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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3

현진건 B사감과 러브레터 B사감과 러브 레터 C 여학교에서 교원 겸 기숙사 사감 노릇을 하는 B 여사라면 딱장대요 독신 주의자요, 찰진 야소꾼으로 유명하다. 사십에 가까운 노처녀인 그는 주근깨 투성이 얼굴이, 처녀다운 맛이란 약에 쓰려도 찾을 수 없을 뿐인가, 시들고 거칠고 마르고 누렇게 뜬 품이 곰팡 슬은 굴비를 생각나게 한다. 여러 겹 주름이 잡힌 훨렁 벗겨진 이마라든지 숱이 적어서 법대로 쪽 찌거 나 틀어 올리지를 못하고 엉성하게 그냥 빗겨 넘긴 머리, 꼬리가 뒤통수에 염소 똥만하게 붙은 것이라든지, 벌써 늙어 가는 자최를 감출 길이 없었다. 뾰족한 입을 앙다물고 돋보기 너머로 쌀쌀한 눈이 노릴 때엔 기숙생들이 오 싹하고 몸서리를 치리만큼 그는 엄격하고 매서웠다. 이 B 여사가 질겁을 하다시피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은 소위 .. 2022. 7. 15.
현진건 빈처 빈처 1 “그것이 어째 없을까?” 아내가 장문을 열고 무엇을 찾더니 입안말로 중얼거린다. “무엇이 없어?” 나는 우두커니 책상머리에 앉아서 책장만 뒤적뒤적하다가 물어 보았다. “모본단 저고리가 하나 남았는데…….” “……” 나는 그만 묵묵하였다. 아내가 그것을 찾아 무엇 하려는 것을 앎이라. 오 늘 밤에 옆집 할멈을 시켜 잡히려 하는 것이다. 이 2년 동안에 돈 한 푼 나는 데는 없고 그대로 주리면 시장할 줄 알아 기구(器具)와 의복을 전당국 창고(典當局倉庫)에 들이밀거나 고물상 한구 석에 세워 두고 돈을 얻어 오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아내가 하나 남은 모 본단 저고리를 찾는 것도 아침거리를 장만하려 함이라. 나는 입맛을 쩍쩍 다시고 폈던 책을 덮으며 후 - 한숨을 내쉬었다. 봄은 벌써 반이나 지났건마.. 2022. 7. 15.
현진건 무영탑 무영탑 1 신라 경덕왕 시절. 사월 초파일이 내일 모레. 서라벌 서울에는 석가 탄일 준비가 한창 바쁘다. 눌지왕 때부터 몰래몰래 이 나라에 스며들어 온 서천 서역국의 부처님 도( 道) 는 법흥왕 말엽 이차돈의 순교로 활짝 길이 열리고, 삼한 통일을 거쳐 성덕, 경덕에 이르자 그 찬란한 연꽃은 필 대로 피었다. 그 당시의 초파일이라면 설, 대보름, 팔월 한가위보담 더 큰 명절이었다. 파일 놀이에 첫째 가는 연등과 관등. 어느 집에서도 가지각색 등을 맨 들기에 야단법석이다. 모난 놈에 둥근 놈, 기름한 놈, 암팡진 놈, 장구 모양, 북 모양, 푸드득 나는 양의 봉황새, 엉금엉금 기는 양의 자라 남생이……. 도림의 대를 베어 곰살궂은 잔손질로 휘엉휘청 등틀을 휘어 매고, 선두리는 금당지에 은당지, 싸 바르는 .. 2022.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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