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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문학

채만식 탁류의 계봉

by 역달1 2022.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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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濁流[탁류]』의 桂鳳[계봉]

 

── 나보고 늙었다고 타박

분명 군산(群山)이었고 개복동(開福洞)서‘둔뱀이’로 가느라고‘콩나물고 개’ 를 넘어가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종로 화신앞이다. (그게 생시라면 펄 쩍 뛸 일이지만 꿈이라 조금치도 의외롭거나 놀랍지는 않았고) 그래 청년회관 쪽으로 걸어가느라니까 웬 아주 잘생긴 한 이십이나 됐을까 ? 여학생 차림으로 차린 여자 하나가 나를 보더니 저기서부터 벙싱벙싯 웃 으면서 쫓아오는 것이다.

그래야 나는 도무지 모르는 여자인데 웬일인가 싶어 혹시 ? 하고 뒤와 옆 을 보아도 마침 다른 사람은 없고, 하면 분명코 나는 난데, 하도 미심스러 워서(하기야 모르면 모르는만큼 그런 잘생긴 여자가 사뭇 반가와하고 달려 드는 게 속으로는 푸짐했지만) 연신 눈만 끄먹거리다가 마침내 딱 마주 쳐……마주 내 앞에 가 가로막듯 멈춰서더니“아이유 ! 이런 어른 !”밑도 끝도 없이 단박 이 소리라 !

나야 머루 먹은 속이지, 점점 더 어리뚱할밖에 !

“아이 나를 모르세요 ? 하하하하 ! 내가 계봉이어요 !” “에”놀랍달까, 반갑달까, 희한하달까, 아마 그 세 가지 전부겠지, 그 러느라고 바보같이 에 ? 한마디 소리를 지르고서 비로소 자세히 뜯어보니 아닌게아니라 계봉이는 계봉이다.

두릿한 얼굴에 잘 균형이 잡힌 코와 영롱스런 눈과 그리고 하하하하 마음 턱 놓고 웃던 시원스런 입…… 뭐 꼭 계봉이지 일호도 틀리지 않는다.

일각(一刻) 후에 우리는 길 옆 다방의 시원한 선풍기 앞으로 자리를 잡고 마주앉았다.

“그래…… 언니는 ?……”

나는 맨 먼저 초봉이의 소식을 물었고 또 그것이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아직 그대루……”끝은 다 잇대지 않아도 복역중이란 말이고.

“몇해던지 ?”

“삼 년.”

“으음, 생각한 것과 같군…… 그리고 그애 어린이 송희는 ?” “내가 데리고 있구……”

대답하면서 계봉이는 마침 갖다 놓는 아이스 커피의 스트로에 입을 댄다.

나는 차를 마실 여념도 안 나고 일변 탐탁해서 또 일변 감개가 깊어 우두 커니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으음, 그리구…… 또오 승재는 ?”물으면서 건너다보는 내 눈이 의미심 장했던지 계봉이는 수줍은 듯 뱅긋이 웃더니, 같이 있지요 한다.

“같이 ? 저기 애오개 병원에 ?”

“네…… 그렇지만 저어……”

“그렇지만 무얼?”

“그냥 있어요, 그냥……”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찌기 계봉이가 승재를 그렇듯 좋아는 하면서도 결혼할 의사는 좌우간 없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곰곰이 앉아서 제 얼굴만 건너다보느라니까 저도 말끄러미 나를 건너 다보더니 한단 소리가……

“아이 ! 퍽 젊은 줄 알았더니 인제 보니깐 파파야 ! 하하.” 이애가 나를 마구 승재를 놀려먹듯 하려나보다고 어이가 없어 고개를 돌리 는데 선풍기의 바람이 획하고 숨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소스라쳐 깨니 이건 멀쩡한 꿈이다.

하나 그러한 꿈도 끔찍한 것이 마침 출판을 하게 되어『탁류』를 스크랩과 복사한 원고를 책상 위에 수북이 싸놓고 퇴고를 하다가 그래도 엎드려 잠이 들었었으니까……

<東亞日報[동아일보] 193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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