내쫓았다.
『이 늙은 것에 내가 무엇을 보고 흑 했어 』 하고 왕은 가끔 위홍의 높은 코를 잡아 흔들었다. 그렇게도 여자의 마을 끌던 좋은 코에는 주름이 잡히고 기름기가 빠졌다. 왕은 젊은 위홍을 맘껏 가지고 놀던 어머니에게 대하여 무서운 질투를 가끔 가졌다. 그래서 가끔 위홍을 내어 문밖으로 밀어 내며, 『 늙은 것 같으니 노파한테로나 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위홍은 문박에 우두커니 서서 왕이 다시 불러 들이 기를 기다렸다.
이리하여 밤마다 왕의 방에는 위홍이 있고 위홍이 없으면 때때로 불러 들이는 젊은 미남자가 있었다.
이 소문은 왕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전국에 퍼지었다. 그래서 얼굴 잘 나고 호협한 젊은 남자들은 한번 왕을 보려고 서울로 모여 들어서울에는 과것날이 가까운 때 모양으로 깨끗한 젊은 가람들이 우글우글 하였다.
그러면서도 왕은 정사를 폐하지는 아니하였다. 왕은 즉위하는 벽두에- 64 - 전국의 죄인을 놓고 가나한 백성에게 일년 동안 세납을 탕감하였다. 그 뿐 아니라, 혹은 황룡사에 백고좌를 설치하고 친히 행행하여 설법을 들으며 혹은 국악에 행행하여 여러 박사에게 오경의 강설을 들었다. 백성들은 이 왕이 장차 어떠한 왕이 되련고 하고 모두 의심하였다. 어찌 보면 성 군인 듯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음란한 여인인 것 같기도 한 까닭이다, 아무 려 나왕은 범상한 사람이 나리라고 다들 생각하였다.
대각간(大角干) 위홍의 집은 모돌(牟梁部)에 있었다. 사백간 집이라고 이름 난 큰집이다. 하늘에 닿은 듯한 높은 대문에는 창 든 군사가 파수를 보고 대문 안에도 담과 후원으로 돌아 가며 목목이 군사가 파수를 보았다.
위홍이가 권세를 잡은 지가 몇 십번인지 모른다. 그러나 들어 오는 족족 파수하는 군사에게 잡히고 위홍은 일찍 한번도 자객의 칼끝에 손톱눈 하나상한 일이 없었다. 그래서 자객이 한번 들어 온 때마다 위홍은 자기 ㅣ 운수가 어떻게 좋은 것을 생각하고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위홍도 맘으로는 편안할 날이 없어 그 큰집에 자기의 침실을 수십 곳이나 놓고 혹 대궐에 안 자고 집에서 잘 때면 밤이 깊기를 기다려서 집사람들도 모르게 살그머니 그중의 어떤 한 방에 들어 가 잤다. 방방이 다 불을 켜 놓고 방방이 문밖에다 신을 놓았기 때문에 어느방에 위홍이 있는지 모조리 찾기 전에는 알 수없는 것이다. 오직 위홍과 자리를 같이 하는 첩뿐이다. 방도 여럿이요 첩도 여럿이어서, 초저녁에는 이 첩과 이 방에서 자다가 있다가는 저 첩과 저 방에서 자기 때문에 첩들도 위홍이 지금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지난 이월에 사돌 신홍의 집 앞에 있던 바위가 개천가로 댓 걸음이나 비실비실 걸어 나갔다는 말과 그것을 신흥의 원혼아 자기가 아직도 서울에 머물러 있어서 원수를 갚을 날을 기다리는 징조라는 말을 들은 위홍은 근래에 더욱 겁이 많았고 또 나이 많아짐을 따라 젊을 때 무서움 없던 기운이 줄어짐을 따라 위홍은 모든 것에 무서움을 가지고 의심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침실에 첩을 불러 들일 때에도 반드시 몸 수험을 하여 혹 칼이나 품지 아니하였는가를 알아 보고야안 심하였다.
따뜻한 봄철 어떤 밤이다. 위홍은 마침 집에서 잘 기회를 얻어 저녁을 먹고 나서 후원 첨들의 방 앞을 거닐었다. 첩들은 이날에 대감이 집에서 자는 줄 알고 모두 있는 힘을 다하여 단장을 하고 대감의 발이 행여나 자기의 방에 머물기를 고대하였다. 뚜벅뚜벅하는 발자취 소리가 박석 위로 울려 올 때에 아름다운 첩들은 가슴을 두근거리고 자기 방 문 고리에 손가락이 걸리기를 기다렸다.
- 65 - 위홍은 촛불이 비추인 창과 그 창에 비추인 그림자를 보고 어렴풋이 그 그림자의 주인을 생각하면서 오르락내리락하였다. 창에 비추인 그림자들은 위홍의 발자취 소리가 바로 그 앞에 왔을 만한 때에는 한번 움직였다.
그것은 마치 위홍의 맘을 끌자는 표인 듯하였다.
위홍은 맘 나는 데로 몇 방문을 열었다. 위홍의 얼굴이 방으로 들어 오면 미인들은 수삽한 듯이 일어나 맞았다. 위홍은 혹은 한번 슬쩍 바라보고말 기도 하고 혹은, 『 몸 성한가?』 하고 말을 한번 마디 붙여 보기도 하고, 혹은 맘이 나면 손과 발도 한번 만져 보고, 혹은 한번 빙그레 웃기도 하고 그리고는 또 딴 방으로 간다.
위홍이 그냥 지나간 방에서는 문에 비추인 그림자가 스러지는 것 이보이고, 혹은 긴 한숨과 혹은 울음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하나도 맘에 드는 게 없군.』
하고 위홍은 화를 내어 몇 걸음 빨리 걸어 간다. 그때에는 두 분 마마와 왕의 생각이 난다. 제일 맘에 들기는 정화 마마여니와 그와는 오래 즐길 기회가 없었다.
『제게, 맘대로 안되는 세상!』
하고 위홍은 혼자 한탄하고 한숨을 쉰다.
위홍은 문뜩 어떤 울음 소리를 듣고 우뚝 섰다. 위홍은 울음 소리 나오는 창을 바라보았다. 그 창에는 사람의 그림자는 없이 울음 소리뿐이었다.
위홍은 그것이 난희인 줄을 안다.
위홍의 눈앞에는 난희(鸞嬉)의 아름다운 자태가 보였다. 그때의 위홍의 눈에는 웃음이 있었다. 그러나 난희의 자태가 보인 뒤에는 반드시 푸른 피를 뿜던 신홍의 얼굴이 보였다. 위홍은 손으로 얼굴을 한번 만지었다.
얼굴에는 지금도 그때 신홍의 피의 뜨거움을 감각하는 듯하였다.
신홍을 죽인 뒤에 맨 먼저 위홍의 맘에 드는 것은 물론 난희를 빼앗아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곧 난희를 붙들어 왔다. 붙들어 올 때에 난 희는 그리 저항을 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붙들려 와서는 좀처럼 위홍에게 몸을 허하지 아니하였다. 처음에는 발악을 하였고 다음에는 먼저 남편의 거상을 입은 것을 핑계로 하였고 그 후에도 혹은 발악을 하고 혹은 병 핑계를 하고 혹은 밤을 새고 혹은 죽는다고 위협을 하여, 위홍에게 몸을 허하기를 막아 왔다. 위홍도 신홍이 기억이 새롭고 또 난희의 굳은 맘이 무서워서 난 희 가하는 대로 내버려 두고 물 같은 여자의 맘이 반드시 변할 날이 있을 것과 한번 자기에게 허하기만 하면 다시는 떨어지지 아니할 것을 믿고 오늘까지- 66 - 참고 기다렸다. 오늘까지라는 것이 벌써 팔년이나 되었다. 그러다가 지금난 희가 슬피 우는 것을 볼 때에 아직도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나 하였다.
서뿔리 건드리다가 또 발악을 하여도 창피하다고 위홍은 슬며시 그 방 앞을 지나가며 난희의 생각은 아니하리라 하였다.
그러나 생각을 아니하려 할수록 난희의 슬픈 울음 소리는 위홍의 구름 따라 오는 듯하였다. 그것이 이상하게 위홍의 맘을 괴롭게 하였다. 위홍은 어린 잎이 나불나불하는 은행나무 아래 서서 뒷짐을 지고 수없는 늙은가지 틈으로 반짝반짝하는 별을 바라보았다. 꽃 향기를 품은 바라마 이 위홍의 얼굴을 스치어 지나간 때에 위홍의 늙은 맘속에도 청춘의 하 염 없는 유혹의 바람이 불었다.
위홍은 결심한 듯이 발을 돌려 다시 난희의 방 앞으로 왔다. 방에서는 아직 연연하게 느껴 우는 소리가 들린다. 위홍은 기침을 하고 마루에 올라서서 난희의 방문을 열었다. 난희에 젖은 별 같은 눈으로 그것을 대답 하였다. 방에 켠 옥등잔 불이 문바람에 금실금실 춤을 추어 흰 벽 에비추인 두 사람의 그림자를 춤을 추인다.
위홍이 들어 오는 보고 난희는 일어나 아랫목 자리에 앉으며, 『 오늘은 웬일이냐? 네가 전에 없이 단장을 하고 또 내게 자리를 권하니 알 수 없는 일이로구나.』 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앉은, 난희의 울어서 볼그레한 뺨을 탐내는 듯이 보였다. 과연 난희는 단장을 하였다. 머리는 기름을 발라 빗고 평생에 안 입던 분홍 비단 바지에 짙은 자주 깃을 단 유록색 저고리를 입고 얼굴에는 분이 반이나 눈물에 씻기어 혈색 좋은 연한 살이 군데 군데 나온 것이 더욱 풍 정이 있다.
난희는 길게 한숨을 쉬며, 『 늦어 가는 봄을 마지막 보려고요.』
한다.
『늦어 가는 봄을 마지막 본다.』
하고 위홍은 난희의 말을 그대로 한번 불러 보더니 그뜻을 알아 들은 듯이 고개를 끄덕 끄덕하며, 『 그래도 네게는 아직 봄이 남았다.』
하고 자기의 반백이 너머 된 수염을 만진다.
난희는 힘없이 벽에 몸을 기대며, 『 나의 봄, 시들은 봄, 꽃 없는 봄.』
하고 또 한번 하염없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나비 하나가 어디로서 들어 와- 67 - 등잔불을 싸고 돈다.
위홍은 손을 내밀어 분홍 바지 무릎 위에 놓인 난희의 하얗고 보 드러운 손을 덥썩 잡아 끌었다.
위홍이 난희의 손을 잡아 끌 때에 난희는 몸서리 치는 듯이 손을 뿌리치려 하였다. 그러나 어느덧 난희가 가는 허리는 위홍의 팔에 껴 안기었다.
『늦어 가는 봄을 헛되이 보낼 수가 있으랴. 아직 꽃은 필 것을.』
하고 위홍은 난희를 끌어 무릎 위에 얹었다. 난희는 더 반항 하려고도 아니하고 붙들린 참새 모양으로 숨소리만 씨근씨근하였다.
에기하였던 반항과 발악이 없는 것을 다행히 여기어 위홍은 어머니가 젖먹이는 아기를 안 듯이 난희의 몸을 꼭 껴안았다. 난희의 몸은 비단 같이 부드럽고 불같이 뜨거운 듯하였다. 위홍은 육십이 가까운 몸이 갑자기 젊어지는 듯하여 미친 듯이 몸을 떨고 난희의 몸은 전신이 향기에 젖은듯 하였다.
『난희야, 오늘 하루를 보려고 내가 육십 평생을 살았다.
시불한(舒佛邯)다 무엇이랴.』
하였다, 위홍이 본래부터 난희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나 이렇게 품에 안고 보니 새삼스럽게 더욱 아름다운 듯하였다. 위홍은 취한 듯이 숨이 차고 몸이 떨렸다.
또 어디서 들어 온 나비가 등잔불을 싸고 돈다. 가끔 날개로 불을 치고는 놀래서 물려나다가 다시 날아 든다.
난희는 가만히 두 팔을 뽑아 위홍의 가슴을 안았다. 그 뚱뚱한 가슴이난 희의 아름에 겨우 두 손 끝이 위홍의 등뒤에서 닿을락말락하였다. 난 희는 손으로 위홍의 등을 위아래로 쓸어 만지었다. 그렇게 할수록 위홍의 숨결은 더욱 커지고 눈가는 더욱 술 취한 듯하였다.
난희는 위홍의 가슴에 한편 구리를 대었다. 엷은 겹옷을 통하여 염통 뛰는 소리가 쿵쿵 들린다. 난희의 등에는 위홍의 크고 힘있는 손이 떨면서 오르락내리락한 다. 그러할 때마다 난희의 비단 저고리가 위홍의 손바닥에 스치어 바삭바삭하는 소리를 낸다. 위홍은 참다 못 하여, 『 난 희야, 오늘 저녁은 내가 네 방에서 잘란다.』 하였다. 위홍은 지금까지 첩을 자기 방으로 불러 들일지 언정 일찍 첩 의방에서 잔 일은 없었다 ——— 그것은 무슨 일이 있을까봐 무서운 까닭이다.
그러나 오늘은 차마 난희의 방을 떠날 수가 없었다. 비록 잠시라도 한 걸음이라도 난희 방에서 발을 내놀을 수가 없었다. 난희는 여전히- 68 - 구리로는 위홍의 염통 뛰는 소리를 듣고 손으로는 위홍의 등과 허리를 만지면서 고개도 도리지 아니하고, 『 주무시게 해 드리지요.』 하였다.
이 말에 위홍은 더욱 기뻐서 난희를 한번 더 껴안았다. 그리고는 곧자리를 펴라 하고 난희를 안았던 팔을 풀었다.
난희는 일어나 반침을 열고 자리를 내어 깔았다. 다홍깃 단 초록 이 불의 하얀 머리가 베개에 반쯤 걸렸다. 자리를 펴고 나서 난희는 등잔을 들고 방한 편 구석에 섰다. 위홍은 칼을 끌러 걸고 옷을 끄르면서 등잔 뒤에 선난 희의 수삽한 얼굴을 보고 그 날씬한 몸을 볼 때에 더욱 정욕이 불 일듯 하였다.
위홍이 웃옷을 벗고 자리에 들어 가려 할 때에 난희는 나는 듯이 달려들어 뒤로서 위홍을 껴안았다. 위홍은 가슴에 무엇이 선뜻하는 것을 깨 달았다. 그리고는 앞으로 쓰러졌다. 위홍의 왼편 젖가슴 밑에는 날카로운난 희의 비수가 박힌 것이다.
난희는 힘을 써서 손에 쥔 비숫자루를 이리저리 비틀었다.
『이놈———— 내 남편의 원수야!』
하고 소리를 지르고 일어나서 벽에 걸린 위홍의 칼을 쭉 빼어 들었다.
위홍은 「응——」하고 몸을 비틀어 돌아 누웠다. 한손으로 피에 젖은 칼 자루를 잡기만 하고 뺀 힘은 없이 눈을 떠서 난희를 본다.
『내 남편의 목을 찍은 칼로 네 목을 찍을 테다.』
하고 난희는 번쩍번쩍하는 칼을 위홍의 목 위에 둘러 매었다.
위홍은 정신이 아뜩하고 소리도 칠 수 없는 줄을 알면서 난희의 내려치는 칼을 막으려는 듯이 힘없이 한손을 들고 애걸하는 듯이, 『 난 희야 난희야!』 하며 가슴을 들먹거린다.
난희의 눈에서는 새파란 불꽃이 날았다.
위홍은 겨우 기운을 모아, 『 난 희야, 너 같은 열녀도 있는데 나 같은 불충한 놈도 있구나, 난난난 희야 내가 열녀의 칼로 죽는 것만 다행이다.』 하고는 무슨 말을 더 중얼거리는 모양이나 어를하여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난희는 두러 메였던 칼을 내리고 가만히 위홍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 피 묻은, 좋으나 주름 잡힌 얼굴은 금시에 해쓱해지고 가슴 들 먹거리 던것도 점점 적어지다가 마침내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 69 - 위홍이 숨이 끊어진 것을 보고 난희는 숨이 끊어지어 넘어진 위홍을 볼때에 그의 목을 자르고 그의 가슴을 째고 간을 꺼낼 생각이 없었다. 위홍의 목과 간을 들고 신홍의 무덤 앞으로 뛰어 가서 신홍에게 제사를 드릴 생각도 없이지었다. 멍하니 뜨고 있는 빛 없는 위홍의 눈을 볼 때에는 난 희는 가엾은 생각이 났다. 그래서 위홍의 곁에 앉아 손으로 위홍의 눈을 감기고 이불을 들어 위홍의 시체를 덮어 버렸다.
난희는 이윽히 멍하니 옥등잔 불만 날개로 치고 돌아가는 나비를 보았다.
그 중 하나는 불에 몸이 데어 노란 기름에 빠지고, 한 나비만 여전히 날개를 불을 치그 돌아간다. 밖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난희는 일어나서안 앞으로 가서 벼룻집을 열고 먹을 갈았다. 그러하는 동안에 희의 눈에는 신홍이 죽은 지 팔년 동안 지나던 눈물 솟는 생애가 보인다. 몇번이나 자기의 목숨을 끊어 신홍의 뒤를 따르려 하였던고, 몇 번이나 위홍을 죽일 기회를 엿보았던고, 몇 번이나 위홍에게 욕을 당할 뻔하였던고, 몇 번이나 차라리 위홍에게 몸을 허하여 위홍의 환심을 산 후에 죽일 기회를 얻을까 하는 생각이 났던고, 그러나 남편의 원수를 갚는 것도 중 한일 이어니와, 내 몸의 정절을 깨끗이하는 것도 중한 일이었다. 백 목같이 깨끗한 몸을 짐승 같은 위홍에게 던질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러하는 동안에 한 봄이 가고 한 가을이 또 가기 일곱째 봄이 또 늦어 가려 하였다. 원통히 죽은 남편의 몸은 벌써 썩어서 재가 되어 버리고 어리던 자기의 눈초리에도 한 줄 두 줄 가는 주름이 잡히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그날에 위홍이 집에서 잔다는 말을 들었다. 근래에 위홍은 매 일대 궐에서 자고 집에서 자는 일은 한달에도 며칠이 되지 못하였다. 이 날을 놀치면 또 언제 기회가 올는지 몰랐다.
난희는 자기가 위홍을 잡을 무기가 자기의 아름다움 밖에 없는 줄을안다. 난희는 팔년에 처음 단장을 하고 채색 옷을 입었다. 머리에 기름을 바른 때나 채색 옷의 고름을 맬 때나 난희의 가슴은 아프고 눈물은 흘렀다.
더구나 단정을 다하고 나서 품에 비수를 품고 거울을 대하여 앉을 때에 난 희의 창자는 천 조각 만 조각으로 끊어지는 듯하였다.
단장을 하고 채색 옷을 입고 겨울을 대하니 옛날과 다름이 없다.
사돌집에서 신홍의 사랑을 받을 때와 다름이 없다.
<나는 아직도 젊다, 아직도 아름답다, 아직도 한창 재미 있게 살 나이다, 그러나 나는 살 수 없는 사람이다.>할 때에 난희는 얼마나 슬펐다.
난희는 거울을 대하여 엣 부르던 노래도 불러 보고 혼자 일어나서 엣추던 가야선무(伽倻仙舞)도 추어 보았다. 노랫 소리도 예와 같고 춤도 추는- 70 - 소매도 예와 같았다. 다만 같지 아니한 것은 난희의 신세이었다.
난희는 품에 품었던 비수를 빼어 보았다. 날은 파랗고 안개가 돈다. 팔 년 동안 품었던 비수다. 밤마다 내어 보고, 『 남편의 원수를 갚아 다오.』 하고 사람에게 대해 말하듯이 말하던 비수다. 이것은 자기가 위홍에게 붙들려 온 뒤에 신홍이 자기더러 일생을 같이 하라고 하던 화랑( 花郞) 이담을 넘어서 갖다 주고 간 비수다. 비수의 날은 파랗고 끝이 뾰죽하였다.
이것을 가지고 난희는 수없이 허공을 찔렀다. 찌를 때에 위홍이 피를 쏟고 거꾸러지는 것을 보고는, 『 이 놈 내 남편의 원수야!』
하고 소리를 지른 뒤에 위홍의 목을 찍고 배를 째고 간을 내어 입으로 씹고 ———— 이렇게 한번씩 되풀이하고는 다시 싸 두었다. 그러하던 비수다.
『오늘은————오늘은.』
하고 난희는 비수로 한번 허공을 찔러 보았다. 그리고는 또 한번, 『 이 놈 내 남편의 원수야!』
하고 한번 더 속으로 소리를 질러 보았다. 그리고는 또 거울을 보았다.
<나는 아직도 젊은데 아름다운데 살 나이인데.>
하고 입술을 물고 눈물을 뿌렸다.
난희가 먹을 갈다 말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등잔가로 돌아 가던 나비가 마주 불을 치고 등잔 밑에 떨어져 바르르 떨었다. 또 개가 짖는다.
난희가 먹을 같다 말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등잔가로 돌아 갔던 나비가 마주 불을 치고 등잔 밑에 등잔가로 돌아 가던 나비가 마주 불을치고 등잔 밑ㅇ[ 떨어져 바르르 떨었다. 또 개가 짖는다.
난희는 생각하기를 그치고 급히 급히 먹을 갈았다. 갈던 먹을 벼룻집에 던지고 붓을 들어 벽에 이렇게 썼다 ———『主失遺, 孤隱身伊, 八年風霜難臣良, 八年風霜何以經隱古, 主惡讎報白良遺, 主惡讎報叱時尼, 爲白事伊, 無奴阿羅, 主怨讎報叱時尼, 主追良往白理良.』 이것을 번역하면 이러하다.
『임 잃고 외로운 몸이 팔년 풍상 어려워라. 팔년 풍상 어이 겪은고.
임의 원수 갚았으니 임 따라 가노매라.』
다 쓰고서 난희는 위홍의 칼을 들고 후원으로 나갔다. 밤은 고요하고 별은 반짝인다.
난희는 은행나무 밑을 지나 연당 가를 돌아 풀에 맺힌 이슬에 옷을- 71 - 적시면서 후원 북편 끝 노송 밑에 다다랐다. 여기는 땅이 높고 가장 정결 한 곳이다.
난희는 칼을 곁에 놓고 땅에 끓어 엎드려 황천과 후토와 일월 성신과 부처님과 부모와 남편의 혼령에게 원수 갚은 일을 고하고, 『 나는 깨끗한 몸으로 임을 따라 가오. 임의 목을 베인 같은 칼로 내 목을 베고 따라 가오.』 하고 위홍의 긴칼을 빼어 한삼 소매로 한번 칼날을 씻은 뒤에 칼끝을 입에 물고 앞으로 거꾸러졌다.
점점 가늘어 가는 울음 소리가 들리다가 그것도 얼마 아니하여 끊어지고 향기로운 난희의 몸은 마치 기도하는 사람 모양으로 꿇어 엎드려 다시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이튿날은 왕이 임해전에 전춘연(餞春宴)을 배설하고 만조 백관과 흥륜 사의 높은 중들과 국학의 박사와 이음 난 국선과 화랑을 부르시는 날이다. 왕은 일찍 일어나 목욕하고 머리를 감고 사오인의 궁녀를 재촉 하여 가장 아름다운 의복과 가장 아름다운 단장을 하고 이날에 즐거운 연락을 시각이 바쁘게 기다렸다.
왕은 신상의 모든 행락이 자기를 위하여 있는 듯하고 자기는 영원히 젊어서 이 행락을 누릴 것같이 생각하였다. 이날에 하늘에는 구루미 없고 환한 해는 토함산 위로 거침 없이 솟아 올라 왔다.
『서불한 서불한!』
하고 왕은 단장이 끝나기도 전부터 위홍이 들어 오기를 기다리고 들어 오나 보라고 술 새 없이 궁녀를 자주 내보냈다. 왕은 자기의 새로 한 단장이 빛이 날기 전에 위홍이 보아 주기를 바란 것이다.
위홍이 아니 들어 왔다. 준흥도 왕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남자다. 「 얼굴 잘난 시중」이라는 동요까지 생겼다.
왕은 준흥을 가까이 불러, 『 내가 어떻게 보이오?』
하고 자기의 단장한 몸을 본다.
준흥은 눈을 들어 왕을 한번 우러러 보고 다시 고개를 숙이고, 『 하늘이 낳으신 성주(聖主)시옵고 미인이시옵니다.』
하였다. 이 말에 왕은 수삽한 듯이 웃었다. 그리고 어서 위홍이 들어 와서 그 입으로도 그와 같은 말을 듣고 싶다 하였다.
준흥은 차마 위홍이 죽었다는 말이 나지 아니하여 머뭇머뭇할 때에 왕은 매우 초조한 빛을 보이면서,- 72 - 『 서불 한 은 웬일인가, 벌써 진시는 되었거든.』 한다. 그제야 준흥은, 『 상대등은 죽었읍니다.』
왕은 낯빛을 변하여, 『 그게 참말일까?』
하고 책망하는 듯이 시중을 본다.
준흥은 더욱 고개를 숙이며, 『 위홍은 죽었읍니다.』
하였다. 왕은 이윽히 말이 막히더니 겨우 정신을 수습 하여, 『 무슨 병으로?』
하고 묻는다.
『칼에 가슴을 찔려 죽었읍니다.』
『칼에?』
『네, 날카로운 비수에 왼편 젖가슴을 찔려 죽었읍니다.』
왕은 그 젖가슴을 잘 알매, 그것이 눈앞에 번쩍 보인다. 피부 좋은 위홍의 가슴은 젊은 여자의 가슴과 같이 살이 많고 부드러웠다.
『어떤 자객이 찔렀나? 왜 금군(禁軍)을 더 내어서 집파수를 더 엄중히안 보았나?』
하고 왕은 두 손길을 마주 비튼다. 준흥은 속으로 우스웠다. 그러나 가장 슬픈 빛을 보이며, 『 밖에서 들어 온 자객이 아니라, 집안 사람의 손에 찔린 듯하옵니다.』 하고 왕의 낯을 엿보았다.
집안 사람이라는 말에 왕은 더욱 놀라며, 『 대궐에 들어 오려고 나서다가 찔렸나?』
하고 왕은 더욱 슬퍼하였다.
준흥은 더욱 속으로 우스웠다.
『대궐에 들어 오다가 찔린 것이 아니라, 첩의 방에서 자다가 첩의 손에 찔렸 읍니다.』
하고 준흥은 비로소 위홍이 죽은 모양과 난희의 필적과 또 난희 죽은 모양을 아뢰었다.
준흥의 말에 왕의 입은 분노로 떨었다. 태후와 좋아할 때에 벌써 아내를 내어 쫓은 것은 물로이어니와, 왕과 때에 벌써 아내를 내어 쫓은 것은 물로 이어니와, 왕과 좋아하기 시작한 때부터는 있던 첩까지도 다 내어 쫓는다고 하였고 집안에 계집 종도 두지 않는다고 위홍이 왕께 맹세를- 73 - 하였다. 그리하였거늘 어젯밤 젊은 첩의 방에서 자다가 첩의 손에 칼을 맞아 죽었다는 말을 들을 때에 왕은 지루의 분함과 속아서 분함이 한 데 엉 키어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래서 왕은 오늘 연락을 폐하지 말고 위홍이야 죽었거나 말았거나 그대로 연락을 열되 더욱 질탕하게 하라고 준흥에게 명을 내렸다.
왕은 이날에 술을 마시고 여러 젊은 신하들과 희롱을 하였다. 그러나 맘속에 있는 분함과 슬픔을 잊을 수는 없었고 만조 백관들도 위홍이 죽은줄을 알므로 일이 어찌되는지 몰라 마시고 노는 중에도 맘이 놓이지를 아니하였다.
그러나 왕은 끝까지 위홍을 미워하지 못하였다. 사오년 첫정 들인 사랑을 끝까지 미워하지 못하였다. 왕은 아직 왕이 되기 전부터 위홍과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왕은 위홍에게 혜성대왕(惠成大王)이라는 시호(諡號)를 주고 몸소 거상을 입고 위홍의 장례를 왕의 예로 하기를 명하였다. 최 치원( 崔致遠)을 머리로 하여 여러 학자들 그 옳지 못함을 상소로 여러 번 간하였으나 왕은 듣지 아니하고 혜성대왕(惠成大王)의 장례를 아주 왕례로 하기 위 하여 위홍의 시체를 내전으로 들어다 놓고 전국에 조서(詔書)를 내려 국상을 입으라 하고 모든 공문에 양암(諒闇)이라고 쓰게 하였다. 이리하여 잔국은, 『 이 것은 우리 나라에도 없는 법이요, 당나라에도 없는 법이라.』 고 인심이 물 끓듯하나 왕은 모른 체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은 왕의 조서를 좇지 아니하였다. 하나도 국상을 입는 이도 없다. 위홍을 혜성대왕이라고 부르는 이도 없었다. 궐내에 들고 나는 벼슬 아치들만 왕명대로 할 뿐이요, 그중에도 국상을 입기 싫은 이는 병이라 일컫고 집에 숨어 나오지 아니하였다.
왕은 자기의 명령이 행해지지 않는 것을 분히 여겨 국장을 아니 입는이는 모조리 잡아 엄벌하라는 조서를 내려 많은 백성이 붙들려도 가고 매도 맞았으나 그것도 시원치 아니하였다.
이때에 민간에는 여러 가지 동요가 돌아 다녔다. 그것은 대개 왕을 풍자한 것인데 누가 지었는지 모르거니와, 한 입 건너 두 입 건너 저 마다 부르게 되었다. 그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우리나 난 희는 임 따라 갔건마는 우리나 마누라- 74 - 어느 임 따라 가리한 몸을 둘에 내두 임 다 따를까.
우리나 마누라두 임 다 따라 가도 우리나 아기씨 어느 임 따라 가리 머리칼 올 올 이그 임 다 따르려나.
이 동요에 마누라라 함은 물론 영화·정화 두 분 마마요, 아가씨라 함은 물론 왕이다. 두 분 마마는 따를 임이 물 뿐이지만 왕은 머리칼 올 올 이따라도 모두 따를 만큼 임이 많단 말이다.
또 이런 것도 있다.
십만명 군사도 믿을 수 없어라서 불한 가슴도 칼은 박힌다네.
이 모양으로 왕과 위홍을 풍자하는 동요가 돌아 다니고 혹은 성 문과 대궐 문에 이상한 글들이 나붙기 시작하였다. 왕은 금군을 풀어 금발이 붙는대로 떼고 동요를 부르는 자가 있으면 잡아서 엄벌을 하였다.
그래도 왕은 자기의 위령을 세우려고 강제로 흰 감투를 씌우려 하니, 백성들은 왕께 복종하지 아니하니 왕만 혼자 가슴이 끓었다.
그럴수록 왕은 위홍의 장례를 찬란히 하려고 장안에 있는 베와 비단을 사들이고 왕릉을 꾸미기 위하여 남산의 옥과 가야의 청석을 캐어 오라 하였다. 그러나 준비 아뢰었고 아무리 성화같이 독촉하여 농시 방정에 백성에게 세납을 거둘 길이 없음을 아뢰었다.
왕은 하릴없이 벼슬을 팔기로 하였으나 벼슬을 사는 사람도 많지못하였다. 장안에 살던 부자들은 경보(輕寶)를 싸 가지고 밤마다 슬며시 서울을 떠나 사방으로 피란을 떠났다. 세상은 오늘 내일로 뒤집힐 듯하고 늦더라도 위홍의 장롓날에는 무슨 변괴가 나리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위홍의 빈전(殯殿)에는 왕과 두 분 마마가 소복을 입고 빈틈 없이 들어- 75 - 가 있었다. 혹시 두 분이 서로 만날 때도 있고 세 분이 동시에 만날 때도 있었다. 그러한 때에는 서로 외면을 하였고 어떤 때에는 그중에 한 분이 홱 나와 버렸다.
태후는 말이 못되게 쇠하였다. 눈에는 항상 충혈되고 살도 많이 내리고 주름도 많이 늘었다. 질투와 원정의 괴로움이어니와, 가끔 양심의 가책이 괴롭다 남은 태후의 맘을 때렸다. 더구나 근래에는 경문대왕이 가끔 꿈에 보여서 괴로왔다. 대왕은 혹은 위의를 갖추고 혹은 병석에 누운 모양으로 태후에게 보였다. 왕은 대개 태후를 물끄러미 볼 뿐이요 아무 말도 하지아니하건마는, 그래도 싫고 무섭고 꿈이 깨면 전신에 땀이 흐르고 다시는 잠이 들지를 아니하였다. 태후는 위홍의 빈전에 들어 올 때마다 맘으로 위홍을 생각하고 이런 모든 불길한 꿈이 다시 꾸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빈다.
버금마마는 아드님이신 정강대왕이 돌아 가신 후로 염려를 하기 시작 하여 어떤 때에는 주무시는 방에서 밤이 깊도록 염불하는 소리가 들리고 때때로 늙은 여승들을 청하여 염불을 배웠다. 여승들은, 『 아무리 죄가 많아도 나무아미타불만 부르면 왕생 극락하옵니다.』 하고 슬퍼하는 정화마마를 위로하였다. 마마는 위홍의 빈전에 들어 올 때마다 나무 아미타불을 불러 위홍이나 자기나 현세에 모든 죄를 받고 왕생 극락 하기를 빌었다. 영화마마보다 맘이 약한 정화마마는 가끔 눈앞에 유황 불이 이글이글 타는 지옥의 광경이 보이고 그 불구덩이에는 자기 형제가 위홍의 한팔씩을 붙들고 매달려 영겁에 끝나지 아니할 괴로움을 보는 양이 보였다. 그러할 때마다 정화마마는 몸에 소름이 끼치어 떨리는 목소리로 나무 아미타불을 불렀다.
날은 가물고 더워 위홍의 시체에서는 무서운 구린 내가 나기를 시작 하였다. 겹겹이 칠을 한 관속에 넣었건마는 어디 틈이 벙긋 하였는지 쥐구멍이 뚫렸는지 코를 쳐들 수 없게 냄새가 났다. 그래서 아무도 빈전에 들어 가기를 싫어하고 송경하는 중들도 문으로 코를 향하고 왕과 두 분 마마도 들어 왔다가는 코를 쥐고 나와 버렸다.
왕은 차비원에게 엄명 하여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하라고 하였다.
차비원들은 다시 관 하나를 더 만들어 넣었다. 그래도 칠을 뚫고 냄새 나는시 습이 흐르고 이상하게 생긴 구더기와 벌레가 관에서 기어 나와 빈전 마루로 기어 다니었다.
왕은 많은 차비관을 형벌하고 갈아 대었다. 그러나 아무리 하여도 그 냄새와 구더기를 막을 수가 없었다. 이 냄새를 맡고 빈전 지붕에는- 76 - 까마귀가 모여 들어 까욱거리고 빈전 마당에는 가끔 여유가 번뜻번뜻 보였다.
그중에 지혜 있는 차비관 하나가 지혜를 내어 빈전에 큰 향나무 토막을 태웠다. 향나무가 타서 올라 연기가 빈전에 차고 빈전은 불 붙는 모양으로 연기가 나왔다. 그래도 효험이 없어 구린내는 여전하였다. 그래서 송 경하는 중들도 문밖에서 코를 밖으로 향하고 아무도 빈전 안에 발을 들여 놓은 이가 없었으며, 그런 며칠 후에는 구더기가 문밖에까지 기어 나와 사람들 은발 밑에 그것이 보일 때마다 냉수를 끼얹는 듯이 깜짝깜짝 놀랐다.
이 때문에 빈전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온 대궐 안이 모두 흉가와 같이 되었다. 누구는 어느 구석에서 목 잘린 귀신을 보았다 하여 밤이면 아무 도밖에 나가기를 싫어하였고 빈전 안에서는 가끔 「이 놈 위홍아 」 하는 소리와 위홍이 「응응」하고 우는 소리가 들려 송경하는 중들이 경 문을 내버리고 달아나기도 하였다.
왕은 심히 맘이 괴로와 사방으로 사람을 보내어 궁중에 잡귀를 물리고 시체에서 냄새와 구더기를 막을 명승을 청하였다.
사방에서 많은 중들이 모여 들었다. 혹은 고깔 장삼을 입고, 혹은 송낙쓰고 바랑을 지고, 혹은 늙은이, 혹은 젊은이, 가지 각색 중들이 모여들어, 혹은 송경을 하여 경의 힘으로 위홍의 몸의 냄새와 구더기를 막으 려하고 혹은 붙가사의한 영혼이 있는 부적으로 혹은 신통력이 있는 진언으로 혹은 다라니로 혹은 염불로 혹은 염력(念力)으로 저마다 이 냄새 나고 구더기 끓는 죄 많은 혼을 제도(濟度)하려 하였으나 아무 효력이 없고 날이갈수록 더욱 소리와 대궐 안에 잡귀의 설법은 더하여 갔다. 그래서 중들은 모두 지팡이를 돌려 짚고 코를 싸고 물러나갔다.
그러는 동안에 동요는 더욱 늘고 왕을 풍자하는 글과 말은 더욱 유행 하였다. 처음에는 별로 뜻이 깊지 아니하던 동요와 글 뿐이었으나 근래에는 썩 잘 지은 글과 노래가 돌아 다니었다. 더러는 한문으로 지은 것이요, 더러는 이두(吏讀)로 지은 향가(鄕歌)였다. 이러한 글과 노래를 짓는 이가 반드시 이름 있는 문장일찌 분명하다 하여 왕은 글 잘 짓는 이를 수탐하여 모두 잡아 들리라 하였다. 이 통에 대야주(大耶州)에 사는거인( 巨人) 이 잡혀 왔다, 거인은 나이 칠십이 가깝고 문장과 덕행이 일세에 높으나 세상이 어지러워 오매 가만히 산중에 숨어 이름을 듣고 찾아 오는 젊은 선비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비분 강개한 말로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간악한 무리를 책망 하였다. 거인의 문하에 배운 선비들은 다 거인의 뜻을 본받아 우국 개세(憂國慨世)의 사(士)가 되어 전국에 흩어지어 선비들에게- 77 - 그 뜻을 전하고 또 동지를 구하였다.
이리하여 거인 선생은 위홍 생전에 가장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사람 중에 하나 였다.
거인은 잡혀 들어 와 국문을 당할 때에 향곡에 돌아다니는 노래와 글 이 자기가 쓴 것은 아니나. 다 뜻이 옳고 또 민성(民聲)은 천성(天聲)이니 이 백 성의 소리를 하늘의 소리로 들어 정사를 고치지 아니하면 나라 가망 하리라고 두 발가락이 뽑히고 다리 하나가 분지러지면서도 제자리들에게 가르칠 때 모양으로 조금도 굽히거나 두려워하는 빛 없이 태연히 말을하였다. 그 엄연한 위풍에 국문하던 사람들도 무서워서 말이 막히었다.
그러나 왕은 비방하고 혜성대왕을 비방한다는 죄로 거인을 종로에서 거렬( 車廬) 하라고 명하였다.
거인 선생이 옥에 갇히매 그의 문인들은 수없이 서울로 모여 들어 여러 번 상소를 하였다. 그러나 왕은 상소하는 선비들까지도 혹은 가두고 혹은 때리고 그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다. 거인을 죽이어 자기와 위홍을 비방하는 백성들에게 위엄을 보이고 이 기회를 타서 전국 백성이 일제 히 위홍의 국상을 입도록 정령을 세우려 하였다.
내일이면 거인 선생을 종로에 끌어 내어 사지를 찢어 죽인다고 하여장 안이 물 끓듯하는 날에 거인은 옥 벽에 시 한 수를 썼다.
于公慟器三年早, 鄒衍悲五月霜, 今我幽秋還似古, 皇天無語伯蒼蒼.
그날 저녁에 문뜩 난데 없는 구름이 일어나고 우뢰와 번개가 집도아고 악수가 쏟아지고 주먹 같은 우박이 떨어지다가 대궐 마당에 벼락이 떨어지어 아름드리 불덩어리가 푸른 빛을 내고 빙글빙글 돌았다. 왕은 크게 두려워 하늘을 향하고 합창하고, 『 거인을 방면하겠읍니다.』 하고 빌었다.
왕이 빌기를 끝나매 벼락 불이 북으로 굴러 나가고 우뢰와 번개가 그치었다. 왕은 곧 사람을 보내어 거인을 옥에서 내어 놓았다.이튿날
거인이 찢기는 것을 보려고 종로에 모였던 백성들은 어젯밤 우뢰 소리에 거인이 놓였단 말을 ㄸ고, 크게 소리를 지르고 모인 중에 국상을 임은 자를 붙들어 「개 아들」이라고 부르며 때렸다. 소복을 하였던 사람들은 모두 감투와 옷을 벗어 버리고 도망을 하였다.
왕은 거인 선생이 오래 서울에 머무르는 것을 두려워하여 수레를 태워- 78 - 대야주로 돌려 보내가를 명하였다.
왕의 보낸 수레가 문밖에 기다릴 때에 거인은 좌우의 문인을 부러 놓고 국운이 날로 기울어짐을 한탄한다.
그러나 몸이 이미 늙고 또 국문에 뼈가 꺾이고 피가 많이 흘렀으니 살아서 나라를 돕지 못할 것을 말하고 문인에게 각기 집을 잊고 몸을 잊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 잡으라, 만일 운이 불길하고 힘이 부족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거든 나라와 함께 죽으라는 뜻을 말하고 인하여 지필을 드리라고 명하여 한 노래를 썼다.
나라이 기울어짐이어 하늘이 기울어짐 같도다 하늘이 무너짐이어 창생을 어이하 리오내 몸이 늙고 병 듦이어오래 머물지 못 하리로다 나라를 두고 가는 혼 이 황천에 이어 눈을 감으 리오나라를 두고 감이 어피 눈물이 흐르도 다남산이 높고 오 램 이어 국운이 그와 같기를 빌었더니 동해의 깊고 푸름이어 오직 충신의 한만 끝이 없도다 죽는 이 만일 혼이 있을진댄 아홉 번 죽고 열 번 다시 나 천년 종사(宗社)를 지키고자 하 건마는 혼이 흩고 넋이 슬 진대 아아 창천 내 어이하리오.
쓰기를 마치고 붓을 던질 때에 거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좌우에 있던 문인들은 스승의 옷자락을 비어 잡고 목을 놓아 울었다.
문밖에 수레를 머물고 기다리던 과인들은 거인이 속히 수레에 오르 기를 재촉 하였다.
거인은 왕명이니 어기지 못한다 하여 문인들에게 붙들려 일어나 수레를- 79 - 향하고 나오다가 문에 다 미치지 못 하여, 『 하늘아 하늘아 하늘아.』 하고 하늘을 세 번 부르고 운명하였다.
거인 선생의 해골이 서울을 떠나 대야주로 반장되는 날에 장안 백성들은 무두 길에 나와 목을 놓아 울고 보내었다. 앙장이 바람에 펄렁거리고 방울이 걸음을 맞추어 딸랑거리며 거인의 해골을 실은 수레가 남으로 향하여 나갈 때에 울음 소리는 갈수록 갈수록 더욱 높아졌다. 백성들은 거인의 수레가 아니 보일 때까지 두 손으로 눈물을 씻고 씻고 바라보고 돌아 서며 또 울었다.
거인 선생의 다리를 분지르고 거인 선생 죽은 일에 백성의 맘을 더욱 울분하게 하였다. 날이 갈수록 민심은 더욱 흉하여지고 위홍의 빈전에서는 더욱 냄새가 나고 구더기가 끓으니 왕도 심히 맘이 초조하여 대구 화상( 大矩和尙) 의 말대로 인산을 급히 하기로 하였다. 대구화성은 노래를 잘 짓고 음률을 잘 아는 중으로 왕의 노래 스승이 되어< 삼대목( 三代目)>이라는 향가집(鄕歌集)을 만든 중이다.
그는 왕께 이렇게 고하였다.
『가는 이를 어이 막으리 보낼 이는 보내소서 묵은 잎 속에서 세 움이 돋다니 묵은 잎 썩으면 새 움인 줄 이소서.』
하여 그윽히 위홍을 송장을 어서 치워 버리고 새 사람을 맞이 들일 것을 말하였다. 왕은 이 말대로 하루바삐 인산을 준비하기를 명하였다.
그런데 또 걱정이 생겼다. 첫째는 서울 육부 백성들 중에서 여사군 이아니 나는 것이요, 둘째는 능침 준비 그중에도 석물 준비가 안된 것이다.
위홍의 무덤 일을 하는 석수들은 백성들의 욕과 돌 팔매를 견디지 못 하여 모두 삯도 아니 받아 가지고 달아나 버리고 말아서 역사를 시킬 길이 없었다.
혜성대왕의 인산 날이 되었다. 이달은 무섭게 더운 날이었다. 금년도 가물어서 훙년이 든다고 민정이 오오하였다.
백성 중에서 여사군이 나기를 원치 아니하므로 군사를 풀어 여사군을 잡아 들었다. 그러고도 부족한 것은 군사들이 메었다.
인산 행렬은 정강대왕보다도 장하였다. 왕이 국고의 재물을 마지막으로- 80 - 다 떨어서 준비하니만큼 화려하고 굉장하였다. 그러나 인산이 지나가는 길가에는 어린 아이들 밖에 나서서 보는 사람이 없고 어린 아이들도, 「 가자 가자」하고 서로 팔을 잡어 끌고 길을 피하였다. 백성들 사이에는 위홍의 장례를 보면 코가 막혀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 돌았다.
그래서 인산 구경을 하고 싶은 아낙네들과 젊은 사람들도 코막힐 것이 무서워서 대여가 번뜻 보이기만 하면 침을 뱉고 고개를 돌렸다.
대여가 첨성대(瞻星臺) 앞을 지날 때에는 어디서 난데 없는 화살이 날아와서 위홍의 관에 박히고 또 좀더 가서 계림(鷄林) 숲을 지날 때에는 갑자기 수없는 돌팔매가 날아 와서 뚱땅 뚱땅 하고 위홍의 관을 때렸다.
그러 할 때마다 대여에서는 더욱 시습이 흐르고 냄새가 나서 여 사군들도 한 손으로 코를 쥐고 낯살을 찌푸렸다. 까마귀 한 떼가 냄새를 따라 데여 위로 떠돌며 따라 왔다.
포석정(鮑石亭)도 지나고 거의 장지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날이 흐리 고뇌성 벼락을 하여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더니 무서운 소나기가 지나갔다. 대여 소여며다 따라 오는 문무 백관들은 눈물을 흘렸다.
위홍의 관은 땅속에 들어 갔다. 수풀 속에서는 까마귀가 울었다. 문무 백관은 어디서 화살이나 돌 팔매가 날아 오지나 아니하는가 하여 연해 사방을 돌아 보아 참새 하나만 날아 지나가도 일제히 목을 움추렸다.
그러다가 모든 예식이 끝나자마자 자기 앞을 다투어 달아나고 말았다.
위홍의 무덤 앞에는 혜성대왕 능이라는 큰 비석이 섰건마는 백성들은 아무도 그것을 능이라고 부르지 아니하고 위홍의 무덤이라ㅗ 하였고 그 후에 백성들이 밤이면 개 죽은 것을 갖다 버려서 위홍의 무덤에 개 주검이 쌓이어 썩게 되매, 무가 먼저 부르기 시작한 지 모르게 「 개 무덤 」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개 무덤이란 이름은 그후 대대로 전하여 오늘에 이르 렀 다.
위홍의 장롓날에는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나 인심이 흉 흉하기는 점점 더하여졌다 나라에 돈이 말라 백성들에게는 때 아닌 납세를 독촉하고 하늘은 가물어 논은 틈이 벌고 밭은 노랗게 탔다. 백성들은 당정 먹을 것이 없고 또 추수할 가망도 없어서 집을 버리고 어린것들을 안고 업고 옷 보통이를 지고 이고 북으로 북으로 달려 갔다. 한강만 건너 가면 편안히 살곳이 있는 줄로 믿은 까닭이다. 그리고 서울에도 거지떼가 날로 늘어 끼니 때면 대문을 꼭 닫어 걸고야 밥을 먹었다. 그렇지 아니하면 배고픈 거지들은 우는 아이를 안고 들어 와서 숟가락을 들고 밥상에 마주 앉고, 혹은 부엌에 들어 가서 지어 놓은 밥을 맘대로 퍼 먹었다. 만일 그것을- 81 - 못 하게 하거나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 혹은 안았던 어린 아이를 마당에 던져 죽이고는 자기가 목을 매어 늘어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지들 이하는 대로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못 먹어서 얼굴이 희어멀끔해지고 허리가 굽은 거지떼들이 지팡이를 끌고 먹고 싶은 눈을 번득거리며, 종로 네거리로 대궐 앞으로 꾸역꾸역 다니는 꼴은 참으로 참혹하였다. 「인제야말로 세상 끝날이 왔다」고 백성들은 시집 장가 가는 것과 아기 낳은 것까지도 시들하게 알고 슬퍼하였다. 죽는 사람이 있으면, 『 잘 죽었지 살면 몇 날이 더 사나.』 하고 죽는 이를 부러워하게 되었다. 그러나 왕은 여전히 밤낮 젊은 남자를 들여 음란한 쾌락에 취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소허(少虛)가 달아난 것은 사중(寺中)에 큰 이야깃 거리가 되었다.
마을에 재 올리러 갔던 길로 이내 돌아 오지 않고 말았다. 허담( 虛潭) 화상을 성을 내어, 『 이 놈, 간단 말도 아니하고.』
하고 소허를 원망하였다. 허담 화상도 인제는 늙어서 옛날의 호화롭던 기운도 줄고 맘이 약하여져서 선종과 소허 둘에게만 의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둘 중에 하나는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그중에도 화상은 소 허를 더 믿었다. 대개 선종은 우락부락하고 활 쏘기를 좋아하고 중 의계 행( 戒行) 도 잘 지키지 아니하고 가끔 마을에 가서 술과 고기를 먹고 돌어다니므로 허담 화상뿐 아니라, 사중 모든 중들이 선종은 중으로 일생을 보낼 사람이 아니요 반드시 무슨 일을 저지를 사람으로 여겼다.
그러나 소허는 그렇지 아니하였다. 그는 어려워서는 선종을 따라 토끼 사냥도 다니고 장난도 하였으나 점점 나이 자라고 또 백의 선인의 제자가 된 뒤로부터는 더욱 말이 적어지고 중의 계행을 잘 지키고 또 불공을 잘 한다 하여 사중에서 많은 신용을 얻고 소허 화상도 여생을 소 허 하게의 탁할 줄만 믿고 있었다. 그랬던 소허가 재올리려 갔던 길에 이내 어디로 달아나 버리고 만 것이다.
허담은 홧김에 선종을 졸랐다.
『너는 알겠구나, 그놈이 어디를 갔느냐?』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같은 소리를 물었다.
『내가 알어요?』
『고것이 누구더러 속말 해요?』하고 선종도 화를 내었다. 진실로 선종 과소 허와는 십여년 내로 사형(師兄) 사제(師弟)의 관계로 방도 같아 치우고- 82 - 밥도 같이 짓고 물도 같이 긷고 한자리에서 자고 하였건마는, 아무리 하여도 뜻이 합하고 정이 통하지 아니하였다. 소허는 낫살이 먹어 갈수록 더욱 꽁하였다. 남이 열 마디가 물어야 한 마디를 대답하고 그것도 자기 비위에 맞지 않는 일이면 가느란 눈만 깜짝깜짝하고 길다란 몸을 늘여 기지개만 컸다. 성급한 선종은 가끔 기가 막혀 주먹을 부르 쥐고, 『 요것이!』 하고 소허를 때리려고 덤빈 일도 여러 번 있었다.
또 소허 편에서는 선종을 겉으로는 무서워하면서도 속으로는 「소 샅은 것 」 하고 픽픽 웃었다. 그래서 선종과 소허와는 항성 튀각 태각으로 지냈다. 더구나 그 꾀만 남고 아니꼬운 것이, 점점 스님과 사중 사람들의 신용을 얻고 자기는 도리어 가끔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꼽고 분하였다.
그러나 선종은 소허가 범물(凡物)이 아닌 것을 안다.
<그놈이 일 저지를 놈인 걸.>
하고 선종은 여러 번 혼자 한탄하였다.
선종과 소허가 의 좋은 못한 것을 한탄하여 백의 국선은 여러 번 들을 앞에 불러 놓고, 『 만일 큰일을 하려거든 너희 둘이 의로 합하여라.』
하고 일러 주었고 한번은 지금 국운이 날로 쇠하여 가니 바야흐로 천하가 사람을 구할 때라 이때에 너희들은 모든 사욕과 사혐을 버리고 창생을 건지려는 어진 다음으로 힘을 합하여 큰일을 이루라고 말한 끝에 지필을 들어 이렇게 열자를 써서 둘에게 한 장씩을 주었다.
『合則濟蒼生
分則殺一身.』
그러나 선종과 소허는 조금도 그치는 빛이 없이 서로 낯춰 보고 서로 미워하였다. 이 때문에 백의 국선은 항성 마음을 슬퍼하였다. 선종· 소 허두 사람의 재주와 기운을 사랑하여 크게 바라보는 바가 있었으나 마침내 고침이 없는 것을 보고, 『幽輩足以亡國嗚呼蒼天安得其人.』 이라는 글을 써 놓고는 다시 두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아니하였다. 백의 국선은 천하를 두루 돌아 나라를 건질 사람을 찾다가 마침내 실망하고 만것이다. 삼년이라 모시던 선생을 잃고 선종과 소허는 울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고치어지지 아니하였다.
풍 운- 83 - 소 허가 없어진 뒤에 신종의 마음에는 큰 괴로움이 생겼다.
『고놈이 마침내 녹록한 놈이 아니로구나.』
하고 선종은 소허가 도리어 자기보다 뜻이 큰 듯함을 깨달았다.
나는 이대로 산중에서 늙어 버릴 것인가. 어머니의 원수를 갚자던 맹세 는다 어디로 갔을까? 자기의 원수라 할 헌강왕과 정강왕도 죽었다. 그리고 원수로는 오직 하나만 남은 만공주가 왕이 되었다. 만일 어머니의 원수를 갚는다 하면 이때 밖에 없지 아니한가.
『내 나이 벌써 삼십이다, 』 하고 선종은 두 주먹을 부근 쥐었다.
그러나 선종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적수 공권으로 세상에 뛰어나가면 무엇을 하나? 첫째 먹고 입을 것인들 어디서 얻나? 오랫 동 안산중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던 선종에게는 어릴 때에 집을 떠나던 기운이 없어졌다. 산중을 떠나 세상에 나가는 것이 마치 조그마한 배를 타고 가 없는 큰 바다에나 뜨는 것 같았다. 그러한 생각을 할 때에 선종은 어린아이와 같이 겁이 났다. 소허가 떠난 뒤에 날이 지낼수록 허담 화상은 더욱 몸도 쇠약하여 가고 맘도 약하여 지어서 잠시도 선종을 곁에서 떠나지못하도록 붙들었다. 잠이 들었다가도, 『 선종아.』 하고 여우니 팔을 내어 들어서 선종이 곁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야 다시 잠이 들었다. 선종도 소허가 없어진 뒤로는 늙은 스님을 사모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더욱 자랐다. 워낙 소박한 성질이라 특별히 귀여워하는 빛 도보이지 아니하고 십 오년 생활을 돌아 보면 허담 화상의 은혜와 저 이선종의 뼈에 사무침을 깨달았다. 이것을 뿌리치고 달아난 소허는 아주 인정 없고 매몰한 사람이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크게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 하였다. 선종은 산중을 떠나자고 생각하였다가도 자기에게 매어 달리는 스님의 기운 없는 모양을 볼 때에는 맥이 풀렸다. 「 가자 」「 못 간다 」———— 선종의 속에서는 두 소리가 다투었다. 어머니의 원수는 지난 일이요, 스님의 정은 지금 일이다. 만일 천하를 다 준다 하여도 차마 늙은 스님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선종은 소허가 떠난 뒤에는 소허와 같이 말이 적어지고 소허와 같이 순 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효도하는 자식 모양으로 병든 스님을 받 들고계 행 지키는 중으로 모든 불사(佛事)를 근실히 하였다. 산중 사람들은 선종의 행동이 돌변한 데 놀랐다.
- 84 - 그러나 선종의 마음속에서는 누를 수 없는 무슨 뭉텅이가 불끈불끈 솟아올라 왔다. 더구나 새로 즉위한 여왕이 음탕하여 민심이 이반하고 각처에 영웅 호걸들이 불끈불끈 일어나서 천하를 엿보는 것을 듣고 볼때에 「 나도 」 하는 생각이 아니 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선종에게는 첫째 로어 린 아이 같은 겁이 있고, 둘째로는 스님의 정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나는 왕자다.>
하고 자기가 범상한 사람이 아닌 것을 생각하여 본다. 그러나 십 오 년 동안이나 소식이 없다가 자기가 왕저라고 나서기로 누가 믿어 줄까?
세상에서는 도리어 미친 놈이라고 웃을 것이다. 서뿔리 그런 소리를 하다가는 공연히 봉변만 할 것이다.
그러면 내가 무엇으로 큰일을 하나, 백의 국선은 말하였다. 백 성의 마음은 의 있는 사람에게로 돌아 가고 백성의 마음을 얻는 사람은 곧 천하를 얻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럴 듯도 하지마는 과연 그렇게 될것인가, 자기가 언제 무슨 의를 백성에게 보여 백성의 마음이 자기에게로 돌아 오게 할까.
백의 국선은 또 말하였다. 백성의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하고 백성을 위하여 백 몸이 당할 수 없이 쿤 것이라 하더라도 뛰어 나가 맡으라, 그것이 의인지라, 하늘과 백성이 네 편이 되어 반드시 그 큰 괴로움을 이기게 하리라, 다행히 이긴 때에 백성의 마음이 네게 돌아 올 것이요, 불행하여 네 몸이 죽은 때에 너는 만세 백성이 사모하는 의인이 되리라.
생각하면 백의 국선의 말은 옳지, 자기가 사중의 여러 약하고 어린 중들에게 사모함을 받는 것은 그들의 괴로움을 맡아 주는 까닭이다. 만 일백 성의 괴로움을 맡아 그것을 없이해 준다 하면 백성의 마음은 돌아 올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될까? 나이 삼십이 되도록 우락부락한 한중 놈에 지나지 못하던 내가 세상에 나가서 무슨 일을 할까?
이렇게 생각하면 선종은 스스로 자기의 못난 것이 부끄러웠다.
선종이 생각하기에 각처에 일어나는 영웅 호걸들은 다 자기보다 몇 갑절 몇 십 갑절 힘있고 재주 있는 이만인 듯하였다. 그러할 때에는 선종은 자기가 어렸을 때 활터에서 열바가지 투구를 쓰고 아이들의 대장이 되었던 일과 수리재에서 돌 팔매로 떡 장수 노파의 귀고리를 맞추고 활로 독수리를 쏘아 맞추어 그 시커멓고 눈 움푹 들어 간 사람의 활과 칼을 빼앗던 생각과 또 단신으로 대궐에 들어 가 야료를 하던 생각이 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자연 빙그레 웃음이 나오고 어깨가 으쓱하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때에 자기의 눈앞에 보이는 미륵은 지금의 자기와는 딴 사람인 듯하였다. 지금의- 85 - 자기에게는 그러한 용기가 잇을 것 같지도 아니하였다. 그렇게 생각 하면 슬펐다.
선종은 그 칼을 내어 본다.
『중에게 칼이 당하냐?』
하고 스님께 여러 번 꾸지람을 들어 꼭꼭 싸서 감추었던 것이다. 칼날에는 녹도 아니 나고 여전히 파란 날에 뾰얀 안개가 돈다. 선종은 그 얼음같이 찬 칼날이 번쩍번쩍 보일 때에 알 수 없는 힘이 가슴에서 복받치어 올라옴을 깨달았다. 그래서 한번 칼을 들어 내어돌려 보았다. 칼은 번쩍번쩍 하여 마치 불길과도 같고 수없는 무지개가 한데 엉킨 것도 같다.
선종은 칼을 곁에 놓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선종의 앞에는 엷은 벌판 이보이고 거기는 구름같이 밀려 오는 군사가 보이고 번득거리는 기치와 창검이 보이고 안개같이 일어나는 말 발굽에 일어나는 먼지가 보이고 그 중에 자기가 황금 두구에 해 달 그런 갑옷을 입고 한 어깨에 활을 메고 한 손에 칼을 두르며 만군중으로 쫓아 들어 갈때에 군사들은 자기의 칼끝에 삼대 쓰러지듯하고 또 광풍 앞에 풀이 눕듯이 자기의 위풍에 눌려 넋을 잃고 달에 왕과 같은 위풍으로 비단 장막이 펄렁거리는 본진( 本陣) 중으로 돌어 오는 양이 보이고 본진 중에는 달 같고 꽃같은 미인이 있다가 자기를 보고 반겨 내달아 일변 투구와 갑옷 벗기고 일변 자기의 칼에 묻은 피을 씻고… 이러하는 양이 보인다.
선종은 번쩍 눈을 떴다. 곁방에서, 『 선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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