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상-고등부
근화여자고등학교
박다정
아버지의 직업
아버지는 매일 아침 공시디 한 무더기를 들고 오셨다. 시디들이 변신하기까지는 ‘딸칵’ 소리만 있으면 됐다. 마우스를 쥔 아버지의 손가락만 있으면 그들은 모 연예인의 인기 앨범으로, 영화 DVD로, 모 회사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변신했다.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그저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소개하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마법사 같았다. 마우스 하나만으로 상상 이상의 것을 만들어 내다니!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와아, 내가 좋아하는 가수 앨범이네!”
아버지 몰래 시디를 가져다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아이들은 나를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부러워하면 부러워할수록 나는 아버지가 더욱 자랑스러웠다. 성적도 평균에 비해 낮고, 얼굴도 평범한 내가 아이들에게 부러운 시선을 받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학년이 바뀔 때 마다 꼭 시디를 가지고 학교에 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6학년 새 학기에 막 들어선 무렵이었다. 5년 동안 같은 학교였음에 틀림이 없는데도 처음 보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느껴지는 어색함은 시디꾸러미를 들고 와야겠다는 나의 생각에 불을 지폈다. 당연히 아이들은 나를 부러워 할 테고 자비롭게 하나 쯤 주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가게에서 파는 것처럼 플라스틱 통에 담긴 시디들도 있었으니 그것을 챙기는 편이 더 나으려나? 어차피 아버지의 책상 위에 탑처럼 쌓여있는 시디들 중 하나였으니 상관없었다. 나는 부러운 시선들을 기대하며 가방을 시디들로 가득 채웠다.
“대박! 야, 이거 다 네 거야?”
“나 이 시디 하나만 주라! 응? 나 미국의 어도비시스템이 개발한 그래픽 편집 소프트웨어. (출처: 두산백과)
포토샵 진짜 필요해!”
역시나 아이들은 내가 가방을 열어젖히자마자 다가왔다. 이게 다 아버지 덕분이었다. 모든 게 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한 녀석만 없었더라면 말이다.
“어? 이거 가짜 아니야? 정품 마크가 없는데?”
아까부터 유심히 시디를 살펴보던 녀석이었다. 녀석의 외침에 나를 둘러싼 아이들이 제 각자 소리를 내며 들썩이기 시작했다. 뭐? 가짜라고? 아휴 난 또 진짜인가 했네. 아이들의 부러움 가득 찬 시선이 하나, 둘 거둬지고 있었다. 나는 확 열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냅다 소리 질렀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거 다 우리 아버지가 만든 거라고! 가짜라니!”
“우리 아빠께서 말씀해주셨어. 마크가 없으면 가짜라고. 요새 불법 시디 유통이 심각…….”
녀석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분에 못 이긴 내가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 탓이었다. 방금 전까지 잘난 체하며 말하던 녀석은 사라지고 바닥에 누워 앙앙 울어대는 녀석만 남았다. 흥, 꼴좋다. 우리 아버지가 가짜라니! 녀석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다들 뭐하는 거야!”
하필 이때 들어오신 선생님에, 나는 꼴 보기 싫은 녀석과 함께 교무실로 향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 아니, 그게 아니라요……. 선생님 전 아무 잘못 없어요! 잘못은 가짜 시디 들고 온 얘가 했죠! 선생님은 그게 무슨 말이냐며 녀석을 다그치셨다. 녀석의 횡설수설, 약간의 과장이 섞인 사건의 전말을 듣고 선생님은 한숨을 쉬셨다.
“이건 선생님과 너희만으로 끝날 일이 아닌 것 같구나.”
선생님은 망설임 없이 녀석의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에게 학교로 와 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고작 얼굴 한 번 때렸다고 아버지를 부르시다니. 정말 너무하시다. 아무도 오지 않았으면 하는 내 마음과는 달리, 녀석의 아버지는 10분도 채 되지 않아 도착하셨다.
“무슨 일입니까?”
녀석의 아버지는 경찰관이었다. 가슴에 달린 배지가, TV에서만 보던 경찰모자가 증명해주고 있었다. 혹시 자신의 아들을 때렸다고 나를 잡아가는 것은 아닐까? 처음 보는 경찰관에게 신기함보다 두려움이 더 앞섰다. 녀석의 아버지는 선생님에게 자초지종을 들으시더니, 곧장 나에게로 다가와 말씀하셨다.
“저작권이 뭔지 아니?”
나를 혼낼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것과 달리, 아저씨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아, 아니요. 저작권은 만든 사람의 권리 같은 거야, 권리. 권리요? 예를 들면, 네가 엄청 열심히 숙제를 했는데 친구가 그걸 아무 말 없이 베껴 쓰는 거야. 기분이 좋겠니? 당연히 기분 엄청 나쁘죠. 그래, 그런 기분 나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저작권이라는 게 생겨났어. 방금 말한 네 숙제처럼 남들에게 베껴지지 않을 수 있게 말이야.
나는 아저씨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이 얘기를 왜 하시는 거지. 그런데 그게 왜요? 너희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의 저작권을 해쳤단다. 네? 저희 아버지는 그런 적이 없는데요? 노래, 영화, 컴퓨터 프로그램 등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만들었을 창작물들을 너희 아버지가 시디에 옮겨서 사람들에게 판 것 같단다. 쉽게 말하면, 네 숙제를 말도 없이 베낀 아이가 돈을 받고 다른 아이들에게 네 숙제를 보여준다는 거야.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버지가 고개를 푹 숙이며 들어오셨다. 그리 늦게 오신 것도 아니었는데, 아버지는 고개를 들지 못하셨다. 교무실에 있는 어느 누구도 아버지에게 고개를 들으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녀석의 아버지가 아버지의 팔을 잡으며 말하셨다.
“자세한 건 경찰서로 가서 말합시다.”
아버지와 녀석의 아버지가 나란히 나가고, 선생님은 우리를 집으로 돌려 보내셨다. 내 말 맞지? 맞지? 이제 너희 아버지 감방 가실 거다. 옆에서 깐족거리는 녀석의 말에도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이상했다. 가벼운 시디들로만 가득 찬 가방이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책상에 가득 놓인 시디들을 바라보았지만 더 이상 아버지가 자랑스럽지 않았다. 그제야 아버지의 직업이 마법사가 아니라 도둑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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