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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애4

강경애 나의 유년시절 나의 유년시절(幼年時節) 5세에 아버지를 여읜 나는 일곱 살에 고향인 송화를 등지고 장연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어머니는 생계가 곤란하시므로 더구나 장차 의 지할 아들도 없고 다만 딸자식인 나를 믿고 언제까지나 살아가실 수 없는 고로 개가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때에 의붓아버지에게는 남매가 있었으니 남아는 16,7세 가량이었으며 계 집애는 내 한 살 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온 지 이틀도 지나기 전 에 벌써 우리들은 싸움을 시작하였습니다.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속상하실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의붓아버지까지라도 적지 않게 실망을 하여 나중에는 몇 번이나 헤어지려고까지 한 기억이 아직 껏 남아 있습니다. 우리들이 싸움을 하고 울 때마다 어머니는 너무 속상해서 우시면서, “경애야 너 싸우지 .. 2022. 7. 16.
강경애 어둠 어둠 툭 솟은 광대뼈 위에 검은빛이 돌도록 움쑥 패인 눈이 슬그머니 외과실을 살피다가 환자가 없음을 알았던지 얼굴을 푹 숙이고 지팡이에 힘을 주어 붕 대한 다리를 철철 끌고 문안으로 들어선다. 오래 깎지 못한 머리카락은 남바위나 쓴 듯이 이마를 덮어 꺼칠꺼칠하게 귀밑까지 흘러내렸으며 땀에 어룽진 옷은 유지같이 싯누래서 몸에 착 달라 붙어 뼈마디를 환히 드러내이고 있다. 소매로 나타난 수숫대 같은 팔에 갑 자기 뭉퉁하게 달린 손이 지팡이를 힘껏 다궈쥐었다. 금방 뼈마디가 허옇게 나올 것 같다. 의사는 회전의자에 앉아 의서를 보다가 흘끔 돌아보았으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얼른 머리를 돌리고 검실검실한 긴 눈썹에 싫은 빛을 푸르르 깃들이 고서 여전히 책에 열중한 체한다. 저편 침대 곁에서 소곤소곤 지껄이던 .. 2022. 7. 15.
강경애 인간문제 강경애 이 산등에 올라서면 용연 동네는 저렇게 뻔히 들여다볼 수가 있다. 저기 우뚝 솟은 저 양 기와집이 바로 이 앞벌 농장 주인인 정덕호 집이며, 그 다음 이편으로 썩 나와서 양철집이 면역 소며, 그 다음으로 같은 양철집이 주재소며, 그 주위를 싸고 컴컴히 돌아앉은 것이 모두 농가들이다. 그리고 그 아래 저 푸른 못이 원소(怨沼)라는 못인데, 이 못은 이 동네의 생명선이다. 이 못이 있길래 저 동네가 생겼으며, 저 앞벌이 개간된 것이다. 그리고 이 동네 개 짐승까지라도 이 물을 먹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 못은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무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동네 농민들은 이러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이 전설을 유일한 자랑거리로 삼으며, 따라서 그들이 믿는 신조로 한다. 그.. 2022. 7. 15.
강경애 어머니와 딸 어머니와 딸 1. 번민 부엌 뒷대문을 활짝 열고 나오는 옥의 얼굴은 푸석푸석하니 부었다. 그는 사면으로 기웃기웃하여 호미를 찾아들고 울바자 뒤로 돌아가며 기적 거린 후 박, 호박, 강냉이 씨를 심는다. 그리고 가볍게 밟는다. 눈동이 따끈따끈하자 콧잔등에 땀이 방울방울 맺힌다. 누구인지 옆구리를 톡톡 친다. 휘끈 돌아보니 복술이가 꼬리를 치면 그에게로 달려든다. 까만 눈을 껌벅이면서…… 옥은 호미를 던지고, "복술이 왔니!" 복술의 잔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멍하니 뒷산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과 마주 띄는 이끼 돋은 바위 틈에는 파래진 이름 모를 풀포기가 따뜻한 볕과 맑은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다. 그 옆으로 돌아가며 봄맞이 아이들의 손에 다 꺾인 나뭇가지에는 노랑꽃, 빨강꽃이 송이송이 피었다. 나비 한 .. 2022.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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