歐米[구미] 現代劇作家[현대극작가] (紹介[소개])
金焦星[김초성]
수언(數言) : 이것은 소개로 하랴는 것이나 단순한 번역은 아니외다. 내 힘것 충실하게 소상하게 하기는 물론이려니와 무엇보다도 시대적 의의와 역 사적 과정으로서의 의의에 힘써보려 합니다. 영(英)·미(米)·불(佛)·이 (伊)·서(西)·노(露) 무순서(無順序)하게 추려 내겟습니다. 선발과 순서에 는 별다른 표준이 업습니다. 다만 서책과 참고서가 내 손에 단 것과 내 취 미대로만 최후로 한마듸 만일 독자 중에서 흥미가 잇는 작가로서 더 연구하 실 이는 문의(問議)에 의(依)하야 참고서와 작품 등을 아는 대지는 말슴 헤 들이겟습니다.
1. 에이 에이 밀 (A. A. Milne, 영(英))
미국 극평가 올이버 세일어가 노서아(露西亞) 바리에푸의 편복좌(蝙蝠座) 를 기록한 중에 이러한 이 씌어 잇다. 연극 중에서도 오페라 발에 보드빌 (놀애와 무용으로 된 경쾌한 희극), 혹을 바라이에티(잡종의 곡조(曲調)를 석거서 하는 극, 곡마단(曲馬團) 비슷한) 식(式)의 흥행(興行)은 영·미· 독 각국을 물론하고 노서아의 어한 곳보다도 우수하고 화려하고 번창(繁 昌)하다. 더구나 구주대전중(歐洲大戰中) 다사다난(多事多難)하고 온갓 고 난이 극심햇슬 영·미인(英·米人)들은 그 곤비(困憊)·불안·공포를 소 산(消散)시키기 위하야 밤이면 의례히 극장으로 발을 옴겻다. 전전(戰前)에 는 포식(飽食)한 배를 내리기 위하야 한 개의 씨가를 피우거나, 전쟁중 그 이들은 근심이 만흐니 술로써 모든 것을 이즈려 함과 가티 극장에 가서 천박화사(淺薄華奢)한 곡마단식의 무대를 보고 일시적 도취(陶醉)에 마음을 부텻다. 그러나 ‘예술과 오락의 가장 본질적인 상(相)을 욕구하는 노서아 인의 천성’은 전쟁과 혁명의 다단(多端)한 중에서도 영·미의 본은 밧지 아니햇섯다. 그리하야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고 파기(破棄)되는 동안 극 장마는 ‘최고의 영탑(靈塔)’에를 올르게 되엇다고. 이 말로써 하면 대전 중(大戰中)의 영국 극작가처럼 국민성의 반영을 나타내인 것은 업다. 하루 종일 전선(戰線)의 보도에 마음이 아슬아슬함이 침이 업섯고, 노역(勞役) 과 소란에 피곤햇든 민중들, 전선으로부터 귀국(歸國)한 병사들, 군수품의 제조자, 혹은 전쟁 나리긴들, 모도들 밤이면 극장으로 몰리어갓다. 물론 그 이들은 예술에 대한 동경(憧憬)이라든가 어 문제의 진리를 추구하겟다는 마음이라든가 혹은 순진고결한 정열이나 상상을 희망하는 욕구라든가를 가 지고 가는 것은 아니엇다. 혁명 중의 노서아와 달라서 극장마다 각광(脚光) 을 빗내게 할 아무 결핍은 태무(殆無)햇섯다. 그럼으로 그이들은 아모 의식 업시 등불에 모여드는 녀름밤 벌어지 모양으로 휘황한 극장 불 미트로 모여 들엇다. 혹은 가창(歌創), 천박한 희극, 돈지(頓智)와 기지(奇智)로 홀리는 소극, 보드빌, 혹은 애국주의나 공채증서(公債證書) 선전의 멜오드라마에 웃음 웃고 콧등 튀기고 배 지게 하고 근심 잇게 하고 마음을 유쾌하게 해 가지고 집으로 돌아을 이다. 과거 수십년간에 풍미햇든 입센류의 사상극, 즉 소위 ‘사고케 하는 극’에 대한 일시적 반동으로도 볼 수 잇다.
그러나 세일어가 말한 점으로 보아서 의식(衣食) 족하고 창름(倉廩) 영 (盈)한 영미인(英米人)의 우환 중의 소한(消閒) 기분에 불과하다.
영국 극단에 잇서서 전쟁 중, 전쟁 후에 순진한 정열과 로만틱한 상상을 가진 극이나, 혹은 전쟁이라는 참사(慘事)로 인하야 그것을 제재(題材)로 한 극이 전무(全無)햇든 것은 아니다. 전자는 존 드링크워터의 연대기극, 전사(戰死)한 천재 제임스 풀엑커 등에서 볼 수 잇고, 후자는 제임스 바리 냐, 알안 멍크하우스 등에서 볼 수 잇다. 그러나 인기라든지 수량(數量)으 로 보아서 희극, 소극, 현실을 잊게 하는 것은 환상극, 혹은 아동극이 대표 되엇든 것은 변할 수 업는 사실이다. 이 방면의 호표본(好標本)으로 나는 에이 에이 밀을 들어서 소개하겟다.
밀은 1882년 윤돈(倫敦)서 낫스니 금년 사십사년의 장년(壯年)이다. 자기 생각에도 넘우 경쾌한 희극만 쓰는 것이 무엇해서 좀 잇는 극을 쓰겟다 고 하고 썻스나 말이다. 한번 보고 웃고 나면 그 자리에서 이저버릴 극이 만타. 그러나 가치 업다는 것은 아니다. 소위 인생의 기미를 잡아 생기잇는 대화와 독특한 유모어로서 표현된 그의 독특한 기분은 만일 그것을 희망하 는 이만 잇스면 넉넉히 그 맘을 을만하다. 이러한 특색은 사십사년의 밀 을 확정해논 것이고, 이후로라도 별다른 발전이란 업슬 것이고, 다만 웃 음 중에서도 쓰리고 예민한 감정의 표현, 매운 아이로니가 나타난 것이 그 로 하야금 일후(日後) 애호자를 길게 가질 점인 줄 안다.
여러 가지의 기록을 종합하건대 그는 십일세부터 급비생(給費生)으로 웨스 터민스터 학교에 입학하야 잇든 칠년 동안 문학에 취미를 갓기 시작하야 시 가(詩歌) 등속(等屬)을 학교 잡지에 투고햇든 모양이다. 자기 이약이를 들 으면 어 에 억캠부릿지 대학생이 발간외는 『그란타』라는 잡지를 보다 가 동무 하나가 “너 내종에 이걸 편집해 보렴.” 하니 대답이 “그러고 말고.” 하드니 켐부릿지대학에 가서는 사실로 이 잡지의 편집자가 되엇다 고 한다. 이 동안 그는 독서도 만히 하고 시도 썻든 모양이다. 그리해서 그 의 가정에서는 학교 졸업 후에는 인도(印度) 사무성(事務省)에 들어가거나 학교 선생으로 갈 줄 알고 잇서드니 윤돈으로 어 올라와서는 철시에다가 하숙을 정하고 잇섯다. 이 동안 그는 쓰고 닑고 벌고 햇스나 수입이란 첫 해에 불과 이십 파운드엿다 하니 조선 문인들보다도 더 어려웟든 모양이다.
그랫드니 그 말대로 “기이한 일이 생겻다.” 『편치』라는 잡지의 편집자 써 프란시스 버난드가 나고 후임으로 써 오웨씨만이 들어오면서 밀˙ 도 그 편집원으로 채용되든 것이다. 1906년 일이다. 이 전에도 잇다금 『편치』에 투고햇섯지만 입사(入社)한 뒤로부터는 A.A.M.이라는 이름으로 매주 논문을 썻다. 구주대전(歐州大戰)이 시작하야 전선(戰線)으로 나간 1914년지 그 의 논문은 모아서 즉 『The Day’s Play』(1910), 『The Holiday Round』 (1912),『Once a Week』(1914)의 세 권으로 발간되엇다. 나는 아즉 한 권 도 본 일이 업지만 평가(評家)의 말을 듯건대 이 가온대 벌서 후일의 극 (劇)의 제(諸) 특질이 나타나 잇다고 한다. 그가 극을 처음으로 쓴 동기는 이러하다. 전선에 나가기 전 아즉 영국에서 군영(軍營)에 잇슬 모(某)라 하는 육군대좌(陸軍大佐)의 부인과 밀 부인이 합동하야 위문연주회를 연 일 이 잇섯다. 그 대좌(大佐)의 청(請)에 의하야 처음으로 쓴 극이 이라는 희극이다. 왕자 우드가 천하절색(天下絶色)의 왕녀를 어드려 고 옴갓 모험과 기사(奇事)를 행하는 웃음거리 환상극이다. 이것이 얼마나 중세기식(中世紀式)이고 소극 비스름하고 환상에 가득한가는 1917년에 다시 산문으로 개작되고 거년(去年) 크리스마스 에는 로빈손이라는 삽화가의 고은 그림을 부텨 발간된 것만으로도 짐작할 수 잇다. 내가 가지고 잇는 이 삽화를 보든지 다른 이들의 평(評)을 닑어 본 즉 어른들보다도 아동들을 깃 거웁게 할 만한 유모어와 환상에 가득한 것인 줄을 알겟다.
그러고나서는 밀˙ 은 새로이 ‘뜻잇는 극’을 쓰려고 햇다. 그 결과로 된 것 이 <워슬·플엄머리>(Wurzel―Flummery)라는 희극이다. 그러나 이것도 당초 에 마지메한 극은 아니다. 오십만원의 재산을 가진 집에서 상속인을 구햇스 나 누구든지 상속하려면 워슬·플엄머리라는 불유쾌하고 이상(異常)한 이름 을 역시 부텨야 하겟다는 데 대해서는 모두 벽역(辟易)하야 쓸어진다는 안 이한 테마의 희극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극작가로서의 지반(地盤)을 맨 든 극이다. 1917년 전선에서 병이 들어 귀국한 뒤 윤돈에서 처음으로 연출 되여 전쟁 중의 시민(市民) 기분을 아주 유쾌하게 만들고 위안을 주엇다.
1918년에는 <벨인다>(Belinda)가 나오고 아동극 <거짓>(Make―Believe) 이 나왓다. 이것은 바리의 <피 ― 터 팬>에 비할 만한 걸작이다. 플오트에 무리(無理)한 곳이 잇는 듯하나 인정미(人情味)와 유모아에 넘처 흐르는 자 미(滋味)잇는 극이다. 1919년에는 기지(奇智)와 인정미에 풍부한 <핌씨(氏) 의 통행>(Mr. Pim Passes By)이 나왓다. 죠-지 마든의 처(妻)인 올리비아 는 호주에 가 잇슬 텔워 - 디라는 언기사(言欺師)와 동서(同棲)하든 중 텔워 - 디가 호식(虎食)을 당한 줄로만 알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죠 - 지 에게 재혼햇다. 물론 사실을 은폐(隱蔽)하고. 이것이 육년 전 일이다. 그런 데 질녀(姪女)인 디나는 브라이안이라는 미술가와 사랑하는 중이나 그이는 사회주의자이고 미래파를 신봉하는 자임으로 죠 - 지의 허락을 못 받고 잇 는 중이다. 어 날 핌이라는 남자가 디나에게 차자왓다. 죠 - 지에게 차자 온 게지만 잘 짓걸이고 잘 이약이하는 그 여자와 맛나게 된 것이다. 디나는 별로 악의 업시 그에게 숙모(叔母)의 호주(濠州) 시대 이약이를 하니 핌 도 자기 이약이를 시작햇다. 그 테 자기가 호주(濠州)에서부터 가튼 배를 타고온 악인이 잇는데 가티 말세이유에 하륙(下陸)햇다고 한다. 급기야 궐 자(厥者)의 이름을 물으니 자세히는 모르나 아마 텔워 - 디인 듯 십다고 한 다. 그러고 보면 궐자가 살아 잇는 이상 자기 숙모는 중혼(重婚) 죄인(罪 人)이 될 것이다. 핌이 나간 뒤에 왼 식구가 뒤범벅이 되어 가지고 죠 - 지 는 처와 이혼할 것을 주장지 하게 되엇다. 그러는 곳에 핌이 다시 들어와 앗가 그 남자의 정말 이름은 볼위틀이라는 자이고 텔워 - 디라는 이는 아니 니 확실히 호주에서 호식(虎食)당한 게라고 정정(訂正)을 해준다. 그러나 올이비아는 한번 이혼 말이 나온 이상이니 자기는 사실로 이 집에서 나가겟 다고 그 태도는 일변(一變)해저 버렷다. 이러한 결말에 와서 죠 - 지는 다 시 올이비아에게 구혼을 하게 되고 그 조건으로 지금지 완강히 거절해 오 든 디나와 브라이안의 결혼을 허락해주게 되엇다. 맨 테 가서 죠 - 지는 창(窓)에다 미래파(未來派)의 커 - 텐을 걸으며 이 희극은 웃음 속에서 마 치게 된다.
그러치만 유 - 모어와 기지(奇智)에 찬 이것은 희극다운 희극으로서 영국 (英國) 아니라 미국서도 상연(上演)되어 호평을 어덧다. (이것도 내종(乃 終)에 소설로 개작되어 출판하얏다.) 이만츰 와서는 밀˙ 도 신문이나 잡지사 로 들어갈 수도 업고 해서 『펀치』 편집도 고만두게 되엇다. 그 뒤로 발표 된 작품은 처음으로 소설 <홍옥(紅屋)의 기괴(奇怪)>, <로맨틱 시대>(The Romantic), <블에즈의 진상(眞相)>(The Truth about Blayds), <도버 도로 (道路)>(The Dover Road), <큰 브럭솝프>(The Great Broxopp)와 성공 (Success)이다.
이 중에서 <도버 도로>란 것이 유명하다. 남녀간 연애, 혼인에 대한 풍자 로도 볼 수 잇는 희극이다. 클에멘스 데인여사의 <이혼법안(離婚法案)는 영국서 불란서로 가랴면 반드시 도버를 지내야 하고 도버를 지내랴 면 반듯이 이 도로를 지내야 한다. 그런데 이 길가에 라티머라는 독신생 활 부호(富豪)의 집이 잇는데, 이 집주인은 자동차 운전수에게 일러서 불란 서로 도주하는 남녀의 연인들만 잇스면 그 기색(氣色)이 수상만 하면 이 집 으로 유인하야 들이도록 하는 중이다. 일주간식(一週間式) 자기 집에다가 두류(逗遛)시키는 동안 그 두 사람이 사실로 서로 사랑하는가를 냉정하게 생각케 하도록 시련(試鍊)해 보이랴는 이다. 그런데 이곳에 레오나 - 드 와 앤이라는 부부(夫婦)와 니콜아스와 유스티쟈라는 애인이 들어오게 되엇 다. 레오나 - 드 부부는 니콜아스와 유스티쟈가 사랑하는 처지에 웨 도망을 가는가 하고 이상히 녀긴다. (자기들이 부부임을 불고(不顧)하고) 그러는 중 레오나 - 드와 니콜아스˙ 두 남자는 남녀간의 애정, 혼인 문제에 대하야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되엇다. 더구나 여자 맘의 기이함에 대해서는 두 사람 은 의기투합이 되엇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여자를 각기 내버리고 두 남자 리만 불란서로 도망을 가게 되고 주인 라티머는 앤과 의기투합하야 부 부가 되려는 포옹을 하게 되엇다. 이곳에서 막(幕)이다.
그의 극은 경쾌한 대신에 경솔하고, 유모어가 잇는 대신에 천박하고, 환상 과 웃음이 잇는 대신에 넘우나 아동극답게 된 결점이 잇다. 그럼으로 일부 에서는 공격하는 이가 잇다. 다른 소설이나 시도 그러치만 더욱이 극은 어 점으로 보아서 그 시대의 민중의 호상(好尙)을 나타내는 것이다. 더욱이 밀의 극이 그러타. <도버 도로>와 가튼 남녀간 사랑 문제를 취급한 것도 업 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 중의 신경과민한 민중들에게 한 잔의 소다수나 유희 기분에 지나지 못한 점이 잇다. 그러니 밀이 호평을 엇고 인기를 엇기도 1917년부터 20년 전후지, 즉 전쟁 중과 직후(直後)가 제일 심햇든 것을 보아도 안다. 그런데 밀이 후일지 기억이 될가는 아즉 판단치 못하겟다.
다만 바리와 공동(共同)한 인정미와 유모어와 환상과 기지가 풍부한 점에서 는 보편적이 아닐지라도 상당한 애호자를 어드리라고 밋는다. 이 특색이 잇 기 문에 근일(近日)은 여러 가지의 시, 동화에 만히 힘쓰는 모양이다.
『우리들 아주 젊엇을 』(When we were very young)이라는 동요시집(童 謠詩集)은 수년간에 십판(十版)을 넘겻다고 한다. 이 외에도 시집 등속(等 屬)의 여러 가지 작(作)이 만흐나 극작가로서의 그를 소개하는데 불필요할 가 하야 이만 둔다. (1926. 1.)
2.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 伊[이])
구주대전이 옴갓 인생의 부문에 일으킨 변혁과 개조는 내가 여기서 노노 (呶呶)할 필요가 업다. 다만 극단에서는 어한 변화가 잇섯는가를 지적하 면 족하다.
전후에 (는 전전(戰前)에 벌서 그 맹아를 가젓든 것도 만치만) 세계의 극단을 풍미하는 것은 물론 독일인들의 표현주의다. 이것은 풍미한다는 것 보다도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잇다. 비록 표현주의가 넘우나 ‘정신’을 무시 하고 ‘영혼’을 고창하는 대로서 벌서 그 반동이 일어나기 시작한다고 할 지라도 확실히 표현주의자는 이십세기의 입센랄 만큼 금후의 극작가에게 한 방향을 지정해준 것으로 의심할 수 업는 사실이다.
그러나 표현주의는 내관(內觀), 주관(主觀), 가이스트의 선풍(旋風)에 몰 이어 그 바람결로 인하야 신경향을 정해주는 대에 반하야, 내용이나 주관은 고사하고 재래의 극 전통에 반항하야 외관(外觀), 객관상(客觀上)의 신형식 을 발견한 이가 생겨낫다. 환언하면 표현주의자는 자아의 절규자임에 반하 야 후자, 즉 신형식 발견자는 무대상의 온갓 것을 파괴하려는 반역자이다.
그리해서 전후의 영미(英米) 극단에서는 소위 노대가들의 여전한 사실주의 (寫實主義)가 횡행할 , 불란서에서는 전전(戰前)의 세계에서 아즉도 리를 버리지 못한 신이상주의가 종행할 , 독일서는 표현주의가 천하 를 풍미하고 잇고, 이태리에서는 신반역가(新反逆家)가 나타낫다. 전통의 국(國), 예술의 국(國), 문예부흥 이후로 폐기니즘에 골몰하든 이태리, 북 구(北歐)에서 독일에서 영국에서 독창력 잇는 작가 신운동이 족생(簇生)하 는 동안에도 역시 다눈초에서 일보를 더 나가지 못하든 이태리, 여긔에서 일(一) 대작가가 나왓다. 즉 ‘루이지 피란델로’다.
피란델로는 일본 극단에서도 상당히 소개되 잇고 축지(築地) 소극장에 서도 두어번 상연된 일이 잇섯슴으로 알 이는 다 알 테지만 그 작품은 아즉 지 상기(上記) 상연된 두 작품 외에는 소개되지 못하얏다.
구미 극단에서도 각 도회지의 유명한 극단에서 반듯이 그 흥행목록 중 에 편입됨에 불구하고 작품의 번역은 다 되지 못한 모양이다. 이것은 다음 에 차차 기록하려는 바이지만 피란델로의 극이 닑는 것을 위함보다도 무대 상의 실지(實地) 상연에 적당한 곳에 그 특색이 잇는 닭이 아닌가 한다.
나는 영역(英譯)으로 다음에 소개하려는 육종(六種) 밧게 못 보앗다. 좀 불 철저한 감이 잇지만 반역자로서의 피란델로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일린(一 鱗)으로 전표(全豹)를 들어내기가 족하다고 생각한다.
2.
피란델로의 경력을 잠간 말해 두자. 금년에 사십구세이니 1867년 출생이 다. 씨시리아도(島)에서 난 것, 기리시아 이주민인 부(父)와 토착인이든 모 (母) 새이에서 난 것, 이 두 가지가 그의 천재에 영향이 업섯는가를 추측해 볼 만하다. 풍광적(風光的) 미(媚)하고 태양빗이 센 남이태리(南伊太利), 지중해에서 자라난 점으로서 그이의게 사상으로든지, 작품상으로든지, 강렬 한 다혈질의 기분이 넘친 것을 수긍하겟다. 어머니 압헤서 쓰는 어린 애가 손에 닷는 대로 내젓고 여무치는 것처럼, 재래의 온갓 전통이란 인 습(因習)이란 전혀 불고(不顧)하고 발 아래에 짓발버내리는 것을 보면 알 터이다. 어려서는 아주 자체(自體)가 허약햇든 모양인대 그 안에서도 신동 이라 일켤을 만큼 집안 사람을 놀내게 한 천재의 예민한 곳이 잇섯다고 한 다. 우수한 성적으로 초등, 중등교육을 맛치고서는 미라노 대학에, 나중에 는 본 대학에 유학(留學)하야 철학과 언어학으로 학위를 어더가주고 와서는 이래(以來) 저작과 교육에 몰두해 왓다. 대학시대나 다름업시 1907년 이래 로 로 - 마 고등여자사범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잇는 동안에도 그는 독서를 여간 아니 햇든 모양이다. 대학시대에는 과도히 한 결과 극도의 신경쇠약에 걸닌 일지 잇섯고 어 이는 이 닭으로써 오늘 그로테스크파(派)의 용 장(勇將)이 될 원인이라고지 설명하느니가 잇다. 이 동안도 고심으로 저 작에 곤몰(涃沒)햇다. 1889년부터 쓰기 시작하야 1921에는 그이의 대표작이 라는 <작자를 구하는 육인의 등장인물>로써 세계적 작가가 되고 지금지 쓴 것은 시, 소설, 극 합하야 근 사백종이나 된다고 한다. 괴 - 테의 『로 마 비가(悲歌)』를 번역하고, 유리피데스의 『편안신(片眼神) 싸이클옵』을 씨시리아 방언으로 번역하고, 『문다르드폰질겐티의 음(音)과 그 변천』을 독일문(獨逸文)으로 발표하고, 1894년에는 소설집 『사랑』을 발간햇다. 이 부터 전쟁 전지 그이는 일반에게 소설 작가로 알니게 되엇다. 그의 제이(第二) 저작집 『일년간의 이약이』가 발간되엇다. 이것은 일년간 삼백 육십오일을 두고 매일 하나식(式) 닑기 위한 『일천일야담』과 비슷하게 편 찬한 것이다. 이 중에서 <적나(赤裸)의 생활>은 그이의 특징을 가진, 그러 나 결점 만흔 작(作)이라고 한다. 그의 소설 중에서는 1904년 작인 <고(故) 마티아 파스킬>이 걸작이라 할 것보다도 이태리 문단에 어 힘 잇는 기운 을 반향(反響)잇게 던진 것으로서 불, 독, 영 각국어로지 번역된 명작이 다. (파리서 앨비에가 영화로 만든 것이 재작년 겨울 일이다.) 소설가로 일 반이 알고 잇든 그는 처음으로써 <시실리아의 리암수(樹)>라는 극을 썻다.
그리고나서는 최근지 그는 연속 극작을 발표하고, 극운동을 닐으키고, 극 장을 세우고 하야 소위 그로테스크파의 투장(鬪將)으로서 오늘은 세계적 인 물이 되엇다.
여긔서 그로테스크파를 잠간 말해 두겟다. 그로테스크란 말은 인문, 동물, 목엽(木葉) 등을 혼교(混交)해 그린 괴기한 그림에서 나온 말이다. 1915년 치아렐리란 작가의 <가면과 안면>이라는 극의 부제인 그로테스크에서 이 파 의 명칭이 나온 것이다. 피란델로의 <그럿치! 그럿케 생각하면>에도 패러블 이라는 부제가 붓흔 것과 가티. 결국은 재래의 전통, 인습(因習), 안이(安 易), 오만한 블죠아 세계를 파괴하랴는 운동이다. 이 점에서는 마리네티의 미래파와도 동일하나 그러나 일보 더 나가 극 전통의 전혀 새로운 파괴에 서 잇다. 유명한 골베르그도 그 저서 중에서 “몃 가지 선언을 가진 미래파 보다도 더 새로운 공기와 사실을 이태리 극단에 준 것”이다. 그리해서 피 란델오는 이 파의 용장(勇將)으로 특색과 독창 잇는 작품을 내노을 아니 라 라마(羅馬)에 사백명 수용할 소극장을 창설하야 자기가 연출자가 되여 가지고 분투하는 중이다.
피란델로의 극작으로서는 내가 본 것은 <작자를 찻는 육인의 등장인물>, <끗 안난 희극>, <엔리코 사세(四世)> 삼막의 비극, <그럿지! 그럿케 생각 하면> 삼막의 우의극(寓意劇), <다 제멋대로> 합창적 막간극이 잇는 이막 혹은 삼막의 희극, <정직의 쾌락> 삼막의 희극, <나체> 삼막극.
3.
먼저 그로 하야금 세계적 명성을 엇게 한 대표작 <작자를 찻는 육인의 등 장인물>, <끗 안난 희극>을 검토해 보자.
이 작품이 처음 쓰이기는 1922년이다. 로 ― 마에서 처음 올랏슬 관객 들이 미증유(未曾有)의 기발한 기교와 내용에 놀래어 얼마나 훤조(喧噪)하 얏는가는 그가 거년(去年) 일월 뉴육(紐育) 『타임스』 기자에게 한 말로서 상량(想諒)할 수가 잇다. 전쟁으로 해서 신경질이 된 관객들은 무대 압지 와서 배우들과 작자를 욕하기 시작하드니 휴게(休憩)시간에는 로비(휴게 낭 하(廊下))에서 말다툼이 닐어나 심지어 쌈지 닐어나게 되엇다. 막이 내린 뒤에 작자가 나와서 인사를 하려고 할 는 이삼십 명의 관중이 어 올라 와서 “이놈! 네가 관객들을 놀려먹는 모양이냐!” 하고 주먹을 내밀엇단 다. 겨우 피해 나와서 보니 극장 압헤서도 쌈이 닐어나고 자기 집지 하 와서도 별별 욕을 다 햇다고 한다. 미라노에서 상연햇슬 는 작자를 욕하 는 편과 옹호하는 편 사이에 큰 쌈이 닐어나 내종(乃終)에는 어 군인들 사이에 결투지 닐어나게 되엇단다. 이러한 작자의 말에는 물론 그 일류의 과장이 잇섯겟지만 하여간 재래의 극과는 얼마나 다른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잇다. 동시에 일반이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는 이태리만 아니라 구미 각국 극장에서 상연하고 불국(佛國) 정부에서는 ‘레죵 드 노 ― ㄹ’ 십자장(十 字章)지 주게 된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시대의 인심에 영향이 잇섯는 가를 알 수 잇다.
이 극은 처음 보면 잘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회화가 전광석화적으로 되어 잇고 소위 우고기가 만흔 것은 고사하고 기교가 이상야릇하야 어찌된 심판 인지를 모른다. 그럼으로 보통 재래의 극작가가 취급할 만한 플오트로 고처 설명할 필요가 잇다.
‘부(夫)’라는 중류계급이고 소양 잇고 아주 인간적인 동시에 철학적인 남자가 잇섯다. 그는 ‘모(母)’라는 빈궁하지만 애련심이 만코 아즉 모성 적인 여자와 결혼햇다. 이 두 부부 사이에 ‘자(子)’라는 집요완강(執拗頑 强)한 성질의 아들을 나핫다. 이런 평화한 가정은 보통 인생 생활에 흔안 일이다. 그러나 여긔에 비극적 도화선에 불 부티는 이가 어 들어왓다. 즉 ‘부’의 비서역 혹은 서기다. ‘모’와 이 남자 사이에 처음에는 서로 이 해하고 지내는 듯 보통 주종간의 다정한 눈치이엇슬 이다. 그러나 한번 일이 틀리게 되자 이 가정에는 의구(疑懼)와 시기(猜忌)의 바람이 돌기 시 작햇다, 서로 무언 중에. ‘부’는 기년간(幾年間) 이 꼴을 보면서도 혼자 갑갑하고 혼자 속 태우기만 하얏다. 그러나 필경은 그 자를 축출햇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 마음 외에 다른 업시 ‘자’를 농촌 유모의 집으로 보내어 신선한 공기 속에서 키우게 하얏다. 그러나 한번 배태된 비 극의 씨는 돗기 시작햇다. ‘모’는 주인을 일허버리고 모르는 사람에게 려가는 개 모양으로 집안을 이리저리 정신 업시 헤매고 다니는 불상한 ‘자녀(子女)’가 되엇다(‘부’의 말), 여(女)는 더구나 ‘자’를 촌으로 내보낸 것을 악의로 생각햇다. 그러는 중에 ‘부’는 참다못하야, “차마 보기가 어려워”, 또는 “제일 자기가 살 수 업어” ‘모’를 내찻다. 궐 녀(厥女)를 불상히 녀기고 동정하는 마음으로 는 궐녀 아니라 자기지 “해방을 어드려고” 한 일이다. 그리고난 뒤에도 ‘부’는 “도덕적 건전 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햇고 나간 뒤의 두 남녀가 새로운 가정을 맨들 것을 깊은 동정과 사랑으로 보고 잇섯다. 과연 삼남매를 나케 되엇다. ‘이 부(異父)’ 과 ‘산아이’ 와 ‘계집아이’ . ‘부’는 이부딸이 다니는 학 교 압지 가서 사 가지고 온 맥고모자(麥藁帽子)와 꼿뭉텡이를 주기도 하 고 뒤로 불러 가지고 이약이를 뭇기도 햇다. 남의 을 이러케 생각하는 동 안 그의 집에는 ‘자’가 돌아왓다. 그러나 ‘부’와 ‘자’ 사이에는 아무 런 공통될, 동정될 사랑이란 전무(全無)햇다. “이상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남에” 불과햇다. 이런 고독한 생활을 위안할 것은 다만 매일 학교 압헤 가서 이부을 맛나 귀여워하는 일이엇다. ‘모’는 이것을 알고 학교를 못 가게 한 일도 잇섯다. 그러는 동안 남자, 즉 ‘모’의 정부(情夫)가 죽 어버리게 되엇다. ‘모’는 글자 한 자 쓸 줄 모르는 여자임으로 비참빈궁 (悲慘貧窮)한 중에 직업을 구하려고 세 남매 자식을 데리고 ‘부’ 잇는 마 을로 들어왓다. 그래서 ‘패 ― 스 부인’이라는 이의 집에 출입하면서 바 느질품을 들게 되엇다. ‘패 ― 스 부인’은 외면으로는 상류 교제사회의 귀부인들에게 재봉을 마타 하는 체하고 이면(裏面)으로는 음매(淫賣)의 중 개인 노릇을 하는 쟁이엇섯다. ‘모’의 바느질감을 ‘이부’이 가지고 가면 ‘패 ― 스 부인’은 바느질이 잘못 되엇느니, 이곳이 어졋느니, 저 곳이 버리게 되엇느니 하고 배상(賠償)을 요구햇다. ‘이부’은 차마 ‘모’에게 돌우 가지고 가서 다시 바느질을 하게 하거나 부족한 대가를 물 리게 하지는 못햇다. 그 결과 ‘패 ― 스 부인’의 유혹은 이 철 모르는 계 집애를 희생에 집어너케 되엇다. 물론 ‘모’는 아모 것도 몰르고 잇섯다.
이럴 ‘부’는 종적을 일흔 ‘모’ 세 식구를 점점 이저버리게 되는 동 시에 ‘건전한 도덕생활’을 노력하면서도 인간성의 피할 수 업는 고민에 지게 되엇다. 가정이란 자기와는 아주 다른 여자 밧게 업는 공허냉냉(空 虛冷冷)한 곳이엇다. “여자를 전혀 이저버릴 만큼 늙지도 안코, 또는 수치 심 업시 이성(異性)을 낙글 만큼 젊지도 안흔” 그이는 비참과 공포의 극도 (極度) 중에서 고민햇다. “독신 생활하는 남자로서 이성 간의 관계를 천시 하는” 비참한 생활! 그러나 그는 필경 외면상의 위엄을 안 돌볼 만큼 자연 의 충동에 리어 ‘패 ― 스 부인’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엇다. 두 남녀가 서로 맛나지 못할 장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잇서서는 못 될 장소”에서 ‘부’와 ‘이부’은 맛나게 되엇다. 더구나 ‘이부’은 그 아버지 죽은 뒤 두 달도 못 되어 상복을 닙은 채로 ‘그리 젊지 안흔 손 님’인 ‘부’와 맛나게 된 것이다. 그 현장에서 ‘모’가 어 들어왓다.
비참의 절정에 세 남녀는 울엇섯다. 그리하야 다시 ‘부’와 ‘모’와 ‘이 부’, ‘산아이’, ‘계집아이’, ‘자’가 다시 한 가정에 모이게 되엇 다. 그러나 ‘자’는 자기가 적자(嫡子)이고 남아지 세 제매(弟妹)는 사생 자라는 생각으로 대하게 되엇다. 이 신가족들이 ‘부’에게 돈을 어들 에 도 ‘자’의 눈에는 “의무적으로 주는 것가티” 보여서 불유쾌함을 금치 못햇섯다. ‘이부’, 실상(實狀)은 자기의 ‘이부매(異父妹)’되는 이를 “이것도 너의 어머니다”하고 소개바들 , 전후곡절(前後曲折)을 알아채 리게 된 뒤부터는 더욱 그러햇다. 부자연한 이 가정 안에 필경은 이 왓 다. ‘계집아이’는 정원 분수지(噴水池) 속에 익사하게 되고 ‘산아이’는 공포에 못 이기어 피스톨 자살을 하게 되고 ‘이부’은 절망하야 집을 어나가 다시 매음(賣淫) 생활로 들어가 ‘부’ ‘모’ ‘자’ 세 사람만 남 게 됨으로써.
4.
이러한 소재를 가지고 피란델로는 어케 극화하얏는가 반혁자(反革者)로 서의 요점이다. 이것을 말하기 전에 그가 예술과 인생에 대하야 어 생각 을 가지고 잇는가를 연구해 보자.
어네스트 보이드라는 이의 지적과 가티 입센이 낫슬 ‘입세니슴’이 잇 섯고 쇼 ― 가 썻슬 ‘쉐 ― 비아니슴’이 잇섯든 모양으로 피란델로에 게도 확실히 일종의 ‘피란델이슴’이 잇다. 쇼 - 의 극에 독특한 쇼 - 식 (式)의 성격과 행동을 가진 인물이 잇서 마치 입센이 서구 극단에 대한 자 극과 가튼 일종의 영향을 영국 극단에 주엇다. 마챤가지로 피란델로의 극에 도 피란델로식(式)의 인물이 ‘피란델이슴’의 철리와 행동을 표현하야 이 태리 극단에 큰 파동을 주엇다. 이 ‘피란델이슴’이야말로 그의 독특한 인 생관, 예술관을 표현하는 가장 적당한 말이다. 사람, 왼갓 인생의 행동에는 변할 수 업시 본상(本相)이 내재하야 잇다. 이것은 그의 말대로 하면 컨센 스다. 이 양심이란 자가 잇기 문에 인생이라는 현실이 생기고 ‘극’이 생긴다. 이 양심은 만인에게 공통할 동일할 것이지만, 사실인즉 보는 사람 마다 각양각색으로 보인다. 그 닭으로 한 행동을 판단하려 함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웨 그런고 하니 그에게 보이는 양심과 저이에게 보이는 양심은 동일하지 아니함으로 더구나 한 개의 행동만으로 그 사람, 그 사물 을 판단하려는 것도 절대 불가능이다. 그것은 웬 닭이냐. 여기서 햄릿의 고민하든 철(轍)을 다시 밟게 된다.
문제 닐어나는 닭은 다름아니요. 말이오. 말, 말. 말이 잇기 문에 모든 착오가 생긴단 말이요. 다 제 각기 제 속에 제 세계를 갓지 안핫 소? 그런데 제가 보는 대로 가치와 을 말로부터 내놋는다고 합시다.
그러면 듯는 이는 역시 자기파(自己派)로 번역해 노코서 보니 남을 이해 할 수가 잇는 일이요. (‘부’)
이럼으로써 진리란 것은 결코 존재할 수 업다는 말이다. 오늘 이 나의 진리가 타인에게도 진리가 못되거든 하물며 타처(他處), 타시대(他時代)이 랴. 진리처럼 보이는 모든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이 각기 고집하는 진리 문에, 즉 양심의 다양다모(多樣多模) 문에 쟁투가 닐어나고 인생이 생 기고 극이 생긴다. 이것이 그의 철리(哲理)의 대강이다. 이만한 생각은 누 구나 다 생각할 만한 별로 신기(新奇)로운 것도 아니지만, ‘피란델이슴’ 의 특징은 이러한 철리를 구체화하야 내놋는 예술관에 잇다.
“나는 삼십년래(來) 변함이 업는 유모리스트다.” 그럼으로 그의 특색은 아이로니ㅋ 한 신듀에숀을 보는 대에서 나타난다. 인간성의 윤리적, 혹은 정 신적의 행동 안에 외면으로는 희극적이면서도 내면으로는 비극적인 것을 발 견한다. 이것은 쇼 - 와 공통된 점이다. (쇼 ― 가 “어 시대, 어 사람 에게든지 최량(最良)한 희곡이다.”하고 <육인(六人)의 등장인물>을 칭찬한 것을 보아라.) 즉 외상(外相)과 내상(內相)의 대조(對照)며 상관(相關)인 곳에 극적 동요(動搖)가 잇다. 즉 외형과 리알리티 사이에 환상과 현실 사 이에 닐어나는 착오, 망탄(妄誕), 배리(背理)다. 그의 예를 들면, 살아가고 잇는 사람 압헤, 이를테면 정열에 한참 타고 잇는 사람에게 그 면전에다가 면경(面鏡)을 들이대 보여 봐라. 자기의 모양에 흉해 작 놀라 거나 자기를 안 보려는 마음으로 슬적 외면을 하거나 화(火)를 버럭 내어 자기의 비췬 얼굴에 츔을 탁 뱃거나, 혹은 그것을 털여 버 릴랴고 주먹을 내두를 것이다. 만일 그가 울고 잇섯드면 더 울 수 업을 것이고, 웃고 잇섯을 것이면 더 웃지 못할 것이다. …… 요컨대 어할 수 업시 고통의 표현이 잇슬 것이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도 이와 동일하다. 예술은 이러한 대서 출생한다. 자연 이 고원(高遠)한 창조의 목적을 달(達)키 위하야 사람의 공상(空想)이라는 수단을 사용한다. 그리해서 인간, 작자, 창조의 수단, 모든 것은 다 멸망해 가지만 작품만은 영원히 살아간다. 산치요 판서가 그러치 안핫나? 돈 아보 디오가 그러치 안핫나?
5.
이상(以上)의 철리(哲理), 예술관으로써 <작자를 찻는 육인의 등장인물>을 맨든 피란델오의 기교를 보쟈.
제삼단(第三段)에 말한 육인은 즉 ‘작자를 찻는 등장인물’이다. 그들은 어한 환상이다. 비현실이다. 모든 것은 여러 가지의 형상(形狀)과 형체 (形體)를 가지고 생기게 된다. 나무, 돌, 물, 나비, 여자, 그런 것들 모양 으로 극의 ‘등장인물’도 생겨난다. 각기 안에 각기 세계와 힘을 가지고 극 될 만한 모든 컨센스를 가지고 태어낫다. 그런데 어 닭인지 이 ‘육 인의 등장인물’을 맨들어만 노코 극으로 살림이 업시 작자가 업서져 버렷 다. 그래서 육인은 무대 우에서, 즉 인생에서 영원히 살 욕심으로 작자를 (누구든지 간에) 차지랴고 어 극장 무대 안으로 튀어 들어온다. ‘육인의 등장인물’은 환상이다. 극장 무대는 현실이다. 앗가 말한 환상과 현실 사 이에 극적 아이로닉한 시튜에숀이 생기게 되는 셈이다. 환상의 육인이 현실 의 무대 안으로! 이것이 좀 너무나 부자연하다고 생각하면 고만이겟지만 피 란델오의 말을 들어 봐라.
부 여보십쇼. 인생이란 괴상한 일이 만히 잇지요. 그래서 괴상한 일이 지만 그 괴상한 것이 사실인 이상에는 죠튼 글튼 간에 조흔 일이 아 니요?
참 괴상한 일이다. 그래서 방금 이 극장 안 무대 우에서 그리 걸작도 아닌 피란델오라는 작가의 <뒤범벅>이라는 각본의 무대 연습을 하는 중에 작자를 찻는 육인의 등장인물이 틈입해온다. 무대 연습은 중지된다. 거기 잇든 여 러 남녀 배우, 프롬프터, 무대 주임, 도구계, 장치계들이 반은 구경거리 로 반분(半分)은 놀랜 얼굴로 보고 잇는 동안 무대 감독과 육인 사이에는 점점 환상과 현실의 혼합이 생기기 시작한다. 소년은 누구든지 간에 새로 작자를 차저서 영원히 살고 십흐니 당신이 우리들의 작자 노릇을 해 달라고 한다.
감독 …… 하지만 무슨 일이 잇서 여긔를 들어오느냐 말 이야, 모도들?
부 살구 십허서 들어왓다니.
감독 (흉보듯이) 영원하게 살랴고?
부 아니요. 잠간 동안만 …… 여러분의 몸만 빌려주 시면.
한 남우(男優) 웨, 웨, 웬 소리야!
주역 여우 몸을 빌려 달라구!
청년역(靑年役) 남우 (이부(異父) 을 가리키며) 나는 저이만 들으면 그래 줘도 관계업지만.
부 아이 내 말들어요. 이 희극을 맨들어야 합니다.
(감독에게) 여러분이 승낙만 하시면 우리들은 곳
맨들겟슴니다만.
감독 (성이 가신듯이) 무엇을 맨들겟다고 이 모양이야?
여긔서는 맨드는 곳이 아니래도. 여기서는 비극이
나 희극을 연출하는 무대라니.
부 그러치요. 그러니 말이얘요.
감독 각본은 어디다 두고.
부 각본은 우리들 속에 잇지요. (배우들이 웃는다.) 우리들 속에 극이 잇고 극이 우리들이지요. 곳 극
을 하고 십어 못 견디겟는데요. 우리들 속에 잇는
정열이 가만이 잇지를 못합니다.
이부 (젊쟌흔 체, 비웃듯, 반항적이고 앙잘지게) 감독 나리, 이 내 정열이! 아! 나리가 아실 수가 잇서
야지! 이 양반에게 대한 내 정열! (부를 가르치면
서 어 안으랴다가 졸지에 큰 소리로 웃어버린
다.)
부 (화를 내어) 시업다! 그 위 웃음을랑은 고만 둬!
이부 여보셔요, 여러 양반들, 우리 아버지 죽은 지가 불과 두 달이지만 춤 한 번 춰 들일요. 노래
지 서 (추면서 Prenez Garde a Tehou Thin
Tchou를 부른다.)
청국(淸國) 애들이 어이 무서워,
상해(上海)서 북경(北京)지도
여긔저긔 도배(塗褙)만 하고
챠우, 틴 챠우, 조심하소들.
배우 등 용타! 용타! 명창이다.
감독 시끄러워! 여긔는 카페 집이 아니야! (놀래어 부 에게) 미첫소. 저 애가?
부 미처? 미친 것보다도 더 하다우.
이부 더 해? 더 해? 날 보셔요. 이 극을 곳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 모도 아실 테니 심지어 어 장면
에 가서는……
이러케 하야 가공의 육인의 등장인물은 현실의 무대와 혼합하고 융화되여 필경은 무대감독이 이 극의 ‘플오트’을 의논하야 작정하려고 감독실로 여 러 사람을 더리고 나간 뒤에 무대는 잠간 동안 공허하게 된다. 이것이 보통 으로 말하면 하막(下幕)이 되어 휴게(休憩)가 될 터이지만 막도 안 내리고 그대로 잇다. 여러 사람들과 가티 육인이 등장될 에는 현실과 환상의 혼합이 더 매력잇게 되어 온다. 남녀 배우들이 관객이 되어 가지고 육인의 등장인물이 극을 시작하는 게지만 정말 관객인 우리들 눈에는 우리들 자신 의 악착스럽고 더러운 참극(慘劇)을 거울로 들여다 보는 것 갓다. 제 사단 (四段)에서도 말햇지만 환상과 리알이티 새의 망탄(妄誕)이 말할 수 업는 속웃음 석긴 눈물과 석겨서 희극 시튜에숀이 닐어나게 된다. 더구나 이런 대목이 잇다. 페스 부인 집에서 “힌 빗 호화로운 장식을 한 객실”에서, 커다란 푹석푹석한 누른빗 교의 우에서, 마호가니 탁자 우에는 ‘이부 몸 갑 이백 릴을 너은 청색 봉투를 노흔 엽헤서 부녀가 만날 ‘모’가 어 들어온다.
모 (둘을 갈라 노랴고 달려들며) 내 ! 이 애야! (을 어노코) 짐 승 가튼놈! 개 가튼 놈! 내 을! 내 인 줄을 몰라!
감독 (각광잇는 으로 뒤ㅅ거름질해 나오며) 훌륭하군! 훌륭해! 두말 할 것 업시 됏서! 여긔서, 여긔서 ─ 막이 될 것이지!
이 두 사람의 대화를 보라. 사실과 비죤이 어케 혼화(混化)되엇는가.
‘모’와 ‘부’와 ‘이부’은 역시 무대상의 환상이다. 그리고 훌륭하다 고 드는 감독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들 눈에는 어가. 감독이 거짓 환 상이고 등장인물이 현실이 아닌가. 또는 다만 혼란일가. 아이로니다. 풍 자나 재래에 대한 반역이다. 이것은 피란델오의 모든 극의 기조가 되어 잇 다. 재래의 극에서는 도 못 엇든 새로운 기교다. 그 다음 무대 감독이 감탄하야 발하는 “막이 될 것이지, 물론 막이 막!”하는 소리를 도구계가 사실로 하막하라는 말로 듯고 고만 막을 내려 버린다. 이것이 사실상의 관객들로 하야금 휴게케 하는 기록을 맨들어 버린다. 맨 테가서 환상 중의 극적 결말이 올 사실로 ‘산아이’가 놋는 피스톨 소리가 난다.
모 (모두 놀래고 잇는 사이를 타서 수인(數人)의 남녀 배우들과 가티 총소리 난 으로 소리를 지르며 달아간다.) 우리 아들!
우리 아들!
(여러 사람의 지르는 소리와 놀래는 소리에 석겨서)
이걸 어째요! 이걸요, 어째!
감독 (여러 사람을 헤치고 산아이의 몸을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 며) 정말 마젓소?
한 배우 죽겟소! 죽겟서!
다른배우 죽긴 무엇이 죽어. 연극이야 흉내내는 것이야!
부 (공포의 소리를 지르며) 흉내내? 아니야. 정말이요, 참말이 요.
감독 참말이고 거짓말이고 다 쓸대 업서! 내 이런 이란 생전에 처음 당하는군. 쓸 대 업는 사람들 가지고 하루 종일 다 허비
햇군. 왼 하루를!
이로써 정말 이 난다.
이 극을 풍속 괴란(壞亂)이 된다고 하야 작년 녀름 영국서 상연금지를 당 햇다가 이태리국에 와서 이태리말로 연출할 에는 지식적, 계급시선이 올 터이니 염려업다고 당장 허가를 내렷다고 전한다.
6.
해설이 부족하다 함보다는 이 극의 신기하고 파천황(破天荒)한 기교와 피 란델이슴의 묘미를 알랴면 직접 자기가 작업을 무대 우에서 볼 필요가 잇 다. 필요가 잇다는 것보다도 반듯이 그래야 한다. 웨 그런고하니 무대상이 아니면 결코 환상과 현실의 극적 시튜에숀을 보지 못할 더러 그 대화가 살고 활기가 잇기 문에 시와 가티 유수(流水)의 유창함을 구하렴보다는 급류의 조폭(粗暴)한 유모어를 가젓기 문이다. 그의 다른 극도 다 그러 타. 나는 차차로 그의 다른 극을 소개하려하나 넘우 길어질가 하야 간단하 게 쓰겟다.
그가 구주대전 중 발간된 『Ppola La Tra』라는 책의 서문에서 자기의 창 작 경로를 기록한 일이 잇다. 매주 일요일 아츰이면 조용히 안저서 자기의 등장인물과 교제하며 안젓다. 자기의 작품 안의 인물들 아니라 다른 작가 들의 인물지도 나타난다. 나무, 돍, 물, 나비, 여자, 그런 것들과 마챤가 지로 어 인물이 생겨난다고 하쟈. 그것은 아즉 환상이다. 추상이다.
그러키 문에 구체적으로 살랴고 작가, 즉 예술가를 구한다. 그래서 피란 델로 생각에 만일 그 인물들이 불충분하거나 잘 되지 못하얏스면 그 인물들 이 그에게 달려들어 다시 영원히 살려달라고 간원을 한다. 그러나 자기가 그 원(願)을 들어줄 수는 업다. 웨 그러냐 하면 죠튼 글튼 간에 우리 인생 의 금일, 명일의 변천 모양으로 변하지 안코 영원한 것이니. 작자가 한번 창조한 인물이 잇스면 그 시간부터 작자도 아모 힘이 미치지 못한다. 그 인 물이 하고 십흔 대로 환경과 성격과 욕망대로 하지 안흐면 안된다. 아주 현실적이고 영원한 인물이기 문에 어대지든지 독립독보(獨立獨步)로 살 아갈랴고 하는 닭이다. 아버지가 한번 아들을 나하 노흐면 나하노키는 햇 지만 아버지의 과 힘이 개성으로 나하논 아들에게 무슨 힘이 미치랴. 이 곳에 환상과 현실의 관계가 잇다. 이곳에 극적 시튜에 - 손이 닐어나게 된 다.
이 한 가지 예는 엔리코 사세(四世)에서 볼 수 잇다. 엔리코 사세(헨리 사세)는 십일세기 법왕과 황제 사이의, 즉 정교(政敎) 사이의 쟁투를 잘 대 표한 사람으로서 육세 이태리 게루마니, 불군디의 제위를 계승하야 이래 오십여년간 법왕의 세력과 싸운 이다. 역사상으로 당시 법왕의 세력이 극한 그레고리 칠세가 온갓 정권지 좌우하게 되어 가지고 심지어 파문한 헨리 사세를 카다싸 궁전으로 불러들여 삼일간 겨울 눈 오는 중에 참회복(懺悔 服)을 닙힌 대로 뜰에다 세워 두엇다는 것은 유명한 이약이다. 그러나 헨리 사세는 오만강직(傲慢剛直)한 성질과 정치적 수완으로 항상 법왕의 세력과 다투어 왓다. 법왕의 세력에 대하려 함인지 온갖 굴종을 감수하고도 지위 업는 제후들과도 우의가 잇섯다 한다. 십육세 1066년에 싸보이백(伯) 오 토의 베르타와 마음에 업는 결혼을 하고 그이가 죽은 뒤 1087년 삼십칠 세 아들에 - 드(본명 프레세디스)와 결혼햇다. 이 여자도 헨리 사세를 배반함이다. 터스카니 여후(女候) 마틸다라는 이는 구레고리 다음 법왕 우르반 이세의 일당(一黨)인 벨포와 결혼하야 헨리 사세에게 적대한 여정객 (女政客)이지만 1097년 헨리가 겔마니로 돌아와 다시 세력이 회복되엇슬 그 압헤 항복하야 남편으로 하야금 다시 바바리아 백(伯)으로 봉(封)하게 한 이다. 여자 혼자 몸으로 지위, 처지로써 정쟁(政爭)에 관계하야 항상 법 왕에 가담햇지만 신심 잇고 학식 잇든 여자엿다. 이외에 헨리의 어릴 에 사전(師傳) 노릇을 하고 내종에는 궁중의 쟁란(爭亂)을 좌우하는 안노와 아 달베르드, 솨비아 백(伯)인 루돌프 카린티아 백(伯)인 베르톨드 고슬아 에서 결전하랴다가만 오토, 이상의 성명만은 엔리코 사세의 이해에 필요한 이로서 역사상에도 나타난 이름들이다.
이러한 역사상의 인물을 잡아다가 근대 보통작가가 썻슬 것 가트면 어 종류의 역사극을 맨들엇슬 것인가. 능히 추측할 수 잇다. 그러나 결국 역사 극을 쓴다면 고대의 역사적 인물의 어 성격, 경우, 시대에 관계한 비판, 갈앙, 혹은 예찬으로 될 것이다. 그러나 피란델오는 여긔서 한 피란델이 슴을 발휘하얏다. 이 극의 주인공은 그 이름과 한가지로 그 특수(特秀)한 통찰력과 시적 상상력이 모도 십일세기 독일의 황제이든 그엿지만 여긔서는 팔백여 년 전의 어 영웅의 재현이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순연한 이십세 기의 성격도 아니다. (물론 작자는 역사극으로 쓸 생각은 아니 햇슬 터이지 만)
엔리코 사세 네놈들 모도 천치야! 웨 너이들 자신의 환상(팬다지)을 창 조치 못하늬. 내게나, 날 보러 오는 누구든지에게 상관 업
시, 자연스럽게 단순하게 남 상관 말고 매일 십일세기의 역
사 속에서 살아보지 못하늬. 이곳 너이들 황제 엔리코 사세
의 궁전 속에서! 웨 너이들이 호흡하는 공기와 한가지로
을 마셔 들이지 안하! 인 줄 알고도 이 에 사는 특권을
향락해야지! 먼 과거의 , 그러나 현실의 을! 생각해 봐
라. 빗이 흐리고 그림자가튼 팔세기 이후의 거리에 안저서
이십세기의 오늘 백성들이 자기네들 운명이 어케 되어 가
는 것도 모르고서 헛 애만 아츰부터 저녁지 쓰고 잇는 것
을!
엔리코 사세는 터스카니 여후(女候) 마틸다 신심(信心)과 눈치를 바다가면 서도 그의 프리 - 다 에게 사랑을 품고 잇다. 남들은, 다른 모든 고문관 들은 심지어 의사들지도 자기를 광인으로 알고 잇다. 그래서 제삼막 테 가서는 마틸다에게 사랑을 품고 잇는 줄 아는 티토벨크레디를 검(劒)을 발 (拔)하야 러 죽인다. 그가 제삼막 처음에 광인, 환상의 세계에서 어날 하는 말을 들어보아라. 시월 한 날 공원 화초ㅅ 속에서 조을고 잇다 가 인 승려가 다시 자기의 카톨익교 신앙을 중히 녀기기 시작하듯이 자기 계승해 오는 제위(帝位)를 중하게 녀기기 시작한다고. 피란델오가 쓴 기교 는 여긔서도 환상과 현실의 기묘한 혼화를 맨들엇다. 마치 <육인의 등장인 물>에서 실지 무대와 가공적 인물의 혼연(渾然)한 혼효(混淆)를 맨들어서 거긔서 닐어나는 극적 시튜에 - 숀으로 인하야 환상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환상이 되듯이 여긔서도 역사적 환상 안에 사는 엔리코 사세의 생활이 현실 이 되고 그이를 광인이라 진단하는 주위의 사람들이 환상이 된다.
그리고 여긔서도 진리라는 현실이 환상보다도 더 진리가 업다는 철리 (哲理)를 표현햇다. 사람 사람은 다 제 각기의 사고 방법, 감득 방법, 견취 (見取) 방법을 가저잇기 문에.
말! 말! 모도 제멋대로 번역할 수 잇는 말! 소위 세론(世論)이라는 것 도 이런 것! …… 너의들 속에, 너의들 논리, 너의들의 제도의 논리, 그런 온갓 것을 려 부스는 광인 압헤 면대하고 서서 너의들 어케 생각하니? 흥, 광인, 행복스러운 논리, 아니 털억과 가티 날리는 논리 는 갓지도 안흔! 말만, 짓걸이기만! 오늘은 이것이라지, 내일이 되면 뭐야? 전통, 낡은 인습, 다 집어 치워! 너의들은 살아가는 줄 알지 만 다만 낡은 헌 말만 되풀이하는 게야! (엔리코 사세)
니 - 체 식의 뭇소리니가 나고 헌 교회의 관념을 파괴하는 파피니가 살아 잇는 이런 피란델이슴의 파괴사상이 잇는 것도 당연하지 안흔가.
이 극에 대하야 한가지 비극적 요소의 특징이 잇다. 피란델오의 비극은 소위 고대식의 비극도 아니고, 입센식의 비극도 아니다. 카타르시스라는 것 은 발견키 어려운, 남의 운명의 비참을 동화적 심리로 보는 것이 아니요, 내 자신의 절통한 을 내 자신이 들여다보는, 내가 우는 얼굴을 내가 면경 (面鏡) 속으로 들여다보는 그런 비극이다. 제삼막 테 월광(月光)이 흘러 들어오는 방 안에서 등불을 명(命)하야 자기의 기록을 승려에게 바다 씌이 는 곳은 비극 연구의 새로운 재료가 될 줄 안다.
7.
<그러치!(그러케 생각하면)>은 삼막의 우의극(寓意劇)이다. 이태리의 어 도청소재지인 소도시에 이상스러운 생활을 가진 삼인의 가족이 들어온다.
폰싸라는 청년관리, 그 처, 폰싸의 장모인 프롤아부인. 이 세 사람을 인도 (隣道)의 마르씨카(물론 가공의 곳)라는 마을에 살다가 지진 화재에 모든 것을 일허버리고 이 도시로 들어와서 폰싸의 도청에 출근하는 월급으로 살 아가는 중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폰싸 부인은 당초에 외출을 아니한다.
그리고 삼인이 한 가족이면서도 세층(貰層) 집(테니멘트)의 어 방을 빌어 서 제일 미테는 장모 혼자 살게 하고 오층 웃방에는 부부들이 살면서 부인 과 프로라 부인 두 사람을 격리해 노코 당초에 갓가이 못하게 한다. 두 부 인들 방에다가 잠을쇠를 걸어서 맛나지 못하게 한다고지 소문이 낫다. 어 는 부인이 나와서 소리를 처 부르면 폰싸 부인은 오층 우 발코니에 나와서 줄에 석작을 달아 내려서 편지의 수수를 하는 것을 본 일도 잇다고 한다. 이런 기괴한 신입자의 생활이 이 작은 도시의 모든 남녀를 호기심과 의아심으로 얽어매어 노케 한 것, 곳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호기심에 억매인 사람들의 탐정, 내탐(內探), 추측, 고심프을 바라보고 잇는 라우디 씨라는 중노인(中老人)(피란델오의 철리 소지자)은 소리를 처 웃음만 허허 웃어 가면서
여러분이 알아내긴 무엇을 알아낸다고 그러슈? 다른 사람이 누구며,
무엇이며, 무엇을 하며, 어 닭으로 하고 잇는 줄을 어케 알아낼 수가 잇다고 그러슈?
하고 그 무의미를 조소한다. 이리하야 도윤(道尹), 경시(警視), 순사(巡 査), 여러 계급의 남녀들이 모여서 이 기괴한 삼인 가족의 진상을 알아내랴 하는 경로가 이 극의 삼막 안에 생기 잇는 대화로서 나타낫다. 그이들 압헤 서 하는 부인의 주장은 이러타. 고향에 살 자긔 인 폰싸 부인이 전염 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엇다. 폰싸는 물론 처에게 대한 사랑이 대단 하얏슴으로 그것으로 인하야 정신이상이 생겨서 자기 처가 죽은 줄로 알고 잇섯다. 이 다 전치(全治)되어 퇴원햇슬 에도 그이는 자기 처가 아니고 다른 여자라고만 주장햇다. 해서 하는 수 업시 전처는 죽고 재취한 처라고 속엿기 문에 지금은 아주 둘이 행복스럽게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자기 지도 여전(如前) 폰싸 부인이 아니고 재취한 폰싸 부인 노릇을 하게 되 엇다. 그리고나니 폰싸는 자기를 광인으로 생각하야 과는 대면도 잘 시키 려 하지 안는다. 심지어 외출지, 방문지도 못하게 한다. 그러나 자기는 자기 눈 압헤 자기 내외의 행복스러운 을 보고 잇스니 무슨 부족이 잇 스랴. 사위에게 광인병 간주 당하는 것을 묵인하고 지내오며 사위의 병 리적 요구도 불평 업시 들어오는 중이다. 그러나 광인은 자기가 아니오, 실 상 광인은 자기 사위 폰싸다. 이와 가튼 프롤아 부인의 주장에 대하야 폰싸 의 진언(陳言)은 이러타. 사실로 사년 전에 자기 처는 병원에서 죽엇다. 그 래서 그 후 이년 만에 현재의 처와 결혼햇는데 어 날 도중(途中)에서 녜 전 장모 프롤아 부인을 맛낫다. 자기 의 죽음으로 정신 이상이 생긴 부인 은 졸지에 자기 은 죽은 것이 아니고 살아 잇다는 말을 하며 홍소를 하기 시작하드니 그 이후부터는 확실히 그런 줄로만 알고 잇다. 그러나 본래부터 부인을 조위(弔慰)햇고 광증도 위험한 편이 아니니 자기가 보호하며 박소(薄少)한 월급으로도 두 살림을 하게 되어 왓다. 그러나 정신적 불완인 (不完人)임으로 외출도 못하게 하고 자기 처와 대면도 금하면서 혹시 어 에는 방문을 잠그기도 해 왓다. 그래서 지금은 아즉 불평이 업을 아니 라 자기에게 남부러울 만큼 호의와 사랑을 가지게 되엇다. 우와 가튼 양편 의 주장에 여러 사람들은 더욱 미궁에 들어가게 되엇다. 무엇보다도 사실, 어느 편이 진정(眞正)의 광인인지를 알아 내거나 그러챤흐면 폰싸가 사실로 재혼햇는가를 알아내야 하겟다. 그래서 사방으로 조사를 하얏스나 진재(震 災) 당한 도시의 기록은 영원히 구할 수 업고, 사람도 다 죽어서 물을 길이 묘연(渺然)할 더러 두 사람의 말은 들을스록 서로 광인이라 하고 자기의 주장을 조리잇게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은 점점 미궁에 들어간다. 이러 할 에도 철학자 라우지씨는
사망이나 결혼이나 그런 서류를 구해서 무엇에 유익하오. 다만 당신네 들 호기심을 만족할 아니요? 다행히 발견할 수는 업게 되엇으니 죠 치만. 그런 증거 서류란 그 두 사람, 자기네들 속, 영혼 속에 숨어 잇 슬 이오. 부인은 사위를 위해서, 남자는 장모를 위해서, 자긔들에게 는 현실인 환상의 세계를 각각 맨들어 노코 잇는 것이지. 그리고 이 환 상의 세계만 가지고 아주 잘 살아가지 안소? 아즉 조화잇게 지내가지 안소? 그런데 이 환상의 세계, 그이들에게는 현실의 세계를 어 기록 이 잇다고 파괴할 수가 잇단 말이오.
맨 테 가서 도윤(道尹)의 명령으로 지금지 누구든지 갓가이 보지 못햇 든 폰싸 부인을 여러 사람 압헤 불러내어 최후의 해결을 어드려고 햇다. 그 러나 그의 대답은 이러타.
뭣이야요? 진상(眞相)? 진상이란 것이야요. 나는 프롤아 부인의 이구요. 폰싸씨의 재혼처얘요. 녜, 그러구 나로 말하면 아무도 아니 야요, 아무도 아니야요.
깁게 썻든 베일을 벗기지도 안코 모든 사람을 한번씩 돌아다 보고는 그만 나가버린다. 이곳에서도 철학자 라우디 씨만은 소리를 내어 허허 웃음 웃고 잇셧다.
사람은 제 각기의 환상, 진리의 세계를 가젓고, 그것으로 행복스럽게 살아간다. 이것을 제삼자는 결코 알 수 업다. 제 각기 생각은 제 각기에게 올치만 다른 이에게도 그럴른지 모르는 닭으로 이러한 생각을 우의적으로 나타낸 극이다.
이 극의 특징은 대화와 동작의 신속민첩(迅速敏捷)에 잇다. 벽두의 말한 바의 상연을 위한 극의 특장(特長)을 여긔서 가장 명료하게 볼 수 잇다.
8.
<다 제멋대로>는 <작자를 찻는 육인의 등장인물>과 가티 작자의 인생관, 예술, 극에 대한 죠흔 표현품이다. 즉 현실과 환상의 혼화(混和), 그의 독 특한 인생관으로 보아서 호개(好個)의 대조(對照)가 될 만한 것이다. <육인 의 등장인물>에서는 현실(무대 연습 중의 무대상) 가운데에 환상(육인의 등 장인물)이 돌입한다. <다 제멋대로>에서는 방금 상연 중의 어 극장의 무 대(여긔서는 환상) 우에 관객과 배우와 무대감독 등(현실)이 어 올라온 다. 즉 이 두 극은 현실과 환상의 혼화가 정반대의 효과를 준다. <육인 의 등장인물>에 나타난 인생 본연의 양심, 컨센스와 각인각양의 부동한 현 실 사이에 닐어나는 극이엇다. 그와 가튼 의미로 여긔서도 피란델오의 인생 에 대한 통찰과 개성이 잘 나타낫다.
이것도 <육인의 등장인물> 모양으로 플오트나 기교가 아주 기이하고 복잡 하지만 여긔서 자세하게 쓸 여유가 업슴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어 극장에 서 델리아 모렐로라는 여우(女優)를 중심으로 한 삼각연애를 주제로 한 극 이 상연중이다. 그런데 이 극이 몃 막이 되는지는 모르겟다. 웨 그러고 하 니 이 극의 모델이 되엇다고 하는 델리아 모렐로라는 여우와 남작(男爵) 누 티가 관객 중에 잇다가 자기들을 모욕하는 것이라 분노하야 무대 위로 어 올라가서 주역 여우(모렐로)의 얼굴과 머리털을 쥐어고 일반 관객들은 분 노하는 남작과 석기어 고만 극을 중지해 버렷다. (제이막지 상연되고) 그 럼으로 제일막 대기에도 “이 희극의 막 수(數)는 더 자세히 말할 수 업 다. 상연 중에 닐어나는 불유쾌한 사건으로 인해서.”라고 복서(卜書)가 써 잇다. 그리고 맨 테 가서도 이 으로 오늘 저녁 극은 미안하지만 중 간에서 중지치 아니하면 안 되게 되엇다는 을 무대 감독이 나와 사례하면 서 고만 이 난다. 부제에도 “합창적 막간극이 잇는 이막 혹은 삼막의 희극”이라고 써 잇다.
재료로 말하면 델리아 모렐로라는 곡예단 지프시 후신인 여자가 졸지오 살 비라는 화가와 사랑을 하야 내일이면 결혼할 전날 밤에 그 화가의 매(妹)와 약혼한 미켈어 록카라는 청년과 정을 통하게 된다. 화가는 자살하고 모렐로 와 록카는 서로 미워하면서도 포옹을 한다. 그러나 이 둘이는 사랑하는 것 은 아니엇다. 이런 소문이 사회와 교제계에 넓어지자 리비아 팔레가리라는 노부인의 젊은 아들 도로는 세평(世評)이 무정견(無定見)하고 맹목적임을 실혀하기 문에 (다만 그문에) 중인(衆人) 압헤서 그 여자를 극력 변호 햇다. 그러다가 프란체스카 싸비오라는 반대 의견을 가진 청년과 큰 싸움이 닐어낫다. 그 다음 날 두 사람이 다시 냉정하게 되엇슬 는 자기들의 언행 이 넘우 격렬햇고 극단적으로 되엇슴을 닷고 싸비오가 사과를 할려고 도 로를 방문햇다. 그러나 이 청년이 맛날 대에는 벌서 서로 의견이 정반대로 전환해 벼렷다. 싸비오는 여자의 변호가 되고 도로는 반대자가 되어 버렷 다. 그것은 그 날 저녁 도로에게 자기 변호보다도 자기를 이해해주엇다고 감사한 을 표하기 위하야 차저 온 모렐로를 보고 그 언행에서 다시 자기 모순을 발견햇슴이엇다. 그러니 싸비오는 그려치 안타고 반대한다. 두 사람은 다시 구론이 닐어나며 결투를 하게 되엇다. 이것이 제일막이다. 이 동안 막은 내렷스나 곳 극장의 피란델오를 욕하기도 하고 혹은 변호도 하며 문학자, 비평가, 사교계의 인물, 신문 배달부, 배우들, 작가들, 이해력 업 는 혹은 잇는 관객들, 이런 군중이 내왕하면서 시덤병한다. 그 중에 델리 아 모레노와 남작 누티가 와 잇섯다. 모레노는 자기를 모델로 햇다고 크게 노하고 남작은 벌서 죽은 사람(쌀비)을 비방하고 살아 잇는 이(모레노와 자 기)를 욕하는 것이라고 역시 분개햇다. (이 이인(二人)은 아즉 여긔서 서로 보지 못햇다.) 모레노는 고만 다음 막도 보지 안코 나가려다가 동무의 권유 에 의하야 다시 제이막을 보려고 관객석으로 들어간다. 제이막이 시작되면 싸비오는 결투연습을 하고 잇다. 의외에 록카와 모렐오가 들어온다. 록카는 모렐오를 차에지려고, 모렐오는 싸비오에게 도로와 결투를 중지시키려고 왓 다. 이 자리에서 두 남녀는 맛낫다.
록카 이 여자의 사랑에는 한 점의 가치가 업소. 그러나 나로 말
하면 이 여자 문에 고생하는 것이 가치가 잇구려. 내가
네게 대한 마음은 사랑이 아니라 미움이다! 미움이다!
텔리아 미움얘요. 네, 내게도 미움얘요. 미움얘요!
록카 이 여자 문에 피를 흘렷소. 날 불상히 녀겨요. 불상히 녀
겨요. (그 여자를 잡으려고 방 안을 돈다.)
텔리아 안돼요, 안돼요! 날 건더리지 말아요. 당신에게도 불행이야
요.……
텔리아 네, 네, 그러쿠 말구요. 그러치만 당신을 벌할랴고 한 것얘 요.
록카 그러치, 나도 너를 벌하랴고 햇지. 그러나 네 생명도 영구 히 졸지오 피ㅅ 속에 져 버렷다. (이인(二人)이 끌어안고
나간 뒤엔)
프란체스코 둘이 다 미친 것들!
디에고 그리고 자네는? 나는?
이 제삼막이 나자 로비에서는 큰 소란이 닐어낫다. 모레노가 무대 우로 어 올라가서 자기를 모델로 하는 여배우를 욕햇다. 머리채를 잡아 흔들엇 다. 을 내갈겻다. 그 여배우는 작자 피란델오를 욕햇다. 그리고 배우들은 달아나버렷다. 남작은 모레노를 발견하고 고 나간다. 관객은 여긔서 환상 이 현실임을 발견한다. (다음 과목(科目)으로 제이막 종(終). 상기의 것과 비교해라.)
모레노 고만 두어오. 나는 당신이 미워요. 당신이 미워요.
남작 누티 우리는 젓다. 저놈의 피ㅅ 속에 젓다. 정말 그러타. 자, 나와 가티 오너라. 이리 와! (고 나간다.)
관중들은 입장료를 반환해 달라고 든다. 작자를 욕하는 이도 잇다. 신문 에 나타난 모레노 사건을 극으로 맨들어 이런 을 보인다고. 할 수 업시 무대 감독은 막 압헤 나와 이 극의 불행한 중지를 사과한다. 이 낫다.
이것은 환상 속에, 즉 무대 우에 모레노와 누티 두 사람이 현실을 본 것이 다. 이해 잘 하는 한 관객 말에 “당연하지! 예술의 영구성을 가진 어 경 지 속에 면경(面鏡)을 들여다보듯이 자기네들 자신을 보앗기 문에 저 야 단이야.”
이 극에서 주목할 것은 이런 기교 외에 전술(前述)해온 피란델이슴의 철리 다. 근본적 생명의 조류에 고정된 습관, 논리의 모순, 개념의 고각(古穀)들 이 부드치는 곳에 인생의 격류가 생긴다. 팔레가리의 우인(友人)이 되는 디 에고 친치는 <그러치! 그러케 생각하면> 중의 라우디와 가티 작자의 철리 를 내는 인물이다. 그의 하는 말 ―.
생명의 조류 ― 그것은 우리들이 전혀 몰르고 잇든, 그러나 우리들 의 감정에 맛도록 주의해 오고 우리가 맨들어 낸 습관 속에 집어너코 우리들이 질머지고 오는 의무 속에 쳐너키 문에 희미하게나마 알고
잇든 그 조류가 돌연히 굉장한 압도할 만한 당조(當潮)가 되어오면 고 만 온갓 것이 뒤집혀지지 안나. 아아 할 수 업시 ― 선풍(旋風)! 화산 의 폭발! 지진! 천변지이(天變地異)가 온단 말야!
모렐오의 변심과 록카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세평이 구구한 중 도로와 싸비오의 의견이 이리저리 변해 가는 것도 진리란 것을, 타인의 행동의 진 상을 포착키 어렵다는 것을 가르침이다. <그러치! 그러케 생각하면> 중의 괴이한 폰싸 부인의 진상을 알기 어려움과 가타서는 가장 버 - 나드 쇼와 동일한 특징을 가진 것으로 본다. 기지(機智) 잇고 아이로니 만코 유 - 모 어를 가진 디에고만 아니라 무대상의 전혀 새로운 효과를 어더논 것도 쇼 의 <인(人)과 초인(超人)>과 비슷하다. 이것은 내 독단일지도 몰르지만, 피란델오가 쇼를 물론 의식적으로 모방햇다는 것도 아니지만 이 두 늙은 유 모리스트 사이에 가장 근본적인 어 공통점이 잇는 줄 안다. 이것은 후일 에 다시 연구해 보고자 하는 바이다.
9.
넘우 길어짐을 두려워 하야 더 간단히 나머지 두 극을 고찰해 보겟다.
<정직의 쾌락>은 삼막의 희극이다. 피란델오의 극에서 결점이라 할 만한 너무나 부자연한 시튜에숀을 잘 나타낸 작이다. 아가타 레니라는 처녀가 후 작 파비오 콜과 사랑한 결과 임신이 된 것을 발견햇다. 물론 이 두 사람이 곳 결혼만 하면 다시 말성 될 것이 업겟지만 후작은 벌서 결혼한 몸이다.
할 수 업시 처녀, 그 어머니, 후작의 종형제 되는 세티 사인(四人)이 논 의한 결과 형식상의 결혼을 대신해 줄 사람을 구하게 되엇다. 그래서 이 부 정직한 역을 맛게 된 이는 세티의 동창생이든 안젤오 발드비노라는 사십세 나 되는 철학자엿다. 발드비노는 만흔 인생의 경험과 독특한 피란델이안이 슴을 가진 이다. 칸트의 현실과 몽환에 대한 철리를 신봉하고 몽환이 아 니면 현실을 엇기 어려우며 형식 생활이 아니면 진실한 생활을, 부정직 한 세계가 아니면 정직을 엇기 어렵다는 인생관을 가진 이다. 아가타와 발 드비노는 결혼햇다. 가정을 일우엇다. 그러나 형식상의 부부생활이다. 후작 은 여전히 차저와 아가타의 부(夫) 노릇을 한다. 아가타는 계집아이를 나핫 다. 발드비노로 인하야 이 불행한 아이는 사생아 됨을 면햇다. 그러나 부자 연하고 그야말로 부정직한 생활은 틈이 벌어졋다. 후작 으로부터 먼저 후 작이 발드비노를 도적으로 몰아 이 집에서 차내려다가 (퐁기라는 브로 커와 결탁해 가지고) 돌이어 자기가 도적이 되엇다. 정직을 도적질하는 이 가 되어 버렷다. 이와 동시에 아가타는 생명의 조류에 직접(直接)한 승 리를 어덧다. 발드비노의 환상 세계와 현실 인생 사이에 들어서서 그 사랑 과 자기 희생으로써 사실상의 아내가 되어 버렷다. 사랑이 모든 것을 정복 해 버렷다.
이것만 보아도 얼마나 부자연한 시튜에숀인지 짐작할 수 잇다. 발드비노의 이상야릇한 철리(哲理)를 긍정한다드래도 관객으로 안저서는. 그런데 피란델오는 이것을 자기가 쓴 극 중에서 제일 조흔 것으로 말햇다. 부자연과 (이 부자연과 우리들 사회의 주위에 잇는 부자연과 사실상 비교해 보면 오 십보백보다.) 부정직과 허위를 다 누르고 엄연히 발립(勃立)하야 승리를 엇 는 희생의 정신과 휴매니티를 피란델오는 찬양햇든 것이지. 그러나 극으로 서는 그의 특색의 결점이 가장 잘 나타난 것 갓다.
10.
<나체> 삼막극. 실은 비극이다. 병든 처와 불행한 가정을 지어가는 스미르 나의 이태리 영사 그도티는 어린 아이의 ‘보모’로 에르실이아 드레이라 는 처녀를 고인(雇人)햇다. 그러나 이 영사와 에르실이아는 남모르게 사랑 을 훔치는 몸이 되엇다. 그래서 옥상 정원에서 두 사람은 쾌락을 탐하고 잇 다가 그 어린 계집애가 어져 죽어버렷다. 에르실이아는 겨낫다. 영사의 처의 질투와 미움에. 그래서 돈 한 푼 업시 방황하다가 자살하려고 하든 차 에 루도비코라는 소설가의 구원을 바다서 그 집에 잇게 되엇다. 이 소문이 신문에 굉장하게 게재되엇다. 그런데 이 소설가는 동정과 관대한 마음을 가 지고 인생의 조류의 피할 수 업는 비극의 본상을 보는 이엇다. 이곳에서 에 르실이아는 과거가 아닌, 로맨틱한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를 몽상햇다.
소설가의 소설의 여주인공 아니라, 인생의 비극에서 어 몸, 나체가 아 닌 어 주인공으로서 살기를. 그러나 루도비코는 사회, 인생의 현실을 알 앗다. 그러는 판에 영사가 들어오고 라스피가가 들어와 극은 더 발전해 간다. 라스피가는 영사의 소개로 (혹은 진실로 그 여자를 사랑하는 영사의 꼬임에 넘어가서) 사랑하게 된 에르실이아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되엇다. 이 사람과 영사처, 신문기자, 여러 사람들 사이에 들어서서 에 르실이아는 거짓말을 하게 되엇다. “인생의 비극이 얼마나 허위를 요구하 는가”를 알게 되엇다. 원래 이 여자는 어 사람, 어 처, 고운 옷 닙고 가지고 잇는 섬보디가 되려 햇다. 그러나 소설가 말 모양으로 현실은 그 여 자의 모든 꿈을 앗엇다. 그래서 나체(裸體)대로 노보디로 죽어버렷다. 독 약을 부서버렷다.
이 극은 피란델오의 극 중에서 제일 피란델오 취미(臭味)가 적은, 그다지 중요하지 아니한 것이다. 그러기 문에 피란델오를 실허하는 이라도 이 극 의 여주인공의 비극적 요소, 즉 사회, 현실을 통하야 완성한 개성을 일우려 다가 나체의 송장이 되어버리고 마는 데에서는 감동을 만히 바들 줄 안다.
이상 육개(六個) 외 피란델오의 극으로서 이름 알고 아즉 못 닑어본 것을 열기(列記)하면,
Pensaci Giacomino
Il giuoco della porti
Ma non e una cosa seria
Come prima meglio di prima
Tutto per Bene
Se non cosi
Lumie di Sicilia
1926. 2.
3. 카렐 챠펙(Karel Capek, 체코슬오바키아)
1.
1918년 10월 28일 첵크 민족의 독립선언이 세계인 압헤 나타낫다. 동양의 은자국에 들어 안젓든 우리들도 그에 비롯오 중구(中歐)에 녯날의 보헤미 아 문화의 전통을 가젓든 첵크이 잇섯구나 하고 알게 되엇다. 정치적으 로, 경제적으로 독오(獨·墺)의 압제와 세력 미테서 천식(喘息)해 오든 이 민족이 이제야 녯날의 원기를 다시 내게 되엇다. 이 나라에 대하야 다른 이약이는 고만 두자! 그리고 다만 우리들 눈에 비추이는 한 가지 사실, 그 이들의 국어가 얼마나 오늘날지의 첵크족의 생명과 밀접한 관계가 잇섯는 가를 이약이해 보자.
슬아브족이 보헤미아에 처음으로 주거하든 기원전 오세기 부터 첵크족이 세력을 엇기 시작하는 동시에 자기네들의 언어를 맨들기 시작햇다. 처음에 는 물론 슬아브 계통의 말과 비슷햇다고 하나 십이, 삼세기에 와서는 독립 한 언어가 되어오기 시작햇다. 십사세기에 와서 정치적으로 잠간동안 독립 을 어덧슬 에는 신학자 스티니의 토마스는 당시의 학자들 본을 안 밧고 자기 저작을 라틴 대신에 첵크어로 썻다. 그래서 승려들의 비난을 만히 바 닷다고 한다. 유명한 종교개혁가 요한 후스도 자기 저작은 물론 타국어 의 저작을 번역할 에도 체크로 썻다. 자국어에 대한 이와 가튼 애착심을 설명하기 위하야 어 이는 고대 첵크어인 Jazyk이라는 말이 ‘국민’과 ‘언어’의 동음어임을 열거하기도 한다. 과연 그러기 문에 십칠세기 초 엽에 다시 독립을 일허버렷슬 에도 첵크어로 쓴 모든 서책과 기록은 오국 (墺國)의 관헌의 손에 소멸을 당하다십히 되엇다. 이 사실로만 보아도 이 민족의 생명이 그 국어와 어 관계를 가젓든가를 짐작할 수도 잇다. 이 부터 그들의 생활은 타인의 압박 미테서 부지해나가지 안흐면 안되게 되엇 다. 학교에서도 첵크어 사용을 금지햇다. 첵크어로 나오는 기록은 다만 기 도서와 역서(曆書)이엇다. 그러나 국민과 언어가 동일체임을 증명하기 위 하야 십구세기에 와서는 도브롭스키를 위시하야 콜알 팔악키 등의 어학자와 문인 등이 배출햇다. 1884년에는 수부(首府) 프라하(프레 ― 그)에 그네들 대학이 건립되엇다. 그리해서 자국어를 옹호하거나 애착을 가진 그들이 필 경 한 정치적 단결에지 변하게 되엇다. 전세기초에 사용햇다고 하는 Vlastnci(애국자)란 말은 이런 이들을 총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마치 애란 문예부흥이 애란 민족의 정신적 소생을 의미하듯이 첵크어의 부흥은 첵크족 의 부흥을 의미한 것이다. 그럼으로 눈 가진 오태리(墺太利) 관헌은 의회 의 반대당을 선동하야 가진 압박을 다햇다. 애란이나, 파란(波蘭) 모양으로 정치적 압박 미테서 잇는 그 생명력의 표현을 예술에 구하게 되자 오국 관 헌은 그네들의 국민극장 설립에지 저해 압박을 앗기지 안핫다.
할 수 업시 그네들은 일반극(一般劇) 기부금을 모아서 고대의 도시 프라하 에 다가 자기네들의 극장을 세웟다. Narodni Divadlo가 이것이다(국민 극 장).
이 외에 카렐 착페이 문예부장이 되어 잇는 Vinohrady좌(座) 또는 Svanda 소(小)극장도 모다 프라하시(市)에 잇는 것으로써 유명하다. 이런 극장을 중심으로 하야 그네들의 활동은 신흥국의 발자신선한(潑刺新鮮)한 생활을 내는다. 힐아 급(及) 야로슬압 크바 - 필의 이인(二人)의 연출가는 상당 한 재능을 가진 이다. 작가로서는 야로슬옵 힐버 - 트(콜엄버스라는 희곡작 자로서, 국민극장의 연출가로서 구주에 유명한 이.), 닥크 드보라 - 크, 스 라벡크 지라 - 섹 등이 유명하다. 그러나 오늘 세계적으로 명성을 어든 이 는, 즉 카렐 챠펙이다.(사진은 카렐 챠펙)
2.
헌틀이 카 - 터의 지적과 가티 첵크슬로바키아의 연극은 두 가지 점에서 과거 사십여년 동안 민족복생에 큰 힘을 주엇다. 하나는 민족적 감정을 닐 으키고 하나는 국제적 지식의 전포(傳布)에 효과를 어든 일이다. 나는 다른 첵크 작가의 작품을 만히는 못 보앗스나 여긔서 소개하려는 챠펙의 작 품에서도 이것을 볼 수 잇다. 전자는 역사적, 신화적, 시대적 희곡 혹은 전 설, 속요를 중심으로 한 오페라와 보드빌 등이다. 구주대전 중에도 특별히 오국 관헌은 검열을 엄중히 하고 상연 금지를 예사로 햇다. 후자는 세계 사 조, 즉 소위 산업혁명 이후의 모든 사회적 현상을 비판하고 해부하려는 것 이다. 이런 세계사조란, 즉 아모러한 국토, 아모러한 지방에서도 능히 볼 수 잇는 현상이다. 통찰력과 비판력이 부족한 무리는 론돈이나 뉴욕이나 동 경 한 가온대 안저서도 인식치 못하는 오늘 세계의 공통된 독와사(毒瓦斯) 다. 첵크슬로바키아에서는 물론 타국 도시 모양으로 이 세계사조란 것이 격 렬치 못하다고 할지라도 그이들은 테의 Zeitgeist를 모를 만큼 혼미하지 안핫다. 그만 아니라 러퍼토리에도 국제적으로 외국 작가를 만히 상연 햇다. 즉 전자의 민족적 감정을 정열로만 표현하는 편협한 사람들이 아니엇 다. 실렐, 테, 헵벨, 몰이엘, 유 - 고, 라시 - ㄴ, 버 - 나드쇼, 고 골, 입센 등, 더구나 사옹(沙翁) 사후 삼백년 기념제 에는 유명한 연출자 야로슬압 크바 - 필이 연출한 그 무대장치는 지명(知名)한 구미 무대예술가 의 주목을 엇다 한다. 는 삽화에서 보는 바와 가티 간소한 광선, 배경, 인물을 무대 중앙으로 집중하야 관객의 주의력을 절감케 하는 무대 장치법 이 한 외국에지 알리게 되엇다. 힐러가 연출한 챠펙의 <벌러지의 생 활>의 제일막, 나비의 노는 라지의 연출법은 맥고 - 안과 로버 - 트 죤스 의 기록에 자세히 쓰인 것과 가티 표현주의식보다 더 새롭고 자유로운 연출 로 유명하다.
상기의 두 점을 머리ㅅ 속에 두고 이상의 챠펙의 희곡 이약이를 닑기를 바 란다. 그 전에 그이의 경력을 말하면, 그이는 지금 삼십육세의 젊은이로서 (1890년생) 백림(伯林), 파리에서 공부하야 철학박사의 학위를 가진 이다.
우에도 말햇지만 지금은 비노흐라디좌의 문예부장으로 잇스면서 혹은 자기 형인 배경화가이고 합작가(合作家)인 요세프와도 공력하야 잇다금 연출자도 되는 일이 잇다. (아리스토파네스의 <기사>는 이 두 형제의 손으로 연출되 엇다.) 신문기자로도 잠간 지낸 일이 잇다. 과학상의 몃 개의 저술과 불란 서 시의 번역이 잇는 것은 신기로울 것도 업지만 오늘 그이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어덧슴에 비하야 작품은 불과 오개(五個)다. 처녀작은 1911년에 시 작하야 이십년에 완성된 <산적>(희극)이고 그 뒤에 된 것이 , <벌러 지의 생활>, <마쿠루폴오스 사건>, <지극(至極)>이다. 이외에 잇는지는 모르겟다. 그러나 단지 과 <벌러지의 생활> 두 편으로 그이가 세계 적 작가가 된 것은 놀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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