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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문학

신채호 꿈하늘 [하]

by 역달1 2022.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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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픔도 아픔이어니와 가장 갑갑한 것은 내가 무슨 죄로 이 속에 왔는지를 모름 이다.

“순옥사자가 오시면 안다 하니 언제나 오나.”

하며 빠지는 눈을 억지로 참고 며칠을 기다리더니 하루는 삼백예순다섯 가지 풍 류 소리가 나며,

“신임 순옥사자 고려 문하시랑 동문장사 강감찬(高麗門下侍郞同文章事姜邯贊) 이 듭신다.”

하더니 온 옥중이 괴괴한데, 한놈이 좌우의 낯을 살펴보니 어떤 사람은, “나야 무슨 죄가 있나, 설마 순옥사자께서 곧 놓아 보내겠지.”

하는 뜻이 있어 기꺼운 낯을 가지며, 어떤 사람은,

“내 죄는 이보다 더 참혹한 지옥에 갇힐 터인데 순옥사자가 오시면 어찌하 나.”

하는 뜻이 있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낯을 가지며, 어떤 사람은, “아이고, 이제는 큰일났구나. 내 죄야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만 순옥사자가 아마 덮어놓고 죽이실걸.”

하는 뜻이 있어 잿빛 같은 낯을 가지며, 지옥이 무엇인지 천당이 무엇인지 순옥 사자가 가는지 오는지도 모르고 앉아 있는 사람도 있으며,

“오냐, 지옥에 가두어라. 가두면 장 가두겠느냐, 나가는 날에는 또 도적질이나 하자.”

하는 사람도 있으며,

“우리 어머니가 내 일을 알면 오죽 울겠느냐? 순옥사자시여! 제발 놓아 주옵소 서.”

하는 사람도 있으며,

“옥이고 깻묵이고 밥이나 좀 먹었으면.”

하는 사람도 있으며,

“순옥사자가 오기만 오너라. 내 죽자사자 해보겠다. 인간에서 하던 고생도 많 은데 또……내가 돈이 백만 냥이 있으니 순옥사자의 옆구리만 쿡 지르면 되지.” 하는 사람도 있으며,

“나는 계집인데 순옥사자가 밉지 않은 나야 설마 죽이겠니.”

하는 사람도 있어, 빛도 각각이요. 말도 각각이더라.

옥중에 서기가 돌며 순옥사자 강감찬이 드시는데 키가 불과 오 척이요, 꼴도 매 우 왜루하지만 두 눈에는 정기가 어리고 머리 위에는 어사화(御賜花)가 펄펄 난 다.

이때에 당하여 사방을 돌아보니 억센 놈도 어디 가고, 다리 긴 놈도 어디 가고, 겁 많은 놈도 어디 가고, 돈 많은 놈도 어디 가고, 얼굴 좋은 아가씨도 어디 가 시고, 온 옥중에 있는 사나이나 계집이나 모두 오래 젖에 주린 아이가 어미 몸을 보는 듯하여 콱 엎드리자 흑흑 느끼어 가며 운다.

강감찬이 보시더니 불쌍히 여기사 물으시되,

“왜 처음에 지옥이 무서운 줄 몰랐더냐? 죄를 왜 지었느냐?”

하니 옥중이 묵묵하여 아무 대답이 없거늘 한놈이 나서며 여짜오되, “우리가 나가고 싶단 말도 없었는데 임이 우리를 인간에 내시고 우리가 오겠다 고 원하지도 않았는데 임이 우리를 지옥에 넣으시니 우리들이 임의 일이 답답하 여 우나이다.”

강감찬이 웃으시며,

“임이 너희들을 내셨다더냐? 또 지옥에 올 때도 임이 가라고 하시더냐?” “그러면 누가 내시고 누가 이리 오게 하셨습니까?”

강감찬이 크게 소리를 질러,

“네가 네 일을 모르고 누구에게 묻느냐?”

하고 꾸짖으니 온 옥중이 모두 한놈과 함께 황송하여 일제히 그 앞에 엎드리며, “미련한 것들이 알지 못하오니 사자님은 크게 사랑하사 미혹을 열어 주소서.” 강감찬이 지팡이를 거꾸로 받드시더니 모든 옥수에게 말씀하시되,

“너희들이 짓지 않으면 지옥이란 이름이 없으리니 그러므로 지옥은 임이 지은 것이 아니라 곧 너희들이 지은 지옥이니라.”

한놈이 일러서 아뢰되,

“우리가 지은 지옥이면 깨기도 우리 힘으로 깰 수 있습니까?”

강감찬이 가라사대,

“작은 죄는 자기 손으로 개고 나아갈지나 큰 죄는 제 손은 그만두고 님이 깨어 주려 하여도 깰 수 없나니 천겁 만겁을 지옥에서 썩을 뿐이니라.” 한놈이 묻되,

“어떤 죄가 큰 죄오니까?”

강감찬이 가라사대,

“처음에 단군이 오계를 세우시니,

1) 나라에 충성하며,

2) 집에서 효도하며 우애하며,

3) 벗을 미덥게 사귀며,

4) 싸움에서 뒷걸음질 말며,

5) 생물을 죽이매 골라 죽임이라.

옛적에는 오계에 하나만 범하여도 큰 죄라 하여 지옥에 내리더니 이제 와서는 나라일이 급하여 다른 죄를 이루 다 다스릴 수 없어 오직 나라에 대한 죄만 큰 죄라 하여 지옥에 내리느니라.”

한놈이,

“나라에 대한 큰 죄가 몇입니까?”

물으매 강감찬이,

“네가 앉아 들어라!”

하시더니 하나씩 세신다.

첫째는 국적을 두는 지옥이 일곱이니,

(ㄱ) 국민의 부탁을 맡아 임금이 되자거나 대신이 되어 나라의 흥망을 어깨에 메인 사람으로 금전이나 사리사욕만 알다가 적국에게 이용된 바가 되어 나라를 들어 남에게 내어 주어 조상의 역사를 더럽히고 동포의 생명을 끊나니 백제의 임 자(任子)며, 고구려의 남생(男生)이며, 발해의 말제(末帝) 인찬(諲譔이며, 대한 말(大韓末)의 민영휘(閔泳徽), 이완용(李完用) 같은 무리가 이것이다. 이 무리들 은 살릴 수 없고 죽이기도 아까우므로 혀를 빼며 눈을 까고 쇠비로 그 살을 썰어 뼈만 남거든 또 살리고 또 이렇게 죽이되 하루 열두 번을 이대로 죽이고 열두 번 을 이대로 살리어 죽으면 살리고 살면 죽이나니 이는 곧 매국 역적을 처지하는 ‘겹겹지옥’이니라.

(ㄴ) 백성의 피를 빨아 제 몸과 처자를 살찌우던 놈이니 이놈들은 독 속에 넣고 빈대와 뱀 같은 벌레로 그 피를 빨게 하나니 이는 ‘줄줄지옥’이니라.

(ㄷ) 혓바닥이나 붓끝으로 적국의 정책을 노래하고 어리석은 백성을 몰아 그물 속에 들도록 한 연설쟁이나 신문기자들은 혀를 빼고 개의 혀를 주어 날마다 ‘컹 컹’ 짖게 하나니 이는 ‘강아지지옥’이니라.

(ㄹ)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해먹을 것 없으니 정탐질이나 하리라 하여 뜻있는 사람을 잡아 적국에게 주는 놈은 돼지껍질을 씌워 ‘꿀꿀’ 소리나 하게 하나니 이는 ‘돼지지옥’이니라.

(ㅁ) 겉으로 지사인 체하고 속으로 적 심부름하던 놈은 그 소위가 더욱 밉다.

이는 머리에 박쥐감투를 씌우고 똥집을 빼어 소리개를 주나니 이는 ‘야릇지옥’ 이니라.

(ㅂ) 딸각딸각 나막신을 끌고 걸음걸음 적국놈의 본을 뜨며 옷 입고 밥 먹는 것 도 모두 닮으려 하며 자식이 나거든 내 말을 버리고 적국말을 가르치는 놈은 목 을 잘라 불에 넣으며 다리를 끊어 물에 던지고 가운데 토막은 주물러 나나리를 만드나니 이는 ‘나나리지옥’이니라.

(ㅅ) 적국놈에게 시집 가는 년들이며 적국의 년에게 장가 가는 놈들을 불칼로 그 반신을 끊나니 이는 ‘반신지옥’이니라.

둘째는 망국노를 두는 지옥이니,

(ㄱ) 나라야 망하였든 말았든 예수나 잘 믿으면 천당에 간다 하며, 공자의 글이 나 잘 읽고 산림에서 독선기신(獨善其身)한다 하여 조상의 역사가 결딴남도 모르 며 부모나 처자가 모두 남의 종이 된지는 생각도 않고 오히려 선과 천당을 찾는 놈들은 똥물에 튀하여 쇠가죽을 씌우나니 이는 ‘똥물지옥’이니라.

(ㄴ) 정견을 가진 당파는 있어야 하지만 오직 지방으로 가르며, 종교로 가르며, 사감(私感)으로 가르며, 한 나라를 열 쪽에 내어 서로 해외로 다니며 싸우고 이 것을 일로 아는 놈들은 맷돌에 가라아 없애야 새싹이 날지니 이는 ‘맷돌지옥’ 이니라.

(ㄷ) 말도 남의 말만 알고 풍속도 남의 풍속만 쫓고 종교나 학문이나 역사 같은 것도 남의 것을 제 것으로 알아 러시아에 가면 러시아인이 되고 미국에 가면 미 국인 되는 놈들은 밸을 빼어 게같이 만드나니 이는 ‘엉금지옥’이니라.

(ㄹ) 동양의 아무 나라가 잘되어야 우리의 독립을 찾으리라 하며, 서양의 아무 나라가 우리 일을 보아 주어야 무엇을 하여 볼 수 있다 하여, 외교를 의뢰하여 국민의 사상을 약하게 하는 놈들은 그 몸을 주물러 댕댕이를 만들어, 큰 나무에 감아 두나니 이는 ‘댕댕이지옥’이니라.

(ㅁ) 의병도 아니요, 암살도 아니요, 오직 할 일은 교육이나 실업 같은 것으로 차차 백성을 깨우자 하여 점점 더운 피를 차게 하고 산 넋을 죽게 하나니 이놈들 의 갈 곳은 ‘어둥지옥’이니라.

(ㅂ) 황금이나 여색 같은 데에 빠져, 있던 뜻을 버리는 놈은 그 갈 곳이 ‘단지 지옥’이니라.

(ㅅ) 지식이 없어도 아는 체하고 열성이 없어도 있는 체하며, 죽기는 싫으나 명 예는 차지하려 하여 거짓말로 남 속이고 다니는 놈들은 불로 지져 뜨거움을 보여 야 하나니 이는 ‘지짐지옥’이니라.

(ㅇ) 머리 앓고 피 토하여 가며, 나라일을 연구하지 않고, 오직 남의 입내만 내 어 마치니의 『소년 이태리』를 본떠 회(會)의 규칙을 만들며 손일선 (孫逸仙)의 『군정부 약법(約法)』을 번역하여 자가(自家)의 주의를 삼아 특유한 국성(國性) 이 없이 인판(印板)으로 사업하려는 놈들이 갈 지옥은 ‘잔나비지옥’이니라.

(ㅈ) 잔꾀만 가득하여 일 없는 때는 칼등에서 춤이라도 출 듯이 나서다가 일 있 을 때는 싹 돌아서 누울 곳을 보는 놈은 그 기름을 빼어야 될지라. 고로 가마에 넣고 삶나니 이는 ‘가마지옥’이니라.

(ㅊ) 아무래도 쓸데없다. 왼손으로 총을 막으며 빈 입으로 군함 깰까 망한 판이 니 망한 대로 놀자 하는 놈은 무쇠두멍을 씌워 다시 하늘을 못 보게 하나니 이는 ‘쇠솥지옥’이니라.

(ㅋ) 돈 한푼만 있는 학생이면 요릿집에 데리고 가며 어수룩한 사람이면 영웅으 로 추켜세워 저의 이용물을 만들고 이를 수단이라 하여 도덕 없는 사회를 만드는 놈의 갈 곳은 ‘아귀지옥’이니라.

(ㅌ) 공자가 어떠하다, 예수가 어떠하다, 나폴레옹이 어떠하다, 워싱턴이 어떠 하다, 하며 내 나라의 성현 영웅을 하나도 모르는 놈은 글을 다시 배워야 하나니 이놈들의 갈 곳은 ‘종아리지옥’이니라.

이 밖에도 지옥이 몇몇이 더 되나 너희들이 알아둘 지옥은 이만하여도 넉넉하니 라.

온 옥수(獄囚)가 악머구리 울 듯 하며,

“사자님은 크게 어진 마음으로 죄를 용서하시고 이곳을 떠나게 하소서.” 강감찬이,

“공은 공대로 가며 죄는 죄대로 간다.”

하고 부채로 썩 가리우니 모든 옥수가 어디에 있는지 보지는 못하나 마음에 그 참형당할 일이 애달파 강감찬의 앞에 나아가 매국적 같은 큰 죄는 할 수 없거니 와 그 나머지는 다 놓아 보냄을 청하니 강감찬이 한놈의 등을 만지며, “그대가 이런 마음으로 임나라에 갈 만하지만 다만 두 사랑이 있으므로 이곳까 지 음이로다.”

하거늘 한놈이 그제야 미인의 홀림으로 풍신수길을 놓치던 일을 생각하고 묻자와 가로되,

“나라 사랑하는 사람은 미인을 사랑하지 못하옵니까?”

강감찬이 땅 위에 놓인 칼을 가리키며,

“이 칼 놓은 자리에 다른 것도 또 놓을 수 있느냐?”

“안 될 말입니다. 한 물건이 한 시에 한 자리를 차지할 수가 있습니까”?

강감찬이 이에 손을 치며,

“그러하니라. 한 물건이 한 시에 한 자리를 못 차지할지며 한 사상이 한 시에 한 머릿속에 같이 있지 못하나니 이 줄로 미루어 보아라. 한 사람이 한 평생 두 사랑을 가지면 두 사랑이 하나도 이루기 어려운 고로 이야기에도 있으되 ‘두 절 개가 되지 말라’ 하니 그 부정함을 나무람이니라.”

한놈이 또 묻되,

“그 줄이 있습니까?”

강감찬이 대답하되,

“소경은 귀가 밝고 귀머거리는 눈이 밝다 함은 한 길로 가는 까닭이라. 그러기 에 석가여래가 아내와 아들을 다 버리고 보리수 밑에서 아홉 해를 지내심이니 라.”

“애국자의 일도 종교가와 같으오리까?”

“하나는 출세자(出世者)의 일이요, 하나는 입세자(入世者)의 일이니 일은 다르 지만 종교가가 신앙밖에 다른 사랑이 있으면 종교가가 아니며, 애국자가 나라밖 에 다른 사랑이 있어도 애국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몸은 안 아끼는 이 없지만 충신이 일에 당하면 열두 번 죽어도 사양치 않으며 누가 처지를 안 어여 삐하리요만 열사가 나라를 위함에는 가족까지 희생하나니 이와 같이 나라밖에는 딴 사랑이 없어야 애국이어늘 이제 나라도 사랑하며 술도 사랑하면 술로 나라 잊 을 적이 있을지며, 나라도 사랑하며 미인도 사랑하면 미인으로 나라 잊을 때가 있을지니라.”

한놈이 절하며 그 고마운 뜻을 올리고 그러나 지옥에서 나가게 하여 달라 하니 강감찬이 가로되,

“누가 못 나가게 하느냐?”

“못 나가게 하는 사람은 없사오나 몸이 쇠사슬에 묶이어 나갈 수 없습니다.” 강감찬이 웃으시며,

“누가 너를 묶더냐”

하니 한놈이 이 말에 대철대오하여 본래 묶이지 않은 몸을 어디에 풀 것이 있으 리요 하고 몸을 떨치니 쇠사슬도 없고 옥도 없고 한놈의 한 몸만 우뚝하게 섰더 라.

6

천국은 하늘 위에 있고 지옥은 땅 밑에 있어 그 상거가 천 리나 만 리인 줄 아 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라 실제는 그렇지 않아서 땅도 한 땅이요, 때도 한 때인데 제치면 임나라고 엎치면 지옥이요, 세로 뛰면 임나라고 가로 뛰면 지옥이요, 날 면 임나라며 기면 지옥이요, 잡으면 임나라며 놓치면 지옥이니, 임나라와 지옥의 상거가 요것뿐이더라.

지옥이 이미 부서지매 한놈이 눈을 드니 금으로 지은 집에 옥으로 쌓은 담이 어 른어른하고 땅에 깔린 것은 모두 진주와 금강석이요, 맑고 향내나는 공기가 코를 찔러 밥 안 먹고도 배부르며 , 나무마다 꽃이 피어 봄빛을 자랑하며 새는 앵무, 공작, 금계, 백학, 꾀꼬리같이 듣고 보기가 좋은 새들이며 짐승은 사람을 물지 않는 문호(文虎), 문표(文豹) 같은 짐승들이요, 거리마다 신라의 만불산(萬佛山) 을 벌여 놓고 집집에 고구려의 수모욕을 깔았으며 입은 것은 부여의 문수(紋繡) 와 진한의 겸포며 두른 것은 발해의 명주와 신라의 용초며 들리는 것은 변한의 가야금이며 신라의 만만파 쉬는 저며 백제의 공후도 있고 고려의 국악도 있더라.

한놈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이제는 내가 임나라에 다다랐구나.”

하고 기꺼워 나서니 임나라의 모든 물건도 모두 한놈을 보고 반기는 듯하더라.

임을 보이려 하나 하늘같이 높으시고 바다같이 넓으시고 해같이 밝으시고 달같이 둥그시고 봄같이 따뜻하고 가을같이 매우사 한놈의 좁은 눈으론 볼 수가 없다.

그 좌우에 모셔 앉으신 이는 신앙에 굳으신 동명성제(東明聖帝), 명림답부(明臨 答夫), 치제(治劑)에 밝으신 백제의 초고대왕(肖古大王), 발해 선왕(宣王), 이상 이 높으신 진흥대왕(眞興大王), 설원랑(薛原郞), 역사에 익으신 신지선인(神誌先 人) 이문진(李文眞), 고흥(高興), 정지상(鄭知常), 국문에 힘쓰신 세종대왕, 설 총, 주시경, 육군에 능하신 발해 태조, 연개소문, 을지문덕, 해군에 용하신 사법 명(沙法名), 정지(鄭地), 이순신, 강토를 개척하신 광개토왕(廣開土王), 동성대 제(東聖大帝), 윤곽(尹瓘), 김종서(金宗瑞), 법전을 편찬할 을파소(乙巴素), 거 칠부(居柒夫), 망국 말엽에 쌍수로 하늘을 받들던 백제 부여의 복신(福信), 고구 려의 검모잠(劒牟岑), 판탕시대에 한칼로 외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편히 하던 고 려의 최영, 강감찬, 이조의 임경업, 외지에 식민한 서언왕(徐偃王), 엄국시조(奄 國始祖), 고죽시조(孤竹始朝), 타국에 가서 왕이 된 고운(高雲), 이정기(李正 己), 김준(金俊), 사후에 용이 되어 일본을 도륙(屠戮)하려던 신라 문무대왕(文 武大王), 계림의 개 되어도 일본의 신인은 아니 된다던 박제상(朴堤上), 홍건적 이백만을 토평(討平)하고 간계에 죽던 정세운(鄭世雲), 본국 팔성(八聖)을 제 지 내고 금나라를 치려던 묘청(妙淸), 중국 홍수에 오행치수의 줄로 하우(夏禹)를 가르친 부루태자(夫婁太子), 일위(一葦)로 대해를 건너 도국 만종(島國蠻種)을 개화시킨 혜자 선사(慧慈禪師), 왕인(王仁) 박사, 안시성에서 당태종 이세민(李 世民)의 눈을 뺀 양만춘(楊萬春), 용인읍에서 철례탑(撤禮塔)의 가슴을 맞추던 김윤후(金允侯), 교육계의 종주 되어 서양을 쓸리게 하던 영랑(永郞), 남랑(南 郞), 국수(國粹)의 무너짐을 놀라 화랑을 중흥하려던 이지백(李知白), 동족에 대 한 의분으로 발해를 구원하려던 곽원(郭元), 왕가도(王可道), 왕실을 다물(多勿) 하려 하여 피 흘리던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 두문동(杜門洞) 칠사현(七士 賢), 강자를 제재함에는 암살을 유일 신성으로 깨달은 밀우(密友), 유유(紐由), 황창(黃昌), 안중근(安重根), 넘어지는 대하(大廈)를 붙들려고 의기(義旗)를 잡 은 이강년(李康年), 허위(許蔿), 전해산(全海山), 채응언 (蔡應彦), 조촐한 진단 의 여자몸으로 어찌 도적에게 더럽혀지리요 하던 낙화암의 기빈(妃嬪)들, 임진년 의 논개(論介), 계월향, 출세한 사람으로 나라일이야 잊을쏘냐 하던 고구려의 칠 불(七佛), 고려의 현린 선사(玄麟禪師), 이조의 서산대사(西山大師), 사명당(四 溟堂), 국학에서 비록 도움이 없지만 일방의 교문에 통달하여 조선의 빛을 보탠 불학의 원효(元曉), 의상(義湘), 유학의 회제(晦齊), 퇴계(退溪), 세상에 상관없 는 물외한인(物外閑人)이지만 청풍고절(淸風苦節)의 한유한 (韓惟翰), 이자현(李 資玄), 연진수도(鍊傎修道)의 참시(旵始), 정염(鄭磏건축으로 거룩한 임류각(臨 流閣), 황룡사(皇龍寺) 등의 건축자, 미술로 신통한 만불산 홍구유 (紅氍兪)의 제조자, 산술로 부도(夫道), 그림으로 솔거(率居), 음률로 우륵(于勒), 옥보고 (玉寶高), 칼을 잘 만드는 가락의 공장(工匠), 맹호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발해의 장사, 성력(星曆)에 오윤부(伍允孚), 이술(異術)에 전우치(田禹治), 귀귀래래시 (歸歸來來詩)로 물질 불멸의 원리를 말한 화담 (花潭) 서경덕(徐敬德), 폭국은 베어도 가하다 하여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의 노설(奴說)을 반대한 죽도(竹 島) 정여립(鄭汝立), 철주자(鐵鑄字) 발명한 바치, 비행기 시조 정평구(鄭平九), 이 밖에도 눈 큰 이, 입 큰 이, 팔 긴 이, 몸 굵은 이, 어느 때 외국과 싸워 이 긴 이, 어느 곳에서 백성에게 큰 공덕을 끼친 이, 철학에 밝은 이, 도덕에 높은 이, 물리에 사무친 이, 문학에 잘한 이, 한놈이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선민들도 많으며 또 한놈이 그 자리에서 보고 이제 기억하지도 못할 이도 많이 이 책에 올 리지 못하거니와 대개 이때 한놈의 마음은 임나라에 온 것이 기쁠 뿐만 아니라 여러 선왕, 선성, 선민 들을 뵈옴이 고맙더라.

임나라에는 이렇게 모여서 무슨 일을 하시는가 하고 한놈이 눈을 들어 본즉 이 상도 하고 기질도 하다. 다른 것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낱낱이 비를 만 들더니 긴 막대기에 꿰어 드니 그 길이가 몇천 길 몇만 길인지 모를러라. 그 비 를 일제히 들더니 곧 하늘에 대고 썩썩 쓴다. 한놈이 놀라 일어나며, “하늘을 왜 씁니까? 땅에는 먼지나 있다고 쓸지만 하늘이야 왜 씁니까?” 모두 대답하시되,

“하늘을 못 보느냐? 오늘 우리 하늘은 땅보다도 먼지가 더 묻었다.” 하시거늘 한놈이 하늘을 두루 살펴보니 온 하늘에 먼지가 보얗게 덮이었더라. 몇천 몇만 비들을 들이대고 부리나케 쓸지만 이리 쓸면 저쪽이 보얗게 되고 저리 쓸면 이 쪽이 보얗게 되어 파란 하늘은 어디 갔는지 옛책에서나 옛이야기에나 듣지도 못 하던 흰 하늘이 머리 위에 덮이었더라.

“하늘도 보얀 하늘이 있습니까?”

한놈이 소리를 질러 물으니 누구이신지 누런 옷 입고 붉은 띠 띤 어른이 대답하 신다.

“나도 처음 보는 하늘이다. 임 나신 지 삼천오백 년경부터 하늘이 날마다 푸른 날고 보얀 빛이 시작하더니 한 해 지나 두 해 지난 사천이백사십여 년 오늘에 와 서는 푸른 빛은 거의 없어지고 소경눈같이 보얗게 되었다. 그런즉 대개 칠백 년 동안에 난 변이요, 이 앞서는 이런 변이 없었나니라.”

하더니 그만 목을 놓고 우는데 울음 소리가 장단에 맞아 노래가 되더라.

하늘이 제 빛을 잃으니 그 나머지야 말할쏘냐

태백산이 높이야 줄어 석 자도 못 되고

압록강이 터를 떠나 오백 리나 이사 갔구나,

아가 아가 우리 아가

네 아무리 어려워도 잠 좀 깨어라

무궁화꽃 핀 가지에 찬바람이 후려친다.

그이가 노래를 마치더니,

“한놈아!”

하고 부르더니 서편을 가리키거늘 한놈이 쳐다보니, 해와 같이 나란히 떠오르는 데 테두리가 다 네모가 나고 빛은 다 새까맣거늘 보는 한놈이 더욱 놀라, “하늘이 뽀얗고 해와 달이 네모지며, 또 새까마니 이것이 임나라의 인간과 다 른 특색입니까”

한데, 그이가 깜짝 뛰며,

“그게 무근 말이냐? 하늘이 푸르고 해와 달이 둥글며 힘은 임나라나 인간이 다 한가지인데 지금 이렇게 된 것은 큰 변이니라.”

한놈이,

“임의 힘으로 이를 어찌하지 못합니까?”

그이가 눈물을 흘리더니 가라사대,

“임나라에야 무슨 변이 나겠느냐? 때로는 모두 봄이요, 땅은 모두 금이요, 짐 승도 사람같이 착하니 무슨 변이 나겠느냐? 다만 이천만 인간이 지은 얼로 하늘 을 더럽히고 해와 달도 빛이 없게 만들었나니 아무리 임의 힘인들 이를 어찌하리 요.”

한놈이,

“인간에서 엄만 안 지으면 해도 옛 해가 되고 달도 옛 달이 되고 하늘도 옛 하 늘이 되겠습니까?”

그이가 가라사대,

“암, 그 이를 말이냐? 대개 고려 말세부터 별별 하늘이 우리 진단에 들어오는 데, 공자 석가는 더 말할 것 없고 심지어 보살의 하늘이며, 제군(帝君)의 하늘이 며, 관우(關羽)의 하늘이며, 도사의 하늘까지 들어와 님의 하늘을 가리워 이천만 사람의 눈이 한쪽으로 뒤집혀서 보고하는 일이 모두 딴전이 되어 국전(國典)과 국보(國寶)가 턱턱 무너지기 시작할새 역사의 제1장에 우리 임 단군을 빼고…… 부여를 제껴놓고 한 나라 반역자 위만으로 정통을 가지게 하며, 고구려의 혈통인 발해를 물리어 북맥(北貊)이라 하며, 백제의 용무(勇武)를 싫어하여 이를 무도지 국(無道之國)이라 하며, 우리의 윤리를 버리고 외국의 문교로 대신하고, 만일 국 수(國粹)를 보존하려 하는 이 있으면 도리어 악형에 죽을새 죽도 선생 정여립이 구월산에 들어가 단군에게 제 지내고 세대의 악착한 풍기를 고치려 하여 ‘충신 불사이군’이 성인의 말이 아니라고 외쳤나니, 이는 사자후(獅子吼)이어늘 진안 (鎭安) 죽도사(竹島寺)에서 무모한 칼에 육장(肉漿)이 되고 그나마 현상(賢相)이 며, 명장이며, 위인이며, 재자며, 협객이 이 뽀얀 하늘 밑에서 몹쓸 죽음한 이가 얼마인지 알 수 없나니, 이제라도 인간에서 지난 일의 잘못됨을 뉘우쳐 하고 같 이 비를 쓸어 주면 이 하늘과 이 해와 이 달이 제대로 되기 어렵지 않으리라.” 하며 눈물이 비 오듯 하거늘 한놈이 크게 느끼어 ‘그러면 한놈부터 내 책임을 다하리라’ 하고 곧 비를 줍소서 하여 하늘에 대고 죽을 판 살 판 쓸새 무릇 삼 칠은 이십일 일을 지나니, 손이 부풀어 이리저리 터지고, 발이 아파 비를 들 수 없었고, 두 눈이 며칠 굶은 사람처럼 쑥 들어가 힘을 다시 더 쓸 수 없는데, 하 늘을 쳐다본즉 여전히 뽀얗더라. 한놈이 이어,

“내 힘은 더 쓸 수 없으나 또 내 뒤를 이어 이대로 힘쓰는 이 있으면 설마 하 늘이 푸르러질 날이 있겠지.”

하고 이 뜻으로 가갸 풀이를 지었는데,

가갸 거겨 가자 가자, 하늘 쓸러 걸음 걸은 나아가자

고교 구규 고되기는 고되지만, 굳은 마음은 풀릴쏘냐

그기 가 그믐 밤에 달이 나고, 기운 해 다시 뜨도록

나냐 너녀 나 죽거든 네가 하고, 너 죽거든 나 또 하여

노뇨 누뉴 놀지 않고, 하고 보면 누구라서 막을쏘냐

느니 나 늦은 길을 늦다 말고 , 이 악물고 주먹 쥐자

다댜 더뎌 다 닳은들 칼 아니랴, 더 갈수록 매운 마음

도됴 두듀 도령님의 넋을 받아 두려운 놈 바이 없다

라랴 러려 나팔 불고 북도 쳤다, 너나 말고 칼을 빼자

로료 루류 로동하고 싸움하여 루만 명에 첫째 되면

르리 라 르르릉 아라, 르릉 아리아 자기 아들 같이

마먀 머며 마마님도, 구경 가오 먼동 곳에 봄이 왔소

모묘 무뮤 모든 사람, 모두 몰아 무쇠 팔뚝 내두르며

므미 마 먼 데든지 가깝든지, 밀어치며 나아갈 뿐

사샤 서셔 사람마다 옳고 보면, 서슬 있어 푸르리라

소쇼 수슈 소름 찢는 도깨비도, 수컷에야 어이하리

스시 사 스승님의 뜻을 받아, 세로 가로 뛰고 지고

아야 어여 아무런들, 내 아들이 어미 없이 컸다 마라

오요 우유 오죽이나 오랜 나라 우리 박달 우리 겨레

으이 아 응응 우는 아기라도, 이 정신은 차리리라

자쟈 저져를 읽으려 하는데 뽀얀 하늘 한가운데에서 새파란 하늘 한쪽이 내다보 이며 그 속에서 소리가 난다.

“한놈아, 네 아무리 성력(誠力) 깊지만 한갓 성력으로는 공을 이루기 어려우리 니 그리 말고 임의 설시한 ‘도령군’을 가서 구경하여라.”

한놈이,

“도령군이 무엇입니까?”

물은데,

“아! 도령군을 모르느냐? 역사 본 사람으로……,”

하거늘 한놈이 눈을 감고 앉아 역사를 생각하니,

‘대개 도령은 신라의 화랑을 말함이라, 『삼국사기』악지(樂志)에 설원랑이 지었다는 도령(徒領) 노래가 곧 화랑의 노래니, 도령은 도령의 음 번역이요, 화 랑은 그 뜻 번역인데, 화랑의 처음은 신라 때에 된 것이 아니라, 곧 단군 시조가 태백산에 내려올 때 삼랑과 삼천 도를 거느림이 화랑의 비롯이요, 천왕당 해모수 가 도자(徒者) 수백 명을 거느리고 웅심산에 모임도 또한 화랑의 놀음이요, 고구 려의 선인은 곧 화랑의 별명인데, 동맹은 선인의 천제(天祭)이며, 백제의 소도는 화랑의 별명인데, 천군은 또 소도제(蘇塗祭)의 신명(神名)이라 명호(名號)는 시 대를 따라 변하였으나 정신은 한가지로 전하여 모험이며, 상무(尙武)며, 가무며, 학식이며, 애정이며, 단결이며, 열성이며, 용감으로 서로 인도하여 고대에 이로 써 종교적 상무정신을 이루어, 지키면 이기고, 싸우면 물리쳐, 크게 국광을 발휘 한 것이 다 신라의 진흥대왕이 더 큰 이상과 넓은 배포로 폐(弊)될 것을 덜고 미 와 굳셈을 더 보태어 화랑사의 신기원을 연 고로 영랑, 남랑의 교육이 사해에 퍼 지고, 사다함(斯多含), 김흠춘(金欽春) 등 소년의 피꽃이 역사에 빛내었나니, 비 록 배화노의 김부식으로도 화랑 이백의 방명미사(芳名美事)를 찬탄함이라. 그 뒤 에 문헌이 잔결(殘缺)되므로 어떻게 쇠하고 어떻게 없어짐을 자세히 알 수 없으 나, 『고려사』에 보매 현종(顯宗) 때 거란이 수십만 대병으로 우리에게 덤비매 이지백이 생각하되 화랑을 막을 정신이 있으리라 하며, 예종이 조서(詔書) 로 남 랑, 영랑 등 모든 화랑의 자취를 보존하라 하며, 의종도 팔관회에 화랑을 뽑아 고풍을 떨칠 뜻을 가졌었나니, 이때까지도 도령군 곧 화랑의 도가국 중에 한 자 리 가졌던 일을 볼지나 이 뒤로 어떻게 되었느냐’

외우며 생각하고 생각하며 외우더니, 하늘이 다시 소리하기를,

“내가 역사 속에 있는 어려이 생각한다마는 다만 한 가지 또 있다.

『고려사』「최영」전에 최영이 명태조 주원장(朱元璋)과 싸우려 할새, 고구려 가 승군 삼만으로 당병 백만을 깨쳤으나, 이제도 승군을 뽑으리라 하였는데, 그 이른바 고구려 승군은 곧 선인군이니, 마치 신라의 화랑도 같은 것이라 그 혼인 을 멀리하고, 가사를 돌보지 않음이 승과 같은 고로 고대에도 혹 그 이름을 승군 이라고도 하며, 최영은 더욱 선인이나 화랑의 제도를 회복할 수 없어 승으로 대 신하려 하여 참말로 승가의 승을 뽑음이나 만일 최영이 죽지 않고 고려가 망치 않았다면, 임의 세우신 화랑의 도가 오백 년 전에 벌써 중흥하였으리라.” 하시거늘, 한놈이 고마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땅에 엎드려 절하고, “한놈이 도령군 곧 화랑이 우리 역사의 뼈요, 나라의 꽃인 줄을 안 지 오래오 며, 또 이를 발휘할 마음도 간절하오나, 다만 『신지시사(神誌詩史)』나 거칠부 의 『선사(仙史)』나 김대문의 『화랑세기』같은 책이 없어지므로, 그 원류를 알 수 없어 짝없는 유한을 삼았더니, 이제 임이 도령군을 구경하라 하시니, 마음 에 감사할 이 대일 곳 없사오니 원컨대 바삐 길을 인도하사 평생에 보고 지고 하 던 도령군을 보게 하옵소서.”

하며 어린아기 어미 찾듯 자꾸 임을 부르더니, 하늘에서 홍등 한 개가 내려오며, 앞을 인도하여 오색 내를 지나 옥뫼를 넘어 한곳에 다다르니, 돌문이 있는데 금 글씨로 새겼으되 ‘도령군 놀음 곳’이라 하였더라.

문 앞에 한 장수가 서서 지키는데 한놈이,

“임나라 서울로부터 구경하러 왔으니 들어가게 하여 주소서.”

한즉,

“네가 바칠 것이 있어야 들어가리라.”

하거늘,

“바칠 것이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쌀입니까? 무슨 보배입니까”

“그것이 무슨 말이냐? 돈이든지 쌀이든지 보배이든지 인간에서 귀한 것이요, 임나라에서는 천한 것이니라.”

“그러면 무엇을 바랍니까?”

“다른 것 아니라 대개 정이 많고 고통이 깊은 사람이라야 우리의 놀음을 보고 깨닫는 바 있으리니, 네가 인간 삼십여 년에 눈물을 몇 줄이나 흘렸느냐? 눈물 많은 이는 정과 고통이 많은 이며, 이 놀음에 참여하여 상등 손님이 될 것이요, 그 나머지는 중등 손님, 하등 손님이 될 것이요, 아주 적은 이는 들어가지 못하 나니라.”

“어려서 젖 달라고 울던 눈물도 눈물입니까”

“아니라. 그 눈물은 못쓰나니라.”

“열하나 열둘 먹던 때 남과 싸우다가 분하여 운 눈물도 눈물입니까” “아니다. 그 눈물도 값없나니라.”

“그러면 오직 나라 사랑이며, 동포 사랑이며, 대적에 대한 의분의 눈물만 듭니 까?”

“그러니라. 그 눈물에도 진가를 고르느니라.”

이렇게 받고 차기로 말하다가 좌우를 돌아보니, 한놈의 평일 친구들도 어데로부 터 왔는지 문 앞에 그득하더라. 이제 눈물의 정구가 되는데 한놈의 생각에는 내 가 가장 끝이 되리로다. 나는 원래 무정하여 나의 인간에 대하여 뿌린 눈물은 몇 방울인가……(이하 원문 탈락)

(『단재신채호전집』,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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