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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문학

채만식 태평천하

by 역달1 2022.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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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 平 天 下[태평천하]

1. 尹直員[윤직원] 영감 歸宅之圖[ 귀택 지도] 추석을 지나 이윽고 짙어가는 가을해가 저물기 쉬운 어느날 석양.

저 계동(桂洞)의 이름난 장자(富者[부자]) 윤직원(尹直員) 영감이 마침 어디 출입을 했다가 방금 인력거를 처억 잡숫고 돌아와 마악 댁의 대문 앞에서 내리는 참입니다.

간밤에 꿈을 잘못 꾸었던지, 오늘 아침에 마누라하고 다툼질을 하고 나왔던지, 아뭏든 엔간히 일수 좋지 못한 인력거꾼입니다.

여느 평탄한 길로 끌고오기도 무던히 힘이 들었는데 골목쟁이로 들어서서는 빗밋이 경사가 진 20여 칸을 끌어올리기야, 엄살이 아니라 정말 혀가 나올 뻔했읍니다.

28관, 하고도 6백 몸메!……

윤직원 영감의 이 체중은, 그저께 춘심이년을 데리고 진고개로 산보를 갔다가 경성우편국 바로 뒷문 맞은편, 아따 무어라더냐 그 양약국 앞에 놓아둔 앉은뱅이저울에 올라서본 결과, 춘심이년이 발견을 했던 것입니다.

이 28관 6백 몸메를, 그런데, 좁쌀계급인 인력거꾼은 그래도 직업적 단련 이란 위대한 것이어서, 젖먹던 힘까지 아끼잖고 겨우겨우 끌어올려 마침내 남대문보다 조금만 작은 솟을대문 앞에 채장을 내려놓곤, 무릎에 들였던 담요를 걷기까지에 성공을 했읍니다.

윤직원 영감은 옹색한 좌판에서 가까스로 뒤를 쳐들고, 자칫하면 넘어 박힐 듯싶게 휘뚝휘뚝하는 인력거에서 내려오자니 여간만 옹색하고 조심이 되는 게 아닙니다.

"야, 이 사람아……!"

윤직원 영감은 혼자서 내리다 못해 필경 인력거꾼더러 걱정을 합니다.

"……좀 부축을 히여 줄 것이지. 그냥 그러구 뻐언하니 섰어야 옳담말잉가?"

실상인즉 뻔히 섰던 것이 아니라, 가쁜 숨을 돌리면서 땀을 씻고 있었던것이나, 인력거꾼은 책망을 듣고 보니 미상불 일이 좀 죄송하게 되어, 그래얼핏 팔을 붙들어 부축을 해 드립니다.

내려선 것을 보니, 진실로 거판진 체집입니다.

허리를 안아본다면, 아마 모르면 몰라도 한아름하고도 반은 실히 될까 봅니다. 그런데다가 키도 알맞게 다섯 자 아홉 치는 넉넉합니다. 얼핏 알아듣 기 쉽게 빗대면, 지금 그가 타고 온 인력거가 장난감 같고, 그 큰 대문간이 들어서기도 전에 사뭇 그들먹합니다.

얼굴도 좋습니다.

거금 30여 년 전에, 몇해를 두고 부안(扶安)ㆍ변산(邊山)을 드나들면서 많이 먹은 용(茸)이며 저혈(猪血)ㆍ장혈(獐血)이며, 또 요새도 장복을 하는 인삼 등속의 약효로 해서 얼굴은 불콰하니 동안(童顔)이요, 게다가 많지도 적지도 않게 꼬옥 알맞은 수염은 눈같이 희어, 과시 홍안백발의 좋은 풍 신입 니다.

초리가 길게 째져 올라간 봉의 눈, 준수하니 복이 들어보이는 코, 뿌리 가추 욱 처진 귀와 큼직한 입모, 다아 수부귀다남자(壽富貴多男子)의 상 입니다.

나이?…… 올해 일흔두 살입니다. 그러나 시삐 여기진 마시오. 심장 비대증으로 천식(喘息)기가 좀 있어망정이지, 정정한 품이 서른 살 먹은 장정 여대 친답니다. 무얼 가지고 겨루든지 말이지요.

그 차림새가 또한 혼란스럽습니다. 옷은 안팎으로 윤이 지르르 흐르는 모시 진솔 것이요, 머리에는 탕건에 받쳐 죽영(竹纓) 달린 통영 갓( 統營笠[ 통영 립]) 이 날아갈 듯 올라앉았읍니다.

발에는 크막하니 솜을 한 근씩은 두었음직한 흰 버선에, 운두 새까만 마른 신을 조그맣게 신고, 바른손에는 은으로 개대가리를 만들어 붙인 화류 개화장이요, 왼손에는 서른네살박이 묵직한 합죽선입니다.

이 풍신이야말로 아까울사, 옛날 세상이었더면 일도의 방백( 一道方伯) 일시 분명합니다. 그런 것을 간혹 입이 비뚤어진 친구는 광대로 인식 착오를 일으키고, 동경ㆍ대판의 사탕장수들은 캬라멜 대장 감으로 침을 삼키니 통탄 할 일입니다.

인력거에서 내려선 윤직원 영감은, 저절로 떠억 벌어지는 두루마기 앞섶을 여 미려고 하다가 도로 걷어젖히고서, 간드러지게 허리띠에 가 매달린 새 파란 염낭끈을 풉니다.

"인력거 쌕이(삯이) 멫푼이당가?"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당자 역시 전라도 태생이기는 하지만, 그 전라도 말이라는 게 좀 경망스럽습니다.

"그저 처분해 줍사요!"

인력거꾼은 담요로 팔짱 낀 허리를 굽신합니다. 좀 점잖다는 손님한테 는 항투로 쓰는 말이지만, 이 풍신 좋은 어른께는 진심으로 하는 소립니다. 후 히 생각해 달란 뜻이지요.

"으응! 그리여잉? 그럼, 그냥 가소!"

윤직원 영감은, 인력거꾼을 짯짯이 바라다보다가 고개를 돌리더니, 풀었던 염낭 끈을 도로 비끄러맵니다.

인력거꾼은 어쩐 영문인지를 몰라, 두릿두릿하다가 혹시 외상인가 하고 뒤통수를 긁 적 긁 적하면서…… "그럼, 내일 오랍쇼니까?"

"내일? 내일 무엇허러 올랑가?"

윤직원 영감은 지금 심정이 약간 좋지 못한 일이 있는데, 가뜩이나 긴 찮이 잔말을 씹힌대서 저으기 안색이 변합니다.

그러나 이편 인력거꾼으로 당하고 보면, 무엇하러 오다니, 외상 준 인력거 삯 받으러 오지요라는 것이지만, 어디 무엄스럽게 그런 말을 똑바로 대고 하는 수야 있나요. 그러니 말은 바른 대로 하지 못하고, 그래 자못 난처 한판인데, 남의 그런 속도 몰라주고, 윤직원 영감은 인제는 내 할 말 다아 했다는 듯이 천천히 돌아서 버리자고 합니다.

인력거꾼은, 이러다가는 여느때도 아니요, 허파가 터질 뻔한 오늘 벌이가, 눈 멀뚱멀뚱 뜨고 그만 허사가 되지 싶어, 대체 이 어른이 어째서 이러는지는 모르겠어도, 그건 어찌 되었든지간에 좌우간 이렇게 병신스럽게 우물쭈물하고만 있을 일이 아니라고 크게 과단을 내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저어, 삯 말씀이올습니다. 헤…… "크게 과단을 낸다는 게 결국은 크게 조심을 하는 것뿐입니다.

"싹?"

"네에!"

"아니 여보소, 이 사람…… "윤직원 영감은 더러 역정을 내어, 하마 삿대질이라도 할 듯이 한 걸음 나섭니다.

"……자네가 아까 날더러, 처분대루 허라구 허잖있넝가?"

"네에!"

"그렇지?…… 그런디 거, 처분대루 허람 말은 맘대루 허람 말이 아닝가?"

인력거꾼은 비로소 속을 알았읍니다.

알고 보니 참 기가 막힙니다. 농도 할 사람이 따로 있지요. 웬만하면, 허허! 하고 한바탕 웃어젖힐 노릇이겠지만, 점잖은 어른 앞에서 그럴 수는 없고 그래 히죽이 웃기만 합니다.

"……그리서 나넌 그렇기 처분대루, 응?…… 맘대루 말이네. 맘대루 허라 구 허길래, 아 인력거삯 안 주어도 갱기찮언 종 알구서, 그냥 가라구 히 였지!"

인력거꾼은 이 어른이 끝끝내 농을 하느라고 이러는가 했지만, 윤직원 영감의 안색이며 말씨며 조금도 그런 내색이 보이지 않습니다.

"……거참!…… 나는 벨 신통헌 인력거꾼도 다아 있다구, 퍽 얌전허게 부았지! 늙은 사람이 욕본다구, 공으루 인력거 태다 주구 허넝 게 쟁히 기 특허다 구. 이 사람아, 사내대장부가 그렇기 그짓말을 식은 죽 먹듯 헌담 말잉가? 일구이언은 이부지자(一口二言二父之子)라네. 암만히여두 자네 어매( 어머니) 가 행실이 좀 궂었덩개비네!"

인력거꾼쯤이니 일구이언은 이부지자라는 공자님식(孔子式[공자식])이 욕이야 알아듣지 못했겠지만, 자네 어매가 행실이 궂었덩개비네 하는 데는 슬며시 비위가 상하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실상 그렇지 않아도 인력거 삯을 주지 않으려고 농인지 진상인지는 모르겠으되, 쓸데없는 승강을 하려 드는게 심정이 좋지 않은 참인데,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이건 한다는 소리가 거짓말을 한다는 둥, 또 죽은 부모를 편삿놈이 널(棺[관])머리 들먹거리듯 들 먹거리는 데야 누군들 좋아할 이치가 있다구요.

사실 웬만한 내기가 인력거를 타고 와설랑, 납작한 초가집 앞에서 그 따위 수작을 했다가는 인력거꾼한테 되잡혀 가지곤 뺨따구니나 한대 넙죽하니 얻어맞 기가 십상이지요.

"점잖은 어른께서 괜히 쇤네 같은 걸 데리구 그리십니다!…… 어서 돈장이나 주어 보냅사요! 헤…… "인력거꾼은 상하는 심정을 눅이고 종시 공순합니다. 그러나 그 돈장이란 말이 윤직원 영감한테는 저 히틀러라든지 하는 덕국 파락호(破落戶)의 폭탄 선언이라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말입니다.

"머어? 돈장?…… 돈장이 무어당가? 대체…… ""일환 한 장 말씀입죠! 헤…… "남은 기가 막혀서 하는 말을, 속없는 인력거꾼은 고지식하게 언해( 諺解) 를달고 있읍니다.

"헤헤, 나 참, 세상으 났다가 벨 일 다아 보겄네!…… 아니 글씨, 안 받어두 졸 드키 처분대루 허라던 사람이, 인제넌 마구 그냥 일 원을 달래여? 참기가 맥히서 죽겠네…… 그만두소. 용천배기 콧구녕으서 마널씨를 뽑아 먹구말지, 내가 칙살시럽게 인력거 공짜루 타겄넝가!…… 을매(얼마) 받을랑가?

바른 대루 말허소!"

인력거꾼은 괜히 돈 몇십전 더 얻어먹으려다가 짜장 얻어먹지도 못하고 다 른 데 벌이까지 놓치지 싶어, 할 수 없이 50전을 불렀읍니다. 그러나, 윤직원 영감은 여전합니다.

"아니, 이 사람이 시방 나허구 실갱이(승강이)를 허자구 이러넝가? 권연 시리( 괜시리) 자꾸 쓸디읎넌 소리를 허구 있어!…… 아 이 사람아, 돈 50 전이 뉘 애기 이름인 종 아넝가?"

"많이 여쭙잖읍니다. 부민관서 예꺼정 모시구 왔는뎁쇼!"

"그러닝개 말이네. 고까짓것 엎어지먼 코 달 년의 디를 태다주구서 50 전씩이나 달라구 허닝개 말이여!"

"과하게 여쭙잖었읍니다. 그리구 점잖은 어른께서 막걸리값이나 나우 주서야 허잖겠사와요?"

윤직원 영감은 못 들은 체하고, 모로 비스듬히 돌아서서, 아까 풀렀다가 도로 비끄러맨 염낭끈을 다시 풀더니, 이윽고 십전박이 두푼을 꺼내가지고, 그것을 손톱으로 싸악싹 갓을 긁어봅니다. 노상 사람이란 실수를 하지 말란 법이 없는 법이라, 좀 일은 되더라도 이렇게 다시 한번 손질을 해보면, 가사 10전짜린 줄 알고 50전짜리를 잘못 꺼냈더라도, 톱날이 있고 없는 것으로, 아주 적실하게 분별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니까요.

"옜네…… 꼭 15전만 줄 것이지만, 자네가 하두 그리싸닝개 20전을 주넝것이니, 5전을랑 자네 말대루 막걸리를 받어먹든지, 탁배기를 사먹든지 맘 대루 허소. 나넌 모르네!"

"건 너무 적습니다!"

"즉다니? 돈 20전이 즉담 말인가? 이 사람아 촌으 가먼 땅이 열 평이네, 땅이 열 평이여!"

인력거꾼은, 그렇거들랑 그거 20전 가지고 촌으로 가서 땅 열 평 사놓고서

3대 4대 빌어먹으라고 쏘아 던지고서 홱 돌아서고 싶은 것을, 그러나 겨우 참습니다.

"10전 한푼만 더 줍사요. 그리구 체두 퍽 무거우시구 허셨으니깐, 헤…… ""아니, 이 사람이 인재넌 벨 트집을 다아 잡을라구 허네! 이 사람아, 그럴 티먼 나넌 이 큰 몸집으루 자네 그 쬐외깐헌 인력거 타니라구 더 욕을 부았다네. 자동차나 기차나, 몸 무겁다구 돈 더 받넌 디 부았넝가?"

"헤헤, 그렇지만…… ""어쩔 티여? 이것 받어갈랑가? 안 받어갈랑가? 안 받어간다먼 나 이놈으루 괴기 사다가 야긋야긋 다져서 저녁 반찬이나 히여 먹을라네."

"거저 10전 한푼만 더 쓰시면 허실걸, 점잖어신 터에 그리십니다!"

"즘잔? 이 사람아 그렇기 즘잖을라다가넌 논 팔어 먹겄네!…… 에잉 그 거참! 그런 인력거꾼 두 번만 만났다가넌 마구 감수(減壽)허겄다!……"

이 말에 인력거꾼이 바른 대로 대답을 하자면, 그런 손님 두 번만 만났다가는 기절하겠다고 하겠지요.

윤직원 영감은 맸던 염낭끈을 또 도로 풀더니, 5전박이 한푼을 더 꺼냅니다. 이 5전은 무단스레 더 주는 것이거니 생각하면 다시금 역정이 나고 돈이 아까왔지만, 인력거꾼이 부둥부둥 떼를 쓰는 데는 배겨낼 수가 없다고, 진실로 단념을 한 것입니다.

"……거참!…… 옜네! 도통 25전이네. 이제넌 자네가 내 허리띠에다가 목을 매달어두, 쇠천 한푼 막무가낼세!"

인려거꾼은 윤직원 영감이 말도 다 하기 전에 딸그랑하는 대소 백통화 서푼을 그 육중한 손바닥에다가 받아 쥐고는, 고맙다고 하는지 무어라고 하는지 분명찮게 입안의 소리로 두런거리면서, 놓았던 인력거 채장을 집어 들고 씽 하니 가버립니다.

"에잉! 권연시리 그년의 디를 갔다가 그놈의 인력거꾼을 잘못 만나서 실갱이를 허구, 애맨 돈 5전을 더 쓰구 히였구나! 고년 춘심이년이 방정 맞게와 서 넌 명창대횐(名唱大會)지 급살인지 헌다구, 쏘사악쏘삭허기때미 그 년의 디를 갔다가…… "윤직원 영감은 역정 끝에 춘심이더러 귀먹은 욕을 하던 것이나, 그렇지만 그건 애먼 탓입니다. 왜, 부민관의 명창대회를 무슨 춘심이가 가자고 해서 갔나요? 춘심이는 그저 부민관에서 명창대회를 하는데, 제 형 운심이도 연주에 나간다고 자랑삼아 재잘거리는 것을, 윤직원 영감 자기가 깜짝 반겨 선, 되레 춘심이더러 가자가자 해서 꾀어가지고 갔으면서…… 사실 말이지, 춘심이가 그런 귀띔을 안 해주었으면 윤직원 영감은 오늘 명창 대회는 영영 못 가고 말았을 것이고, 그래서 다음날이라도 그걸 알았으면 냅다 발을 굴렀을 것입니다.

2. 無賃乘車 奇術[무임승차 기술] 윤직원 영감은 명창대회를 무척 좋아합니다. 아마 이 세상에 돈만 빼놓고는 둘째 가게 그 명창대회란 것을 좋아할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본이 전라도 태생인 관계도 있겠지만, 그는 워낙 남도 소리며 음률 같은 것을 이만저만찮게 좋아합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깐으로는, 일년 삼백예순날을 밤낮으로라도 기생이며 광대며 를 사랑으로 불러다가 듣고 놀고 하고는 싶지만, 그렇게 하자면 일왈 돈이 여간만 많이 드나요!

아마 일 년을 붙박이로 그렇게 하기로 하고, 어느 권번이나 조선 음악 연구 회 같은 데 교섭을 해서 특별할인을 한다더라도 하루에 소불하 10원쯤은 쳐주어야 할 테니, 하루에 십 원이면 한 달이면 삼백 원이라, 그리고 일 년이면 3천…… 아유! 그건 윤직원 영감으로 앉아서는 도무지 생각할 수도 없게시리 큰 돈입니다.천문학적 숫자란 건 아마 이런 경우에 써야 할 문잘걸요.

한즉, 도저히 그건 아주 생심도 못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거야말로 사람 살 곳은 골골마다 있다든지, 윤직원 영감의 그다지도 뜻 두고 이루지 못하는 대원을 저으기나마 풀어주는 게 있으니, 라디오와 명창대회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완(李浣)이 대장으로 치면 군산( 群山)을 죄꼼은 깎고, 계수를 몇 가지 벤 만큼이나 하다 할는지요. 윤직원 영감은 그래서 바로 머리맡 연상(硯床) 위에 삼구(三球)짜리 라디오 한 세트를 매 두고, 그걸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방송국의 마이크를 통해 오는 남도 소리며, 음률 가사 같은 것을 듣고는 합니다.

장죽을 기다랗게 물고는 보료 위에 편안히 드러누워 좋다! 소리를 연해 쳐가면서 즐거운 그 음악소리를 듣노라면, 고년들의 이쁘게 생긴 얼굴이나 광대들의 거동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유감은 유감이지만, 그래도 좋기야 참 좋습니다.

라디오를 프로그램대로 음악을 조종하는 소임은 윤직원 영감의 차인 겸 비서 겸 무엇 겸 직함이 수두룩한 대복(大福)이가 맡아 합니다.

혹시 남도소리나 음률 가사 같은 것이 없는 날일라치면 대복이가 생으로 벼락을 맞아야 합니다.

"게, 밥은 남같이 하루에 시 그릇썩 먹으먼서, 그래, 어떻기 사람이 멍청 허 먼, 날마당 나오던 소리를 느닷읎이 못 나오게 헌담 말잉가?"

이러한 무정지책에 대복이는 유구무언, 머리만 긁적긁적합니다. 하기야 대 복이도 처음 몇번은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그렇게 정했으니까, 집에 앉아 서야 라디오를 아무리 주물러도 남도소리는 나오지 않는 법이라고 변명을 했 더랍니다.

한다치면, 윤직원 영감은 더럭…… "법 이라께? 그런 개× 같은 놈의 법이 어딨당가?…… 권연시리 시방 멍청 허다구 그러닝개, 그 말은 그리두 고까워서 남한티다가 둘러씨니라구?…… 글씨 어떤 놈의 소리가 금방 엊저녁까지 들리던 소리가 오널사말구 시급스럽게 안 들리넝고? 지상(妓生[기생])이랑 재인광대가 다아 급살맞어 죽었다 덩가?"

이렇게 반찬 먹은 고양이 잡도리하듯 지청구를 하니, 실로 죽어나는 건 대 복 입니다. 방송국에서 한동안, 꼭같은 글씨로, 남도소리를 매일 빼지 말고 방송 해 달라는 투서를 수십 장 받은 일이 있읍니다.

그게 뉘 짓인고 하니, 대복이가 윤직원네 영감한테 지청구를 먹고는 홧김에 써보고, 핀잔을 듣고는 폭폭하여 써보내고 하던, 그야말로 눈물의 투서 였던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의 불평은 그러나 비단 그뿐이 아닙니다. 소리를 기왕 할테거든 두어 시간이고 서너 시간이고 붙박이로 하지를 않고서, 고까짓 것 30분, 눈 깜짝할 새 감질만 내다가 그만둔다고, 그래서 또 성홥니다.

물론 투정이요, 실상인즉 혼자 속으로는 그놈의 것 돈 17원 들여서 사놓고한 달에 1원씩 내면서 그 재미를 다 보니, 미상불 헐키는 헐타고 은근히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또 막상 청취료 1원야라를 현금으로 내주는 마당에 당해서는 라디오에 대한 불평 겸 돈 1원이 못내 아까와 서 "그까짓 놈의 것이 무엇이라구 다달이 돈을 1원썩이나 또박또박 받어 간다냐?"

"그럴 티거든 새달버텀은 그만두래라!"

이렇게 끙짜를 하기를 마지않습니다.

라디오는 그리하여 아뭏든 그러하고, 그 다음이 명창대횝니다.

기생이며 광대가 가지각색이요, 그래서 노래도 여러가지려니와 직접 눈으로 보면서 오래오래 들을 수가 있기 때문에, 감질나는 라디오보다는 그것이 늘 있는 게 아니어서 흠은 흠이지만, 그때그때만은 퍽 생광스럽습니다. 딱이 윤직원 영감의 소원 같아서는, 그런즉슨 명창대회를 일년 두고 삼 백 예순 날 날마다 했으면 좋을 판입니다.

이렇듯 천하에 달가운 명창대횐지라, 서울 장안에서 언제고 명창대회를 하게 되면 윤직원 영감은 세상없어도 참례를 합니다. 만일 어느 명창 대회에 윤직원 영감이 참례를 못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대복이의 태만입니다.

대복이는 멀리 타관에를 심부름 가고 있지 않는 이상 매일같이 골목 밖 이발소에 나가서 라디오의 프로그램과 명창대회나 조선음악연구회 주최의 공연이 있는지를 신문에서 찾아내야 합니다.

대복이가 만일 실수를 해서 윤직원 연감한테 그것을 알으켜 드리지 못 한 결과 혹시 한번이라도, 그 끔직한 굿(구경)에 참례를 못하고서 궐을 했다는 사실을 윤직원 영감이 추후라도 알게 되는 날이면, 그때에는 대복이가 집안 가용을 지출하는 데 있어서(가령 두 모만 사야 할 두부를 세 모를 사기 때 문에) 돈을 5전 가량 요외로 더 지출했을 때만큼이나 벼락같은 꾸중을 듣게 됩니다.

아뭏든 그만큼이나 좋아하는 명창대회요, 그래 오늘만 하더라도 낮에는 한시부터 시작을 한다는 걸 윤직원 영감이 춘심이를 앞세우고 댁에서 나선 것이 열한시반이 채 못되어섭니다.

"글쎄 이렇게 일찍 가서 무얼 해요? 구경터에 일찍 가서 우두커니 앉었는것도 꼴불견인데…… "앞서 가던 춘심이가 일껏 잘 가다가 말고 히뜩 돌아서더니, 한참 까부느라고 이렇게 쫑알거리던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허연 수염을 한번 쓰다듬으면서 헤벌쭉 웃습니다.

"저년이 또 초라니치름 까분다!…… 그러지 말구, 어서 가자, 가아!"

윤직원 영감이 살살 달래니까 춘심이는 다시 돌아서서 아장아장 걸어갑니다.

아이가 얼굴이 남방 태생답잖게 갸로옴한 게, 또 토끼화상이 아니라도 두 눈은 또렷, 코는 오똑, 입술은 오뭇, 다 이렇게 생겨 놔서 대단히 야무집니다. 그렇게 야무지게 생긴 제값을 하느라고 아이가 착실히 좀 까불구요.

나이가 아직 열다섯 살이라, 얼굴이 피지는 않았어도 보고 듣는 게 그런 탓으로 몸매하며 제법 계집애 꼴이 박였읍니다.

머리를 늘쩡늘쩡 땋아내려, 자주댕기를 들인 머리채가 방둥이에서 유난히 치렁 치렁합니다. 그러나 이 머리는 알고 보면 중동을 몽땅 자른 단발머리에다가 다래를 들인 거랍니다.

앞머리는 좀 자르기도 하고 지져서 오그려붙이기도 하고 군데군데 핀을 꽂았 읍니다.

빨아서 분홍물을 들인 흘게 빠진 생수 깨끼적삼에 얼쑹덜쑹한 주릿대 치마를 휘걷어 넥타이로 질끈 동인 게 또한 제격입니다.

살결보다는 버짐이 더 많이 피고, 배내털이 숭얼숭얼해서 분을 발랐다는게 고루 먹지를 않고, 어루러기가 진 것 같습니다.

이만하면 어디다가 내놓아도 대광교 천변가로 숱해 많이 지나다니는 그런 모습의 동기(童妓)지, 갈데없읍니다.(그러나 그렇다고 깔보지는 마십시오.

그래 보여도 그애가 요새 그 연애를 한답니다,) 춘 심이는 윤직원 영감이 달래는 대로 한동안 앞을 서서 찰래찰래 가고 있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또 히뜩 돌려다 보면서 "영감님!"

하고 뱅글뱅글 웃습니다. 이 애는 잠시라도 까불지 못하면 정말 좀이 쑤십 니다.

"무어라구 또 촐랑거리구 싶어서 그러냐?"

"이렇게 일찍 가는 대신 자동차나 타고 갑시다, 네?"

"자동차?"

"내애."

"그리라, 젠장 맞 일…… "춘 심이는 윤직원 영감이 섬뻑 그러라고 하는 게 되레 못 미더워서 짯짯이 얼굴을 올려다봅니다. 아닌게아니라, 히물히물 웃는 게 장히 미심쩍습니다.

"정말 타구 가세요?"

"그리어! 이년아."

"그럼, 전화 빌려서, 자동차 불러예죠?"

"일부러 안 불러두, 죄꼼만 더 가먼, 저기 있단다."

"어디가 있어요! 안국동 네거리까지 가야 있는걸."

"제까지 안 가두 있어!"

"없어요!"

"있다!……뻔쩍뻔쩍허게 은칠헌 놈, 크다란 자동차…… ""어이구 참! 누가 빠쓰 말인가, 뭐…… "춘 심이는 고만 속은 것이 분해서 뾰롱해가지고 쫑알댑니다.

"빠쓸 가지구, 아주 자동차래요!"

"자동차라두 그놈이 여니 자동차보담 더 비싸다, 이년아!"

"5전씩인데 비싸요!"

"타는 차값 말이간디? 그놈 사올 때 값 말이지…… "윤직원 영감은 재동 네거리 뻐스 정류장에서 춘심이와 같이 뻐스를 기다립니다. 때가 아침저녁의 러시아워도 아닌데 웬일인지 만원 된 차가 두 대나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그러더니 세 대째만에, 그것도 여간 붐비지 않는걸, 들이 떼밀고 올라타니까 뻐스걸이 마구 울상을 합니다.

윤직원 영감은 자기 혼자서 탔으면 꼬옥 알맞을 뻐스 한 채를 만원 이상의 승객과 같이 탔으니 남이야 어찌 되었던간에 윤직원 영감 당자도 무척 고생 입니다. 그럴 뿐 아니라, 갓을 뻐스 천장에다가 치받치지 않으려고 허리를 꾸부정하고 섰자니, 공간을 더 많이 차지해야 됩니다. 그 대신 춘심이는 윤직원 영감의 겨드랑 밑에 가 박혀 있어 만약 두루마기 자락으로 가리기만 하면 차삯은 안 물어도 될 성싶습니다.

겨우겨우 총독부 앞 종점에 당도하여 다들 내리는 데 섞여 윤직원 영감도 춘 심이로 더불어 내리는데, 뻐스에 탔던 사람들은 기념이라도 하고 싶은 듯 이 제가끔 한번씩 치어다보고 갑니다.

윤직원 영감은 뻐스에서 내려서 대견하게 숨을 돌린 뒤에, 비로소 염낭 끈을 풀어 천천히 돈을 꺼낸다는 것이 10원짜리 지전입니다.

"그걸 어떡허라구 내놓으세요? 거스를 돈 없어요!"

여차장은 고만 소갈머리가 나서 보풀떨이를 합니다.

"그럼 어떡허넝가? 이것두 돈은 돈인 디…… ""누가 돈 아니래요? 잔돈 내세요!"

"잔돈 읎어!"

"지끔 주머니 속에서 잘랑잘랑 소리가 나든데 그리세요? 괜히…… ""으응, 이거?"

윤직원 영감은 염낭을 흔들어 그 잘랑잘랑 소리를 들려주면서 "…… 이건 못쓰넌 돈이여, 사전이여…… 정, 그렇다 먼못 쓰 넌 돈이라 두 그냥 방을 티여?"

하고 방금 끈을 풀려고 하는 것을, 여차장은 오만상을 찡그리고는 "몰라요! 속상해 죽겠네!…… 어디꺼정 가세요?"

하면서 참으로 구박이 자심합니다.

"정거장."

"그럼, 전차에 가서 바꾸세요!"

"그러까?"

잔돈을 두어두고도 10원짜리를 낸 것이며, 부청 앞에서 내릴 테면서 정거장까지 간다고 한 것이며가 모두 요량이 있어서 한 짓입니다.

무사히 공차를 탄 윤직원 영감은 총독부 앞에서부터는 춘심이를 앞세우고 부민관까지 천천히 걸어서 갑니다.

"좁은 뽀수 타니라구 고생헌 값을 이렇기 도루 찾는 법이다."

그는 이윽고 공차 타는 기술을 춘심이한테도 깨우쳐 주던 것인데, 그런 걸 보면 아마 청기와장수는 아닌 모양입니다.

3. 西洋國 名唱大會[서양국 명창 대회] 중로에서 그렇듯 많이 충그리고 길이 터지고 했어도, 회장에 당도했을 때에는 부민관 꼭대기의 큰 시계가 열두시밖에는 더 되지 않았읍니다.

입장권을 사기 전에 윤직원 영감과 춘심이 사이에는 또 한바탕 상지가 생겼 읍니다.

윤직원 영감은 춘심이더러, 네 형이 출연을 한다면서 무대 뒷문으로 제 형을 찾아 들어가 공짜로 구경을 하라고 시키던 것입니다. 그러나 춘 심이는, 암만 그렇더라도 저도 윤직원 영감을 따라왔고, 그래서 버젓한 손님이니까 버 젓하게 표를 사가지고 들어가야 말이지, 누가 치사하게 공구경을 하느냐고 우깁니다.

그래 한참이나 서로 고집을 세우고 양보를 않던 끝에, 윤직원 영감은 슬며시 10전박이 두 푼을 꺼내서 춘심이 손에 쥐어주면서 살살 달랩니다.

"옜다. 이놈으루 군밤이나 사먹구, 귀경(구경)은 공으루 들여 달라구 히여, 응?…… 그렇게 허먼 너두 좋구 나두 좋구 허지?"

한여름에도 아이들한테 돈을 주려면 군밤값이라는 게 윤직원 영감의 보캐 블러 리 입니다.

춘심이는 군밤값 20전에 할 수 없이 매수가 되어 마침내 타협을 하고, 먼저 무대 뒤로 해서 들어갔읍니다.

윤직원 영감은 넌지시 50전을 내고 하등표를 달라고 해서 홍권(紅券)을 한장 샀읍니다. 그래가지고는 아래층 맨 앞자리의 맨 앞줄에 가서 처억 앉으니까, 미상불 아무도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갈데없이 첫쨉니다.

조금 앉았노라니까, 아마 윤직원 영감의 다음은 가게 날쌘 사람 이었든지, 한 사십이나 되어 보이는 양복신사 하나가 비로소 들어오더니, 역시 맨 앞줄을 골라 앉습니다.

그 양복신사는 웬일인지 처음 들어오면서부터 윤직원 영감을 연해 흥미 있게 보고 또 보고 해쌓더니, 차차로 호기심이 더하는 모양, 필경은 자리를 옮아 옆으로 바싹 와서 앉습니다. 그러고는 잠시 앉아서 윤직원 영감에게 말 없는 경의를 표한다고 할까, 아뭏든 몹시 이야기를 붙여보고 싶어하는 눈치 더니 마침내 "이번에 인기가 굉장헌 모양이지요?"

하고 은근공손히 말을 청합니다. 그러나 윤직원 영감으로 보면 인기란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거니와, 또 낯모를 사람과 쓰잘데없이 이야기를 할 맛도 또한 없는 것이라 거저 "예에!"

하고 건성으로 대답을 할 뿐입니다.

양복신사씨는 좀 싱거웠던지, 잠깐 덤덤하더니 한참만에 또 "거 소릴 얼마나 공불 허면 그렇게 명창이 되시나요?"

하고 묻는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별 쑥스런 사람도 다 보겠다고, 귀찮게 여기며 아무렇게나…… "글씨…… 나두 몰루."

"헤헤엣다, 괜히 그리십니다!"

"무얼 궈녀언이 그런다구 그러우?…… 나넌 소리를 좋아넌 히여두 소리를 헐 종은 모르넌 사램이요!"

"괘애니 그리세요! 명창 이동백(李東伯)씨가 노래헐 줄 모르신다면 누 가압니까?"

원 이럴 데가 있읍니까! 어쩌면 윤직원 영감더러 광대 이동백이라고 하다니요!

윤직원 영감은 단박 분하고 괘씸하고 창피하고 뭐, 도무지 어떻다고 형언 할 수가 없읍니다. 아무리 예법이 없어진 오늘이라 하더라도, 만일 그 자리가 그 자리가 아니고 계동 자기네 댁만 같았어도, 이놈 당장 잡아 내리라고 호령을 한바탕 했을 겝니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고 칼날 밑에서와 총부리 앞에서 목숨을 내걸어 보기 수없던 윤직원 영감입니다. 또 시속이 어떻다는 것이며, 그래 아무 데 서고 함부로 잘못 호령깨나 하는 체하다가는 괜히 되잡혀서 망신을 하는 수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읍니다.

윤직원 영감은 속을 폭신 삭혀 가지고 자기 손에 쥔 표를 내보이면서, 나도 이렇게 구경을 왔노라고 점잖이 깨우쳐 주었읍니다. 그랬더니 양복 신사씨는 윤직원 영감이 생각한 바와는 딴판으로 백배 사죄도 않고 그저, 아 그러냐고 실례했다고 고개만 한번 까댁합니다. 윤직원 영감은 그게 다시 괘씸했으나 참은 길이라 그냥 눌러 참았읍니다.

그럴 때에 마침 또다른 양복장이 하나가 나타났읍니다. 윤직원 영감한테 는 갖추 불길한 날입니다.

그 양복장이는 옷깃에다가, 가화(假花)를 꽂은 양이, 오늘 여기서 일 서 두리를 하는 사람인가 본데, 우연히 지나가다가 윤직원 영감이 홍권을 사가지고 어엿하게 백권석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 붉은 입장권을 보지 못했었다면 설마 이 풍신 좋은 양반이 홍권을 가지고 백 권석에 들어 앉았으랴 는 의심이야 내지도 않았겠지요.

"저어, 여긴 백권석입니다. 저 위칭으로 가시지요!"

양복장이는 좋은 말로 이렇게 간섭을 합니다. 그러나 윤직원 영감은 백 권 석 이란 신식 문자는 모르되 이층으로 가라는 데는 자뭇 의외였읍니다.

"왜 날더러 그리 가라구 허우?"

"여긴 백권석인데요, 노인은 홍권을 사셨으니깐 저 위칭 홍권석으루 가셔야 합니다."

"아니…… 이건 하등표요! 나넌 돈 50전 주구 하등표 이놈 샀어! 자, 보시요!"

"그러니깐 말씀입니다. 노인 말씀대루 하면 여긴 상등이거든요. 그런데 노인께선 하등표 사가지구 이 상등에 앉었으니깐, 저 하등석으루 올라가시란 말씀입니다."

"예가 상등이라? 그러구 저 높은디 이칭이 하등이라?"

"네에."

"아니, 여보? 그래, 그런 법이 어디가 있담 말이요? 높은 디가 하등이구나 찬 디가 상등이라니! 나넌 칠십평생으 그런 말은 츰 듣겄소!"

"그래두 그렇잖습니다. 여기선 예가 상등이구, 저 이칭이 하등입니다."

"거참! 그럼, 예는 우리 죄선(朝鮮) 아니구 저어 서양국(西洋國)이요? 그렇길래 이렇기 모다 꺼꾸로 되지?"

"허허허허. 그렇지만 신식은 다아 그렇답니다. 그러니 정녕 이 자리에서 구경을 허시겠거던 돈을 일 원 더 내시구 백권을 사시지요?"

"나넌 그럴 수 없소! 암만 그리두, 나넌 예가 하등이닝개루, 예서 귀 경 헐 라우!"

우람스러운 몸집과 신선 같은 차림을 하고서, 애기처럼 응석을 부리는 데는 서두리꾼도 어리광을 받아주는 양 짐짓 지고 말아, 윤직원 영감은 마침내 홍권으로 백권석에서 구경을 했읍니다.

실상 윤직원 영감은 위정 그런 어거지를 쓴 것은 아닙니다. 꼭 극장만 여겨서 아래층이 하등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의 처음 몇번의 경험에 의하면, 명창대회는 아래층( 그러니까 하등이지 요) 맨 앞자리의 맨 앞줄이 제일 좋은 자리였읍니다. 기생과 광대들의 일동일정이 바로 앞에서 잘 보이고, 노래가 가까이 들리고, 그리고 하등이라 값이 헐하고.

이러한 묘리를 터득한 윤직원 영감이라, 오늘도 하등표를 산다고 사가지고 하등을 간다고 간 것이 삼곱이나 더하는 백권석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뱃심이라고 할지 생억지라고 할지, 아뭏든 서두리꾼을 이겨내고, 필경은 그대로 백권석에서 구경을 했읍니다.

더욱 좋은 것은 여느 극장 같으면 하등인 맨 앞자리는 고놈 깍정이 같은 조무래기 패가 옴닥옴닥 들어박혀 윤직원 영감의 육중한 체구가 처억 그 틈에 끼여 있을라치면, 들이 놀림감이 되고, 그래 좀 창피했는데, 오늘은 이 상등스러운 하등이 모두 점잖은 어른들이나 이쁜 기생들뿐이요, 그따위 조무래기 떼가 없어서 실로 금상첨화라 할 수 있었읍니다.

구경을 아주 원만히 마치고 난 윤직원 영감은 춘심이는 제 집이 청진동이니까 걸어가라고 보내고, 자기 혼자만 전차 정류장까지 나왔읍니다. 그러나 숱 해 몰려나온 구경꾼들과 같이서 전차를 탈 일이며, 또 뻐스를 탈 일이며, 그 뿐 아니라 재동서 내려 경사진 계동길을 걸어올라가자면 숨이 찰 일이며 모두 생각만 해도 대견했읍니다. 10원짜리를 가지고 하면 또 공차를 탈 수도 있을 테지만, 에라 내가 돈을 아껴서는 무얼 하겠느냐고 실로 하늘이 알까 무서운 변심을 먹고, 마침 지나가는 인력거를 불러 탔던 것이고, 결과는 돈 5전을 가외에 더 뺏겼고, 해서 정히 역정이 났었고, 그리고 또 대문이 말 입니다.

대문은 언제든지 꽉 잠가 두거니와, 옆으로 난 쪽문도 안으로 잠겼어야 할것이거늘 그것이 훤하게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큰대문을 열어놓고 있노라면, 어쩐지 집안엣 것이 형적 없이 자꾸만 대문으로 해서 빠져나가는 것만 같고, 그 대신 상서롭지 못한 것 이 자꾸만 술술 들어오는 것만 같고 하여, 간혹 장작바리나 큰 짐이 들어올 때가 아니면 큰대문은 결단코 열어놓는 법이 없읍니다. 이것은 아주 이 집의엄한 가헌(?)입니다.

큰대문은 그래서 항상 봉해 두고, 출입은 어른 아이 상전 하인 할것 없이 한옆으로 뚫어놓은 쪽문으로 드나듭니다. 그거나마 꼭꼭 지쳐두어야지, 만일 오늘처럼 이렇게 열어놓군 하면 거지 등속의 반갑잖은 손님이 들어올 위험이 다분히 있읍니다.

물론 아무리 밑질긴 거지가 들어와서 목을 매고 늘어진댔자 동전 한푼 동냥을 주는 법은 없지만, 그러자니 졸리고 악다구니를 하고 하기가 성가신 노릇이니까 요. 그러므로 만일 쪽문을 열어놓는 것이 윤직원 영감의 눈에 뜨이고 보면, 그여코 한바탕 성화가 나고라야 마는데, 대체 식구 중에 누가 갈 충 머리 없이 이런 해망을 부렸는지 참말 딱한 노릇입니다.

역정이 난 윤직원 영감이,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나가는 만큼이나 애를 써서 좁다란 그 쪽문으로 겨우겨우 비비 뚫고 들어서면서 꽝 소리가 나게 문을 닫는데, 마침 상노 아이놈 삼남이가 그제야 뽀르르 달려나옵니다.

이놈이 썩 묘하게 생겼읍니다. 우선 부룩송아지 대가리같이 머리가 곱슬곱슬하고 노랗기까지 한 게 장관이요, 그런 대가리가 어쩌면 그렇게도 큰 지남의 것 같읍니다. 눈은 사팔이어서 얼굴을 모로 돌려야 똑바로 보이고, 코는 비가 오면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나이는 스무 살인데 그것은 이애한테만 세월이 특별히 빨리 갔는지, 열 살은 에누리없이 모자랍니다.

그러나 이애야말로 윤직원 영감한테는 대단히 보배스러운 도구( 道具) 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상노아이놈을 똑똑한 놈을 두는 법이 없읍니다. 똑똑한 놈이면 으례껏 훔치훔치 즉 태을도(太乙道:도적질)를 한대서 그러는 것 입니다.

실상 전에 시골서 살 때에는 똑똑한 상노놈을 더러 두어본 적도 있었으나, 했다가 번번이 그 태을도를 하는 바람에 뜨거운 영금을 보았었읍니다.

이 삼남이는 시골 있는 산지기 자식으로 못난 이름이 근동에 널리 떨친 것을 시험삼아 데려다가 두고 보았더니 미상불 천하일품이었읍니다.

너무 멍청해서 데리고 부리기가 매우 갑갑한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 대 신 일 년 삼백예순날을 가도 동전 한푼은커녕 성냥 한 개피 몰래 축내는 법이 없 읍니다. 또 산지기의 자식이니, 시속 아이놈들처럼 월급이니 무엇이니 하는 그런 아니꼬운 것도 달라고 않습니다. 해서 참말 둘도 구하기 어려운 보물인 것입니다.

그런지라 윤직원 영감은 여느때 같으면 삼남이가 나와서 그렇게 허리를 굽 신하면 그저 오냐 하고 좋게 대답을 했을 것이지만, 오늘은 그래저래 역정이 난 판이라 누구든지 맨 처음에 눈에 띄는 대로 소리를 우선 버럭 질러주어야 할 판입니다.

"야 이놈아! 어떤 손모가지가 문은 그렇기 휘어언하게 열어누왔냐? 응?"

"저는 안 그맀어라우! 아마 중마내님이 금방 들어오싰넌디, 그렇게 열어 누 왔 넝 개비 라우?"

중마내님이라는 건 윤직원 영감의 며느리로 지금 이 집의 형식상 주부( 主婦) 입니다.

"그맀으리라! 짝 찢을 년!……"

윤직원 영감은 며느리더러 이렇게 욕을 하던 것입니다. 그는 며느리뿐만 아니라 딸이고 손자며느리고, 또 지금은 죽고 없지만 자기 부인이고, 전에 데리고 살던 첩이고, 누구한테든지 욕을 하려면 우선 그 '짝 찢을 년’이라는 서양말의 관사(冠詞) 같은 것을 붙입니다. 남잘 것 같으면 '잡어 뽑을 놈’을 붙이고…… "짝 찢을 년!…… 아, 그년은 글씨 무엇하러 밤낮 그렇기 싸댕긴다냐?"

"모올라우!"

"옳다. 내가 모르넌디 늬가 알 것이냐!…… 짝 찢을 년! 그년이 서방 이안 돌아부아 주닝개 오두가 나서 그러지, 오두가 나서 그리여!"

"아마 그렁개비라우!"

관중이 없어서 웃어주질 않으니 좀 섭섭한 장면입니다.

윤직원 영감이 그렇게 쌍소리로 며느리며 누구 할 것 없이 아무한테고 욕을 하는 것은, 그의 입이 험한 탓도 있겠지만, 그의 근지가 인조견이나 도 금비녀처럼 허울뿐이라 그렇다고도 하겠읍니다.

윤직원 영감의 근지(根地)야 참 보잘게 별양 없습니다.

4. 우리만 빼놓고 어서 亡[ 망] 해라 얼굴이 말(馬面[마면])처럼 길대서 말대가리라는 별명을 듣던 윤직원 영감의 선친 윤용규는 본이 시골 토반(土班)이더냐 하면 그렇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아전(衙前)이더냐 하면, 실상은 아전질도 제법 해먹지 못했읍니다.

아전질을 못 해먹은 것이 시방 와서는 되레 자랑거리가 되었지만, 그때 당년에야 흔한 도서원(都書員)이나마 한 자리 얻어 하고 싶은 생각이 꿀안 같았어도, 도시에 그만한 밑천이며 문필이며가 없었더랍니다.

말대가리 윤용규 그는 삼십이 넘도록 탈망바람으로 삿갓 하나를 의관 삼아 촌 노름방으로 으실으실 돌아다니면서 개평푼이나 뜯으면 그걸로 되 돌아 앉아 투전장이나 뽑기, 방퉁이질이나 하기, 또 그도 저도 못하면 가난한 아내가 주린 배를 틀어쥐고서 바느질품을 팔아 어린 자식과(이 어린 자식이라는 게 그러니까 지금의 윤직원 영감입니다) 입에 풀칠을 하는 것을 얻어먹고는, 밤이나 낮이나 질펀히 드러누워, 소대성(蘇大成)이 여대치게 낮잠이나 자기…… 이 지경으로 반생을 살았읍니다. 좀 호협한 구석이 있고 담보가 클 뿐 물론 판무식꾼이구요.

그런데, 그런 게 다 운수라고 하는 건지 어느 해 연분인가는 난데없는 돈

2백 냥이 생겼더랍니다. 시골돈 2백 냥이면 서울돈으로 2천 냥이요, 그때 만해도 웬만한 새끼부자 하나가 왔다갔다할 큰 돈입니다.

노름을 해서 딴 돈이라고 하기도 하고, 혹은 그 아내가 친정의 머언 일 가집 백부한테 분재를 타온 돈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누구는 도깨비가 져다 준 돈이라고 하기도 하고 하여 자못 출처가 모호했읍니다.

시방이야 가난하던 사람이 불시로 큰 돈이 생기면 경찰서 양반들이 우선 그 내력을 밝히려 들지만, 그때만 해도 60년 저짝 일이니 누가 지날 말로라도 시비 한마딘들 하나요. 그저 그야말로 도깨비가 져다 주었나보다 하고 한갓 부러워하기나 했지요.

아뭏든 그래 말대가리 윤용규는 그날부터 칼로 벤 듯 노름방 발을 끊고, 그 돈 2백 냥을 들여 논을 산다, 대푼변 돈놀이를 한다, 곱장리를 놓는다해 가면서 일조에 착실한 살림꾼이 되었읍니다. 그러노라니까, 정말 인 도깨비를 사귄 것처럼 살림이 불 일듯 늘어서, 마침내 그의 당대에 3천 석을 넘겨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그때 당시는 두꺼비같이 생겼대서, 윤두꺼비로 불리어지던 윤 두 섭) 그는 어려서부터 취리에 눈이 밝았고, 약관에는 벌써 그의 선친을 도와 가며 그 큰 살림을 곧잘 휘어나갔읍니다. 그리고 1903년 계묘년( 癸卯年)부터는 고스란히 물려받은 3천석거리를 가지고, 이래 30여년 동안 착실히 가산을 늘려왔읍니다.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가권을 거느리고 서울로 이사를 해오던 그때의 집계(集計)를 보면, 벼를 실 만 석을 받았고, 요즘 와서는 현금이 10만 원 가까이 은행에 예금되어 있었읍니다.

이런 걸 미루어 보면, 그는 과시 승어부(勝於父)라 할 것입니다.

하기야 그 양대(兩代)가 그 어둔 시절에 그처럼 치산을 하느라고( 시절 이어 두우니까 체계변이며 장리변의 이문이 숫지고, 또 공문서(空文書 : 空土地[ 공 토지]) 가 수두룩해서 가산 늘리기가 좋았던 한편으로 말입니다) 욕심 사나운 수령(守令)한테 걸려들어 명색없이 잡혀 갇혀서는, 형장(刑杖)을 맞아가며 토색질을 당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요, 화적(火賊)의 총부리 앞에 목숨을 내걸고 서서 재물을 약탈당하기도 부지기수요, 그러다가 말 대가리 윤용규는 마침내 한패의 화적의 손에 비명의 죽음까지 한것인즉은, 일변 생각 하면 피로 낙관(落款)을 친 치산이지, 녹록한 재물이라고 할 수는 없을것 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그때 일을 생각하면, 시방도 가슴이 뭉클하고, 그의 선친 이 무참 히 죽어 넘어진 시체 하며, 곡식이 들이쌓인 노적과 곡간이 불에 활활 타던 광경이 눈앞에 선연히 밟히곤 합니다.

잊히지도 않는 계묘년 3월 보름날입니다. 이 3월 보름날이 말대가리 윤용규의 바로 제사날이니까요.

온종일 체계돈 받고 내주고 하기야, 춘궁에 모여드는 작인( 小作人[ 소작인]) 들한테 장리벼 내주기야, 몸져 누운 부친 윤용규의 병시중 들기야 하느라고 큰살림을 맡아 처리하는 사람의 일례로, 두꺼비 윤두섭, 즉 젊은 날의 윤직원 영감은 밤늦게야 혼곤히 들었던 잠이 옆에서 아내의 흔들며 깨우는 촉급한 속삭임 소리에 놀라 후닥닥 몸을 일으켰읍니다.

한두 번도 아니요, 화적을 치르기 이미 수십 차라, 그는 잠결에도 정신이 들기 전에 육체가 먼저 위급함을 직각했던 것입니다. 장수가 전장에 나가면, 진중에서는 정신은 잠을 자도 몸은 깨서 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치라고 할는지요.

실로 그때 당시 윤씨네 집안은 자나깨나 전전긍긍 불안과 긴장과 경계 속에서 일시라도 몸과 마음을 늦추지 못하고, 마치 살얼음을 건너가는 것처럼 위 태위 태 지내던 판입니다.

젊은 윤두꺼비는 깜깜 어둔 방안이라도, 바깥의 달빛이 희유끄름한 옆문을 향해 뛰쳐나갈 자세로 고의춤을 걷어 잡으면서 몸을 엉거주춤 일으켰 읍니다. 보이지는 않으나 아내의 황급한 숨길이 바투 들리고, 더듬어 들어오는 손끝이 바르르 떨리면서 팔에 닿습니다.

"어서! 얼른!"

아내의 쥐어짜는 재촉 소리는, 마침 대문을 총개머린지 몽둥인지로 들이 쾅쾅 찧는 소리에 삼켜져 버립니다.

"아버님은!"

윤두꺼비는 뛰쳐나가려고 꼬느었던 자세와 호흡을 잠깐 멈추고서 아내더러 물어보던 것입니다.

"몰라요…… 그렇지만…… 아이구 어서, 얼른!"

아내가 기색할 듯이 초초한 소리로 팔을 잡아 훑는 힘이 아니라도, 윤 두꺼비는 벌써 몸을 날려 옆문을 박차고 나갑니다.

신발 여부도 없고 버선도 없는 맨발로, 과녁 반 바탕은 될 타작마당을 단숨에 달려 두 길이나 높은 울타리를 문턱 넘듯 뛰어넘어, 길같이 솟은 보리밭 고랑으로 몸을 착 엎드리고 꿩 기듯 기기 시작하는 그동안이, 아내가 흔들어 깨울 때부터 쳐서 겨우 5분도 못되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윤두꺼비가 울타리를 넘어, 그러느라고 허리띠를 매지 않은 고의를 건 사하지 못해서 홀라당 벗어 떨어뜨린 알몸뚱이로 보리밭 고랑에서 엎드려 기기 시작을 하자, 그제서야 방금 저편 모퉁이로부터 두 그림자가 하나 는담 총을 하고 하나는 몽둥이를 끌고 마침 돌아나왔읍니다.

뒤 울타리로 해서 도망가는 사람을 잡으려는 파순데, 윤두꺼비한테는 아슬아슬한 순간의 찰나라 하겠읍니다.

그들도 도망가는 윤두꺼비를 못 보았거니와 윤두꺼비도 물론 그러한 위경이던 줄은 모르고 기기만 하던 것입니다.

만약 그들의 눈에 띄기만 했더라면 처음에는 쫓아갈 것이고, 그러다가 못잡으면 대고 불질을 했을 겝니다. 부지깽이 같은 그 화승총을 가지고, 더구나 호미와 쇠스랑을 다루던 솜씨로, 으심치무레한 달밤에 보리밭 사이로 죽 자살자 내빼는 사람을 쏜다고 쏘았댔자 제법 똑바로 가서 맞을 이치도 없기도 하지만.

그래 아뭏든, 발가벗은 윤두꺼비는 무사히 보리밭을 서넛이나 지나, 다시 솔숲을 빠져나와 나직한 비탈에 왜송이 둘러선 산허리에까지 단숨에 달려와 서야 비로소 안심과 숨찬 걸 못견디어 펄씬 주저앉았읍니다.

화적이 드는 눈치를 채면, 여느 일 젖혀놓고 집안 돌아볼 것 없이 몸을 빼 쳐 피하는 게 제일 상책입니다.

화적이 인가를 쳐들어와서 잡아 족치는 건 그 집 대주(戶主)와 셈든 남자 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손에 붙잡히기만 하고 보면 우선〔이 부분 1행 반 삭제 〕 반죽음은 되게 매를 맞아야 합니다.

그렇게 얻어맞고도, 마침내는 재물은 재물대로 뺏겨야 하고, 그 서슬에 자칫 잘못하면 목숨이 왔다갔다합니다. 둘이 잡히면 둘이 다, 셋이 잡히면 셋이 다 그 지경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제각기 먼저 기수를 채는 당장으로, 아비를 염려해서 주춤거리거나 자식을 생각하여 머뭇거리거나 할 것이 없이, 그저 먼저 몸을 피해 놓고 보는 게 당연한 일로 되어 있었읍니다. 그럴 것이, 가령 자식이 아비의 위태 로움을 알고 그냥 버틴다거나 덤벼든다거나 했자, 저편은 수효가 많은데다가 병장기를 가진, 그리고 사람의 목숨쯤 파리 한 마리만큼도 여기잖는 패들이니까 요.

이날 밤 윤두꺼비도 그리하여 일변 몸져 누운 부친이 마음에 걸려, 선뜻 망설이 기는 하면서도 사리가 그러했기 때문에, 이내 제 몸을 우선 피해 놓고 보던 것입니다.

말대가리 윤용규는 나이 이미 60에 또 어제까지 등이며 볼기며에 모진 매를 맞다가 겨우 옥에서 놓여나온 몸이라, 도저히 피할 생각은 내지도 못하고 그 대신 침착하게 일어나 앉아 등잔에 불까지 켰읍니다.

기위 당하는 일이라서, 또 있는 담보겠다, 악으로 한바탕 싸워보자는 것 입니다.

화적패들은 이윽고 하나가 울타리를 넘어들어와 빗장을 벗기는 대문으로 우 몰려들었읍니다.

"개미새끼 하나라도 놓치지 말렷다!"

그중 두목이, 대문 지키는 두 자와 옆으로 비어져 가는 파수 둘더러 호령을 하는 것입니다.

"영 놓치겠거던 대구 쏘아라!"

재우쳐 이른 뒤에 두목이 앞장을 서서 사랑채로 가고, 한 패는 안으로 갈려 들어갑니다. 그렇게도 사납고, 짖기를 극성으로 하는 이 집 개들이 처음부터 끽소리도 못 내고 낑낑거리면서 도리어 주인네의 보호를 청하는 걸 보면, 당시 화적들의 기세가 얼마나 기승스러웠음을 족히 알 수가 있는 것 입니다.

"기집이나 어린것들은 손대지 말렷다!"

두목이 잠깐 돌아다보면서 신칙을 하는 데 응하여 안으로 들어가던 패가 몇이 "예 이!"

하고 한꺼번에 대답을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스러운 그네들의 엄한 풍도입니다. 이 밤에 이 집을 쳐 들어온 이 패들만 보아도 패랭이 쓴 놈, 테머리한 놈, 머리 땋은 총각, 늙은이 해서 차림새나 생김새가 가지각색이듯이, 모두 무질서하고 무지한 잡색 인물들이기는 하나, 일반으로 그들은 어느때 어디를 쳐서 갖은 참상을 다 저지르곤 할값에, 좀체로 부녀와 어린아이들한테만은 손을 대는 법이 없 읍니다.

만일 그걸 범했다가는 그는 당장에 두목 앞에서 목이 달아나고라야 맙니다.

사랑채로 들어간 두목이, 한 수하를 시켜 웃미닫이를 열어젖히고서, 성큼 마루로 올라설 때에, 그는 뜻밖에도 이편을 앙연히 노려보고 있는 말 대가리 윤용규와 눈이 딱 마주쳤읍니다.

두목은 주춤하지 않지 못했읍니다. 그는 윤용규가 이 위급한 판에 한 발짝이라도 도망질을 치려고 서둘렀지, 이다지도 대담하게, 오냐 어서 오란 듯이 버티고 있을 줄은 천만 생각 밖이었던 것입니다.

더욱 핏기없이 수척한 얼굴에 병색을 띠고서도, 일변 악이 잔뜩 올라 이편을 무섭게 노려보는 그 머리 센 늙은이의 살기스런 양자가 희미한 쇠 기름 불에 어른거리는 양이라니, 무슨 원귀와도 같았읍니다.

두목은 만약 제 등 뒤에 수하들이 겨누고 있는 10여 대의 총부리와, 녹슬었으나마 칼들과 몽둥이들과 도끼들이 없었으면, 그는 가슴이 서늘한 대로 물 씸물씸 뒤로 물러섰을는지도 모릅니다.

"으응, 너 잘 기대리구 있다!"

두목은 하마 꺾이려던 기운을 돋구어 한마디 으릅니다. 실상 이 두목( 그러니까 오늘 밤의 이 패들)과 말대가리 윤용규와는 처음 만나는 게 아니고 바로 구면입니다. 달포 전에 쳐들어와서 돈 3백 냥을 빼앗고, 그밖에 소 한 바리와 패물과 어음 몇 쪽을 털어간 그 패들입니다. 그래서 화적패들도, 주인을 잘 알려니와 주인 되는 윤용규도 두목의 얼굴만은 익히 알고 있고, 그러고도 또 달리, 뼈에 사무치는 원혐이 한 가지 있는 터라, 윤용규는 무서운 것보다도(이미 피치 못할 살판인지라) 차차로 옳게 뱃속으로부터 분노와 악이 치받쳐올랐읍니다.

"이놈 윤가야, 네 들어보아라!"

두목은 종시 말이 없이 앙연히 앉아 있는 윤용규를 마주 노려보면서, 그 역시 분이 찬 음성으로 꾸짖는 것입니다.

"…… 네가 이놈 관가에다가 찔러서 내 수하를 잡히게 했단 말이지?……

이놈, 그러구두 네가 성할 줄 알었드냐?…… 이놈 네가 분명코 찔렀지?

……"

"오냐, 내가 관가에 들어가서 내 입으루 찔렀다. 그래?……"

퀄퀄하게 대답을 하면서, 도사리고 앉은 윤용규의 눈에서는 불이 이는 듯 합니다.

"내가 찔렀으니 어쩔 테란 말이냐?…… 흥! 이놈들, 멀쩡하게 도당 모아 각 구 댕기먼서 양민들 노략질이나 히여먹구, 네가 그러구두 성할 줄 알았더냐? 이놈아!……"

치받치는 악에, 소리를 버럭 높이면서 다시 "…… 괴수 놈, 너두 오래 안가서 잽힐 테니 두구 보아라! 네 모가지에 작두 날이 내릴 때가 머잖었느니라, 이노옴!"

하고는 부드득 이를 갈아붙입니다.

목전의 절박한 사실에 대한 일종의 발악임은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변 깊이 생각을 하면, 하나의 웅장한 선언일 것입니다.

핍박하는 자에게 대한, 일후의 보복과 승리를 보류하는 자신 있는 선언…… 사실로 윤용규는 무식하고 소박하나마 시대가 차차로 금권(金權)이 유세 해감을 막연히 인식을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러므로, 비단 화적패들에게만 대한 선언인 것이 아니라, 그 야속하고 토색질을 방자히 하는 수령(守令)까지도 넣어, 전 압박자에게 대고 부르짖는 선전의 포고이었을 것입니다. 가령 그 자신이 그것을 의식하고 못하고는 고만두고라도…… 말입니다.

"……이놈들! 밤이 어둡다구, 백년 가두 날이 안 샐 줄 아느냐? 두구 보자, 이놈들!"

윤용규는 연하여 이렇게 살기등등하니 악을 쓰는 것입니다.

"하, 이놈, 희떠운 소리 헌다! 허!"

두목은 서글퍼서 이렇게 헛웃음을 치는데, 마침 웃목에서 이제껏 자고 있던 차인꾼이, 그제서야 잠이 깨어 푸스스 일어나다가 한참 두 릿 거리 더니, 겨우 정신이 나는지 별안간 버얼벌 떨면서 방구석으로 꽁무니걸음을 해 들어갑니다.

그러자 또 안으로 들어갔던 패 중에 하나가 총끝에 흰 무명고의 하나를 꿰들고 두목 앞으로 나옵니다.

"두령, 자식놈은 풍겼읍니다!"

"풍겼다? 그럼, 그건 무어란 말이냐?"

"그놈이 울타리를 뛰어넘어가다가 벗어버린 껍데기올시다. 자다가 허리띠두 못 매구서 달아나느라구, 울타리 밑에서 홀라당 벗어졌나 봅니다."

발가벗고 도망질을 치는 광경을 연상함인지, 몇이 킥킥하고 소리를 죽여 웃습니다.

"으젓잖은 놈들! 어쩌다가 놓친단 말이냐!……"

두목은 혀를 차다가, 방 웃목에서 떨고 있는 차인꾼을 턱으로 가리킵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혹시 저놈이 자식놈이 아니냐?"

윤두꺼비는 전번에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두목은 그의 얼굴을 몰랐던 것 입니다.

두목의 말을 받아 수하 하나가 기웃이 들여다보더니…… "아니올시다. 저놈은 차인꾼이올시다."

"쯧! 그렇다면 헐 수 없고…… 잘 지키기나 해라. 그리고, 아직 몽당 숟갈한 매라도 손대지 말렷다!"

"에이…… 그런데 술이 좋은 놈 한 독 있읍니다, 두목…… 닭허구 돼지 두 마침 먹을 감이구요…… "전 전해 신축(辛丑)년의 큰 흉년이 아니라도, 화적 된 자 치고 민가를 털제, 술이며 고기를 눈여겨보지 않는 법은 없는 법입니다.

"이놈 윤가야, 말 들어라…… 오늘 저녁에 우리가 네 집에를 온 것은…… "두목은 다시 윤용규에게로 얼굴을 돌리고 을러댑니다.

"……네놈의 재물보담두, 너를 쓸 디가 있어서 온 것이다…… 허니, 어쩔 테냐? 내 말을 순순히 들을 테냐? 안 들을 테냐?"

윤용규는 두목을 마주 거듭떠보고 있다가, 말이 끝나자 고개를 홱 돌려 버립니다.

"어쩔 테냐? 말을 못 듣겠단 말이지?"

"불한당놈의 말 들을 수 없다!…… 내가, 생각허먼 네놈들을 갈아먹구 싶은디, 게다가 청을 들어? 흥!"

윤용규는 그새 여러 해 두고 화적을 치러내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들 앞에서 서얼설 기고 네네 살려줍시사고 굽신거리나 마주 대고 네 놈 내놈하면서 악다구니를 하거나, 필경 매를 맞고 재물을 뺏기기는 일반이던 것을 잘알고 있읍니다.

그러니 어차피 당하는 마당에, 그처럼 굽실거릴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을 뿐 아니라, 일변 그, 이 패에게 대하여 그야말로 갈아먹고 싶은 원혐이 또한 없지 못합니다.

달포 전인데 이 패에게 노략질을 당하던 날 밤, 그중에 한 놈, 잘 알 수 있는 자가 섞여 있는 것을 윤용규는 보아 두었었읍니다. 그자는 박가라고, 멀지 않은 근동에서 사는 바로 그의 작인(小作人[소작인])이었읍니다.

"오! 이놈 네가!"

윤용규는 제자신, 작인에게 어떠한 원한 받을 짓을 해왔다는 것은 경위에 칠 줄은 모릅니다. 다만 내 땅을 부쳐먹고 사는 놈이, 이 도당에 참예를 하여 내 집을 털러 들어오다니, 눈에서 불이 나고 가슴이 터질 듯 분한 노릇 이었 읍니다.

이튿날 새벽같이 윤용규는 몸소 읍으로 달려들어가서, 당시 그 고을 원( 守令[ 수령]) 이요, 수차 토색질을 당한 덕에 안면(!)은 있는 백영규( 白永圭) 더러, 사분이 이만저만하고 이러저러한데, 그중에 박아무개라는 놈도 섞여 있었다고, 그러니 그놈만 잡아다가 족치거드면 그 일당을 다 잡을 수가 있으 리라고 아뢰어 바쳤읍니다.

백영규는 그러나 말대가리 윤용규보다 수가 한길 윗수였읍니다.

그는 자초지종 이야기를 다 듣더니, 아 그러냐고, 그러면 박가라는지 그 놈을 잡아오기는 올 것이로되, 그러나 화적패에 투신한 놈을 그처럼 잘 알진 댄, 윤용규 너도 미심쩍어 그러니 같이 문초를 해야 하겠은즉 그리 알라고 우선 윤용규부터 때려 가두었읍니다.

약은 수령이 백성의 재물을 먹자고 트집을 잡는 데 무슨 사리와 경우가 있나요? 루이 14센지 하는 서양 임금은 짐이 바로 국가( 朕即國家[ 짐즉 국가])라고 호통을 했고, 조선서도 어느 종실세도(宗室勢道) 한 분은 반대파의 죄수를 국문하는데, 참새가 찍한다고 해도 죽이고, 짹한다고 해도 죽이고, 필경은 찍짹합니다 해도 죽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당시 일읍(一邑)의 수령이면 그 고장에서는 왕이요, 그의 덮어놓고 하는 공사는 바로 법과 다를 바 없던 것입니다. 항차 그는 화적을 잡기보다는 부자를 토색하기가 더 긴하고 재미가 있는데야.

말대가리 윤용규는 혹을 또 한 개 덜렁 붙이고서 옥에 갇히고, 박가도 그날로 잡혀 들어왔읍니다.

문초는 그러나 각각 달랐읍니다. 박가더러는 그들 일당의 성명과 구 혈과 두목을 대라고 족쳤읍니다.

박가는 제가 그 도당에 참예한 것은 불었어도, 그욋 것은 입을 꽉 다물고서 실토를 안했읍니다. 주리를 틀려 앞정강이의 살이 문드러지고 허연 뼈가 비어져도 그는 불지를 않았읍니다.

일변 윤용규더러는, 네가 그 도당과 기맥을 통하고 있고, 그 패들에게 재물과 주식을 대접했다는 걸 자백하라고 문초를 합니다. 박가의 실토를 들으면 과시 네가 적당과 연맥이 있다고 하니, 정 자백을 안하면 않는대로 그냥 감영으로 넘겨 목을 베게 하겠다는 것이었읍니다.

이것이 좀 먹자는 트집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속이었고, 그래 누가 이러라 저러라 시킬 것도 없이 벌써 줄 맞은 병정이 되어서, 젊은 윤 두꺼비는 뒷 줄로 뇌물을 쓰느라고 침식을 잊고 분주했읍니다.

5백 냥씩 두번 해서 천 냥은 수령 백영규가 고스란히 먹고, 또 천 냥은 가지고 이방 이하 호장이야 형방이야 옥사정이야 사령이야 심지어 통인 급창이까지 고루 풀어 먹였읍니다.

2천 냥 돈을 그렇게 들이고서야 어제 아침 달포 만에 말대가리 윤용규는 장독( 杖毒)으로 꼼짝 못하는 몸을 보교에 실려 옥으로부터 집으로 놓여 나왔던 것입니다.

사맥이 이쯤 되었으니, 윤용규로 앉아서 본다면 수령 백영규한테와 화적 패에게 원한이 자못 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원한이 깊었자, 저편은 감히 건드리지도 못할 수령이라, 그 만만하달까, 화적패에게 잔뜩 보복을 벼르고 있었고, 그런 참인데, 마침 그 도당이 또다시 달려들어서는 이러니 저러니하니 그야말로 갈아먹고 싶을 것은 인간의 옹색한 속이 아니라도 당연한 근 경이라 하겠지요.

일은 그런데 피장파장이어서 화적패도 또한 말대가리 윤용규에게 원한이있 읍니다. 동료 박가를 찔러서 잡히게 했다는 것입니다.

박가가 잡혀가서 그 모진 혹형을 당하면서도 구혈이나 두목이나 도당의 성명을 불지 않는 것은 불행중 다행입니다. 그러니 그런만큼 의리가 가슴에 사무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윤용규한테 대한 원한은 우선 접어놓고, 어디 일을 좀 무사히 피게 하도록 해볼까 하는 것이 그들의 첫 꾀였읍니다. 만약 그런 꾀가 아니라면야 들어서던 길로 지딱지딱 해버리고 돌아섰을 것이지요.

두목은 윤용규가 전번과는 달라 악이 바싹 올라가지고 처음부터 발딱 거리 면서 뻣뻣이 말을 못 듣겠노라고 버티는 데는 물론 화가 치밀어오르지 않을수가 없었읍니다.

"진정이냐?"

그는 눈을 부라리면서 딱 을러댑니다. 그러나 윤용규는 종시 까딱 않고 대답 입니다.

"다시 더 물을 것 읎너니라!"

"너, 그리 고집 세지 말아!……"

두목은 잠깐 식식거리면서 윤용규를 노리고 보다가, 이윽고 음성을 눅 여타 이르듯 합니다.

"……그러다가는 네게 이로울 게 없다. 잔말 말구, 네가 뒤로 나서서 3천 냥만 뇌물을 써라. 너두 뇌물을 쓰구서 뇌어 나왔지? 그럴 테면 네가 옭아넣은 내 수하도 풀어놓아 주어야 옳을 게 아니야?…… 허기야 너를 시키느니 내가 내 손으로 함직한 일이기는 하지만, 나는 당장 3천 냥이 없고, 그걸 장만하자면 너 같은 놈 열 놈의 집은 더 털어야 하니 시급스럽게 안될말이고, 또 내가 나서서 뇌물을 쓰다가는, 됩다 위태할 것이고 허니 불가불 일은 네가 할 수밖에 없다. 허되 급히 서둘러야지 며칠 안 있으면 감영으로 넹 긴 다드 구나?"

두목은 끝에 가서는 거진 사정하듯 목마른 소리로 말을 맺고서, 윤용규의 대답을 기다립니다.

윤용규는 그러나 싸늘하게 외면을 하고 앉아서, 두목이 하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 체합니다.

"……어쩔 테냐? 한다든 못 한다든 대답을…… "두목은 맥이 풀리는 대신, 다시 울화가 치받쳐 버럭 소리를 지르다 말고 입술을 부르르 떱니다.

"못한다!……"

윤용규도 지지 않고 소리를 지릅니다.

"……네놈들이 죄다 잽혀 가서 목이 쓸리기를 축원허구 있는 내가, 됩다한 놈이라두 뇌어 나오라구, 내 재물을 들여서 뇌물을 써? 흥! 하늘이 무너져두 못헌다!"

"진정이냐?"

"오냐!"

윤용규는 아주 각오를 했읍니다. 행악은 어차피 당해 둔 것, 또 재물도 약간 뺏겨는 둔 것, 그렇다고 저희가 내 땅에다가 네귀퉁이에 말뚝을 박고 전답을 떠가지는 못할 것, 그러니 저희의 청을 들어 3천 냥을 들여서 박가를 빼놓아 주느니보다는 월등 낫겠다고, 이렇게 이해까지 따진 끝의 각오이던 것 입니다.

"진정?"

두목은 한번 더 힘을 주어 다집니다.

"오냐. 날 죽이기밖으 더 헐 테야?"

"저놈 잡아내랏!"

윤용규의 말이 미처 떨어지기 전에 두목이 뒤를 돌려다보면서 호령을 합니다.

등 뒤에 모여 섰던 수하 중에 서넛이 나가 우르르 방으로 몰려들어가더니, 왁진 왁진 윤용규를 잡아 끕니다. 그러자 마침 안채로 난 뒷문이 와락 열리더니, 흰 머리채를 풀어 헤뜨린 윤용규의 노처가, 아이구머니 이 일을 어쩌느냐고 울어 외치면서 달려들어 뒤엎으러져 매달립니다.

화적패들은 윤용규를 앞뒤에서 끌고 떠밀고 하고, 윤용규는 안 나가려고 버둥대면서도 그래도 할 수 없이 문께로 밀려나옵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부스대는 윤용규의 손에 총대 하나가 잡혔읍니다.

총을 훌트려 쥔 그는 장독으로 고롱거리는 60객 답지않게 불끈 기운을 내어, 총대를 가로, 빗장 대듯 문지방에다가 밀어대면서 발로 문턱을 디디고는 꽉 버팅깁니다. 그러고 나니까는 아무리 상투를 잡아 끌고 몽둥이로 직신 거리고 해도 으응 소리만 치지, 꿈쩍 않고 그대로 버팁니다. 수령이 그 걸보다 못해 옆에 섰는 수하의 몽둥이를 채어가지고 윤용규가 총대에다가 버틴 바른편 팔을 겨누어 으끄러지라고 한번 내리칩니다. 한 것이 상거는 밭고 또 문지방이며 수하의 어깨 하며 걸리적거리는 것이 많아 겨냥은 삐뚜로 나가고 말았읍니다.

"따악!"

빗나간 겨냥이 옆으로 비껴, 이마를 바스러지게 얻어맞은 윤용규는 "어이 쿠우!"

소리와 한가지로 피를 좌르르 흘리며 털씬 주저앉았읍니다.

동시에 윤용규의 노처가 고만 눈이 뒤집혀 "아이구 우! 인제는 사람까지 죽이는구나아! 나두 죽여라아! 이놈들아!"

하고 외치면서 죽을동 살동 어느 겨를에 달려들었는지 두목의 팔을 덥씬 물고 늘어집니다. 윤용규는 주저앉은 채 정신이 아찔하다가 번쩍 깨났읍니다.

그는 화적패들이 무슨 내평으로 밖으로 끌어내려고 하는지 그건 몰라도, 아무 려나 이롭지 못할 것 같아 되나 안되나 버팅켜 보았던 것인데, 한번 얻어맞고 정신이 오리소리한 판에 마침 그의 아내가 별안간 "…… 인제는 사람까지 죽이는구나!"

하고 왜장치는 이 소리에, 정말로 죽음이 박두한 줄로만 알았읍니다.

그러면 인제는 옳게 이놈들의 손에 죽는구나, 그렇다면 죽어도 그냥은 안 죽는다. 이렇게 악이 복받치자, 그는 벌떡 일어서면서 눈앞에 보이는 대 로칼 하나를 채어가지고는 마구 대고 휘저었읍니다.

더우기 눈이 뒤집히기는, 아무리 화적이라도 결단코 하지 않던 짓인데, 여인을, 하물며 늙은 여인을 치는 걸 본 것입니다. 그는 그의 아내가 두목의 팔을 물고 늘어진 줄은 몰랐고, 다만 두목이 아내의 머리끄덩을 잡아 동 댕이를 쳐서, 물린 팔을 놓치게 하는 그 광경만 보았던 것입니다.

아무리 죽자살자 악이 받쳐 칼을 휘두른다지만 죽어가는 늙은인걸, 십 여개나 덤비는 총개머리야 몽둥이야 칼이야 도끼야를 당해낼 수가 없던 것 입니다.

윤용규가 마지막 목덜미에 도끼를 맞고 엎드러지자, 피를 본 두목은 두 눈이 불덩이같이 벌컥 뒤집혀졌읍니다. 그는 실상 윤용규를 죽일 생각은 없었 읍니다.

그렇다고 윤용규 하나쯤 죽이기를 차마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제 구 혈로 잡아가쟀던 것입니다. 한때 만주에서 마적들이 하던 그 짓이지요. 볼모로 잡아다 두고서 가족들로 하여금 이편의 요구를 듣게 하쟀던 것입니다.

"노적(露積)허구 곡간에다가 불질러랏!"

두목은 뒤집힌 눈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윤용규를 노려보다가 수하를 사납게 호통하던 것입니다.

이윽고 노적과 곡간에서 하늘을 찌를 듯 불길이 솟아오르고, 동네 사람들이 그제서야 여남은 모여들어 부질없이 물을 끼얹고 하는 판에, 발가벗은 윤 두꺼비가 비로소 돌아왔읍니다. 화적은 물론 벌써 물러갔고요.

윤두꺼비는 피에 물들어 참혹히 죽어넘어진 부친의 시체를 안고 땅을 치면서 "이 놈의 세상이 어느 날에 망하려느냐!"

고 통곡을 했읍니다.

그리고 울음을 진정하고도, 불끈 일어서 이를 부드득 갈면서 "오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

고 부르짖었읍니다. 이 또한 웅장한 절규이었읍니다. 아울러 위대한 선언 이었고요.

윤직원 영감이 젊은 윤두꺼비 적에 겪던 경난의 한 토막이 대개 그러했 읍니다.

그러니, 그러한 고난과 풍파 속에서 모아 마침내는 피까지 적신 재물이니, 그런 일을 생각해서라도 오늘날 윤직원 영감이 단 한푼을 쓰재도 벌벌 떠는것도 일변 무리가 아닐 것입니다.

돈을 모으는 데 무얼 어떻게 해서 모았다는 거야 윤직원 영감으로는 상관 할 바 아닙니다. 사실 착취라는 문자를 가져다가 붙이려고 하면, 윤직원 영감은 거 웬 소리냐고 훌훌 뛸 겝니다.

다 참, 내가 부지런하고 또 시운이 뻗쳐서 부자가 되었지, 작인이며 체계 돈 쓴 사람이며, 장리벼 얻어다 먹은 사람이며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서 말 입니다.

바스티유 함락과는 항렬이 스스로 다르기는 하지만, 아뭏든 윤직원 영감은 그 처럼 육친의 피로써 물들인 재산더미 위에 올라앉아 옛날 그다지도 수난 많던 시절과는 딴판이요, 도무지 태평한 이 시절을 생각하면 안심되고 만족한 웃음이 절로 솟아날 때가 많습니다.

하나, 말을 타면 견마도 잡히고 싶은 게 인정이라고 합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소란한 세상이 지나가고 재산과 몸이 안전한 세태를 당하자, 윤두꺼비는 돈으로는 남부러울 게 없어도, 문벌이 변변찮은 게 섭섭한 걸 비로소 느끼게 되었읍니다.

하기야 중년에 또다시 양복청년, 혹은 권총청년이라는 것 때문에 가끔 혼 띔이 나곤 하지 않은 것은 아니더랍니다.

이런 일이 있었읍니다.

기미(己未) 경신(庚申), 바로 경신년 섣달입니다. 논이 마침 욕심나는 게한 5천 평 수중에 들어오게 되어서, 그 땅값을 치르려고 4천 원을 집에다가 두어 두고 땅 팔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던 날입니다.

그런데 그게 귀신이 곡을 할 일이라고, 윤두꺼비는 두고두고 기막혀 하였었지마는, 그걸 어떻게 염탐했는지 벌건 대낮에 쏙 빠진 양복장이 둘이 들이 덤벼 가지고는 그 돈 4천 원을 몽땅 뺏어가던 것입니다.

머, 꿀꺽 소리 못하고 고스란히 내다가 내바쳤지요. 고 싸늘한 쇠끝에 새까만 구멍이 똑바로 가슴패기를 겨누고서 코앞에다가 들이댄 걸, 그러니 염라대왕이 지켜선 맥이었지요.

옛날 화적들은 밤중에나 들어와서 대문이나 짓부수고 하지요. 그 덕에 잘 하면 도망이나 할 수 있지요.

한데 이건, 바로 대낮에 귀한 손님 행차하듯이 어엿이 찾아와서는, 한다는 짓이 그 짓이니 꼼짝인들 할 수가 있었나요.

그래, 4천 원을 도무지 허망하게 내주고는, 윤두꺼비는 망연자실해서 우두커니 한식경이나 앉았다가, 비로소 방바닥에 떨어진 종이장으로 눈이 갔 읍니다. 돈을 받았다는 영수증을 써놓고 갔던 것입니다.

"허! 세상이 개명을 허닝개루, 불한당놈들두 개명을 히여서, 영수징 써주구 돈 뺏어간다?"

윤두꺼비는 빼앗긴 돈 4천 원이 아까와서 꼬박 이틀 동안, 그리고 세 상이 또다시 옛날 화적이 횡행하던 그런 시절이나 되고 보면, 그 일을 장차 어찌 하나 하는 걱정으로 꼬박 나흘 동안, 도합 엿새를 두고 밥맛과 단잠을 잃었 읍니다.

그런 뒤로도 다시 두어 번이나 그런 긴찮은 손님네를 치렀읍니다. 돈은 그러나 한푼도 뺏기지 않았읍니다. 처음 겪은 일로 미루어 그 뒤로는 단돈 10원 도 집에다가 두어두지를 않았으니까요.

시골서 돈을 많이 가지고 살면, 여러가지 공과금이야, 기부금이야, 또 가난한 일가 푸네기들한테 뜯기는 것이야, 그런 것 때문에 성가시기도 하고, 또 제일 왈, 그 양복 입은 그런 나그네가 종시 마음 놓이지 않기도 하고 해서, 윤두꺼비는 마침내 가권을 거느리고 서울로 이사를 했던 것입니다.

윤두꺼비가 이윽고 세상이 평안한 뒤엔, 집안의 문벌 없음을 섭섭히 여겨, 가문을 빛나게 할 필생의 사업으로 네 가지 방책을 추렸읍니다.

맨 처음은 족보에다가 도금(鍍金)을 했읍니다. 그럼직한 일가들을 추 겨가지고 보소(譜所)를 내놓고는, 윤두섭의 제 몇대 윤아무개는 무슨 정승이요, 제 몇대 윤아무개는 무슨 판서요, 제 몇대 아무는 효자요, 제 몇대 아무 부인은 열녀요, 이렇게 그럴싸하니 족보(族譜)를 새로 꾸몄읍니다. 땅 짚고 헤엄 치기지 요.

그러노라고 한 2천 원 돈이 들었읍니다. 그렇지만 일이 수나로운 만큼, 그러한 족보 도금이야 조상 치레나 되었지, 그리 신통할 건 없었읍니다.

아무데 내놓아도, 말대가리 윤용규 자식 윤두꺼비요, 노름꾼 윤용규의 자식 윤두섭인걸요. 자연, 허천들린 뱃속처럼 항상 뒤가 헛헛하던 것입니다.

신씨(申氏) 성 가진 친구들 잔나비라고 육장 놀려주면, 그래 그러던 끝 에그 신씨가 동물원엘 가서 잔나비를 보면 어찌 생각이 이상하고, 내가 정말 잔나비 거니 여겨지는 수가 있답니다.

그 푼수로, 누구 사음이나 한 자리 얻어 할 양으로 보비위나 해주려는 사람이, 윤두꺼비네의 그 신편족보(新編族譜)를 외어가지고 다니면서 매일 몇번씩 윤정승 아무개씨의 제 몇대손 윤두섭씨, 윤판서 아무개씨의 제 몇 대손 윤 두 섭씨, 이렇게 대고 불러주었으면, 가족보(假族譜)나마 저으기 실감 이나서 듣는 당자도 좋아하고 하겠지만, 어디 그런 영리하고도 실없은 사람이야 있나요. 혹은 작곡(作曲)을 해 가지고 그것을 시체 유행 가수를 시켜 소리 판에다가 넣어서 육장 틀어놓고 듣는다면 모르지요 마는, 족보는 아뭏든 그래서 득실이 상반이었고, 그 다음은 윤두꺼비 자신이 처억 벼슬을 한 자리 했읍니다.

시골은 향교(鄕校)라는 게 있어서, 공자님 맹자님을 비롯하여 옛날 여러 성현을 모시는 공청이 있읍니다.

춘추로 소를 잡고 돼지를 잡고 해서 제사를 지내고 하지요. 들이껴서는 그게 바로 학교더랍니다.

이 향교의 맨 우두머리 가는 어른을 직원(直員)이라고 합니다.

직원을, 옛날에는 그 골에서 학문과 덕망이 높은 선비가, 여러 사람의 촉망으로 뽑혀서 지내곤 했는데, 근년 향교의 재정이며 모든 범백을 군청에서 맡아 보게 된 뒤로부터는 전과는 기맥이 좀 달라졌는지, 장의(掌議)라고 바로 직원의 아랫길 가는 역원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한테 사음이며 농토 같은 것을 줄 수 있는 다액납세자(多額納稅者)라면 직원 하나쯤 수월한 모양 입니다.

윤두꺼비로서야 과거를 보아 벼슬을 해서 양반이 되겠읍니까? 능참봉을 하겠 읍니까. 아쉰 대로 향교의 직원이 만만했겠지요.

그래 그는 직원이 되었읍니다. 그래서 윤두섭이란 석자 위에 무어나 직함이 붙기를 자타가 갈망하던 끝이라 윤두꺼비는 넙죽 뛰어 윤직원 영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뒤로 3년 동안 윤두꺼비(가 아니라) 윤직원 영감은 직원으로 지내면서 춘추 두 차례씩 향교에 올라가 "흥 ─""바이 ─"소리에 맞추어, 누가 기운이 더 세었던지 모르는 공자님과 맹자님을 비롯 하여, 여러 성현께 절을 하는 양반이요 선비 노릇을 착실히 했읍니다.

공자님과 맹자님이 누가 기운이 더 세었던지 모르겠다는 말은, 윤직원 영감이 창조해낸 억만고의 수수께끼랍니다.

다른 게 아니라, 어느 해 여름인데 윤직원 영감이 향교엘 처억 올라오더니, 마침 풍월(風月)을 하느라고 흥얼흥얼하고 앉았는 여러 장의와 선비들더러 밑도 끝도 없이 "대체 거, 공자님허구 맹자님허구 팔씨름을 히였으면 누가 이겼으꼬?"

하고 물었더랍니다.

장의와 선비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분간 못해서 입만 떠억 벌렸고, 아무도 윤직원 영감의 궁금증은 풀어주지는 못했답니다.

3년 동안 직원을 지내다가, 서울로 이사를 해오는 계제에 그 직책을 내놓았 읍니다. 그러나 직원이라는 영광스런 직함은, 공자님과 맹자님이 팔씨름을 했으면 누가 이겼을까? 하는 수수께끼로 더불어 영원히 처졌던 것 입니 다.

그 다음, 윤직원 영감이 집안 문벌을 닦는 데 또 한 가지의 방책은 무어냐 하면, 양반 혼인이라는 좀더 빛나는 사업이었읍니다.

외아들(서자 하나가 있기는 하니까 외아들이랄 수는 없지만 아뭏든) 창식은 나이 근 50세요, 벌써 옛날에 시골서 아전집과 혼인을 했던 터이라 치지 도외하고, 딸은 서울 어느 양반집으로 시집을 보냈읍니다. 오막살이에 가랭이가 찢어지게 가난한 집인데, 그나마 방정맞게시리 혼인한 지 일년 만에 사위가 전차에 치어죽고, 딸은 새파란 과부가 되어 지금은 친정살이를 하지만, 아무려나 양반혼인은 양반혼인이었읍니다.

또 맏손자며느리는 충청도의 박씨네 문중에서 얻어왔읍니다. 역시 친정이 가난은 해도 패를 찬 양반의 씹니다.

둘째손자며느리는 서울 태생인데, 시구문 밖 조씨네 집안이나, 그렇다고 배추 장수네 딸은 아니고, 파계를 따지면 조대비(趙大妃)와 서른 일곱 촌인지 아홉 촌인지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버젓하게 양반 사돈을 세 집이나 두게 된 것은 윤직원 영감으로 가히 한바탕 큰기침을 할 만도 합니다.

그 다음 마지막 또 한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이게 가장 요긴하고 값 나가는 품목(品目)입니다.

집안에서 정말 권세 있고 실속 있는 양반을 내놓자는 것입니다.

군수 하나와 경찰서장 하나…… 게다가 마침맞게 손자가 둘이지요.

하기야 군수보다도 도장관(道知事)이 좋겠고, 경찰서장보다는 경찰 부장이 좋 기는 하겠지만, 그건 너무 첫술에 배불러지라는 욕심이라 해서, 알맞게 우선 군수와 경찰서장을 양성하던 것입니다.

5. 마음의 貧民窟[ 빈민굴] 윤직원 영감은 그처럼 부민관의 명창대회로부터 돌아와서, 대문 안에 들어서던 길로 이 분풀이, 저 화풀이를 한데 얹어 그 알뜰한 삼남이 녀석을 데리고, 며느리 고씨더러, 짝 찢을 년이니 오두가 나서 그러느니, 한바탕 귀 먹은 욕을 걸찍하게 해주고 나서야 저으기 직성이 풀려, 마침 또 시장도 한판이라 의관을 벗고 안방으로 들어갔읍니다.

아랫목으로 펴놓은 돗자리 위에 방안이 온통 그들먹하게시리 발을 개키고 앉아 있는 윤직원 영감 앞에다가, 올망졸망 사기 반상기가 그득 박힌 저녁상을 조심스레 가져다놓는 게 둘째손자며느리 조씹니다. 방금 경찰서장 감으 로 동경 가서 어느 사립대학의 법과에 다니는 종학(鍾學)의 아낙입니다.

서울 태생이요 조대비의 서른일곱촌인지 아홉촌인지 되는 양반집 규수요, 시구문 밖이 친정이기는 하지만 배추장수 딸은 아니라도 학교라곤 근처에도 못 가보았고 얼굴은 얇디얇은 납작바탕에 주근깨가 다닥다닥 박혀서, 그닥출 수는 없는 인물입니다.

그런 중에도 더욱 안된 건 잡아 뽑아놓은 듯이 뚜하니 나온 위아랫 입술 입니다. 이 쑤욱 나온 입술로, 그 값을 하느라고 그러는지 새수빠진 소리를 그는 퍽도 잘 합니다. 새서방 종학이한테 눈의 밖에 나서 소박을 맞는 것 도죄의 절반은 그 입술과 새수빠진 소리 잘 하는 것일 겝니다.

종학은 동경으로 유학을 가면서부터는 아주 털어 내놓고서 이혼을 해달라고 줄창치듯 편지로 집안 어른들을 졸라대지만, 윤직원 영감으로 앉아서 본다면 천하 불측한 놈의 소리지요.

아뭏든 그래서 생과부가 하나…… 밥상 뒤를 따라 쟁반에다가 양은주전자에 술잔을 받쳐들고 들어서는 게 맏 손자 며느리 박씹니다.

이 집안의 업덩어립니다. 얌전하고 바지런해서, 그 크나큰 안살림을 곧잘 휘어 나가고, 게다가 시할아버지의 보비위까지 잘하니 더할 나위 없읍니다.

인물도 얼굴이 동그름하고 눈이 시원스럽게 생겨서, 올해 나이 서른이로되 도리어 스물다섯 살 먹은 동서보다도 젊어 보입니다.

다만 한가지, 맏아들 경손(慶孫)이가 금년 열다섯 살인 걸, 아직도 아우를못 보는 게 흠이라면 흠이라고 하겠지만, 하기야 손(孫)이 귀한 건 이 집안의 내림이니까요.

한데, 이 여인 역시 신세가 고단한 편입니다. 무슨 소박이니 공방이니 하는 문자까지 가져다 붙일 것은 없어도, 남편이요 이 집안의 장손인 종수( 鍾秀) 가 시골로 내려가서 첩살림을 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생과부 축에 끼지 않을 수가 없던 것입니다.

종수는 윤직원 영감의 가문(家門) 빛내기 위한 네 가지 사업 가운데, 군수와 경찰서장을 만들어내려는 품목 중에 편입된 그 군수 재목입니다. 그래 5, 6년 전부터 고향의 군(郡)에서 군서기(郡雇員) 노릇을 하느라고, 서울서 따 들인 기생첩을 데리고 치가를 하는 참이랍니다.

이래서 생과부가 둘…… 맏 손자 며느리 박씨가 들고 들어오는 술반을 받아가지고 웃목 화로 옆으로 다가앉아 술을 데우는 게 윤직원 영감의 딸 서울아씨라는 진짜 과붑니다.

양반혼인을 하느라고, 서울 어느 가랭이가 찢어지게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갔다가, 새서방이 일 년 만에 전차에 치어죽어서 과부가 된 그 여인입니다.

이마가 좁고 양미간이 넓고 콧잔등은 푹신 가라앉고, 온 얼굴에 검은 깨를 끼 얹어 놓았고 목이 옴츠라지고, 이런 생김새가 아닌게아니라 청승 맞게는 생겼 읍니 다.

"네가 소갈머리가 고따우루 생깄으닝개루, 저 나이에 서방을 잡어 먹었지!"

윤직원 영감은 딸더러 이렇게 미운 소리를 곧잘 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할 때면, 소갈머리뿐 아니라, 생김새도 그렇게 생겨먹었느니라고 으례껏 생각을 합니다.

젊은 과부다운 오뇌는 없지 않지만, 자라기를 호강으로 자랐고, 또 이 내 포태( 胞胎) 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스물여덟이라는 제 나이보다 훨씬 애띠 기는 합니다.

이래서, 생과부 통과부 등 합하여 과부가 셋…… 그러나 과부가 셋뿐인 건 아닙니다.

시방 건넌방에서 잔뜩 도사리고 앉아, 무어라고 트집거리가 생기기만 하면 시아버지 되는 윤직원 영감과 한바탕 맞다대기를 할 양으로 벼르고 있는 이집의 맏며느리 고씨, 이 여인 또한 생과붑니다.

그리고 또 아까 안중문께로 나갔다가 마침 윤직원 영감이 삼남이 녀석을 데리고 서서 며느리 고씨더러 군욕질을 하는 걸 듣고 들어와서는, 그 말을 댓 발이나 더 잡아늘려 고씨한테 일러바친 침모 전주댁, 이 여인이 또 진짜과 붑니다.

이래서 이 집안에 과부가 도합 다섯입니다. 도합이고 무엇이고 명색 여인네 치고는 행랑어멈과 시비 사월이만 빼놓고는 죄다 과부니 계산이야 순 편합니다.

이렇게 생과부, 통과부, 떼과부로 과부 모를 부어놓았으니 꽃모종이나 같았으면 춘삼월 제철을 기다려 이웃집에 갈라주기나 하지요. 이건 모는 부어놓고도 모종으로 갈라줄 수도 없는 인간 모종이니 딱한 노릇입니다.

밥상을 받은 윤직원 영감은 방안을 한바퀴 휘휘 둘러보더니 "태식이는 어디 갔느냐?"

하고 누구한테라 없이, 띄어놓고 묻습니다. 윤직원 영감이 인간 생긴 것 치고 이 세상에서 제일 귀애하는 게 누구냐 하면, 시방 어디 갔느냐고 찾는 태식 입니다.

지금 열다섯 살이고, 나이로는 증손자 경손이와 동갑이지만 아들은 아들 입니다. 그러나 본실 소생은 아니고, 시골서 술에미(酒女[주녀])를 상관한 것 이, 그걸 하나 보았던 것입니다.

배야 뉘 배를 빌려 생겨났던 간에 환갑이 가까와서 본 막내동이니, 아버지로 앉아서야 이뻐할 건 당연한 노릇이겠지요. 하물며 낳은 지 삼칠일 만에에 미 한 테서 데려다가 유모를 두고 집안의 뭇 눈치 속에서 길러낸 천 더 꾸러기니, 여느 자식보다 불쌍히 여겨서라도 한결 귀애할 게 아니겠다구요.

윤직원 영감은 밥을 먹어도 꼭 태식이를 데리고 같이 먹곤 하는데, 오늘 저녁에는 마침 눈에 뜨이지 않으니까 숟갈도 들려고 않고서 그애를 먼저 찾던 것입니다.

웃목께로 공순히 서서 있던 두 손자며느리는, 이거 또 걱정을 한바탕 단단히 들어두었나 보다고 송구해하는 기색만 얼굴에 드러내고 있고, 그러나 딸 서울 아씨는 친정아버지의 성화쯤 그다지 겁나지 않는 터라 "방금 마당에서 놀았는걸!"

하고 심상히 대답을 하면서, 술주전자를 들고 밥상 옆으로 내려옵니다.

"방금 있었넌디 어디루 갔담 말이냐? 눈에 안 뵈거덜랑 늬가 잘 동 촉 히 여서 찾어보구 좀 그리야지…… "아니나 다를까, 윤직원 영감은 딸더러 하는 소리는 소리지만 온 집안 식구들한테 다 대고 나무람을 하던 것입니다.

"동촉이구 무엇이구, 제멋대루 나가 돌아다니는 걸 어떻게 일일이 참견 허라 구 그리시우?…… 인전 나이 열다섯 살이나 먹었으니 아버니두 제발 얼뚱 애기 거천허드끼 그리시지 좀 마시우!"

"흥! 내가 그렇게라두 돌아부아 부아라?…… 늬들이 작히 그걸 불쌍히 여겨서 조석이라두 제때 챙겨 멕이구 헐 듯싶으냐?"

"아버니가 너무 역성이나 두시구 떠받아 주시구 그리시니깐 집안 식구는다아 믿거라구 모른 체헌다우!"

"말은 잘 현다만, 인제 나 하나 발뻗어 부아라? 그것이 박 박적( 바가지) 들구 고샅담박질헐 티닝개."

"제몫으루 천석거리나 전장해주실 테믄서 그리시우? 천석꾼이가 거지가 되 믄 5백석거리밖엔 못탄 년은 금시루 기절을 해 죽겠수!"

서자요 병신인 태식이한테는 천석거리를 몫지어 놓고, 서울아씨 저한테는

5백석거리밖엔 주지 않았대서, 그걸 물고 뜯는 수작입니다. 서 울 아씨로는 육장 계제만 있으면 내놓는 불평이지요.

이렇게 부녀가 태격태격하려고 하는 판인데, 방 웃미닫이가 사르르 열리더니, 문제의 장본인 태식이가 가만히 고개를 들이밀고는 방안을 휘휘 둘러봅니다. 그러다가 윤직원 영감이 눈에 띄니까는 들이 천동한 것처럼 우당 퉁탕 뛰어들어 윤직원 영감의 커단 무릎 위에 펄씬 주저앉읍니다.

그 서슬에 서울아씨는 손에 들고 있던 술주전자를 채고서 이맛살을 찌푸리고, 윤직원 영감은 턱을 치받쳤으나 헤벌씸 웃으면서 "허 허어 이 자식아, 원!"

하고 귀엽다고 정수리를 만져줍니다.

아이가 사랑에 있는 상노아이놈 삼남이와 동기간이랬으면 꼭 맞게 생겼 읍니다.

열다섯 살이라면서, 몸뚱이는 네댓살박이만큼도 발육이 안 되고, 그렇게 가냘픈 몸 위에 가서 깜짝 놀라게 큰 머리가 올라앉은 게 하릴없이 콩나물 형국 입니다.

"이 자식아, 좀 죄용죄용허지 못허구, 그게 무슨 놈의 수선이냐? 응?……

이 코! 이 코 좀 보아라…… "엿 가래 같은 누런 콧줄기가 들어가지고는 숨을 쉴 때마다 이건 바로 피스톤처럼 바쁘게 들락날락합니다.

"……코가 나오거덜랑 횅 풀던지, 좀 씻어 달라구 하던지 않구서, 이 게무 어란 말이냐? 응? 태식아…… "윤직원 영감은 힐끔, 딸과 손자며느리들을 건너다보면서, 손수 두 손가락으로 태식의 콧가래를 잡아 뽑아냅니다. 맏손자며느리가 재치있게 걸레를 집어 들고 옆으로 대령을 합니다.

"앱배!"

태식은 코를 풀리고 나서, 고개를 되들고 앱배를 부릅니다.

"오냐?"

"나, 된…… "돈이란 말인데, 어리광으로 입을 가래비쌔고 말을 하니까 된이 됩니다.

"돈? 돈은 또 무엇허게? 아까 즘심때두 주었지? 그놈은 갖다가 무엇 히 였 간디?"

"아탕 사먹었저."

"밤낮 그렇게 사탕만 사먹어?"

"나, 된 주엉!"

"그리라…… 그렇지만 이놈은 잘 두었다가 내일 사먹어라? 응?"

"응."

윤직원 영감이 염낭에서 십전박이 한푼을 꺼내 주니까, 아이는 히히 하고 그 의 독특한 기성을 지르면서 무릎으로부터 밥상 앞으로 내려앉습니다.

윤직원 영감은 이렇게 한바탕 막내동이의 재롱을 보고 나서야, 서 울 아씨가 부어주는 석잔 반주를 받아 마십니다. 그동안에 태식은 씨근버근 넘싯 거리 면서 밥상에 있는 반찬들을 들이 손가락으로 거덤거덤 집어다 먹느라고 정신이 없읍니다. 집어다 먹고는 옷에다가 손을 쓱쓱 씻고 집어오다가 질질 흘리고 해도 서울아씨는 아버지 앞에서라 지청구는 차마 못하고, 혼자 이 맛살만 찌푸립니다.

반주 석잔이 끝난 뒤에 윤직원 영감은 비로소 금으로 봉을 박은 은 숟갈을 뽑 아들고 마악 밥을 뜨려다가, 문득 고개를 쳐들더니 심상찮게 두 손자 며느리를 건너다봅니다.

"아니, 야 덜아…… "내는 말조가 과연 졸연찮습니다.

"……늬들, 왜 내가 시키넌 대루 않냐? 응?"

두 손자며느리는 벌써 거니를 채고서 고개를 떨어뜨립니다.

윤직원 영감은 밥이 새하얀 쌀밥인 걸 보고서, 보리를 두지 않았다고 그걸 탄하던 것입니다.

"……보리, 벌써 다아 먹었냐?"

"안직 있어요!"

맏손자며느리가 겨우 대답을 합니다.

"워너니 아직 있을 티지…… 그런디, 그러먼 왜 이렇기 맨쌀만 히여먹냐?

응?"

조져도 아무도 대답이 없읍니다.

"……그래, 내가 허넌 말은 동네 개 짖넌 소리만두 못 예기넝구나? 어찌서 보리넌 조깨씩 누아먹으라닝개 쥑여라구 안 듣구서, 이렇게 허연 쌀만 쌂어 먹으러 드냐?……"

"그 궁상스런 소리 작작 허시우, 아버니 두…… "서 울 아씨가 듣다 못해 아버지를 핀잔을 주는 것입니다.

"쌀밥 좀 먹기루서니 만석꾼이 집안이 당장 망헐까 바서 그리시우? 마침 보리 쌀을 삶은 게 없어서 그랬대요…… 고만두시구, 어여 진지나 잡수시우!"

"아니, 보리쌀은 삶잖구 그냥 누아두먼, 머 제절루 삶어진다더냐? 삶은 놈이 읎거던 다아 요량을 히여서, 미리미리 조깨씩 삶어 두구 끄니때먼 누아 먹어야지!…… 그게 늬덜이 모다 호강스러서 보리밥이 멕기 싫으 닝개루 핑계 대 넌 소리다, 핑계대넌 소리여. 공동뫼지를 가 부아라? 핑계 읎넌 무덤 하나나 있데야?……"

윤직원 영감은 아까운 듯이 밥을 한술 떠넣고 씹으면서 씹으면서 생각 하니 더욱 아깝든지 또다시 뇌사립니다. 자기 자신이 부연 쌀밥만 먹기가 아깝거든, 이 아까운 쌀밥을 온 집안 식구와, 심지어 종년이며 행랑것들까지 다 들 먹을 것이고, 솥글겅이와 밥티가 쌀밥인 채로 수채구멍으로 흘러나갈 일을 생각하면, 그야 소중하고 아깝기도 했을 겝니다.

"……글씨 야덜아, 그 보리밥이랑게 사람으 몸에 무척 좋단다. 또오, 먹기 루 말허더래두 볼깡볼깡 씹히넝게 맨쌀밥만 먹기보다는 훨씬 입맛이 나구…… 그런디 늬덜은 왜 그걸 안 먹으러 드냐?……"

태식이가 밥을 먹느라고 째금째금 시근버근 요란을 떨 뿐이지, 아무도 대답이 없고 두 손자며느리는 그저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고 순종하겠다는 빛을 얼굴에 드러내기에 애가 쓰입니다.

"……그러나마 늬덜더러 구찬헌 보리방애를 찌여 먹으랬을세 말이지, 아 시골서 작인덜 시키서 대껴서, 그리서 올려온 것이니, 흔헌 물으다가 북북 씻어서 있는 나무에 푹신 쌂어 두구 조깨씩 누아 먹기가 그리 심이 들 게 무어 람 말이냐?…… 허어, 참 딱헌 노릇이다!……"

말을 잠깐 멈추더니, 그 다음엔 아주 썩 구수하게 음성도 부드럽게…… "…… 야 덜아, 그러구 말이다. 거, 보리밥이 그런 성불러두, 그걸 노상 먹느라 먼 글씨, 애기 못낳던 여인네가 포태를 헌단다! 포태를 헌대여! 응?"

과부나 생과부가 남편이 없이 공규는 지켜도 보리밥만 노상 먹노라면 애기를 밴단 말이겠다요.

그러나, 그 말의 반응은 실로 효과 역력했읍니다. 한 것이, 맏 손자 며느리는, 그렇다면 내일 아침부터 꼭꼭 보리밥을 먹어야 하겠다고 좋아했고, 둘째 손자 며느리는 아무려나 나도 먹어는 보겠다고 유념을 했고, 서 울 아씨는 나도 먹었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을 했으니 말입니다.

다만, 이편 건넌방에서 시방 싸움을 잔뜩 벼르고 앉아 있는 며느리 고씨만은, 저 영감태기가 또 능청맞게 애들을 속여먹는다고 안방으로 대고 눈을 흘 깁니다.

참말이지, 조금만 무엇 했으면, 우르르 쫓아와서 그 허연 수염을 움켜쥐고 쌀쌀 들이잡아 동댕이를 쳐주고 싶게 하는 짓이 일일이 밉 광 머리 스럽습니다.

이 고씨는, 말하자면 이 세상 며느리의 썩 좋은 견본이라고 하겠읍니다.

── 암캐 같은 시어머니, 여우나 꽁꽁 물어가면 안방 차지도 내 차지, 곰 방조 대도 내 차지.

대체 그 시어머니라는 종족이 며느리라는 종족한테 얼마나 야속스러운 생물이 거드면, 이다지 박절할 속담까지 생겼읍니다.

열여섯 살에 시집을 온 고씨는 올해 마흔일곱이니, 작년 정월 시어머니 오씨가 죽는 날까지 꼬박 31년 동안 단단히 그 시집살이라는 걸 해왔읍니다.

사납대서 삵괭이라는 별명을 듣고, 인색하대서 진지리꼽재기라는 별명을 듣고, 잔말이 많대서 담배씨라는 별명을 듣고 하던 시어머니 오씨( 그러니까, 바로 윤직원 영감의 부인이지요) 그 손 밑에서 31년 동안 설운 눈물 많이 흘리고 고씨는 시집살이를 해오다가, 작년 정월에야 비로소 그 압제 밑에서 해방이 되었읍니다. 남의 집 종으로 치면 속량이나 된 셈이지요. 그러나 막상 이 고씨라는 여인이 하 그리 현부(賢婦)였더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하기야 아무리 흠잡을 데 없이 얌전스럽고 덕이 있고 한 며느리라도, 야속한 시어머니한테 걸리고 보면 반찬 먹은 개요, 고양이 앞에 쥐 요하지 별수가 없는 것이지만, 고씨로 말하면 사람이 몸집 생김새와 같이 둥실둥실한 게 후덕하기는 하나, 대단히 이퉁이 세어 한번 코를 휘어 붙이면 지렛대로 떠곤질러도 꿈쩍을 않고, 또 몹시 거만진 성품까지 없지 않습니다. 사상의(四象醫)더러 보라면 태음인(太陰人)이라고 하겠지요.

그래 아뭏든 고씨는, 그 말썽 많은 시집살이 31년을 유난히 큰 가대를 휘어 잡아 가면서 그래도 쫓겨난다는 큰 파탈은 없이 오늘날까지 살아왔 읍니다. 그러는 동안에 종수와 종학 두 아들을 낳아서 윤직원 영감으로 하여금 군수와 경찰서장을 양성할 동량(棟梁)도 제공했고, 그리고 이제는 나이 마흔 일곱에 근 오십이요, 머리가 반백에 손자 경손이가 중학교 2년급을 다니 게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계제에, 작년 정월에는 암캐 같은 시어머니었든지 테리야 같은 시어 머니었든지 간에 좌우간, 그 시어머니 오씨가 여우가 꽁꽁 물어간 것은 아니나 당뇨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러므로 주부(主婦)의 자리가 비었은즉 제일 첫째로 며느리인 고씨가 곰방조대야 피종을 피우는 터이니 차지를 안해도 상관 없겠지만, 안방 차지는 응당히 했어야 할 게 아니겠다구요?

장모는 사위가 곰보라도 이뻐하고,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뻐드렁이에 애꾸 이 눈라도 이뻐는 하는 법인데, 윤직원 영감은 어떻게 된 셈인지 며느리 고씨를 미워하기를 그의 부인 오씨 못잖게 미워했읍니다. 노마나님 오씨의 초 종범 절을 치르고 나서, 서울아씨가 올케 되는 고씨한테 안방을( 섭섭하나마) 내줘야 하게 된 차인데 윤직원 영감이 처억 간섭을 한다는 말이…… "야야! 너두 아다시피, 내가 조석을 꼭꼭 안방으 들와서 먹넌디, 아 늬가 안방을 네 방이라구 이름지어 각구 있으량이면 내가 편찬히여서 어디 쓰겄냐? 그러니 나 죽넌 날까지나 그냥저냥 웃방(건넌방)을 쓰구 지내라."

핑계야 물론 그럴 듯합니다. 그래서 안방은 노마나님 오씨의 시체만 나갔 을 뿐이지 전대로 서울아씨가 태식을 데리고 거처를 하고, 고씨는 건넌방에 눌러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흥! 만만한 년은 제 서방 굿도 못 본다더니, 나는 두다리 뻗는 날까지 접방 살이( 곁방 살이· 행랑 살이) 못 면헐걸!"

고씨는 방 때문에 비위가 상할 때면 으례껏 이런 구누름을 잊지 않곤 합니다. 그러나 고씨의 억울한 건 약간 안방 차지를 못하는 것 따위만이 아닙니다.

시어머니 오씨는 마지막 숨이 지는 그 시각까지도 며느리 고씨를 못 먹어 했 읍니 다.

"오냐, 인재넌 지긋지긋허던 내가 급살맞어 죽으닝개, 시언허구 좋아서 춤출 사람 있을 것이다!"

이건 물론 며느리 고씨를 물고 뜯는 말이요, 이제 자기가 죽고 나면 며느리 고씨가 집안의 안어른이 되어가지고, 마음대로 휘둘러가면서 지낼 테라서, 그 일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밉고 하여, 숨이 넘어가는 마당에서까지 그대 도록 야속한 소리를 했던 것입니다.

미상불 고씨는 어머니의 거상을 입으면서부터 기를 탁 폈읍니다. 예를 들자면 드리없지만, 가령 밤 늦게까지 건넌방에서 아무리 성냥 긋는 소리 가나도 이튿날 새벽같이 "밤새 두룩 댐배질만 허니라구 성냥 열일곱번 그신(그은) 년이 어떤 년이냐?"

하고, 야단을 치는 사람이 없어 잠 못 이루는 밤을 담배로 동무삼아 밝히 기도 무척 임의로왔읍니다.

또, 나들이를 한 사이에 건넌방 문에다가 못질을 해서 철갑을 하는 꼴을안 당하게 된 것도 다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만 조금 펴고 지내게 되었을 뿐이지, 실상 아무 실속도 없고 말았읍니다. 시아버지 윤직원 영감이 처결하기를, 집안의 살림살이 전권( 全權) 이 마땅히 물려받아야 할 주부 고씨는 젖혀놓고서, 한 대( 一代) 를 껑충 건너뛰어 손자대(孫子代)로 내려가게 했던 것입니다. 고씨의 며느리 되는 종수의 아낙인 박씨 즉 윤직원 영감의 맏손자며느리가 시할머니의 뒤를 바로 이어서 집안의 안살림을 도맡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묻지 않아도 내가 주부로 들어앉아 며느리를 거느리고 집안 살림을 해가는 어른이 되겠거니 했던 고씨는 고만 개밥의 도토리가 되어 버리고, 도리어 시어머니 오씨 대신에 며느리 박씨한테 또다시 시집살이(?)를 하게쯤 된 셈평이었읍니다. 선왕(先王)의 뒤를 이어 즉위는 했으나 권력은 왕자가 쥐게 된 그런 판국과 같다고 할는지요.

그런데다가 시아버지 윤직원 영감은 죽고 없는 마누라 몫까지 해서, 갈수록 더 못 먹어서 으릉으릉 뜯지요. 시뉘 되는 서울아씨는 내가 주장입네 하는 듯이 안방을 차지하고 누워서 사사이 할퀴려 들지요. 그런데, 또 더 큰 불평과 심화거리가 있으니…… 고씨는 시방 동경엘 가서 경찰서장 감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둘째아들 종학을 낳은 뒤로부터 스물네 해 이짝, 남편 윤주사 창식과 금슬이 뚝 끊겨, 생과부로 좋은 청춘을 늙혀버렸읍니다.

윤주사는 시골서부터 첩장가를 들어 딴살림을 했었고, 서울로 올라올 때도 그 첩을 데리고 와서 지금 동대문 밖에다가 치가를 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요새는, 그새까지는 별로 않던 짓인데, 새 채비로 기생첩 하나를 더 얻어서 관철동에다 살림을 차려놓고는 이 집으로 가서 놀다가 저 집으로가 서 누웠다 하며 지냅니다.

그리고는 본집에는 돈이나 쓸 일이 있든지, 또 부친 윤직원 영감이 두 번 세번 불러야만 마지 못해 오곤 하는데, 오기는 와도 사랑방에서 부친이나 만나 보고 그대로 횡허케 돌아가지, 안에는 도무지 발걸음도 않습니다.

이 윤주사라는 사람은 성미가 그의 부친 윤직원 영감과는 딴판이요, 좀 호협한 푼수로는 그의 조부 말대가리 윤용규를 닮았다고나 할는지, 그리고 삵괭이요 진지리꼽재기요 담배씨라던 그의 모친 오씨와는 더욱 딴세상 사람 입니다.

도무지 철을 안 이후로 나이 마흔여섯이 되는 이날 이때까지 남과 언성을 높여 시비 한번인들 해본 적이 없읍니다.

남이 아무리 낮게 해야, 그저 그런가보다고 모른 체할 따름이지, 마주 대고 궂은 소리라도 하는 법이 없읍니다. 본시 사람이 이렇게 용하기 때문에 그 를 낮아하는 사람도 별반 없지만…… 가산이고 살림 같은 것은 전혀 남의 일같이 불고하고, 또 거두잡아서 제법 살림살이를 할 줄도 모릅니다.

부친 윤직원 영감의 말대로 하면, 위인이 농판이요, 오십이 되도록 철이 들지를 않아서 세상 일이 죽이 끓는지 밥이 넘는지 통히 모르고 지내는 사람 입니다.

미워서 꼬집자면 그렇게 말도 할 수가 없는 건 아니겠지요. 그러나, 또 좋게 보자면 세상 물욕(物慾)을 초탈한 사람이라고도 하겠지요.

누가 어려운 친척이나 친구가 찾아와서 아쉰 소리를 할라치면, 차마 잡아떼지를 못하고서 있는 대로 털어줍니다.

남이 빚 얻어 쓰는데 뒷도장 눌러주고는, 그것이 뒤집혀 집행을 맞기가 일 쑵니다.

윤직원 영감은 몇번 그런 억울한 연대채무란 것에 몇만 원 돈 손을 보던 끝에 이래서는 못쓰겠다고 윤주사를 처억 준금치산선고를 시켜버렸읍니다.

그렇지만, 그랬다고 쓸 돈 못쓸 리는 없는 것이어서, 윤주사는 준 금치산 선고를 받은 다음부터는 윤두섭이라는 부친의 도장을 새겨서 쓰곤 합니다.

윤두섭의 아들 윤창식이가 찍은 도장이면 그것이 위조 도장인 줄 알고서도 몇 천 원 몇만 원의 수형을 받아주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차용증서도 그 도장으로 통용이 되니까요.

나중에 가서 일이 뒤집혀지면 윤직원 영감은 그래도 자식을 인장 위조 죄로 징역은 보낼 수가 없으니까, 그런 걸 울며 겨자 먹기라든지, 할 수 없이 그 수형이면 수형, 차용증서면 차용증서를 물어주곤 합니다.

윤주사 창식 그는 아뭏든 그러한 사람으로서, 밤이고 낮이고 하는 일이라고는 쌍스럽지 않은 친구 사귀어 두고 술 먹으러 다니기, 활쏘기, 제철 따라 승지(勝地)로 유람다니기, 옛 한서(漢書) 모아놓고 뒤지기, 한시( 漢詩) 지어서 신문사에 투고하기, 이 첩의 집에서 술 먹다가 심심하면 저 첩의 집으로 가서 마작하기, 도무지 유유자적한 게 어떻게 보면 신선인 것처럼 이나 탈속이 되어 보입니다.

물론 첩질이나 하고, 마작이나 하고, 요정으로 밤을 도와 드나드는 걸 보면 갈데없는 불량자고요.

사람마다 이상한 괴벽은 다 한가지씩 있게 마련인지, 윤주사 창식도 야릇한 편성이 하나 있읍니다.

그가 마음이 그렇듯 활협하고, 남의 청을 거절 못하는 인정 있는 구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 어느 교육계의 명망유지 한 사람이 그의 문을 두드린 일이 있었읍니다.

소간은 그 명망유지씨가 후원을 하고 있는 사학(私學) 하나가 있는데, 근 자 재정이 어렵게 되어 계제에 돈을 한 20만 원 내는 특지가가 있으면, 그 나머지는 달리 수합을 해서 재단의 기초를 완성시키겠다는 것이고, 그러니 윤주 사더러 다 좋은 사업인즉 10만 원이고 20만 원이고 내는 게 어떠냐고, 참 여러가지 말과 구변을 다해 일장 설파를 했읍니다.

윤주사는 자초지종 그러냐고, 아 그러다뿐이겠느냐고 연해 맞장구를 쳐주어가면서 듣고 있다가 급기야 대답할 차례에 가서는 한단 소리가 "학교가 없어서 공부를 못하기보다는 돈이 없어서 있는 학교도 못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하고 엉뚱한 반문을 하더라나요. 그래 명망유지씨는 신명이 풀려 두어 마디 더 이야기를 하다가 돌아갔읍니다.

아닌게아니라, 윤주사는 남의 사정을 쑬쑬히 보아주는 사람이면서도 공공사업이나 자선사업 같은 데는 죽어라고 일전 한푼 쓰지를 않습니다.

부친 윤직원 영감은 그래도 곧잘 기부는 하는 셈이지요. 시골서 살 때엔 경찰서의 무도장(武道場)을 독담으로 지어놓았고, 소방대에다가 100원씩 50원 씩 두어 번이나 기부를 했고, 보통학교 학급 증설 비용으로 200원 내논 일이 있었고, 또 연전 경남 수재 때에는 벙어리를 새로 사다가 동전으로 1원 72전을 넣어서 태식이를 주어서 신문사로 보내서 사진까지 신문에 난 일이 있는걸요. 그 위대한 사진 말입니다.

그러나 윤주사 창식은 도무지 그런 법이 없읍니다. 영 졸리다 졸리다 못 하면, 온 사람을 부친 윤직원 영감한테로 슬그머니 따 보내버릴망정 기부 같은 건 막무가내로 하지를 않습니다.

속담에, 부자라는 건 한정이 있다고 합니다. 가령 천석꾼이 부자면 천 석까지 멱이 찬 뒤엔, 또 만석꾼이 부자면 만석까지 멱이 찬 뒤엔 그런 뒤에는 항상 그 근처에서 오르고 내리고 하지, 껑충 뛰어넘어서 한정없이 불어나가지는 못한다는 그 뜻입니다.

미상불 그렇습니다. 가령 윤직원 영감만 놓고 보더라도, 1년에 벼로 다가 꼭 만 석을 받은 지가 벌써 10년이 넘습니다. 그러니 그게 매년 10만 원씩 아닙니까?

또 현금을 가지고 수형장수(手形割引業[수형할인업])를 해서, 1년이면 2,

3만 원씩 새끼를 칩니다.

그래서 매년 수입이 십수만 원이니 그게 어딥니까? 가령, 세납이야 무엇이야 해서 일반 공과금과 가용을 다 쳐도 그 절반 5, 6만 원이 다 못될 겝니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 5, 6만은 해마다 처져서, 10년 전에 만 석을 받은 백만원 짜리 부자랄 것 같으면, 10년 후 시방은 150만 원의 1만 5천 석짜리 부자가 되었어야 할 게 아니겠읍니까?

그런데 글쎄, 그다지도 가산 늘리기에 이골이 난 윤직원 영감이건만 10년 전에도 만석 10년 후 시방도 만석…… 그렇습니다그려.

그렇다고 윤직원 영감이 무슨 취리에 범연해서 그랬겠읍니까? 결국 아들 창식이 그런 낭비를 하고, 또 맏손자 종수가 난봉을 부리고, 군수를 목표 한 관등의 승차에 관한 운동비를 쓰고 그러는 통에 재산이 그 만석에서 더 붇지를 못하고 답보로 ── 읏을 한 거랍니다.

윤직원 영감은 가끔 창식의 그런 빚을 물어주느라고 사뭇 날뛰면서 단박 물고라도 낼 듯이 호령 호령, 그를 잡으러 보냅니다. 그러나 창식은 부친이 한번쯤 불러서는 냉큼 와보는 법이 없고, 세번 네번 만에야 겨우 대령을 합니다.

"야, 이 수언 잡어 뽑을 놈아, 이놈아!……"

윤직원 영감은 혼자서 실컷 속을 볶다가, 아들이 처억 들어와서 시침을 뚜욱 따고 앉는 양을 보면, 마구 속이 지레 터질 것 같아 냅다 욕이 먼저 쏟아져 나옵니다.

그럴라치면 창식은 아주 점잖게 "아버니 두 무슨 말씀을 그렇게 허십니까!……"

하고 되레 부친을 나무랍(?)니다.

"……아, 손자놈들이 다아 장성을 허구, 경손이놈두 전 같으면 벌써 가속을 볼 나인데, 그것들이 번연히 듣구 보구 하는 걸, 아버니는 노오 말씀을 그렇게…… ""아니, 무엇이 어찌여?"

윤직원 영감은 고만 더 말을 못합니다. 노상 아들한테 입 더럽게 놀린다고 핀잔을 먹은 그것을 부끄러워할 윤직원 영감이 아니건만, 어쩐 일인지 그는 아들 창식이한테만은 기를 펴지를 못합니다.

혼자서야, 이놈이 오거든 인제 어쩌구저쩌구 단단히 닦달을 하려니 하고 굉장히 벼르지요. 그렇지만 딱 마주쳐서는 첫마디에 기가 죽어버리고 되레꼼짝을 못합니다.

"그놈이 호랭이나 화적보담두 더 무선 놈이라닝개! 천하 무선 놈이여!"

윤직원 영감은 늘 이렇게 아들을 무서운 놈으로 칩니다. 그러니 세상에 겁 할 것이 없이 지나는 윤직원 영감을 힘으로도 아니요, 아귓심도 아니요, 총으로 아니면서 다만 압기(壓氣)로다가, 그러나마 극히 유순한 것인데, 그것 하나로 다가 그저 꼼짝 못하게 할 수 있는 창식은 미상불 호랑이나 화적보다 더 무서운 사람일밖에 없는 것입니다.

번번이 그렇게 윤직원 영감은 꼼짝도 못하고서는 할 수 없이, 한단 소리가…… "돈 내누아라, 이놈아!…… 네 빚 물어준 돈 내누아!"

"제게 분재시켜 주실 데서 잡아 까시지요!"

창식은 종시 시치미를 떼고 앉아서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윤직원 영감은 그제는 아주 기가 탁 막혀서 씨근 버근하다가 "뵈기 싫다, 이 잡어 뽑을 놈아!"

하고 고함을 치고는 돌아앉아 버립니다.

이래서 결국 윤직원 영감이 지고 마는 싸움은 싸움이라도, 한 달에 많으면 두세 번 적어서 한 번쯤은 으례껏 싸움을 해야 합니다.

이런 빚 조건으로 생긴 싸움이, 아들 창식하고만이 아니라 맏손자 종수하고도 종종 해야 하니, 엔간히 성가실 노릇이긴 합니다.

또 그런 빚을 물어주는 싸움은 아니라도, 윤직원 영감은 가끔 딸 서 울 아씨와도 싸움을 해야 합니다. 작은손자며느리와도 싸움을 해야 하고, 방학에 돌아오는 작은손자 종학과도 싸움을 해야 합니다.

며느리 고씨하고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랑방에 있는 대복이나 삼남이와도 싸움을 해야 합니다.

맨 웃어른 되는 윤직원 영감이 그렇게 싸움을 줄창치듯 하는가 하면, 일 변경 손이는 태식이와 싸움을 합니다.

서울아씨는 올케 고씨와 싸움을 하고, 친정 조카며느리들과 싸움을 하고, 경 손이와 싸움을 하고, 태식이와 싸움을 하고, 친정아버지와 싸움을 합니다.

고씨는 시아버지와 싸움을 하고, 며느리들과 싸움을 하고, 시누이와 싸움을 하고, 다니러 오는 아들과 싸움을 하고, 동대문 밖과 관철동의 시 앗집엘 가끔 쫓아가서는 들부수고 싸움을 합니다.

그래서, 싸움 싸움 싸움, 사뭇 이 집안은 싸움을 근저당(根抵當)해놓고 씁니다. 그리고 그런 숱한 여러 싸움 가운데 오늘은 시아버지 윤직원 영감과 며느리 고씨와의 싸움이 방금 벌어질 켯속입니다.

6. 觀 戰 記[ 관 전기] 고씨는 그리하여 그처럼 오랫동안 생수절을 하고 살아오다가 마침내 단산( 斷産) 할 나이에 이르렀읍니다. 여자 아닌 여자로 변하는 때지요.

이때를 당하면 항용 의좋은 부부생활을 해오던 여자라도 히스테리라든지 하는 이상야릇한 병증이 생기는 수가 많답니다. 그런 걸 고씨로 말하면, 25년 청춘을 호올로 늙히다가, 이제 바야흐로 여자로서의 인생을 오늘내일이면 작별하게 되었은즉, 가령 히스테리를 젖혀놓고 보더라도 마음이 안존할 리가 없을 건 당연한 노릇이겠지요. 윤직원 영감의 걸찍한 입잣대로 하면, 오 두가 나는 것도 그러므로 무리가 아닐 겝니다.

그러한데다가, 자 집안 살림을 맡아서 하니 그 재미를 봅니까. 자식들이라야 다 장성해서 뿔뿔이 흩어져 살고 어미는 생각도 않지요.

손자 경손이놈은 귀엽기는 커녕 까불고 앙똥해서 얄밉지요. 남편이라야 남 이 아니면 원수지요. 시아버지라는 영감은 괜히 못먹어서 으르렁으르렁 하고, 걸핏하면 짝 찢을 년이네, 오두가 나서 그러네 하고 군욕질이지요.

그러니 고씨로 앉아서 당하고 보면, 심술에다가 악밖에 날 게 더 있겠 읍니까.

그래도 작년 정월 시어머니 오씨가 살아 있을 때까지는 30년 눌려서 살아온 타성으로, 고양이 앞에 쥐같이 찍소리도 못하고 마음으로만 앓고 살았지만, 이제는 그 폭군이 하루 아침에 없고 보매 기는 탁 펴지는데,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뜻과 같지 않으니, 불평은 할 수 없이 악으로 변해버리게만 되었던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죽고 없은 뒤로는 집안에서 어른이라면 시아버지 윤직원 영감하나 뿐이요, 그 밖에는 죄다 재하자들입니다.

한데, 그는 윤직원 영감쯤 망령난 동네 영감태기 푼수로나 보이지, 결단코 시아버지요, 위하고 어려워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읍니다.

그러니까 그는 집안의 어른이고 아이고 간에 트집거리만 있으면 상관없이 들이 대고 싸웁니다.

시방 오늘 저녁만 하더라도, 아까 쪽대문을 열어놓았다고 윤직원 영감 이군 욕질을 했대서 그 원혐으로다가 기어코 한바탕 화룡도를 내고라야 말 작정으로 그렇게 벼르고 있는 참입니다.

하기야 쪽대문을 열어놓은 것도 실상 알고 보면, 우정 그런 것이지요. 윤직원 영감이 보고서 속 좀 상하라고. 그리고 그 끝에 무어라고 욕이나 하게되 면 싸움거리나 장만할 양으로…… 용 못된 이무기 심술만 남더라고, 앉아서 심술이나 부려야 속이나 시원하지요.

어쨌든, 그러니 속이 후련하도록 싸움을 대판거리로 한바탕 해대야만 할텐데, 이건 암만 도사리고 앉아 들어야 영감태기가 음충맞게시리 어린 손자 며느리들더러 보리밥을 먹으면 애기 밴다는 소리나 하고 있지, 종시 이 리로 대고는 무어라고 그 더러운 구습(口習)을 놀리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참고 말잔즉 더 부아가 나기도 할 뿐더러, 대체 무엇이 대끼며 뉘 코 무서운 사람이 있다고, 그 부아를 참거나 조심을 할 며리도 없는 것이고 해서, 시방 두 볼이 아뭏든 상말로 오뉴월 무엇처럼 추욱 처져가지고는 숨길이 씨근버근, 코가 벌씸벌씸, 입이 삐쭉삐쭉, 깍지손으로 무르팍을 안았다 놓았다, 담배를 비벼 껐다 도로 붙였다 사뭇 부지를 못합니다.

미상불 사람이란 건 싸우고 싶은 때 못 싸우면 더 부아가 나는 법이니까요.

집안은 안방에서 윤직원 영감이 태식을 데리고 앉아서 저녁을 먹으면서, 잔소리를 씹느라고 웅얼거리는 소리, 태식이 딸그락딸그락 째금째금하는 소 리, 그 외에는 누구 하나 기침 한번 크게 하는 사람 없고, 모두 조심을 하느라 죽은 듯 조용합니다.

바깥은 황혼이 또한 소리없이 짙어가고, 으슴푸레하던 방안에는 깜박 생각이 난 듯이 전등이 반짝 켜집니다.

마침 이 전등불을 신호 삼듯, 집안의 조심스런 침정을 깨뜨리고, 별안간 투덕투덕 구둣발 소리가 안중문께서 요란하더니, 경손이가 안마당으로 들어섭니다.

교복 정모에 책가방을 걸멘 것이, 학교로부터 지금이야 돌아오는 길인가 본데, 이애가 섬뻑 그렇게 들어서다 말고, 대뜰에 저의 증조부의 신발이 놓인 걸 힐끔 넘겨다보더니, 고개를 움칠 혓바닥을 날름하면서 발길을 돌려 살금살금 뒤채께로 피해 가고 있읍니다.

눈에 띄었자 상 탈 일 없고, 잘못하면 사날 전에 태식을 골탕먹여 울린 죄상으로 욕이나 먹기 십상일 테라, 아예 몸조심을 하던 것입니다.

저는 아무도 안 보거니 했는데, 그러나 조모 고씨가 빤히 내다보고 있었 읍니다. 실상 고씨가 본댔자 영감태기한테야 혓바닥을 내미는 건 말고 그보다 더한 주먹질을 해도 상관할 바 아니지만, 그러니까 그걸 가려 어쩌자는 게 아닙니다. 그애를 통해 생트집을 잡자는 모양이지요.

"네 이놈, 경손아!"

유리쪽으로 내다보고 있던 미닫이를 냅다 벼락치듯 와르르 따악 열어 젖히면서, 집안이 온통 떠나가게 왜장을 칩니다. 온 집안이 모두 놀란 건 물론이지만, 경손은 고만 잘겁을 했읍니다. 그애는 증조부 윤직원 영감이 아니고 아무 상관도 없는 조모가 그렇게 내닫는 게 뜻밖이어서 더욱 놀랐 읍니다.

그러나 놀란 것은 순간이요, 이내 침착하여 천천히 돌아서면서 "네에?"

하고 의젓이 마주 올려다봅니다.

이편은 살기가 사뭇 뚝뚝 떴는데,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시침을 뚜욱따고 서서 도무지 눈도 한번 깜짝 않는 양이라니, 앙똥하기 아닐말로 까 죽이고 싶게 밉살머리스럽습니다.

고씨는 영영 시아버지와 싸움거리가 생기지를 않으니까, 아무고 걸리는 대로 붙잡고 큰소리를 내서 시아버지의 비위를 건드려서, 그래서 욕이 나오면 언덕이야 트집을 잡아 가지고 싸움을 하쟀던 것인데, 고놈 경손이놈이 하는 양이 우선 비위에 거슬리고 본즉, 가뜩이나 부아가 더 치밀고, 그렇지만 이 판에 부아를 돋구어주는 거리면 차라리 해롭잖을 판속입니다.

이편, 경손더러 그러나 바른 대로 말을 하라면, 집안이 제한테는 모두 어른이건만 하나도 사람 같은 건 없고, 그래서 누가 무어라고 하건 죄꼼도 무섭지가 않습니다.

증조부 윤직원 영감이 그렇고, 대고모 서울아씨가 그렇고, 대부 태식이는 문제도 안되고, 제 부친 종수나 숙모 조씨가 그렇고, 조부 윤주사의 첩들이 그렇고, 해서 열이면 아홉은 다 시쁘고 깔보이기만 합니다.

그래 시방도 속으로는 ' 흥! 누구 말마따나, 오두가 났나? 왜 저 모양인구?…… 암만 그래보지?

내가 애먼 화풀이를 받아주나……’ 하면서, 제 염량 다 수습하고 있읍니다.

고씨는 당장 무슨 거조를 낼 듯이 연하여 높은 소리로 "네 이놈!"

하고, 한번 더 을러댑니다. 그러나, 이놈 이놈, 두번이나 고함만 쳤지, 그다음은 무어라고 나무랄 건덕지가 없읍니다.

하기야 시아버지가 진지상을 받고 계신데, 며느리 된 자 어디라고 무엄스럽게 문소리 목소리를 크게 내서 어른을 불안케 했은즉, 응당 영감 태기 로부터, 어허 그 며느리 대단 괘씸쿠나! 하여 필연 응전포고가 올 것이고, 그 응 전 포고만 오고 보면 목적한 바는 올바로 들어맞는 켯속이니 고만일 텁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저기 저놈 경손이놈이 사람 여남은 집어삼킨 능청 맞은 얼굴을 얄밉살스럽게시리 되들고 서서, 그래 무엇이 어쨌다고 소리나 꽥꽥 지르고 저 모양인고! 할 말 있거든 해보아요? 내 참 별꼴 다 보겠네!…… 이렇게 속으로 빈정대는 게 아주 번연하니, 썩 발칙스럽기도 하려니와 일변 어째 그랬든 한번 개두를 한 이상 뒷갈무리를 못해서야 어른의 위신과 체모가 아니던 것입니다.

"이놈, 너넌 어디 가서 무얼 허니라구 인자사 이러구 오냐?"

고씨는 겨우 꾸짖는다는 게 이겝니다.

거상에 손자놈이 학교를 잘 다니건 말건 공부를 착실히 하건 말건, 통 히 알은체도 안 해오던 터에, 오늘밤이야 말고서 갑작스레 그런 소리를 하는게, 다 속 앗일 짓이기는 하지만, 다급한 판이니 옹색한 대로 둘러댈 수밖에 없던 것입니다.

"전람회 준비했어요! 그러느라구 학교서 늦었어요!"

경손은 고씨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뿍 시뻐하는 소리로 대답을 해줍니다. 그때 마침 그애의 모친 박씨가 당황히 안방에서 나오더니 조용조 용 "너는 학교서 파하거던 일찍 일찍 오지는 않구서, 무슨 해망을 허느라 구 이렇게 저물구…… 할머니 걱정허시게 허구, 그래!"

하고, 며느리답게 시어머니를 대접하느라 아들놈을 나무랍니다.

"어머닌 또 무얼 안다구 그래요?……"

경손은 버럭, 미어다 부듲듯 제 모친을 지천을 하는데, 그야 물론 조모 고씨더러 배채우란 속이지요.

"……전람회 준비 때문에 학교서 늦었단밖에 어쩌라구 그래요? 왜 속두 몰라가 지구들 그래요?"

"아, 저놈이!"

"가만 있어요, 어머닐랑…… 대체 집에 들앉은 부인네들이 무얼 안다구 그래요?…… 내가 이 집에선 제일 어리니깐 만만헌 줄 알구, 그저 속 상헌 일만 있으면 내게다가 화풀일 허려 들어! 왜 그래요? 왜?…… 괜히 나인 어려두 인제 이 집안에선 매앤 어룬 될 사람이라우, 나두…… 왜 걸핏하면 날잡두 리우? 잡두리가…… 어림없이!……"

한마디 거칠 것 없이, 굽힐 것 없이, 퀄퀄히 멋스려댑니다.

"아, 이 녀석이!……"

저의 모친 박씨가 목소리를 짓눌러 가면서 나무라다 못해 때려라도 주 려고 달려 내려올 듯이 벼르는 것을, 그러나 경손은 본체만체, 쾅당쾅당 요란스럽게 발을 구르면서 뒤꼍으로 들어갑니다.

"흥! 잘은 되야먹는다, 이놈의 집 구석…… "고씨는 차라리 어처구니가 없다고 혀를 끌끄을 차다가, 미닫이를 도로 타 악 닫으면서 구누름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잘 되야먹어! 이마빡으 피두 안 마른 것두 으런이 무어라구 나무래 먼 천장만장 떠받구 나서기버텀 허구!…… 흥! 뉘놈의 집구석 씨알 머리라 구, 워너니 사람 같은 종자가 생길라더냐!"

이 쓸어넣고 들먹거려 하는 욕이 고씨의 입으로부터 떨어지자마자, 마침내 농성( 籠城) 코 나지 않던 적(敵)은 드디어 성문을 좌우로 크게 열고,(가 아니라) 안방 미닫이를 벼락치듯 열어젖히고, 일원 대장이 투구철갑에 장창을 비 껴 들고(가 아니라) 성이 치달은 윤직원 영감이, 필경 싸움을 걷어 맡고 나서는 것입니다.

실상 윤직원 영감은 저편이 싸움을 돋는 줄을 몰랐던 건 아닙니다. 다 알고서도 어디 얼마나 하나 보자고 넌지시 늦추 잡도리를 하느라, 고씨가 처음 꽥 소리를 칠 때도 손자며느리와 딸을 건너다 보면서 "저, 짝 찢을 년은, 왜 또 지랄이 나서 저런다냐!"

하고 입만 삐죽거렸읍니다.

서울아씨는 친정아버지를 따라 입을 삐죽거리고, 두 손자며느리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박씨만 조심조심 경손을 나무라느라고 마루로 나오고, 경 손이가 온 줄 안 태식은 미닫이의 유리로 밖을 내다보다가 도로 오더니 "아빠 아빠, 저 경존이 잉? 깍쟁이 자직야, 잉? 아주 옘병헐 자직이야!"

하고 떠듬떠듬 말재주를 부리고 했읍니다.

"아서라! 어디서 그런…… ""잉? 아빠. 경존이 깍쟁이 자직야. 도족놈의 자직야, 잉? 아빠, 그치?"

"아서어! 그런 욕 허면 못쓴다!"

윤직원 영감은 이 육중한 막내동이를 나무란다고 하기보다도, 말재주가 늘어가는 게 신통하대서 빙그레 웃고 있었읍니다.

두번째 건넌방에서 고씨의 큰소리가 들렸을 때도 윤직원 영감은 딸과 작은 손자 며느리를 번갈아 건너다보면서 혼잣말을 하듯이, 저년이 또 오두가 나서 저러느니, 서방한테 소박을 맞고 지랄이 나서 저러느니, 원체 쌍놈 아전의 자식이요, 보고 배운 데가 없어 저러느니 하고, 고씨더러 노상 두고 하는 욕을 강하듯 내씹고 있었읍니다.

하다가 필경 전기(戰機)는 익어, 마침내 고씨의 입으로부터 집안이 어떻다는 둥, 뉘 놈의 씨알머리가 어떻다는 둥, 가로로는 온 집안을, 세로로는 신주 밑구멍까지 들먹거리면서 군욕질이 쏟아져 나왔고, 그리하여 윤직원 영감은 기왕 받아주는 싸움에 이런 고패를 그대로 넘길 며리가 없는 것이라, 드디어 결전을 각오했던 것입니다.

"아니, 야야?……"

미닫이를 타앙 열어젖히고 다가앉는 윤직원 영감은 그러기 전에 벌써 밥 먹던 숟갈은 밥상 귀퉁이에다가 내동댕이를 쳤고요.

"……너, 잘 허넝 건 무엇이냐? 너, 잘 허넝 건 대체 무엇이여? 어디 입이 꽝지리(꽝우리) 구녁 같거던 말 좀 히여 부아라? 말 좀 히여 부아?"

집안이 떠나가게 소리가 큽니다. 몸집이 크니까 소리도 클 거야 당연하지요.

이렇게 되고 보면 고씨야 기다리고 있던 판이니 어련하겠읍니까.

"나넌 아무껏두 잘못헌 것 읎어라우! 파리 족통만치두 잘못헌 것 읎어 라우! 팔자가 기구히여서 이런 징글징글헌 집으루 시집온 죄밲으넌 아무 죄 두 읎어 라우! 왜, 걸신허먼 날 못잡어 먹어서 응을거리여? 30년 두구 종질 히 여준 보갚음으루 그런대여? 머 내가 살이 이렇게 쪘으닝개루, 소 징( 素症[ 소 증]) 이 나서 괴기라두 뜯어 먹을라구? 에이! 지긋지긋히라! 에이 숭악히라."

신사(또는 숙녀)적으로 하는 파인 플레이라 그런지 어쩐지 몰라도, 하나가 말을 하는 동안 하나가 나서서 가로막는 법이 없고, 한바탕 끝이 난 뒤라야 하나가 나서곤 합니다.

"옳다! 참 잘 헌다! 참 잘 히여. 워너니 그게 명색 며누리 체껏이 시 애비더러 허넌 소리구만? 저두 그래, 메누리 자식을 둘썩이나 읃어다 놓고, 손자 자식이 쉬옘이 나게 생깄으먼서, 그래 그게 잘 허넌 짓이여?"

"그러닝개루 징손주까지 본 이가 그래, 손자까지 본 메누리년더러 육장 짝 찢을 년이네, 오두가 나서 싸돌아댕기네 허구, 구십을 놀리너만? 그건 잘 허넌 짓이구만? 똥 묻은 개가 저(겨) 묻은 개 나무래지!"

"쌍년이라 헐 수 읎어! 천하 쌍놈, 우리게 판백이 아전 고준평이 딸 자식이, 워너니 그렇지 별수 있겄냐!"

"아이구! 그, 드럽구 칙살스런 양반! 그런 알량헌 양반허구넌 안 바꾸어…… 양반, 흥!…… 양반이 어디 가서 모다 급살맞어 죽구 읎덩갑만…… 대체 은제적버텀 그렇게 도도헌 양반인고? 읍내 아전덜한티 잽혀가서 볼기 맞이 먼서 소인 살려줍시사 허던 건 누군고? 그게 양반이여? 그 밑구녁 들 칠 수룩 구린내만 나너만?"

아무리 아귓심이 세다 해도 본시 남자란 여자의 입심을 못 당하는 법인데, 가뜩이나 이렇게 맹렬한 육탄(아닌 언탄)을 맞고 보니, 윤직원 영감으로는 총 퇴각이 아니면, 달리 기습(奇襲)이나 게릴라전술을 쓸 수밖엔 별 도리가 없 읍니다.

사실 오늘의 이 싸움에 있어선, 자기딴은 입이 광주리 구멍 같아도 고씨가 그 쯤들이 폭로를 시키는데야 꼼짝 못하고 되잡히게만 경우가 되어 먹었 읍니 다.

그러니 가장 좋은 도리는, 전자에 그의 부인 오씨가 하던 법식으로 냅다 달려들어 며느리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엎지르고, 방치 같은 걸로 능장 질을 했으면야 효과가 훌륭하겠지요.

그러나 그 시어머니라는 머자와 시아버지라는 버자와 획 하나 덜하고 더하고 한 걸로, 시아버지는 시어머니처럼 며느리를 때려주지는 못하게 마련이니, 그 법을 그다지 야속스럽게 구별해 논 자, 삼대를 빌어먹을지라고, 윤직원 영감으로는 저주하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야, 이놈 경손아!"

육집이 큰 보람도 없이 뾰족하니 몰린 윤직원 영감은 마침내 마루로 쿵하고 나서면서 뒤채로 대고 소리를 지릅니다.

경손은 제 방에서 감감하게 대답을 하나, 윤직원 영감은 들었는지 못 들었 는지, 연해 소리소리 외칩니다.

한참만에야 경손이가 양복고의 바람으로 가만가만 나와서 한옆으로 비 껴 섭니다.

"너 이놈, 시방 당장 가서 네 할애비 불러오니라. 당장 불러와!"

"네에."

"요새 시체넌 거, 이혼이란 것 잘덜 헌다더라, 이혼…… 이놈, 오널 저녁 으루 담박 제 지집을 이혼을 안히였다 부아라! 이놈을 내가…… "과부댁 종놈은 왕방울로 행세한다더니, 윤직원 영감은 며느리 고씨와 싸우다가 몰리면 이혼하라고 할 테라고, 아들 창식을 불러오라는 게 유세 통입 니다.

그러나 부르러 간 놈한테 미리 소식 다 듣는 윤주사는, 따고 안 오기가 일쑤요, 몇번 만에 한번 불려와선, 네에 내일 수속하지요 하고 시원히 대답은 해도, 그 자리만 일어서면 죄다 잊어버려 버립니다. 그래도 좋게시리 윤직원 영감은 그 이튿날이고 이혼수속 재촉을 하는 법이 없으니까요.

"아 이놈, 넹금 가서 불러오던 않구, 무얼 뻐언허구 섰어?"

윤직원 영감은 추춤거리고 섰는 경손이더러 호통을 합니다.

경손은 그제서야 대답을 하고 옷을 입으러 가는 체 뒤꼍으로 들어갑니다.

눈치 보아 가면서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든지, 무엇하면 그냥 잠자코 있다가 넌지시 입을 씻고 말든지, 없어서 못 데리고 왔다고 하든지 할 요량만 대고 있으니까 별로 힘들잘 것도 없는 노릇입니다.

"두구 보자!……"

윤직원 영감은 마루가 꺼져라고 굴러 디디면서 대뜰로 내려섭니다.

"……두구 부아, 어디…… 내가 그새까지넌 말루만 그맀지만, 인지 두 구 부아라. 저허구 나허구 애비자식 천륜을 끊던지, 지집을 이혼을 허던지 좌우 양단간 오널 저녁 안으루 요정을 내구래야 말 티닝개루…… 두구부아!"

윤직원 영감은 으르면서 구르면서 사랑으로 나가고, 고씨는 그 뒤 꼭지에다 대고 제발 좀 그럽시사고, 이혼을 한다면 누가 무서워서 서얼설 기고, 어엉엉 울 줄 아느냐고 퀄퀄스럽게 받아넘깁니다.

이래서 시초 없는 싸움은 또한 끝도 없이 휴전이 되고, 각기 장수가 진지( 陣地) 로부터 퇴각을 하자, 집안은 다시 평화가 회복되었읍니다.

모두들 태평합니다.

계집종인 삼월이는 부엌에서 행랑어멈과 같이서 얼추 설겆이를 하고 있고, 행랑아 범은 안팎 아궁이를 찾아다니면서 군불을 조금씩 지피고, 그 나머지 식구들은 고씨만 빼놓고 다 안방으로 모여 저녁밥을 시작합니다.

서울아씨, 두 동서, 경손이, 태식이, 전주댁 이렇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방금 일어났던 풍파를 심려한다든가 윤직원 영감이 저녁밥을 중판멘것을 걱정 한다 든가, 고씨가 밥상을 도로 쫓은 걸 민망히 여긴다든가 할 사람은 하나도 없고, 따라서 아무도 입맛이 없어 밥 생각이 안 날 사람도 없읍니다.

다만, 먼저의 싸움의 입가심같이 그 다음엔 조그마한 싸움 하나가 벌어집니다.

태식이가 구경에 세마리가 팔렸다가 싸움이 끝이 나니까 다시 밥 시작을 하는데, 마침 경손이가 툭 튀어들더니, 윤직원 영감이 앉았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는, 두말 않고 그 숟갈로 그 밥을 퍼먹습니다.

태식은, 이 깍쟁이요 도적놈인 경손이가 아빠의 숟갈로 아빠의 밥을 먹어 대는 게 밉기도 하려니와, 또 맛있는 반찬을 뺏길 테니, 그래저래 심술 이나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히잉, 우리 아빠 밥야!"

태식은 밥숟갈을 둘러메는 것이나, 경손은 거듭떠보지도 않고서 "왜 이 모양야! 밥그릇에다가 문패 써붙였나?"

하고 놀려줍니다.

"히잉, 깍쟁이!"

"무어 어째?…… 잠자꾸 있어, 괜히…… ""히잉, 도족놈!"

"아, 요게! 병신이 지랄해요! 대갈쟁이가…… ""깍쟁이! 도족놈!"

"가만 둬 두니깐!…… 저거 봐요! 숟갈을 둘러메믄, 제가 누굴 때릴텐가?

요것 하나 먹구퍼? 요것…… ""저 애가!…… 경손아!……"

경손이가 주먹을 쥐어 밥상 너머로 을러대는 걸, 마침 저의 모친 박씨가 들어서다가 보고 깜짝 놀라던 것입니다.

"병신이 괜히 지랄허니깐, 나두 그리지!…… 내 이름이 깍쟁이구 도독 놈이구, 그런가? 머…… ""아따, 그런 소리 좀 들으믄 어떠냐? 잠자꾸 밥이나 먹으려무나."

"이 병신, 다시 그따위 소릴 해봐? 죽여놀 테니깐…… ""저 녀석이 말래두, 아니 듣구서!…… 너 그리다간 큰사랑 할아버지께 또 꾸중 듣는다?"

"피이! 무섭잖아."

"허는 소리마다. 너 그렇게 버릇없이 굴믄 귀양 간다! 귀양…… " "곤충 채집허구, 수영허구, 등산허구 실컨 놀다가 도루 오지, 무슨 걱정 이우?"

서울아씨가 손을 씻으면서 방으로 들어오다가 태식이가 여태 밥상을 차고앉아, 그러나마 먹지도 않고 이짐이 나서 엿가래 같은 코를 훌쩍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상을 잔뜩 찌푸립니다.

"누나!"

"왜 그래?"

역성이나 들어줄 줄 알고 불러본 것이, 대고 쏘아버리니, 이제는 울 기라도 해서 아빠를 불러대는 수밖에 없읍니다.

과연 태식은 입이 비죽비죽, 얼굴이 움질움질하는 게 방금 아앙하고 울음이 터질 시초를 잡습니다.

만약 태식을 울려놓고 보면 큰일입니다. 약간 아까, 고씨와 싸우던 그따위 풍파가 아니고, 온통 집이 한귀퉁이 무너나게시리 벼락이 내릴 판이니까요.

윤직원 영감은 다른 잘못도 잘 용서를 않지만, 그중에도 누구든지 태식을 울 린다든 가 하는 죄는 단연 용서를 하지 않던 것입니다.

"어서 밥 먹어라. 밥 먹다가 이짐 쓰구 그러면 못써요!"

서울아씨가 할 수 없이 목소리를 눅여 살살 달랩니다. 박씨도 코를 씻어주면서 경손더이러 눈을 끔적끔적합니다.

"대부 할아버지?……"

경손은 눈치를 채고서, 빈들빈들, 버엉떼엥 엎어 삶느라고…… "…… 어서 진지 잡수! 그리구 대부 덕분에 손자두 이런 존 반찬 좀 얻어먹어 예지, 응? 할아버지…… 우리 대부가 참 착해, 그렇지 대부…… "파계를 따지자면, 열다섯 살 먹은 경손은 같은 열다섯 살 먹은 태식의 손자요, 태식은 경손의 할아버지가 갈데없읍니다. 일가 망한 건 항렬만 높단 말로 눙치고 넘기자니, 차라리 이 조손관계(祖孫關係)는 비극이라 함이 옳겠습니다.

7. 쇠가 쇠를 낳고 사랑방에는 언제 왔는지 올챙이 석서방이, 과시 올챙이같이 토옹통한 배를 안고 웃목께로 오도카니 앉아 있읍니다.

시체말로는 브로커요, 윤직원 영감 밑에서 거간을 해먹는 사람입니다.

돈도 잡기 전에 배 먼저 나왔으니, 갈데없이 근천스런 ×배요, 납작한 체격에 형적도 없는 모가지에, 다 올챙이 별명 타자고 나온 배지 별게 아닐겝니다.

"진지 잡수셨읍니까?"

올챙이는 오꼼 일어서면서 공순히, 그러나 친숙히 인사를 합니다.

윤직원 영감은 속으로야, 이 사람이 저녁에 다시 온 것이 반가울 일이 있어서, 느긋하기는 해도 짐짓 "안 먹었으면 자네가 설넝탱이라두 한 뚝배기 사줄라간디, 밥 먹었냐 구 묻넝가?"

하면서 탐탁찮아하는 낯꽃으로 전접스런 소리를 합니다.

"아, 잡수시기만 하신다면야, 사 드리다뿐이겠읍니까?……"

생김새야 아무리 못생겼다 하기로서니, 남의 그런 낯꽃 하나 여새겨 볼 줄 모르며, 그런 보비위 하나 할 줄 모르고서, 몇천 원 더러는 몇만 원 거간을 서 먹노라 할 위인은 아닙니다.

옳지, 방금 큰소리가 들리더니, 정녕 안에서 무슨 일로 역정이 난 끝에 밥도 안 먹고 나오다가, 그 화풀이를 걸리는 대로 나한테 하는 속이로구나, 이렇게 단박 눈치를 채고는 선뜻 흠선을 피우면서, 마침 윤직원 영감이 발이나 넘는 장죽에 담배를 재어 무니까, 냉큼 성냥을 그어댑니다.

"……그렇지만 어디 지가 설마한들 설렁탕이야 사 드리겠어요! 참 하다못해 식교자라두 한 상…… ""체에! 시에미가 오래 살먼 구정물통으(개수물통에) 빠져 죽넌다더니, 내가 오래 사닝개루 벨 일 다아 많얼랑개비네! 인재넌 오래간만으 목 구 녁의 때 좀 벳기넝개비다!"

윤직원 영감 입에서는 담배연기가 피어올라 자옥하니 연막을 치고, 올챙이는 팽팽한 양복가랑이를 펴면서, 도사렸던 다리를 퍼근히하고 저도 마코를 꺼내서 붙입니다.

"온 영감두!…… 지가 영감 식교자 한상 채려 드리기루서니 그게 그리 대단하다구, 그런 말씀을…… ""글씨 이 사람아, 말만 그렇기, 어따 저어 상말루, 줄 듯 줄 듯허먼서 안주더라 구, 말만 그렇기 허지 말구서 한상 처억 좀 시기다 주어 보소? 늙은이 괄세넌 히여두 아덜 괄세넌 않넌다데마넌, 늙은이 대접두 더러 히 여야 젊은 사람이 복을 받고 허넌 벱이네. 그렇잖엉가? 이 사람…… "윤직원 영감은 히죽이 웃기까지 하는 것이, 방금 그다지 등등하던 기승은 그 새 죄다 잊어버린 모양으로 아주 태평입니다. 워너니 그도 그래야 할 것이, 만약 그 숱해 많은 싸움을, 싸움하는 족족 오래 두고 화가 풀리지 않을 래서야, 사람이 지레 늙을 노릇이지요.

"아니 머, 빈말씀이 아니라…… " 올챙이는, 금세 일어서서 밖으로 나갈 듯이 뒤를 들먹들먹합니다.

"……시방이라두 나가서, 무어 약주 안주나 될 걸루 좀 시켜가지구 오지요. 전화루 시키면 곧 될 테니깐두루…… 정녕 저녁진질 아니 잡수셨어요?

그러시다면 그 요량을 해서…… ""헤헤 엣다! 참, 엎질러 절받기라더니, 야 이 사람, 그런 허넌 첼랑 구만 히 여 두 소. 자네가 암만 히여두 딴 요량장이 있어 각구서 시방 그러넌 속 나두 다아 알구 있네!"

"네? 딴 요량요? 원, 천만에!"

"아까 아참나잘으 와서 이얘기허던 그 조간 때미 그러지? 응?"

"아니올시다, 원!…… 그건 그거구 이건 이거지, 어쩌면 절 그런 놈으루만 치질 하십니까! 허허허."

"그러구저러구 간으, 그건 아침에 말헌 대루 이화리(二割引[이할인]) 아니구 넌 안되니 그렇게 알소잉?"

윤직원 영감은 정색을 하느라고 담뱃대를 입에서 뽑고, 올챙이도 다가앉을듯이 앉음매를 도사립니다.

"그리잖어두 허긴 그 사람 강씰 방금 또 만나구 오는 길인데요…… 그 래그 말씀두 요정을 내구 허기는 해야겠 읍니 다마는…… ""그럼, 이화리 히여서라두 쓴다구 그러덩가?"

"그런데 거, 이번 일은 제 얼굴을 보시구서라두 좀 생각해 주서야 하겠 읍니다!"

"생각이라께 별것 있넝가? 돈 취히여 주넝 것이지."

"물론 주시긴 주시는데, 일할(一割)만 해주세요!"

"건, 안될 말이래두!"

"원, 자꾸만 그리십니다. 7천 원짜리 30일수형에 1할이라두 자아, 보십시요, 선변을 제하시니깐 6천 3백 원 주시구서 한 달 만에 7백 원을 얹어서 7천 원으루 받으시니 그만 해두 그게 어딥니까?…… 아무리 급한 돈이래 두, 쓰는 사람이 생각하면 하늘이 내려볼까 무섭잖겠어요?…… 그런 걸 글쎄, 이 할이나 허자시니!"

"허! 사람두!…… 이 사람아, 돈이 급허면 급헐수룩 다아 요긴허구, 그만 침 갭이 나갈께 아닝가? 그러닝개루 변두 더 내구서 써야지?"

"그렇더래두 영감 말씀대루 허자면 7천 원 액면에 5천 6백 원을 쓰 구서한 달 만에 1천 4백 원 이자를 갚게 되니, 돈 쓰는 사람이 억울하잖겠 읍니까?"

"억울허거던 안쓰먼 구만이지?…… 머, 내가 쓰시요오 쓰시요 허구 쫓아 댕김서 억지루 처맽긴다덩가? 그 사람 참!"

윤직원 영감은 이렇게 배부른 흥정으로 비스듬히 드러누우려고는 하지만, 올챙이의 말이 아니라도 6천 3백 원에 한 달 이자 7백 원이 어디라고, 이 거리를 놓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에누리를 하는 셈이지요. 해서 2할을 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고, 눈치 보아서 1할 5부로 해주어도 괜찮고, 또 저엉 무엇하면 1할이라도 그리 해롭지는 않고…… 그게 그러나마 달리 융통을 시켜야 할 자본일세 말이지, 은행의 예금장에서 녹이 슬고 있는 돈인걸, 두고 놀리느니 보다야 이문이 아니냔 말입니다.

"영감이 무가내루 2할만 떼신다면, 아마 그 사람두 안쓰기 쉽습니다…… "올챙이는 역시 윤직원 영감의 배짱을 아는 터라, 마침내 이렇게 슬그머니 한번 덜미를 눌러놓습니다. 그리고는 한참 있다가 다시…… "…… 그러니 자아 영감, 그러구저러구 하실 것 없이, 1할 5부만 하시지요…… 1할 5부라두 1 7은 7, 5 7 35허구, 1천 50원입니다!"

"아니 이 사람, 자네넌 내 밑으서 거간 서구, 내 덕으 사넌 사람이, 육장 그저 내게다가 해만 뵐라구 드넝가?"

"원 참! 그게 손해 끼쳐 디리는 게 아닙니다! 일을 다아 되두룩 마련 하자니깐 그리지요. 상말루, 싸움은 말리구 흥정은 붙이라구 않습니까? 그런데 그게 남의 일이라두 모를 텐데 항차 영감의 일인걸…… ""아따, 시방 허넌 소리가!…… 야 이 사람아, 구문이 안 생겨두 자네가 시방 이러구 댕길 팅가?"

"허허, 그야…… 허허허허. 그런데 참 구문이라니 말씀이지, 저두 구문만 많이 먹기루 들자면 할이가 많은 게 좋답니다. 그렇지만 세상 일을 어디 그렇게 제 욕심대루만 할래서야 됩니까?"

"이 사람아, 그런 소리 말소. 욕심 읎이 세상 살라다가넌 제 창사 구( 창자) 뽑아서 남 주어야 허네!"

"것두 옳은 말씀은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자아, 어떡허실렵니까?

제 말씀대루 1할 5부만 해서 주시지요? 네?"

"아이, 모르겄네! 자네 쇠견대루 허소!"

"허허허허. 진즉 그리실 걸 가지구…… 그럼 내일 당자 강씰 데리구 올텐데, 어느만 때가 좋을는지?…… 내일 은행 시간까진 돈을 써야 할 테니깐 요."

"글씨…… 대복이가 와야 헐 틴디. 오늘 저녁으 온댔으닝개 오기넌 올 것 이구, 오머넌 내일 아무 때라두 돈이사 주겄지만…… 자리넌 실수 읎을 자리 겄다?"

"그야 지가 범연하겠읍니까? 아따, 만창상점이라구, 바루 저 철물교 다리 옆 입니다. 머 그 사람이 부량자루 주색잡기하느라구 쓰는 돈이 아니구, 내일 해전으루다가 은행에 입금을 시켜야만 부도가 아니 나게 됬다는군요 !…… 글쎄 은행에서들 돈을 딱 가두어놓군, 돌려주질 않기 때문에, 너나 할것 없이 모두 죽는 소립니다!…… 그러나저러나 간에 이 사람 강씬 아무 염려 없구요. 다 조사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내가 무얼 알겄넝가마는…… "윤직원 영감은 담뱃대를 놓고 일어서더니, 벽장 속에서 조선 백지로 맨 술 두꺼운 장부(?) 한 권을 찾아냅니다.

이것이 대복이의 주변으로, 종로 일대와 창안 배오개 등지와, 그 밖에 서울 장안의 들뭇들뭇한 상고들을 뽑아 신용 정도를 조사해둔 블랙리스트 입니다.

신용이라도 우리네가 보통 말하는 신용이 아니라, 가산은 통 얼마나 되는데, 갚을 빚은 얼마나 되느냐는 그 신용입니다.

이걸 만들어놓고, 대복이는 날마다 신문이며 흥신내보(興信內報)며 또는 소식 같은 걸 참고해가면서, 그들의 신용의 변동에 잔주(註解[주해])를 달아 놓습니다.

그러니까 생기기는 아무렇게나 백지로 맨 한 권의 문서책이지만, 척 한번 떠들어만 보면, 어디서 무슨 장사를 하는 아무개는 암만까지는 돈을 주어도 좋다는 것을 휑하니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시골 사람, 그중에도 부랑자가 돈을 쓴다면, 으례껏 매도 계약까지 첨부한 부동산을 저당잡고라야 돈을 주지만, 시내에서 장사하는 사람들한테 는 대개 수형을 받고서 거래를 합니다. 그는 수형의 효험과 위력을 잘 알고 있으니까 안심을 합니다.

세상에 수형처럼 빚 쓴 사람한테는 무섭고, 빚 준 사람한테는 편리한 것이 없답니다. 기한이 지나기만 하면 거저 불문곡직하고 수형 액면에 쓰인 만큼 차압을 해서 집행딱지를 붙여놓고는 경매를 한다나요.

가령 그게 사기에 걸린 돈이라고 하더라도, 수형이고 보면 안 갚고는 못 배긴다니, 무섭지 않고 어쩌겠읍니까.

윤직원 영감은 이 편리하고도 만능한 수형장사를 해서 매삭 2, 3만 원씩 융통을 시키고, 그 이문이 적어도 3천 원으로부터 4천 원은 됩니다.

1할 이상 2할까지나 새끼를 치는 셈이지요.

송도 말년(松都末年)에는 쇠가 쇠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게 지 금은 다 세태가 바뀌고, 을축 갑자(乙丑甲子)로 되는 세상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겠지만, 쇠가 쇠를 낳기로 마련이니, 그건 무슨 징조일는지요.

아뭏든 그놈 돈이란 물건이 저희끼리 목족(睦族)은 무섭게 잘 하는 놈인 모양 입니다. 그렇길래 자꾸만 있는 데로만 모이지요?

윤직원 영감은 허리에 찬 풍안집에서 풍안을 꺼내더니, 그걸 코 허리에다가 처억 걸치고는, 그 육중한 자가용 흥신록을 뒤적거립니다.

올챙이는 이제 일이 거진 성사가 되었대서, 엔간히 마음이 뇌는지, 담배를 피워 물고 앉아서는 하회를 기다립니다.

윤직원 영감은 만창상회의 강무엇이를 찾아내어, 대강 입구구를 따져본 결과, 빚이 더러 있기는 해도, 아직 7, 8천 원은 말고 2, 3만 원쯤은 돌려주어도 한 달 기간에 낭패가 생기지는 않을 만큼 저엉정한 걸 알았읍니다.

"거 원, 우선 내가 뵈기는 괜찮얼 상 부르 네 마는…… "윤직원 영감은 이쯤 반승낙을 하고는, 장부를 도로 벽장에다가 건 사하고, 풍 안을 코끝에서 떼어내고, 그러고서 담뱃대를 집어 물면서 자리에 앉습니다. 아까 먼젓번에 한 승낙은, 말은 없어도 신용조사에 낙방이 안돼야만 돈을 준다는 얼승낙이요, 이번 것이 진짜 승낙한 보람이 날 승낙이던 것 입니다.

그러나 이러이러하네마는 하고, 그 마는이 붙었으니 온 승낙이 아니고 반 승낙인 것입니다. 대복이가 없으니까 그와 다시 한번 상의를 할 요량 이지요. 그래서 혹시 대복이가 불가하다고 한다든지 하면, 말로만 반승낙을 했지 무슨 계약서라도 쓴 게 아니고 한즉, 이편 마음대로 자빠져버리면 고 만일 테니까요.

"그러면……"

올챙이는 윤직원 영감의 그 마는이라는 말끝을 덮어씌우노라고 다시금 다지려 듭니다.

"……내일 은행시간 안으루는 실수 없겠죠?"

"글씨, 우선은 그러기루 히여 두지."

"그래서야 어디 저편이 안심을 하나요? 영감이 주장이시니깐, 영감이 아주 귀정을 지어서 말씀을 해주셔야, 저 사람두 맘놓구 있지요!"

"그렇기두 허지만, 실상 이 사람아, 자네두 늘 두구 보지만, 내사 무얼아넝가?…… 대복이가 다아 알어서 이러라구 허먼 이러구, 저러라구 허 먼 저러구 허지. 괜시리 속두 잘 모르구서 돈 그까짓것 1천 50원 읃어 먹을라 다가, 웬걸 1천 50원이나마 나 혼자 죄다 먹간디? 자네 구문 105원 주구 나 먼, 천 원두 채 못되넝 것, 그것 먹자구, 잘못허다가 내 생돈 6천 원 업어다 난장맞히게?"

"글쎄 영감! 자리가 부실한 자리면, 지가 애초에 새에 들질 않는답니다.

그새 4, 5년지간이나 두구 보시구서두 그리십니까? 언제 머 지가 천거한 자리 루 동전 한푼 허실한 일이 있읍니까?"

"아는 질두 물어서 가랬다네. 눈 뜨구서 남의 눈 빼먹넌 세상인 종 자네두 알먼서 그러넝가?"

"허허허허. 영감은 참 만년 가두 실수라구는 없으시겠읍니다! 다아 그렇게 전후를 꼭꼭 재가면서 일을 하셔야 실수가 없긴 하지요…… 그럼 아뭏든지 대복이가 오늘루 오긴 오죠?"

"늦더래두 올 것이네."

"그럼, 대복이만 가한 양으루 말씀하면, 돈은 내일루 실수 없으시죠?"

"그럴 티지."

"그러면 아무려나 내일 오정 때쯤 해서 당자 강씰 데리구 오지요…… 좌우간 그만해두 한시름 놓았읍니다. 허허…… ""자네 넌 시언헌가 부네마넌, 나넌 돈천이나 더 먹을 걸 못 먹은 것 같이서 섭섭허네!"

"허허허허. 그럼 이댐에나 들무읏한 걸 한 자리 해오지요…… 가만히 계십시요. 수두룩합니다. 은행에서 돈을 아니 내주기 때문에 거얼걸들합니다.

제일 죽어나는 게 은행돈 빚 얻어다가는 땅장수니 집장수니 하던 치들인데, 머 일보 4, 50전이라두 못써서 쩔맵니다!"

"이판으 누가 일보 50전 받구 빚을 준다덩가? 소불하 일원은 받어야지…… 주넌 놈이 아순가? 쓰넌 놈이 아수닝개로 그거라두 걷어 쓰지…… "윤직원 영감은 요새 새로 발령된 폭리 취체 속을 도무지 모릅니다. 그러나안다고 하더라도 이미 10년 전부터 벌써 법이 금하는 고패를 넘어서 해먹 는 돈 장사니까, 시방 새삼스럽게 폭리 취체쯤 무서울 것도 없으려니와, 좀 까다롭겠으면 다 달리 이러쿵저러쿵 하는 수가 얼마든지 있은 즉 만날 떵 그렁 입니다.

"그러면 그 일은 그렇게 허기루 허구…… "올챙이는 볼일 다 보았으니 선뜻 일어설 것이로되, 그러나 두고두고 뒷일을 좋도록 하자면, 이런 기회에 듬씬 보비위를 해야 하는 것인 줄을 자알알고 있읍니다.

"……그런데, 정녕 저녁진질 아니 잡수셨읍니까?"

"먹다가 말었네! 속상히여서…… " 윤직원 영감은 그새 잊었던 화가 그 시장기로 해서 새 채비로 비어지던 것이고, 그래 재털이에 담배 터는 소리도 절로 모집니다.

"거 원, 그래서 어떡허십니까! 더구나 연만하신 노인이!"

"그러닝개 그게 다아 팔자라네!"

또 역정을 낼 줄 알았더니, 그런 게 아니고 방금 아무 근심기 없던 얼굴 이 졸지에 해질 무렵같이 흐려들면서 음성은 풀기없이 가라앉습니다.

"……내가 이 사람아, 나락으루 해마닥 만 석을 추수를 받구, 돈으루두멫만 원씩을 차구 앉었넌 사람인디, 아 그런 부자루 앉어서 글씨, 가끔 이렇기 끄니를 굶네그려! 으응?"

과연 1년 추수하는 쌀만 가지고도 밥을 해먹자면 백년 천년을 배불리 먹고도 남을 테면서, 그러나 이렇게 배고픈 때가 있으니, 곰곰이 생각을 하면 한심하여 팔자 탄식이 나오기도 할 겝니다.

"……여보게 이 사람아!…… 아 자네버텀두 날더러 팔자 좋다구 그러지?

그렇지만 이 사람아, 팔자가 존 게 다아 무엇잉가! 속 모르구서 괜시리 허 넌 소리지…… 그저 날 같언 사람은 말이네, 그저 도둑놈이 노적( 露積) 가리 짊어 져 가까버서, 밤새두룩 짖구 댕기는 개, 개 신세여! 허릴없이 개 신세여!……"

윤직원 영감은 잠잠히 말을 그치고, 담배연기째 후루루 한숨을 내쉬면서, 어디라 없이 한눈을 팝니다.

거상에 짜증난 얼굴이 아니면, 불콰하니 마음 편안한 얼굴, 호리를 다투는 뜩뜩한 얼굴이 아니면, 남을 꼬집어 뜯는 전접스런 얼굴, 그러한 낯꽃만 하고 지내는 이 영감한테 이렇듯 추레하니 침통한 기색이 드러날 적이 있다는것은 자못 심외라 않을 수 없읍니다.

돈을 흥정하는 저자에서 오고가고 하는 속한일 뿐이지, 올챙이로야 어디 그러한 방면으로 들어서야 제법 깊은 인정의 기미를 통찰할 재목이 되나요.

그저 백만금의 재물을 쌓아놓고 자손 번창하겠다, 수명장수, 아직도 젊은 놈 여대치게 저엉정하겠다, 이런 천하에 드문 호팔자를 누리면서도, 근 천 이 질질 흐르게시리 밥을 굶네, 속이 상하네, 개 신세네 하고 풀 죽은 기색으로 탄식을 하는 게, 이놈의 영감이 그만큼 살고 쉬이 죽으려고 청승을 떠는가 싶어 얼굴이 다시금 치어다보일 따름이었습니다.

8. 常平通寶[상평통보] 서푼과 올챙이는, 윤직원 영감이 자기가 자청해서 자기 입으로 개라고 하니, 차라리 그렇거들랑 어디 컹컹 한바탕 짖어보라고 놀리기나 하고 싶습니다. 그렇 지만 그런 버릇없는 농담을 할 법이야 있읍니까. 속은 어디로 갔던 좋은 말로다 자손이 번창하고 가운이 융성하게 되면, 집안 어른된 이로는 그런 근심 저런 걱정 노상 아니할 수도 없는 것인즉, 그걸 가지고 과히 상심할 게 없느니라고 위로를 해줍니다.

"아, 여보소?……"

윤직원 영감은 남이 애써 위로해주는 소리는 귀로 듣는지 코로 맡는지, 종시 우두커니 한눈을 팔고 앉았다가, 갑자기 긴한 낯으로 고개를 내밀면서 "…… 자네, 사람 죽었을 때 염(殮)허넝 것 더러 부았넝가?"

하고 묻습니다. 자기딴에는 따로이 속내평이 있어서 하는 소리겠지만, 이건 느닷없이 송장 일곱 매 묶는 이야기가 불쑥 나오는 데는, 등이 서늘하고, 그다지 긴치 않기도 했을 것입니다.

"더러 부았으리…… 그런디 말이네…… "윤직원 영감은 올챙이가 이렇다저렇다 얼른 대답을 못하고 우물우물 하는것을 상관 않고 자기가 그 뒤를 잇습니다.

"……아, 우리 마니래(마누라)가 작년 정월이 죽잖있넝가?"

"네에! 아 참, 벌써 그게 작년 정월입니다그려! 세월이 빠르긴 허군!

……"

"게, 그때, 수험을 헌다구, 날더러두 들오라구 허기에, 시쳇방으를 들어가잖있 덩가. 들어가서 가만히 보구 섰으닝개, 수의를 죄다 갈어 입히구 나서 넌 일곱 매를 묶기 전에, 어따 그놈의 것을 무어라구 허데마는…… 쌀 한 숟가락을 떠서 맹인 입으다가 놓는 체허면서 천 석이요오 허구, 두 숟가락 떠 느 먼서 2천 석이요오 허구, 세 숟가락 떠느먼서 3천 석이요오 허구, 아 이런담 말이네!…… 그러구 또, 시방은 쓰지두 않넌 옛날 돈 생평 통보( 常平通寶) 한푼을 느주먼서 천 냥이요오, 두푼 느주먼서 2천 냥이요오, 스푼 느주먼서 3천 냥이요오, 이러데그려!"

"그렇지요! 그게 다아…… "올챙이는 비로소 윤직원 영감의 말하고자 하는 속을 알아차렸대서, 고개를 까 댁 까 댁 맞장구를 칩니다.

"……그게 맹인이 저승길 가면서 노수두 쓰구, 또 저승에 가서두 부 자루 잘 지내라구 그리잖습니까?"

"응 그리여. 글씨 그런 줄 나두 알기넌 알어. 또, 우리 어머니 아버지 때두 다아 보구 그리서, 츰으루 보덩 건 아니지. 그러닝개 츰 귀 경 히 였다 넝게 아니라, 내 말은 그런 말이 아니구…… 아니 글씨 여보소, 우리 마니래 만 히여두 명색이 만석꾼이 집 여편네가 아닝가? 만석꾼이…… 그런디 필경 두 다리 쭈욱 뻗구 죽으닝개넌 저승으루 갈라먼서, 쌀 게우 세 숟가락 허구, 돈 엽전 스푼허구, 게우 고걸 각구 간담 말이네그려. 응? 만석꾼이가 죽어 저승 으 루 가먼서넌 쌀 세 숟가락에, 엽전 스푼을 달랑 얻어각구 간담 말이여!……"

올챙이는 자못 엄숙해하는 낯으로 고즈너기 앉아 듣고 있고, 윤직원 영감은 뻐금뻐금 한참이나 담배를 빨더니, 후유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말끝을 다시 잇댑니다.

"게, 그걸 보구서 고옴곰 생각을 허닝개루, 나두 한번 눈을 감구 죽어지 먼 벨수읎이 저렇기 쌀 세 숟가락허구 엽전 스 픈허구, 달랑 고걸 읃어 각 구 저승 으 루 가겄거니!…… 그럴 것 아닝가? 머, 나라구 무덤을 죄선만허게 파구서, 그 속으다가 나락을 수천 석 쟁여주며, 돈을 수만냥 딜이띠려 주겄넝가? 또오, 그런대두 아무 소용 읎넌 짓이구…… 그렇잖엉가?"

"허허, 다아 그런 게지요!"

"그렇지? 그러니 말이네. 아, 내 손으루 만석을 받구, 수만 원을 주물르던 나두, 죽어만지먼 별수 읎이 쌀 세 숟가락허구, 엽전 달랑 스푼 얻어 각 구 저승으루 갈 테먼서 말이네…… 글씨 그럴라먼서 왜 내가 시방 이 재산을 지키니라구 이대두룩 악을 쓰구, 남안티 실인심허구, 자식 손자 놈덜 안티 미움 받구, 나 쓰구 싶은 대루, 나 지내구 싶은 대루 못 지내구 이러넝고!

응? 그 말뜻 알어들어?"

"네네…… 허허, 참 거…… ""그러나마, 그러나마 말이네…… 내가 앞으루 백년을 더 살 것잉가? 50년 을 더 살 것잉가? 잘 히여야 한 10년 더 살다가, 두다리 뻗을 티먼서. 그러니, 나 한번 급살맞어 죽어뻬리먼 아무것두 모르구 다아 잊어뻬릴 년의 세상…… 그런디 글씨, 어쩌자구 내가 이렇기 아그려쥐구 앉어서, 돈 한 푼 에버 얼벌 떨구, 뭇 놈년덜 눈치 코치 다아 먹구, 늙발에 호의호식, 평안히 못 지내구…… 그것뿐잉가? 게다가 한푼이라두 더 못 뫼야서 아등아등 허구…… 허니, 원 내가 이게 무슨 놈의 청승이며, 무슨 놈의 지랄짓잉고오? 이런 생객이 가끔, 그 뒤버틈은 들더람 말이네그려!"

윤직원 영감으로 앉아, 그런 마음을 먹고 이런 소리를 함부로 하다께, 올챙이의 소견이 아니라도, 이건 정말 죽으려고 마음이 변했나 봅니다.

주객이 잠시 말이 없고 잠잠합니다. 올챙이는 무어라고 위로를 해야겠어서 말긋말긋 윤직원 영감의 눈치를 살핍니다.

아무래도 노망이 아니면 환장한 소린 것 같은데, 혹시 그게 정말이어서, 이 놈의 영감태기가, 자아 여보소, 나는 인제는 재산이고 무엇이고 죄다 소 용 없네…… 없으니, 자아 이걸 가지고 자네나 족히 평생을 하소…… 이렇게 선뜻 몇만 원 집어주지 말랄 법도 노상 없진 않으려니 싶어( 싶 다기보다도) 그렇게 횡재를 했으면 좋겠다고 다뿍 허욕이 받쳐서, 올챙이는 시방 궁상으로 부른 헛배가 가뜩이나 더 부르려고 하는 판입니다. 눈에 답신 고이도록 보 비위를 해줄 필요가 그래서 더욱 간절했던 것입니다.

"영감님?"

"어이?"

부르는 소리도 은근했거니와 대답소리도 다정합니다.

"지가 꼬옥 영감님께 한가지 권면해 드릴 게 있읍니다!"

"권면?"

"네에, 다름이 아니라…… ""아니, 자네가 시방 또, 은제치름 날더러 저 무엇이냐, 핵교 허 넌 디다가 돈 기부허라구, 그런 권면헐라구 그러잖넝가? 그런 소리거덜랑, 이 사람 아애여 말두 내지두 말소!"

이렇게 황망히 방색을 하는 것이, 윤직원 영감은 어느덧 꿈이 깨고, 생시의 옳은 정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미상불 여태까지 그 가라앉은 침통한 목소리나 암담한 안색은 씻은 듯이 어디로 가고 없고, 활기 있는 여느때의 그의 얼굴을 도로 지니고 앉았 읍니다.

"아니올시다! 원…… "올챙이는 고만 속으로 떡심이 풀리고 입이 헤먹으나, 그럴수록이 더욱 잘건 사를 물어야 할 판이어서, 흔감스럽게 말을 받아넘깁니다.

"천만에 말씀이지, 그때 한번 영감이 안되겠다구 하신 걸, 또 말을 낼 리가 있읍니까? 그게 무슨 그대지 유익하신 일이라구…… 실상 그때 그 말씀을 한 것두 달리 그런 게 아니랍니다. 다아 학교라두 하나 만드시면 신문 에두 추앙이 자자할 것이구, 또오 동상두 서구 할 테니깐, 영감님 송덕이 후세에 남을 게 아니겠다구요? 그래서 저두 머, 지낼말루다가 한번 말씀을 비쳐 본 거지요…… 사실 또 생각하면, 괜히 돈 낭비나 되지, 그게 그리 신통한 소일두 아니구말구요!"

"신통이구 지랄이구 이 사람아, 왜 글씨 제 돈 디려가먼서 학교를 설시 허네 무얼 허네, 모두 남 존 일을 헌담 말잉가? 천하 시러베 개아덜 놈덜이지…… 인제 보소마넌, 그런 놈덜은 손복을 히여서, 오래잔히여 박적을 차구 빌어먹으러 댕길 티닝개루, 두구 보소!"

과연 윤직원 영감은 환장한 것도 아니요, 노망이 난 것도 아니요, 정신이 초랑 초랑 합니다. 아마 아까 하던 소리는 잠꼬댈시 분명합니다. 따라서 올챙이에게는 미안하나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올챙이는 윤직원 영감의 비위를 맞추자던 것이 되레 건드려 논 셈이 되었고 본즉, 땀이 빠지도록 언변을 부려가면서, 공공사업에 돈을 내는게 불가한 소치를 한바탕 늘어놓습니다. 그러고 나서 비로소 처음 초를 잡다가 만 이야기를 다시금 꺼내던 것입니다.

"참 지가, 하루 이틀 영감님을 뫼시구 지내는 배가 아니구, 그래 참 저렇게 상심이나 하시구, 그런 끝에 노인이 궐식이나 하시구, 그리시는 걸 뵙기가 여간만 민망스런 게 아니예요. 저두 늙은 부모가 있는 놈인데, 남의 댁어 룬이라 구 그런 근경 못 살피겠읍니까?…… 그래 제깐에는 두루 유념을 하구 지내지요. 이건 참 입에 붙은 말씀이 아니올시다!"

"그렁개루 설렁탕 사준다구 허넝가?"

"원! 영감두!…… 이거 보세요, 영감님?"

"왜 그러넝가?"

"지가 꼬옥 맘을 두구서 권면하는 말씀이니, 저어 마나님 한분 얻으시는게 어떠세요?"

윤직원 영감은 대답 대신 히물쭉 웃으면서 눈을 흘깁니다. 네 이놈 괘씸 은하 다마는 그럴 듯하기는 그럴 듯하구나…… 이 뜻이지요.

올챙이도 히죽히죽 웃으면서, 없는 모가지를 늘여가지고 조촘 한 무릎 다가앉습니다.

"거, 아직 기운두 좋시구 허니, 불편허신 때 조석 마련이며, 몸 시중이며, 살 뜰히 들어주실 여인네루, 나이나 좀 진득헌 이를 하나 구허셔서, 이 근처 가까운데다가 치가나 시키시구 허시면, 아 조옴 좋아요? 허기야 따님까지와 서 기시구 허니깐, 머어 범연하겠읍니까마는, 그래두 잘하나 못하나 마나님이라 구 이름지어 두구 지내시면, 시중드는 것두 훨씬 맘에 드실 것 이구, 또오 아직 저엉정하시겠다 밤저녁으루 적적하시면 내려가서 위로두 더러 받으시구, 헤헤!……"

"네라끼 사람!"

올챙이의 말조가 매우 근경속이 있고, 더우기 그 끝엣 한 대문은 썩 실감적이고 보매, 윤직원 영감은 눈을 흘기고 히물쭉 웃는 것만으로는 못 견디겠던지, 담뱃대를 뽑는 입에서 지르르 침이 흘러내립니다.

"헤헤…… 거, 좋잖습니까?…… 그러니 여러 말씀 마시구, 마나님 구 허실 도리를 하십시요, 네?"

"허기사 이 사람아!……"

윤직원 영감은 마침내 까놓고 흉중을 설파합니다.

"……자네가 다아 참, 내 근경을 알어채구서, 기왕 말을 냈으니 말이지, 낸 들 왜 그 데시기에 서캐 실은 예편네라두 하나 있으먼 졸 생각이 읎겄넝가?…… 아, 그렇지만, 그렇다구 내가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즘잔찮게 여편네 읃어 달라구 말을 낼 수야 없잖넝가? 그렇잖엉가?"

"아, 그야 그러시다뿐이겠읍니까! 그러신 줄 저두 아니깐…… ""글씨, 그러니 말이네…… 그런 것두 다아 내가 인복이 읎어서 그럴 티지만, 거 창식이허며 또 종수허며 그놈덜이 천하에 불효 막심헌 놈덜이니! 마구 잡어뽑을 놈덜이여. 웨 그렁고 허먼, 아 글씨, 즈덜은 네기, 첩년을 모두 둘씩 셋씩 읃어서 데리구 살먼서, 나넌 그냥 그저 모르쇠이네그려!…… 아, 그놈덜이 작히나 사람 된 놈덜이머넌 허다못히서 눈 찌그러진 예 편네라 두…… 흔헌 게 예편네 아닝가? 허니 눈 찌그러지구, 코 삐틀어진 예 편네라 두 하나 줏어다가 날 주었으먼, 자네 말대루 내가 몸 시중두 들게 허구, 심심파적두 허구 그럴 게 아닝가? 그런디 그놈덜이, 내가 뫼야 준 돈은 각 구서 즈덜만 밤낮 그 지랄을 허지, 나넌 통히 모른체를 허네그려! 그러니 그 놈덜이 잡아뽑을 놈덜 아니구 무엇이람 말잉가?"

속이 본시 의뭉하고, 또 전접스런 소리를 하느라고 그러지, 실상 알고 보면 혼자 지내는 게 작년 가을 이짝 일년지간이고, 그전까지야 첩이 끊일 새가 없었더랍니다.

시골서 살 때에 첩을 둘씩 얻어 치가를 시키고, 동네 술에미가 은근 하게있으면 붙박이로 상관을 하고 지내고, 또 촌에서 계집애가 북슬북슬한 놈이 눈에 뜨이면 다리 치인다는 핑계로 데려다가 두고서 재미를 보고, 두루 이러던 것은 고만두고라도, 서울로 올라와서 지난 10년 동안 첩을 갈아센 것만 해도 무려 10여 명은 될 것입니다.

기생첩이야, 가짜 여학생첩이야, 명색 숫처녀첩이야, 가지각색이었지요.

모두 1년 아니면 두서너 달씩 살다가 갈아세우고 하던 것들입니다.

그래오던 끝에, 재작년인가는 좀 그럴 듯한 과부 하나를 얻어 바로 집 옆집을 사가지고 치가를 시키면서 쑬쑬이 탈없이 1년 넘겨 이태 가까이 재미를 본 일이 있었읍니다.

나이는 서른댓이나 되었고, 인물도 그리 추물은 아니고, 신식 계집들처럼 되바라지지도 않고, 그리고 근경속 있고 솜씨 얌전하고 해서, 참 마침 감이었 읍니 다.

윤직원 영감은 제가 그대로 병통없이 말치없이, 자기 종신토록 자알 살아만 주면 마지막 임종에 가서, 그 집하고 또 땅이나 벼 백석거리하고 떼어주 어, 뒷고생 않게시리 해주려니, 이쯤 속치부를 잘 해두었었읍니다.

아 그랬는데 글쎄, 그 여편네만은 결코 그러지 않으려니 했던 게, 웬걸,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남의 첩데기짓을 하느라고, 끝내는 요게 샛밥을 날름날름 집어먹다가, 필경은 이웃집에 기식하고 있는 젊은 보험 회사 외교원 양반과 찰떡같이 배가 맞아가지고는 어느날 밤엔가 패물이야 옷 나 부랑이를 말끔 쓸어가지고 야간도주를 해버렸었읍니다.

늙은 영감한테 매달려, 얼마 아니 남은 인생을 멋없이 흐지부지 늙혀야 하느냐, 혹은 내일은 삼수갑산을 갈값에 세파트 같은 젊은 놈과 붙어서 지내야 하느냐 하는 그 우열과 이해의 타산은 제각기 제나름이겠지만, 윤직 원 영감은 그걸 보고서, 그년이 제 복을 제가 털어버렸다고, 그년이 인제 논 두 덕 죽음 하지야고, 두고두고 욕을 했읍니다.

그 여편네의 신세를 가긍히 여겨 그랬다느니보다, 보물은 아니라도 썩 마음에 들던 손그릇이나 하나 잃어버린 것같이 신변이 허전하고, 그래 오 기 가나서 욕으로 화풀이를 했던 것이지요.

아뭏든 한번 그렇게, 알뜰한 첩에 맛을 들인 뒤로는 여느 기생첩이나 가짜 여학생 첩이나 그런 것은 다시 얻을 생각이 없고, 꼭 고런 놈만 마침 골라 서전대로 재미를 보고 싶습니다.

그렇잖았으면야 그게 작년 가을인데 버얼써 그동안 둘은 들고 나고 했지, 그대로 지냈을 리가 있나요.

첩을 얻어들이는 소임으로, 몇해 단골 된 곰보딱지 방물장수가, 그 운덤에 허파에서 바람이 날 지경이지요. 일껏 골라다가는 선을 뵐라치면 트집을 잡아가지 골랑 탁탁 퇴짜를 놓고, 그러면서 속히 서둘지 않는다고 성화를 대곤 해서요.

윤직원 영감으로야 1년짝이나 혼자 지내고 보니, 급한 성미에 중매가 더디다고 야단을 치는 게 무리도 아니요, 그러니 자연 늙은이다운 농엄이나 심술로 다가 첩 아니 얻어주는 맏아들 창식이 윤주사나 큰손자 종수가 밉고, 미우니까 전접스런 소리며 욕이 나올밖에요.

저희들은 마음대로 골라잡아 마음대로 데리고 살면서, 그러니까 마음만 있게 되면 썩 좋은 놈을 뽑아다가 부친(또는 조부의) 봉친거리로 바칠 수가 있을 테련만, 잡아 뽑을 놈들이라 범연하여 그래 주지를 않는대서요.

윤직원 영감은 혹시 무슨 다른 일로라도, 아들 윤주사나 큰손자 종수를 잡아다가 앉혀놓고 욕을 하던 끝이면 으례껏 "야, 이 수언 불효막심헌 놈덜아! 그래, 느놈덜은 이놈덜, 밤낮 지집 둘셋 읃어놓구…… 그러먼서 이 늙은 나넌 이렇기…… 죽으라구 내뻬려 두어 야 옳담 말이냐. 이 수언 잡아뽑을 놈덜아!"

이렇게, 충분히 노골적으로 공박을 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시방 올챙이를 데리고 앉아서 그쯤 꼬집어 뜯는 것은, 오히려 점잖은 편이라 하겠읍니다.

올챙이는 보비위삼아 생색을 내자던 노릇이라, 구하다 못하면 썩은 나무 토막이라도 짊어져다 들이 안길값에, 기왕 낸 말이니 입맛 당기게시리 뒷 갈무리를 해두어야만 할 판입니다.

"지가 불일성지루, 썩 그럴듯한 놈 아니 참 저, 마나님 하나를 방구어 보지요…… 실상은 말씀이야 오늘 저녁에 첨으루 냈지만, 그새두 늘 그런 유념을 하구설랑, 눈여겨 보기두 허구, 그럴 만한 자리에 연통두 해보구 그래 왔 더랍니다!"

"뜻이나마 고맙네만, 구만두소, 원…… "말은 그렇게 나왔어도, 실눈으로 갠소롬하니 웃는 눈웃음하며, 헤 벌어지는 입하며, 다뿍 느긋해하는 게 갈데없읍니다. 너 같으면 발이 넓어, 먹는 골도 여러 갈래고, 또 게다가 주변도 있고 하니까, 쉽사리 성사를 하리라, 이렇게 미더운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괜히 그리십니다! 저 하는 대루 가만 두고 보십시요, 인제…… ""더군다나 거 지상(기생)이니 여학생이니, 그런 것이나 어디 가서 줏어 올라구? 돈이나 뜯어낼라구 허구, 검방지기나 허구, 밤낮 샛밥이나 처 먹구…… 그것덜은 쓰겄덩가, 어디…… ""못 쓰구 말구요! 전 그런 것들은 애여 천거두 않습니다. 인제 보십시요 마는, 나이 어쨌든 진드윽허니 한 오십 먹은 과 부루 다가…… ""네라 끼 사람! 쉰살 먹은 늙은이를 데리다가 무엇이다 쓴다덩가!"

"허허허허…… 네네, 그건 지가 영감님 속을 떠보느라구 짐짓 그랬답니다. 허허 허허…… ""허! 그 사람 참…… ""허허 허허…… 헌데, 그러면 한 서른댓살이나, 그렇잖으면 사십이 갓 넘었던지…… ""허기사 너머 젊어두 못 쓰 겄 데마는…… ""네에, 알겠읍니다. 다아 제게 맽겨두구 보십시요. 나이두 듬지 익 허구, 생김새두 숫두루움허구, 다아 얌전스럽구 까리적구 살림 잘허구 근경속 있구…… 어쨌든지…… "마침 골목 밖에서 신문배달부의 요란스런 방울소리가 울려와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막고, 문득 긴장을 시켜 놓습니다. 호외가 돌던 것입니다.

사변(中日戰爭[중일전쟁])은 국지 해결이 와해가 되고 북지 사변으로부터 전단이 차차 중남지로 퍼지면서 지나사변에로 확대가 되어가고, 그에 따라 신문의 호외도 잦은 판입니다.

물론 호외 그것의 방울소리가 아무리 잦더라도, 여느 수재나 그런 것 이 라면 흥미가 오히려 무디어지는 수가 있지만, 이건 전쟁이라는 커다란 사변 인지라, 호외가 잦으면 잦을수록 사건의 확대와 진전을 의미하는 게 되어서, 사람의 신경은 더욱더욱 날이 서던 것입니다.

호외 방울소리에 말은 끊기고 주객은 다 잠잠합니다. 제가끔 사변 현실에 대한 제네의 인식능력을 토대삼아, 그 발전을 호외 방울소리에 의해서 제 마음대로 상상을 하고 있던 것입니다.

"어디 또 한군디 함락시킸넝개비네, 잉?"

이윽고 방울소리가 멀리 사라지자 윤직원 영감이 비로소 침묵을 깨뜨리던것 입니다.

"글쎄요…… 아마 그랬는 게지요."

"거 머, 청국이 여지읎넝개비데? 워너니 즈까짓 놈덜이 어디라구, 세계 서두 첫찌 간다넌 일본허구 쌈을 헐라구 들 것잉가?"

"그렇구말구요!…… 지나병정이라껀 허잘것없읍니다. 앞에서 총소리가 나면 총칼 내던지구서 도망뺄 궁리버텀 하구요…… 그래서 지나는 병정이 두 가지가 있답니다. 앞에서 전쟁하는 병정이 있구, 또 그놈들이 못 도망가게하느라 구 뒤에서 총을 대구 지키는 병정이 있구…… 도망을 가는 놈이 있으면 그대루 대구 쏘아 죽인다니깐요!"

"원, 저런 놈덜이!…… 아니 그 지랄을 히여가먼서 무슨 짓이라구 쌈은 헌다 넝가? 응? 들으닝개루, 이번으두 즈가 먼점 찝적거리서 쌈이 되 얐다네 그려?"

"그렇죠. 그놈들이 다아 어리석어서 그래요!"

"아니 글씨, 좋게 호떡 장수나 히여먹구, 인죄견 장수나 히여먹을 일이지, 어디라구 글씨 덤비냔 말이여!"

"즈이는 별조 없어두, 따루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랬다나바요?"

"믿다니?"

"아라사를 찜믿구서 그랬다구요!"

"아라사를?"

"네에…… 그것두 달리 그랬으꼬마는, 아라사가 쏘삭쏘삭해서, 지나의 장개석 일 충동일 시켰대요. 이애 너 일본하구 싸움 않니? 아니 해? 이 병신 바보 녀석아, 그래 그렇게 꿈쩍 못해?…… 싸움해라, 싸움해. 하기만 하면내가 뒤에서 한몫 거달아 줄 테니, 응? 아무 걱정 말구서 덤벼들어라. 덤벼 서 싸움만 하란 말이다. 하면 다아 좋은 수가 있으니…… 이렇게 충동일 놀았 대요!"

"오옳지, 아라사가 그랬다!…… 그런디 아라사가 왜?…… 저 거시기 그때 일아 전쟁( 日俄戰爭)에 진 그 원혐으루? 그 분풀 이루…… ""아니지요. 그런 게 아니구, 아라사가 지나를 집어삼킬 뱃심으루 그랬지요!"

"청국을 집어먹을 뱃심이라?…… 아니, 그거야 집어먹자구 들라면, 차라리 청국허구 맞붙어서 헌다넝 건 몰라두…… ""그건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아라사루 말허면 아따 저 무엇이냐, 사회주의를 하는 종족이거든요!"

"거참 아라사놈덜은 그렇다데그려…… 그놈의 나라으서넌 부자사람의 것을 말끔 뺏어다가 멋이냐 농군놈덜허구 노동꾼놈덜허구 나눠주었다지?"

"그렇지요!"

"허! 세상 참…… ""그런데, 아라사는 즈이만 그걸 할 뿐 아니라, 지나두 즈이허구 한판 속을 만들려구 들거든요!"

"청국을?…… 청국두 그놈의 사회주의라냐, 그 부랑당 속을 맨들어?……

그게 무어니 무어니 하여두 이 사람아, 알구 보닝개루 바루 부랑당 속 이지 별것이 아니데그려?…… 자네는 모르리마넌 옛날 죄선두 활빈당( 活貧黨) 이라넝 게 있었너니. 그런디 그게 시체 그놈의 것 무엇이냐 사회주의허구 한 속 이 더니…… ""저두 더러 이야긴 들었읍니다."

"거 보소 그런디 활빈당이라께 별것 아니구, 그냥 부랑당이더니, 부랑당…… 그러닝개루 그놈의 것두 부랑당 속이지 무어여? 그렇잖엉가?"

"그렇죠! 가난헌 놈들이, 있는 사람의 것을 뜯어먹자는 속으루 들어선 일반이니까 요!"

"그렇구말구. 그게 모다 환장속이여. 그런 놈덜이, 즈가 못사닝게루 환장 속 으루 오기가 나서 그런거던…… 그런디 무엇이냐, 그 아라사놈덜이 청국두 즈치름, 그런 부랑당 속을 뀌미러 들었담 말이지?"

"그렇죠…… 허기야 지나뿐이 아니라, 온 세계를 그리자구 든다니까요!"

"뭐이? 그러먼, 우리 죄선두?…… 아니, 죄선서야 그놈덜이 사회주의 허다가 말끔 잽히가서 전중이 살구서, 시방은 다아 너끔허잖덩가?"

"그렇지만, 만약 지나가 그 속이 되구 보면 재미가 없죠. 머, 죄선 뿐이아니라 동양천지가 모두 재미 없읍니다!"

"참 그렇기두 허겄네! 청국지어죄선이라, 바루 가까우닝개루…… 거참 그렇겄네! 그렇다먼 못쓰지! 못쓰구말구…… 아, 이 사람아, 다런 사람두 다런 사람이지만, 나버텀두 어떻게 헌담 말잉가? 큰일나지, 큰일나…… 재전에 그놈의 부랑당패를 디리읎이 치루던 일을 생각허먼 시방두 몸서리가 치이구, 머어 치가 떨리구 허넌디, 아니 그 경난을 날더러 또 저끄람 말이여?…… 안될 말이지! 천하 읎어두 안될 말이지…… 어디를! 이놈덜…… 죽일 놈덜!"

눈앞에, 실지로 원수를 대하는 듯, 윤직원 영감은 마구 흥분하여 냅다 호통을 하던 것입니다.

"아니 그러니깐…… ""아 글씨, 누가 즈더러 부자루 못살래서 그리여? 누가 즈것을 뺏었길래 그리여? 어찌서 그놈덜이 그 지랄이여?…… 아, 사람사람이 다아 제가끔 지가 타구난 복대루, 부자루두 살구, 가난허게두 살구, 그러기루 다아 하 눌 이 마련 헌 노릇이구, 타구난 팔잔디…… 그래, 남은 잘살구 즈덜은 못 산다구, 생판 남의 것을 뺏어다가 즈덜 창사구(창자)를 채러 들어? 응?…… 그게 될말이여?…… 그런 놈덜은 말끔 잡어다가 목을 숭덩숭덩 쓸어 죽여야지!…… 아 이 사람아, 만약에 세상이 도루 그 지경이 되구 보먼 그 노릇을 어쩐 담말잉가? 응?"

"허허, 그런 걱정은 아니허셔두 좋습니다!"

"안히여두 좋다?"

"그럼요!"

"그렇다면 다행 이 네마 넌…… ""시방 지나를 치는 것두 다아 그것 때문이랍니다. 장개석이가, 즈이 망할 장본인 줄은 모르구서, 사회주의하는 아라사의 꼬임수에 넘어가지 굴랑…… 꼭 망할 장본이지요…… 영감님 말씀대루 온통 부랑당 속이 될테니깐 두루…… ""그렇지! 망허다뿐잉가?…… 허릴읎이 옛날으 부랑당패 한참 드세던 죄선뽄새가 되구 말 티닝개루…… ""그러니깐 말하자면, 시방 지나가 아라사의 꼬임에 빠져서 정신을 못 채리 구는 함부루 납뛰는 셈이죠. 그래서 그걸 가만 둬 둬선 청국 즈이두 망하려니와 동양이 통으루 불안하겠으니깐, 이건 이래서 안되겠다구 말씀 이지요, 안되겠다구, 일본이 따들구 나서가지굴랑 지나를 정신을 채리게 하느라 구, 이를테면 따구깨나 붙여가면서 훈계를 하는 게 이번 전쟁이랍니다!"

"하하하! 오옳지, 옳여! 인제 보닝개루 사맥이 그렇게 된 사맥이네그려!

거참 그럴 듯허구만! 거, 잘허넌 노릇이여! 아무렴, 그리야 허구말구…… 여부가 있을 것잉가!…… 그렇거들랑 그 녀석들을 머, 약간 뺌사 대기( 따귀) 만 때릴 게 아니라, 반주검을 시켜서, 다실랑 그런 못된 본을 못 보게시리 늑신 두들겨 주어야지, 늑신…… 다리뻑다구를 하나 부질러 주어두 한무 내하지, 머…… 어, 거 참 장헌 노릇이다…… 그러닝개루 이번 일은 여늬, 치구 뺏구 허넌 그런 전쟁허구두 내평이 달르네그려?"

"그야 다르죠!"

"참 장헌 노릇이여!…… 아 이 사람아 글씨, 시방 세상으 누가 무엇이 그리 답답히여서 그 노릇을 허구 있겄넝가?…… 자아 보소. 관리허며 순사를 우리 죄선으루 많이 내보내서, 그 숭악헌 부랑당놈들을 말끔 소탕시켜 주구, 그리서 양민덜이 그 덕에 편히 살지를 않넝가! 그러구 또, 이번에 그런 전쟁을 히여서 그 못된 놈의 사회주의를 막어내주니. 원 그렇게 고맙구 그렇게 장헐 디가 어디 있담 말잉가…… 어 참, 끔찍이두 고맙구 장헌 노릇이네!…… 게 여보소, 이번 쌈에 일본은 갈디읎이 이기기넌 이기렷대잉?"

"그야 여부 없죠! 일본이 이기구말구요!"

"그럴 것이네. 워너니, 일본이 부국갱병허기루 천하 제일이라넌디…… 어참, 속이 다 후련허다."

이야기에 세마리가 팔렸던 올챙이가 정신이 들어, 시계를 꺼내 보더니, 볼일이 더디었다고 총총히 물러갔읍니다. 그는 물러가면서, 잘 유념을 하여 쉬이 그 마나님감을 골라다가 현신시키겠다고, 자청 다짐을 두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9. 節約[절약]의 道樂精神[ 도락 정신] 올챙이를 보내고 나서 윤직원 영감은 퇴침을 돋우 베고, 보료 위에 가 편안히 드러눕습니다.

침침한 13와트 전등불에 담배연기만 자욱하니, 텅 빈 삼칸 장방 아랫목에가 서 허연 영감 하나만 그들먹하게 달랑 드러눈 것이, 어떻게 보면 징그럽 기도 하고, 다시 어떻게 보면 폐허(廢墟)같이 호젓하기도 합니다.

윤직원 영감은 멀거니 드러누웠자매 심심해서 못견디겠읍니다. 춘심이 년이나 어서 왔으면 하겠는데, 저녁 먹고 곧 오마고 했으니까, 오기는 올 테지만, 고년이 이내 뽀로로 오는 게 아니라, 까불고 초라니짓을 하느라고, 이렇게 더디거니 싶어 얄밉습니다.

대복이도 까맣게 기다려집니다. 간 일이 궁금도 하거니와, 여덟신데 오래 잖아 라디오를 들어야 하겠으니, 그 안으로 돌아와야 하겠읍니다.

저녁을 몇술 뜨다가 말아서 속도 출출합니다. 이런 때에 딸이고 손자 며느리고 누가 하나 밥상이라도 들려 가지고 나와서, 진지 잡수시라고 권을 했으면, 못이기는 체하고 달게 먹을 텐데, 그런 재치 하나 부릴 줄 모르는 것 들이거니 하면 다시금 화가 나기도 합니다.

시장한 깐으로는 삼남이라도 내보내서 우동이라도 한 그릇 불러다가 후루룩 쭉쭉 먹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니까는 어금니 밑에서 사뭇 신 침이 괴어 나오고 가슴이 쓰리기는 하지만, 집안 애들이 볼까 보아 체수에 차마 못합니다.

누가 먼저 오나 했더니 대복이가 첫찌(?)를 했읍니다.

운동화에 국방색 당꾸바지에, 검정 저고리에, 오그라붙은 칼라에, 배애배 꼬인 검정 넥타이에, 사년 된 맥고자에, 볕에 탄 얼굴에, 툭 불거진 광대뼈에, 근천스럽게 말라붙은 안면 근육에, 깡마른 눈정기에…… 이 행색과 모습은 백만장자의 지배인 겸 서기 겸 비서 겸, 이러한 인물이라기는 매우 섭섭해 보입니다.

차라리 살림살이에 노상 시달리는 촌의 면서기가, 그날 출장을 나갔다가 다뿍 시장해가지고 허위단심 집엘 마침 당도한 포우즈랬으면 꼬옥 맞겠 읍니다. 실상 또 면서기 출신이 아닌 것도 아니구요.

대복이가 방으로 들어만 섰지 미처 무어라고 인사도 하기 전에 윤직원 영감은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히였넝가?"

하고 묻습니다. 가차압을 나가는 집달리를 따라갔으니 물어보나마나 알 일 이지마는 성미가 급해 놔서 진득이 저편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지를 못 합니다.

"얘애, 다아 잘…… "대 복이는 늘 치어난 훈련으로, 제가 복명을 하기보다 주인이 묻는 대로 대답을 하기 위하여 넌지시 꿇어앉아 다음을 기다립니다.

"무엇으다가 붙있넝가?"

"마침 광으가 나락이 한 오십 석이나 있어서요…… ""나락? 거 참 마침이구만!…… 그리서 그놈으다가 붙있넝가?"

"얘애."

"잘힜네! 인제 경매헐 때 그놈을 우리가 사머넌 거 갠찮얼 것이네! 나락이닝개루…… ""그렇 잔히여 두 그럴라구 다아 그렇게 저렇게 마련을…… "워너니 대복이가 누구라고, 그걸 범연히 했을 리가 없던 것입니다.

꿩먹고 알먹고 하는 속인데, 윤직원 영감은 채무자의 재산을 가차압을 해놓고, 기한이 지난 뒤에 경매를 하게 되면, 속살로 그것을 사가지고, 그것에서 다시 이문을 봅니다. 그 맛이 하도 고소해서 언제든지 기회만 있으면놓치지를 않습니다.

"에 거, 일 십상 잘되얐네!…… 그리서, 그분네, 술대접이나 좀 힜넝가?"

"돈 10원어치나 술을 멕있더니, 아마 그 값이 넉넉 빠질라넝개비라우!"

"것두 잘힜네! 무엇이구, 멕이먼 되는 세상잉개루…… 그럼 어서 건너가서 저녁 먹소. 시장겄네…… 저 거시기…… 아니 그만두구, 어서 건너가서 저녁 먹소. 이따가 이얘기허지!"

윤직원 영감은 아까 올챙이와 말이 얼린 만창상점의 수형조건을 상의 하려다가, 그거야 이따고 내일이고 천천히 해도 급하지 않대서, 대복이의 시장하고 피곤할 것을 여겨 그만두던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으로는 이문 속으로 탈이나 없고 할 경우면, 실상은 탈을 내는 일도 없기는 하지만, 더러 대복이를 위해 줄 만도 합니다. 대복이는 참으로 보 뱁니다. 차라리 윤직원 영감의 한쪽이라고 하는 게 옳겠지요.

성명은 전대복(全大福)인데, 장차에는 어떻게 될는지 기약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반평생을 넘겨 산 오늘날까지, 이름대로 복이 온전코 크고 하지는못 했 읍니다. 오히려 박복했지요.

윤직원 영감과 한고향입니다. 면서기를 5년 다녔고 그중 4년이나 회계원으로 있었읍니다.

꼼꼼하고 착실하고 고정하고 그러고도 사람이 재치가 있고, 이래서 윤직 원 영감의 눈에 들었읍니다. 그런 결과 윤직원 영감네가 서울로 이사해 올 때에, 자가용 회계원 겸 서무서기 겸 심부름꾼 겸 만능잡이로다가 이 사 짐과 한가지로 묻혀가지고 왔읍니다.

이래 10년, 대복이는 까딱없이 지내왔읍니다. 참말로 윤직원 영감한테 는 깎아 마췄어도 그렇게 손에 맞기는 어려울 만큼 성능(性能)이 두루 딱 딱 이로 만점 이었 읍니 다.

약삭빠르고 고정하고 민첩하고, 잇속이라면 휑하니 밝고…… 이러니 무슨 여부가 있을 리가 있나요.

가령 두부를 오늘 저녁에는 세 모만 사들여 보낼 예정이라면, 사는 마당에서는 두 모하고 반만 사고 싶습니다. 그러나 두부 반 모는 서울 장안을 온통 매고 다녀야 파는 데가 없으니까, 더 줄여서 두 모를 삽니다. 결국 2전 5리를 아끼려던 것이, 그 갑절 5전을 득했으니, 치부꾼으로 그런 규모가 어 디 있겠읍니까. 대복이라는 사람이 돈을 아끼는 그 솜씨가 무릇 이렇다는 일 롑니다. 진실로 얼마나 충실한 사람입니까.

그러나 그렇대서 사람이 잘다고만 하면, 그건 무릇 인간성을 몰각한 혐의가 없지 않습니다.

대복이가 가령 주인네 반찬거리로 세 모를 사들여 보낼 두부를 두 모 하고 반 모만 사고 싶다가, 반 모는 팔질 아니하니까 두 모를 사는 그 조화가 단지 돈 그것을 아끼자는, 즉 순전한 목적의식만으로만 그러던 건 아닙니다.

그는 돈이야 뉘 돈이 되었던, 살림이야 뉘 살림이 되었던, 그 돈을 졸략히쓰는 방법, 거기에 우선 깊은 취미를 가지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때문에, 두부를 세 모를 살 텐데 두 모 반을 못사서 두 모만 산 때라든지, 윤직원 영감의 심부름으로 동대문밖을 나가는데 갈 제는 걸어서 가고 올 제만 타고 와서 전차삯 5전을 덜 쓴 때라든지, 이러한 날은 아껴 쓰고 남긴 그 돈 5전을 연신 들여다보고 들여다보고 하면서 무한히 유쾌해 합니다. 그 돈 5전을 그렇다고 제 낭탁에다가 넌지시 집어넣느냐하면, 물론 절대로 없읍니다.

대복이는 그러므로, 가령 한 사람의 훌륭한 도락가(道樂家)로 천거 하더라도 결단코 자격에 손색이 없을 겝니다.

어떤 사람은, 가지각색 고서(古書)를 모으기에 재미를 붙입니다. 별 얄망궂은 책들을 다 모으지요.

어떤 사람은 화분 가꾸기에 재미를 들입니다. 올망졸망 화초들을 분에다가 심어놓고 그것을 가축하느라, 심지어 모필로다가 잎사귀에 앉은 먼지를 털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도락이 남이 보기에는 곰상스럽기나 했지 아무 소용도 없는 것 같지만, 그걸 하고 있는 당자들은 천하에도 없이 끔직스레 재미가 있읍니다.

마찬가지로, 돈을 쓰는데 요모조모로 아끼고 졸이고 깎고 해가면서 군것은 먼저 한낱도 안 붙게시리 씻고 털고 한 새말간 알맹이돈을 만들어 쓰곤 하는 대복이의 그 극치에 다다른 규모도, 그러니까 뻐젓한 도락이 아닐 수가 없 읍니다.

윤직원 영감과 대복이 사이에는 네 것 내 것이 없읍니다. 죄다 윤직원 영감의 것이요 대복이 것은 하나도 없어서 말입니다.

하기야 윤직원 영감은 대복이를 탁 믿고 월급이니 그런 것은 작정도 없이, 네 용돈은 네가 알아서 쓰라고 내맡겼은즉, 한 백만 원 집어 쓸 수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대복이에게 매삭 든다는 것이란 게 극히 적고도 겸하여 일정한 것 이어서, 담배 단풍표 서른 곽과(만약 큰달일라치면 31일날 하루는 모아 둔 꽁초를 피웁니다) 박박 깎는 이발삯 25전과, 목간삯 7전과 이런 것이 경 상비요, 임시비로는 가장 하길의 피복대와 10전 미만의 통신비가 있을 따름 입니다.

그는 그러한 중에서도 주인 윤직원 영감의 살림이나 사업에 드는 비용은 물론 이거니와, 그대도록 바닥이 맑아, 빠안히 들여다보이는 제 비용도, 가다간 용하게 재주를 부려서 뻐젓하니 절약을 해내곤 합니다.

가령 쉬운 예를 들자면, 이런 것도 있읍니다.

대복이는 한 달에 한번씩 반드시(!) 목간을 하는데, 그 비용은 물론 7 전입 니다. 비누를 쓰지 않으니까 꼭 7전 외에는 수건이나 해지면 해졌지, 다른 것은 더 들 게 없읍니다.

그런데 언젠가는 그 한 달에 한 번씩 하던 그 목간을 약간 늦추어, 한 달하고 닷새 즉 35일 만에 한번씩 해보았읍니다. 그렇게 하기를 여섯 번을 한 결과로는 매번 닷새씩 아낀 것으로 해서 일곱 달 동안에 여섯 번의 목간을 했고, 동시에 한 달 목간삯 7전을 절약하는 데 성공을 했읍니다.

이 성과를 거둔 날의 대복이는 대단히 유쾌했읍니다. 진실로 입신( 入神) 의 묘기( 妙技) 로 추앙해도 아깝지 않습니다.

고향에서는 그의 과히 늙지는 않은 양친이 윤직원 영감네 땅을 부쳐 먹고지내면서 그다지 고생은 않습니다.

아내가 고향에서 시부모를 섬기고 있었는데, 연전에 죽었고, 그래 대 복이는 시방 홀애빕니다.

죽은 아내가 불쌍하고, 시골 살림이 각다분하고, 홀애비 신세가 초라하고 하기는 하지만, 그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과연 복이 될는지 무엇이 될는지 아직 은 몰라도, 복이려니 하는 대망을 아뭏든 홀애비가 된 그걸로 해서 품을 수만은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대복이 그가 임자 없는 사내인 것과 일반으로 안에는 시방 임자 없는 여편네 서울아씨가 있어서, 우선 임자 없는 기집 사내가 주객이 되었다는 것이 가히 원칙적으로는 그 둘은 합쳐줄 조건이 되던 것입니다.

물론 실제란 놈은 언제고 원칙을 생색내주려 들지 않으니까, 그래서 대 복이의 대망도 장차 어떻게 될는지 모르기는 합니다.

첫째, 둘이서(아니 저쪽에서) 뜻이 있어야 하고, 윤직원 영감이 죽어 버리거나, 그렇잖으면 묵인을 해주거나 해야 하겠으니, 그것이 모두 미지수가 아니면 억지로다가 뛰어넘을 수는 없는 난관입니다.

가령 윤직원 영감이 막고 못하게 하는 것을 저희 둘이서만 배가 맞아서 살 잔즉 서울아씨의 분재받은 5백석거리가 따라오지 않을 테니, 그건 대 복이로 앉아서 보면 목적을 전연 무시한 결과라, 아무 의의도 없을 노릇입니다.

대복이라는 사람이 본시 계집에게 반하고 어쩌고 할 활량도 아니요, 반할 필요도 없기는 하지만, 그러니 더구나 목 움츠리에, 주근깨 바탕에, 납작 코에, 그런 빈대 상호의 서울아씨가 계집으로 하 그리 탐탁하다고 욕심이 날이치는 없읍니다.

다만 홀애비라는 밑천이 있으니까, 5백석거리로 도금(鍍金)한 과부라는 데에 오직 친화성(親和性)이 발견될 따름이고, 그게 대망의 촛점이지요.

그러니까 시방 대복이는 제일단의 문제로, 서울아씨가 저에게 뜻이 있으면하고 바랍니다. 만약 그렇기만 하다면 일이 한 조각은 성공이니까, 매우 기뻐 할 현상이겠읍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가령 서울아씨가 쫓아나와서, 제 허리띠에 목을 매고 늘어지더라도, 제이단의 난관인 윤직원 영감의 묵인이나 승낙이 없고 볼 것 같으면 알짜 5백석거리의 도금이 벗어져버린 서울아씨일 터인즉, 그는 단연코 그 정을 물리칠 것입니다.

몽글게 먹고 가늘게 싸더라도, 윤직원 영감이 인제 죽을 때는 단돈 몇 천원이라도 끼쳐줄 눈치요, 그것만은 외수가 없는 구멍인 것을, 잘못 하다가 그 구멍마저 놓쳐서는 큰 낭패이겠으니 말입니다.

"전서방님 오싰넌디 저녁진지상 주어 기라우…… "삼남이가 안방 대뜰로 올라서면서 떼어놓고 하는 소립니다.

"전서방 오섰니?"

안방에서 경손이와 태식이를 데리고, 무슨 이야긴지 이야기를 하고 있던 서울 아씨가, 와락 반가운 소리로 대답을 하면서 마루로 나오더니 이어 부엌으로 내려갑니다.

전서방이고 반서방이고 간에, 그의 밥상을 알은체할 며리도 없고, 또 계제가 그렇게 되었더라도 삼월이를 불러대서 시키든지 조카며느리들한테 밀든지 할 것이지, 여느때는 부엌이라고 들여다보지도 않는 서울아씨로, 느닷없이 이리 서두는 것은 적실코 한 개의 이변이 아닐 수가 없읍니다.

경손이가 그 이변을 직각하고서 서울아씨가 나간 뒤에다 대고 고개를 끄덕 끄덕, 혓바닥을 날름날름합니다.

서울아씨는 물론 그런 눈치를 보인 줄은 모를 뿐 아니라, 자신의 그러한 행동이 이변스러운 것조차 미처 깨닫지를 못합니다.

하나, 그렇다고 또 서울아씨가 대복이한테 깊수룸한 향의가 있는 것이냐 하면, 실상인즉 그게 매우 모호해서 섬뻑 이렇다고 장담코 대답하기는 난감합니다.

혓바닥은 짧아도 침은 멀리 뱉는다고 합니다. 서울아씨는, 다 참, 양반의 집 자녀요, 양반의 집 며느리였고, 친정이 만석꾼이요, 내 몫으로 5 백 석 거리가 돌아올 테고, 이러한 신분을 가져다가 사랑방 서사 대복이와 견줄 생각은 일찌기 해본 적이 없읍니다.

그러니까 가령 어떻게 어떻게 되어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얼려가지고 대 복이 한 테로 팔자를 고친다 치더라도, 그거나마 마다고 물리치지는 않을지언정, 대복이라는 인물이 하 그리 솔깃하거나 그래서 그러는 것은 아닐 텝니다. 하고, 오로지 그가 치마를 두른 계집이 아니고 남자라는 것, 단연 그것 하나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기로 들면, 같은 남자일 바에야 대복이보다는 어느 모로 따지든지 취함 직한 남자가 허구 많을 텐데 하필 그처럼 눈에도 안 차는 대복이냐고 하겠지요.

그러나 서울아씨는 시집을 갈 수 있는 숫처녀인 것도 아니요, 신풍조를 마신 새로운 여인도 아닙니다.

그는 단지 하나의 낡은 세상의 과부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이 있는 줄은 알아도, 남자가 있는 줄은 의식적으로 모릅니다.

그것은 또, 결단코 절개가 송죽 같아서가 아니라, 눈 가린 마차 말( 馬車馬) 이 마차를 메고 달리는 것과 일반으로, 훈련된 본능일 따름입니다.

과부라는 것은 그 이유는 몰라도, 그냥 그저 두번째 남편을 맞지 않는 것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서울아씨도 장차 어떠한 고패에 딱 다들려서는, 그 훈련된 본능을 과연 보존할지가 의문이나, 아직까지는 털고 나서서 개가를 하겠다는 의사는 감히 없고, 역시 재혼이라는 것은 못하는 걸로 여기고만 있읍니다.

하기야 더러 그 문제를 가지고, 빈약한 소견으로 두루두루 생각을 해보지 않는 것은 아니나, 아무리 둘러대 보아야 그것은 힘에 벅찬 거역이어서, 도저히 가망수가 없으리라 싶기만 하던 것입니다.

'그러하다면서 대복이한테 그가 심상찮은 마음의 포즈를 보인다고 한 것은 역시 공연한 데마가 아니냐?’

그러나 그것은 막상 그렇지 않은 소치가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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