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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여자의 일생 女子[여자]의 一生[일생] 1. 시집難[난] 시집難[난] 내일 모레가 추석 ── 열사흘달이 천심 높다랗게 솟아 있다. 일 년 열두 달 그중 달이 좋다는 추석달이다. 거진 다 둥그렀고 거울같이 맑다. 밤은 이윽히 깊어 울던 벌레도 잠자고 괴괴하고…… 촉촉한 이슬기를 머금고 달 빛만 빈 뜰에 가득 괴어 꿈속이고 싶은 황홀한 밤이었다. 새댁 진주는 우물에 두레박을 드리운 채 자아올릴 생각을 잊고 서서 하도 좋은 달밤에 잠깐 정신이 팔린다. 무엇인지 저절로 마음이 흥그러워지려고 하고 이런 좋은 달밤을 두어두고 이내 도로 들어가기가 아까운 것 같았다. 언제까지고 내처 이대로 있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또 혼자서 이렇게는 더 아까운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아까운 것이 가만히 또 재미가 있기도 하였 다. 한 어리고.. 2022. 7. 15.
채만식 허생전 許生傳[허생전] 1 허생(許生)은 오늘도 아침부터 그 초라한 의관을 단정히 갖추고 단정히 서안 앞에 앉아 일심으로 글을 읽고 있다. 어제 아침을 멀건 죽 한 보시기로 때우고, 점심은 늘 없어왔거니와 저녁과 오늘 아침을 끓이지 못하였으니, 하루낫 하룻밤이요 꼬바기 세 끼를 굶은 참이었다. 그러니, 시장하긴들 조옴 시장하련마는, 굶기에 단련이 되어 그런지 글에 정신이 쏠리어 그런지, 혹은 참으며 내색을 아니하여 그러는지, 아뭏든 허생은 별로 시장하여 하는 빛이 없고, 글 읽는 소리도 한결같이 낭랑하다. 서울 남산 밑 묵적골이라고 하면, 가난하고 명색 없는 양반 나부랑이와 궁하고 불우한 선비와 이런 사람들만 모여 살기로 예로부터 이름난 동네였다. 집이라는 것은 열이면 열 다 쓰러져가는 오막살이 초가 집이 몇해.. 2022. 7. 15.
채만식 태평천하 太 平 天 下[태평천하] 1. 尹直員[윤직원] 영감 歸宅之圖[ 귀택 지도] 추석을 지나 이윽고 짙어가는 가을해가 저물기 쉬운 어느날 석양. 저 계동(桂洞)의 이름난 장자(富者[부자]) 윤직원(尹直員) 영감이 마침 어디 출입을 했다가 방금 인력거를 처억 잡숫고 돌아와 마악 댁의 대문 앞에서 내리는 참입니다. 간밤에 꿈을 잘못 꾸었던지, 오늘 아침에 마누라하고 다툼질을 하고 나왔던지, 아뭏든 엔간히 일수 좋지 못한 인력거꾼입니다. 여느 평탄한 길로 끌고오기도 무던히 힘이 들었는데 골목쟁이로 들어서서는 빗밋이 경사가 진 20여 칸을 끌어올리기야, 엄살이 아니라 정말 혀가 나올 뻔했읍니다. 28관, 하고도 6백 몸메!…… 윤직원 영감의 이 체중은, 그저께 춘심이년을 데리고 진고개로 산보를 갔다가 경성우편국 바로.. 2022. 7. 15.
채만식 이상한 선생님 이상한 선생님 1 우리 박선생님은 참 이상한 선생님이었다. 박선생님은 생긴 것부터가 무척 이상하게 생긴 선생님이었다. 키가 한 뼘밖에 안 되는 박선생님이라서, 뼘생 또는 뼘박이라는 별명이 있 는 것처럼, 박선생님의 키는, 키 작은 사람 가운데서도 유난히 작은 키였 다. 일본 정치 때, 혈서로 지원병을 지원했다 체격검사에 키가 제 척수에 차지 못해 낙방이 되었다면, 그래서 땅을 치고 울었다면, 얼마나 작은 키인 것은 알 일이다. 그런 작은 키에, 몸집은 그저 한 줌만 하고. 이 한 줌만한 몸집의, 한 뼘만한 키 위에 가서, 그런데, 이건 깜짝놀랄 만 큼 큰 머리통이, 보매 위태위태하게 올라앉아 있다. 그래서 박선생님의 또 하나의 변명을 대갈장군이라고도 하였다. 머리통이 그렇게 큰 박선생님의 얼굴은 어떻게 .. 2022.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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