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人 戰 紀[여인전기]
1. 季節[계절]의 젊은이들
1
칠팔월 노양이라니, 추석머리의 한낮 겨운 햇볕이 여름처럼 따갑다. 하늘은 바야흐로 제철을 맞이하였노라 훨씬 높고 푸르렀고.
논이란 논마다 무긋무긋 숙어가는 벼이삭이 아직도 따갑고 살진 태양의 열과 광선(紫外線[자외선])을 마음껏 받으면서 마지막 여물이 여물기에 소리 없이 한창 바빠 있다. 잘 새끼친 소담스런 포기들, 수수목만씩한 굵고 탐진 이삭들…… 향교동(鄕校洞) 넓은 고래실은 올도 풍년이다.
논두둑으로는 새막이 드둣듬성 불규칙하게 가다오다 하나씩 서 있다. 벼는 뜨 물때가 지났고, 어린아이와 늙은이의 손까지 농촌은 아쉰 시절이라 새 막이 태반은 다 비었다.
큰마을(本洞) 바로 앞 신작로 건너로 거기에도 새막이 하나.
여학생 태의 나이는 한 이십이나 되었을까, 남색 몸뻬 입고 같은 남색 조끼를 하얀 머플러에다 받쳐 입고 납작구두 신고, 이렇게 썩 도회지적으로 말쑥이 때가 벗은, 그래서 논두둑이니 새막이니의 흙내나고 촌스런 풍물과는 자못 어울리지 않는 영양이, 그러나 그런 부조화는 내 모른다는 듯이 천 연 덕스럽게 새막 가에 가 발을 대롱거리며 걸터앉아서 새 보는 시늉을 하고있다.
문주(紋珠)가 고향엘 온 것이었다.
떼새가 새까맣게 논으로 내려앉는다. 그런 줄도 모르고 문주는 새 막 기둥에 매달린 메뚜기 꿰미에만 정신이 팔린다. 피 이삭에다 숱해 많이 잡아 꿴 메뚜기들이 저마다 다리를 버팅기고 몸을 비틀고 하느라고 기다란 꿰미 전체가 꿈틀꿈틀 꿈틀거린다.
'우리 몸에 소위 영양가치란 게 있어 이 지경이 되는구나 할 줄은 모를테지?’
이런 생각에 골몰한 참이었다.
그러자 잠방이 하나만 걸치고는 웃통도 발도 벗은 새까만 꼬마 한 놈이 메뚜기를 연방 잡아서는 꿰미에다 꿰며 하면서 구부러진 논둑을 돌아 나오다가 논에 떼새가 앉은 것을 보고 질겁을 하여 "우이여. 아가씨 새 앉었시요 새. 우이여 우이." 하고 소리를 지른다.
문주도 놀라 우이여 소리를 지르면서 생철통까지 두드려댄다. 귀청이 멍멍토록 요란스런 소음이 잠시 동안 계속된다.
마악 그럴 때였다. 웬 전문학교 학생 한 사람이 어깨에 룩작 메고 나뭇가지 꺾어 지팡이 해 짚고 한 다리를 절름절름 절면서 동구 밖으로부터 마을을 향하여 그 앞 신작로를 지나다, 하도 이 '영양 있는 새막’의 조화( 調和), 우스꽝스런 풍물에 그만 어처구니가 없는 듯 뻐언히 바라다 보고 서서 갈 길을 잊는다.
새떼는 이내 쫓기어 날아가고 주위가 도로 조용하다. 그제서야 문주도 신작로에 섰는 학생에게 주의가 갔고, 그 순간 놀람과 더불어 짯짯이 학생을 건너다 본다.
"아이, 난 전문학교 학생만 보면 꼭…… "
다음 순간 문주는 입안엣말로 혼자 그러면서 고개를 돌리는 얼굴이 시방까지와 는 딴판으로 흐려졌다. 오빠 철(哲)인가 하였고, 번연히 긜 리가 없는것이건만 역시 섭섭하던 것이었다.
2
"아가씨 많이 잡었쥬?"
꼬마가 메뚜기 꿰미를 자랑스럽게 쳐들어보인다.
"오냐, 많이 잡았다!"
문주는 새막 기둥에 걸린 것과 비교를 하여 보면서 "내 해 갑절두 더 될까 보다."
"아가씨?"
"그래?"
"성냥 있시유?"
"성냥은 무엇에 쓰니?"
"이거 궈먹어요. 고소허구 아주 맛있시유!"
"참기름에 볶아 먹어예지 더 맛이 있는 거야, 인석아!"
"볶아 먹어유?"
"그러든지, 볶아 말려서 가루 장만해서 밀가루허구 섞어서 부푸는 가루 넣구 설탕 넣구 해서 빵 맨들어 먹든지."
"빵유? 빵떡 말이쥬?"
"그래, 네 말따나 빵떡."
꼬마놈이 침을 꼴깍 삼키면서 헤벌쭉 웃는다.
"귀동아?"
"내?"
"너 키 얼른얼른 크구, 기운 세지구 허구 싶잖아?"
"기운유? 키 커유?"
"이 메뚜기루다 과자랑 빵이랑 맨들어 먹으믄 키가 사뭇 무럭무럭 자라구, 기운이 세지구 허는 법야."
"해해! 증말유?"
"그럼……! 그런깐 어여 가 더 많이 잡아요."
"설탕 넣구 빵떡 맨들쥬? 달쥬?"
"그럼!"
"내!"
대답을 하고는 흐른 잠방이를 치키면서 겅중거리고 메뚜기 사냥을 나간다.
신작로의 학생은 내처 그대로 길 옆 아카시아 그늘로 들어서서 짐을 내려놓고 쉬고 있다. 그러면서 자주자주 새막 편을 보고 또 보고 하여쌌는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 그 '영양 있는 새막’의 우스운 부조화를 완상하는 연장이 아니라 벌써 한 사람의 낯선 고장을 지나고 있는 단순한 행인으로 돌아가 길이나 또는 무슨 말을 물어보고 싶어하는, 그러하되 저편이 하 그렇게 색깔이 유난히 또렷한 젊은 여자라놔서 썸뻑 말을 붙이지 못하여 연해주 저 로와 하는 그런 내색이던 것이었다.
신작로의 학생이, 말쑥한 영양이 새막에서 생철통을 뚜드리며 우여라 워여라 새 보는 모양이 기물다왔다면, 이편 문주는 문주대로 학병으로 나갔기 아니면 근로봉사에 열심하여 있어야 할 요샛날의 학생이 룩작을 걸메고 한가로이 시골로 돌아다는다는 것이 괴이쩍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빤히 다 알고 있는 바 읍내 사람도 향교골 사람도 아니었다. 정녕 서울서라도 오는 타관 사람이었다.
"가이다시꾼(買出部隊[매출부대])? 그래도 설마 서울서 여기까지야! 학생이 더구나…… ""아뭏든 전문학교 학생치고는 껄렁하지!"
좀 얌전스럽지는 못한 객기(客氣)였다. 그러나 장난스런 탓이지 악의는 노상 없었다.
"저, 여보십시요?"
학생이 마침내 말을 건네었다. 좁다란 논 한 이랑을 격한 상거라, 말소리를 높여서 할 필요가 없었다.
퍼 부드럽고 조용한 음성이라고 생각하면서 문주는 고개를 돌린다.
3
"이 동네 혹시 여관하는 집이 있나요?"
"여관요?"
판 농사고장에 와서 여관을 찾다니 우스웠다.
"여관이 아니라두 보행객주집 같은…… "
"없답니다, 그런 건."
"………"
학생은 입맛을 다시면서 한참 있다 다시
"예서 읍내가 몇 리나 되나요?"
"시오리라구 그래요. 그래두 꼭 칠 키로예요."
"칠 키로!……"
학생은 또 입맛을 다시면서 시계를 꺼내어 보다, 해를 올려다보다 한다. 해는 중천에서 서로 반나마 겨웠다.
자행거 탄 사람이 지나간다. 학생은 부러운 듯이 그 뒤를 언제까지고 바라다본다.
"인력거 같은 것이 있을 이친 없구…… "
학생은 혼잣말로 그러더니
"혹시 구장을 찾아가 사정 얘길 하면 말이나 허다못해 교군 같은 거라 두 좀 얻어 줄는지 모르겠군요?"
"글쎄요……"
"읍내 가면 공의두 있구 허죠?"
"공의요?"
문주는 가볍게 놀란다. 그러면서 이어서
"어딜 다치섰세요? 발이나 다릴?" 하고 다급히 묻는다. 나뭇가지를 꺾어 지팡이 해 짚고 절름절름 저는 것을 못 보았던 바는 아니나, 예사 그저 발바닥이 부르텄거나 흔한 무좀 이 거니 쯤 예사로이 여기고 말았었다. 한 것이 의사를 찾고 하는 데에 비로소 남의 병에 대하여 무관심하지 못하는 기술의식(技術意識)이 퍼뜩 주의를 일 깨웠던것이었었다.
"네, 좀…… "
학생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은 하나, 잠시 잊었던 상처가 다시 아파나는지 무심 결에 이마를 다 찡그린다.
"진작 그러시지…… "
문주는 하마 나무람을 하면서 새막에서 내려서더니, 새막과 신작로 사 이로난 논두둑길로 해서 분주히 쫓아온다. 몸도 호릿하려니와 걸음매하며 모든 날렵 발랄한 품이 가을물의 은어를 연상케 한다.
"어딜 어떻게 다쳤세요?"
바싹 다가서면서 성화하듯 묻는다.
"발바당을, 해필 장심을 볐답니다."
"출혈이 많았세요?"
"안직두 좀씩 흐르나 봐요."
그러면서 학생은 왼편발을 내려다본다. 구두를 신어 겉으로는 별 이상 이보이지 않는다.
"오온!…… 어여 일러루 오세요. 바루 저기가 우리 집예요."
손을 들어 동네 맨 앞으로 있는 기와집을 가리킨다. 백 미터 상거도 아니 된다.
문주는 학생이 룩작을 들춰메려고 하는 것을, 발에 힘을 주면 안된다면서 귀동이를 불러댄다.
새까만 놈이 그새 벌써 메뚜기를 반 꿰미나 잡아가지고 뛰어온다.
"너 이 바랑, 네 기운으룬 댁에꺼정 못 가져갈 텐깐 안아다 새막에다 놓구 지켜 응?"
"내! 아가씨 빵떡 안 맨들어유?"
4
처녀때와 젊어서는 평범한 대로 진주(眞珠)라는 이름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시방은 아무도 그를 그런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전혀 없다고는 잘라 말하기 어려우나, 가사 있다손치더라도 하나 아니면 둘에 지나지 아니할 것이다.
여자는 대개 시집을 가 자녀를 낳고 나이 들고 하노라면, 어렸을 적의 이름은 어느덧 없어지고 때의 환경에 좇아 아무개 어머니니, 무슨 댁, 무슨 아씨, 무슨 마님이니 하는 새로운 칭호가 ——— 이름이 생기곤 한다. 그리고 그와 같이 환경에 따라 저절로 생긴 이름이라야 부르는 편에서나 불리는 당자나 한가지로 자연스럽고 안길 맛이 있고 하지, 섣불리 만일 아들딸 주렁주렁 매달리고 나이 사십 오십 먹어 머리털이 희끗희끗, 사위 며느리 다 보 게 된 여인더러 무슨 "현숙씨!"
"아이 혜련씨!"
라커니
"오래간만이구려, 영자씨!" 하고 수작을 붙여보아라. 좀 어색스럽고 얼릴 상 없는지.
진주라는 이 여인도 그리하여 중년의 한 시절은 철이어머니 혹은 문 주 어머니로 부르고 불리고 하였고, 그러다 시방은 이 고장의 풍습으로 그의 친정 집 동네 이름 옥동(玉洞)을 따 옥동댁, 옥동아씨, 아래청에서는 옥동 마님으로 부르고 불리고 하고 있다.
우리도 우선 한동안은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
잠깐 어쩌다 잊어버린 듯 이웃에서도, 대문 밖 행길에서도 바스락 소리 하나 없고, 집안은 절간처럼 깜박 괴괴하다.
앓고 난 끝에 어제 오늘부터 차차로 기동을 하기 시작한 옥동댁은 몸을 대견히 가누면서 안방으로부터 앞마루로 나온다. 병후의 파리한 얼굴에 수심이 어리어 더욱 파리하여 보인다. 마흔일곱…… 무술생(戊戌生) 마흔 일곱이다. 여자라고는 하여도 마흔일곱이란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다. 웬만한 남자 같았으면 막내동이라도 하나 더 봄직한 정정할 나이다. 그러나 옥동 댁은 벌써 늙었다. 쉰이 훨씬 넘었다고 하여도 곧이가 들릴 만큼 늙었다. 반백이다 된 머리는 더구나 환갑 바라보는 노인 방불하다.
갸름한 얼굴 윤곽, 곱살한 눈초리, 가지런한 콧날, 인자스런 입매. 이런 것이 희미하게 젊었을 적의 모습을 겨우 간직하고 있을 뿐. 그다지도 곱고 아름답던 임진주의 면영은 바이 찾을 길이 없다. 삼십 년의 다난한 여인 행로가 아니었다면 이대도록 일늙어 바스라지지야 아니하였을 것이다.
딸도 오고 한 길에 추석 송편을 빚을 겸 머슴 시켜 가작(家作 : 自作[ 자작]) 하는 논에서 올벼(早稻)를 조금 털어 말리는 것이 벼멍석에 그늘이 덮인지 오랬건만 아무도 손을 대는 기척이 없어 손수 내려가 양지짝으로 끌어다 놓자던 타고난 부지런이었다. 그러나 막상 마루로 나와서는 문득 사랑 채의 기와지붕 너머로 멀리 바라다보이는 하늘을 바라고 서서 우두커니 정신을 놓는다.
가을하늘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뜩이나 회포를 돕게 하는 것, 전지의 아들 철을 생각하던 것이었다.
5
내지의 어머니들은 이천육백여 년을 두고 한결같이 나라를 위하여 아들네를 전지에 내보내되, 동치 아니하도록 도저한 도야(陶冶)와 훈련과 그리고 자각( 自覺) 가운데서 살아 내려왔다. 그런 결과 일본 여성은 사랑하는 아들을 나라에 바쳤으되 조금도 미련겨워하며 슬퍼하는 등 연약한 거동을 함이 없이 가장 늠름하기를 잊지 아니하는 천품이 ——— 정신이 잡히기에 이르렀다. 어머니 된 정에 노상 어찌 슬픔이 없을 리가 있을꼬마는, 한때 속으로 슬퍼하였지, 혼자서 암루(暗淚)나 흘리면 흘렸지 일상에 상심하는 얼굴을 지닌다거나, 항차 남 앞에서 눈물을 보인다거나 하는 법은 전연히 없다.
여러 백 년을 나라와 나라 위할 줄을 모르고 오직 자아본위(自我本位), 가정 본위( 家庭本位), 오직 일가족속본위(一家族屬本位)로만 살아온 조선 백성은 따라서 어머니들의 군국에 대한 정신적 준비랄 것이 막상 충분치가 못 하였다. 빈약한 편이 많았다.
"나라는 개인보다 중(重)하니라."
"민족의 번영은 언제나 그 민족의 젊은이가 흘린 바 피와 정비례 하느니라."
조선 사람의 귀에 이런 외침이 울리기는 바로 최근 몇 해에 비롯된 것 이었다. 학식 있고 각성한 사람들은 그 경종(警鐘)을 이성으로써나마 잘 받아들임으로써 자각화(自覺化)·감정화(感情化)하기에 노력을 게을리 아니하였다. 노력은 헛되지 아니하여 성과에 족히 보암직한 것이, 한목 자랑 함 직한것이 있었다. 그러나 처음이요, 이른바 과도시기(過渡時期)이기 때문에 미흡하고, 일변 전반적으로 철저치 못한 구석이 없지 아니한 것이 사실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여 실망하거나 비관을 할 필요가 절대로 없음은 물론이다.) 막막히 기둥에 지여서서 구름도 없는 하늘을 보고 있던 옥동댁은 그러다 별안간 몸을 돌이켜 부리나케 건넌방으로 들어간다.
건넌방은 철이 서울서 하숙하고 있던 공부방을 고대로 옮겨다 놓았었다. 웃목으로 책이 그득그득히 쟁여진 큰 책장이 나란히 두 벌. 아랫목 동창 앞으로는 테이블과 의자. 테이블 위에는 책꽂이와 책꽂이의 책들과 잉크 단지며 철필과 만년필 등속이며, 심지어 말편자(馬蹄)의 문진(文鎭)까지 죄 다가 철의 손때가 묻은 것들이요, 철이 마지막 떠나면서 놓아두었던 그대로의 위치에 고대로 놓여 있는 것이었다.
아랫목 벽 위에는 철의 전지(全紙)짜리 반신 초상이 한 벌 걸리고, 그와 꼭 같되 캐비네판의 사진은 탁상틀에 넣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학 모에 교복을 입은 재학시절의 사진이었다. 얼굴은 몸이랑 이 남씨집 혈통이라 살이 부하지가 못하나 해맑고 재기가 영롱하다. 그러나 약간 숙인 듯한 이마 하며, 역시 약간 아래로 내려뜬 눈이며가 사람이 다분히 명상적임을 얼른 짐작 키에 어렵지 아니하다. 테이블 한옆으로는 채곡채곡 포개어 논 서너 통의 군사우편이 놓이고, 편기가 오는족족 뜯어보고는 이렇게 모아두곤 하던것이었다.
6
옥동댁은 방 가운데에 가 서서 사면으로 이것저것을 둘러본다. 책장에도 가 눈이 멎는다. 테이블에도 가 눈이 멎는다. 그러다 아랫목 벽 위의 초상에 가 필경 눈이 멎는다.
한참을 초상의 아들을 바라다보는 사이, 곧 그 다문 입이 벙긋 하면서
"어머니!" 하고 부를 듯 부를 듯만 한다. 금새 그 가만한 미소가 눈초리로 떠오를 듯 떠오를 듯만 한다.
"철아!"
부지를 못해 소스라친 목안엣 소리로 그렇게 부르면서 털썩 걸상에 가 주저앉는다. 그러면서 두 팔을 뻗치어 테이블의 사진을 집어다 앞가슴에 꼬옥 안는다.
늘 아들이 보고 싶은족족, 마음이 쓰이는족족 이렇게 건넌방으로 달려 들어와 서는 철의 체취가 풍기는 각가지 물건을 만지고 보고 하면서 한때의 위로를 삼았고, 그러다는 번번이 사진을 그러안고는 애절을 하곤 하던 것 이었다.
이윽고 옥동댁은 마음을 진정하여 사진을 도로 제자리에 놓고 일어서면서 혼잣말로 뉘우친다.
"부질없이!…… 이러지 말자면서도 중추가 분명치 못해 그러는지!"
"남은 삼형제 사형제 잃고도 씩씩하다는데! 겉으로 내색을 아니한다는데! 그래야만 시방은 장한 어미 노릇이라는데!"
"윤팔네를 보겠지? 견문으로 하나 지체로 하나 월등히 나만 못한 사람이 건만 조옴 천연스러! 좀 의젓해?"
이성을 채찍질하여 낡은 허물 속의 감정을 억제하려는 노력이 없지 아니 함 은 퍽도 다행한 일이었다.
윤팔네는 미천한 신분에 그 역시 중년과부로 외아들 윤팔이 청년 훈련에다 녀 훈련을 치르고 오는 시월 초하룻날 입영을 하게 된 것인데, 그는 전혀 비관이나 실망을 하는 내색이 없었다. 정반대였다.
"나야 다 참 무식하고 성명도 없고 하지만 조옴 좋아? 사내자식으로 세상에 났다가 총칼 메고 난리 치러 나가는 게 호강 아니고 무어람? 그래 대장부가 그 노릇 한번 못해보고 죽드람? 제엔장, 여든에 죽으나 스물에 죽으나 한번 죽기는 일반 ! 명색없이 지지리 오래 살다 명색없이 죽는지 접전( 接戰: 戰爭[전쟁]) 나가 싸움하다 죽으면 오죽 뻐젓해?…… 우리 윤 팔이 녀석이 검사 라드냐 무엇이라드냐 떨어져 접전 못나게 되면 나는 그녀석을 막 몽둥이 질을 해서 쫓어내자든 참인데! 아 그런 걸 자식이라구 집안에 붙여 둬? 밥을 멕여?"
이렇게 윤팔네는 당당하고 씩씩하였다. 본시부터도 여자가 사람 됨이 기개가 무던하고 성품이 괄괄하기는 하였었다.
옥동댁이 기색을 다스려가지고 마루로 도로 나오는데, 그러자 뒤 울안 쭉 나무에 선지 갑자기 까치 우짖는 소리가 요란히 인다.
"저녁까치는 근심이란다!"
그러면서 마악 대뜰로 내려서는 참에 앞마당 차면(遮面) 밖으로부터 딸 문 주가 허둥거리로 달려든다. 손에는 언뜻 보아도 분명한 군사우편의 봉서 편지를 들고.
7
언제나 반가우면서도 가슴이 더럭하기는 군사우편이었다.
"어머니 어머니! 오빠헌테서 핀지 왔수, 왔어."
"오냐. 어서 일러루 가지구 와 좀 읽어다구."
어머니와 딸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루로 올라가 마주앉는다. 딸은 어머니를 닮는 것이 예사야 예사겠지만, 이 모녀는 유난히 더 잘 닮았다. 갸름한 얼굴과 그 윤곽으로부터 시작하여 고운 눈매, 가지런한 콧날, 애련스런 입, 그리고 귀와 이마까지, 음성까지도 딸은 죄다 어머니의 모습을 탁하였다. 물론 딸은 갓스물에 그 싱싱하고 탄력 있는 품이, 이미 늙어 바스러진 어머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어머니도 한때 젊었을 적은 있었고, 젊었을 적 이십 무렵의 사진을 내놓고 보면 일푼 틀림없는 시방의 문주 고대로 였다.
딸이 아무리 잘 닮았기로서니, 차라리 재미거리일지언정 싫거나 긴치 아니 할 며리야 없는 것이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소댕 보고 놀라더라 이르거니와, 다심한 어머니는 딸이 외양에 있어서 너무도 그렇듯 자기를 닮기만 하였다는 것이 혹여 장래의 운명까지도 자기의 다난코 기구한 그것과 한가지로 할 징조나 아닐런가 싶은 의구에 문득 불안을 느끼고 할 적이 없지 못 하였다.
"어머니, 그동안 얼마나 궁금히 기대리섰는지요?"
편지는 옛투의 문안과 탈없이 잘 있다는 인사가 있은 다음, 이렇게 사연이 적히기 시작하였다. 딸은 읽고 어머니는 듣고 한다.
"먼젓번의 하서와 위문대삼아 보내주신 약과(藥菓)를 마침 서울서 한 문 주의 편지와 함께 잘 받았삽고, 바로 답서를 올리려는 차에 별안간 우리 부대에 전진명령이 내리어 이곳 ○○성(○○城)으로 옮아오느라고, 와서는 또 이 것 저 것 정리며 준비에 골몰하여 부지중 이렇게 더디었읍니다.
인제는 일도 너끔하고 겸하여 오늘은 비번(非番)이라 매우 한가합니다. 덕에 사연도 여러가지로 많이 쓸 수가 있읍니다. 우선 이곳이 어떠한 곳이라는 것부터 말씀하여 드리겠읍니다.
이곳 ○○성은 우리 부대가 접때까지 유둔하고 있던 우리 본 부대( 本部隊) 의 근거지 ◇◇으로부터 서남쪽으로 일백오십 리 가량 들어온 조그마한 옛 성 입니다. 성은 조그마하여도 군사적으로는 대단히 중요한 땅입니다. 왜 그런고 하면, 예서 다시 서남쪽으로 이백 리 가량 더 들어간 곳에 ××라는 큰 고을이 있읍니다. (○○이니 ◇◇이니 ××이니 하고 지명을 정작 숨기어 매우 답답하시겠지만 그는 군사상의 비밀이라 부득이 한 노릇이오니 그런 대로 눌러보아 주십시오.) 그 ××에는 적군이 시방 많은 병력을 집결 시켜 놓고 우리 본부대의 근거지 ◇◇을 쳐들어오려고 잔뜩 노리고 있 읍니다."
여기까지 읽고 난 문주가 그제야 생각이 나서
"아이 머니 나 좀 봐! 상처(傷處) 치룔 해주마구 남을 데리구 와 사랑 으 서 기 대리게 해놓굴랑!" 하면서 혀를 날름한다.
8
읽던 편지를 중판을 메어 옥동댁은 순간 파흥이 되는 것 같았으나 이내 그런 내색 드러내지 아니하고 "오온 얘야, 그래 쓰느냐 ? 어여 나가 보아주구서 들어오렴."
"그래두우 이거 마저 읽어예지 누가 오빠 편질 읽다 말구서 딴걸 허우? 오빠가 진중에서 일껀 써보낸 소중한 핀질! 응? 안 그러우, 엄마?"
어린아기처럼 어린 양이 뚝뚝 듣는다. 말만한 새악시가 어린 양이 다 무어냐 고 하겠지만, 이 모녀는 어머니는 언제까지고 젖을 먹여주고 업어 주고하던 어머니에, 딸은 언제까지고 품안엣 적 딸이요 하였다. 어린 양을 하는 딸이나 어린 양받이를 하는 어머니나 그래서 다같이 보다 더 짙은 애정의 유로( 流露) 였으며, 따라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누구드냐?"
"웬 타관서 온 학생인데 발바당을 볐다구."
"얘야, 더구나 객지에 나선 사람을 그리 괄대해 쓰니? 편질랑 다녀 들어와 읽구서 어서 나가 보아줄렴?"
"갠찮아요! 염려 없어요! 이거 한 이 분이나 삼 분이문 다 읽을 텐깐, 마저 읽구 가 해줘두 안 늦어요!…… 의사가, 반쪽의산 반쪽의사라두 것 모를까, 머."
그러고는 편지 계속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한편 우리 군에서는 우리 군의 작전방침이 있어 우리가 ××이라는 그 적군의 구혈을 쳐빼앗아야 할 필요가 있읍니다. 그런데 말씀이지요 어머니, 우리 군이 ××을 치자고 하면 반드시 이 ○○성을 확보하여야만 하는 형편 입니다. 지리며 그밖에 여러가지 조건으로 보아 ○○성을 확보하지 아니하고서는 절대로 ××의 진공을 여의하게 할 수가 없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군은 재빠르게 손을 써 이 ○○성을 우선 쳐빼앗아논 것입니다.
우리 군에게 이 ○○성을 빼앗긴 적은 대단히 당황하였읍니다. 그들은 우리 군이 ××을 진공하기에 이 ○○성이 없지 못할 요지임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우리 본부대의 근거지 ◇◇을 치자고 하면 불가불 이 ○○성이 그들의 수중에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 요지를 빼앗겼으니 낭패가 클 뿐 아니라 이 ○○ 성이 우리 군의 손에 들어오고 보니 제네들의 구혈 ××이 덜미를 잡힌격이어서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입니다. 자연 적군은 무엇보다도 이 ○○성을 도로 빼앗으려고 기를 쓸 것은 분명한 노릇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성을 절대로 놓쳐서는 아니 됩니다. 그여코 지켜내어야만 합니다.
어머니, 그만하면 이 ○○성이 얼마나 중요한 지점인 것을 짐작하시겠지요? 그리고 그와 같이 중요한 땅을 지키는 우리 부대의 임무와 아울러 그 우리 부대의 일원(一員)인 소자의 임무가 얼마나 무거운 것임을 또한 짐작 하시겠지요?
그런 중한 임무를 맡은만큼 부대의 전원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다들 긴장 하여 있읍니다. 그러나 조금 미흡한 것은 우리 편이 너무 병력이 적은 것 입니다."
9
문주는 쉬지 않고 편지를 읽어내려간다.
"본부대에서도 ○○성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나 병력의 전체의 배치상, 부득이 소수 병원의 우리 부대로 하여금 우선 당분간 이를 수비케 한 것 입니다. 불원간 그러므로 병력 증강이 되기는 될 터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병력이 적다고 하여 우리는 추호도 겁하지 아니합니다. 일본 군사는 일당백 하는, 아니 일당천하는 천하의 용맹스런 장졸들입니다. 백배의, 천 배의 적과 접전을 하는 마당에서도 조금치도 두려워 아니하는 것이 일본의 군사 입니다. 그리고 항상 큰 군사와 싸워 능히 이겨내는 것이 진실로 일본군의 일본군다운 곳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용맹한 일본 군사 말씀입니다.
어머니, 두고 보십시오. 어떠한 일이 있든지 우리는 우리가 이 성을 맡은 이상 최후까지 지켜내고 말 터입니다. 그땔랑은 어머니도 '어허 장한지고’ 하시고 만세 불러 주셔요. 어머니, 소자는 그동안 두어 차례 조그마한것이나마 접전을 치르는 동안 한가지 깨우친 바가 있읍니다. 조선에서도 말 하기를 전사(戰死)를 제일 상팔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뜻깊고 적절한 말입니다. 전사! 전사! 칼을 잡고 적과 마주 싸우다 있는 힘, 있는 용기다하여 최후까지 싸우다 일순간에 죽는 죽음! 전사! 그것은 늠름하고 영광 되고 자랑스럽고 한 외에, 겸하여 아름다운 죽음, 활홀한 죽음이기까지 합니다. 대장부 세상에 났다 그 이상 보람있는 죽음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노라면 보나마나 어머니는 정녕 질색을 하시어 '에구 이애가 어떡허자고 이런 불길한 소리를 하는고!’하시고 낙담을 하시겠지만, 어머니 안심하셔요. 천하없어도 소자는 죽지 아니합니다. 어머니께서 친필로 무운장구라 쓰시고, 문주가 센닌바리로 수놓아 주신 것으로 배를 든든히 동 였읍니다. 거기에는 신기(神氣)가 어리었읍니다. 적의 탄환이 감히 범 하지를 못합니다. 어머니, 미국서 만든 탄환을 지나 병정이 쏘는 것에 맞아서 목숨을 버리고 말 우리 어머니의 아들 철이겠읍니까? 부디부디 안심하셔요. 죽지 않고 공일랑 뛰어난 공을 세운 후 자랑스러운 개선을 하여 어머니의 무릎 앞에 절할 날을 부디 안심코 기다려 주셔요."
미상불 옥동댁은 죽음에 대한 말이 나오는 대문에서는 사색이 심히 당황하 였었다. 문주도 자못 그러하였다. 그러나 '천하없어도 소자는 죽지 아니 합니다……’ 하는 데서부터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빛이 얼굴로 갈리어 들었다.
"아무렴, 그래야 허다뿐이겠느냐? 안 죽구 공은 공대루 뻐젓이 세우구, 조 옴 떳떳허니?"
옥동댁이 혼잣말같이 그러는 것을 문주도 따라
"그럼 어머니!…… 용렬허지만 않구 다 같은 용맹이문 안 죽는 이가 더장 허다우!"
10
편지는 얼마 남지 아니하였다. 문주는 몰아치듯 마지막을 읽는다.
"어머니, 이곳은 기후가 조선과 방불하고 토질도 같은지 벼농사를 많이 들 합니다. 조선처럼 논에다 심은 벼가 이삭들이 나왔읍니다. 그것을 보고 문득 고향의 추석(秋夕)을 생각하였읍니다. 오곡이 풍등하고 온갖 과실들 이익고 농군들이 풍년을 즐기고 하는 고향. 어머니가 계신 고향. 가고 싶지아니하다는 것은 빈말일 것입니다.
어머니 손수 만들어 보내주신 약과는 미리 먹어버리기도 아깝고 하여 이 제 달이 제일 둥글고 밝은 날 밤을 기다려 동무들과 나눠 먹으려고 그대로 잘 아껴 두었 읍니 다. 군대에서는 네것 내것이 없답니다. 더구나 내지 사람 병정들은 구경도 하여보지 못한, 그 달고 고소하고 맛있는 약과를 자랑하여 가며 나눠 먹을 일을 생각하면 미리부터 즐겁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들 귀 한 음식이면 서로 나눠 먹고 할 만큼 우리는 의가 좋고 다정히 지낸답니다. 또 상관들도 우리를 퍽 애껴하며, 더우기 부대장께서 소자를 귀애하기란 분에 넘치는 것이 있읍니다. 그런 점도 어머니, 부디 안심하옵소서.
끝으로 문주도 서울서 잘 있는지요. 소자가 떠나면서 어떠한 일이 있든지한 달에 한 번씩 반드시 귀근(歸覲)하여 적적하신 옆에서 위로를 하여 드리도록 신신히 당부하였는데 그대로 행하는지요. 능통스럽지 아니한 아이니 매양 저버림이 없을 줄은 믿습니다.
여기까지 쓰는데 마침 비상소집 나팔이 울립니다. 적병이 몇 놈 또 와 서지분 거리는 것이겠지요. 종종 있는 일이요 대단할 것 없읍니다. 그러면 어머니, 이 다음 상서할 때까지 기체후 만안하시옵기 멀리서 엎드려 비 오며이만 갖추지 못하옵나이다."
편지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읽던 문주나 듣고 있던 옥동댁이나 잠시 그대로 말이 없이 앉아 숨을 돌린다.
이윽고 문주가 먼저 "응? 어머니?"
"오냐?"
"오빠가 말유, 생각허는 거랑 말허는 거랑 많이 아주 달라진 것 같지?"
"글쎄…… 네 말을 듣구 생각허자니 참 그런 것두 같기는 허구나!"
"퍽 달라졌어!…… 그전이야 오빠가 어디 그랬우? 밤낮 무얼 생각만 허구있구, 말두 잘 아녀구. 더구나 자기 속에 있는 말을 누구더러 허우?"
"꼬옥 느이 아버지 승미를 닮아 그렇드란다."
"병정도 가구 볼 거야 어머니! 전쟁도 나가 볼 거구. 사람 쾌활해지겠다, 몸 튼튼해지겠다, 좋은 경험 얻겠다, 그러구 나라 위해 싸우겠다 조옴 좋아? 그렇잖우? 응? 어머니."
"오냐, 오냐. 느이게 좋은 노릇이면 나야 거저 좋구말구 허겠니!…… 얘야, 참 인전 어서 좀 나가 보아주어라. 오죽 기대렸겠니?"
옥동댁은 편지를 받아 가지런히 접어서 도로 봉투에 넣고, 문주는 사랑으로 나가고 한다.
11
촌농군의 발처럼 크고 거칠어진 발이었다.
상처는 바른편발 장심 바로 정통이었다. 너비가 한 치나 거의 되고, 깊이도 얕지 아니하였다.
그 거친 발을 작고 보드라운 손으로 떡 주무르듯 하면서 문주는 서투르지아니한 솜씨로 상처를 처치하여 주고 있다.
학생의 얼굴이 웃는 것도 아니요 우는 것도 아니게 가관인 것은 점 직스 럼과 아울러 온 전신이 스멀거리어하는 표적이었으리라. 상처 속을 후벼낼 때에야 좀 아팠으련만 눈만 찡그려 감을 뿐 아프단 소리도 못한다.
"오시다 아마 냇물엘 들어가싰든가 보죠?"
향교동은 동구(洞口) 밖으로 까치내(鵲川)라는 조그마한 내가 있어 정강이지는 맑은 물이 더운 여름날이면 지나는 사람을 부르기에 족하였다. 잔 고기가 많고 하여 천렵터로도 마침인 것은 물론이요.
학생은 장난을 하고 나서 어른한테 들리워 난 어린아이처럼 가뜩이나 주 몃주몃하다. 빙긋이 웃으면서 떠 뭇 떠 뭇 "냇물이 하두 좋길래…… 더웁긴 허구…… 발이나 씻을까 허구서 마악 추구 들어서는데 별안간 발바당이 썸뻑하드니…… "
"유리 조각이든 게죠……그래두 우린 밤낮 가 놀구 해두 아무렇지두 않답니다."
학생이 웬만큼 좀 능청스런 나기였다면 슬쩍
'내두 낯선 사람이라구 텃세를 하는 모양이죠?’ 한마디 건네었을 것이지만, 막상 그런 주변도 없는 듯 그저 덤덤히 있을 따름이었다.
"화농이 되지 말아예지 헐 텐데…… "
문주는 혼잣말로 그런 걱정을 하면서 상처의 가제 위에다 탈지면을 덧 대고는 마지막으로 붕대를 감기 시작한다.
"한 서너 바눌 꼬맸으문 해두 전 안직 공부두 거기꺼진 못 미쳤구. 젤에 또 채비가 없어서…… 대강 소독이나 허구 약만 바르구 했답니다!"
"고맙습니다!…… 무어 이만 하면…… "
학생은 인사와 치하를 하면서 붕대가 다 된 발을 끌어들이는 길로 내처 몸을 일으킨다. 그러면서 속으로 '간호부, 갈데없어. 서울이나 이 근처 도회지의 병원, 간호부 분명해’ 하고 진작부터 '대관절 어떤 여잔고?’싶어 궁금하던 의문을 마침내 해답 짓고 만다. 그러나 그것은 막상 마음이 어딘지 섭섭하다고 일변 미안 스러워못하겠는 해답이었다. 어떻게든 그것을 도로 부인하고만 연해 싶었다.
학생이 얼른 그렇게 일어서는 것을 보고 문주는 질겁을 하면서 마주 일어선다.
"안됩니다!"
"네?"
"지금 거기다 신발을 신구 운동을 허구 허시문 안된답니다! 괜히…… ""?……"
"다아 나으실 때꺼정 가만히 기세예지 해요!"
"그래두……"
"안되세요 ! 여기 우리 집이서 기시문서 메칠 치룔 받으세예지 해요!"
썩 어른스럽고 명령적이었다.
12
학생은 상한 발을 발끝으로 딛고 서서 속으로는 제법 '고거 맹랑허이!’ 하면서도 하는 양은 여전히 파겁 못한 어린아이처럼 말이랑 떠듬떠듬 "저, 오늘 해전으로 되두룩이면 읍내꺼지 좀 대가야 헐 일이 있어서 불가불…… "
"그렇지만 지끔 무릴 허셌다 영 아주 탈이 나든지 허문 그땐 정말 일을못 보시구 말 거 아녜요?"
"건 그렇지만서두 개인 사정보다두 책임상 어디…… "
"무슨 회합에 출석허실 참인가요?"
"회합두 있구, 그러구 논두덕으루 많이 좀 돌아댕겨야 헐 일이 돼서."
"논두덕요?"
그제서야 문주는 학생의 교복 단추와 그리고 마룻전에 놓인 학모의 모 표에서 그가 ××고농(高農)의 학생인 것을 비로소 알아낸다. 발이 그처럼 크고 거친 것도 알고 보니 근리하였다. 상처와 그 치료하는 것에만 열심하여 있느라고 그가 어떤 학생인가에 대한 관심은 미처 일지 아니하였던 것이었다.
'오오, 암모니아전문!’
또 이런 얌전스럽지 못한소리를 속으로 혼자 바특 웃는다.
고등농림이라고 하면 여학생들이 으례껏 암모니아전문이라면서 웃기부터 하는 줄을, 그리고 여느 전문학교 학생과는 딴 물건인 것처럼 가외로 쳐 버리는 줄을 학생 자신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여자가 교복 단추하며 교모의 모 표를 돌아보다 혼자 웃는 속이 다 그 속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조 금도 불쾌할 것은 없었다. 투박스런 생김새로 보아 천품이 우선 그렇게 신경이 굵 스름 할 것이고, 여러 해 동안 학교에서의 농민적인 훈련으로 하여 그럴것이었다. 거기에다 겸하여 밉지 않게 생긴 여자가 밉지 않게 굴면서 그러던 것이매 또한 그럴 것이었다.
"그럼 농사지돌(農事指導) 하러 오시는 길이신감?"
"지도랄는지, 내 공부삼어 실습이랄는지."
"퍽 멀리들두 오셔!…… 여름참엔 보니깐 근처 농업학교 생도들은 와서 조력두 해주구, 가르쳐두 주구 그랬는데…… 한창 바쁠 때라 농사허는 집 이서들은 여간만 힘을 입은 게 아니랍니다!"
"저이나 내나 그저 위문이폐문이죠!"
"그런데에, 그럼 읍내 면사무소루 가시나본데 오늘루만 그예 가셔야지 허시나요?"
"오늘꺼정 당도하기루 연락이 돼 있으니깐 면장서껀 기대리기두 할 것 이구…… "
그러자 안채로 난 사랑 중문으로부터 옥동댁이 조용히
"문주 예 있느냐?" 하고 기척을 하면서 앞 대뜰로 천천히 돌아나온다.
학생과 옥동댁이 우선 서로 얼굴이 마주친 것은 극히 자연한 순서 였으나 마주치는 순간 옥동댁의 얼굴에 소스라쳐 놀란 빛이 드러남은 의외였다. 하 되 그것이 주소로 아들 철을 그려하는 나머지 외양 차림차리를 같이한 사람을 ——— 전문학교 학생을 ——— 보기만 하면 반사적으로 놀라기부터 하는( 아까 문 주가 새막에서 이 학생을 보고 가슴이 울렁하듯이) 그런 종류의 놀람이더냐 하면 그도 아니었다.
13
학생은 천연하였다.
노인이 이 여자의 어머리라는 것을 직각하기에 힘들 것이 없었고, 따라 경의와 호의를 띤 얼굴로 방금 무어라고든 인사엣 말이 나오려고 하는 외에는 아무 다른 내색이 드러나는 것이 없었다.
옥동댁의 놀라와하는 얼굴 표정은 좀처럼 가시지 아니하였다. 문주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상하여 하다 묻는다.
"어머니, 이 학생 알우?"
"알아두 이만저만찮이 아는 얼굴인데…… ""누구요 어머니?"
"글쎄……"
너붓한 얼굴. 그 얼굴에 알맞도록 다 굵직굵직한 이마하며 눈이며 코, 입이며 귀며 등속의 모든 부분품. 그리고 그렇게 생겼기 때문에 언뜻 우둔 스레 보이면서도 자상히 뜯어보자면 은근한 재기가 어리어 있는 기상…… 이 것이 더욱 유난히 낯에 익고 사라지지 아니한 채 기억에 남아 있는 좌우간 누군가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정작 누구냐는 것은 생각이 나지아니하였다. 문주가 이번엔 학생더러 묻는다.
"우리 어머니 혹시 서울이나 어디서 만난 일 있세요?"
"아아뇨. 통 히…… "
학생은 고개를 젓는다. 그러다 그제서야 앞마루로 한걸음 나서면서 허리를 굽혀
"이렇게 와 폘 끼쳐 드려서!…… 올라오시지요. 보입겠읍니다."
"절은 받아 무얼 허우? 어여 그냥 앉으시요."
옥동댁은 늙은 사람이라서 절하고 뵙겠다는 태도가 요새 젊은 사람으로 희 한 스러 문득 기뻤다. 매양 법도(法度) 있이 보고 배운 데가 있음을 말 함이요, 그 행신 점잖스럽다는 사실이 또한 그가 분명코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재료의 한가지였다.
"그래 다친 덴 어떻소? 과히 중하지나 않소?"
"말씀 낮추세요. 젊은애들더러 노이신네께서 그렇게…… "
"남의 댁 귀한 자젤 아무리 늙었기루니 말을 함부로 해서 되우?…… 그래 문 주야, 잘 좀 보아 드렸느냐?"
"해드릴 건 다 해드렸는데 글쎄 그 상철 해가지구 지금 읍내루 가실 양으로 저러신다우!"
"그럴라 말구 불편허나따나 내 집에서 하루 이틀 유허면서 웬만치라두 상철 나어가지구 떠나게 허우. 촌구석이 돼서 대접헐 것두 변변치가 못 허구해 손님을 만류허기가 되려 민망허우마는."
"별말씀 다 하십니다…… 긴한 볼일루 읍내 면사무소꺼정 가든 길이 돼서요."
"무슨 소간인진 모르겠소마는 발을 저럭허구서야 가는 수가 있소? 그래 두 정히 급헌 일이라면 오늘은 이왕 저물었으니 내일 일찌기 떠나게 허우. 아무 거라 두 탈 걸 하나 분별해 드릴 테니…… ""오온 호강하러 댕기는 사람인가요? 이만침 치룔 해주섰으니깐 시오리나 이 십리쯤야…… "
그러는 것을 문주가 가로막으면서
"호강을 시켜 드리자구 그러나요? 상철 낫워 드려서 우리 고장 농사지 돌잘 해주시게 하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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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제 고집대로만 하고 한마디도 남한테 지지 아니하려 드는 새 악 시라고 학생은 생각하였다.
새막에서 메뚜기 사냥을 하던 놈만큼이나 새까맣고, 몸뚱이에 걸친 것이라고는 역시 잠방이 하나뿐이요 한 놈이 서슴지 않고 사랑마당으로 들어선다. 들어서면서 밑도끝도 없이 하는 소리다.
"주사침 누아달래유!"
세 사람의 눈이 일시에 그리로 몰린다.
"누가 아파 그러느냐?"
옥동댁이 묻는다.
"우리 동생유."
"어떻게 앓드냐?"
"죽을 양으루 해유."
"무슨 소린지 모르겠구나! 그래 아범은 어디 가구 없느냐?……"
그러다가 옥동댁은 생각이 나
"오 참 지난달인가 보국단으루 뽑혀나갔지." 하면서 딸을 돌려다본다.
"가 좀 보아주렴?"
"누구네유 어머니?"
"아따 판돌네라구 우리 개똥배미 여덟 말지기 부치구 허는 사람 있지 않으냐? 눈 핼끔헌…… "
"오오 판돌네! 사내가 여태 상투 짜구 헌."
"저놈 아래루 네살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그놈이 아마 관격이 됐거나 했나 보구나."
문주는 부리나케 방바닥에 늘어놓았던 치료제구를 거듬거듬 가방에다 넣어가지고 나선다. 그러면서 학생더러 "그럼 아마 일 시작허시기꺼진 날짜 여유가 조금 있는 모양이니깐 낼 석양 때 가시게 허세요 네?"
"네!…… 그렇게만 농사꾼이 발 좀 상했기루 어떻게 일일이 안정을 한다, 여러 날씩 치료를 한다 합니까? 농사꾼의 상처엔 흙이 제물약이랍니다."
"아뭏든 환자란 건 의사의 명령을 절대 복종해야는 법예요!"
그러고는 웃으면서 "어머니, 댕겨와요." 하고 꼬마를 따라 총총히 나간다.
"온 어디서 시끄런 것두 !…… 커다란 기 집아 이 년이…… "옥동 댁은 웃으면서 혼잣말같이 그러다가 학생을 돌아본다.
"서울 가서 여자의전을 다닌다우. 공부라야 오죽헐꼬마는 종종 내려올 때마다 바르는 약이니 먹는 약이니 주사약이니 마련해가지구 와선 동네서 누가 앓는다면 쭈르르 가 보아주구…… 그런다치면 더러 효험을 보는 수두 있구!…… 그래두 난 잘못허다 남의 병 더쳐놓지나 않나 해서 늘 조심스럽구 마음이 아니 놓여서."
"………"
학생은 말은 없으나 대단히 만족하고 속 후련한 것이 있었다. 여자가 간호 부가 아니요 여자의전의 학생이라는 사실이었다. 어떻게도 다행하고 기쁜지 몰랐다.
만일 그가 잠깐 반성을 할 여유가 있었다면
'온 아니꼽게시리, 네 주제에 간호부라고 미흡해하고, 여자의전 학생이라고 좋아하고 할 건 어딨드냐?’하고 응당 한바탕 타박을 주었을 것이다.
딸을 둔 어머니는 낫세의 총각도령을 보면 딸 시집 보낼 걱정을 하곤 하는것이 예사다. 옥동댁도 그 생각에 이윽고 골몰하면서 안으로 들어간다.
2. 모시에 어린 追憶[추억]
1
단호박을 많이 두고 팥고명도 많이 두고 한 지름한 호박떡을 크막한 사 기함에 담아 뚜껑 덮고 무우동치미 담은 보시기 한옆에 곁들여 쟁반에다 받쳐 들고 사랑으로 나와 무료히 앉았는 학생에게 권한다.
"시장허겠수. 저녁 될 때꺼지 이거라두 좀 자시우."
"온 손수 이렇게…… "
말주변이 없는 학생은 여러 말로 겸사며 치하 같은 것을 할 길이 없어 그저 민망해하는 것으로 인사와 대답을 삼을 따름이었다.
"낮차루 아마 내려 들어오든 길인가본데 정거장 앞인들 이새 무슨 변 변히요 기 거리니 있을 리 없구…… 즘심을 그래 못 자섰겠구료?"
"네!"
"거 보겠지. 객지에 나서면 다 절루 고생이야…… 어서 좀 드우. 덥혀 내오려다 호박떡은 더워선 더워 맛이요, 차선 찬맛이란 다 길래…… ""……… ""어서 드우. 내 들어가 물 떠 내보내리다. 하루 열 낄 먹어두 때때루 속이 헛헛허구 헐 나이에 조옴 그래 시장했어! 쯧쯧!"
"그럼 먹겠읍니다."
학생은 합 뚜껑을 벗겨놓고 저깔로 뜨기 시작한다. 시장한 사람이 아니라도 그 먹음직스런 품이 대하는 이의 구미를 돕기에 족한 것이 있었다.
"고향이 어디요?"
"공주(公州)올시다. 충청남도 공주."
"공주!……"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거듭
"공주, 공주…… "하고 뇌 더니
"고향 댁엔 양친 다 구존해 기시우?"
"네."
"여러 형제에?"
"제 아래루 누이 하나허구 동생 둘이 있구 헙니다."
"퍽 번족한 댁이구려!…… 그럼 학생이 맏이면 양친께서 춘추가 그 대지 높으시진 아니허시겠지?"
"아버님께서 마흔아홉이시구, 어머님이 갓쉬흔이세요."
학생은 일변 먹으면서 이야기 대답을 하면서, 또 일변 속으로는 어떤 노인인지, 보도록새 인자스럽고 점잖고 그러고 말마디가 퍽도 유식하다고 탄복을 하여 마지않는다.
"그러구 참 성씨는?"
"추(秋)가올시다."
"추씨?"
반문하는 옥동댁의 음성이 약간 높았기도 하려니와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놀람과 동요의 빛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 놀람은 처음의 놀람과 달라 확 연히 무엇을 깨달은 데서 온 놀람이요, 따라서 그 동요임에 틀림이 없었다.
"추씨, 오 추씨."
옥동댁은 학생이 고개를 숙이고 있어 자기의 그런 놀라함과 동요의 빛을 그에게 뜨이지 아니한 것이 자못 다행하였다.
갈데없었다. 마지막으로 성이 맞았다. 나이도 정녕 그 어림일 테였다. 고향이 공주였다. 그 나머지야 물어보나마나한 노릇이었다.
옥동댁은 안으로 들어가 하인 귀동아범을 시켜 닭을 한 마리 살진 놈으로 잡게 한다. 그러고 몸소 나서서 찬수 분별을 한다.
2
한 필의 모시가 옥동댁의 무릎 위에 반만 펼쳐져 놓였다.
저녁을 치르고 아래청에서들도 마지막 동자질까지 다 마치고 제각기 제 구덕으로 헤어져 가 일찌감치들 자리에 들었고 하여, 아직 초저녁이건만 집안은 자는 듯 조용하였다.
딸은 둔 어머니는 좋은 사윗감과 아울러 농에 넣어 보내줄 옷감 또한 작지아니한 관심거리였다. 그러나 시방은 전시. 평화시절처럼 화려하고 많은 옷 을 장만한다는 것이 부질없기도 하려니와, 가사 욕심을 부리자 한들 물자가 없는데야 무가내하였다. 오직 장롱 속에 있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뒤져내어 쓰는 대로 쓰는 것이요, 없으면 없는 대로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였다. 옥동 댁의 무릎 위에 펼쳐져 놓인 한 필의 모시도 그런 사정에서 시방 깊이깊이 간직되었던 장롱 밑으로부터 꺼내어진 것이었다.
모시는 그러나 막상 소용이 될 수가 없었다. 삼십 년이나 된 한 필의 모시였다. 모시보다 더 질긴 피륙도 삼십 년이면 성하지가 못할 것이거늘 그 약한 모시올이랴.
담뱃잎을 틈틈히 넣어 싸고 싸고 하여 두어 왔고, 가끔가끔 거풍을 시킨것은 물론이었고, 그러다 신약으로 방충제를 이용할 줄 알면서부터는 그 법을 정성스레 시행하였고…… 그 덕에 좀만은 감히 침노를 하지 못하였다. 한 자리도 좀이 삭은 곳은 없었다. 그러나 그 대신 감이 저절로 삭아져 버리고 말았다. 조금 힘주어 잡아당기면 필필 갈라지도록 삭아졌다. 거기에다 빛깔은 누렇게 절었고. 해서 도저히 지금의 옷감으로는 소용이 될 수가 없고 말았다.
삭고 빛 전 한 필의 이 모시가 비록 옷감으로서는 소용이 되지 못하게 되었다지만, 모시 그것에 어린 옥동댁의 삼십 년 ─ 시집 와서부터만 쳐서도 삼십 년의 ─ 길고 다난한 추억은 한점 한끝도 가실 바가 없었다. 모시 가는 올마다 추억은 면면히 그대로 어리어 있는 것이었었다.
사랑에 유하는 학생한테 잠깐 나갔던 문주가 신발 끄는 소리를 내면서 들어온다.
"달이 인전 퍽 밝을 텐데 흐렸어, 어머니!"
그러면서 방으로 들어서다가 어머니가 램프불 아래서 난데없는 모시를 무릎에 펼쳐놓고 만지는 것을 보고 눈이 동그래진다.
"웬 모시유 어머니?"
"오냐…… 학생 나그네는 어떻드냐?"
"낼 보아예지 알죠!…… 이런 모시가 다 있수?"
"삼십 년이나 묵었으니 그럴 밖으 더 있느냐?"
"아유! 삼십 년인다치문 어머니, 나보담두 열 살두 더 먹었구랴?"
"그렇단다. 이걸 느이 진외조할머니께서 손수 모시를 째서 올을 날아서 짜서 깨끗이 마전을 해서 나 시집 오는 농에다 넣어주셌더란다!…… 다른건 다아 없애면서두, 이 모시 한 필일랑은 손을 아니 대구서 알뜰히 건 살해 왔 드니…… "
"그런 걸 무엇허러 끄내우 어머니?"
"너 시집갈 농지기루 치마저고리나 잡아볼까 허구서 끄낸 것이 못 쓸까 보다 아무래두…… "
"누가 시집 간대나 머."
3
"그럼 시집 아니 가구 호박이라구 혼자 늙니?"
"인제 오빠가 개선해 돌아오구, 결혼허구, 그러구 나문 나두 어련히…… "
"네 오라비야 돌아올 날이 조만이 있느냐? 또 살아서 돌아오길 어찌 기약 허며!"
"걱정허실라 말래두! 인제 수훈갑(殊勳甲)에 금치 훈장 타가지구서 떵떵 거리 구 돌아올 때만 보아요!"
"그랬으면야 조옴 좋으랴만서두!"
"오빠 편지에두 그렇게 썼잖었수?"
"아뭏든지 넌 명년이 졸업이구 허니 먼점 시집을 갈 도릴 허는 게 내 생각엔 졸 상부르다만."
"나 시집 가구 없으문 어머닌 어머니 혼자서 어떡허구?…… 오빠가 와 보군, 아 너 이 기집애, 그샐 못 참아 어머니 혼자 떼내던지구서 시집을 갔어 ? 이 천하에 본초 없는 것 같으니로고 허문서 막 욕허문 어떡허우? 에구 무서…… "
"……… "
"어머니, 어머니?"
"오냐."
옥동댁은 대답이랑 얼굴이랑 다 건성이고, 무릎의 모시자락을 만지작 거리 면서 딴 생각에 정신이 팔린다.
"어머니, 무얼 또 그렇게 생각허우?"
"오냐."
"에이 갑갑해."
문주는 엔간히 어머니의 명상을 방해하지 않고 웃목으로 넌지시 물러 앉아 책을 펼쳐든다.
서너 장이고 읽고 났을 때였다.
"문주야?"
어머니는 가만히 고개를 들면서 이상히 곡진한 음성으로 딸을 부른다.
"어머닌 가끔 그렇게 시춤허구 있는 거 난 싫드라!"
"일러루 가차이 온?"
문주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무릎 앞에 와서 앉는다.
"문주야?"
"응?"
"내가 오늘밤따나 맘이 유난히 산란허구나!"
"왜, 어머니?"
"느이가 노상 듣구퍼하는 이야기 있지?"
"어머니 시집살이하든 이야기?"
"시집살이하든 이야기, 쫓겨가든 이야기, 서울루 가서 지나든 이야기, 느이 아버진 돌아가시구 느일 데리구 고생살이하든 이야기…… ""그거 시방 다아 이야기허우?"
"그걸 좀더 있다 네 오래비 장가나 들구 헌 담에 느이 남매 앉혀놓구 자초지종 다아 이야길 하쟀든 것이 네 오래비는 저렇게 나갔구…… 우환중에 내가 이렇게 병이 잦구 허니, 그러다 잿불 사라지듯 깜박 사라지는 날이면 느이한테 한이 될까 보구나. 그러니 너라두 우선 들어두었다 이담에 네 오래 비한테 두 들려 주구 허두룩 해라, 응?"
"어머니 입으루 오빠한텐 또 한번 허문 더 좋지 머."
"어디서버틈 이야기 허두를 끄낼거나?"
혼잣말로 그러면서 옥동댁은 지그시 눈을 감는다. 한참 동안이나 그러고있다 퍼뜩
"그때두 마침 요때처럼 추석 머리 였 드니라…… "하고 이야기를 내기 시작한다. 이리하여 한 팔자 기박한 여인이 삼십 년 의기 나긴 세월을 두고 그의 운명과 싸워 오던 설화는 마침내 풀리어나오던 것 이었었다.
3. 人生 第二關[인생 제이관]
1
사람이 여자로 태어나 부모 앞에서 자라다 출가를 하기까지가 인생으로 제 일 관문( 人生第一關門)이라고 한다면 결혼은 ── 남편을 맞이하고 가정을 이룩하고 시집살이라는 것을 하고 한다는 것은 그 제이의 관문( 第二關門)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의 일생을 싸움이라고 부른다면 결혼은 정녕 여자의 제이진(第二陣)이라고 일러야 옳을 것이다. 하되 여자는 그의 제이진이야말로 앞으로 전생애를 좌우하는 중대한 출진(出陣)일 것이다.
내일 모레가 추석(秋夕).
열사흘달이 천심(天心) 높다랗게 솟아 있다. 일 년 열두 달, 그중 달이 좋다는 추석달이다. 거의 다 둥그렀고 거울같이 맑다. 밤은 이윽고 깊어 울던 벌레도 잠자고 괴괴하고…… 촉촉한 이슬기를 머금고 달빛만 빈뜰에 가득 괴어 꿈속이고 싶은 황홀한 밤이었다.
새댁 진주(眞珠)는 우물에 두레박을 드리운 채 문득 자아올릴 생각을 잊고 서서 하도 좋은 달밤에 잠깐 정신이 팔린다. 무엇인지 저절로 마음이 흥 그로와 지 려고 하고, 이런 좋은 달밤을 두어두고 이내 도로 들어가기가 아까운것 같았다. 언제까지고 내처 이대로 있으면 싶었다. 그러나 또 혼자서 이렇게는 더 아까운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아까운 것이 도리어 또 가만히 재미가 있기도 하였다. 한 어리고 처녀스러운 감성일 것이다. ── 시집을 오고 머리를 쪽을 찌고 하여 이름이 각시니 새댁이니지, 그러고 깍듯이 시어머니의 며느리 노릇이나 할 뿐이지, 아직껏 그는 열두살박이 애기 새 서 방준호( 俊浩) 의 도련님 시중이나 들고 이야기 동무나 하여 주고 하는 곱다시 처녀요, 갓열여덟의 어린 나이었었다.
비록 철은 나지 않고 글방 도령에 애기 새서방이더라도 진주에게 가장 가까운 동무요, 그러고 유일한 이성은 당연히 준호라야 하였다. 자연 일상에 즐거운 일이 있을 때나 언짢은 일이 있을 때나 매양 생각나는 것이 우선 준호 였다. 친정집의 할머니도 물론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선 몸 바투 느끼겠기는 막상 새서방 준호였다. 일부러 그러자고 하여 서하는 노릇이 아니라 제풀에 마음이 그래지는 것이었었다. 곧 정(情)의 시초 일 것이었었다.
시방도 진주는 좋은 달밤이 혼자서는 미흡하던 끝에 저절로 생각나는 것 이 역시 준호였다. 마침 이런 때 그가 돌아와서 좀 같이 놀기도 하고 하였으면 하였다. 그야 논다고 하여도 어려운 시어머니가 계시고, 하인들이랑 머슴들이랑 있고 할 터에 나 어린 새서방을 데리고 뛰어다니고 웃고 지껄이고,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창가 부르고 아이들처럼 그런다는 것은 아니었다. 또 한 만 히 오래도록 놀고 있을 수도 없었다. 잠깐 동안 나란히 뜰이라도 거닐면서 달 이야기, 글방에 갔던 이야기, 추석이야기 같은 것이나 소곤소곤 서로 이야기하다 웬만큼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써 족 하였 다. 혹시 단둘이서 방에 있을 때면 일쑤 그렇듯이'나 좀 업어 주우’ 하면?…… 쯧, 아무도 없는 달 아래 얼른 조금만 업어 주는 것도 한결 재 밀것이고.
2
진주는 천천히 두레박을 자아올려 우물 빈지에 놓았던 하얀 분원 사기( 分院白磁[ 분원 백자]) 대접에다 넘치지 않도록 팔 홉은 되게 부은 후 남은 물도 함부로 버리는 것이 아니고 세수확으로 가지고 가 따른다. 그러고는 두레박 줄을 고쳐 사려서 두레박 실겅에 잘 얹어놓는다.
구름 한 조각 지나가는 자취 없고 달은 한결같이 밝다. 바깥편으로 한편을 우물 울타리한 동청(冬靑)나무 잎사귀가 저마다 달빛을 받아 수없는 잎사귀들이 저마다 매끄럽게 번뜩인다. 우물 두던의 돌틈에서이리라. 귀뚜리가 꼭한 마리가 생각난 것처럼 까르르 스러질 듯 울음을 낸다. 그 스러질 듯 가늘게 우는 소리가 조금도 이 밤의 고요함을 헤뜨리지 않고 도리어 운치를 더한다.
준호는 항용 열한시가 지나서, 어떤 때에는 자정에, 또 더러는 자정이 훨씬 넘어서야 돌아오고 한다. 글방에는 시계가 없고, 두꺼비처럼 생겼 대서 두꺼비 선생이라고 부르는 훈장이 짐작으로 대중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일정하지가 못하였다.
진주는 방금 안방에서 열한시가 거의 다 된 것을 보고 나온 생각을 하고, 혹시 오늘은 내일이 파접이고 하니 좀 일찍 돌아올는지도 모를까 보다면서 꺄웃이 귀를 기울인다. 그러자 마침 쉬었다 다시 시작인 듯 건넌 마을 선비 골의 글방으로부터 여럿이 얼려 읽는 글소리가 감감하나 손에 잡힐 듯 분명히 좌악 들려온다. 지금부터 참을 다시 시작이라면 여느날보다 이르기는 고사요, 더 늦어둔 것이었다. 종시 섭섭하였으나 내일도 날이요 모레도 날이었다. 더구나 내일부터 한동안은 글방에는 가지 않고 하니 얼마든지 계제가 있을 터이었다. 그런 내일날을 기다려 둠도 차라리 한 즐거움이었다.
밤이 하 고요하여 그런지 당혜(唐鞋) 바닥에서 징 맞치는 소리가 유난히 다그 락거 린다. 진주는 되도록 돌을 피해 디디면서 물대접을 집어들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밤에 혼자라도 남의 집 새며느리란 건 걸음걸이 하나 함부로 하기를 본시 삼가야 하는 법이지만, 남달리 엄한데다 겸해서 까다롭기까지 한 홀시어머니 밑에서 벌써부터 말 많은 시집이고 보매 일동일정 무엇 한가지 각별히 조심되지 아니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 밤의 조심은 조심이 도리어 재앙을 도왔다 할 것이었다.
시어머니 박씨부인은 퇴침을 돋우 베고 누워『삼국지』를 읽다 깜박 잠이 들었었다. 그러다 어찌해서 깨어 보니 한옆으로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던 며느리가 보이지 아니하였다. 바느질하던 것은 다 그래도 놓아둔 채…… 아마 소피엘 갔거나 하였나 보다고 거기까지는 심상하였다. 그러자 우물에서 다그락거리는 당혜 소리에 섞여 두레박 다루는 기척이 들렸다.
'?……’
두레박을 다룰진댄 소피 갔던 손을 씻으려 함은 아니었다. 소피에 갔던 손으로는 두레박을 다룰 리가 없었다.
'우물엔 어째?…… 이 야밤중에!……’
괴이하다는 것이었다. 야밤중에 우물엘 갔기론 괴이할 것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지만, 시어머니 따라, 그때의 기분 따라 넉넉히 괴이할 수가 있 기도한 것이었다.
3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꿈치가 달걀같이 고와도 흉이란 속담이 있거니와, 참으로 남의 며느리 되어 한번 시어머니의 눈에 벗기로 들면 한정이 없는 것 이었다.
남이 박씨부인을 일러 여장부라고 한다. 혹은 여걸이라고도 한다. 언변 좋고 감대 괄괄하고 진서공부(漢文[한문])가 웬만한 선비 뺨쳐먹을 만큼 도 저하고, 체집 크고 기운 세고…… 진시 여장부였다. 삼백여 호나 되는 향교 골온 마을을 쥐락펴락하였다. 마을은커녕 한번인가는 세미(稅米 : 納稅[ 납세]) 로 등갈이 나가지고 동헌(東軒 : 郡[군])엘 쫓아들어가서 원님을 다 혼을 내준 여인이었다. 서른한 살 때 갓 제돌 잡힌 외아들 준호 하나를 데리고 과부가 되어가지고 이래 십년 남짓한 동안에 적수로 이백여 석거리의 성세를 장만하였으니 그 또한 장한 일이었다.
그러나 여장부는 여장부요, 병든 홀시어머니는 따로이 또 병든 홀 시어머니 였다. 생리학자의 말을 들으면 흔히 중년 과부란 그 생활조건과 심리작용으로 인하여 성질이 다소간 편협· 괴벽하기가 쉽고, 그러다 이윽고 단 산기( 斷産期) 를 당하여 소위 히스테리 증세가 생기게 되고 보면, 그 경향이 일단 더 농후하여진다고 한다. 물론 병이다. 그러나 가벼운 경우면 사람이 까다로와 지고 신경이 예민해지는 정도에 그치고 말지만, 만일 병이 심한 경우면 극도로 쇠약한 신경이 일변으로는 극도로 날카로 와져 가지고 인하여 성 격과 생활 행동에 어지러운 변화를 일으켜놓는다. 변덕이 죽끓듯하고 억지가 찰엿가래 같은 것쯤 차라리 온건한 증상이다. 환상적인 엉뚱스런 독단을 하여놓고는 남은 웃을 일을 울고, 남은 울 일을 웃는다. 한번 무엇이 여사 여사하다고 생각을 하면 꼭 그 골로만 그 골로만 무섭게 예리하고 심각스런 천 착을 하여 들어간다. 그러는 끝에 필경 얼토당토 아니한 결론에 빠져가지고는 과대망상증이니, 피해망상증이니 하는 데까지 이르는 수가 왕왕 있다.
보아야 겉으로는 멀쩡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구할 수 없는 병인인 것이다.
우리 박씨부인도 불행, 병이 그렇듯 골수에 깊은 병인이었다. 그리고 그 병짓의 파독(破毒)이 와서 떨어지는 곳이 어느 곳이냐 하면 아들 준호는 진작부터 요, 새로이 며느리 진주에게였었다. 잘하는 일이거나 잘못하는 일이 거나( 별로 잘못하는 일이 있는 바도 아니었지만) 며느리가 하는 일이면 덮어놓고 마음에 들지가 않고 새김질을 하여 보아가지고 하였다. 발뒤꿈치가 계란같이 맵시가 있어도 밉고 흉인 것처럼 말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밤중에 우물엘 간 것도 예사롭지가 않고 괴이하던 것이었었다.
'자리끼숭늉이 있는데, 하필 냉수며…… 정히 냉수를 먹을 양이면 부엌 물독에도 있을 터이요, 하인이 그 옆에서 저렇게 자고 있으니 깨워서 시킬 것이지…… 바느질은 몰렸으면서 그래 제가 굳이 우물엘 가야 할 일이 대체 무 어란 말인고?’ '으응?……’
단박이었다.
눈과 얼굴이 더럭 험해지면서
'영락 없어…… 나이는 찼겠다, 서방이란 건 어리겠다. 흥, 달밤에 잔뜩 시방 맘이 달떠가지고!……’ 무서운 사측(邪測)이었다. 박씨부인 당자는 그러나 조금도 사측이 아니었다.
4
'그러면 그렇지. 누가 아니랬어!’
박씨부인은 커다랗게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인다.
박씨부인은 얼마 전부터 며느리에게 대하여 저것이 외양으로는 제법 얌전을 부리고 끔찍하게 하는 체하지만, 서방 명색이 나이 어리어 아무 흥도 없고 한데 속도 저렇듯 태연 심상할까? 태연 심상해? 이런 의혹을 품어 왔었다. 분명 속은 달라야 할 것이었다. 미흡해서 만사에 뜻이 없고 저 혼자 있 을 때면 홀홀 한숨이나 쉬고 팔자 자탄이나 하고 할 것이다. 정녕 그렇거니 하였었다. 했던 것이 아니나다를까, 오늘 밤에 보니 짐작은 영락없이 들어맞았던 것이었었다.
'내가 무슨 턱에 남의 어린 자식 데려다 놓고 애먼 혐의를 두어? 다아 번 연한 노릇이지. 마른하늘에 벼락을 맞으려고? 내 눈이 어떤 눈이 길래!’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저마다 얌전하다는 칭찬이요, 보매도 무던한 것 같길래 혼인을 했더니 아뿔싸 그만!’ '아무렴. 나도 홀에미로 자식을 길렀지만 에미애비 없이 자란 자식은 어디가 표가 나도 표가 나거든! 할 수 없어!’ '저 저, 흉물스런 것이 시방 누가 알세라 들을세라 사풋 살짝 신발소리 안내고 걷느라고 앨 쓰는 거동을 좀 보래두! 에잉 천하 요사스런 것!’ 벌떡 박씨부인은 일어나 앉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우렁찬 목청을 질러
"삼월아!" 하고 불러 외친다. 하인년 삼월이가 무슨 죄 있을꼬마는 여느때대로 직접
"새 악아." 하고 부를 계제도 아니요, 겸하여 목적이 고함을 우선 지르잔 목적이라 만만한 삼월이었던 것이다.
잠이 들어놓으면 묶어가도 모르는 삼월이가 한번에 냉큼 대답이 있을리 없었고, 또 부르는 편에서도 고함 지르며 들레기가 주장인지라 대답은 상관이 없었다.
장죽을 집어 놋재떨이가 깨어지라고 땅땅 두드리면서 연거푸
"이 년 삼월아!" 불러 외치는 소리를 받아
"네에." 하는 며느리의 연삽한 대답이 대뜰 바로서 들린다.
'얌사한 것!’
눈을 그쪽으로 잔뜩 흘기다 문득
'참! 진작 좀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하면서 얼른 영창 앞으로 다가앉는다. 영창에는 유리가 한칸 붙여 있어 그리고 달이 휘영청 밝은 바깥이 환히 내어다보이게 마련이었다. 그 유리 쪽에다 바싹 얼굴을 대고 앉은 박씨부인은 그러다가 다음 순간 거의 소리를 내어 '응?’ 하면서 놀란다.
'용길이가?’
머슴 겸해 와서 의탁하고 있는 용길이었다. 며느리는 물대접을 들고 마 악대 뜰로 올라서는 참이고, 용길이는 뚝배기를 들고 성큼성큼 우물 두던으로 올라가고 하고 있었다.
5
용길이는 마침 우물로 물을 뜨러 들어오는 길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박씨 부인은 그런 것이 아니어야만 할 것 같았다.
'둘이 여태껏 같이 우물에서 있었지?’ 하여서야 속이 후련하였다.
'그렇지만 용길이놈은 지금 마악 들어오고 있는데?’
이 번연한 사실이 어떤 심술꾸러기처럼 비위가 거슬리고 밉살스러웠다. 이런 때에는 그저 억지가 제일이었다.
'아니, 그건 달리 무슨 까닭이 있었고…… 분명 둘이 같이 있었어!’
'정녕?’
'그럼, 정녕!’
'하, 이런 변괴가!……’
당장 벼락치듯 영창을 열어 젖히면서
'이 죽일 놈년들!’ 하고 고함을 치겠는데, 그리고 들입다, 거적에 말아라, 작두를 들여라, 놈년을 한꺼번에 그저 하고 추상 같은 호령을 하겠는데, 그만 용길이를 꺼려 꾹 참는다. 머슴은 며느리처럼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뿐더러 친정 사촌형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데려다 이내 자식 다음 가게 길러 오던 터라 어디로 치나 싸고 돌아야 할 의리였었다. 그것도 증거가 꼼짝 못하게시리 역력한 것이라면 혹시 모르거니와…… 그러나 그렇다고 이 자리를 이대로 참고 넘길 수는 없었다. 하여커나 한번난 화요, 화가 난 이상 한바탕 화풀이는 하여야만 하는 판이었다.
진주는 마당 한가운데쯤 서서 어머니의 고함소리를 들었다. 놀라, 하마터면 물대접을 놓칠 뻔하였다. 정신이 황망하였고, 그런데다 연달은 고함 소리와 재떨이 두드리는 소리에 먹혀 등 뒤에서 차면 안으로부터 나는 밭은기침 소리도, 성큼거리고 우물로 걸어가는 발자죽 소리도 통히 들리지 아니하였다. 따라서 용길이가 들어온 줄도 까맣게 끝까지 그는 몰랐었다.
'주무시다 별안간 웬일이실까? 잠드실 때까지도 아무 다른 내색 없이 책보 시다, 이야기하시다 하시던 어른이!’ '느닷없이 역정나실 일이 없는데?……’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찌해서 났던 간에 큰소리가 난 것만은 사실 이요, 큰소리가 난 바엔 책망은 당해 둔 것이었다. 그 사정없는 책망…… 아뜩 겁이 질리려고 하였다.
마루로 올라섰다. 맞방망이치듯 가슴이 두근거리고 문고리를 쥐는 손이 바르르 떨렸다. 앞이 아찔아찔하면서 곧 쓰러질 것 같았다.
정히 그때였다. 순간, 어둠 속에서 번쩍 비치는 불빛처럼 번쩍하고 정신 이드는 것이 있었다.
'이래서는 안되지! 정신을 차려야지! 이왕 당하는 일이니 더 잘못이나 저지르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지!’ 한 용기(勇氣)라 할 것이었다. 어려움을 임하여 마음 가다듬고 기운을 낼줄 아는 것, 이는 곧 아버지의 혈관에 흐르던 용맹(勇猛)의 내림이었다. 열 여덟 살, 물론 어린 나이였다. 아직 소녀요, 한 안해로서는 어리었다. 그러나 그는 한 며느리로서는 철이 들 대로 들고, 어른스럽게 침착할 수가 있었다. 조용히 윗문을 여닫고 들어서 그대로 머리 소곳하고 문치에 가 선다. 문치에 가 소곳하고 서서…… 우선 대죄(待罪)하였다. 죄야 있으나 없으나 어른의 성정난 앞에 말없이 대죄하는 것, 이는 며느리의 어여쁜 부덕( 婦德) 이었다.
6
아랫목에서는 깜박 아무 동정이 없고.
아무 동정이 없다고서 이내 언제까지든지 그러고만 또 서 있어서는
'어서 할 대로 하시오!’하고 이짐을 쓰는 것 같아서 도리어 어른의 성정을 돕는 것이었다. 적당히 잠시 후 가만한 걸음으로 뒤 곁으로 건너가 물대접을 넌지시 한옆에다 치우듯 비껴놓고, 그러고는 앉아서 바느질을 집어든다. 바느질은 추석날 새 서 방준호가 칠 모시행전이었다.
"무어냐? 명색이."
마악 바느질을 한 코 뜨려고 할 즈음 비로소 박씨부인은 한소리 모질게 지른다. 밑도끝도 없이 첫마디가 그렇게 나오는 말투도 말투려니와, 더욱 그 음성은 방금 삼월이를 불러대던 이와는 자못 달라 곧 살기가 뎅겅뎅겅 듣는듯 하였다. 그것은 며느리의 뺨에다 못질한 듯 박혀 있는 독한 눈매와 더불 어 어른으로 아랫사람을 질책하는 음성이요 눈매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노골 히 어떤 독특한 반감와 증오를 머금은 음성이요 눈매요 하였다.
박씨부인은 실상 며느리가 방으로 들어서기를 마침 벼르고 있었다. 무릎을 도 사리고 장죽은 재떨이를 두드리던 채 그대로 느직이 올려 들고 윗 문께 를 마침 부릅떠보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서는 즉시 한꾸중 크게 '그래 너는 어디를 갔다오느냐?’ 하고든 무어라고든 하여간 추상같이 하되 준절히 꾸짖음으로써 잡도리를 시작 할 참이었었다. 그러나 막상 며느리가 윗문으로 해 들어서 잠깐 호흡을 다스리느나 그를 노려보아, 하는 동안 문득 한 맹렬한 적의(敵意)가 나무람이니 꾸짖음이니 따위는 한옆으로 젖혀놓고 따로이 돌연한 적의가 무럭무럭 가슴속 저 밑으로부터 치달아올랐다. 며느리의 고운 살쩍 아래로 도독이 살진 연한 뺨! 박박 가서 손톱으로 할퀴어놓고 싶게 그 앳되고 화사함의, 시기 스럽 기도 하더라니…… 치렁치렁 뽀얀 버선등 위를 치렁거리는 남갑사 치맛 자락! 발기발기 가서 뜯어발기고 싶게 그 칠보 족도리 갓 벗은 듯 새 각 시 태 면면함의 시기 스럽기 더라니…… 데렸던 제 새끼 병아리를 이윽고 쪼아샀고 독살을 부리고 하는 암탉 이 라면 모르되, 이른바 만물의 영장(靈長) 된 체면이 무색한 노릇이었다. 그러나 인류가 나이는 비록 몇백만 살 닭(動物[동물])보다 더 먹어 어른 뻘일 값에 좀처럼 프로이트라나의 해괴한 저술(著述)을 용감히 서재로부터 끌어내어 불 사르지 못하는 약점이 무릇 거기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방금 아까도 보던 그 며느리 그 차림차리가 번연하건만, 박씨 부인에게는 며느리가 별안간 그리고 무단히 그렇게 아리따와지고 새각시태 면면하여지고 한 것처럼 금시로 비위가 더럭 거슬리면서 밉새웁고 울화가 나고 하는것이니, 도저히 성한 사람에게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위험스런 환자가 아닐 수 없었다.
"으응? 무어냐? 명색이."
눈도 깜작 않고 지질 듯 며느리의 뺨을 노리고 앉았다가 이번에는 손의 장 죽이 상앗대질까지 쑥 나가면서 고함청을 재차 지른다. 그러고는 연달아 "무엇 허는 명색이냐? 명색이…… "
노기는 차차로 더하여 거의 머리끝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7
숨도 쉬는 듯 마는 듯 진주는 소곳하고 앉아 한코 한코 바느질만 하고 있 다. 똑 똑 바늘코 소리조차 그는 조심되고 민망스러웠다. 항차 말대답 이 리요, 그러나 며느리란 것은 시원시원 대답을 하면 말대답을 한다고 트집이요, 아니 하면 아니 한다고 탓이었다.
"아니 별안간 꿀먹은 벙어리가 됐단 말이냐 으응?"
"………"
"내 말이 동네 개 짖는 소리만두 못한가 보구나?"
이러는 데야 종시 죽여 줍소사 하고 입을 봉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진주는 얼굴을 조금 드는 듯하면서 빈다.
"어머님, 잘못했어요, 다신…… ""듣기 싫구나! 누가 그런 소리 듣겠다드냐?"
"………"
"어디 무엇허러 갔드냐?"
"………"
"시에미 잠든 새 살끔 나갔다 오는 디가 어디냐?"
심상치 아니한 말이었다. 진주는 가슴이 섬뜩하였다.
"하두 갈증이 나서…… 시원헌 우물 물을…… "
"핑계는 좋구나?…… 냉수가 먹구 싶으면 하인이 없드냐? 부엌 물독에 물이 없드냐?"
"………"
"요망스런 것 같으니!…… 흥, 누가 제 속 모르는 줄 알구?"
"………"
"맘두 달뜰 만두 허지! 오두발광두 날 만두 허지! 서방은 어려, 나이는 찼어, 달은 휘영청 밝어…… 흥, 맘두 달뜰 만두 허구말구…… 오두발광두 날 만두 허구말구…… "
진주는 기가 막혔다. 지난해 늦은 가을에 혼인을 하고, 금년 삼월에 신행( 新行)을 하여 시집을 살기 반 년 ― 여섯 달…… 그 여섯 달 동안 한 달이 멀다 하고 큰소리가 나고 책망을 듣고 하였지만 이런 무정지책은 처음 이었다. 김치가 너무 싱거우니, 너무 짜느니, 새서방 두루마기가 동정이 너무 좁았느니, 깃이 너무 처졌느니 따위의 트집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었다. 억색하여 눈물이 핑 돌았다.
부엌 물독에는 물이 마침 없었다. 삼월이는 깨우기가 힘이 들고 시끄러울 뿐더러 어린것이 곤히 자는 것을 깨워 일으키기보다 내가 잠깐 몸을 기동 하기만 못하였다. 그러나마 밤중에 우물엘 내려가기가 새삼스러운 일일 세 말이지…… 달도 무심코 나갔다 본 것이 그렇게 밝고 하였지, 달이 밝거니 하고 나간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새서방이 어리네, 마음이 달떴네 하는 것은 마른하늘의 벼락이었다. 일찌기 새서방이 어린것을 미흡히 여긴 적도 없거니와, 오 두 발광이란 그 말뜻부터 똑똑히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시어머니가 저다지 성정이 났을 바엔 무슨 잘못이 되었던 정녕 잘못이 있어야한 할 것이다.
'무엇일까, 어디가 잘못되었을까?…… 하시던 말씀대로 잠드신 새 나간 것이? 냉큼 들어오지 않고서 한참이나 충그린 것이?’ 억색한 것은 순간이요, 잘못을 찾기에 애가 쓰이고 마음이 급하였다. 어리고 아직 정갈한 신경(神經)이었다. 중년 과부에 오십 바라보는 히스테리 여인의 썩은 분비물(病的[병적] 호르몬)이 들어서 작희를 하는 그 망측 스럽고도 추한 비밀을 어리고 아직 정갈한 진주가 용히 알 턱이 없는 것이었었다.
당자 박씨부인 자신에게도 자각증(自覺症)이 따르지 아니하는 맹랑스런 병이 거든 항차……
8
박씨 부인은 한 호흡 깊이 들이쉬더니 호통은 왜장으로 돌변하여
"으응? 오두발광두 날 만두 허구말구우." 하고 끝목을 길게 빼어 고함을 지른다.
"으응? 보구 밴 것이 그것인가암? 으응? 서방 어리다구우 달밤에 오 두 발광이 나서어 으응? 으응?"
지르는 소리는 그 높고 거칠고, 그리고 사나운 품이 흡사 황소의 영각 이었다.
"예라! 예라! 나는 못본다! 그런 꼴 나는 못본다아! 나는 못본다!"
어깨를 휘저으면서 구들장이 꺼지라고 쾅쾅 밑을 구른다.
상인의 집안과 달라,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제아무리 손찌검만은 않는 법이라는 소위 선비 집안의 가도(家道)가 아니었다면, 그 당장 진주의 얼굴에는 흉한 손톱자국이 여러 개 나고, 몸은 함부로 피멍이 지고, 많은 머리카락이 뽑히고, 남갑사치마는 발기발기 찢어지고 하고라야 말았을 것이었다. 그렇게 한바탕'직접행동’을 하였으면 약간 직성이 좀 풀릴 수도 있는 것인데, 막상 그러지를 못하니 솟는 기운을 부지를 못해 사뭇 나느니 몸부림 이었다.
"예라! 썩 내 눈앞에 뵈지 마라!"
마침내 불끈 몸을 일으키면서 윗문을 가리키면서
"당장 네 집으루 가거라! 썩 네 집으루 가거라! 나는 그런 꼴 죽여두 못 본다!"
"어머님!"
진주는 푹 엎으러질 듯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거의 울음소리로 빈다.
"다신, 다신 그러거든 죽여 주시구, 이번 한 번만 참아 주세요, 어머님!"
"당장 가거라! 당장…… "
"어머님! 어머님!"
"썩 못 가느냐? 썩 못 가? 으응? 으응?"
한 고함에 한 발짝, 한 고함에 한 발짝, 세 발짝만에는 바싹 며느리의 앞에 그들먹하게 막아선다. 그대로 원비(!)를 늘여 머리끄덩이를 덥석 움킨다면 정히 솔개미가 병아리를 챈 형국이 되는 판이었다. 과연 박씨부인은 팔이 움짓움짓 얼마나 거기 눈 아래로 며느리의 소곳하고 있는 맵시 나는 머리 쪽을 와락 움켜 한번에 태질치고 싶었던고.
숨을 헐헐 기운 부려댈 무엇 만만한 것이 없나 하고 둘러보면서 일변
"으응? 으응?" 하고 을러메다 마침 바느질꾸리가 눈에 뜨이자 그대로 번쩍 집어 윗 문에다 대고 메어다친다. 쾅 와시르르 문이 힘없이 삐그덕 열린다.
"당장 네 집으루 가거라, 하느님이 말려두 나는 네 꼴 다시 못본다! 으응?"
소란에 이웃집에서 젊은 양주가 잠이 깨었다. 소곤소곤 주고받는 이야기.
"끙, 또야?…… 저 아씨가 올해 몇 살?"
"마흔둘이라든가? 셋이라든가…… "
"안직두 멀었구먼…… 영감이나 하나 얻겠지? 저 병엔 신효한 약인데."
"그럴래믄야 여태 수절했겠어요?"
"저럴래서야 차라리 개가살이한 이보다 더 망신이지 무어람!"
"딸자식 길러 과부 시어머니 있는 집으로 시집 보낼까 무서!"
"난 애야 사십 전에 죽는다면 이녁더러 삼년상만 치르구 나서 팔자 고치라 구 수결(手決 : 證書[증서]) 한 장 써놓구 죽을 테야!"
"숭헌!"
바늘
1
절골로부터 달려오고 있는 박씨부인은 부전부전 날이 밝아감을 따라 현장을 덜미잡기에는 십상 때가 늦었느니라고 저으기 초조하면서 걸음을 더욱 재촉하여, 마침내 동구 안으로 들어섰다. 동네 앞을 가로 건너간 신작로요, 집은 동네 맨앞으로 신작로와의 사이에 두어 이랑의 논을 격하고 있기 때문에 동구 안만 들어서면 우선 집이 보이게 마련이었다.
비밀을 감춘 듯 으슴푸레한 새벽빛에 싸이어 집이 희미한 윤곽을 드러내었다.
대문을 열게 하여서는 아니 되고 뒤꼍으로 해서 울타리를 뜯고라도 기척 없이 들어가야 하느니 하고 생각하면서, 어느덧 다시 신작로에서 집으로 꺾이는 샛길 머리까지 당도하였다. 집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다.
'?……’
샛길로 꺾이어들려던 박씨부인은 그러다 움칫하고 놀란다. 대문이 반 이나 열리어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 딴 놈이었든가? 용길이놈이 아니고……’
'워너니 그럴 리가……’
'아뭏든……’
다행 중 더욱 다행이었다. 기운이 갑절 솟았다.
샛길로 내려서서 두어 걸음 걷다 말고 또다시 놀라야 하였다. 그 열린 대문으로부터 웬놈인지가 처억 나오고 있지를 않는가.
'그러면 그렇지! 누가 아니랬어!’
무릎을 탁 칠 뻔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불시로 엄습해 오기가 절절히 잘 한성 싶었다.
어제 석양 절골 용길네 집엘 당도하여서였다. 사립문 밖까지 마주 나온 사촌형 ── 용길어머니와 피차 이런 인사, 저런 인사 인사가 한 둘레 끝나고나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으로 들어가면서 "참 오다 중로서 그애 만났지?" 하고 용길어머니가 물었다. 그애란 물론 용길이었다.
박씨부인은 무심히
"아니…… 어딜 갔길래?"
"그앤 그럼 샛길루 해 갔구면! 동생은 신작로루 해 왔지?……글쎄 자식이, 사람 된 소릴 허겠지! 딴 남의 집두 아니구, 이모네 댁인데 명절 이 랍 시 구 선 집이 나와서 열흘 보름씩 펀펀 자빠져 놀다 한(限) 다 채우구서야 어실렁어실렁 겨들어가서야 어디 도리냐구. 쯧 명절은 쇘으니깐 가서 허다못 해 조석으루 마당 귀탱일 쓸구 허드래두 가 있어예지 않느냐구 그러믄서 아까 즘슴때 좀 못 돼서 떠났어?"
박씨부인은 듣고 더럭 의증이 났다. 용길은 평소에 별반 게으름을 부리거나 꼬박꼬박이 남의집살이의 행티를 낸다거나 하던 바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와락 근경속이 있다든지 지나치게 착실한 머슴인 것도 또한 아니었다. 그저 예사 머슴일 따름이었다. 지나간 정월만 하더라도 항용 남의 집 머슴들이 하듯이 섣달 그믐날 세찬과 설빔 주는 것 한 짐 해지고 저의 집으 로나가 설 쇠고 초이튿날 잠깐 들어와 세배하고 설음식 먹고 그러고는 도로 나갔다 기한 스무 날을 마저 다 채우고서야 아주 들어와 일을 거들었고 하였다. 그러던 아이가 그새 별안간 철이 나 그토록 알뜰한 머슴, 살뜰한 조카로 변하였을 리가 만무요, 정녕 딴 내력이 있었다.
박씨부인은 가까스로 해를 지우고 가까스로 첫닭을 울리고 마지못해 약수터로 가 물맞이를 하는 시늉하고 그러고는 질색해 만류하는 용길 어머니를 뿌리치고 그 자리에서 떠나 밤중 오십리 길을 반달음질쳐 이렇게 달려들고있던 것이었었다.
2
'저놈이 누군지를 보아 두어야……’
박씨 부인은 그러면서 걸음을 급히 하여 쫓아오다 연자방앗간 앞으로 해서 저편을 향하고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그 인물이 동네 활량도 어떤 총 각 놈도 아니고서 뜻밖에도 허연 노인이었으며, 의원 오감찰임을 발견하고 세번째 놀라야 하였다.
'의원이 어째?’
'오오! ……’
가슴이 철썩하고 번쩍 새 정신이 났다
'약을…… 사약( 毒藥)을 먹여놓고 !’
갈데없었다.
이가 뿌드득 저절로 갈렸다.
자가사리 낚시에 잉어가 물린 셈이어서 생각잖이 소득이 큰 것은 통쾌 한일 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자식의 생명이 제웅되었다는 중대한 사실이 저질러졌 음을 생각할 때 통쾌하여 할 경황보다는 우선 치가 떨리지 아니할 수 없었다.
난장 구경을 갔던 준호는 간밤 자정이 넘어서 돌아왔다. 아무 탈없이 돌아 는 왔으나 들어단짝 그는 배가 고프다면서 떡을 ── 굽거나 찔 새를 기다리지 못해 차고 딱딱한 인절미를 그대로 ── 여남은 개나 앉은 자리에서 먹었다. 그러고도 다시 곰국에 밥을 말아 한 그릇을 달게 먹었다. 가지 고간 마른 음식은 윤석이 중로에서 군입삼아 다 먹어버렸고, 난장에는 국밥 가게를 비롯하여 갖은 음식이 많이 있기는 하였으나 그런 매식(買食)을 할 방납 된 소년이 아니어서 촐촐 굶고 다녔고, 집에는 허리가 꼬부라지도록 시장 해 가지고 돌아왔었다.
준호는 수저를 놓던 길로 나가 쓰러졌다. 쓰러져서는 새댁한테 난장에 갔던 이야기를 하려니 하려니는 생각하면서도 쏟아지는 졸음에 이내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어느만때나 되었는지 진주는 이상한 소리에 어렴풋이 잠이 깨었다.
"아이구 배야!"
새서방의 신음소리였다. 벌떡 일어나 불을 켰다. 핼쓱한 얼굴에 이마엔 비지땀이 솟아가지고 부대끼고 있는 모양이 환하여지는 불빛에 드러났다.
머리는 펄펄 끓고 수족은 차디찼다.
"몹시 아파요?"
"응, 아니…… "
살살 배를 쓸어주었다.
차차로 더 부대꼈다. 나가서 강즙을 내어 사향소합환을 개어서 먹이고는 잠시 기다려보았으나 갈앉는 동정이 없더니 구역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구역질만 하고 부대끼지 닭의 깃을 목구멍에 넣어주고 하여도 시원히 토하지는 못하였다.
한 시간 가까이 되었음직하여선데, 안방에서 네시를 쳤고, 이때는 준호는 몸을 뒤틀면서 입을 딱딱 벌리면서 곧 죽는 행티를 하였다.
삼월이를 꼬집어 깨워 의원을 청하러 보냈다. 한 한 시간 반이나 오 감찰이 왔고 맥을 보더니 먹은 것이 꽉 체했다면서 사관을 놓았다. 그 가느라단 침몇 대가 거짓말같이 영검스레 마지막번의 침을 뽑기가 무섭게 우선 후련히 한바탕 토를 하였다. 마침 여섯시를 치고 날이 휘엿이 밝았다.
"그만하면 급한 증세는 돌렸다. 약을 몇 첩 지어줄 테니 날 따라오느라."
오감찰은 삼월이더러 그렇게 이르고서 한걸음 앞서 차면 밖으로 나갔고.
삼월이가 얼마쯤 충그리다 마악 마당을 절반은 건너고 있는데 우당퉁탕 뛰어든 것이 박씨부인이었다.
"이년 ! 새서방님 죽였지?"
삼월이를 가로막듯 우뚝 그 자리에 멈추고 서면서 단박 을러메는 말이 이 말 이었다.
3
"으잉 이년? 새서방님 죽였지?"
박씨부인은 등잔덩이 같은 눈방울을 며느리에게서 도로 삼월이에게로 부릅뜨면서 쾅 발을 굴러 재차 호통이고.
벌벌 떨고 섰던 삼월이는 그제서야 잔뜩 겁먹은 소리로
"안직 안 돌아가셌시유!"
"안지익? 안지익?……"
박씨부인은 황소 영각하듯 으르렁거리다 더욱 무서워진 눈방울을 다시 이번엔 삼월이에게서 며느리에게로 굴리 면서 "죽이려 구 했는데에……약은 앵겼는데에 안직 죽지만 아녰다아 ? 안직 죽지만 아녰다아?"
다지는 편에서는 죽였지? 죽였지? 하고 거듭 다졌던 것이지만, 듣는 사람이야 설마 죽였지(殺)로 바로 알아들었을 리가 없었고, 진주나 삼월이나 다같이 무심히 죽었지(死)로 알아들었을 따름이요, 삼월이의 대답도 따라서 그 죽었지(死)에 대한 대답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다진 편에서는 번 연히 죽였지( 殺) 로 다진 것이매, 아직 안 죽었다는 대답이고 보니, 그러면 ' 죽이려고 하였는데 ── 약을 먹였는데 ── 아직 죽지는 아니하였다’는 대답으로 당연히 인정을 할밖에 없었던 것이었었다. 이리하여 박씨부인은 진주가 준호를 독살하려고 한 사실을 삼월이에게서 자백을 들은 셈이었었다.
박씨부인은 부르르 건넌방으로 올라가 앓아 누웠는 아들의 얼굴을 한참이나 내려다보고 섰다 천천히 베개 옆으로 앉으면서 지 천하 듯 "이 놈, 입 벌려보아라!"
"………"
준호는 병색에 겹치어 슬픈 빛 가득히 어린 얼굴로 눈 딱 감고 누워 눈썹 하나 까딱하는 반응도 보이려고 않는다. 모친의 말이나 영 앞에 이렇듯 제법 앙똥하기도 별반 드문 일이었다.
"이놈 죽었느냐?" 하는데 마침 준호는 신간하였던 복통이 또 나
"아이구 배야!" 하고 신음소리를 가늘게 지르면서 허리를 틀었다.
박씨부인도 역시 남의 어머니였다. 손이 저절로 아들의 아파하는 배를 쓸어주려 가지 않질 못하던 것이었었다.
손에 뒤미처 눈도 자연 배로 옮아가고 있었고. 그러다 별안간
"으응?"
포효와 동시에 가던 손을 그대로 멈추면서 더럭 더 험하여지는 눈을 아랫 도리만 걸친 처네 위로 비어진 준호의 다듬은 모시 겹바지 골마리로부터 며느리의 얼굴로 대고 치부릅뜬다.
"이 천하엣!……"
천둥소리 같은 호통이 나오다 기가 차 뚝 막힌다.
진주는 영문을 몰라 뻐언하고 섰고.
"그래두 부족해서? 사약을 앵기구두 그래두 미흡해 서 배꼽으다 바눌을 꽂아 놔?"
기운찬 손가락질과 함께 이는 호통에 천장이 찌렁찌렁 울린다.
진주는 시어머니가 손가락질 하는 곳, 새서방의 바지 골마리에 가서 배꼽 어림께로 짤막한 실을 꽂은 채 꼿꼿이 절반 넘겨 꽂혀가지고 섰는 한 개의 바늘 발견하기 전에 벌써 시어머니의 '…… 배꼽에다 바늘을……’ 하는 소리 로써
' 아 ! 그 바늘이……’ 하고 놀라기에 넉넉한 것이 있었다.
4
얌전스런 여인이라도 바느질을 하다 골몰 중에 더러 바늘을 잃는 수가 있다. 잃은 바늘이 바로 그 바느질 속에 가 묻히든지 꽂히든지 하는 수가 또한 왕왕 있다. 진주도 올 추석 바느질을 하면서 바늘 하나를 잃었었다. 다른 곳에 떨어졌던지 바느질밥에 쓸려나갔던지 하였다면이거니와 바느질 속에라도 묻혀 들어간 것이라면 큰일이라고 애를 쓰면서 무한 찾아보았으나 마침내 찾지 못하고 말았었다. 어제 준호를 난장 구경을 보내면서 밤에 추워 할세라고 갈아 입혀준, 그리고 준호는 돌아와 입은 채 그대로 쓰러져 자 시방 입고 누워 앓는 다듬은 모시 겹것, 그 옷이 곧 바느질 가운데 한가지것이었었다, 하필.
그렇더라도 또 하필 그 바늘이 배꼽 어림에 가서 묻혔을 것은 무엇이며, 저물 도록과 밤새도록을 가만히 있다 무엇에 스치어 새벽에야 꼿꼿이 일어섰 을 것은 무엇이며, 가사 일어선 지가 오랬기로서니 그동안 진주든지 삼월이라든지 하다못해 의원이든지가 그것을 못보았을 것은 무엇이며, 그러다 지금 와서야 사람의 눈에 뜨이되 박씨부인의 눈에 뜨이고 말 것은 무엇이며…… 참으로 공교롭기 다시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우연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우연으로 돌리고 말기엔 너무도 귀신의 장난에 가까웠다.
진주에게는 그것이 우연이 아니면 부득불 귀신의 장난이었으나 박씨 부인에게는 조금도 우연일 며리, 또 귀신의 장난일 필요도 없고, 어엿이 사람 의한 짓이었다. 음식에 독약을 타 먹인 솜씨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 며느리의 한 짓이었다.
이 배꼽의 바늘은 그것 스스로가 독립한 살의(殺意)를 머금고 있는 자일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새서방을 없이 할 목적으로 음식에 독약을 타 먹였다는 것도 노상 애매한 말이 아닌 줄로 남을 인식시키기에 깔보지 못 할 부차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었었다.
승리를 한 박씨부인은 차라리 침착히 서둘렀다. 삼월이를 문초하여 준호가 어제 석양 새댁이 보내주어서 읍내로 난장 구경을 간 것과 갔다 자정이 넘어서 돌아온 것과 돌아와 음식을 먹고 잔 것과 그때까지도 아무 일이 없었고 탈은 그 음식을 먹고 잔 뒤에 난 것과 이렇게를 갖추 알아내었다. 그리고 용길이는 어제 점심 새때에 당도하여 한 상 걸게 차려주는 것을 먹고는 그 길로 난장 구경을 간 채 이내 돌아오지 아니하였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하여 박씨부인은 며느리가 어제 석양에 준호를 꾀어 난장 구경을 보내놓고는 아무도 없는 새 만단 준비를 하여 두었다 밤 늦어 시장해 돌아오기를 기다려 비상 같은 것을 탄 음식을(입술이며 입안이 상하지 아니한 것을 보아 양잿물이 아니요, 정녕 비상을 탄 음식을) 가져다 안긴 것이요, 그러고도 안심이 아니 되어 골마리에다 바늘을 꽂아 뒤치락거리는 바람에 배꼽으로 꽂혀 들어가게 한 것이요 하다는 결론을 얻어 내었다. 아울러 용길이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이 요행히 드러났고.
자못 삐뚤삐뚤하고 샐 구멍이 숭숭 뚫린 추리에서 얻어진 결론이었다. 그러나 박씨부인에게는 추리 같은 것은 암만 비척거리고 밑이 새고 하여도 상관이 아니요, 결론만 목적과 희망에 일치하면 그만이었다.
결론대로 며느리의 죄상은 명백하여졌다. 이에 죄를 다스리는 것이 남았을 따름 이었다.
5
박씨부인은 동네의 교군패장 억쇠를 불러 두 채의 단패 교군을 꾸미라 명 하였다. 중매 노파 몽술어멈더러는 나들이 갈 채비를 차리고 오라 불렀다.
교군이 꾸며지고 할 동안 박씨부인은 사돈집의 안어른인 노 사부인( 진주의 조모)에게로 한 장의 간찰을 기록하였다. 사연은, 며느리의 평일에도 여러가지로 부덕이 미흡하던 사실과 그러자 필경 이번에 약시약시한 변을 저질렀다는 것과, 그리하여 부득이 오늘로써 두 집안은 절연을 하게 되었노라 는것을 적은 것이었었다.
검정 쇠털벙거지에 먹물 들인 삼베 등삼에 날아갈 듯 짚신 감발한 두 놈씩이 마침내 한 채씩의 교군을 척척 마룻전으로 들이대었다. 몽술어멈도 진작와 서 있었다.
박씨부인은 위엄 있이 아랫목으로 좌기하고 앉아 삼월이 시켜 건넌방의 며느리를 대령케 한다. 준호는 아까 박씨부인이 손수 안고 건너와 한 옆에 뉘었었고.
진주는 정신을 수습하여 눈을 닦고 매무시를 살피고 한 후 대청마루의 샛문으로부터 조용히 들어와 머리 숙이고 공수잡이하고 선다.
"네 죄상을 네가 알리라."
박씨부인은 이윽고 며느리를 거들떠보고 있다. 마침내 목을 가다듬어 입을 열었다. 심히 침중한 태도요 추상 같은 음성이었다.
"만약 예법대로 한다면 너는 이 당장으로 거적에 말아 작두에 목을 걸었을 테야! 허나 일왈 나는 내 손에 피를 묻히기 싫은 사람이요, 또오 시체는, 너 같은 아무리 극흉한 죄인이라도 사사로이 다스리지는 못하는 법 이 라드 구나." 하고는 박씨부인은 잠깐 말을 끊었다 다시 "너는 오늘부터 이 남씨집 사람이 아니야…… 교군은 다 차려놓았으니 가거라! 시방 이 자리서…… "
"……… "
"몽술어멈이 너의 조모님께 간찰을 가지고 가니, 같이 가고…… "
"……… "
"네 세간은 오늘내일간 짐꾼 해서 보낼 테니 잘 다 참겨 받고…… "
"어머님, 동찰허세요!"
진주는 목멘 음성으로 그렇게 부르고, 푹 엎드리면서 또 한번
"어머님, 동찰허세요!"
"어떡헐 테냐 ?"
"차라리 죽여주세요! 작두에 목을 썰어주세요! 나가 죽으라시면, 당장 나가 목이라두 매겠으니 제발…… "
"흥! 네 그 좁은 소견에두 생각을 해보렴? 명색이 가장이라는 걸 죽여 없애려구 든 너를, 내가 그래 이 집안에다 붙여두구 볼 듯싶으냐? 용서할 일이 따루 있으며, 참는 것두 분수가 있지."
"저를 차라리 죽여주시지, 제발 어머님 한번만…… "
"너, 그럴 줄 알었다!"
박씨부인은 삼월이를 불러 냉수와 숟가락을 들여오라 하고 반닫이 속 서랍에서 백지로 조그맣게 싸고 싸고 한 것을 꺼내 놓더니, 며느리를 가까이 오게 하여 누웠는 준호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다.
"너도 아마 이것이 비상인 줄은 알 만허리라 !"
박씨부인은 그 백지에 싼 것을 펴 반짝거리는 하얀 가루를 진주의 코앞에 바싹 들이대어 보이고는 조금을 숟가락 끝으로 떠 물에 푼다.
"너를 그대루 두었다간 이놈은 언제 죽어두 네 손에 죽구 마는 놈야! 그러니…… "
닥닥닥…… 숨막히는 긴장 가운데 사약 젓는 소리만 이윽고 계속을 한다.
6
당자 진주는 물론이요, 죽은 듯 눈을 감고 누웠는 준호나 마루에서 마주 잡고 벌벌 떠는 삼월이와 몽술어멈이나, 다들 사약이 바야흐로 새댁에게로 내리는 줄만 알았었다.
그러나…… 뜻밖이었다.
"그러니, 네 손에 이놈을 죽이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죽이구 말겠다! 내손으루!"
그러면서 박씨부인은 서슴지 않고 준호의 입 바로 약그릇을 가져다 기울이는 것이었었다.
"어머님!……"
황겁해 부르면서 진주는 덤쑥 준호의 입을 한손으로 가린다. 하면서 또 한 손은 내어밀어 사약 그릇을 움키 려면서 "지가 먹으께요! 지가…… "
"흥, 절부(節婦)로다! 열녀로다!"
유유히 박씨부인은 사약 그릇을 끌어들이면서 냉소를 한다.
"지가 먹으께요, 어머님!"
"내가 무슨 탓으루 너를 죽이느냐 ? 너 같은 걸 죽이구서 내가 살인죄를 써? 흥!"
"………"
"너 그새 한 반년 겪어보았으니, 내 승미 짐작은 허겠구나? 한번 이런다 허면 하늘이 무너져두 그여이 허구 마는 승민 줄 알지?"
"………"
"지켜 앉어서 못허게 훼방놀 테거든 놀아보려무나? 무어 이따라두 낼이라 두 요거 비상을 한 모금 멕일 새가 없을까바서?"
"………"
"더 여러 소리 헐 것두 없으니……자량해 해라! 선뜻 일어나 가든지, 웬 이 퉁이며 웬 홀착인지는 모르겠다만서두, 아니 가구 있다 이놈이 내 손에 죽구 마는 꼴을 보구야 말든지…… "
"……… "
한순간 방안이고 바깥이고 깜박 괴괴하였다. 숨결조차 덜 멎은 듯 괴괴하였다.
어떤 과단(果斷)을 내기에 진주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아니하였다. 다음 순간, 진주의 조용히 몸을 일으키는 비단결 스치는 소리로 침정은 흔들리었다.
몸을 일으킨 진주는 서너 걸음 웃목께로 물러나 박씨부인한테 사풋 절을 드린다. 그러고는 도로 일어서면서 "어머님, 갔다 오겠어요."
"온단 말은 가당치두 않은 소리다! 오늘루 너는 이 집 사람이 아니라 구 않 드냐? 남인 걸, 남이 무엇허러 이 집엘 오드란 말이냐?"
진주의 눈은 잠시 준호의 얼굴에 가 멎은 채 차마 떠나지 못한다. 눈을 감고 뜨지 아니하니, 눈으로나마 작별과 쉬이 다시 올 뜻을 전하지 못함이 못내 한스러웠다.
진주는 마침내 천천히 윗문치로 해 걸어나가 가마에 들고 만다. 저의 방 건넌방에 들러 버선 한짝 갈아 신을 생각도 아니하고 입고 있던 채 그대로…… 진주가 가마에 오르자, 마악 그때였다. 어떤 꼬마동이인지가 두어 놈 땔나무라도 하러 가던 길인지 문앞 행길로 지나가면서 노래를 한답시고 한 놈이 먼저 "하늘에는 별도 많다, 캐지나칭칭 나아네." 하는 것을 또 한 놈이
"남의 집 며누리 말도 많다, 캐지나칭칭 나아네." 하고 받아넘긴다.
7
어느 틈에 빠져나왔는지 삼월이가 대문 밖에 나와 섰다 교군 채장을 부여잡고 늘어져 울면서
"새 아씨 어떡허세유우!" 하고 발을 동동 구른다.
진주는 가뜩이나 창연한 심사를 돕게 하던 것이나 강잉하여 태연한 말로
"울지 마아! 내가 어디 영영 가드냐?"
"또 오세유 그럼?"
"아니 오구 어떡허느냐? 갔다 곧 올 테니, 나 없는 동안이라두 마나님 뫼 시구 새서방님 시중 잘 들어 드리구 해! 병환두 나시구 허셋으니, 응?"
"내애!"
"그리구 이따 저녁이구 낼 아침이구 조용한 틈 봐서 이 말씀 여쭤 드리구. 갔다 수히 도루 오겠읍니다구, 아무 걱정 허실라 마시구 몸 조섭 훨씬 허시다 기운 차리시거든 학교랑 글방이랑 부지런히 댕기시라구, 응?"
그다지 큰부자는 아니었을망정, 팔 패 교군에 호피 덮어 타고 견마성 소리 높이 울리면서 시집 온 진주였었다. 그런지 겨우 여섯 달 만에 그는 이 낡아 빠진 두패 교군에 실린 바 되어 친정으로 쫓기어가고 있었다. 친정에로의 초졸한 이 길이, 곧 험난코 기구한 고생길인 줄을 알 바가 없이…… 만일 알았다면 그는 이처럼 조용 자약히 가지는 못하였을 것이었다.
'좌우간 가는 것이 옳겠다. 어떻든 한번 쫓고라야 말자는 요량이신 듯 하니 더 거역치 말고 우선 갔다 성정이 갈앉기를 기다려 도로 오기로 하고 좌우간 가 드리는 것이 옳겠다.’ 아까 그 잠잠하던 순간, 진주는 이렇게 얼른얼른 결심을 하였었다. 나이 비록 어릴지라도 어려움에 임하여 끝까지는 당황치 아니하고 이만큼 침착한 사려 분별을 가질 수가 그는 있었다.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그래서 그 고패를 잘못 넘겼다면, 그는 가마에 올라 친정집으로 가는 대신 미구하여 우물에 몸을 던지거나 광의 대들보에 목을 매고 늘어져 저승길을 가고 말았 기가 십상이었을 것이다.
며느리를 쫓고 난 박씨부인은 막상 통쾌하거나 속이 시원한 무엇은 조 금도 없고 도무지 덤덤하였다.
참 별일도 다 많다고 우두커니 넋을 놓고 앉았다. 교군과 엇갈리어 들어온 약방 하인이
"약 가지구 왔사와요." 하여서야 정신이 들었다. 약방에서는 약을 지어놓고 기다리다 못해 자기네 하인 시켜 전위해 보낸 모양이었다.
"세 첩을 연거퍼 대려 잡숫도록 헙시사구요."
"오냐."
"이 약 쓰시면 첸 아주 다 내리실 테온깐 쓰시구 나서 동정 보아 기별 허시면, 기운 돋구실 약 또 지어 드리겠읍니다구요."
"오냐. 애썼다!"
박씨부인은 준호의 병이 체하였다는 것에 대하여 마음 가운데나마 아무런 미심이 이는 줄을 모르겠었다.
등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기척이 나서 박씨부인은 무심코 돌려다보았다. 준호가 비상을 탄 소위 그 사약 그릇을 집어다 마셔버리고는 마악 도로 엎드리던 참이었었다.
박씨부인은 놀라지도 않고 도리어 눈을 흘기면서
"지지리 못생긴 자식 같으니로고 !"
"어머니 !"
처량히 한번 부르고, 준호는 설움에 복받쳐 흑흑 느껴 운다.
6. 爾 靈 山(이령산)
1
爾靈山險豈攀難[이령산험기반난] 男子功名期克艱[남자공명기극간]
鐵血山覆山形改[철혈산복산형개] 萬人齊仰爾靈山[만인제앙이령산]
명치 삼십칠년 십이월 초엿샛날 이른아침, 여순공위군 사령관( 旅順攻圍軍司令官) 내목희전(乃木希典) 대장은 막료를 거느리고, 어제로서 완전히 점령한 바 된 이영삼고지(二○三高地)를 향하여 천천히 천천히 말을 나아갔다.
일장기 높다랗게 꽂힌 이영삼고지 마루턱을 때마침 동으로 솟아오르는 아침 해가 우렷이 비쳐내고 있다. 어제 낮까지도 천지를 뒤집던 그 요란 턴 대포 소리, 기관총·소총 소리, 일본군의 돌격 나팔 소리와 만세 소리, 적 군의 '우 ― 라 ―’ 지르는 고함 소리 모두가 꿈결 같고, 시방은 바스락 소리 하나 없이 죽은 듯 고요하다. 산산이 부서진 포대와 기관총 좌( 機銃座[ 기 총 좌]), 깨어진 탐조등, 성한 자리보다도 검게 피가 밴 자리가 더 많은지면에 여기저기 함부로 흩어진 포탄 조각과 빈 탄자, 적군의 소총과 꺾 여진 환도, 짓밟힌 군모, 해어진 장화짝, 그밖에 가지가지의 휴대품…… 눈 에드는 건 무서운 격전을 말하는 낭자였다.
어제의 돌격대의 일원으로 살아남아 눌러서 이 이영삼고지를 지키고 있는 장사의 한 사람이리라. 피 묻고 찢어진 군복인 채 총을 세워 잡고 파수를 선 한 명의 입초병(立哨兵)…… 해 떠오르는 동녘 하늘을 방심한 듯 우두커니 바라다보고 섰던 그는 얼굴이 문득 처연하여지면서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 언 볼을 적신다.
생각하면 울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을 것이었었다. 울지 않는다면 차라리 목석( 木石) 이었을 것이었었다.
이영삼고지! 이영삼고지! 참으로 한많은 이영삼고지였었다. 밉살스런 이 영 삼고지, 원수의 이영삼고지였었다. 높이라야 203미터밖에 아니 되고 하는 조그마한 산이었다. 물론 여순 요새는 이영삼고지가 명문이었다. 따라서 전략적으로는 대단히 중요한 지대임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산 그 자체는 역시 아무 보잘것없는 203미터 ― 667척 높이의 납작한 언덕일 따름이었다. 그런 푸 달진 언덕, 이영삼고지 하나를 쳐서 빼앗고 하기에 그 애를 쓰고 고생을 하였 기라니.
내목 대장이 거느린 여순공위군은 팔월부터 시작하여 십일월까지 넉달 동안에 제일회, 제이회 총공격에서 몇몇 요지를 빼앗아 얼마쯤 앞으로 나아가기는 하였으나 이영삼고지만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영삼고지가 그대로 성히있는 이상 여순은 언제까지고 든든하였다. 그러나 여순을 언제까지고 그대로 두어서는 큰 낭패가 생기는 판이었다.
노서아는 그동안 만주의 육군 병력을 많이 늘리었다. 또 해군으로는 발틱 함대가 불원간 동아 수역에 당도를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일본은 하루바삐 여순을 무찔러, 첫째 여순에 있는 적의 동양함대를 진멸시킴으로써 새로이 오는 발틱함대가 동양함대와 합치어 힘이 불기를 막는 일방 일본 해군으로 하여금 마음놓고 발틱함대를 맞아 싸우게 하여야만 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여순공위군은 적군에 비하여 병력이 부족한 대산(大山) 만주군 총사령관( 滿洲軍總司令官)을 가 도와야만 하였다. 만일 그러지 못하는 날이면 일본은 이 전쟁에서 도리어 패전을 하고 말는지도 모르는 형편이었다.
2
일로전쟁은 그렇듯 여순 하나를 쉬이 함락을 시키느냐 그대로 더 지탱을 하느냐 하는 데에 승패가 크게 달려 있었다. 그리고 여순을 함락을 시키느냐 지탱을 하느냐 하기는 이영삼고지를 빼앗아내느냐 빼앗기지 않느냐 하는데에 우선 달려 있었다. 그리하여 이영삼고지의 승패는 곧 일로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게 되는 것으로, 이를 치는 일본군이나 지키는 노서아군이나 있는 힘을 다하여 장렬한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손해만 헛되이 크고 볼 만한 전과는 없어 실패나 다름없는 제일회, 제 이회, 제삼회의 공격에 뒤이어 일본군의 제사회째의 공격을 단행하기는 십일월도 다 가는 이십칠일이었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 어두워오는 오후 여섯시. 대기하고 있던 공격대는 세길로 나누어 이영삼고지의 적진을 향하고 일제히 진격을 개시하였다.
적의 대항은 여전히 치열하였다. 대포와 기관총이 유축없이 불을 토 하였다. 탄환이 빗발치듯 한다고 이르거니와 이는 약간 빗발 따위가 아니었다. 차라리 크고 작은 탄환으로 막을 치는 형국이었다.
전신이 오로지 충과 용맹으로써 불에 달군 무쇠 같아진 일본군은 그와 같이 무서운 탄막을 헤치고 겁함없이 돌진을 하였다.
"돌격 앞으로옷!"
"우와아!"
우렁찬 함성과 더불어 한 약진(一躍進[일약진]).
착 엎디었다는 장검을 휘두르면서
"돌격 앞으로옷!" 하는 호령과 함께 날쌔게 뛰쳐나가는 대장(隊長)의 뒤를 쫓아 한꺼 번에
"우와 아!" 함성을 지르면서 또 한 약진.
약진하는 산병선에 큰 포탄이 와 떨어지면서 한 중동을 뭉떵 잘라놓는다.지뢰(地雷)가 터지면서 장졸의 몸뚱이를 셋씩 넷씩 공중으로 뿜어올린다. 탐조등의 푸른 광망이 지면을 커다랗게 비질하고 지나간다. 그 뒤로 기관총이 미친 듯 콩을 볶는다. 돌격군이 낙엽지듯 수없이 나가 떨어진다.
싸움은 어느덧 고전(苦戰)에 들었다. 한 발 전진에 손해는 몇곱절씩 불었다. 그러나 굴치 않고 돌진 또 돌진. 우군의 시체에 걸려 엎드러지면서 우군의 시체를 밟고 넘으면서 돌진, 맹렬히 돌진. 마침내 적진 바로 밑 오 미터 지점에까지 육박하여 올라갔다. 여기서 처참한 사투가 한동안 전개 되었 다. 그러나 필경은 그 이상 더 나아가지를 못하고 그대로 밤을 지냈다.
밝는 이십팔일 아침 공격군은 새로운 세를 얻어 다시금 돌격을 시작 하였다.
"돌격 앞으로옷!"
"우와아!"
쏟아지는 적탄에 턱턱 쓰러지는 앞엣대의 뒤를 이어 끊임없이 장렬한 돌격을 되풀이하였다. 하는 그 무서운 기운에 적진이 이윽고 동요하는 빛이 보였다. 때를 놓치지 않고 우익 부대가 "들이쳐랏!"
"만세!" 하고 고함치면서 산 위로 짓쳐 올라갔다. 그러나 다음 순간 적의 역습을 만나 도로 물러서지 아니치 못하였다.
물러섰다가 다시 짓쳐 올라갔다. 적은 적대로 또 역습을 하여왔다. 또 물러섰단 또 짓쳐 올라갔다. 또 역습을 하여왔다.
돌격, 역습…… 돌격, 역습…… 이 짓을 무수히 되풀이하다 밤 아홉시에야 일단 이를 점령하고 방어공사도 베풀고 하였다. 그러나 밤중 한시에는 적의 말못하게 맹렬한 역습으로 인하여 점령대는 전멸이 되고 이영삼고지는 다시금 적의 수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3
하루를 지나서 십일월 삼십일, 일본군은 진세를 새로이 하여가지고 오 전 열시부터 다시 이영삼고지를 치기 시작하였다.
오늘이야말로 기어이……라면서 공격군의 공격도 전일에 비하여 한결 맹렬한 것이 있었거니와 지키는 노서아군에서도 해군병이며 철도 엄호병을 다 풀어내어 병력을 넉넉히 하는 한편 대포, 기관총, 속사포, 소총, 지뢰, 수척 탄 따위로 화기의 있는 것을 다하여 공격군의 머리 위에 죽음의 불비를 내리 퍼부었다.
공격군은 골패작 쓰러지듯 연달아 쓰러졌다. 쓰러진 우군의 시체를 밟고 넘으면서 후속부대는 느꾸지 않고 뒤로 뒤로 연방 육탄의 돌진을 계속 하였다.
땅이 쪼개지는 듯 요란한 대포 소리, 콩 튀듯 하는 기관총과 소총 소리, 자욱이 잠긴 초연, 번뜩이는 검광, 지르는 아우성 소리. 그 사이를 열, 스물, 백 늘비하게 덮이는 시체, 골짝을 냇물 이루고 흐르는 피, 피, 피…… 공격군은 처절한 돌격을 거듭하여 마침내 산꼭대기의 서남쪽 한귀를 빼앗아내었다.
"만세!"
그러나 잠깐이었다. 산꼭대기의 한귀를 점령한 부대는 전부가 부상 병 이었다. 수효도 적었다. 새로운 우군의 증원부대가 오기 전에 적의 우세한 역습이 먼저 왔다.
총검과 폭탄을 양손에 갈라 쥐고 일개 대대의 큰 부대로
"우 ― 라 ―"함성을 지르면서 조수같이 역습하여 오는 적군을 맞아 얼마 아니 되는 상병을 가지고 점령부대는 그래도 용감히 싸웠다. 그러나 너무도 세가 기우는 싸움이요, 처음부터 승패가 번연한 싸움이었다. 일몰과 함께 산꼭대기에는 드디어 한 명의 일본군도 남지를 못하고 말았다.
밤 열시. 공격군은 어둔 밤을 도와 야습을 강행하여 격전 격전 끝에 또다시 산꼭대기의 한귀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매양 허사였다. 참호를 판다, 토랑을 쌓는다 하면서 역습에 대 한 방어 공사를 급급히 하고 있는 중 생밤중 한시만 하여서 적은 수비병 전부를 몰아 대역습을 하고 덤비었다. 점령부대는 악전 악전, 그러는 동안 태반이 죽고 꺾여진 총검, 부러진 군도에 피투성이가 되어 눈물을 뿌리면서 산을 내려오기는 전원의 겨우 십분지 일이 차지 못하였다.
날이 휘엿이 밝았다. 이영삼고지로부터 고 옆 적판산(赤坂山)에 걸치어 함부로 널려 있느니 온통 시체였다. 시체로 하마 산 전체를 덮은 것이나 아닌가 싶을 만큼 양편군의 시체는 공격로에 골짝에 산 위에 늘비하였다. 그 중에는 살아서 신음하는 부상병도 많았다.
이대로 그 귀중한 죽음을 한 시체들을 짓밟으면서 공격전을 계속한다는 것은 호국의 영령을 위하여 도리도 아니요 예의도 아니었다. 또 명예의 전상을 한 전우를 날라다 치료도 어서 바삐 하여야 하겠고.
공격군은 공격이 한시가 급한 사정이었건만 십이월 일일의 예정한 공격을 일단 중지하였다.
4
십이월 일일부터 사일까지 나흘 동안 사상자를 수용하기 위한 이 영 삼 고지와 적판산 방면의 일부 휴전(一部休戰)이 성립되었다.
일본 병정과 노서아 병정은 벙어리들이 만난 것처럼 서로 손짓 눈짓으로 이야기도 하고 실없은 농담도 하고 하면서(그것은 슬픈 중에도 미소로운 정경 이었다.) 제각기 우군의 시체와 부상병을 정중히 수용을 하였다.
나흘의 휴전기한은 지나고 십이월 오일 첫새벽부터 공격군의 포병 진( 砲兵陣)에서는 대포 소리가 은은히 울렸다.
공격군은 점령을 하느냐 전멸을 하고 마느냐 오늘로 아주 최후 결전을 하자는 참이었다. 그런 만큼 돌진하는 기세도 그동안에 비하여 훨씬 장렬 한 것이 있었다.
오전 아홉시. 포격이 뚝 그치면서 내리는 진격명령에 각 돌격대는 일제 히 산꼭대기를 향하고 돌진을 개시하였다.
적진으로부터는 기다렸던 듯 대소의 화기가 한꺼번에 불을 뿜는다. 기관총과 소총 탄환이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도 기어올라갈 빈틈을 주지 않고 좍좍 쏟아진다.
적군의 화기는 수효나 종류에 있어서도 그러하거니와 질에 있어서도 일본군의 것에 견주어 정녕 한걸음 앞선 점이 있었다. 이 화기의 우세에 대하여 일본군은 육탄돌격으로써 장기를 삼았다. 육탄돌격은 곧 대 화혼( 大和魂) 이었다. 이 싸움은 그리하여 대화혼과 화기와의 싸움이기도 하였다.
돌격, 돌격. 부라퀴같이 돌격을 하여나갔다. 제일돌격대가 다 쓰러져 버리면 제이돌격대가 그 뒤를 이어 돌격. 제이돌격대가 쓰러지면 제 삼 돌격대가 그 뒤를 이어 돌격. 돌격, 돌격, 끝없는 돌격의 연속이었다.
혼전 중에 이영삼고지 서남쪽 한귀에서 만세 소리가 일었다.
이어서 동북쪽에서도 우렁찬 만세.
남북으로 협공을 만난 산꼭대기의 적군은 이리 닫고 저리 닫고 허둥거리면서 연해 돌격군의 백인에 퍽퍽 엎드러지다 갈팡질팡 서태양구(西太洋溝) 쪽으로 퇴각을 하고 말았다.
"만세!"
"만세!"
산 위에는 적병의 그림자조차 볼 수가 없고 진동하느니 오직 일본군의 만세 소리였다. 이것으로써 이영삼고지는 완전히 점령이 되었던 것이요, 때인즉 명치 삼십칠년 십이월 오일 오후 두시 삼십분이었다.
이렇게 하여 점령을 한 이영삼고지였었다.
일단 빼앗았다는 도로 빼앗기고, 다시 빼앗았다는 또 도로 빼앗기고, 무수 히 그 짓을 되풀이한는 동안 우군의 시체는 산을 덮고 피 괴어 골짝을 흐르지 아니하였던고. 도로 빼앗길 적마다 절통하여 가슴을 치기 몇번이던고.
이에 완전히 점령을 하고 산 아래 엎드린 여순을 굽어볼 때에 감개 무량 치 아니 할 수 없을 것이었었다.
나는 요행 살아남아 여기에 서서 이 만족, 이 감개를 맛본다거니와 공격에 같이 참가하였다 산 아래에서 목숨을 버린 수많은 전우들은…… 생각하 매 눈물이 아니 흐를 수 없을 것이었었다.
별안간 요란한 말굽 소리에 입초병은 얼른 군복 소매로 눈물을 씻고 돌아선다. 여순공위군사령관 내목희전 대장이 막료를 거느리고 이윽고 이 산정에 올라온 것이었었다.
5
내목 사령관은 말에서 내려 이미 굴복한 바나 다름없는 발 아래의 여순을 언제까지 고 묵묵히 내려다보고 섰다.
그 지지리 애를 먹이던 여순은 인제 함락을 시킨 것이나 일반이었다. 그런 지라 여순공위군 사령관으로서의 내목희전 대장은 이에 발분의 목적을 이룬것이라고 하여도 무방하였다. 따라서 그는 마음을 턱 놓고 웬만큼 미우를 펴도 좋았다. 어쩌면 기쁨과 만족에 취할 수도 없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바야흐로 내목 사령관의 심정은 하나도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의심 정은 저 이름없는 한 명의 입초병의 방금 그 무량하여 하던 감개와 다를것이 없었다. 물론 그보다는 훨씬 더 넓고 심각함이 있을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어려서부터도 마음이 약하고 정이 연하여 잘 울었고, 그래서 아명을 나끼도( 泣人[ 읍인])라고까지 한 내목희전 대장이었다. 그는 이번의 이 영 삼 고지의 공격명령서를 쓰면서도 한 장 한 장 쓸 적마다 얼마나 울면서 썼는지 모른다. 명령서가 내리면 거기에 적힌 천 명이면 천 명의 장졸은 즉시 이 영 삼 고지의 공격에 참가하여 태반이 죽고 말 것을 번연히 알고 있는 그였기 때문 이었다.
내목희전 대장을 일찌기 남산(南山)의 접전에서 맏아들을 잃었다. 그리고 직접 이번에는 십일월 삼십일의 이영삼고지 공격에 하나 남은 둘째 아들을 마저 잃었다. 출전에 임하여 부인더러 삼부자(三父子)의 관을 준비하되 세 개의 관이 다 차기를 기다려 일시에 출상을 하라고까지 단속을 한 그 였던만큼 나라에 바친 두 아들의 죽음을 결코 애석하여 하던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도 남의 아버지에 유난히 다정다한한 사람이었다. 억제하고 현 어색을 아니 할 따름이지 가슴 속으로야 그것 또한 한 줄기 비감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 많은 그 씩씩하고 아까운 장정들을 이 손으로 죽이고!’
'무슨 얼굴로 폐하께 복명을 아뢰나!’
'돌아가 무슨 면목으로 국민을 대하며, 무슨 말로 그 유족들에게 사죄를 하나!’
마지막 이렇게까지 그는 사무치는 회심에 하마 눈물이 쏟아질 뻔하였다.
그러나 이 여순공략전의 성공이 일본제국이 국운을 내걸고 하는 단판 씨름, 일로전쟁을 승리로 인도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에 이영삼고지는 제풀 충혼탑( 忠魂塔) 일 것이며, 그 점령은 기쁘고 경사스러웠지 부질없이 희생을 슬퍼만 하고 있을 며리는 없는 것이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목 사령과도 여기서 연연히 눈물을 뿌리는 대신 얻은 것이
爾靈山險豈攀難[이령산험기반난] 男子功名期克艱[남자공명기극간]
鐵血山覆山形改[철혈산복산형개] 萬人齊仰爾靈山[만인제앙이령산] 의 한 귀였었다.
얻은 시를 수첩에 적어넣고 마악 그 자리를 돌아서려던 내목 사령관은 발끝에 차이는 것이 있어 무심코 지면을 내려다보았다. 이상스런 주머니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내목 사령관은 허리를 꾸부려 그것을 주워올리고 여러 막료들의 눈이 그리로 모였다.
주머니는 주머니라도 일본 병정들이 지니는 둥근 호부(護符:오마모리) 주머니가 아니요, 귀가 지고 목이 길고 한 눈에 선 주머니였다. 이것이 조선 사람이 흔히 허리에 차는 귀주머니인 줄은 내목 사령관도 막료들도 미처 몰랐다.
6
주머니는 옥색 관사 바탕에 자주실로 앞에서 수(壽), 뒤에다 복(福)을 각각 수놓고 남끈을 꿰고 하였다. 생김새가 이미 눈에 설고 이상한데다 색채 또한 그렇게 유색하여 얼른 보기에도 자못 이국정취적인 것이 있었다.
전물한 장사들의 유품이 하고 많이 여기저기 끼쳐져 있었고 그런 유품들에까지 나마 마음 범연치 못하는 다심 장군 내목 사령관이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하필 조그마한 주머니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는 것은, 그리고 한 사령관의 몸이 되어 손수 그것을 거두어 올리기까지 하였다는 것은 막상 주머니 그 자체가 가지는 이국적인 정취에 문득 주의가 끌렸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가 한문 글잔 것만 보아도 우리 군 장병의 유품은 분명한데…… "
내 목 사령관은 혼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주머니를 몇 번이고 앞뒤로 되 작거려 보아쌓는다. 속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나 부피는 없어도 묵직하였다.
마침내 끈을 늦추고 속엣것을 꺼내었다. 은으로 만든 직경 한치 닷푼 가량의 동그랗고 납작한 곽이었다. 시계 앞딱지처럼 된 뚜껑이 있어 열고 보니 사진 케스였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내목 사령관의 입에서
"아, 하야시(林中尉[림중위])가!" 하는 차탄이 가만히 흘러져 나왔다.
사진은 정복으로 차린 임경식(林敬植) 중위가 한 칠팔 세 가량 되어 보이는 소녀를 앞으로 안고 찍은 사진이었다.
"그럼 하야시도 필경 이번에 ?……"
내목 사령관은 좌우를 돌아보고 그렇게 묻다 말끝을 흐린다.
이영삼고지의 최후 공격에 좌익 부대를 지휘한 길전 소장(吉田小將)이 앞으로 나서며
"네. 이번에 뛰어난 공롤 세우고 장렬히 전사를 했읍니다." 하고 대답한다.
길전 소장의 설명을 들으면, 임중위는 좌익 부대의 제삼돌격대를 지휘 하였다. 물론 결사대였고 누누이 지원을 한 노릇이었었다.
십이월 오일 오전 아홉시.
서남쪽으로 치는 우익 부대에 호응하여 동북쪽으로 좇아 공격을 개시한 좌익 부대의 제일, 제이의 돌격대는 적의 아귀 같은 사격으로 돌격을 하자 마자 연달아 흉벽(胸壁) 아래를 시체와 상병으로 덮고 거지반 전멸이 되었다. 뒤를 이어 임중위가 장검을 휘두르고 제삼돌격대를 힐타하면서 흉벽을 향 하여 맹렬한 돌진을 하였다. 돌격병은 하나 쓰러지고 둘 쓰러지고 솎아 내 듯 연방 쓰러졌다. 임중위도 왼편 팔에 일탄을 맞았다. 그러나 꿈쩍도 않고 앞으로 앞으로 부하는 격려하면서 돌진을 계속하였다. 드디어 비교적 성한 세 로써 흉벽 아래까지 이르렀다. 왁 한번만 더 뛰쳐오르면 되는 판이었다. 흉벽 위의 적병은 기관총, 소총, 수척탄은 물론이요 큰 돌멩이까지 굴려 떨어뜨리면서 완강히 버티었다.
마지막 한번만 더 뛰쳐올라가면 되는 판인데, 하도 사나운 적의 저항에 이상 더는 한 걸음도 움찟을 할 수가 없었다.
마침 이때 반대편인 서남쪽으로부터 우군의 만세 소리가 요란히 일었다. 서남쪽 한귀를 우익 부대의 돌격대가 점령을 한 것이었었다.
임중위는 때를 놓치지 않고
"들이쳐랏!" 외치면서 몸을 날려 흉벽 위로 뛰어 올라갔다.
7
적병이 집 쑤신 벌떼처럼 와 하고 임중위에게로 덤벼들었다. 임중위는 드는 일본도를 휘둘러 덤비는 적병을 무우쪽 베듯 베어넘겼다. 만세를 부르면서 대장(隊長)을 뒤따라 올라오는 돌격병이 큰 적병들을 총창으로 퍽퍽 찔러 젖힌다. 폭탄을 던진다.
피와 아우성 가운데 승패 모를 백병전이 잠시 동안 계속되었다. 그럴 즈음에 반대편인 서남쪽으로부터 우군의 함성이 한결 높이 일더니 그쪽의 적군이 이쪽을 향하고 어지러이 퇴각을 시작하였다. 그것이 서남쪽의 우군에게는 당장은 성공이었으나 우선 승패의 분간이 서지 못한 채 한참 백병 전을 하는 중에 있는 이편 ― 동북쪽 ― 임중위의 제삼돌격대에게는 실로 아슬아슬한 살판이었다. 그 서남쪽으로부터 퇴각하여 온 적군이 그대로 만일 이편 ― 동북쪽의 적군과 합세가 된다고 하면, 임중위의 제삼돌격대는 이 백병 전에서 승리는 고사요 전멸을 당하고 말기가 십상이었다. 그럴뿐더러 적은 이 동북쪽에다 발붙임을 하여가지고 일단 빼앗긴 서남쪽의 일본군에게 역습을 하려 들 것이니, 또한 불리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었다. 따라서 오늘의 이 영 삼고지 공격도 결국 실패를 할 위험성이 다분히 있다고 할 수가 없지 아니하였다.
이런 정세를 민첩히 판단하여낸 임중위는 천하 없어도 이쪽 ― 동북쪽 의적을 저쪽에서 퇴각하여 오는 적과 합세되기 전에 무찔러버리려고 있는 껏 용맹을 떨치어 일변 부하를 독려하면서 그야말로 좌충우돌 부라퀴 같이 납 뛰었다.
임중위 이하 제삼돌격대의 전원이 그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어가지고 악 악들 이치고 찌르고 하는 형상은 적 노서아 병정들에게는 도저히 인간이라기보다도 지옥으로부터 뛰쳐나온 악마였을 것이었었다.
과연 적군은 몸서리를 치면서 한 놈 두 놈 물씸물씸 뒷걸음을 치는 놈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마침 함성이 일면서 제사돌격대가, 다시 제 오 돌격대가 뒤를 이어 돌격해 올라닥치었다. 한번 동요가 인 적진은 새로운 돌격을 만나자 그만 맥을 잃고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퇴각이었다.
공격부대는 늦추지 않고 그 뒤를 급히 쫓으면서 쳤다. 그동안 여러 번 쓰라린 경험을 치렀거니와 산 위의 적군을 완전히 소탕하여 역습하여 올 끄 터리를 남겨주지 말자는 것이었었다. 숨도 쉬지 못하게시리 다급히 뒤를 쫓으면서 쳤다.
그때였다. 여전히 맨 선두에 서서 달아나는 적을 쫓고 있던 임중위가 별안간 앗 소리를 지르면서 왼편 손으로 젖가슴을 누르고 앞으로 엎드러졌다. 전면으로부터 날아온 적의 맹탄이 심장을 정통으로 꿰뚫었다.
저쪽 ― 서남쪽에서 쫓겨오던 적군과, 이쪽 ― 동북쪽에서 쫓겨가던 적군은 서로 바라고 달리던 진지가 이미 점령된 것을 알자 중간에서 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리다 하릴없이 총퇴각을 하는 것이 서 태양 구( 西太洋溝) 방면 이었다.
이리하여 이영삼 고지의 산성에는 적군이란 시체뿐이요, 완전히 일본군의 수중에 들어왔고 우렁찬 만세 소리에 일장기가 펄펄 날리었던 것이었었다.
8
그 전날 밤, 길전 소장은 굳이 그렇게 결사대의 돌격대장을 자원하는 임 중위를 앞으로 불러다 세우고 타일렀다.
"너는 처지가 좀 다르다고 할 수 있는 사람야. 그 말 알아듣겠지?"
"네."
"그러니 결사대의 지휘만은 단념하는 것이 어떤고?"
"싫습니다!"
임중위의 말씨 하며 음성은 무엄스럽달 정도로 괄한 대답이었다.
길전 소장은 고개를 꺄웃하면서 혼잣말로
"모를 일이야!……"
그러다 다시 임 중위더러
"물론, 너의 그 싸움에 다다라 죽음을 두려워 않고 남보다 앞서 나아가고자 하는 한 무인(武人)으로서의 용맹을 그만했으면 모르는 바가 아니로다! 심히 가상해!…… 그러나…… "
"각하!"
"응?"
"그것은 필부의 용맹이올시다! 단지 죽음을 두려워 않는 남보다 앞서 나아가고자 하는 그런 용맹은 필부의 용맹이올시다!"
"음!"
"소관은 그런 용맹으로써가 아니올시다!"
"음, 음!……그럼?"
"용맹은 충의(忠義)로부터 우러나는 용맹이라야 참되고 바른 용맹 이 올 시다!"
"옳거니!……그런데?"
"그런데, 너는 일본인이 아닌 사람으로 일본제국에 대한 충의가 우러날바가 없을 터가 아니냐, 이런 의미시겠지요?"
"그래서?"
"아까 먼첨에 모를 일이라고 하신 말씀도 역시 그 말씀이신 줄 압니다!"
"정녕!"
"각하?"
"응?"
"소관은, 사람은 조선 사람이올시다. 그러나 소관의 마음의 나라는 일본이 올시다."
"!……"
길전 소장은 일어서서 임중위의 앞으로 나아가 어깨에 손을 얹고 이윽고 그 얼굴을 들여다본다.
임중위도 마주 소장의 눈을 본다.
서로 보고 눈과 눈에는 이슬이 어리었다.
"하야시."
"네."
"용서해 다고. 내 잠깐 어두웠노라. 깜박 몰라보았노라."
"노상, 무리 아니신 노릇입니다."
"가, 마음껏 싸워 잘 죽어다고?"
"고맙습니다……그럼 이걸로 하직이올시다."
임중위는 한 걸음 물러나 거수경례를 올리고 돌아서서 활발히 걸어나간다.
"하야시?"
소장의 부름에 임중위는 뒤돌아섰다.
"네?"
"부탁은 없는가?"
"없읍니다. 이 사실 그것이 후일 장차 우리 조선 동포에게 가르쳐 주는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음……가족은?"
"편모(偏母)와 여섯 살박이의 어미 없는 딸년 하나가 있읍니다."
9
"기특한 일이로곤! 기특한 일이로곤!"
길전 소장의 설명을 다 듣고 난 내목 사령관은 절절히 그러면서 몇번이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다시 "이상한 인연이고!……나와는 이상한 인연인 것이……그 사람이 우리 일본에 오기는 아주 어렸을 적인데…… "하고 자기의 알고 있는 임중위의 내력과 및 자기와의 인연에 대한 것을 곰곰 이야기를 낸다. 즉 임중위의 선친은 조선의 유신운동(維新運動) 단체의 일원으로 명치 십칠년, 저 세상을 들렌 우정국 사건(郵征局事件)의 갑신정변에 실패를 하고 김옥균 들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을 온 사람이었다.
망명객 임씨는 일본 조야의 두터운 비호를 받으면서 한 삼 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하는 동안 명치유신 이후 일본의 새롭고도 기운찬 여러 가지 발전 가운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신식군제(新式軍制)와 그 교육에 대하여 깊이 느끼는 바가 있어 자기의 어린 외아들 임경식을 일본으로 데려다 어학이며 그밖에 간단한 기초학문을 가르쳐 가지고 명치 이십년 때 마침 새로이 생기는 육군 유년 학교에 들여보냈다.
임경식은 타고난 자질이 자못 영민하고 의지와 신체도 매우 건실하여 그 부친의 기대에 어그러짐이 없이 순조로이 육군사관학교까지를 마치고, 스물두 살 적에 소위에 배명이 되었다. 그것이 바로 명치 이십칠년. 일청전쟁 이인 해였다.
임소위는 대산제이군(大山第二軍)의 휘하에 든 혼성 제 일 여단( 混成第一旅團)에 배속되어 주장 요동 각지(遼東各地)의 작전에 전전하였다. 이 혼성 제 일 여단장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곧 내목희전 소장이었다.
내목 여단장은 유명한 개평작전(蓋平作戰) 때까지에는 배하에 임 경식 소위라는 한 특수한 부하가 있는 줄은 전혀 몰랐었다. 또 임경식 소위 자신도 그동안까지는 이렇다 할 전공을 세울 기회를…… 따라서 그의 특수한 존재인 특수성이 상관의 주의를 끌 만한 기회를 가지지 못하였다.
내목 여단이 개평을 치기는 명치 이십팔년 정월 초열흘날 첫새벽부터 였는데, 이 개평의 청병(淸兵)은 뜻밖에 진지와 저항이 완강하여 얼어붙은 개평 하를 사이에 두고 맹렬한 사격을 퍼붓는 바람에 일본군은 용이히 돌진을 할수가 없었다. 그것을 본 내목 소장은 여단장 자신이 별안간 진두로 말을 몰고 나오더니 전군을 질타하면서 그대로 맨 앞장을 서서 얼음 위를 적진을 향하여 돌진을 하였다. 놀란 장졸들은 불끈 용맹이 솟아 일제히 함성을 지르면서 미끄러운 얼음빙판을 달리며 구르며 적진으로 몰쳐들어갔다. 이 때에 말 탄 여단장을 빼치고 제일착으로 적진에 뛰쳐든 한 사람의 장교가 바로 임 경식 소위였었다.
그런 임경식 소위에 내목 여단장이었고, 십 년이 지난 오늘 이 자리에 유품만 남고서 가고 없는 임중위에 내목 사령관이요 하였다.
내목 사령관은 임중위 부녀의 사진을 다시금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혼잣말로
"딸아인가 보다!……한번 가보았으면 좋겠다만서도! 홀로 있다는 노자당이랑…… "
그러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좌우더러
"유족한테 군에서 공식으로 다른 유품은 전달을 하겠지만 이 주머니와 사진은 내가 글발이라도 좀 적어서 직접 보내고자 하니……"
7. 새 出發[출발]
1
그 임경식 중위의, 오늘이 열한번째 돌아오는 제사날이었다.
함박 같은 눈이 아침부터 시작하여 밤이 들도록 개지 아니하고 차분히 내리고 있는 것도 다른 해의 이날과 다름이 없었다.
동서로 한 방씩이 있고 한가운데에 대청마루가 있고 한 후원 별당의 그 대청 마루가 임중위 위패를 모신 영실(靈室)이었다. 그리고 동편방이 진주의 조모 송심당노인(松心堂老人)이 안팎 가정(家政) 전체를 양손(養孫) 부처에게 전장시키던 날, 안채의 큰방으로부터 물러와 조용히 거처하고 있는 방이요, 서편방이 진주의 방이었다. 진주는 출가하던 날까지 처녀적을 이 방에서 지냈고, 혼인 때의 신방(神房)이 또한 이 방이었으며, 지나간 추석 시집으로부터 쫓겨와서도 도로 이 방에서 거처를 하고 있는 참이요 하였다.
영실은 제수의 진설이 마악 끝나고 팔서리 같은 한쌍 육촛불만 휘황한 아래 아무도 없고 일단 비어 있었다.
뒤로 병풍을 둘러친 정면 중앙에 영교와 및 일본제국 육군 중위로 정장한 임 중위의 전지판 반신초상이 나란히 놓여 있다. 그 좌우로는 긴 탁자 위에 훈장이며 중요한 유품을 넣은 대소 여러 개의 상자와 특히 이 영 삼( 二○三) 고지의 돌격전에 쓴 군도를 비롯하여 그때의 군복, 군모, 장화 등의 유품 이 다른 유품들과 함께 가지런히 놓여 있다. 또 좌우의 벽에는 액에 넣은 가지가지 훈공(勳功)의 수장이며, 소위 적과 중위 적과 이영삼고지의 전공으로 사후 승차한 대위 적과의 각각 임명장이 걸리어 있고.
이것이 영실의 평일의 모양이요, 오늘 밤은 제사라 영교와 초상 앞으로 큰 제상에 정갈히 차린 풍부한 제수가 법도에 좇아 진설이 되어 있었다.
어지러운 상념에 잠겨 때 가는 줄을 잊고 앉았던 진주는 저편 방에서 할머니의 기침하는 소리에 비로소 생각이 나 조용히 영실로 들어갔다.
불을 환히 밝히고 제수를 차려놓고 한 제향날 밤의 영실은 정녕 아버지의 혼령이 그 다정스런 미소를 하시면서 선연히 와 앉아 계시다 시방도 귀에쟁한 음성으로 "진주야?" 하고 상냥히 부르시는 것만 같고, 진주는 마주
"아버지이?" 하고 어렸을 적처럼 어린양스럽게 불러지는 것만 같고 하여 진주에게는 변함 없이 반가움이 솟는 제향날 밤의 영실이었다.
진주는 한참은 서서 제상 너머로 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다보면서 문득 황홀한 얼굴이다가 이윽고 천천히 나아가 여러 유품이 놓인 중에서 조그마한 상자 하나를 받들 듯 집어들고 돌아선다.
이 상자야말로 그날에 여순공위군 사령관 내목 대장이 바쁘고 소란한 진중의 몸이면서도 친필로써 한 장 간찰을 정성껏 꾸미어 그 사진 든 주머니와 함께 싸고 싸고 하여 임중위의 모친 송심당노인에게로 부쳐 보낸 것 이었었다.
진주는 열두어 살 무렵부터 시작하여 해마다 아버지의 제향날 밤이면 이상자를 할머니한테로 가지고 가 조손이 서로가람 내목 장군의 편지도 읽고 중위의 생존시의 이야기도 하고 하면서 한밤을 단출히 깊이곤 하던 것이 연년이 빠치지 아니하는 행사로 되어 있었다.
2
"고 임경식 중위의 자당 전에 삼가 한 장 글월을 올리나이다. 소생은 임 중위를 거느리던 내목희전이라는 일본군의 장수이온바, 귀댁의 소중한 자제 를 데리고 만리 전장에 나왔다 소생의 불민으로 말미암아 애석히 전사를 하게 하였음에 대하여 죄를 무엇으로써 사할 길이 없어하는 바이 로소이다…… "
순한문투의 문사가 아주 평이하고 또박또박이 쓴 글씨로 내목 장군의 편지는 이렇게 허두를 내었었다. 그 공손하고 겸사스럽기라니, 사령관 내 목 희전 장군이 전몰한 한낱 중위쯤의 유족 노모에게 하는 편지라기보다는 연하 사람이 향로(鄕老)에게 올리는 편지였었다. 그래서 송심당노인이며, 처음에는 들 내목희전이라는 이가 임중위보다 그저 조금 웃길 가는 사람이거니 하였을 따름이었었다. 그러나 나중에야 그가 천하에 이름이 높은 내목 장군인 것을 알고는 그만 송구하고 감격하여 어쩔 줄을 몰랐었다. 인하여 편지를 가보( 家寶) 로 위하였고 임씨 문중은 달리 영광 한 가지를 더하였었다.
내목 장군의 편지는 그런 허두로 시작하여 임중위의 이영삼고지의 작전에서 용맹히 싸운 경과와 그 최후의 모양과 그의 남긴 바 전공이 그가 결사 대의 대장이 됨에 있어서 "나는 사람은 조선 사람이라도 마음의 나라는 일본이요, 그러므로 일본을 위하여 충의를 다하되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노라 "고 하였다는 말과 더불어 소상히 소상히 기록되었었다. 또 내목 장군 자기와는 일찌기 십 년 전 일청전쟁 때부터 맺어진 인연으로 개평 작전( 蓋平作戰) 때에도 여사여사히 용전을 하였고, 그때부터 자기는 끔찍 그를 사랑 하였 노라는 말도 적혀 있었다. 그리고 노인이 외로이 얼마나 슬퍼하고 계시느냐고, 전쟁이 끝나면 한번 가 노인이랑 아기랑 부디 만나도 뵈고 위로도 하여 드리고 하고 싶으나 나라에 매인 몸이 되어서 먼 길이 기약키가 어렵노라고 하였고, 마지막으로는 임중위의 지대한 전공에 대하여서는 일본 조정으로부터 장차 후한 치하가 있으려니와 만일 가세가 넉넉치 못하다든지 하여, 그중에도 아기의 교육에 군색됨이 있게 되면 그것은 자기가 사사로이 기쁘게 담당을 하고자 하니, 혹시 그런 경우거들랑 조금도 어려워하지 말고기 별을 하여 주기를 바라노라고 신신부탁이 있었다.
이 내목 장군의 편지를 소중히 간직하여 두고 일 년 한 차례의 제 향 날이면꺼내어 읽노라면 송심당노인이나 어린 진주나 새로운 위로와 감격을 저절로 느끼곤 하는 것이 있었다. 오 대째 내려온다는 열두폭 낡은 수병풍을 뒤로 둘러 친 아랫목 보료 위에 앉아 송심당노인은 흰보 덮은 빈 자개소반을 앞에다 내어놓고 기다리듯 하고 있었다.
진주는 유품상자를 들고 들어와 조모 앞에 있는 소반에다 조용히 가져다놓고는 그 옆에 가 앉는다.
"방이 춥지나 않드냐?"
"아뇨, 할머니…… "
정치 운동으로 불고가사하다 망명을 갔다 마침내 객사를 한 남편을 섬기었고, 외아들은 군적에 몸을 두고 두 번이나 출전을 하였다 필경 전사를 하였고, 금지옥엽하던 손녀 진주가 시집살이를 쫓겨오고…… 갖추갖추 풍상 많은 송심당노인이었다. 예순세 살의 시방 그 눈같이 흰 머리는 이미 십이 년 전의 오늘 하루에 그렇게 희어버린 것이었었다.
오십 평생을 겪어온 갖은 풍상은 정히 심각하였었다. 그러나 그러고도 내내 한 모양으로 가시지 않는 것은 음성과 얼굴에 드러나는 대범스럼과 더불어 지극한 인자스럼이었다.
3
"너는 이걸 그리 질겨 아니하드라만서두 감기 기운이 있을 때 이게 퍽 좋으니라. 후울훌 좀 마시렴?"
진주가 마악 들어와 앉았자 뒤미처 올케가 식혜를 맞상해서 들여왔었다. 생강을 많이 넣고 통고추를 띄워 맵고 뜨거운 식혜를 마주 앉아 먹으면서 할머니가 진주더러 그런 권이었었다.
"아범이 잘 먹었잖아요, 할머니?"
"잘 먹구말구! 끔찍이 질겨두 하드니!……"
노인은 문득 수저를 멈추고 망연히 잠시 앉았다 이윽고 푸뜩푸뜩
"그날두 밤에 이걸 먹으면서……그날이 바루 정월 스무하룻날이었드니라.갑진(甲辰) ․ 을사(乙巳), 갑진년 정월 스무하룻날…… 그 전해 가을에 일본서 서울루 가 있다 일아접전(日露戰爭[일로전쟁])이 나게 됐다구 일본 으루 도루 가는 길이라면서 와서!…… 쯧쯧 마주막일 줄야 알았나!……꼬옥 믿구 기대 렸든 것이 고만!……"
진주는 그때의 일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일곱 살 적이었으니, 전부가 순전한 기억인지, 혹은 기억은 일부분인데다 할머니한테서 이야기를 여러 번 듣고 듣고 한 것이 합치어 제풀에 전부가 기억인 것처럼 되어진 것인지 그는 모르나, 아뭏든 판에 박아둔 듯이 그때의 일을 소상히 다 알고 있었다.
그날 아침 새때가 조금 지나 임중위는 집에 당도하였었다. 문앞 행길로 말 요령 소리가 들려서 그저 대문간으로 나가보았더니 군복 입고 군도 차고 한 아버지가 검정 양복 입고 가죽으로 만든 궤짝 같은 것을 어깨에 멘 또 한 사람과 말에서 내리고 있었다. 이 사람이 나중에 그 궤짝에서 세 다리 진것을 꺼내 세우고 깜장 보자기를 뒤쓰고 사진을 찍어 주었었다. 사진은 할 머니와 아버지와 진주와 셋이 한꺼번에 한 장을 찍고 할머니와 진주가 함께 찍고 아버지가 진주를 안고 앉아서 찍고 그러고 나서 각각 독사진을 찍고하였다. 진주는 할아버지 사진이랑 아버지 사진이랑 집에 있는 것을 늘 보기는 하였어도 제가 사진을 찍기는 처음이라 이상히 무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였었다.
진주는 말에서 내리는 아버지 한 테로
"아버지이?" 하고 부르면서 달려나갔다.
"진주야?"
아버지는 마주 부르고 두 팔을 벌려 불끈 안아올리면서 또 한번
"진주야?"
"아버지?"
"오냐! …… 할머니 집에 기시지?"
"내. 안방에 기세요……아버지?"
"오냐?"
"아버지 오셌수?"
"오냐 왔다. 할머니랑 진주랑 보구퍼서 왔다!"
연방 이러면서 안마당으로 들어서는데
"우리 알뜰한 손님이 오시나보다!" 하시면서 할머니가 마루로 나서고 하였다. 할머니는 아들이 손님 처럼밖에는 집에를 오지 않는대서 언제고 그런 말로 아들을 맞이하던 것이었었다.
4
어린 진주는 졸린 것을 억지로 억지로 참으면서 할머니와 앉아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아버지는 집에 당도하던 길로 낮에는 할아버지의 산소에 성묘를 가느라고, 또 석양때부터는 동헌(東軒)에서 원이 베풀고 청하는 잔치에 나아가느라고 밤이 이윽해서야 돌아와 그제서야 비로소 모자(母子)부터 부녀( 父女) 세 가권이 단출한 한때를 가질 수가 있었다.
식혜는 역시 생강을 많이 넣고 통고추를 띄우고 하여 할머니가 손수 정성들여 담근 것이었었다.
그런 식혜를 진주를 무릎에 안고 앉아 후울훌 맛있게 몇 번 마시고 나더니
"참, 진주야?" 하고 불렀다.
"내?"
"너 주머니 하나 만든 것 있어?"
"주머니요?"
[상기 저작물은 저작권의 소멸 등을 이유로 저작권 보호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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