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오 단편집
「창랑정기」「어떤 부처」「치정」「김강사와 T교수」「간호부장」「스
리」「상해의 기억」「가을」의 여덟 편이 이번 조선문고의 『유진오 단편 집』에는 들어 있다
15년에 가까운 유씨의 작가생활이 낳은 수십 편의 단편 중에서 골라 뽑은 것인데, 편자의 의도는 작품 자체의 우열보다도 작자가 걸어온 과정을 보여 주려는 곳에 있지 아니한가 나는 생각하였다. 언뜻 보더라도 유씨의 단편 중에는 「스리」나「상해의 기억」보다도 훌륭히 성공한 작품이 많은 것을 나는 알고 있는데, 그것들이 수록되지 않고 작품의 성과나 된품으로 보아 훨씬 손색이 있는 전기(前記)의 두 작품이 끼이게 된 것은, 유씨가 한 시대 를 의탁(依托)하였던 문학적 경향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생각 되 어진다.
이 시기란 소화 3년(「스리」)에서 소화 6년(「상해의 기억」)을 전후하는 소위 예맹의 정치주의적 편향의 기간을 말한는 것인데, 이의 중간의 수개월 동안이 필자 자신의 창작생활의 제1기가 속한 것으로, 이것은 유씨에게 있 어서나 또는 미미한 대로 필자 같은 자로서는 잊을 수 없는 기절(期節)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금 문학의 태도나 주장은 바뀌어졌으나, 유씨가 최초의 뒤늦은 단편집을 짜면서 이 시대를 회고하여 감개의 무량한 바가 있었을 것 은 용이히 상상할 수 있는 바이다. 필자의 기억에 틀림이 없다면, 이 시기 의 소산으로서도 전기 작품보다 우수한 것이 많았는데, 아마 그것은 지금의 검열 수준을 생각해서 수록하지 않은 것 같다. 여하튼 이 두 편은 유씨에게 있어뿐 아니라, 30년대를 살은 현대인으로서 길이 기념함에 족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그 다음 시기를 표시하는 작품은 「간호부장」「김강사와 T교수」의 두편 으로서 모두 소화 10년의 작품으로 되어 있다. 이 두 작품은 경향문학이 정 치주의를 청산하는 과정을 대표하는 문학일 뿐 아니라, 전주사건으로 인하 여 예맹 계통의 작가들이 문단에 없는 동안, 실로 그의 유일한 유지자 내지 는 문학사의 블랭크를 메우는 근소한 업적의 하나로서 길이 잊어버릴 수 없 는 작품들이다. 이 시대는 유씨에게 있어서는 가장 그의 본령을 발휘하였던 중요한 시대로서, 필자는 이 두 편을 이 단편집의 백미라고 생각할 뿐 아니 라, 유씨의 전 작가 생활의 하나의 표지(標識)가 될 만한 가작이라고 믿어 의심치 아니한다.
이 작품을 전후하여 경향문학은 다시금 커다란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 다. 이기영, 엄홍섭 등 제씨의 활약에 의하여 길은 이어 나갔으나,이 동안 유씨는 거지반 창작에 붓을 들지 못하였다. 당시, 비평가들의 단견은 사실 주의 문학의 왕성을 자랑하는 이조차 없지 않았으나, 실인즉 그것은 병폐의 일층의 심도화를 과정하고 있음에 불과하였다. 유씨와 여(如)한 우수한 지 적 두뇌가 이것을 민첩하게 간취하고 무정견한 남작보다도 오히려 금후의 진로를 개척하기 위해서, 탐색의 침묵을 택하였다는 것은 시사 싶은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리하여 약 3년간의 침묵을 깨뜨리고 창작의 붓을 들어 오랜 동안의 문학 적 사색의 결과를 피력한 것이「창랑정기」의 일작이다. 이 소설이 소설로 서의 규격을 갖추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낭만적인 회고의 기록에 속하여, 이 미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여행하고 있는 작자의 심경이 우리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씨는 이러한 세계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 에는 씨의 문학적 고향이 너무나 리얼리즘의 지상에 뿌리를 박은 것이었다.
씨가 산문성의 새로운 획득을 위하여‘문학에의 진로’를 ‘시정에의 편 력’으로 표명하고,「어떤 부처」「치정」등을 창작하여 「나비」의 최근작 을 낳음에 이르고, 타방 그의 세계를 확대하여「가을」의 과정에 이르러 있 는 것이 유씨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노정이라 생각된다. 씨의 이른바‘시정 에의 편력’에 대하여는 일찍이 우견을 토로한 적도 있으므로 재론을 피하 거니와, 이 진로가 세태소설의 근방을 통화하여「가을」에 도달하고, 이에 서 다시 어떠한 행정을 취하는가에 유씨의 지적 사색의 금후가 걸려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상, 이 단편집을 여러 모로 분석할 수 있을 것 이나, 우선 나는 상론의 각도에서 그를 검토함이 의당타 생각하고, 소개를 겸하여 단평을 시(試)한 바이다.
(『문장』, 10월호,‘신간평’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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