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리입니다
나는 파리다. 이름은 아직 없다 ─ 이렇게 쓰기 시작하고 보니 나는 고양 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 로부터 그의 인기소설의 허두를 잡았던 하목수 석(夏目漱石)의 「나는 고양이다」가 생각난다. 그 뒤에 그 고양이에게는 필시 귀엽고 아름다운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영구히 이름이란 걸 가져볼 수 없을 게다. 아니 우리 족속에서 이름을 가져 본 행복된 조상 이 있을 게냐. 생각해 볼 수 없는 막막한 일이다. 우리에겐 종류를 구별하 기 위한 ‘장르’적 명칭이라고도 할 만한 것이 있을 따름이다. 쇠파리, 왕 파리, 쉬파리, 청파리, 똥파리, 소파리 등.
그런데 나는 내 자신에 대하여 한 가지 자랑하게 아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나의 출생지다. 사람 치고는 제가 지상에 나온 고장을 모르는 이도 없으련 만 다른 동물 중에는 그것이 대단히 많다. 사람들이 항용 주고받고 하는 말 에 개구리가 올챙이 때를 잊었다는 말이 있다. 이것을 자기 출생이나 성장 에 대한 기억을 상실했거나 망각해 버린 게니 별로 출생지를 모르는 놈팽이 라고 말해 버릴 수는 없지만 하필 다른 동물 다 두고 이놈의 이름을 빌렸 다. 이러한 속담말을 만든 걸 보면 개구리 한 놈의 건망증을 가히 추상(推 想)할만하다. 이눔이 오월 단오 전후해서 논또랑이나 수채구멍이나 사창못 에서 재갈거리고 독창인지 합창인지 모르게 떠들어낼 때엔 아닌게 아니라 올챙이때에 모양 숭한 꼬리를 달고 개천 구덩이에서 밀리어 다니던 때를 잊 었거나 머구리알 시대를 못알아차리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놈에게 출생지 를 묻는다면 도리질이나 일쑤 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광산쟁이 모양으로 대 포나 꽝꽝할 게다. 시골 논또랑에서 나고도 서울 광회루든가 덕수궁의 연못 이든가 창경원 춘당지 연뿌리 밑에서 부처님처럼 솟아나왔노라고 말하기가 십상팔구일 게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다. 정직하고도 기억력이 확실하다. 사람들도 제에 미 애비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출산할 때 일을 알 리가 만무하다. 부모된 자 가 공력을 드려 길러가며 똥오줌 받아내고 추울세라 더울세라 그야말로 손 끝으로 길러낸 자식놈들이 스물 안짝만 넘어서면 저 혼자 자란 것처럼 부모 의 은덕을 잊고 마지막에는 칼부림까지 하는 눔이 수두룩한 세상이니 또 다 시 말할 게 뭐냐.
나는 좀 크게 말하면 동해 조선 평안남도 성천군 성천면 하부리 ─ 그런데 딱 질색할 노릇은 아직까지 번지를 모른다. 이게 누구네 주택이라면 문패를 달아맨 곳으로 윙하니 날아가 보면 그만이지만 인가에서 좀 떨어져 있는 밭 가운데서 났다. 밭 가운데라니 무슨 채미밭이나 보리밭에서 생겨난 것이 아 니라 뽕밭이고 감자밭이고 그 새에 있는 도양지 우리 밑에는 번지가 없다.
소유자의 서명이 붙어 있을 뿐이다. 결국 내가 난 곳의 번지를 알려면 밭 소유자를 알아가지고 그 집 밭 증명 서류고로 들어가야 한다. 하두 애쓴 결 과 소유자는 알았다. 포목상하는 박아무개네 밭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그 집에 숨어 들어가서 고초를 당하면서 금고 옆을 파수보고 있노라니 종시 그 밭증명은 보이지 않는다. 어이된 일일까 했더니 돈을 차용하느라고 2번 저 당까지 내서 어느 지주의 금고에 가 있다 한다. 나는 장거리 비상을 좋아하 지 않으므로 십리 만한 곳에까지 갈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아직 번지를 모 르고 있다. 그 대신 도야지 우리 임자를 잘 안다. 전기 박포목상에게 일년 에 2원씩 세를 물고 있는데 도야지 우리 문 있는 쪽에 널조각으로 ‘소유자 최가매(崔哥妹)’라고 먹으로 써서 붙여 있다. 이게 어이된 놈의 이름이 이 모양이냐고 조사해보니 최시 동네 첩으로 늙은 퇴기의 호적상 이름이었다.
알고보니 딴은 그럴 듯도 하나 이 고을 사람으로 그의 이름이 ‘가매’인 것을 아는 이는 하나도 없을 게다. 면대해서 대접해 하는 말엔 ‘최씨 동네 할머니’라 부르고 왼곳에선 ‘최씨 동네 노친네’ 또는 ‘방송국’이라 부 른다. 남의 흉을 잘 보고 말을 잘 옮기고 음해 잘하고 소식 잘 전한다고 그 집에 와서 순두부나 비지해서 술 잘 사먹는 젊은 주정뱅이 관청나라들이 붙 여준 이름이다.
구데기를 거쳐서 파리로 되어나오는 경로는 어느 동물학자에게 들으면 잘 알겠다. 또는 이즈음 도 위생과에서 시골마다 순회하면서 소학 운동장 같은 데서 영사하는 활동사진을 보면은 모든 것이 명료해진다. 과대망상증에 걸 린 사대주의자들이 나를 무슨 강도나 호랑이나처럼 취급하여 내가 무심결에 하는 행동을 하나하나 확대해서 어른거려서 머리 아파 볼 수 없는 위생영화 를 만들어내고 서푼짜리 화공들을 시켜서 포스터를 그리고 게시판 같은 데 ‘무서운 전염병의 매개자 파리를 박멸하라’고 무시무시한 글을 써붙이곤 한다. 질색할 노릇이다. 내가 무슨 인간을 원수딴 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사람의 원수는 사람들 자신이다. 하필 뚱딴지나 같은 딴 족속이 무슨 용어 로 사람의 원수가 된단 말이야. 사람놈들의 법률에도 의식치 않고 적그러논 실수는 과실이라 하여 범죄를 구성치 못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죄가 아주 경 감된다. 하물며 딴 족속이 자기의 생존을 위하여 하는 행동인 이상에는 내 가 원수가 될 게 뭐냐는 말이다. 대체 만물의 영장이니 고급한 문화인이니 하는 사람놈들이 우리를 원수 취급한다는 것이 벌써 자기 폄하(貶下)도 심 한 일이다. 한편으로 ‘저런 파리 같이 더러운 놈’이니 ‘X에 치운 파리 같은 놈’이니 하는 등으로 가장 더러운 물건 그 중에도 제일 하찮은 초개 보다도 더 가치 없는 것으로 우리를 모욕하고 깔보고 하면서 그런 것을 자 기와 대등한 지위에 올려놓고 적이니 원수니가 어이된 일이냐 말이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기울여서 전기를 일으키는 기계를 서양 누구 처럼 발명해 낸다든가 하다 못해 우리 조선의 발명가들처럼 셀룰로이드 동 정이라도 생각해 놓으면 인류의 생활도 향상될 것이요 또 장사도 잘 될 것 인데 무얼 못해 파리 죽이는 약이나 기구를 연구해내고 있다는 말인가. 처 음에는 파리채라는 걸로 딱 딱 아이 작난하듯 우리들을 후려갈겨서 우리를 잡아죽이려 들더니 그 다음은 파리통이라는 게 생겼다. 유리로 만든 통이 다. 밥알이나 뼉다구 부스러기가 뿜는 향내를 따라서 올라가 본 즉슨 다시 나올 수 없는 통 안이다. 쭉 돌려 물을 두고 미끄러지면 익사하게 마련이 다. 우리 조상이 이놈에게 홀려서 기억(幾億)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속 는 것도 한두 번이지 두고두고는 그렇게 용이하게 안 된다. 그 다음은 파리 약으로 잡자는 겐데 먼저 생겨난 것이 껍젝이다. 부뚜막이나 솟소동 위나 음식물 덮어놓은 헝겊 위에나 어쨌건 우리들이 잘 출입하는 곳에 이 놈을 갖다 놓는다. 알지 못하고 기름이 번질번질 하는 데 홀려, 윙하니 날라갔다 가는 마지막이다. 다리고 날개고 도무지 딱 붙어서 뗄에야 뗄 수가 없다.
애쓰면 애쓸수록 점점 더 지독하게 붙어버리고 만다. 우리들이 안타까와하 는 것을 보고 무얼 달게 먹는 줄 알고 날라오던가? 구조해주려고 찾아왔던 친구들도 두 말 없이 붙어버린다. 이 부근에는 아예 활주(滑走)는 샘스러 저공비행도 해서는 안 된다. 군자는 모름지기 가까이 하지 말일이다.
이즈음 몇 년 간 생겨난 것으로 십수 가지의 물약이 있다. 사실 이눔은 질 색이다. 우리 동리에서는 국장이나 군수급은 못되어도 그래도 제법 좌수 소 리를 들으며 지혜롭기로 행세하는 나도 이눔에게 걸려서 한 번 염라대왕앞 까지 갔던 일이 있다.
언젠가 도야지 물 주러 왔던 방송국집 며느리 잔등에 붙어서 윙하니 김아 무개네 집 맏아들이 서울서 왔다기에 이눔의 꼬락서니를 좀 보려고 중도에 서 그 집 뒷문으로 들어가서 부엌을 지나 그의 방에까지 왔었던 일이 있다.
발을 쳐놓아서 들어갈 수는 없고 문지방에 붙어서 보노라니 대학 다이다 신 경쇠약 걸려서 왔다는 놈이 꽃 그린 편지지에 눈이 발개져서 뭘 디리 쓰고 있다. 소 닭 보듯 하는 그의 아내가 뭔 참외인가 뭔가를 깍아가지고 오길래 재치 있게 난 닥 그 위에 올라앉았다. 발을 들치고 방안으로 들어간다. 이 여편네가 들고오는 참외에 정신이 있었으면 왼손으로 휙 나를 날려래도 보 려고 들텐데 글자는 몰라도 꽃 그린 편지종이는 뭐하는 겐지 알고 있는지라 금시에 눈에 쌍심지가 서 가지고 남편을 흘겨보고 시작하려기에 나를 몰라 보았다 남편보고는 먹으란 . 말도 안 하고 책상 밑에 내버려둔 참외를 나 혼 자 먹으면서 나는 그들의 대화를 자미(滋味)나게 들었다. “어디다 편질 하 우”하고 처음엔 제법 노염을 죽이고 질투를 숨긴 채 묻는다. “응 내 동무 에게”이러고 쳐다보니 아내의 무사처럼 생긴 얼굴이 심상찮다.
“왜 그래, 내가 건 알어 뭘 할테냐”
성이 난 아내는 휭하니 나가 버렸다. 편지 쓰던 단맛을 잃은 학생놈이 기 름 바른 머리카락을 긁적긁적 긁더니 아뿔사 그만 참외 그릇을 보고 말았 다. 속으로 한 번 ‘이 눔에 파리’하고 시어머니 역정에 개 옆구리를 차려 들면서 옆에 있는 가죽채를 들어 나를 후려갈긴다.그러나 그렇게 쉽사실는 안 된다. 휙 목을 뻗쳐 천정으로 날랐더니 유까다 바람으로 일어서서 멍하 니 쳐다본다. 닭 따라가던 개의 격이어서 다소 이 여드름 친구가 미안하다.
그랬더니 웬걸 농짝 밑에서 사이다 병 같은 걸 꺼내다 구멍 뚫린 쇠를 입에 물고 휙하니 안개 같은 걸 내뿜는다. 나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썼으나 할 수 없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다시 정신이 들어 눈을 떠보니 밤은 으슥하여 추운데 나는 청결(淸潔)통 속에 누워 있었다.
(『조광』, 1938년 8월호, ‘여름의 정서’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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