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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문학

백신애 멀리간동무

by 역달1 2022.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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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간 동무

그래도 벌써 몇 년 전 일입니다.

우리 집 가까이 내가 참 좋아하는 동무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응칠(應七)이라고 부르는데 나이는 그때 열두 살인 나와 동갑이었고 학교도 나와 한 반으로 오학년 일조였습니다. 이 응칠군이야말로 씩씩하고 도 용기 있는 무척 좋은 동무였습니다.

응칠군의 아버지는 고기 장사를 하는데 사흘 만큼 한 번씩 열리는 장날마 다 고기뭉치를 지고 가서 팝니다. 그의 어머니는 날마다 집에서 일을 하기 도 하고 어떤 때는 남의 집에 가서 빨래도 해 주고 또 농사철에는 남의 밭 도 매 주고 모두 심어 준답니다. 그리고 그의 동생은 열살 짜리 계집아이 순금이하고, 일곱 살 짜리 응팔이, 세 살 되는 응구하고 도합 셋이었는데 순금이는 날마다 노는 사이 없이 어머니 일을 거들어서 참 부지런한 것 같 습니다마는 거의 날마다 그의 어머니에게 얻어맞고 담 모퉁이에서 울고 있 었습니다. 응팔이는 응구를 업고 길가에 나와 놀다가 무거우면 그냥 땅바닥 에 응구를 내려놓고 저는 저대로 놀고 있으면 응구는 코를 잴잴 흘리며 흙 투성이가 되어 냅다 소리를 질러 울기를 잘 했습니다.

응칠이는 그래도 한 날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잘 다녔습니다. 공부는 나 보다 조금 나을까요, 평균점은 꼭 같이 갑(甲)이었으니까요.

응칠이는 마음도 좋고, 기운도 세고 한 까닭에 우리 반 생도뿐만 아니라 아무하고도 잘 놀았습니다. 아이들이 싸움을 하면 반드시 복판에 뛰어 들어 가서 커다란 소리로 웃기고 떠들고 하여 싸움 중재를 일수 잘해주기도 했습 니다. 그러나 선생님에게는 거의 날마다 꾸지람을 받았습니다.

“왜 월사금을 가져오지 않느냐.”

“왜 습자지를 가지고 안 왔느냐.”

하고 벌을 서기도 자주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습자 시간이었습니다.

“응칠이는 왜 청서를 한 번도 내지 않느냐.”

하는 선생님의 말소리에 습자 쓰느라고 짹 소리 없이 엎드려 있던 우리 반 생도는 모두 일제히 응칠에게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응칠이는 신문지 조각 에 글자를 쓰던 붓을 멈추고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응칠이 너 이리 오너라.”

선생님은 웬일인지 몹시 노해 계셨습니다.

응칠이는 교단 앞으로 나와서 고개를 숙이고 섰습니다.

“왜 너는 월사금도 벌써 반 년 치나 가져오지 않고, 잡기장도 습자지도, 도화용지도 아무것도 사지도 않고 학교에는 왜 다니느냐?” 하고 선생님이 꾸지람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돈이 없다고 안 주어서요.”

응칠이는 얼굴이 새빨갰습니다.

“왜 아버지가 돈이 없어? 네가 돈을 받아 가지고는 좋지 못한 데 써버리 는 것이겠지.”

“아닙니다.”

“잡기장도 안 사 줄 리가 있나. 네가 정녕코 돈을 다른 데 써 버린 것이 지.”

“아닙니다.”

“바른대로 말해.”

선생님은 그만 응칠의 뺨을 한번 휘갈겼습니다.

“선생님 용서하십시오. 아버지가 안 사주어요.”

응칠이는 뺨에다 손을 대고 금방 소리쳐 울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때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두근거려지며 응칠이가 가엾어 못 견디겠 었습니다.

그래서 그만 벌떡 일어나서

“선생님 정말 응칠이 집에는 돈이 없어요. 잡기장 사려고 돈을 달라면 학교에 못 가게 합니다. 응칠이 아버지는 돈이 없어 밥도 못 먹는다고 야단 을 합디다.”

하고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래 너는 어떻게 아느냐.”

하고 선생님이 나를 노려보셨습니다.

나는 가슴이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 응칠이를 학교에 보낼 때는 응 칠의 아버지도 돈벌이가 좋으셨는데 응칠이가 사 학년 때부터는 돈벌이가 조금도 없었으므로 그의 아버지는 응칠이도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무슨 일이라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월사금이나 학용품을 사려고 돈을 달 라면 가지 못하게 하여 학교에는 왜 자꾸 다니면서 돈을 달라느냐고 야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응칠이는 오학년에 오른 후로는 거의 돈 한 푼 아버지에 게 얻어 보지 못했습니다.

돈을 달라면 학교에 못 가게 하고 돈 없이 월사금도 바치지 못하니 선생 님이 꾸지람을 하시고 정말 응칠의 사정은 딱했습니다. 나는 이 모든 사정 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응칠이가 무척 가엾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응칠이는 그만 학교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입니다 . 그날도 나는 형님이 사다 주신 잡지책과, 그림책 을 들고, 어서 응칠에게 갖다 보이려고 집을 나섰습니다. 막 대문을 나서 응칠이 집 가는 편으로 다섯 발자국도 못 걸어갔을 때 웬일입니까. 응칠이 가 담 모퉁이에 붙어 서서 우리 집 대문을 엿보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어 떻게 반가운지

“너 우리 집에 놀러오는 길이냐?”

하고 곁으로 달려갔습니다.

“응!”

웬일인지 응칠이는 몹시 기운이 없어 보였습니다.

‘요즈음은 저의 아버지가 아주 돈벌이를 못해서 밥을 못 먹나보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응칠이 어깨를 잡고 우리 집으로 가자고 끌었습니다.

“아니, 너의 집에는 안 간다.”

응칠이는 나의 팔을 뿌리쳤습니다.

“왜 문간까지 와서 안 들어갈 테냐. 이것 봐라. 이것 형님이 사다 주신 건데 너하고 같이 읽자꾸나.”

“아니.”

응칠이는 그렇게 좋아하는 잡지와 그림을 보고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인제 너하고 같이 놀지 못한단다.”

응칠이는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바라보며 금방 울 것 같이 말했습니다. 나 는 응칠의 이 한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얼마 전부터 만주로 돈벌이 간다고 하는 응칠의 아버지 말이 생각났습니다.

“너 만주 가니?”

응칠이는 대답 대신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아니 만주에는 마적이 많아서 사람을 막 죽인다는데, 얘야 가지 마 라.”

하고 나는 응칠에게 다가섰습니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나. 우리 아버지가 기어이 가신다는데 머…….” “그러면 언제 가니?”

“오늘 저녁에 간단다.”

나는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어느 사이엔지 우리들은 어깨동 무를 해 가지고 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울면서 걸어온 것이 응칠의 집 앞이 었습니다. 다 ─ 찌그러져가는 그의 집 방 안에는 시커먼 커 ─ 다란 보퉁 이 한 개가 놓여 있고 건넌방에 곁방살이하는 순덕이네 방에는 응칠의 집 식구가 모두 둘러 앉아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응칠아. 너 어디 갔다 오냐. 어서 밥을 먹어야 가지.” 하는 순덕이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본 나는, 눈물이 자꾸 더 흘러내렸습니 다.

“인제 이 집은 순덕이네 집이 됐단다. 우리가 간다고 순덕이네 집에서 밥을 했다나.”

하고 응칠이는 삽짝에 붙어 섰습니다.

“어서 들어가거라.”

“잘 있어라. 나는 밥 먹고 곧 간단다.”

하고 응칠이는 순덕이네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얼른 눈물을 씻고 집으 로 달려와서 어머니를 보고 응칠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돈을 좀 주 어서 응칠의 아버지가 만주에 가지 않더라도 돈벌이 할 수 있도록 하자고 떼를 써 보았습니다마는, 어머니에게 무척 꾸지람만 듣고 집을 쫓겨났습니 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정거장 가는 길인 서문거리에서 응칠이 집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커다란 짐을 진 응칠이 아버지와, 응구를 업 은 어머니,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응팔이, 보퉁이를 들린 순금이, 또 조그 만 궤짝을 걸머진 응칠이가 순덕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걸어갔습니다.

“너 여기서 뭐하니? 잘 있거라. 인제 언제나 또 만나게 되니.” 하며 제일 앞선 응칠이의 어머니가 나를 보고 말했습니다. 나도 제일 뒤에 떨어져 가는 응칠이의 뒤를 따라 걸었습니다.

“어서 돈벌이하거든 돌아오너라. 또 같이 학교에 다니게, 응?” 하며 나는 응칠이가 짊어진 궤를 만졌습니다.

“이 궤 속에는 내 책이 들어 있단다. 만주 가서도 틈만 있으면 공부할 터이다.”

하고 응칠이는 힘있게 말했습니다. 나도 가슴속으로 어서 공부를 해서 훌륭 한 사람이 되어 응칠이와 다시 만나게 될 터이다 하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자, 그만 들어가소.”

벌써 서문 고개를 넘었으므로 응칠이의 아버지는 돌아서 순덕이네를 보고 하직했습니다.

“그러면 잘들 가소. 죽지만 않으면 다시 만나리 ─.” 순덕이네 엄마는 그만 울어버렸습니다.

나도 응칠이의 목을 안고 터져 오르는 울음소리를 억지로 참으며 느껴 울 었습니다. 응칠이도 커다란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나는 가슴이 터져 나가는 것 같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서로 목을 안은 채 참다 못해 소리쳐 울고 말았습니다.

응칠이 아버지는 나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달래 주셨습니다. 그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흐르고 있었습니다.

“…… 울지 말고 어서 돌아가거라.”

하며 응칠이의 팔을 잡아 끌었습니다.

나는 발버둥을 치며 응칠이의 뒤를 따르려 했으나 순덕이 어머니가 나를 꼭 붙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우리의 사이는 멀어져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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