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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문학

이광수 이순신

by 역달1 2022.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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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1

아무리 전라 좌수영이 남쪽 끝이라 하여도 이월이면 아직도 춥다.

굴강(병선을 들여 매는 선창) 안에 있는 물은 잔잔해서 마치 봄빛을 보이는 것 같지마는 굴강 밖에만 나서면 파란 바닷물이 사물거리는 물결에서는 찬 기운이 돌았다.

굴강 안에는 대맹선(大猛船) 두 척, 중맹선 육척, 소맹선(小猛船) 이척, 무군 소 맹선( 小猛船) 칠척, 도 한 십 칠척이 배가 매여 있다. 그러나 명색은 갖추었어도 배들은 반 넘어 썩고 이름 모를 조개들만 제 세상인 듯이 배들의 가슴과 옆구리를 파먹느라고 다닥다닥 붙어 있다. 법으로 말하면 병선은 새 로지은 지 팔년 만에 한 번 중수해야 하고 그로부터 육년 만에 개조해야 하고 또 그 로부터 육년만에는 낡은 배는 내어 버리고 새 배를 지어야 하건마는 차차 법이 해이하여 일년 이차 뱃바닥을 굽는 것(배를 매여달고 그 밑에 불을 피워 뱃 바닥 창널을 그슬리는 것)조차 벌제 위명(伐齊爲名)이 되고 말았다.

금년 (신묘년) 정월, 새 수사(水使) 이 순신(李舜臣)이 도임함으로부터 배와 군사는 전부 엄중한 점고를 받아서 쓸 것 못 쓸 것을 가리어 놓게 되었다.

수군 오백 팔십인 중에 정말 쓸 만한 것은 삼백인도 못되고 그 나머지 이백팔십여 명 중에 백여 명은 나이 육십이 넘어 군사 노릇 못할 늙은이들이요, 그밖에 일백 팔십여 명은 이름뿐이요 사람은 없었다. 사람이 이러하니 병기는 말 할것도 없다.

지금 저 굴강 안에 있는 썩은 배에 들러붙은 사람들은 신관 사또 도임 후에 배를 고치는 목수들이다. 「쓱쓱...」하는 톱질 소리, 「떵 떵 떵떵......」하는 못 박는 소리, 뱃바닥 굽는 화롯불 연기.

그리고 저 바로 복 파정(伏波亭앞 넓은 마당에 가로놓인 괴물이야말로 새 수 사이 순신이 몸소 도편수가 되어서 짓는 맨 처음 거북선이다.

선조 신묘 이월(宣祖辛卯二月)!

이것은 세계 최초의 장갑선(배를 윗집으로 덮어서 사람이 밖에 드러나지아니하고 윗집 밑에서 활동하게 만든배)인 조선 거북선이 처음으로 지어진 심히 영광 스럽고 기념할 만한 달이다.

「땅 땅 땅땅......」복 파정 앞에는 까뀌 소리, 끌 소리, 톱 소리, 못 박는 소리...... 실로 기운차고 바쁘다. 청홍동달이 소매 좁은 군복에 홍 전복을 입 고옥 로. 금패. 패 영단 전립을 쓴 아랫수염 길고 키는 중키요. 얼굴 희고 눈초리 약간 위로 올라가고 콧마루 서고 귀 크고 두터운 사십 오륙 세의 장관. 그는 물어 볼 것 없이 정읍 현감(井邑懸監)으로 있다가 우의정(右議政) 유성룡( 柳成龍) 의 천으로 전라 좌도 수군 절도사(全羅左道水軍節度使)가 되어 지난달에 도임한 이 순신이다.

이 수사는 뒷짐을 지고 지어지는 중에 있는 거북선 가으로 돌아다니면서 이 리보고 저리보고 친히 지휘를 하고 있다. 배는 거의 다 완성이 되어 앞으로 십여 일 이면 손을 뗄 예정이다. 그래서 아무리 늦더라도 삼월 십오일에는 요 샛 말로 이르면 진수식을 할 작정이었다.

벌써 배는 거북의 모양을 거의 이루었다. 아직 눈알은 박지 아니 하였으나 길이가 사척 삼촌. 넓이가 삼척이라는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키 적은 사람 둘을가로 놓은 듯한 거북의 머리도 이제는 완성이 되고 그등의 귀갑 무늬도 반 이나 그려졌다.

2

이 수사는 흉물스럽게 딱 벌린 거북의 입을 바라보고 마음에 드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인제 저 입에다가 유황 염초 불을 피워서 그름 같이 연기를 피우 적진중으로 달려 들어가 그 입으로 불길과 포환을 뿜어.〉하고 수사는 자신 있는 듯이 빙그레 웃었다.

『저 배도 뜰까?』

사람들은 새 수사의 계획에 의심을 가졌다. 첫째는 그 배가 너무 큰 것.

둘째는. 그 배에 쓰는 널이 너무 투박한 것. 셋째는. 대관절 저런 흉물스러운 배는 해서 무엇하느냐 하여 그 용처를 모르는 것.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 그 중에도 물에 이고 배에 익다는 사람들이 뒷 구멍으로 수사의 어리석은 계획을 비웃었다. 병선이면 예로부터 대맨선도 있고 중맹선도 있고 소맹선도 있지 아니하냐 이러한 좋은 배들도 다 쓸 데가 없어서 법수에 배여서 썩는 판인데 저런 만나 역대에 보지도 못하던 배는 지어서 무엇하느냐 하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 이었다. 수사의 부관이라고 할 김 우후()까지도 감히 인밖에 내어서 말은 못하나 경험 없는 수사의 철없는 장난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아니하고. 만일 새로 짓는 배가 불성공이 되면은 비밀히 자기와 척분 있는 병조 판서에게 보고 하여 한번 신 수사 이 순신이 떨어지는 양을 보리라 하였다.

그러나 이 수사는 남들이야 무엇이라고 비웃든지 공사만 끝내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배 짓는 감독을 몸소 하였다. 다행히 도편수 한 대선은 수사가 정읍에 있을 때부터 사귀어서 여러 번 거북선 모형을 만들게 한 수사의 뜻을 잘 알 아들 엇 이를테면 수사의 유일한 동지라 할 것이요. 그 밖에 수사의 병선 신조.

수군 대혁신의 정신을 알아주는 사람으로 바로 이 수사의 부하 되는 전라좌수영 군관 송 회립(宋烯立)과 녹도 만호(鹿都萬戶)정 운(鄭運)이 있을 뿐이었다. 군관 송희힙은 본래 순천부 사람이었다. 나이 오십이 가까웁되 본래 시골 사람이서 죄수영 군관 이상에 오를 수가 없었다. 역대 수사나 우후 중에 송희립을 별로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으나 이번 수상 이 순신은 도임한 지 며칠 이아니 되어서 군관 송희립이 녹록한 사람이 아닌 것을 간파하였다. 그리고 녹도 만호 정 운도 만일 서울에 반연을 둔 사람일진댄 벌써 병사나 수사 한 자리는 할 만한 인물이요. 이 순신도 꽤 푸대접받은 사람이지마는 그래도 그에게는 유성룡과 같이 알아서 천해 주는 사람이 있었지마는 전혀 서울에서 끌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또 천성이 개결하고 자부가 자못 높아서 남의 앞에 무릎을 굽히지 아니하기 때문에 오십 평생을 권관(權管). 만호(萬戶)로만 돌아다니고 첨 절 제사( 僉節制使).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한 자리 얻어 하지 못하였다.

이 녹도 만호 저 웅니 이 수사의 눈에 띄게 된 것은 이 수상가 새로 도 임하 여관하 각 진을 순회할 때에 녹도진의 병선. 군사. 군기가 가장 정제한 것을 발견한 데에 있었다. 이때에 중앙과 지방을 물온하고 위로 정승 판서 로부터 밑으로는 외방 말직에 이르기까지 모두 속속들이 부패하여 서빙 공 영사( 憑公營私) 로 일을 삼음으로 사만팔천 팔백 수순. 오천 구백 육십 조 졸( 漕卒).팔백여 병선이라고 하여도 명색뿐인 중에 정 운 같은 장수를 만난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3

신묘 삼월!

이날은 조선의 거북선이 처음으로 물 위에 나뜨는 날이다. 정월 보름에 기공하여 만 이개월 반을 허비해서 처음으로 이루어진. 전고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거북선이란 것이 물에 나뜨는 것을 보자고 좌수영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인근 제읍에서도 많이 구경을 하려 모여 들어서 좌수영에는 이날에 수만 명 사람이 북적하였다. 이날은 늦은 봄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더웠다. 그러나 바다에서는 이날을 축하하는 듯이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새로 지은 산더미 같은 거북선에는 이물. 고물이며. 죄현. 우현에 고색기를 달아서 그 깃발들이 기운 차게 바람에 펄렁펄렁거렸다.

북파정에는 수사. 우후. 조방장. 오위장. 군관. 각 읍 수령. 첨사. 만호.

도위들이 가기 군복 전힙에 칼 차고 전통 지고 위의 갖추고 죄정하였고.

굴강(방파제)에는 오백명 수군이 새로운 군복을 입고 가슴에 달덩어리 같은수군 패를 붙이고 행렬 지어 벌여 서고 굴강. 법수에 매여 있은 대맹선. 중맹선.

소맹선들도(가 진에서 첨사 만호들이 타고 온 배를 합하여 삼십여 척 이었다) 모두 깃발을 날리고 명령을 기다리고 섰다.

좌우영 속한 육읍 칠진의 병선들도 새 수사의 엄명으로 조금씩이라도 다 주옥을 하였었다. 그 중에도 녹도진 병선들은 죄수영 병선에지지 아니하게 깨끗하고 새로웠다. 구경군들은 돌산도 대섬(지금 장군도)의 모든 산에까지 하얗게 둘러 섰다. 하늘은 푸르고 수름은 희었다. 오정이 되어 봄 바다의 사리물이 앞바다에 두둑하게 올리어 밀었다.

이때에 쿵하고 큰 북 소리가 울리자 쾅하는 아단 단지(폭발탄 같은 것) 가터 지고 그 속으로서 무수한 화전이 나와서 공중에 샛별같이 떠돌았다. 이 화전도 새 수사가「귀동이」「달쇠」두 사람을 시켜서 크게 개량한 것이니. 이 것으로 첫째는 적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둘째로는 적선에 불을 놓자는 것이다.

이 북 소리와 아단 단지 소리를 군호로 도편수 한 대선이 거북선을 잡아맨줄을 끊고. 오백명 군사의 손에 벌이 줄이 끌려서 산 같은 거북선으로부터 요란한 소리와 용이 오르는 듯한 큰 물보라를 내면서 그 위대한 뱃바닥을 물속에 집어넣었다. 이 순간. 복파청에 모인 수사이하 삼십명 장수들과 천여 명군 졸들은 기약하지 아니하고 일제히「으아」하고 고함을 쳤다. 그리고는 그 고함을 따라 군악이 일어나고 군악과 고함 소리 속에 조영 도감인 우후 김운 규( 金雲珪) 가 앞장을 서고 수사 이 순신이하 부사. 첨사. 위장. 현감. 만호 등제장이 뒤를 따라서 다릿널을 밟고 거북선으로 올라 갈 적에 그 위엄이 비길데가 없었다.

제장이 다 배에 오르고 일백 육십명의 수군이 올랐다. 대맹선에 군사 팔십명.

중맹선에 군사 육십명. 소맹선에 군사 삼십명인데. 거북선에는 장수 외에 군사 일백 육 십명이다. 그중에서 사십명은 노를 젓는 사람이요. 이십명씩 두 패에 갈라서 번갈아 이십 노를 젓고 칠십이명은 거북선 칠십이 포혈에 한 구멍씩을 맡고 삼십 육명은 포수의 번을 가는 사람이요. 나머지 십 이명은 밥을 짓고 배를 소제하고 기타 잡역을 하는 군사다. 군사들은 모두 통 좁은 바지와 긴 저고리를 입고 저고리 위에 둥달이 적삼을 걸치고 옷빛은 바닷물과 같은 푸른 빛이다.

그리고 머리에 검정 벙거지를 썼다. 그리고 가슴에는 소속한 진(鎭)명과 성 명과 생년과 주소를 쓰고 한문 글자로「 水軍 」두 자를 전자로 새긴 화인을 찍 은둥군 목패를 찼다.

4

이렇게 수백명 사람이 올라 탔건마는 밖으로 보기에는 거북선은 테텡 빈듯 하였다. 그 무서운 쩍 벌린 거북의 아가리. 오직 그것만 생명이 있어서 금시에 무슨 요란한 소리를 지를 듯하였다.

사람들의 눈을 실로 이 괴물에게로 못 박힌 듯이 향하였다. 이윽고 거북선의 아가리 로써 「 우후후 」 하는 산과 바다가 진동하는 듯한 길고 흉물스러운 소리 가나며 그 뒤를 이어 시커먼 연기가 나오고 또 그 뒤를 이어서 콩 하는 대 완수 소리와 함께 아름드리 불길이 확 나오더니 무수한 화전(花煎)이 살별과 같이 해상과 공중으로 쏟아져 나갔다. 그러자 좌우에 뻗은 이십개의 노가 일시에 물을 당기니 「 저 것도 물에 뜨나」하던 크나큰 거북선은 바람과 물결을 한 꺼 번에 일으키며 굴강을 벗어나 그야말로 살같이 앞바다로 내달았다.

대맹선. 중맹선들이 있는 힘을 닿여 거북선의 뒤를 따라 오나 마치 젖먹이와 날랜 어른과의 경주와 같았다. 거북선은 둥둥 울리는 선장(선장)의 북 소리를 따라서 마치 자유로 날아 돌아가는 갈매기 모양으로 좌수영 앞바다를 몇 바퀴를 돌았다. 처음 그를 따르려던 병선들은 저 뒤에 떨어져서 거북선이 화전같이 돌아가는 것을 구경하고 섰을 뿐이었다. 사방 산에 돌아선 구경 하는 백성들은 「 야 아.야아」하고 경탄하고 환호하는 소리를 질렀다.

이때에 어떤 장수 하나가 거북선의 등인 갑판 위로 쑥 올라 섰다. 육지에 있는 사람으로는 그 얼굴은 볼 수 없지마는 또 새 사사 이 순신을 한번도 보지 못 한 사람들도 그것이 이 수사인 줄을 번개같이 알았다. 그리고 이러한 무섭고 신통한 물건을 지어 내인 이 수사는 필경 신인이요. 범상한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거북선을 칭찬하고 그것을 만들어 내인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순박한 백성들 뿐 이다. 우후 김 운규 이하로 한애비. 외한애비. 외한 애비의 외한 애비. 이 모양으로 조금이라도 서울에 조정이라고 일컫는 곳에 등을 대인 사람들은 거북선. 그것을 만든 사람까지 자기네가 못하는 일을 한 사람이 밉고 따라서 아무 마음도 없는 거북선까지도 미웠다. 그놈의 거북선이 오늘에 물에 잘 뜨지를 아니했거나. 또는 생각하였던 모양으로 너무 비둔해서 속력이 빠르지못하였던들 대단히 기뻐할 사람도 없지 아니하였다.

『사또. 이런 것이 스무 척만 있으면 왜는커녕 천하에 무서울 것이 있겠소?』

하고 취한 듯이 기뻐하는 것은 정충보국(貞忠報國)이라고 칼에 새겨 가지고 다니는 녹도 만호 정 운 기타 몇사람이었다. 그 밖에는 첨사니 만호니 부장이니.

이름은 군직이라 하더라도 아마 대장이니 절도사니 하는 축들도 대관절 주사( 舟師) 가 무엇인지를 아는 이가 몇이 못될 것이다.

거북선 한 척이 한 편이 되고 다른 사십여 척 병선이 한 편이 되어서대 수조( 大水繰) 를 거행하게 되었다. 북 소리와 거북선의 소랏 소리와 각 배에서 울어나는 방포 소리에 천지가 흔들리고. 유황 엽초의 연기는 백일을 가리워 빛이 없게 하였다. 더구나 거북선 칠심 이포혈에서 일시에 방포가 될 때에는 그야말로 산과 받가 일시에 흔들리는 듯하였다.

5

사십여 척 병선이 다 합하더라도 거북서 하나의 위력을 당하지 못할 것은 물론이다. 첫째로. 거북선은 속력이 다른 배의 세 갑절이 되고. 둘째. 거북선은 군사를 다 가리웠으매 내가 남을 쏘아 죽이기는 해도 남이 나를 쏘아 죽일 수는 없고. 셋째. 거북선은 전후 좌우에 칠십 이포혈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일시에 방포를 하고 활을 쏘면 전선이 도시 불이요 화살이어서 적선이 감히 접근 할수가 없고. 넷째. 원체 체대가 큰 데다가 배를 지은 재목이 든든하고 배의 중요한 는 철갑을 쒸웠기 때문에 적선과 마주 부딪치면 나는 성하고 적선은 부서지고. 다섯째. 바람의 힘을 빌지 아니하니 돛대가 필요 없고 갑판에는 철판을 덮고 날카로운 못을 수 없이 거꾸로 박았으니 적이 아무리 불을 놓으려 하더라도 불을 놓을 수가 없을뿐더러. 비록 적병이 배에 뛰어 오르려 하더라도 뛰어 오르는 대로 쇠못에 꿰어 죽게 되고. 여섯째. 입으로 연기를 토하여 몸을 감추고. 일곱째. 배가 크기 때문에 물과 양식을 많이 실어서 오래 항행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배는 그때에 있어서는 동양 서양을 물론하고 다시 없는것이었다.

이제 거북선의 제도를 잠깐 보자!

밑판이 열 쪽에 길이가 육십 사척 필촌이요. 머리 넓이가 십 이척이요. 허리 넓이가 심 척 오촌이요. 꼬리 넓이가 십척 육촌이요. 좌우 삼판이 각각 일곱 쪽을 모아서 높이가 칠척 오촌이요. 맨 밑에 쪽의 길이가 육십 오 팔척이요. 위로 올라갈수록 차차 기어져서 맨 위인 일곱째 쪽의 길이가 일백 십 삼척이요 두께는 모두 사촌이요. 노판(이물)이 네쪽을 모았으니 높이가 사척이요. 둘째 판에는 좌우에 현자(玄字) 포혈 하나씩을 뚫었고 축판(고물)이 일곱 쪽을 모았으니 높이가 칠척 오촌이니 위의 넓이가 십 사척 오촌이요. 아래 넓이 가십 척 육촌인데. 여섯째 한복판에 직경 일척이촌 되는 구멍을 뚫어 키를 꽂게하였다. 좌우 삼판에는 세인막기(난간)를 만들고 세인막이 머리에 멍에를 걸고 바로 이물 앞에는 말이나 소의 가슴패기 모양을 세인막 위에 연하여 판장을 깔고 패를 둘러 박고 패위에 누인막이라는 난간을 거니 삼판에서 누인 막까지가 높이가 사척 삼촌이다. 누인막이 좌우에 각각 판장 열 한 쪽을 바늘을 달아 덮고. 등에 편하게 하였다. 이물에는 거북의 머리를 만들었으니. 길이가 사 척 삼촌이요. 넓이가 삼척이다. 그 속에 유황과 염초를 피워 입을 벌리고 내 를토하면 안개와 같아서 적으로 하여금 내 몸을 보지 못하게 한다.

좌우에 노가 각각 열이요. 좌우 패에 각각 포혈 둘을 뚫고 아래에 문 둘을내이고 문 곁에 각각 포혈 하나를 내이고 좌우 개판에도 각각 포혈 십 이를내었다. 좌우 마루 밑에는 각각 방 십 이간이 있으니. 이간에는 철물을 두 고삼간에는 화포. 활. 살 . 창. 검을 갈라 넣고 나머지 십구간은 군병이 쉬는 곳이다. 왼편 마루 위에 있는 방 간에는 선장(船將)이 거처하고 우편마루 위에 있는 방 한 간에는 장교가 거처하게 되었다.

군병들은 쉬일 때에는 마루 밑에 내려 가고. 싸울 때에는 마루 위에 올라간다.

포혈마다 화포가 있어서 쉴새 없이 재어서 쏘게 되었다. 그리고 등에는 거북 무늬를 그려 바다에 뜨면 물결고 흡사하게 보이고 앞가슴에는 닻을 매었다.

좌우에 도합 스무 노를 사십명이 번갈아 저으면 하루에 족히 오백리를 갈 수가 있었고 가까운 거리에서 전속력으로 저으면 마치 화살과 같이 빨랐다.

6

『어. 과연 장하오. 사또는 신인이시오.』

하고. 수조가 다 끝난 뒤에 순천 부사가 이 수신에게 인사말을 하였다.

『거북선 스무 척을 지어 놓은 뒷면 왜 병이 오더라도 염려가 없겠소마는.』

하고. 수사는 배에서 복파정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고개를 돌려 거북선을 바라보며.

『그리할 동안이 있을는지 알 수 업소.』

하고. 쇠북 개목으로 멀리 동해를 바라보았다.

『웬걸 왜병이 올라구요. 김 성일(金誠一)의 말을 들으면 평수길은 큰일을 할 위인이 못되더라는 걸요.』

하고. 순천 부사 심 유성이 선견지명을 자라하는 듯이 말하였다. 그것은 풍신수길( 풍신수길) 의 위인과 그의 뜻을 염탐하러 보냈던 사신 황 윤길(황윤길)과 김성일( 김성일)과의 복명한 말을 가리킨 것이다. 황 윤길은 말하기를.「풍신수길은 눈에 정기가 있고 비범한 인물이니 반드시 큰뜻을 품어 조선을 엄습할 근심이 있다 」 하고. 김 성일은 그와 반대로. 「풍신 수길은 누이 쥐눈같고 외모로 보나 언행으로 보나 하잘 것 없는 위인이니 족히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하였다.

정사인 황 윤길의 말과 부사인 김 성일의 말이 이렇게 엄청나게 틀리니 조정에서는 그 어느 말을 믿을 바를 몰랐다. 그래서 동인들은 (유 성룡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다) 김 성일의 말이 옳으니 군비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하고. 서인들은 황 윤길의 말이 옳으니 그 말을 믿어 수륙의 군비를 일으키자고 하였다. 이렇게 어전 회의에서 끝날 줄 모르는 말다툼을 하였다. 대세르 보기에 어두운 왕은 처음에는 황 윤길의 말을 믿어 일본이 내습할 것을 가상하고 해군과 육군을 일으키 기를 결심하였으나 다시 동인들의 말에 기울어져서 단연히 수륙 군비를 아니 하기오 결정하였다. 이래서 김 성일은 심부름 잘 하였다. 하여 상을 받고. 황윤길은 공연히 조정을 놀라게 하였다. 하여 왕에게 크게 꾸지람을 받았다. 순천 부사 심 우성은 서인이었다. 그는 동인인 유 성룡의 추천을 받아서 수사가 된 이순신의 하는 일을 고게 볼 리가 없었다.

순천 부사 심 유성은 대수조를 마치고 순천으로 돌아온 길로 호군(護軍) 신입( 申砬)에게 이 순신의 거북선과 및 순신이 거북선 이십척을 건조할 계획을 가졌다는 말을 보고하였다. 신 입은 이 보고를 받아 가지고 몇몇 서인의 선배들의 의향을 들은 후에 이 순신으로 하여금 큰 공을 이루게 함은 유 성룡 일파에 세력을 중징함이라 하여 단연히 순신의 수군 대확장. 특히 성공 이미지 수인 거북선 건조를 금지할 것을 왕에게 지언하였다. 이때에 서인 중에서 도윤 두수(尹斗壽). 이 항복(李恒福) 같은 이들은 이 순신의 계획을 적극적으로 억제 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하였으나 구태여 규각을 내어서 반대하기도 원 치아니 하였다. 왕은 신 입의 「청컨댄 주사를 파하고 육군에만 힘을 쓰게 하소서() 」이라는 계사를 받고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왜 그런고 하면 그때에 마침 왕은 이 순신의 장계를 받아 거북선의 그림과 아울러 그 시험 성적을 보고 혼자 기뻐하던 때인 까닭이다. 이렇게 좋은 거북선을 왜 없이 하라 는가. 적이 바다로 오거든 어찌하여 주사를 폐하라고 하는가. 이에 대하 여왕은 의심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7

신 입 및 그 당파들이 수군을 폐하자는 논리는 이러하였다.

『지금 묘의가 군비를 파라기로 하였거늘 쓸데없이 수군을 확장해서 일본뿐 아니라 명 나라에게 까지 라도 의심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하나요. 또 설사 일본이 침입한다 하더라도 일본은 사방을 바다로 두른 섬나라여서 백성이 모두 물에 일이므로 도저히 수전을 일병을 막기가 어려우니 차라리 육지에 끌어 올려서 대번에 씨도 없이 부서 버리는 것에 상책이라는 것이 둘이니. 이 두 가지 이유로 수군을 확장할 필요가 없을뿐더러 있던 것도 파해 버리고 오직 육전에만 전력을 하자.』 는 것이었다. 여기는 동인들을 빈정대는 뜻이 많이 품겨 있었음은 물론이다.

왕은 어느 말을 좇을 바를 몰랐다. 그는 심히 결단성이 없고 이 말에는 이 리로 저리로 솔깃하는 성격을 가진 이었었다. 신 입의 이 계사는 조정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래서 서인가 동인과는 국가라는 견지도 다 버리고 오직 자기네 당파라는 견지에서 서로 물고 뜯었다. 이 모양을 본 유 성룡은 거북선의 성공으로 해서 조정에 일어난 풍파를 자세하게 이 순신에게 편지하였다. 그리고 그 끝에「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이 나라를 생각함보다 제 몸을 생각함이 많고 공 번 된 마음보다 남의 잘함을 시기함이 많으니 그대도 눈에 띄게 수군을 늘이어 너무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말라.」하는 구절을 썼었다.

이 순신은 유 성룡의 편지를 받아 보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때에는 둘째 거북선을 짓기 시작한 때였다 순신은 곧 분향하고 엎드려 장계를 지었다. 그는 근래에 동해 일본 쪽으로부터 나뭇조각이 많이 떠온다는 것과 일본에 표류 하였던 어민의 말을 들으면. 일본에서는 미구에 조선과 명 나라를 차기 위하여 삼십만 대병을 발한다는 소문이 있고 또 포구마다 병선을 짓는다는 말을 자세히. 정성된 말을 쓴 후에.

『바다로 오는 도둑을 막는 데는 수군 밖에 없사오니 수군이나 육군을 어느 것이나 하나를 폐할 수 없나이다(.

.

.

.)』라 하여. 수군을 페함은 운명을 위태케 함이라고 하였다. 왕은 마침 신 입의 계청대로 육군의 전력하고 수군은 파한다. () 는 교서를 이 수신에게 내리려고 승지에게 붓을 들렸던 차에 이 장계를 받았다. 왕은 몸소 그 장계를 읽고 무릎을 쳐서 순 신의 글 잘함을 칭찬한 뒤에 순군 혁파를 주장하는 제신들에게 그 장계를 돌려 보이고 더 다른 의견을 묻지 아니하고 순신의 장계에「옳다(光).」신 입 의장계에 「옳지 아니하다(不光).」는 비지를 내렸다.

이 모양으로 신 입의 수군 혁파안은 이 순신의 수륙병 존안에게 지게 되었다.

「순신의 글씨 때문에 왕의 뜻이 기울어졌다.」하는 말을 서인들이 돌렸다.

순신의 의견이 옳기 때문이라고 하기 싫은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마는 「 글을 잘 해서 」라는 말조차 하기 싫었다. 그래서「글씨를 써서」하는 것으로 순 신의 말이 선 이유를 삼은 것이다.

이것이 무론 이 순신의 명예는 아니었다. 도리어 전보다도 더 심각하게 순신은 서울에서 세도 잡은 무리들의 미움을 받을 장본이 되었다 더욱이 당당한 신입이가 일개 무명한 이 순신에게 졌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수욕이었다. 그는 한번 보자고 이를 갈았다.

8

이렇게 이 순신의 장계가 효과를 내어서 수군 혁파만은 면하게 되엇으나.

한편으로 유 성룡 등 동인들의 비전론에 화를 받고 다른 편은 서인들의 육군 주의의 화를 받아서 거북선 이십척 건조. 기타 수군 대확장안은 뜻대를 되지를 아니하였다.

이렇게 조선 졍정부에서는 군비를 할까 말까. 수군을 둘까말까 하고 갈팡질팡하며 당파 싸움만 일삼는 동안에 일본에서는 대륙 침입의 계획을 착착 실행하게 되었다. 대마도주 종 의지는 원래 전쟁이 있기를 원치 아니할 처지에 있기 때문에 조신(調信)과 중 현소(玄蘇)를 서울에 보내어 수길(秀吉)이 조선에 길을 빌려 명 나라에 쳐들어 가려 한다는 계획과. 불원에 반드시 일본의 대군이 조선 지경을 범할 터이니 미리 명나라에 이뜻을 통하여 외교적으로 일을 무사히해 격 하도록 하라고 진언하였다. 현소가 김 성 일을 보고 귓속으로 한 말이 이러하다.

『명나라가 으래 일본과 끊어져서 조공을 통치 못하므로 수길이 이로써 마음에 분하고 부끄러움을 품어 싸움을 일으키려고 하니 조선이 만일 앞서서 이 뜻을 명 나라에 주문하여 일본으로 하여금 조공의 길을 통하게 하면 반드시 무사할 것이요. 일본 백성도 또한 싸움의 괴로움을 면할 것이요.』 그러나 김 성일은 이 말을 조정에 주문하지 아니하였다. 그것이 자기가 전에 장담한 말 수길은 싸울 뜻이 없다는 것과 어그러지기 때문이었다. 현소는 다시오 억령(吳億齡)에게. 명년에는 일본이 대군을 끌고 조선에 길을 빌려 명나라를 칠 것을 말하매 오옥령은 크게 놀래어 조정에 주달하였다. 그러나 왕 은비 전 혼자들의 말을 들어 오 억령이 부질없는 소리를 한다 하여 선위 사( 宣慰使) 를 파직 하였다. 그리고 대마도주의 사린 조신에게는 가선 대부를 주고 잘 대접 하여 돌려 보낼 뿐이요. 일본의 침입에 대한 아무러한 준비도 할 생각을 아니하였다.

이러한 중에 있어서 오직 전라 좌수사 이 순신 한 삼이 모든 핍박을 다 물리치고 일변 병선을 중수하고 거북선을 지으며 일변 관하 각진의 군사를 조선을 중수하고 거북선을 지으며 일변 관하 각진의 군사를 조련하고 군량을 모으며 각처에서 이름 있는 대장장이들을 모집하여 화포. 창. 칼. 갈퀴. 낫.

소금가마 등속을 만들었다. 이리하여서 전라도 경상도에 목수 대장장이며 활 쏘고 칼 쓰는 호협한 무리들이 좌수영으로 많이 모여 들었다. 굴강을 깊이 파고 방파제를 넓게 높이 쌓고 앞바다 새좁은 물목에는 쇠사슬을 물속에 늘였다.

이것은 적선이 침입하려 할 때에는 육지에서 쇠사슬을 감아 올려서 통행을 막고 또 들물이나 썰물에 물결이 세일 때를 이용하여서는 대어드는 적선을 넘어 뜨리 기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동안 우후와 순천 부사도 갈리고 좌수사의 절제를 받는 수령. 첨사. 만호.

군관중에는 이 순신의 충성되고 조금도 사곡함이 없는 인격에 감화를 받는 자도 적지 아니하였다. 더구나 군졸들은 새 수가 도임한 지 일년이다. 못하여 새 수사를 아버지같이 사모하게 되었다. 새 수사는 엄하기 짝이 없으나. 공평하기도 그러하고. 사졸이 힘드는 일을 할 때에는 자기. 먼저 힘드는 일을 하였다.

새 수가 이 순신은 술을 좋아하나 밤이 아니면 먹지 아니하고. 풍류를 좋아하나 국가에 경절이 아니면 기악을 가까이하지 아니하였다.

이 순신이 수사로 온지 일년에 전라 좌도의 수군은 병선이나 장교나 군 졸이나전혀 새 것이 되고 백성들의 풍기까지도 일신함이 있었다.

(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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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진 사월 십 오일 술시. 지금으로 말하면 오후 열 시쯤 일륜 명월 이 돌산도 위로 솟다 오른 지 얼망 되지 아니하여서 어떠한 배 일척이 쌍 횃불을 들고 좌수영으로 들어왔다. 햇불을 드는 것은 경보를 가지고 온다는 뜻이었다.

이전에 보지 못하던 쌍횃불 든 배는 좌수영의 군사들과 백성들을 놀라게 함이 적지 아니하였다. 그렇지 아니하여도 일본 병정이 온다는 풍설이 많이 돌아다니던 때여서 백성들의 마음이 조마조마하던 때이므로 어리석고 당파 싸움에만 분주하던 정부에서 아무리 민심을 위무한다 하더라도 그 말이 귀에 들어가지아니 하고 무슨 큰 변이 발뒤굼치에 따라 오는 것만 같았던 것이다.

이 쌍횃불 든 수상한 배는 좌수영 순라선(巡邏船)에게 붙들려 잠시 수험을 받고 곧 굴장에 들어 닿았다. 이날은 국기일이어서 수사 이 순신은 죄 기를 페하여 전라 관찰사 이 광(李珖)에게 편지 답장을 쓰고 또 군부에 대한 보고를 지어 역자(驛子)를 떠나 보내기에 골몰하였다. 그러다가 저녁을 먹고 나서 이상하게 산란한 심서를 가지고 바다에 오르는 달을 바라보고 거닐 때에 수직 군관이 경상 우도 수군 절도사 원 균의 관(關)을 바쳤다.

수사는 곧 동헌으로 불러 들여 경상 우수사의 관을 열어 보았다.그 내용은 이러하였다.

『오늘 사시(오전 열 시쯤)에 가 덕진( 加德鎭) 첨 절 제사( 僉節制使) 전 응린( 田應麟) 과 천성보 만호(天城堡萬戶) 황 정(黃挺)등의 급보를 접하건댄. 매 봉봉 수 감고(연대감고) 서 건(徐建) 등이 나와 고하기를. 사월 십 삼일 신시( 오후 다섯 시쯤)에 왜선 여러 십척. 대개 소견에 구십여 척이 경상 좌도 싸리 섬을지나 부산포(釜山浦)를 향하여 나오더라 하기로 첨사 전응린은 방략대로 부산 대 대포 우요격장(右繞激獎)의 군선으로써 정제하여 바다에 내려 변을 기다린다.』 운운 한 것이다.

세견선(歲遣船 해마다 장사하러 오는 배)인지도 모르거니와. 구십여 척이나 다수가 나온다는 것은 그 연유를 알 수 없고. 또 연속하여 나오다고 하니 심상 치아니 한 듯하다고 생각하고 수사는 곧 우후 이 몽귀(李夢龜)를 불러서 일 변좌 수영 각군에 신칙하여 방비와 망보기를 엄히 하여 주양로 대변하기로 하고 또 소속 각진 각포에 말과 배를 놓아 군사와 병선을 정돈하여 강구 대변( 江口待變 병선들을 언제나 떠날 수 있도록 항구 밖에 내어 놓고 무슨 일이 생기 기를 기다린다는 뜻)하게 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수사 자신은. 첫째로 이 뜻으로 장계를 꾸미고 관찰사. 병마 절도가. 우도 수군절도사에 이문을 지어 말을 태워서 띄웠다.

그러나 이 일이 다 끝나기도 전에 경상 우도수군 절도사 원 균으로부터 둘째 관이 왔다. 신시(먼저 관은 사시였다)에 가덕진 첨절제사의 치보(급보)를 보건댄.

왜선일백 오십여 척이 해운대오 부산포로 향하고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인제는 세견선 아닌 것은 확실하다. 세견선이면 고작 많아야 삼십척. 그렇지 아니하면이십 척을 넘는 일이 적다. 그런데 구십척. 일백 오십척이라 하면 이것은 필시 심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이날 밤을 근심 중에 보내고 이튿날인 사월 십 육일 아침 진시(오전 여덟시쯤)에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김수(金賥)의 관이 왔다.

『이달 십 삼일에 왜선 사백여 척이 부산포 월편에 왔었다.』

는 것이었다.

2

『왜선 사백척!』

하고. 수사는 과거에 생각하였던 것이 맞은 것을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 끄덕 하였다. 이날 밤 이경에 또 경상 우수사 원 균의 관이 왔다.

『부산진(釜山鎭)은 함락되고 첨절제사 정 발(鄭撥)은 전사하였다. 』 하는 것이었다.

십 팔일에 또 경상 우수사 원 균의 관이 왔다. 그날 일기에 이 순신은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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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하고. 이것을 번역하면 이러하다.

『오후 세 시에 경상 우수사의 관이 왔다. 동래도 함몰이 되었는데 양산 군수와 울산 군수도 조방장으로 동래에 와 있다가 같이 패하였다 하니. 그 분통 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병사와 수사가 군사를 거느리고 동래 뒤까지 왔다가 곧 회군하였다 하니 더욱 가통하다.』 하는 것이다. 하루를 걸러 이십일에 경상 감사 김 수로부터 관이 왔다.

『양산(梁山)도 함락이 되었다. 적의 구세가 강성하여 도무지 대적할 자가 없어 승승 장구하여 무인지경 같이 들어오니 전함을 정리하여 와서 구원하라.』 하는 것이었다. 이 기별을 받고 이 수사는 칼을 들어 서안을 치고 통분 함을 마지 아니 하였다. 더구나 병사니 수사니 하는 무리들이 군사를 끌고 동래 뒤까지 갔다가 적세가 치성한데 겁을 집어 먹고 달아난 것이며. 적이 부산에 상륙한 지 사오일이 못되어 동래. 양산. 김해 같은 거진이 물에 소금 슬 듯 무너진 것을 생각할 때에 이 순신은 가슴이 터짐을 금치 못하였다. 생각 같아서는 곧 군사를 끌고 경상도로 달려가고 싶었으나 조정의 명령이 없이 자의로 움직임은 국법이 허하지 아니 하는 것이므로 순신은 곧.

『경상도를 가서 구원케 하소서.』

하는 장계를 썼다. 그 속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었다.

『적세가 이처럼 치성하여 큰 진(鎭)들이 연하여 함몰되고 내지까지 범 하게되 오니 이런 원통함이 또 있사오리까. 분함으로 간담이 찢어지는 듯하오와 말 할 바를 알지 못하나이다. 국민된 자 누구나 맘과 힘을 다하여 국가의 수치를 씻기를 원치 아니하는 자 없사오니. 엎디어가 함께 싸우라시는 천지신명의 명을 기다리오며 소속한 주사는 물론이옵고 각 관포(官脯)에도 병선을 정리 하여 주장의 명을 기다리라는 일로 본도 각 감병사에게 통의 하였나이다.』 하고 곧 행하지 아니하면 기회를 잃어버릴 것을 말하였으니. 이것은 조정에 있는 대관들이 당파 기타의 관계로 천연세월할 것을 근심한 까닭이었다.

그리고 수사는 전라도 관찰사 이 광(李珖). 방어사(防禦使) 곽 영(郭瑛). 병마절도사( 兵馬節度使) 최원(崔遠) 등이며 경상도 순변사(巡邊使) 이 일(李逸).

관찰사(觀察使) 김 수(金脺). 경상 우수사 원 균 등에게 도내으 수로 형세며.

양도 주사가 어디서 모일 것이며. 적의 병선이 얼마나 많으며. 시방 있는 곳 이 어디며. 기타 책응할 모든 일을 급급히 회답하라는 뜻으로 말을 보내어 이 문 한 것 들을 자세히 아뢰이고. 전라 좌수사의 소속인 방답(防踏). 사도(師徒).

여도(呂島). 발포(鉢浦). 녹도(록島). 오진이며 순천(順天). 광양(光陽). 낙안(樂安).

흥양(興陽). 보성(寶城) 오 읍에 명령하여 본월 이십 구일을 기약하고 본영 앞바다로 모이라고 약속하였다는 말을 적었다.

이장계를 보내고 수사는 더욱 출전 준비에 힘을 쓰며 오늘이나 내일이나 하고 서울에서 회보 오기를 기다렸다.

釜山.東 ( 싸움) 1 임진 사월 십 이일 진시에 일본의 함대는 대마도의 대포(大浦)를 떠나서 신 시 말에 부산진 앞바다에 다다랐다. 병선 칠백여 척이었다. 이 칠백여 척 의대 함대가 구름과 같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보고한 보고가 곧 전라 좌 수영에서 수사 이 순신이 사월 십 오일에 받은 첫 경보이었다. 이렇게 칠백척이나 되는대 함대가 국경에 침입하는 것을 보고도 아무 계책이 없던 조선 관헌들은 실로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그 이튿날인 사월 십 심일 미명에 일본 함대는 아무저항도 받음이 없이.

부산에 상륙하여 부산진을 향하고 개미때와 같이 진군하였다. 이날에 부산진을 지키는 주장인 첨절제사(僉節制使) 정 발(鄭撥)은 절영도(絶影島)에 사냥을 나가서 자고 아침에야 비로소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한다는 경보를 듣고 타고 갔던 병선 세 척을 끌고 창황하게 부산진으로 돌아 와서 아무 일도 없는 듯이 평일 같이 있었다. 군사들이나 백성들이나 조금도 놀라지 아니하고 성 위에 올라가서. 일본군이 이상한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소총을 메고 개미떼와 같이 몰려 들어오는 것을 구경삼아 보고 있었다. 이것은 조정이 심 성일의 말을 믿어서 일본이 싸우러 오리라는 말을 일체 입 밖에 내기를 금지하여. 백성들 이 전혀 난리가 난 줄을 모를는 까닭이었다. 해마다 한번씩 일본 배들이 장사 하러오는 예가 있으니. 이것도 아마 그것인가보다. 그런데 이번에는 배도 많고 사람도 많고 차림차림도 현란하구나 할 뿐이었다.

『사또. 암만 해도 저 일본 사람들이 군사인가 보오. 평수 길이 싸우러 온다더니 과연엔가 보오.』

하고. 부하가 의심스럽게 말하나 결의 사람들은 나라에서 금하는 말( 싸움이난 다는 말)을 한다고 눈을 끔적거리고 첨사 정 발은 작취가 미성한 낯에 웃음을 띠 우 며.

『일본이 아무리 강성 하기로니 무명 지사를 일으켜 가지고 천벌을 면할 수가 있느냐.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또 설사 일본이 감히 싸움을 돋운다 하기 로니 두려울 것이 무엇이냐. 내 이 칼 하나면. 만명이 오기로 무슨 걱정이냐.』 하고. 칼을 만지며 뽐내었다. 정 발은 칼쓰기를 자랑하고 또 호협한 남아다.그

말이야 시원하다. 또 정 발의 자신에는 노상 이유가 없지도 아니하였다. 부산 해성( 釜山海城)에는 육천명 군사가 있었고 성의 주위에는 깊은 못이 있고 바닷가에서 성에 이르는 동안에는 마병이 말을 달리지 못하도록 철 질려를 깔았다. 이만한 병력과 설비가 있으면 왠만한 적병은 무서워하지 아니하는 것도 그럴 듯한 일이다.

첨사 정 발은 이러한 모든 것을 믿고 배짱 편안하게 동헌에 앉아서 지난 밤 부족한 잠을 졸고 있었다.

이때에 일본 장수 소서 행장(小西行長)에게서 부산 첨사에게 사자가 왔다. 그 사자는 공손히 첨사에게 예하여 소서의 편지를 첨사에세 드렸다. 그 편지에는 보통 편지 모양으로 환훤의 인사가 있고 그 끝에 이번에 평수길이 대군을 발하여 명 나라를 치려 하니. 일본 군사레게 길을 빌려 무사히 명 나라로 들어가게 하라 하는 것이었다. 정발을 그 편지를 보고 비웃는 듯이 껄껄 웃고 내어던지며.

『네 저놈을 성 밖에 몰아 내쳐라!』

하고 호령하였다. 정 발의 생각에 그 편지는 괘씸한 것 보다도 엉큼하였던것이다.

2

군졸들은 소서 행장의 사자를 뒤 떨미를 짚어서. 그야말로 발이 땅에 붙을새 가 없이 성문밖에 몰아 내쳤다. 그러나 한 가지는 판명하였다. 그것은 이 배와 사람들이 해마다 오는 세견선과 상인들이 아니라. 싸우러 온 병선이요. 군사라는 것 이었다.

부산진 첨사 정 발은 소서 행장의 사자를 몰아 내고 곧 군중에 전령 하여 성문을 굳이 닫고 적병을 방어할 계획을 세웠다. 군사 이천명을 성 위에 벌여놓아 성 밖으로 모야 드는 적을 활로써 막게 하고. 남은 군사는 갈라서 혹은 성문을 지키게 하고 혹은 병기를 정리하게 하였다. 그리고 말을 놓아 다 대포 첨 사( 多大 포 僉使) 윤 홍신(尹洪信). 경상좌도 수군 절도사( 慶尙左道水軍節度使) 박 홍(朴泓). 경상 좌도 병마 절도사(慶尙左道兵馬節度使) 이각(李珏). 동래 대 도호 부사(東萊大都護府使) 송 상현(宋象賢) 에게 일본군이 길을 빌리라 하는말과 그것을 거절 하였다는 말과 자기는 부하를 거느리고 죽기로써 부산성을 지킬 터이니. 만일 부산진의 힘만으로 적군을 막아 내기 어려울 경우에는 시기를 놓치지 말고 구원해 달라는 말을 전하였다.

다대포는 남으로 이십리도 못되고 좌수영은 부산에서 동래부로 가는 중로에 있어서. 부산진에서는 십오리도 다못되는 곳이요. 거기서 동래부는 십리 남짓하였다. 좌병영은 울산 지경에 있으니. 그것도 부산진에서는 하룻길에 불과하였다.

정 발은 설사 칠백여 척의 일본 병선이 사오만의 군사를 싣고 왔다 하더라도 무서울 것이 없다고 하였다. 왜 그런고 하면 우리편 군사로 보면 부산진에 육천이 있고. 좌수영에 일만 이천이 있고. 동래부에 육천이 있고. 좌 병영에도 일만여 명이 있고. 게다가 적군이 가지지 못한 성과 지리가 있으며 또 인근에 거진 이 많은즉 이삼일 내로 오륙만의 군사를 모으기는 어렵지 아니한 일이라고 생각 하였다. 이렇게 방어의 계획을 세우고 첨사 정 발이 검은 공단 갑옷에 황금 투구를 쓰고 사랑하는 일검 보국(一劍報國 한칼로 나라 은혜를 갚는다)의 칼을 차고 말에 올라 군사를 지휘하고. 비장. 병장. 군관들도 모두 전복 전립에 우의를 갖추고 활시위를 팽팽하게 매고 새로 갈아서 약을 바른 살촉을 박은 화살을 전동에 가득하게 넣어 메고 성 위에 벌인 진중으로 돌아 다니며 군사 들을지 휘하여 적병이 몰아 오기만 하면 융전할 준비를 하고 일변 소와 개를 잡아 군사들을 한밥 먹이고 싸워서 이긴 뒤에는 칠백척 배와 뱃속애 있는 물건은 군사들이 맘대로 나누에 가질 것을 약속하였다. 이리하여서 하늘에 닿을듯 한 기운을 가지고 소서 행장의 군사가 쳐들어 오기를 기다렸다.

과연 진시가 되자 일대의 일본 군사다 뽀얗게 먼지를 날리며 장사 진형을 가지고 부산진을 향하여 달려 왔다. 멀리서 보기에 일만명은 될 듯하였다. 맨 앞에는 장수 같은 자가 말을 타고 앞섰고 중간쯤해서는 붉은 비단 갑옷을 입고 금빛이 번쩍거리는 뿔이 달린 투구를 쓴 대장이 여러 장수의 옹위를 받고 말을 타고 오는 것이 보였다. 이 붉은 갑옷을 입은 장수는 제일군의 대장인 소서행장이요, 진의 맨 앞에 선 장수는 선봉장 모리 휘원(毛利輝元)이었다.

소서 행장의 군대는 부산 해성에서 활 두어 바탕될 만한 곳에 와서는 진형을 학 익진( 鶴翼陣)으로 변하여 부산성을 에워 살 모양을 보이고는 잠간 진을 머무른 뒤에 어떤 장수 하나가 단기로 부산성 남문을 향하고 달려 와서 편지 하 나를전하였다. 그것은 아가 편지와 마찬가로 길을 빌려 달라는 것이요. 만일 빌리지아니하면 십만대군으로써 부산성을 무찌르겠다는 최후 통첩이었다.

『그놈을 죽여라!』

하고 비장들이 분개하였으나 정 발은.

『단기로 온 사자를 죽이는 것이 의가 아니다. 』 하여 만류하고 왜어 통사를 시켜.

『길을 빌리는 것은 일개 병장이 할 일이 아니니. 우리나라 왕께 여쭈어라.』

는 회답을 전하고 또.

『군사를 물려 서울서 회답하기를 기다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사정 없이 멸 하리라.』

는 위협하는 말을 보내었다.

3

소서 행장의 군사는 정 첨사의 회답을 받아 보고는 무엇을 생각함인지 군사를 돌려서 물러 갔다. 정 발은 적군이 물러 가는 것을 보고 심히 만만하게 여겨서.

제장을 불러서 술을 먹고 즐기고 순사들에게도 술을 주어서 질탕하게 먹었다.

마치 승전이나 한 듯하였다.

그러나 소서 행장 군이 물러 간 것은 결코 정 발과 그 부하가 생각 하는것처럼 서울서 회보가 오기를 기다리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부산 성의 방비가 심히 삼엄한 것을 보고 당장 공격하면 이기기가 어려운 줄을 알았기 때문에 아직 거짓 믿고 물러 가서 조선군으로 하여금 마음을 놓게 하자는 것이었다.

부산 성내에서는 군사나 백성이나 평일같이 희희 낙락하게 그날을 보내고 밤에 각각 자리에 들어 단잠을 잤다. 잠을 자서는 아니 될 첨사 정 발과 부하 장졸들까지도 잠을 잤다.

이날은 곧 산과 들에 꽃까지도 역력히 볼 수가 있었다. 따뜻하고 생명에 찬 첫여름의 달밤은 극히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성뭉을 지키던 장졸들과 성랑으로 돌며 파수를 보던 장졸들도 잠이 들고 달이 서편 하늘에 기울어져 부산( 산 이름) 의 그림다가 먹과 같이 검게 부산성을 덮고 새벽빛은 아직 비치지 아니 한 축시 말 인시 초쯤해서 수만명 소서의 군사는 선봉장 모리 휘원의 지휘 밑에 열 겸 스무 겹으로 부산 해성을 에워 쌌다.

대게 일본군의 본진이 유둔하는 곳에서 부산진까지는 오리는 넘고 십리는 좀못 될 만한 가까운 거리이므로. 달이 넘어 가기를 기다려서 대군을 몰아 삽시간에 부산진을 에워 싼 것이다.

초저녁에는 그래도 파수도 보았으나. 닭이 울고 새벽이 가까우매 술 취하고 훈련 없는 군사들은 그만 잠이 들어버린 것이었다.

소서군은 부산의 지리를 황하게 잘 아는 왜호(倭戶)를 앞잡이로 성못(성 밖에 파놓은 못)의 얕은 데를 가리고 성내의 수비가 약한 곳을 가리어서. 일변 흙으로 못을 묻어 길을 내이고 일변 비제(飛梯)를 성애 놓고 깊이 잠든 부산성으로 터 놓은 물같이 밀어 들었다.

소서군은 성에 들어오는 대로 집에 불을 놓고 조총을 콩 볶듯 놓아 그들이 지나가는 자리에 피와 주검이 길을 막았다. 마음 놓고 자던 백성들은 이 불의의 변에 놀라시 혹은 어린 아이를 안고 혹은 늙은 부모를 업고 갈팡질팡 하다가.

혹은총에 맞아 주고 혹은 군사에게 밟혀 죽었다. 조선 군사들도 활을 들어 응 전하 였으나 벌써 겁을 집어 먹을뿐더러. 처음 당하는 조총의 위력에 활이 당하기가 어려웠다. 만일 먼 거리에서 마주 보고 싸우면 활이 조총(그때 조총은 멀리는 못 갔다)보다 나은 수도 있었으나 단병 접건에는 도저히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일본 군사는 시가 싸움에 익되 조선 군사는 야전에만 익엇 어느 편으로 보든지 조선이 불리하였다. 길 잘 아는 왜호를 앞세운 일본군은 내 집에 들어가듯이 성내의 요새지를 점령하고 마침내는 첨사 아문을 포휘하고 첨 사에게 항복을 권하였다.

『사또! 형세가 이 지경이니. 인제는 항복하는 수 밖에 없지 아니하오.』

하고 바장(비장) 황 운(黃雲)이가 칼을 들고 달려 나가려는 첨사 정 발의 갑옷 소매를 끌었다.

4

『항복을 말하는 자는 군법에 처하리라.』

하고 정 발은 여전히 싸움을 독려하였다. 영문 안에 남은 군사가 아직 천명은 남았다. 육천명 군사 중에 오천명은 벌써 다 죽은 것이다. 비록 늦게 응 전하 였으나 정발은 잘 싸웠다.

『에크. 검은 갑옷!』

하고 일본 군사는 정 발의 검은 갑옷이 번쩍할 때면 무서워하였다. 그의 칼은 참으로 신인 듯하여. 그의 칼이 번뜩이는 곳에는 적병이 삼 슬 듯하였다.

그러나 중과 부적하여 정 장군은 마침내 남은 군사를 끌고 영문 속에 물러와 서 최후까지 싸우기를 결심한 것이다.

해는 올라 왔다. 성내에는 화광이 충전하고 성 위에는 도처에 붉은 기였다.

붉은 기는 일본 군사의 기었다. 남은 군사도 하나씩 적군의 조총알에 맞아 거꾸러지고 한량 있는 화살도 거진 다하였다. 푸르륵하는 조선 군사의 활 쏘는 소리. 밖으로 들려오는 백성들의 우짖는 소리!

『사또! 인제는 살도 다하였으니. 도망 하엿다가 훗기회를 기다림이 어떠하오?』

하고 비장 황운이 정 발에게 청하였다. 활을 쏘자니 살조차 없는 군사들은 부질없어 활을 들고 첨사를 바라볼 뿐이었다. 안에서 화살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일본 군은 납함하며 삼문 밖에 다다랐다.

정 발은 웃으며.

『사내가 죽을지언정 도망을 한단 말이냐. 나는 이 성의 귀신이 될 터이니.

가고 싶은 자는 가거라........』

하고 칼을 빼어 들고 삼문을 향하여 나갔다. 마지막으로 적을 하나라도 죽이고자 기도 죽자는 것이었다. 어제 저녁을 먹고는 아직 아침도 먹지 못한 군사들은 축시 말에서부터 진시가 넘도록 싸우는 통에 시장한 줄도 몰랐으나 살이 진하고 더 싸울 기력이 없으니. 일시에 시장과 피곤이 오는 듯하였다. 그러나 정 발의 비장한 말에 군사들은 다시 기운을 내어.

『우리도 사또와 같이 이 성 귀신이 되려오!』

하고 칼이 있는 자는 칼을 들고 칼도 없는 자는 활집과 몽둥이를 들고 정발의 뒤를 따랐다. 정 발은 삼문을 열기를 명하였다. 삼문은 열렸다.

밖에 있던 소서 행장의 군사는 와! 하고 안으로 몰려 들었으나 정 발의 칼 바람에 경각 간에 수십명이 죽는 것을 보고 뒤러 물러섰다.

정 발은 칼을 두르며 도망하는 소서 행장의 군사를 따라 고루(북단 다락) 까 지나갔다. 군사들도 정 발의 뒤를따라 용감하게 적군을 엄살하여 수백의 적군을 죽이면서 장거리까지 나왔으나. 마침내 정 발은 조총의 탄환에 십야 군데를 맞아 땅에 엎더졌다. 비장 황 운은 엎더지는 정 발을 안아 일으키려 하였으나. 그 도 탄환에 맞아 주장을 안은 채로 넘어져 죽었다.

이리하여 진시말에 부산진 육천명 장졸은 거의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워 죽고.

부산진은 일본군에게 점령함이 되었다. 이날에 일본군이 죽은 것도 사천이 넘었다.

5

정 발은 형세가 위급함을 보고 여러 번 좌수영9이십리미만)에 구원을 청 하였으나. 좌수영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그중에 몇 사자는 적군에 붙들린 것도 사실이지만 빤하게 바라보이는 곳에서 경상 좌수사 박 홍이 부산진이 위급한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부산진을 일본군이 에워 쌌다는 말을 듣고 경상 좌수사 박 홍은 곧 애첩과 가족을 동래부로 피란시키고 자기는 경보를 몸에 지니고 뒤산에 올라 부산진의 형세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후. 군관 중에는 군사를 내어 부산진을 구원하자는 사람도 있었으나 박 홍은.

『군사를 경솔하게 움직일 수 없다. 』 는 핑계로 듣지 아니하였다. 약한 장수의 밑에는 강한 군사가 없었다.

부산진에서 위급하다는 기별이 와도 수사가 꼼짝하지 아니하는 양을 보고 군관.

군졸들은 모두 장수의 밎지 못할 것을 생각하고 가족과 재물을 뭉쳐 가지고 동래부로 도망하였다.

그러다가 정 발로부터.

『위급하다. 곧 구원하라.』

하는 최후의 고목이 온 때에 박 홍은 창황히 말을 내이라 하여 도망할 준비 를하고 그래도 후일에 책망을 두려워함인지 서울로 사람을 놓아.

『부산성에는 붉은 기가 찼아오니 아마 적에게 함락된 듯하나이다.』

하는 장계를 띄우고 군사를 시켜 군량고와 병기고와 민가에 불을 놓게 하고말을 몰아 동래성을 향하고 달아났다. 군사 삼만을 가진 거진으로 한번 싸워 보지도 못하고 달아나는 수사 박 홍을 향하여 군관 오 억년(吳億年)은 무수 히 욕질하고 마침내 분을 참지 못하겨 활을 당기어 박 홍의 등을 쏘니. 박 홍은 맞아 말에서 떨어지고 말은 놀래어 북을 향하고 달아났다.

오 억년은 수사 박 홍을 죽이고 (기실은 죽지는 아니하였다) 남은 군사를 수습하여 달려 가 부산을 구하려 하였으나. 한번 흩어진 군사의 마음은 다시수 습할 길이 없어 몇 개 동지를 규합하여 빈 성을 지키리고 하였다. 죽은 줄 알았던 박 홍은 죽지는 아니하였다. 다만 그엉덩이에 살이 박혔을 뿐이었다.

그는 종자의 도움을 받아 천신 만고로 밀양까지 도망하였다. 차마 동래부로 들어갈 염치는 없었던 것이다.

부산진을 손에 넣은 소서 행장은 선봉 모리 휘원에게 명하여 곧 좌 수영을 치게 하였다. 그러나 좌수영의 일만 이천 장졸은 이미 수사 박 홍의 본을 받아다 흩어지고 오직 군관 오 억년이 죽기를 맹세하는 수백의 군졸을 거 느리고 모리 휘원의 오만 대군을 대항하였으나 그것은 손으로 바닷물을 막는 것보다도 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오 억년과 그 동지들은 한 아니 남고 다 죽기까지 싸웠다. 일본군이 동래성에 다다른 것은 부산진이 함락된 십사일 신시였다.

이보다 먼저 동래 부사 송 상현(宋象賢)은 일본군이 부산성을 친다는 경보를 듣고 곧 좌병사(左兵使)이 각(李珏). 울산 군수(蔚山郡守)이 언함(李彦譀) 양산 군수( 梁山郡守) 조영규(趙英珪) 에게 이문하여. 구원을 청하였다.

송 상현의 계획으로 말하면. 동래성에 일본군을 막아 한 걸음도 내지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만일 동래부가 함락이 된다고 하면.

일본군은 밀양을 도f아서 서울로 향할 수도 있고. 경주를 돌아서 서울로 향 할수도 있으니. 동래 한 목에서 막지 못하면 그 십배의 힘을 가지고도 막아 내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6

경상 좌병사 이 각은 동래 부사 송 상현의 말을 옳게 여겨 조 방장( 助防將) 홍윤 관( 洪允寬). 울산 군수 이 언함과 칠천 병마를 거느리고 밤도와 행군 하여 십사일 오정에 동래부에 도달하고 양산 군수 조 영규도 군사 이천을 거 느리고 그보다 좀 일찍 동래성에 들어 왔다. 이리하여 동래성에는 모두 이민의 군사가 있었다. 미시 말이나 되엇 부산진의 패보가 동래에 들어오고 또 얼마 아니하여 좌수사 박 홍이 성을 버리고 달아나서 좌수영이 싸우지도 아니하고 무너졌다는 경 보가 들어 왔다. 이 경보를 받더니 참땋게 있던 좌병사 이 각(李珏)이 동래부 사 송 상현을 보고.

『여보 동래. 나는 가오.』

하고 동래에서 떠날 차비를 하였다.

『가시다니 사또가 어디를 가신단 말씀이요? 적병을 막으려고 밤도 와어셨다가 적병이 온다는 소문을 듣고 가시다니. 어디로 가신단 말이요?』 하고. 송 부사는 병사의 소매를 붙들었다.

『아니. 내가 피하는 게 아니요. 나는 대장이니까 밖에 있어서 각진 군사를 지휘를 하야지 성안에 있어서 쓰겠소. 성을 지키는 것은 동래가 맡아 하오.』 하고. 동래 부사 송 상현이 붙드는 것도 뿌리치고 아병 이십명만 동래에 머무르게 하고 자기는 별장과 군사를 데리고 서문을 열고 달아나 소산( 蘇山) 이란 곳에 진을치고 있었다.

좌병사 이 각은 부산진이 함락되고 첨사 정 발이 육천 병사로 더불어전 사하였단 말을 듣고 잔뜩 겁을 집어 먹어서 듣기 좋은 핑계로 동래성을 빠져나온 것이다. 그의 생각 같아서는 곧장 서울로 도망이라도 하고 싶건마는.

아직도 염치가 약간 남아서 소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니. 여기서 기회를 보아서 동래성 싸움에 일본군이 지면 자기도 의기 양양하게 동래성으로 들어 가고.

동래가 지면 내빼자는 계교다. 왜 태평 시절에 병사 노릇을 못하고 난시에 병사가 되었던고 하고 이 각은 수없이 한탄하였다.

이 각이 바로 소산에 이르러 자리를 잡을 만한 때에 동래성에서는 포향과 고각이 진동하엿다. 일본군과 접전이 된 것이다. 이 각은 자기가 선견 지경명이 있어서 도망한 것을 다행히 여겼다.

병사 이 각이 달아난 뒤에 동래 부사 송사 송 상현은 그 병슬을 따라 주장이 되어서. 동래성 남문에 올라 전군을 지휘하였다. 울산 군수 이 언 함( 李喭諴) 은죄 위장은 삼아 동문을 지키게 하고. 양산 군수 조 영규(趙英珪)호 우위장을 삼아 서문을 지키게 하고. 조방장 홍 윤관(洪允寬) 으로 충군을 삼아 성중과 북문을 지키게 하였다. 십사일 유시에 일본군의 선봉이 동래 남문 밖인 취병장( 지름 말로 연병장)에 이르러 유진하였다.

일본 진중으로서 어떤 키 큰 순사 하나가 무기를 들지 아니하고 손에 흰 목패 하나를 들고 성 가까이 오더니 그것을 성중에 던졌다. 군사가 그 목패를 집어 부사 송상현에게 드리니. 부사는 가도 문제에 관하여 평 수길의 사자인 대마도 주평 조신( 平調信 =() 調信)과 절충한 일도 있었고 또 조정으로부터「다시 가도에 관한 청이 있거든 단연 거절하고 이체 접제 말라.」는 훈령도 있으므로.

.

.(죽어도 길을 못 빌린다.)』

이라고 큰 목패에 써서 성 위에 세우게 하고. 곧 방포하고 활을 쏘아 싸움을 돋우었다.

7

해가 지도록 양 진이 대 접전을 하여 피차에 수천명의 사상자가 생겼으 나무 론 승부가 나지 아니하였다. 밤도 낮과 같이달이 밝았으므로 으레히 일본군 이엄 습할 것을 믿었으나 적연히 아무 소리가 없었다. 군사들은 아마 일본군이 잠을 자고 내일 날이 밝기를 기다려서 싸우려는 가 하였다.

그러나 일본 군사는 자지 아니하였다. 동래 부사 송상현이 쉽사리 달아나거나 항복 할 위인이 아닌 줄을 안 일본군은 계교를 쓰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것은 밤 동안에 군사를 성으로 돌려 방비가 약한 북문으로 쳐들어 오자는 것이었다.

송 부사는 충성과 용기가 있었으나 결코 장수의 재목은 아니었다. 하물며 울산 군수 이 언함은 병사 이 각이 달아날 때에 같이 따라 가지 못한 것을 향 하여 벌벌 떨고 앉았고. 오직 조방장 홍 윤관. 양산 군수 조 영규 같은 장수들은 죽기 로써 성을 지키려고는 하나. 적군은 오만이 넘고 이편은 이만이 다 못되니.

비록 성이 있다. 하더라도 승패는 벌써 정한 일이었다. 만일 도망하였던 이 각 이그 군사를 끌고 온다면 며칠 동안은 견딜 만도 하지마는 돌아 올 사람이 도망 할리가 있는가.

이렇게 군사는 잔약하고장수는 없는 동래성은 마치 도마에 오른 고기와 같은데. 사월 보름의 달 그림자는 점점 금정산(金井山)으로 빗기고 뒷산의 두견만 목이 메어 울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진중은 죽은 듯이 고요하였다.

지금으로 이르면 아침 네 시가 될락말락한 때에 동북방을 지키던 군사가 놀래어 일시에 소시를 쳤다. 그것은 새벽빛이 훤히 올려 쏘는 동쪽으로부터 불의에 괴상한 물건이 올라 온 때문이다. 보통 사람의 삼 갑절이나 큰 허수아비에 붉은 옷을 입히고 푸른 수건을 동이고 등에 붉은 기를 지고 번쩍번쩍 하는 긴 칼을 찬 흉물이 성안으로 넘실넘실 들여다보는 것이다.

밤새도록 겁을 집어 먹고 있던 군사들에게 이 흉물은 완전히 정신 착란을 주었다. 더구나 장수 되는 울산 군수 이 언함이 소리를 치고 달아나는 것을 보고는 군사들은 병기를 던지고 통곡하였다.

그러나 이 언함이 피신할수 있기도 전에 성을 넘어 정말 일본 군사들이 칼을 두르고 조총을 놓으며 달려 들었다. 울고 불고하던 조선 군사들은 두 팔을 들고 땅바닥에 앉은 대로 칼과 총에 맞아 죽었다. 달아나던 이 언함은 다리에 기운이 없어 일본군에 붙들렸다.

그는 일본 군사 앞에 엎드려 합장하고 살려 달라고 빌었다. 일본군은 그가 울산 군수 이 언함인 줄 알고는 죽이지 않고 뒷짐으로 결박을 지어 앞을 세우고 성내의 길을 인도하라고 하였다. 이 언함은 길을 인도하여 부사 송 상현의 진을 가리켰다. 일본군은 성을 넘어서 엄살하는 줄을 안 조방장 홍 윤 관은 군사를 돌려 일본군이 남문으로 향하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그의 군사는 너무나 적었다. 홍 윤관이 거느린 이천명 군사는 순식간에 총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홍윤 관 자신도 군사들과 한 가지로 맞아 죽었다. 그러나 홍 윤관이 죽은 것이 결코 값이 없지는 아니하였다. 홍 윤관의 저항이 없었던들 남문에 있는 본진은 준비도 없는 동안에 경각 간에 함몰을 당하였을 것이다. 그 뿐더러 홍 윤관의 군사는 졌더라도 하나가 하나씩은 적군을 죽이고 죽었다.

8

홍 윤관의 군사가 전멸을 당한 뒤에 일본은 조선군의 시체를 밟고 넘어 관사 앞을 빠져 나왔다. 그러나 거기는 서문을 지키던 조 영규가 지키고 있었다. 관앞은 길이 넓어서 양쪽 군은 수천명이 한꺼번에 단병전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때에는 소서 행장군의 주력이 남문의 본진을 습격할 때이므로 본진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무서운 혈전을 하기 약 한 시각에 조 영규는 민가의 지붕에서 내려 쏘는 적의 총환에 맞아 죽고 조 영규는 군사도 거의 전멸하였다.

진시가 넘어서 남문을 본거로 한 본진은 복배로 적의 공격을 받았다.

부사는 비장 송 봉수(宋鳳壽). 김 희수(金希壽). 향리 송 박(宋迫) 등을 데리고 끝까지 싸웠으나 중과 부적하여 마침내 남문은 열리고 본진은 함락이 되었다.

남문을 중심으로 길과 성에는 피를 뿜고 넘어진 군사가 몇 겹씩 덧쌓였다.

부사 송 상현은 일이 끝난 줄 알았다. 죽더라도 이 나라의 신하 된 절과 예를 잃지 아니하리라 하여. 갑옷 위에 조의를 껴입고 호상에 걸터 앉아 싸움을 독려 하였다. 이윽고 일대의 일본 군사가 남문 누상으로 침입하여 상현에게 칼을 견 주었다. 그 군사들 중에 평 조익(平調益)이라는 장수가 있어서. 상현을 향 하고 달려 드는 군사를 제지하여 뒤로 물리고 상현더러 어서 도망하기를 재촉 하였다.

대개 평 조익은 대마도주 평 조신의 친척으로서 작년에 동래부에 사신의 한 사람으로 와서 송 상현의 관대를 받았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상현은 듣지 아니하였다.

『내가 왕명을 받아 이 성을 지켰거든. 죽기 전에 이 자리를 떠나겠느냐.』

하였다. 그래도 평 조익은 상현의 옷을 끌어 피할 틈을 가리켰다. 상현은 마침내 면하지 못할 줄을 알고 호상에 내려 북 향하고절한 끝에 부채를 당기어.

( .

.

.

.)』

이라고 쓰니. 이는 그의 노부 복홍(福興)에게 보내는 결별사다. 그 뜻으로 말하면.

『외로운 성이 적에 에워 싸였으되. 다른 진들이 본체 아니하도다. 군신 의의는 무겁고 부자의 은은 가볍도다.』함이다.

평 조익도 송 상현을 구하지 못할 줄 알고 밖으로 몸을 피하니. 다른 군사들이 달려 들어 칼로 상현을 위협하고 항복을 청하니. 상현은 오른손에 병부를 잡고 왼손에 구리인을 잡고 호상에 앉은 대로 움직이지를 아니하였다.

이때에 벌써 성중에는 어디나 붉은 기가 날리고 총소리와 고각함성도 그쳤다.

『사또. 항복을 하시오. 거역하면 죽을 길 밖에 더는 있소?』

하고. 송 사현에게 권하는 것은 울산 군수 이 언함이었다. 그는 일본 장수의 복색을 입고 일본 칼을 찼다. 송 상현을 대하매 부끄러워 감히 낯을 들지못하나. 모리 휘원의 명령을 거슬리지 못하여 말을 한 것이었다.

『이놈. 역적놈아!』

하고. 상현은 이 언함을 보매 눈초리가 찢어질 듯하고 그의 검은 어룩 ㄹ 은 노기로 주홍빛이 되었다. 상 현은 병부와 인을 한 손에 걷어 쥐고 한 손으로 칼을 빼어 이 언함을 치려 하였으나. 곁에 있던 일본 군사 하나가 나는 듯이 칼을 들어 송 상현의 칼 든 팔을 쳤다. 상현의 팔은 조복 소매와 함께 떨어졌다.

또 한 일본 군사가 상현의 병부와 인을 잡은 팔을 찍으니. 상현의 팔은 병부 와인을 꼭 쥐인 대로 마루에 떨어졌다.

두 팔을 다 잃은 상현은 오른편 발로 자기의 떨어진 손에 있는 인과 병부를 밟았다. 오른편 발과 왼편발이 다 떨어지매 상현은 엎드려 인과 병부를 입에 물었다. 그의 목이 잘릴 때에도 그의 입은 병부와 인을 놓지 아니하였다. 병부 와인을 아니 놓는 것은 오늘날로 이르면 국기나 군기를 아니 놓는 것과 같은 일 이었다. 이리하여 동래성 남문에서 송 상현은 죽었다.

달아나는 이들 1 상현이 팔과 다리와 목을 잘리어 죽은 뒤를 이어서 부사와 같이 있던 비장 송 봉수( 宋鳳壽). 김 희수(金稀壽). 향리 송 박(宋迫). 상현을 따라 다니던 신여로( 申汝櫓) 등도 항복하지 아니하고 주장의 곁에서 같이 죽었다.

이일이 끝난 뒤에 적군의 대장 평 의지(平의지)와 일본 중으로서 조선에 여러 번 사신으로도 다니고 임란을 통하여 소서 행장의 군중을 떠나지 아니 한 현 소( 玄蘇) 가 와서 송 상현을 찾으니. 부하가 그 참혹한 여러 시체를 가리키며 이 속에 있다고 하였다.

『죽기전에 무슨 말이 없더냐?』

하고. 평 의지가 물으니. 부하가.

『이것이 이웃 나라의 도리냐? 우리 나라가 너희 나라를 배반한 일이 없거든.

네 어찌 우리를 배반하느냐. 하더이다. 』 하고 대답하였다. 평의지는 송 상현의 시체를 수습하여 동문 밖에 장사 하게하고 남편을 따라 죽은 상현의 첩 김 섬(金纖)도 그 곁에 묻게 하였다. 이렇게 동래성이 함락된 뒤로는 일본군은 거의 아무저항이 없이 서울을 향하고 올라갔다. 다대포 첨사(多大浦僉使) 윤 홍신(尹洪信)이 그 아우 홍제(洪梯)와. 함께 죽고. 밀양 부사(密陽府使) 박 진(朴晉)이 동래를 구하러 갔던 길에 황산( 黃山)에서 적군을 막으려 하였으나 소서 행장. 송포 진신( 松浦鎭信) 등의 군사에게 패하여 군관 이 대수(李大樹). 김 효우(金孝友)와 군사 삼백여 명을 잃고 밀양(密陽)으로 도망하였으나 그것도 지키지 못하여 군기와 창고를 불 사르고 산으로 달아나고. 동래를 버리고 달아난 경상 좌도 병마 절도사 이각( 李珏) 은 동래가 위태하여 운명이 경각에 달린 것을 보고는 소산( 蘇山)을 버리고 군사를 끌고 병영(兵營)으로 달아 돌아 와 인마를 발하여 그 사랑 하는 첩과 무명 일천 필을 서울 집으로 실려 보낼 제 그것을 반대한다 하여진 무( 鎭撫) 를 베었다. 밤에 병영 안에 경동이 일어가기를 사오 차나 하였으나 대장인 이 각이 그것을 진정하지도 못할뿐더러 새벽을 타서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이때에 병영에는 십 심 읍의 군사 오만여 명이 모여 있었다. 이 각이 달아나려는 것을 보고 안동 판판 안 성(安東판判安性)이 그 불가함을 책한즉.

그러면 그대는 제장으로 더불어 성을 지키고 그대의 정병을 나를 달라. 내 나아가 서산(西山)에 진을 치었다가 적이 오거든 내외 협공하자 하였다. 안 성 이그 말을 좇았더니 이 각이 서문으로 나아가 태화강(太和江)을 가리키며.

『이놈들아. 적군이 벌써 저기 온 줄을 몰라.』

하고 말을 채쳐 달아났다. 단 성이 이 각이 달아나는 것을 보고 칼을 만지며 분개하였다.

병사의 우후 원 응두(元應斗)가 또 성 밖에 나가기를 청하는 것을 안 성 이소리를 높여.

『내가 이 각이 놈을 못 베인 것이 한이어든. 네놈도이 각이 놈을 본받아 달아나려느냐.』

하니. 응두가 살려 달라고 빌었으나 얼마 아니하여 달아났다. 그뒤를 따라 장수들과 관리들이 다투어 달아나니. 병영에 모이었던 십 삼 읍 오만 대군이 한번 싸워 보이지도 못하고 흩어지고 말았다. 김해 부사(金海府使) 사 예원( 徐禮元) 이 성을 버리고 달아나고. 초계 군수(草溪郡守) 이 유검( 李惟檢) 이 달아 나고. 경상 우도 병마. 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조 대곤( 曺大坤) 이영문을 버리고 달아나고. 경상 감사 김 수(金脺)가 군사를 거느리 고 진주에 있어서 동래와 부산을 성원하려다가. 동래. 부산이 함락되었단 말을 듣고는군 사를 버리고 영산(靈山)으로 달아나고. 여러 고을들이 이어 함락된다는 소문을 듣고는 영산에서 합천(陜川)으로 달아나고. 또 합천에서 지례(知禮)로 달아나고.

그리고도 달려 온 초계 군수 이 유검을 만나서는 성을 버리고 달아난 죄로 유검을 베었다.

경주 부(慶州府)는 언양(彦陽)으로 질러 온 가등 청정( 加藤淸正) 군에게 포위 되어 부윤 윤 인(尹仁)은 마침 없었고. 판관 박 의(朴毅)와 장기 현감( 長鬐䝮監) 이 수일(李守一)이 싸우지도 아니하고 달아나 버렸다.

2

부산 함락의 경보가 서울에 올라 온 것은 사월 십 칠일이었다. 이 것은 달아나기로 첫째인 경상 좌도 수군 절도사 박 홍(朴泓)이가 달아나면서 보낸 장계다.

『부산진에 연기 나고 붉은 기가 찼아오니 아마 적군이 들어 온 모양 이로소이다. 』 한 것이었다. 이 경보를 듣고 왕은 이것이 다 김 성일(金誠一)이 일본을 다녀와서 보고를 잘못한 것이라 하여 우선 김 성일을 잡아 올리라 하였다. 이때에 김성일은 경상 우도병마 절도사가 되j 부임하는 길에 있었다. 정진(鼎津)을 건너 해 망원( 海望原)에 이르러서 성을 버리고 도망해 오는 갈린 병사 조 대 곤( 曺大坤)을 만나서 인과 병부를 받았다. 그리고 성일이 함안에 이르 렀을 때에 나명을 받은 것이다.

성일이 갈리고 조 대곤이 다시 병사가 되었으나 적군이 온단 말을 듣고 다시 달아났다. 왕은 부산. 동래가 함락되고 적군이 무인 지경같이 내지로 들어 온 단말을 듣고 심히 놀래어 곧 영의정(領議政)이 산해(李山海). 좌의정( 左義政) 유성룡( 柳成龍). 우의정(右議政) 이 양원(李陽元) 등을 불러 방어할 계책을 물었다.

그러나 삼 대신은 맥맥히 서로 볼 뿐이었다.왜 그런고 하면. 그들은 다 일본군이 오지 아니한다고 보아 양병을 반대한 자들일뿐더러. 서울에는 군사라고는 명색 뿐이요. 정말 싸울 만한 것은 없었음이었다.

정부 대신과 비변사(備籩使)를 삼아 중로(가운데 길)를 지키게 하고. 성 응길( 成應吉) 로 좌방어사(左防漁使)삼아 좌도로 보내고. 조 경( 趙敬)으로 우방 어사( 右防禦使) 를 삼아 서로(서쪽 길)로 보내고. 유 극량(劉克良)으로 하여금 죽령( 竹嶺)을 지키게 하고. 변 기(邊璣)로 하여금 조령(鳥嶺)을 지키게 하고. 변응성( 邊應星)으로 경주 부윤(慶州府尹)을 삼기를 청하였다. 그리고 군사는 없으니까 저마다 모집을 해 가지고 가기로 계책을 세웠다.

그러나 왕은 좌의정 유 성룡을 신임함이 자못 두터워 유 성룡의 계책을 들어 병조 판서(兵曹判書) 홍 여순(洪汝諄)을 갈고 김 응남(金應南)으로 대신케 하고.

심 충겸(沈忠謙)으로 병조 참판(兵曹參判)을 삼으니. 이는 일굴 병마의 권을 유성룡으로 도체찰사(都體察使)를 삼아 병마의 최고 감동권을 주었다. 유 성룡 은병조 판서 김응남으로 부체찰사를. 옥에 갇혀 있던 전 의주 목사 김 여물( 金汝朆)을 특사하여 수원을 삼기를 청하고. 당대 명장으로 누구나 첫 손가락을 곱는 이 일(李鎰)로 순변사(巡邊使)를 삼아 곧 전장으로 향하게 하였다.

새로 순변사가 된 이 일은 곧 발정하려 하였으나 데리고갈 군사가 없었다.

일병조의 선병안(選兵案)을 드리라 하여 보니. 대부분은 시정(市井). 백정(白丁).

서리(胥吏) 따위로. 양반의 자제. 돈 있는 사람의 자제들은 이 핑계 저 핑계로 탈을 하고 빠지려고만 하였다. 이 일이 명을 받은 지 삼일이 되어도 군사 가모이지 아니하니 하릴 없이 이 일은 손수 부하를 데리고 먼저 발정하게 하고 별장 유 옥(兪沃)으로 하여금 군사를 모집하여 가지고 뒤를 따르게 하였다.

이일이 서울을 떠나매 조정에서나 민간에서나 잠시 안심이 되었다. 그는 이일이 명장이라는 이름을 믿은 것이었다. 그러나 밀양이 함락되었다. 경주가 점령 되었다 하는 경보가 연해 오고 종남산 봉수에 세 자루의 봉화가 아니 들리는 날이 없을 때에 서울의 인심은 물 끓듯 하였다.

양州와

1

忠州의 싸움 도체 할사 유 성룡은 신 입(申砬)을 불러서 계획을 물었다. 신 입은 이 일과 아울러 당대 명장이었다.

『대감은 무신이 아니니까. 쓸 만한 장수를 가리어서 이 일의 뒤를 돕게하시는 것이 양책이지요.』

하고. 신 입은 자기가 나서고 싶은 뜻을 보였다.

『적군을 막을 방략이 있소?』

하고. 유 성룡이가 물으매. 신 입은 자신 있는 듯이 웃으며.

『당대 명장 신 입이 적군을 못 무찌르면 살아서 돌아오지는 아니하겠소.』

하고. 장담하였다.

유 성룡은 그 뜻을 장하게 여겨서 곧 병조 판서 김 응남과 함께 왕께 뵈 옵고 신 입으로 도순변사를 하시기를 청하였다.

신 입은 독자도 기억하시려니와 수군 전페 논자다. 제승 방략( 制勝方略) 이라는 극 히 악한 계획을 세우는 데 가장 일을 많이 한 사람이다. 제긍 방략이라는 것은 일본군과 싸우는 데는 바다에서 마지 말고 육지에 상륙시켜 놓고 싸우자는것이다. 그 이유는 일본군은 수전에 익으니 수전으로는 당하기 어려운즉 육지에 끌어 올려 놓고 우리 편에서 능한 육전으로 싸우자는 데 있다.

이 제승 방략이라는 것이 조정에서 결정되매. 의주 목사 김 여물( 金汝岉)을 적을 바다에서 막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육지에 내리는 길에도 막지 아니하고 내지로 끌어 들여서 싸운다는 것이 무슨 어리석은 소리냐 하고 분개하다 가묘의 를 비방하였다는 혐의로 급부에 갇히기까지 하였다.

신 입이 도순변사의 명을 받아 가지고 길을 떠나려 하여 왕께 하직 숙배를 할 때에. 왕은.

『경은 무슨 계교로 적군을 막으려 하나뇨?』

하고. 물었다. 이에 대하여 신 입은.

『염려 없소. 적이 용병할 줄을 모르오.』

하고. 아뢰었다.

『무엇을 보고 적이 용병할 줄을 모른다 하는가?』

하는 왕의 두 번째 물음에 신 입은.

『적군이 부산에 내리는 길로 내지로 들어오기만 힘쓰니. 외로운 군사를 끌고 깊이 들어 가서 패하지아니하는 자가 없소. 이런 것을 모르는 적군이니 두려울것이 없는 줄로 아뢰오. 소신이 재주 없사와도 불출 순일에 적을 평정하겠 사오니 상감 염려 부리시오.』 하고. 극히 쉽게 대답하였다. 왕은 못마땅히 여기는 빛으로.

『변 협(邊協)이 맹양 이르기를 왜가 가장 어렵다 하거든 경의 말이 어찌 그리 쉽느뇨. 삼가라.』

손수 보검을 신 입에게 주며.

『이 일 이하로 명을 좇지 아니하는 자가 있거든 이 검을 쓰라.』

하였다. 왕은 신 입을 보내고 그의 경솔하고 생각이 깊지 못함을 근심 하여 여러 번 변협(邊協)이 없음을 한탄하였다. 신 입은 빈청에 나와 영의정 이 산해.

좌의정 유 성룡. 우의정 이 양원 등에게 하직하고 바로 계하에 내리겨 할 때에 웬일인지 신 입의 머리에 쓴 사모가 땅에 떨어졌다. 사모를 다시 쓰고 의기양양하게 길을 떠났으나 이것을 본 사람들은 다 불길한 징조나 아닌가 하여실 색 히 였다.

2

순변사 이일. 도순변사 신 입을 적군이 오는 곳으로 파견한 조정과 서 울 백성들은 날마다 첩보(싸움에 이겼다는 기별)오기만 기다렸다.

어 문경을 지나 사월 이십 이일에 경상도 상주목(尙州牧)에 도달하였다. 이일이가 상주에 온 까닭은 이러하다.

부산서 서울로 오는 데는 길이 셋이 있으니. 이것을 삼로하고 한다. 일 찌 기 대장 변 협이.

『(

.

.

.(되와 왜가세 길 형세를 잘 아니 앞날 근심이 말할 수 없다.)』

고 한「세 길」이란 것이 이것이었다. 과연 일본군은 삼로의 형세를 잘 알아서 군을 셋으로 갈라 제 일군은 소서 행장(평 행장 평이란 성은 그때 일본 장수는 누구나 일컫는 것이었다.)이 주장되고. 이군은 가등 청정(加藤淸正)이 주장이 되고. 제 삼군은 혹전 장정(惑田長政)이 주장이 되었다. rmfojt 이미아는 바 와같이 제일군인 소서 행장의 군사는 사월 십 삼일에 부산에 상륙하여 부산. 동래.

양산. 밀양. 청도를 거쳐 지금 순변사이 일이가 막으려는 상주(尙州)로 향 하니이것이 가운데 길이요. 제 이군인 가등 청정군은 사월 십 칠일에 부산에 상륙하여 왼편 길로 향하고. 제 삼군인 혹전 장정군은 사월 십구일에 안골 포( 安骨浦)에 내려 김해를 점령한 것이니. 이것이 오른편 길로 향한 것이다.

가운데 길이라 함은 부산에서 양산(梁山). 밀양(密陽)청도(淸道). 대구(大邱).

인동(仁同). 선산(善山)을 거쳐 상주(尙州). 문경(聞慶)을 지나 새재( 새재) 를 넘어서 서울로 오는 길이요. 왼편 길이라 함은 곧 경상 좌도의 길이라는 뜻이니.

부산에서 기장(機張). 울산(蔚山). 경주(慶州).영천(永川). 신녕(新寧). 의 홍( 義 홍)을 겨쳐 용궁강(龍宮江)을 건너 대재(㐲載)를 넘어서 서울로 어는 길이요. 오른편 길이라 함은 주로 경상 우도의 길이란 말이니. 김해에서 성주( 星州). 무현(茂縣)강을 건너지례(知禮). 김산(金山)을 거쳐 추풍령( 秋風嶺)을 넘어 충청도 영동(永同)을 지나서 서울에 오는 길이다. 이제 이일은 이세 길중에 가운데 길로 적군이 올 것을 예상하고 상주에 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일이 상주에 들어 온다는 사월 이십 이일데 그를 나와 맞는 이는 오직 상주 판관( 尙州判官) 권 길(權吉)뿐이었다.

『목사(牧使)는 어디 가고 아니 나왔느냐?』

하고. 이 일은 판관 권 길을 보고 호령하였다. 이 일은 기골이 장대하고 얼굴이 희나. 눈초리가 우으로 찢어지고 . 목소리가 크고. 과연 장수의 위엄이 있었다. 더구나 이날은 영남의 거진인 상주목에 도달하는 날이라 하여 중로에 함창( 咸昌)에서부터 갑주에 위의를 갖추어 그 위엄이 만군을 누를 듯 하고 수종하는 제장들도 그와 같았다. 판관 권 길은 두려움을 보이며.

『사또께서는 상사또 지영한다 하옵고 아침 일찍 군사 이백명을 다 데리 고함 창으로 간다 하옵고 떠났소.』

하고. 아뢰었다. 과연 권 길은 영문 장교. 군노 수십명을 거느렸을 뿐이었다.

『목사가 나를 맞으러 떠났어?』

하고. 순변사는 일변 노하고 일변 의심하였다.

『과연 그러하오.』

하고. 판관 권 길은 사실대로 아뢰인 것이다. 상주 목사(尙州牧師) 김해( 金海) 는 이 일을 맞으러간다 칭하고 군사 이백명을 거느리고 상주 서문을 나갔으나 중로에서 군사들을 쉬라 하고 김 해는 단기로 잠간 다녀 오마 하고는 어디로 가 버리고 말았다. 군사들은 목사가 낮이 기울도록 아니 돌아 오는 것을 보고는 난을 일으켜 병기를 가진 채로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3

『군사는 다 어찌 되었느냐?』

하고. 순변사 이 일은 더욱 노발이 충관하였다.

『군사 없는 것은 상주만이 아니요. 영남 각 읍에 군사라고 있는 것은 더러는대 구로 가옵고. 더러는 상사또 내려 오시기를 기다리다 못하여 흩어져 산으로 달아나 옵고. 어느 고을에 가든지 남은 백성이라고는 늙은이나 병신뿐이오니 상주에 군사 없는 것이 소인의 죄가 아니요.』 하고. 판관 권 길은 굴지 않고 말하였다. 권 길의 말은 사실이었다.

진관제(鎭官制)가 페하고 각읍 군사가 도원수부(都元帥府)에 속하게 된 뒤로는 도원수 부에서 주장이 내려 오기 전에는 각읍 군사는 무장지졸이 되엇 움직일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부산 동래가 적군에게 함몰되었다는 기별을 듣고 영남 각읍에서는 소속 군사를 혹은 백. 혹은 이백씩 모아 놓고 기다렸으니 십여 일이 되어도 장수는 오지 아니하니 부득이 더러는 대구 감영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새로 난 순변사이 일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이 일이가 서울서 군사가 모집 되지 아니하여서 삼일을 지체하는 동안에 다 흩어져 피난을 가고 만것이었다. 그때 군사 제도로 말하면 오늘날 징병 제도와 같아서 남자로 낫 정년에 달하면 누구나 양반이나 상놈을 물론하고 국족까지도 군사가 되는 제도 였지만. 이백년 태평으로 내려 오는 동안에 제도가 해이해져서 양반의 자식.

돈 있는 자의 자식은 거짓 병신도 되고 늙은 부모의 외아들로 호적을 고치 기도하여 군사에 빠지고 오직 미천한 사람만이 군사가 되었던 것이다. 비록 권 길의 말이 옳지마는 군사가 흩어진 책임을 이일에게 들리는 것이 괘씸해서 이일은.

『판관을 내어 베이라.』

하고. 호령을 하였다. 군노들은 판관 권 길에게 달려들었다. 권 길은 잠간 할말이 있다 하고 이 일에게.

『소인이 죽기는 아깝지 아니하오마는 소인마저 죽으면 상사또는 군사 한 명 없이 무엇으로 적군을 막으시려오? 소인도 오래 국은을 받았으나 만일을 갚지못하고 죽는 것이 한이 되오. 오늘 밤만 소인을 살려 두시면 천명 군사 하나는 모아 보리다. 그러거든 내일 아침에 소인을 죽이셔도 늦지 아니하오.』 하였다. 이 일은 권 길의 말을 좇지 아니할 수 없었다. 권 길은 이날 밤에 상주의 육방 관속을 총출동을 시켜서 인근 사십리 이내에서 모두 구 백 명의 군사를 모집하였다.

군사라야 아무 조련도 받아 보지 못한 농부들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아직도 기운이 다 죽지 아니하여 서울서 큰 장수가 왔단 말을 듣고 모여 든 것이었다.

이 일은 상주에서 달아나고 남은 기생을 셋이나 한꺼번에 수청을 들여 밤을 새우고 아침 늦게야 벌겋게 된 눈을 가지고 일어났다.

권 길은 새벽부터 대령하고 있다가 이 일이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곧 구 백여 명의 군사 명부를 드렸다.

낮이 지난 뒤에야 이 일은 갑주에 위의를 갖추고 취병장에 나와서 신 모 군을 검열하고 부하를 시켜 그들에게 활 쏘기와 칼 쓰기 창 쓰기며. 법대로 지 퇴하는 방법을 조련하기를 명령하고. 판관 권 길을 불러 이렇게 군사가 있으면서도 미리 모아서 조련하지 아니한 것을 책망하고 공사 태만한 죄로 장 팔십에 처하였다.

이것이 목사 김 해의 책임일지언정 판관 권 길의 책임은 아니었다. 이 일의 이 처분을 보고 권 길 이하로 다순변사의 밝지 못함을 원망하였다.

4

권 길은 군사를 모집한 것이 도리어 죄가 되어서 장 팔십을 얻어맞았다.

군사를 조련할 때에도 이 일은 군사를 사랑하는 정이 조금도 없고 군사를 대하 기를 마치 개 돼지 대하듯하여 한나절 동안에 두 사람이 베임을 당하 고매를 맞은 군사는 수효를 몰랐다. 마치 장난삼아 사람을 죽이고 때리는듯 하였다. 군사를 조련하여 날이 거의 석양이 된 때에 개녕(開寧)사람 하나가 달려 와서 일본 군사가 선산(善山)을 점령하였다는 기별을 전하였다. 이 말을 들은 이 일은 그 개녕 사람을 불러서 앞에 세우고.

『네 이놈. 죽일 놈! 십 사일에 일본 군사가 동래에 왔다 하거든 아무리 빨리 오기로 청도. 경산. 대구. 인동은 다 어찌하고 벌써 선산에를 온단 말이냐. 이 놈 헛소문을 내어서 인심을 소동하는 놈이다. 』 하고. 곧 목을 베어 효시하라고 명하였다. 개녕 백성은 적군이 선산에 들어온것을 보고 그래도 이 기별을 하루라도 속히 순변사에게 알리고자 하여 허위 단심으로 와서 고한 것인데 도리어 죄가 되어서 목을 잃게 되었다. 그는 땅에 엎드려 이일을 향하여.

『소인이 추호인들 거짓 말씀을 아뢸 리가 있소. 하루 동안 소인을 살려 두셨다가 만일 내일 안으로 일본 군사가 상주에 들어오지를 아니하거든 그때 죽여 주시오.』 하였다. 이 일은 웃고 그 개녕 백성을 내려 가두라 하였다. 이튿날 상주 판관권 길이 새로 모집한 군사 구백여명은 쥐와 좀이 먹다가 남겨 놓은 낡은 군복을 입고 머리에는 퍼런 수건을 동이고 전통을 메이고 활을 들고. 칼 차는 자는 칼을 차고. 창 드는 자는 창을 들고 그래도 제법 군사답게 차리고. 그중 경군과 토군 합하여 한삼백명 가량은 말을 타서 마병이 되었다.

이 일은 이날 이십 오일 늦게 일어나서 가주에 순변사북문 밖 천 변에서 구백명 군사를 버려서 책에 있는 대로 진법을 연습하였다. 종사관 윤섬( 從事官尹暹). 박호(朴虎). 매 맞은 판관 권 길 등이 뒤에 옹위하고 서기양 양하게 군사들을 검열하였다.

겸열이 끝난 뒤에 어제 저녁에 잡아 가두었던 개녕 백성을 잡아 내어 목을 베어 높이 매어 달아 다시 적군이 온단 말로 민심을 소란케 하지 못 하도록 경계 하였다. 아직도 개녕 백성의 모가지에서 흐르는 피가 굳기도 전에 웬 검은 옷 입은 사람 두엇이 북천이라는 냇가 수풀 속에서 이쪽을 엿보고 달아나는 것을 군사들도 보고 이 일의 막하도 보고. 그것이 일본 군사의 척후인 줄도 짐작 하였으나 아무도 감히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상주성 중에 연 기 기둥이 일어나고 뒤이어 화광이 나니. 그제야 이 일도 의심이 나서 군관 하나를 시켜 가서 성중의 모양을 알아 보라고 하였다.

군관이 말을 달려 북문을 향하고 가기를 얼말 하여 북천 내 굽이를 건너는 다리에 다다랐을 때에 총소리 콩 볶는 듯 일어나며 순관이 말에서 떨어지더니 다리 밑으로서 일본 군사 한 명이 뛰어 나와 군관의 목을 잘라 가지고 들어가 버린다.

이것을 보고야 비로소 이 일도 개녕 백성의 말이 옳은 줄 알고 놀랐으나 벌써 손 쓸새도 없이 수없이 일본 군사가 고함을 치고 조총을 난사하며 엄 습함을 당하였다.

5

일본군은 선봉대로 조총대 수십명으로 하여금 관군의 전렬을 엄습하게 하고진을 좌우익으로 나누어 관군을 포위할 형헤르 보였다.

이 일은 곧 영을 내려 군사고 하여금 활을 쏘게 하였으나 한두 나절 밖에 활쏘기를 배우지 못한 군사들의 화살은 멀리도 가지 못하고 견양한 대로도 가지못하고 함부로 날랐다. 이것을 본 일본 군사들은 이거 웬 떡이냐 하는 듯이 조총을 놓으며 몰려 들어왔다. 그래서 앞줄에서 싸우던 군사 수십명이 순식간에 총을 맞아 넘어졌다. 순변사 이 일은 이 모양을 보고 말을 채쳐 뒤러 달렸다.

『사또. 어디로 가시오?』

하고 윤 섬. 박 호 등이 따라 서니 이 일은 뒤로 돌아 볼 사이 없이.

『자네들고 따라 오게. 따라 와.』

하고 그 좋은 백달마의 강철 같은 말굽으로 안개같이 먼지를 찼다.

『이놈 이 일아!』

하고 윤 섬이 이 일의 등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네놈이 받은 국은이 망극하거든 이제 싸우지도 않고 달아나면 무슨 면목으로 돌아 가 주상께 뵈오려느냐. 남아가 이 때를 당하여 한번 죽으면고만 이지 도망이 말이 되느냐. 다들 나를 따라라.』 하고. 말을 채쳐 적군을 향하여 달려갔다. 군사들 중에는 윤 섬을 따라 서는이도 있었으나. 하늘같이 믿었던 대장 이 일이 달아나는 것을 보고는 대부분 이활과 칼을 던지고 달아났다. 윤 섬도 죽고. 판관 권 길도 죽고. 변기( 邊璣) 의종 사관 이 경(李慶)도 싸워 죽었다.

일본 군사들이 이 일의 뒤를 따르니 이 일이 황굽하여 자기가 이 일인 것을 숨기기 위하여 마상에 앉은 대로 갑주를 벗어 버리고. 나중에는 탔던 말까지도 내어 버리고. 그래도 급하게 되니 입었던 옷을 벗고 촌가의 바자에 빨아 널었던 헌 잠방이 하나를 훔쳐 입고 머리를 풀어 산발을 하고 엎어지며 자빠지며 산속.

수풀 속으로 도망하여 밤중에 새재를 넘어 이튿날 아침에 충주(忠州)에 들어가도 순 변사( 都巡邊使) 신 입(申砬)의 진에 들었다. 이때에 도순변사 신 입은 열 도 병마 삼찬여를 거느리고 흐기 당당하게 충주에 내려 와 충주성 북단 월역( 丹月曆)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 일과 변기가 패하여 도망해 온 것은 선봉을 삼아 공을 세워 죄를 속 하기 로하고 종사관 전 의주 목사 김 여물. 조방잔 충주 목사(忠州牧師)등 여러 장수가 있었다.

일본군이 금명간에 조령을 넘어 온다 하면 어떻게 막을까 하는 데 대하여 두 가지로 의론이 갈렸다. 하나는 도순변사 신 입의 주장이니. 일본 군사가 조령을 넘어 충주 평야에 들어오기를 기다려서 기병으로 이를 깨뜨리면 반드시 이기리라는 것이요. 또 하나는 종사관 김 여물. 조방 장 이 종장 등의 주장이니.

관군은 적고 적군은 많은즉. 마땅히 새재를 지켜 군사를 수풀 속에 숨기고 깃발과 연기를 많이 보여 적으로 하여금 관군이 얼마나 되는지를 의심 하게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 입은 김 여물과 이 종장 등 수 뇌부를 데리고 새 재의 형세를 살피기까지 하였으나 자기의 주자을 고집하여 새재를 버리고단 월역에 본진을 두고 적군이 충주 평야에 들어오기를 기다려서 싸우기로 하였다. 주장이 하는 일이니 김 여물이나 이 종장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6

김 여물은 다시 신 입을 보고.

『적은 군사로 많은 군사를 대적하는 비결은 험액네 웅거하는 것이니. 적은 군사로 평야에서 많은 군사를 만나는 것은 만무일리요. 만일 새재의 험 액을 이용하 지아니 할진댄 차라리 물러 가 한강을 의지하여 서울을 지키는 것이 옳을까 하오.』 하고 진언 하였다. 그러나 신 입은 자부심이 많고 고집이 세어 김 여물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만.

『영감은 염려 마오. 적군은 내가 당하리다. 』 하고 호언하였다. 김 여물은 신 입의 어리석음을 보고 분개하여 반드시 패 하여 돌아가지 못할 줄을 알고 그 아들 유(濡)에게 이러한 편지를 썼다.

『삼

.

.

.

.

.

.

.

.기』

라 하였다. 번역하면.

『삼 도에 군사를 불러도 한 사람도 오지 아니하는 도다. 우리는 다만 빈주먹만 들었으니 사나이 나라 위해 죽음이 원래 할 일이어니와. 오직 나라의 부끄러움을 씻지 못하고 장한 뜻이 재를 이루니 하늘을 우러러 한숨 질 뿐이로다.』 충주를 막아 내이느냐. 못 막아 내이느냐 하는 문제는 곧 적군을 서울에 들이느냐. 아니 들이느냐 하는 문제다. 상주가 무너지고 적군을 넘겨 충주를 그 손에 맡길진댄 적군은 한걸음에 한강을 엄습할 것으로 보아야 하겠기 때문이다.

서울서는 이 일과 신 입을 떠나 보내고 얼마쯤 믿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매일 대관들이 모여서 적군을 막을 방략을 토의 하였다. 혹은 두꺼운 철로 전신갑(전신을 싸는 갑옷)을 만들어 군사를 입혀서 총을 막자 하였으나 실지로 만들어 놓고 보니 무거워서 운동 할수가 없어서 버리고. 또 혹은 한강에 높게 착을 만들어 적군을 막자는 의견을 내는 자도 있었으나 그것도 총을 막지 못하리라 하여 파의 하고 말았다. 이 모양으로 저마다 묘책을 내노라 하였으나 쓸 만한 것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이십 칠일 석양에야 순변사 이 일이 상주에서 패하여 달아나고 상주는 적군의 손에 들어갔다는 신 입의 장계가 올라 왔다.

이 기별을 들은 왕은 용상에서 발을 굴렀다.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냐? 』 하고 왕은 자못 황겁하였다. 이때에 도승지(都承旨)이 항복(李恒福)이 가만히 좌의정 유 성룡의 곁으로 가서 왼편 손바닥을 내어 보였다. 거기는.

『立馬永(

)』

라고 써 있었다.

『말을 영감문 안에 세웠다. 』 는 말이니. 왕을 모시고 달아나자는 뜻이다. 유 성룡도 그 밖에 길이 없을것을 생각하고 이항복이 말하는 뜻을 귓속으로 왕께 아뢰었다. 왕은 차마 먼저 달아날 말을 내이지 못하던 터이라. 곧 유 성룡의 말대로 하기로 결심하고 수상( 首相) 이 산해(李山海)에게 말한즉. 이 산해도 그럴까 하오 하는 뜻으로 대답 하였다. 그리고 곧 메루리. 은금. 반찬. 보교. 걸음 잘 걷는 교군군 등.

달아나기에 필요한 물건을 사들이기를 명하였다. 대궐 문으로 메투리 짐. 유삼.

보교 같은 물건이 들어 가는 것을 본 종친들과 일반 인민들은 대궐 문밖에 모 여통 곡 하였다.

『서울을 버리지 마오.』

하는 것이었다.

( 제목 모름) 1 대궐 앞에 수만의 군중이 모이어.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오.』

하고 아우성을 하고. 종친과 대관들 중에도 궐문 밖에서 통곡하는 이가있었다. 이때에 영부사(領府使) 김 귀영(金貴榮 일찍 이 순신에게 서녀를 첩으로 주려던 병조판서)이 왕께 뵈옵고.

『대가가 서울을 떠나시다니 안될 말씀이요. 종사가 서울에 있으니 죽기 로써 지킴이 가하오.』

하여. 분개한 눈으로 이 산해. 유 성룡의 무리를 노려보았다. 왕도 감동하여.

『종사가 이곳에 있거든 내가 어디로 가랴!』

하고. 서울을 떠나지 아니할 것을 단언하였다. 그리고 우의정 이 양원( 李陽元)으로 수성 대장(守城大將)을 하고. 이 진(李晋)으로 좌 위장( 左衛將) 을하고. 변 언수(邊彦琇)로 우위장을 하고. 박 충간(朴忠侃)으로 경 성 순 검사( 京城巡檢使) 를 하여 경성의 성첩을 수리케 하고 김 명원( 金命元) 르로 도원수( 都元帥) 를 삼아 한강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경성의 성첩이 삼만여 개인데 이것을 지킬 군사는 칠천명 밖에 못되고.

그것도 모두 오합지졸이어서 틈만 있으면 달아나려고 하였다. 관리들도 달아나고. 군사들도 달아나고. 낮 동안에 처자와 가산을 문 밖에 내 어감 추었다가 해가 넘어 가면 슬몃슬몃 빠져서 혹은 모악재를 넘고. 혹은 무 넘이를. 넘어 서도와 북도로 피난의 길로 달아났다. 전 이조 판서 유홍( 兪泓) 은.

『메투리가 궁중에 소용이 없고 은금이 적을 막는 병기가 아니니 이런 것을 궁중에 사들여 도망할 차비를 하는 것은 망국지본이니. 모로미 굳게 도성을 지켜 군신이 죽기를 같이 하소서.』 하고 큰 소리를 하면서도 그 가족은 남보다 먼저 피난을 시켰다.

사월 이십 구일 저녁에. 해가 뉘였뉘엿 인왕산으로 넘어 갈 때에 동대문으로 전립 쓴 사람 셋이 말을 달려 들어 왔다.

『옳다! 신 장군한테서 첩보 가지고 오는 군관이다!』

하고 백성들이 길에 나아가 물었다.

『 우리는 신 도순변 사또의 군관이러나. 사또는 이제 충주 탄금대에서 싸워 돌아가고 군사들도 거진 다 죽고. 살아 남은 군사들은 도망해 버리고 우리도 가까스로 몸을 빼어 안집 사람을 피난이나 시키려고 돌아 오는 길이요.』 하였다. 이말은 순식간에 장안에 퍼졌다. 왕은 충주의 패보를 듣고 통곡하였다.

그리고 버선발로 동상(東廂)에 나와 제신을 불러 계교를 물었다. 영의정 이산해( 李山海) 가 여짭대.

『사세가 이러하오니 거가가 잠시 평양에 행하심이 옳을까 하오.』

하였다. 도승지 이 항복(李恒福)이 여짭대.

『이때를 당하여 서편으로 명 나라에 향하여 회복을 도모할 수 밖에 없소.』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다만 입을 다물도 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도 도망 하는것 밖에 수가 없던 것이다. 이때에 장령(掌令) 권 협(權挾)이 긴급히 북주할 말이있다. 하여 왕께 뵈옵고 바로 왕의 앞으로 가서 크게 소리를 질러.

『상감. 못 가시오. 경성을 지켜야 하오!』

하고 이마를 땅에 조아렸다. 유 성룡이 손을 들어 권 협에게 물러가라는 뜻을 표하나. 권 협은.

『대감도 그런 소리를 하오? 그러면 경서을 버린단 말요?』

하고 더욱 분개하였다. 성룡은.

『협의 말이 심히 충성되어나 사세가 안 그럴 수 없소.』

하고 왕을 재촉하였다. 권 협은 머리를 섬돌레 두드려 피를 내며 통곡 하나 조정은 듣지 아니하였다.

2

『세자궁만 대가를 배행하옵고 다른 제 왕자는 각도로 파견하시와 근 왕 의사를 모으도록 하시오.』

하고 아뢰이니 왕은 그 말대로 임해군(臨海君)을 함경도로. 순화군( 順和君)을 강원도로 가라 분부하고. 유 성룡더러.

『경은 유도 대장이 되어 경성을 지키라.』

하였다. 이에 대하여 도승지 이 항복이.

『좌상으로 유도 대장을 하이심은 옳지 아니하오. 서편으로 가시기를 마 지아니 하시면 압록강 하나를 건너면 명 나라오니. 오늘날 정신 중에 수작 응 변할만 한 재주로는 오직 좌상이 있을 뿐이온즉. 좌상으로 하여금 경성을 지키게 하시오면 다만 패군지장이 될 뿐이오나 대가를 호송케 하시오면 다만 패군 지장이 될 뿐 이오나 대가를 호송케 하오면 반드시 크게 쓸 곳이 있 으리이다.』 하였다. 왕은 항복의 말을 옳게 여겨서 우의정 이 양원(李陽元)을 유도 대장을 삼아 서울을 지키게 하고 좌의정 유 성룡을 호종시키기로 하였다. 밤은 점점 깊어 가고 빗소리는 더욱 높아 갔다. 촛불이 끄물거리는 속에 궁중에서는 피난 길을 차리노라고 왔다 갔다하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오락가락하였다. 내의( 內醫) 조 영선(趙英璿)서리 신 덕린(申德麟)등 십여 인이 혼문(閽門)을 두드리며 경성을 버리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밤은 삼경이 되었으나 경고(시각을 알리는 북)를 치는 군사까지 다 도망 해 버리고 대궐을 지켜야 할 자 영문금군도 다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왕은 병조 판서 김 응남(金應南)에게 표신(標信)을 주어 위사(衛士)를 소집하라 하였으나 한 사람도 이에 응하는 사람이 없고. 심지어 종친. 대관 중에도 온다 간다 밤이 깊을수록 적막하게 되었다. 이 때에 산주에서 패하여 충주에 달아나고. 충주에서도 탄금대 싸움에 패하여 신 입. 김 여물 등이 다 죽는 속에서 용하게 도망하여 강을 건너 목숨을 보존한 순변사 이 일의 장계가 왔다.

충주 패전의 전말을 기록하고.

『적군이 금명간에 경성을 범하리이다. 』 하는 것으로 끝을 맺은 것이었다. 이 장계를 읽고는 왕 이하 제신들은 일제 히 통곡 하였다. 이제는 일각도 더 주저할 수 없다고 하여 왕은 창황이 군복을 입고말에 오르고. 세자 광해군과 넷째 왕자 신성군(信城君). 다섯째 왕자 정원군( 定源君) 이 뒤를 따라 광화문(光化門)을 나서니. 밤은 사경인데 그믐 날인데다가 날이 흐리고 비가 퍼부어 지척을 분별할 수가 없었다.

왕비 박씨는 상궁 두어 사람을 데리고 걸어서 인화문(仁和門)을 나섰다.

도승지 이 항복이 촛불을 소매로 가리워 겨우 길을 찾았다. 궁녀들과 비첩을 백삼으로 머리를 싸고 비를 맞으며 뒤를 따랐다. 엎어지며 자빠지며 한 때 사람들이 지나갈 때 경복궁 앞에서 서대문에 이르기까지 좌우 길가에서는 곡성이 진동하였다. 왕이 서대문을 나선 때에는 왕을 따르는 자는 영의정 이산해. 좌의정 유 성룡 이하 백여 인에 불과하였다.

왕이 달아난 뒤에 백성들은 장예원(장예원) 과 형조(刑曹)를 불 사르고다 음에는 내탕고에 들어 가 재물을 끌어내고 그리고는 경복궁는 과 창덕궁 을불 살랐다. 장예원은 공사 노비의 문서가 있는 곳이요. 형조는 귀족들이 ant 백성을 행학하던 곳이다. 백성들은 적군이 오거나 말거나 우선 이것부터 살라 버린 것이다. 이 모양으로 왕은 제신(나라를 망하게 한 무리)들을 이끌고 서울을 버리고 도망하였다. 중로에서도. 혹은 함경도로 가자 하고 혹(이 항복)은 명나라로 달아나 의탁하자고 하였다. 유 성룡. 윤 두수는 이 항복의 말을 반대하여.

『왕이 한걸음이라도 조선을 떠나면 조선은 벌써 우리것이 아니요.』

하였다. 그러나 왕은.

『명나라에 들어 가 붙는 것은 원래 내 뜻이라.』

고 버티었다.

二十九日 會( ) 1 왕이 서울을 버리고 달아난 사월 이십 구일 밤. 전라좌도 수군 절도사 이순신은 부하 제장을 파리강이라는 높은 정자에 모았다. 여기 출석한 장수는.

수사 우후(水使虞侯) 이 몽귀( 李夢龜) 순천 부사(順天府使) 권 준( 權俊) 방답 첨사(防踏僉使) 이 순신( 李純信)) 낙안 군수(樂安郡守) 신 호( 申浩) 홍양 현감(洪陽縣監) 배 홍립( 裵洪立) 광양 현감(光陽縣監) 어 영 담( 魚泳潭) 보성 군수(寶珹郡수) 김 득광( 金得光) 녹도 만호(鹿島萬戶) 정 운( 鄭運) 훈련 봉사(訓鍊奉事) 나 대용( 羅大用) 사도 첨사(蛇渡僉使) 김 완( 金浣)여도 권관(呂島權官) 김 인영( 金仁英) 좌 수영 군관 급제(左水營軍官及第) 배 응록( 裵鷹祿) 좌 수영 군과(左水營軍官) 이 언량( 李彦良) 좌 수영 진무(左水營鎭撫) 이 언 호( 李彦浩) 군관( 軍官) 송 한련( 宋漢連) 군관( 軍官) 송 희 립( 宋希立) 등 십 칠명이었다.

수사 이 순신이 정면 호상(교의)에 좌정하고 제장이 관등 따라 차례로 좌우로 늘어 앉았다. 이 순신이 이 회의를 모은 것은 경상 우도 수군절도사( 慶尙右道水軍節道使) 원 균(元均)의 청병장을 받은 까닭이었다.

이 순신은 부산. 동래 함락의 경보를 들은 이래로 부하 제장을 좌수영에 모아가지고 서울에서 무슨 명령이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곧 강 구 대변( 江口待變) 이란 것이었다. 그러나 독자가 이미 아시다시피 서울에서는 일찍 수군이란 것을 염두에도 두어 본 일이 없고. 오직 신 입과 이 일 두 사람만 믿고있다가 이일이 상주에서 패하여 달아나고 신입이 충주에서 패하여 죽으니. 그만 서울을 버리고 비 온는 밤중에 울며 불며. 엎더지며 자빠지며 임진강( 臨津江) 서쪽으로 도망해 버리고 만 것이다. 이 순신이 사월 십 육일이래 로 거의 날마다 올리는 장제도 조정이라는 곳에서는 휴지통에 들어 갈 뿐이었다.

이래서 강구 대변을 하고 있는 지 반 달이넘어도 조정이라는 곳에서는 아무 명령이 없어서 헛되이 세월을 보낼 때에. 원 균의 청병장을 가지고 율포 만호( 栗浦萬戶) 이 영남(李英男)이 이순신에게로 온 것이었다.

이 영남 의 보고에 의하면. 경상 우수사 원 균은 바다에 뜬 조선 사람의 어선을 보고 적군이 오는가 하여 황겁하여 전선 이백여 척과 많은 병기. 군량을 다 물에 잠겨 버리고 수군 만여 명을 흩어 버리고 자기 혼자 배 한척을 타고 옥포 만호(玉浦萬戶) 이 운룡(李雲龍). 영등포 만호(永登浦萬戶) 우치적( 寓致績)을 데리고 도망하여 남해현(南海縣) 앞바다까지 와서는 육지에 올라가 도망하려 하는 것을 옥포 만호 이 운룡이.

『달아나다니 안될 말이요. 사또가 나라에 중한 부탁을 받았으니. 죽더라도 맡은 지경 안에서 죽을 것이지 육지에 올라 도망하다니 말이 되오. 이곳은 전라.

충청도로가는 인후니. 이곳을 잃으면 양호(兩澔)가 위태할 것이요. 이제 경상 우도 군사를 다 잃었다마는 아직도 모으려면 모을 것이요. 또 전라도 수군을 청 병해 올 수도 있는 것이니. 사또가 육지에 올라 도망하는 것은 옳지아니하오.』 하고 굳세게 주장하는 판에 원 균은 이 운룡이가 무서워 달아나지도 못 하고 그 의 말대로 율포 만호 이 영남을 이 순신에게로 보낸 것이었다.

이 순신은 원 균의 청병장을 받아 그것을 토의할 차로 이렇게 군사 회의를 모은 것이다. 나아가자는 명령 하나면 그만일 듯도 하지마는. 이때 인심이 모두 나아가 싸우기를 싫어하는 때이므로 이 순신은 부하 제장 자신들로 하여금 나아가 싸우자는 여론을 일으키게 하자는 계교였다.

2

모인 사람들은 모두 얼굴에 긴장한 빛을 띠었다. 이번 모임이 결코 범상한 모임이 아닐 것이다. 반드시 무슨 큰 결정을 짓고야 말 것이라고 모두 생각 하고있었다.

『다들 모였나?』

하고 이 순신이 입을 열었다. 방안에는 큰 촛불 십여자루를 켜 놓아서 낮같이 밝았다. 좌수영 시민들은 오늘밤 파리강 정자에무슨 일이 있는가 하고 우 러러 보았다. 파리강은 전시가에서 다 바라볼 수 있는 높은 곳이다. 이곳은 한문 좋아하는 놈들이 고소대(姑蘇臺)라고도 부르는 곳인데. 큰 누가 있어서 수사들의 놀이터가 되어 있었으나. 이 순신이 수사로 온 뒤에는 한번도 이곳에서 풍악을 잡히고 놀아 본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오늘 밤 파리강의 모임이 수상하게 보였던 것이다. 파리강은 높은 봉우리라고 할 만한 곳이어서.

좌수영으로 내려다 볼수가 있고. 그 뿐더러 대섬을 넘어 서방 답진( 防踏鎭) 뒷 바다와 쇠북개() 목을 나서서 남해와 일본으로 통하는 큰 바다도 바라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 정자 주위에는 도무지 인가가 없어서 아무리 비밀한 의논을 하더라도 말이 샐 데가 없었다.

이날 밤에 수사는 모든 병선을 굴강 밖에 끌어 내어서 남해로 향하는 물목인 쇠북개로 향하여 일려로 장사진을 치게 하고 배 위에는 등불을 많이 켜 달이서 배 위에 세운 기치와 창검이 환하게 비치도록 하게 하였다. 파리강의 누상에 앉아서 이 광경을 내려다 보면. 그 장관됨이 비길 데가 없고 누구든지 한번 팔을 뽐내 일 만하였다.

『바다를 모였나보오.』

하고 우후 이 몽귀가 출석한 사람을 점검한 뒤에 아뢰었다.

『제장을 이리로 모은 것은 다름이 아니요.』

하고 이 순신은 기 수염을 내려 쓸며 입을 열었다.

『경상 우도 수군 절도사(慶尙右道水軍節度使) 원 균 영공( 元均令公)으로부터 본영( 本營)에 청병장이 왔소. 여기 앉은 율포 만호(栗浦萬戶)가 위해 왔는데 경 상우 도수군은 몰수 함몰하고 수사는 배 한 척을 남겨 가지고 지금 남해 현( 南海縣) 앞바다에 피해 와 있고. 부산으로부터 남해 저편에 이르는 바다는 모두 적군의 천지라 하니. 어찌하면 좋겠소? 일이 대단중대하니 난상 공의하기를 바라오.』 하고 이 순신은 눈을 들어 한번 만좌를 둘러 보았다.

수사의 말을 들은 일동은 마치 숨까지도 전혀 막힌 듯하였다. 서로 바라 볼 뿐이요. 아무 말이 없었다. 난리가 가까워 오는 줄을 생각하지 않 음이 아니었으나. 큰 대적이 바로 발부리에 왔다는 기별을 듣고는 마음이 편할 도리가 없었다.

『사또께 아뢰오.』

하고 일어선. 신장이 육척이 넘고 목소리 크고 얼굴 검은 장수는 녹도 만호( 鹿島萬戶) 정 운(鄭運)이었다.

『적이 문안에 들었거든 생각이 무슨 생각이요. 다행히 지금 바람이 서남풍이니. 이 밤을 타서 본영에 있는 병선을 몰고 달려 가 구원하는 것이 옳을듯 하 오.』 하는 정 운의 어성은 자못 비분 강개하였다.

『정 만호의 말이 옳은 줄로 아오.』

하고 나서는 이는 광양 현감(光陽縣監) 어 영담(漁泳潭)이었다.

『아니 그것이 그렇지 아니하오.』

하고 나서는 이는 순천 부사(順天府使) 권 준(權俊)이 었다.

3

순천 부사 권 준은 잧빛이 희고 몸이 뚱뚱하고 귀인다운 풍도가 있어서 천생 뱃사공같이 생긴 광양 현감 어 영담과는 딴 종류 사람인 듯하였다.

『그렇지 못한 연유가 있소. 첫째로 경상 좌우도 수군은 전국 다른 각 도수군을 합한 것보다도 많소. 그런데 경상 좌우도 수군을 가지고도 한번 싸워 보지도 못하고 함몰이 되었거든. 우리 전라 좌도의 고단한 형세를 가지고 간다 하더라도 승산이 만무하니. 승산 없는 싸움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뿐더러 한갓 세상의 치소만 받을 것이요. 그뿐 아니라. 우리 호남이 가만히 지경을 지키고만 있으면 적군도 우리의 실력을 헤이릴 길이 없어서 용이하게 호남을 침범 할 생각을 두지 못하려니와. 만일 걷불리 덤비다가는 도리어 적의 침노를 쉽게 받을 것이요. 그러니까 가만히 지경을 지키는 것이 상책이겠고. 또 아직 조정에서 아무러한 분부가 없으니. 분부 없이 동병하는 것은 법에 금하는 바요.

어느 모으로 보든지 경상 우수사의 청병을 듣는 것은 옳지 아니한가 하오.』

하고. 자기의 웅변에 취한 군부사는 찬성을 구하는 듯이 만조를 둘러 보았다.

여러 수령들은 많이 순천 부사의 말에 찬성인 듯이고개를 끄덕끄덕하여 부사의 눈에 대답하였다. 잠시 말이 없었다. 서울에서 도망하는 왕에게 뿌리는 비는 천리를 격한 좌수영에도 뿌렸다. 이때는 정히 서울 대궐 안에서는 울고 불고도 망할 의론이 한창이었다.

『아니오!』

하고 한편에서우렁찬 목소리가 났다. 보니. 그는 본영군관 송희립( 宋希立) 리었다. 희립은 나이 오십이나 된 사람으로 지체가 낮기 때문에 일생에 벼슬은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렇더라도 일편 충심은 가시지 아니하여 매양 흉중에 불평을 품은 사람이다. 이마에는 뜻과 같이 되지 아니하는 인생의 풍파에 부대낀 자국이 역력히 새기어 있었다. 키가 크고 이마와 관골이 내어 밀어서 그 범상치 아니한 기우가 녹도 만호 정 운과 방불하였다. 희 립은 앞가슴을 떡 벌리고 성긋성긋한 수염을 숭글거리면서.

『순천 영감의 말씀이 옳지 아니하오.』

하고. 첫마디로 순천 부사 권 준의 말에 반대하는 단정을 내렸다. 순천 부사는 그것이 일개 군관인 송 희립인 것을 보고. 크게 욕을 보는 듯하는 분노를 깨 달았다.

『제까짓놈이. 괘씸하게.』

하고 권 준은 희립을 노려 보았다. 희립은 그런 것은 본 체도 아니 하고.

『옳지 아니한 연유를 아뢰리다. 영남이나 호남이나 한가지로 우리나라 땅이니. 우리가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되어 영남이 적군의 손에 들었다 하 거든 가만히 앉았을수 없음이 하나요. 또 호남을 지킨다 하나. 영남과 호남이 실날 같은 바다 하나. 강 하나로 접하였으니 영남을 지키지 못하고 호남을 지키려 함은. 마치 문을 지키지 못하고 방을 지키려 함이나 다름이 없음이 둘이요, 또조 정의 분부가 없으시다 하거니와. 지금 중로에 적병이 편만하여 서울 길이 어찌 된지 알 수 없으며. 또 조정에 찬무리가 모두 당과 싸움과 제 세력만 아는 무리들이 올 뿐 더러. 더러 또 수군을 알기를 없는 듯이 하옵고. 또 설사 조 정의분 부가 안 계시다 하더라도 적병이 당전하면 선참 후계하는 것이 병가의 법인가 하 오. 용병지법이 신속함으로써 귀함을 삼는 것이니. 사또께서는 아까 녹도 말씀대로 이 밤으로 행선하시도록 분부 계시기를 바라오.』 하였다.

4

송 희립의 말은 듣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 말은 나라에 대한 붉은 충성과 불타는 듯한 열정을 품었다. 그러나 좌중의 수령. 군관 중에는 일본군이 무섭다는 생각에 겁을 집어 먹은 사람이 많았다. 나아가 싸워서 죽기는 싫은 사람들이 많았다. 수사는 나아가 싸우자는 말과 가만히 지키자는 말에 대하여 용이히 어느 편으로도 기울어지는 양을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는 마치 구리로 만들어 놓은 사람 모양으로 태연 부동하고 가만히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낯빛을 살피었다.

순천 부사 권 준. 우후 이 몽귀를 중심으로 지키자는 파와. 녹도 만호 정 운과 군관 송 희립을 중심으로 나아가 싸우자는 파가 대립하여 서로 자기 편으로 수사의 맘을 끌려고 격렬하게 논전하였다.

이러하는 동안에 밤은 점점 깊어 가고 비 오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초가 거의다 닳아서 관노들이 다른 초를 준비하였다.

『이란격석(以卵擊石)이요. 닭의 알로 바위를 때리면 부서질 것은 닭의 알밖에 없소.』

『적병이 횡행하여 나라가 위태하거든. 나아가 싸울 뿐이지 다시 무슨 말이있으랴.』

『지키자!』

『나가자!』

하고 용이히 의론이 결정되지 아니할 때에 녹도 만호 정운이 자리를 차고 일어나며.

『사또. 소인 물러 가오.』

하고 칼자루를 둘러 잡고 자리에서 걸어 가려 하였다.

『녹도. 어디로 가오?』

하고 이 순신이 불렀다.

『소인은 녹도로 돌아 가오. 적병이 문전에 임한 이때에 밤이 새도록 말만하고 있는 이런 자리는 소인 같은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니요. 소인 가오.』 하고 활개를 치며 계하로 내려서려 하였다.

『녹도 잠깐 들라 하여라. 』 하고 수사 이 순신은 통인을 시켜 녹도 만호를 불렀다. 정 운이가 통인에게 소매를 붙들려 도로 계상으로 올라 설 때에 순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소 마주 가서 정운의 손을 붙들며.

『녹도. 이리 앉으오. 내가 지금까지 기다린 것은 그 말을 들으려던 것이요.』

하고 정 운을 자리에 앉혔다. 우후 이 몽귀. 순천 부사 권 준 이하로 모든 사람들은 다 긴장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눈은 일제히 정 운과 수사에게로 쏠렸다. 이 순신은 다시 대장의 자리에 좌정하고 허리에 찼던 큰 칼을 빼어 들었다. 그 칼이 집에서 나와서 공중에 들릴 때에 긴 무지개 한 줄기가 일어났다.

「(

.

.)(칼을 들어 하늘에 맹세하니. 뫼와 물이 두려움을 보이 도다).」하는 명을 가진 칼이다. 손에 긴 칼이 들릴 때에 수신의 두 눈에서도 불길을 뿜었다. 순신은 한번 칼을 두르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싸우자. 제장은 각각 나아갈 차비를 하라! 영을 어기는 자는 이 칼로 베이리라. 오월 초사흗날 밤 물이 들기까지 소속 병선과 군사와 병기를 정리 하여가지고 본영 앞바다에 모여서 청령하라! 시기를 어기면 군법 시행하리라. 』 하고 명령을 내리었다. 순신의 낯빛과 목소리는 엄숙과 힘 그것이었다. 좌중은 고요하였다. 그 엄숙한 광경에 사람들의 몸에는 소름이 끼치고 머리카락은 쭈볏 쭈벗 하늘을 가리켰다. 몇 수령은 무릎과 이빨이 딱딱 마주치었다. 일 농은 일어나 칼을 들어 맹세하고 차례로 군령판에 이름을 두었다.

出(

)

1

순신은 미리 예비하였던 술과 고기를 올리라 하여. 손수 잔을 들어 제 장을 이 받았다. 처음에는 나아가기를 원치 아니하던 장수들도 모두 감격하여 나아가 죽기 로써 싸우기를 맹세하였다.

오월 초하룻날 경오. 병선이 전양(앞바다)에 모였다. 이날 날이 흐리나 비는오지 아니하고 남풍이 대단히 불었다. 순신은 진해루(鎭海樓)에 올라 방답 첨 사( 防踏僉使) 이 순신(李純信). 홍양 현감(洪陽縣監) 배 흥립(裵興立). 녹도 만호( 鹿島萬戶) 정 운(鄭運)을 불러 군사를 의논하였다. 순신은 그날 일기에 이 사람들 이름을 쓰고.

『(

.

) (다 분격하여 몸을 생각지 아니하니. 가위 의사로다). 』 하고 썼다. 오월 이일 신미. 날이 맑았다. 군관(軍官) 송 한련( 宋漢璉) 이 남해( 南海) 를 염탐하고 다녀 와서 그 정형을 아뢰었다. 그날 일기에 이렇게 순신은 적었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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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송 한련 이 남해 로서 돌아 와 이르기를. 남해원과 메주목이 첨사와 상줏개. 굽은개. 평산개 등을 지키던 관원들이 적병 온다는 소문만 들으면 문득 도망하여 그 군기 등 물이 다 흩어져 남음이 없다고 하니 놀랍구나). 』 하고 또 그날 일기에.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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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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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에 배를 타고 바다에 나라가 진치고 제장으로 더불어 약속 명령이라는 뜻 하였다. 다 줄겁게 나아가려는 뜻을 두건마는 낙안이 피하려는 뜻이 있는 듯하니 가탄이다.

그러나 군법이 있거니. 피하련들 제 어찌 피하랴).』

하고 적었다. 낙안이란 것은 군수 신 호(申浩)를 가리킨것이었다.

저녁때에 방답진. 첩입진(疊入鎭) 배 세 척이 들어 왔다.

오월 초삼일 임신. 아침에 가는비 오다. 중위장 방답 첨사 이 순신을 불러.

내일 새벽에 떠나기로 약속하였다. 이날에 여도 수군(呂島水軍) 황옥천( 黃玉千) 이가 도망하여 집에 가 숨은 것을 잦ㅂ아다가 목을 잘라 굴강에 효시 하였다.

오월 사일 이른 새벽에 이 순신은 전라 좌도 수군을 거느리고 좌 수영을 떠났다. 이날 날은 맑고 바람은 잔잔한 서남풍이었다. 동천이 불그레할 때 에일성 방포를 군호로 대소 팔십 육척의 배가 일제히 돛을 달고 뱃머리를 동으로 향하여 남해 바다에 나섰다. 수군의 부서는 어떠한다?

경상도의 수로를 잘 알고 또 충성 있고 담력 있는 광양현감(光陽縣監) 어영담( 魚泳潭)으로 선봉장을 삼고 중위장 순천 부사 권 준이 전라 관찰사 이광( 李珖) 의 부름으로 전주로 가버리매. 방답 첨사(防踏僉使) 이 순신( 李純信) 과 가리포( 加理浦僉使) 구 사직(具思稷)으로 중위장(中渭將)을 삼고. 낙안 군수( 樂安郡守) 신 호(申浩)로 좌부장(左部將)을 삼고. 보성 군수( 寶城郡守) 김득광( 金得光)으로 우부장(右部將)을 삼고. 녹도 만호 정 운으로 후부장( 後部將)을 삼고. 흥양 현감(興陽縣監)배 흥립(裵興立)으로 전부장을 삼고. 사도 첨 사( 蛇渡僉使) 김 완(金浣)으로 우척후장(右斥候蔣)을 삼고. 여도 인가 아닌가를 확실히 알아 보게 하였다. 원 균은 이 순신의 앞에 이르매 목을 놓아 울며 『 소인은 만사 무석한 죄인이요.』 하고. 이 순신이 온 것을 백 번 사례하였다. 순신이 원 균을 위로하여 병선 한 척을 주어 타게 하고. 새로 군복과 평복 일습을 주어 위의를 갖추게 하였다. 원균은 순신의 후의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영감은 재생지은인이요. 재생지은인이요. 』 하고 수없이 사례하였다. 순신은 원 균에게 수효와 있는 곳과 접전할 절차를 물었으나. 원 균의 대답은 시원치 아니하였다. 대개 원균은 아직 눈으로 적선 구경을 해본 일도 없는 까닭이다.

적서이 얼마나 되며 어디 많이 있는지 그것을 알 까닭이 없었다.

이날에 도망하였던 남해 현령(南海縣令) 기 효근(寄孝謹). 메주 목첨 사( 메 주목 僉使) 김 축(金軸) 등이 판옥선 한 척을 타고 오고. 사량 만호 이 여념( 李汝拈). 소비포. 권관(所非浦權管) 이 영남(李英男) 등이 각각 협선을 타고오고. 영등포 만호(永登浦萬戶) 우 치적(禹致積 이 영등포는 거제에 있는 것).

지세포 만호(地世浦萬戶) 한 백록(韓百祿). 옥포 만호(玉浦萬戶) 이운룡( 李雲龍) 등 도 판옥선 두 척을 가지고 오고. 이 모양으로 이 순신의 함대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모여 드는 장수들이 많았다. 이 순신은 조금도 이 도망 한 장수들을 괄시하여 한산도(閑山島) 북쪽 노쿠리도를 지나 거제도( 巨濟島) 송미포( 松未浦) 앞바다에서 밤을 지내고 새벽에 일시에 배를 띄워 적선 이유 박한다는 천성(天城). 가덕(加德)을 향하여 가는 길에 오시나 되어 옥포( 玉浦) 앞바다에 이르러 척후 장 사도 첨사(斥候獎蛇渡僉使) 김 완(金玩). 여 도권 관( 呂島權官) 김 인영(金仁英)의 척후선으로부터 마황기(魔黃旗)를 들어 신기 보변( 神機報變) 함이 있었다. 앞에 적선이 보인다는 뜻이다.

2

순신은 앞서 가던 척후선을부터.

『적선이 보인다.』

는 보변을 듣더니. 곧 초요기(招搖旗)를 달기를 명하였다. 군사가 순신이 탄 장선에 초요기를 높이 다니 전후 좌우에 옹위하였던 제장이 모두 배를 저어 주장의 명령을 들으려고 장선 곁으로 모여 들었다. 제장은 무슨 무서운 큰일을 기다리는 듯한 눈으로 수사를 바라보았다. 경상 우도 수군에 속한 제 장들도 사실상 이 순신의 절제를 받았다.

제장이 장선에 다오르기를 기다려 순신은 왕께서 받은 칼과 편지에 숙배 하기를 제장에게 명하고 그것이 끝나매.

『지금 적이 옥포에 있다 하니. 우리는 인제 나아가 싸우려니와. 충영을 발하는 곳이 두려울 것이 없으니. 만일 물러 가는 자는 군법으로 시행 할것이요.』 하고 최후에 한층 소리를 높여.

『망동을 말고 고요하고 무겁기를 산과 같이 하오.』

하는 약속을 주었다. 제장은 엄숙하게 영을 듣고 일제히.

『예이.』

하고 그리한다는 대답을 하였다. 약속이 끝난 뒤에 척후선이 앞을 서고 다음에 선봉이요. 그다음에 중위요. 그다음에 장선이여. 장선의 좌우에는 좌위와 우위요.

뒤에는 간후요. 이 모양으로 진형을 정제하여 찬 돚을 달고 노를 저어 위풍이 당당하게 옥포를 향하여 행선하였다.

이날은 오월 칠일. 행진하기 한시가 못하여 미시 주에 옥포 앞에 다다르니 포구 선창에는 적의 병선 오십여 척이 바닷가에 매여 있고. 옥포의 시가에는 불을 놓아 연기가 창천하였다. 옥포 선창에 매인 큰 배는 사면에 장막을 둘렀는데. 장막에는 채색으로 그림을 그리고 무늬르 놓았고. 장막 가에는 대 막대기를 축 늘여 세우고. 거기는 붉은 기와 인기를 달았으며. 기는 좁고 긴것도 있고 넓고 짧은 것도 있으되. 다 무늬 있는 비단으로 만들어 바람결에 펄렁거려 사람의 눈을 현황케 한다.

적군들은 배를 내려서 촌려에 들어 가 노략하다가 이편 함대가 오는 것을 보고 창황히 배에 올라 떠들며 노를 저어 바다 가운데로 나오지 아니하고 바닷가로 연하여 행서하여 나왔다. 그중에 선봉 여섯 척이 앞서서 빠져 나오는 것을 보고 순신은 북을 울려 따르기를 명하였으나. 좌척후장 여도 권관 김인영( 金仁英) 과 우척후장 사도 첨사 김 완(金浣)이 겁을 내어 머뭇거리는 양을 보고. 간후장 녹도 만호 정 운(鄭運)이 분을 참지 못하여 칼을 빼어 들고 노를 재촉하여 앞서 나아갔다. 노를 젓는 군사가 잠간만 손을 멈추어도 정 운은 칼을 들어 독촉하니 배가 빠르기 살과 같아서 곧 도망하는 적선을 따라 잡아 활을 쏘고 화전을 놓아 싸우기를 시작하였다. 적선에서도 화살과 조총이 날아 왔다.

정 운의 배가 적선에게 포위를 당함을 보고 순신은 북을 울려 싸움을 재촉 하니 다른 배들도 노를 저어 달려 나가서 싸움이 어울려졌다. 순신은 명 하여 화전( 불 화살)을 쏘게 하니 그것이 적선의 돛을 맞혀서 순식간에 십여 척병선에 불이 일어 불길과 연기가 하늘을 찌르고 적병이 규호하는 소리와 총포 소리가 바다를 흔들었다. 적의 함대가 한 곳에 결집한 때를 타서 순신은 거북선을 놓았다.

거북선이 이십개 노를 저으니 빠르기 나는 듯하고 칠십여 혈의 포혈로 대포를 놓고 입으로 불과 연기를 토하며 좌충 우돌하니 닥치는 대로 적선이 부서지거나 불이 붙었다.

3

이 모양으로. 혹은 화살을 맞아 죽고 혹은 불에 타 죽고 혹은 물에 빠져 죽고.

마침내 지탱하지 못하여 더러는 배를 끌고 달아나고 더러는 물에 뛰어 들어 헤엄 쳐 달아났다. 때는 신시가 되어 해가 거의 지게 되었다.

이 싸움에 겁 많은 좌부장 낙안 군수 신 호(申浩)는 대선 한 척을 깨뜨리고 적장의 수급(모가지)하나를 얻었는데. 그 배에 실린 검. 갑옷. 관복 등물로 보아서 이것은 장수의 것인 듯하였다. 이때 일본 함대의 장수는 드 당 고호( 騰堂高虎) 였었다.

우부장 보성군수 김 독광(金瀆光)이 큰 배 한 척을 깨뜨리고 포로로 잦 ㅂ 혀 갔던 조선 사람 하나를 사로잡고. 전부장 흥양 현감 배 흥립(裵興立)이 큰 배 두 척을 깨뜨리고. 중부장 광양 현감 어 영담이 중선 두 척과 소선 두척을.

중위장 방답 첨사 이 순신(李純信)이 큰 배 한 척을. 처음에는 겁을 내이던우 척후장 사도 첨사 김 완(金完)이 대선 한척을. 우부 기전 통장 진군 관보인( 右部騎錢統將鎭軍官保人) 이 춘(李春) 이 중선 한척을. 유군장 발포가 강전라 좌수영 군관 훈련 봉사 나 대용(羅大用) 이 대선 두 척을. 후부장 녹도 만호 정 운이 중선 한척을. 좌부 기전 통장 순철 대장 전 봉사( 左部崎戰統蔣順天代蔣前奉事) 유 섬(劉蟾) 이 대선 한 척을 깨뜨리고 사로잡혔던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고. 간후장 전라 좌영 군관 급제 최대성( 崔大成) 이 대선 한 척을 참퇴장 군관 급제 배 웅륙(裵應陸)이 대선 한척을.

참퇴장 군관 이 언량(李彦良)이 대선 한 척을 깨뜨리고 순신의 막하 군관 훈련 봉사 변 존서(卞存緖)와 전봉사 김 효성(金孝誠)등이 합력하여 대선 한척을.

경상도 제장이 적선 다섯 척을 깨뜨리고 잡혀갔던 조선 사람 세 사람을 사로잠았다. 도합 적선 이십 육척을 깨뜨렸다.

바다 위에 타는 배는 해가 지도록 불길과 연기를 뿜었다. 살아 남은 적군은 산을 올라 수풀 속에 숨어서 죽기를 면하였다.

순신은 걸음 잘 걷고 활 잘 쏘는 군사를 놓아 도망하는 적을 잡으라 하였으나.

거제도에는 산이 험하고 초목이 무성한데다가 또 날이 저물었으므로 군사를 거두어 영등포 앞바다에 물러와 진을 치고 군졸로 하여금 나무를 하고 물을기 렁 밤을 지내려 할 즈음에 신시 말이되어 바다에 적군의 대서 sektjt 척이지 나간다는 척후장의 보변을 받았다. 정히 갑옷을 끄르고 쉬려 하던 차에 이보 변을 받고 순신은 곧 제장에게 영하여 배를 저어 적선을 따르라고 하였다.

비록 옥포 싸움에 몸이 피곤하지마는 오늘 승전에 기운을 얻은 장졸들은 기운 이하늘에 닿아 함성을 지르며 배를 저어 황혼이 가까운 바다의 물결을 차고 적선을 다. 따랐다. 적선은 힘을 다하여 싸우면서 도망하여 웅천( 熊川) 땅 합포( 合浦) 앞바다에 이르러서는 배를 버리고 물에 올라 도망해 버렸다.

사도 첨사 김 완(金浣)이 대선 한척을 불사르고 방답첨사 이 순신( 李純信) 이대선 한척을. 광양 현감 어 영담(魚泳潭)이 대선 한 척을. 방답진에 귀양 사는전 첨 사 이 응화(李應華)가 소선 한 척을. 전라 좌수영 군관 봉사 변존서( 卞存緖). 송 희립(宋希立). 김 효성(金孝誠). 이 설(李渫)등이 합력하여 대선한 척을 깨뜨려 불사르니 황혼의 산과 바다에 화광이 충전하였다.

적선이 깨어졌다느 소문을 듣고 ant 백성들과 배 탄 사람들이 모여 와서 양식과 어물과 간장과 채소 등속을 바쳤다.

순신은 싸운 자리에서 밤을 지나는 것이 위태하다 하여 밤으로 배를 저어 창원( 昌原) 땅 남포(藍浦) 앞바다에 진을 치고 순신이 친히 술을 부어 장졸을 위로하고 기쁨소게 밤을 지내었다.

4

이튿날은 곧 오월 초파일이다. 날은 맑고 덥다. 아침밥도 먹기 전에 진해지고 리도( 鎭海地古理渡)에 적의 병선이 우진하고 있다는 보변이 왔다. 순신은 곧영을 내려 배를 띄웠다.

순신은 함대를 둘로 나누어 안과 밖으로 협공할 계교를 세웠다.

돼지섬(돼지섬)을 지나 고성(固珹)지경인 붉은돌(붉은돌)에 이르니 적선 십 삼척이 바다목에 한 줄로 늘어서고 군사들은 더러는 포구와 동네에 들어 재물을 노략하고 집을 불사르러 가고 배에는 지키는 군사만 얼마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 힘들이지 아니하고 그 배르 다 잡아 불살라 버릴 수가 있었다.

낙안 군수의 부하에 있는 순천대장(順天代將) 유 섬(兪贍) 이 대선 한 척을. 동부 통장 군거 급제 박 영남. 보인 김 봉수 등이 합력하여 대선한 척을. 보성 군수가 대선 한 척을. 방답 첨사가 대선 한 척을. 사도 첨사가 대선 한 척을. 녹도 만호가 대선한 척을. 이 순신의 대솔군관 이 설. 송 희립 등이 합력하여 대선두 척을. 군관 정 노위(定虜偉). 이 봉수(李鳳壽) 가 대선 한 척을. 군관 별시위 송 한련( 宋漢蓮) 이 중선 한 척을 화약으로 깨뜨려 불살라 버린 뒤에야 장졸로 하여금 조반을 먹게 하였다. 전군이 아침밥을 먹고 휴게하는 중에 웬 사람 하나가 등에 어린아이 하나를 업고 산꼭대기로부터 울며 내려와 주사를 향 하여하소 할 것이 있는 양을 보인다.

순신은 군사를 시켜 종선을 보내어 그 사람을 태워 오라고 하였다. 그 사람은 순 신의 앞에 와서 더욱 슬피 울었다. 아비가 우는 양을 보고 등에 업힌 어린것도 목을 놓아 울었다.

『네 성명이 무어니?』

하고 군관이 묻는 말에 그 사람은.

『소인은 살기는 적진포(赤珍浦) 근처이옵고. 본시는 향화인이옵고. 성명 이온 즉이 신동(李信同)이라고 하오.』

하고 대답한다. 그제는 순신이 친히.

『그래 무슨 일로 왔어?』

하고 물은즉. 신동은.

『에. 소인이 여쭐 말씀이 있어 왔소.』

하고 소매로 눈물을 씻고 나서.

『적병이 들어온 이후로 경상도는 무인지경이 되었소. 수령 방백이 다 달아난다는 소문을 들었어도 싸운다는 소문은 못 들었는 데 아까 뱃사람에게 듣사 온 즉 사또께서 주사를 거느리고 오시와 어제 거제도에서 적선 백 척을 함몰 하시고 또 돼지섬에서도 부수히 함몰시키시고 또 여기 적진포에 왔던 배도 저렇게 다 함몰을 하시니 소인이 오늘까지 목숨을 부지하옵다가 우리 군사가 숭 전하는 양을 보오니 이런 기쁜 일이 어디 있소? 소인은 금시에 죽어도 여한이 없소. 대체 어떠하신 양반이 이처럼 갸륵하신고 하고. 한번 뵈옵고 이런 하소나 할 양으로 사또께 왔소.』 하고. 무수히 순신을 향하여 절하였다. 그의 모양이 하도 지성 즉달해서 보는 사람들이 다 감동하였다.

『적병이 그동안 어찌하였느냐?』

하고. 순신은 그 백성의 찬양하는 말을 막고. 적병의 형세를 물었다.

『예. 젛사오되. 적병이 어제 이 포구에 들어 왔소. 어제 이포구에 들어 와서 여염으로 돌아 다니면서 재물과우마를 약탈하여다가 지금 싸또께서 불 살라 버리신 저희들의 배에다 갈라 싣고 어젯밤 초경에 배를 끌어 내어 띄우고 소를 잡고 술을 먹고 소리를 하고 저를 불고 놀기를 밤새도록 하였소. 가만히 그 곡조를 들으니까. 개시 우리 나라 음률입데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반은 배를 지키고. 반음 물에 내려서 고성으로 갔소.』 하였다.

5

수사뿐 아니라 . 이 신동의 말을 듣는 사람은 다 비감하지 않을 이 없다.

『네가 여기서 나가다가는 적병에게 붙들릴 염려가 있으니. 병선을 타고 같이 가는 게 어떠하냐?』

하고. 순신이 이 신동에게 말하였다. 신동은 이마를 조아리며.

『사또 은혜는 백골 난망이오나. 늙은 어미와 처자가 간곳을 모르오니 소인 혼자 편안히 사또를 따라 갈 수가 있소? 소인은 가서 어미와 처자를 찾아보아야 하겠소. 벌써 죽었는지도 알 수 없사오나. 죽었으면 신체라도 찾아서 묻어야 하겠소.』 하고. 어린 것을 업고 배에서 내려 갔다. 이것을 본 장졸들은 더욱 가슴이 아파 서로 격려하여 동심 육력할 것을 맹약하였다.

순신은 곧 주사를 끌고 천성(天城). 가덕(加德). 부산(釜山) 등지로 가서 적의 소굴을 복멸할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아직 전하 우수사 이 억기(李億祺)의 함대가 오지 아니하였은즉 미약한 힘을 가지고 혼자 적의 속으로 들어 가는 것 이위 태한 일이라 하여 거제 앞바다에서 이억기의 주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 문득 본영(전라도 좌수영)의 탐보선이 달려의서 전라도사 최철견( 全羅都事崔鐵堅)으로부터 이 순신에게 온 편지를 전하였다. 그 편지에는 사월 이십 구일에 왕이 서울을 버리고 관서로 피난하였다는 것을 보고 순신은 한 손에 최 도사의 편지를 쥐인 채 엎더져 통곡하였다.

모든 장졸들도 이 소문을 듣고는 북향하여 통곡하기를 마지 아니하였다.

최 도사의 편지 사연이 심히 간단하여 서울이 적병의 손에 들었는지 아니 들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왕이 서울을 버리고 관서로 달아났다는 말 한마디는 모든 장졸에게.

『인제는 다 망했구나. 』 하는 벼락 같은 격분을 준 것이다. 순신은 심히 마음이 비창하여 전군에 영을 내려 본영으로 돌아 가게 하였다. 순신의 생각에는 우선 본영에 돌아 가 서 울 소식과 왕의 소식을 자세히 알아 보고. 혹은 다시 전라 좌우도 수군을 합 하여 천성( 天城). 가덕(加德). 부산(附酸)의 적의 수군을 소탕할 계획을 세우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주사를 끌고 평안도로 가서 왕을 호위할까. 좌우간에 결정 하자는 것이었다.

이때로 말하면. 경상도와 경성 간에는 세 길이 다 적군에 막혀서 소식을 통 할수가 없으니. 경성서나 이북의 소식을 알자면 전라도로 갈 수 밖에 없었던것이다. 순신에게는 또 한 가지 근심이 있었으니. 그것은 적병이 육로로 전라도를 침범하지 아니할까 함이었다. 적병이 육로로 전라도를 침범 하려면진주( 晋州) 를 지나서 섬진강(蟾津江)을 건너는 길과 충청도르 거쳐서 전주( 全州) 로 들어오는 두 길이 있다. 만일 진주와 전주가 무너지지 아니 한다면 육로는 염려가 되지 아니하니. 그러한 경우에는 순신 자기는 주사로 물길을 막을 자신은 있었다. 그러니 진주가 과연 지켜질까. 순신은 그것을 염려하였다.

오월 구일 오시에 순신은 주사를 끌고 무사히 본영에 돌아왔다. 돌아 와서 왕이 무사하다는 소문을 듣고 적이 마음을 놓고 병선과 병기를 준비하며 군사를 조련 하기로 일을 삼았다.

순신은 이번 옥포 기타의 싸움에 적선 사십여 척을 깨뜨리던 전말과. 주 사 가지나 가는 곳마다 어떻게 백성들의 형편이 참혹이 참혹하더라는 것이며. 이 의지 할 곳 없는 백성들이 우리 주사가 오는 것을 보고 어떻게 기뻐 뛰며 반기던것이며. 그들은 다 배에 실어 안전한 곳으로 옮겨 오지 못한 것이 유감이란 것이며. 적선 사십여 척에서 몰수한 물건이 다섯 창고에 넣고도 남은 말이며. 그 물건들이 어떻게 사치하고 흉악하다는 사정을 세세히 왕께 계장하였다.

6

옥포의 싸움에 적선 사십여 척을 깨뜨리고 적군이 죽은 자가 부지 기수로되 이편 군사에는 죽은 사람은 하나도 없고 오직 순천부 정병(順天府正兵) 이선지( 李先枝) 가 왼편 팔에 살을 맞았을 뿐이었다. 거북선과 활과 화전의 위력에 적군의 조총은 아무 힘을 쓰지 못하였다. 그렇지마는 적병과의 전쟁에는 군사 한 사람 밖에 상한 이가 없었지마는. 전쟁이 끝난 뒤에 노획품을 나눌때에 원 균( 元均) 의 군사는 순신의 군사 두 사람을 활로 쏘아 맞혔다. 그래도 원 균은 이 것을 금하지 아니하였다. 원 균으로 말하자면. 자기가 탄 전선은 순신의 준바요. 부하에 오직 작은 배 두 척이 있어 전쟁 중에는 적병의 철환을 피하여 항상 뒤로 돌았다. 그러다가 전리품을 빼앗을 때에는 가장 용감하게 제 편 군사를 쏜 것이었다.

적선에서 빼앗은 물품 중에 쌀 삼백 석은 여러 배에 주린 군사들의 양 미로 골고루 나누어 주고. 의복. 필육 등물도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어 군사들의 싸우고 싶은 뜻을 돋구게 하고. 붉은 철갑 검은 철갑이며. 각색 새투구며. 입을 가리우는 물건이며. 붙이는 수염이며. 철과대. 금관. 금우. 금삽. 우의. 새짓비.

소라 등 사치하고 흉물스러운 것과. 큰 쇠못이며 동아줄 등물은 모두 단단히 감봉하여 두고 그중에 무겁지 아니한 물건을 첩보(이겼다는 기별) 가지고 가는 편에 왕께 보내었다.

이번 싸움에 도로 찾은 포로 중에 순천 대장(順天大將) 유 섬( 兪殲) 이 가사로 잡은 계집애 하나는 나이 겨우 사오세이어서 성명돠 거주르 fanfdj도 대답 할줄 몰랐으나. 보성 군수 김 득광(金得光)이 사로잡은 계집아이 라나는 나잇 살이나 먹은 듯한데 머리를 끊어 일본 사람 모양으로 차렸다. 순신은 이 계집아이를 불러 문초하였다.

『네 어디 사는 아이니?』

『동래 동면 매바위(東萊東面寐바위) 사오.』

『성명은 무에냐?』

『윤 백련(尹百蓮)이오.』

『나이는 몇 살이고?』

『열 네 살이요.』

『어느 달 어느 날 어디서 적병에게 붙들렸어?』

『소인의 아비는 다대포(多大浦) 수군이요. 곤절 싸움에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를 모르오.』

『네 어미는?』

『소인의 어미는 양녀 모론(양녀모론)이요. 지금은 죽었소.』

『조부모도 없어?』

『몰라요.』

『그러면 뉘 집에 붙여 있었어?』

『기장(機張) 사는 신선(新選) 김 진명(金晋明)의 집에 붙여 살았소.』

『그런데 어떻게 적병에게 붙들렸어?』

『지난 사월에요.』

『사월 어느 날?』

『날은 모르겠소. 지난 사월에 왜병이 부산포(부산포)에 왔다고. 호수 진명( 戶首進明) 이가 군령을 받아 싸우러 아갈 적에 소인을 군장(軍粧)을 지워서 데리고 부산진으로 가라고 합데다. 그래 가노라니까. 말날이 (말날이) 고개에가니까 피난군이 몰려 오면서 부산은 벌써 함몰이 되었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피난군이 몰려 오면서 부산은 벌써 함몰이 되었다고 그래요. 그러이까 주인( 진명) 이 소인을 데리고 바로 기장 고을(機張고을) 로 갔다가 거기 진치고 있던 군졸이 달아날 때에 주인이 소인을 데리고 그 집으로 돌아 와서 하룻밤을 지냈소. 그러노라니까 소인의 늙은 아비와 친척들이 피난해 오는 것을 우연히 만났소. 그래서는 기장 고을 운봉산(雲蜂山)에 팔구일이나 숨어 있다가 적병 이 얼마인지 모르게 밀려 와서 소인과 소인의 오라비 복룡(下기) 이가 붙들려 서해가 다 저문 때문에 부산으로 잡혀 갔소. 부산성에서 하룻밤을 자고는 오라비 복룡 이는 부지 거처가 도고 소인만 배 밑에 갇혀 있었소.』 7

적병에게 사로잡혔다가 보성 군수에게 다시 사로잡힌 십사세 여아 윤 백련은 다시 말을 이어.

『그렇게 소인을 배 창널 밑에 가두아 임의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는. 어느 날인지 병선 삼십여 척이 부산을 떠나서 김해(金海)로 가서. 김해서 반 남아들에 노략질하러 가고. 오륙일이나 있다가 이 말 초엿샛날 사시에 일시에 배를 띄어서 밤개(밤개) 로 가서 하룻밤을 자고 그 이튿날 새벽에 거기를 떠나서 옥포 앞바다에 가서 섰다가 그날 싸움이 났어요. 배에 조선 철환과 장편전이 비는데.

그러니깐 왜인들이 무에라고 지전대고 떠들고 쿵쿵거리더니만 모두 물에 뛰어들어서 헤엄쳐서 산으로 달아나버렸는데. 소인은 배 창널 밑에 있어서 그 밖에는 모르와 요.』 하고 말을 끊었다. 순신은 백련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이런 정경을 당하는 이가 백련 하나만이 아닌 것을 생각할 때에. 순신의 가슴은 끓었다.

순신은 좌우를 돌아 보며.

『이 아이 말을 듣고 다들 어찌 생각하오?』

하고 물었다.

『죽기로써 싸우려 하오.』

하고. 나머지 장수들이 정 운의 말을 따랐다.

『제공의 충성이 이만하니 걱정 없소. 맹세코 영남 해상의 적병을 소탕 합시다 』 하고. 순신은 제장에게 다시 나아가 싸우자는 뜻을 암시 하였다. 그리고 윤 백련 이하 적에게 잡혔던 아이들은 춘천. 보성 등 각관에 맡겨 잘 거두어 기르하고 분부하였다. 순신이 옥포 승전을 왕에게 보고한 장계 중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었다.

『죽기도 많이 하고 노략도 많이 당하여. 일반 창생이 살아 남음이 없도소이다. 이제 바닷가로 돌아 다녀 보매 지나는 바 산골짜기마다 피난 하는 백성이 없는 곳이 없사옵고. 한번 신 둥의 배만 바라보오면 머리 땋은 아이들이나 백발된 늙은이들이나. 업고 안고 서로 끌고 울고 부르짖고 따라옴 이 마치 살아 날 길이나 찾은 듯하오며. 어떤 이는 적병의 종적을 가리키는 이도 있어 그 참측함이 차마 두고 오기 어렵고. 곧 배에 태워 데리고 가고도 싶 사옵건마는 원래 그러한 백성이 수다하올 뿐더러. 또 싸우러 가는 배에 사람을 많이 실었다가는 배 걸음이 빠르지 못할 염려도 있사옵기로 돌아 오는 길이 데려 갈 터이니. 각각 깊이 숨어 적병의 눈에 띄어 사로잡히지 말도록 하라 고개 유하고 적병을 따라 멀리 갔나이다. 그리 하옵다가 문득 서쪽으로 행행 하신단 놀라운 기별을 듣사옵고 급히 돌아 왔사오니. 애련하는 정이 오히려 잊히지아니하나이다. 』 순신은 가덕(加德)에서 노량(露梁)에 이르는 동안에 있는 창원(昌原).

고성(固城). 진주(晋州) 등 여러 고을의 바다로 향한 산골짜기에 아직 다 익지못한 보리 이삭을 훑어 먹으며 부러 휴유하고 난을 피하고 있는 가련한 백성들의 모양을 눈에서 떼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싸움을 이기고 돌아오는 길에는 안전한 곳으로 실어다 주마고 하고. 그대로 못한 것이 맘에 걸렸다.

그러나 일개 수사로는 그러한 백성들을 구호할 아무 힘이 없으므로. 그는 전라 감사 이 광(李珖)에게 이첩하여 양식을 보내어 이 백성들이 굶어 죽지 말게 하기를 청하였다. 그리고 순신은 자기의 관할 하에 있는 돌산도(突山島). 걱 금섬 등지에 백성을 옮겨 농업과 어업고 목축과 공업을 진흥할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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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신이 제일차 출전이 끝난 뒤에 좌수영에 돌아 와 일변 군사를 쉬이고 일변 전선과 병기를 수리하는 동안에 경상도 우수사 원 균으로부터는 연해 적선 이여기 있다. 저기 있다 사는 정보가 오고. 그때마다 주사를 거느리고 도 달라는 청 병장이 왔다. 그러나 순신은 원 균의 말을 다는 신용하지 아니하였다. 그 가요 전번에 같이 싸우러 다니는 동안에 원 균의 하는 말에 거지살이 많고 또 어디서 만나자고 약속을 해 놓고도 그 약속을 지킨일이 없음을 본 까닭이다.

만일 원 균의 헛된 정보를 다믿고 군사들을 동하였다가 말한 곳에 적선이 없을 양 이면. 장졸에게 대하여 대장의 위신이 떨어짐을 알기 때문이었다.

『사또. 적선은 곤양에 왔다 하오. 어서 행선하시오.』

하고. 정 운이나 어 영담 같은 충용한 부하들이 순신을 재촉할 때에는 순신은.

『군사를 가볍게 동하면 장졸에게 신을 잃는 것이요.』

하고 탐보선을 보내어 알아 보라만 하였다. 그러나 옥포의 패전을 분하게 여겨 부산에 있는 적의 수군 본영에서는 아무리 하여서라도 이 원수를 갚고. 또 경상.

전라 양도의 제해권(바다를 제절 밑에 넣는 힘)을 얻으려 하였다. 원래 풍 신 수 기 릐 계획은 소서 행장(小西行長). 가동 청정(加謄淸正) 등으로 하여금 육로로 경성. 평양. 함경도를 공략하게 하고 등당 고호(藤當高虎). 구귀 가륭(九鬼嘉隆).

협판 안치(脇坂安治) 등으로 하여금 수군 일만여 명과 전선 이백여 척을 거 느리고 수로로 경상. 전라. 충청. 황해. 평안 제도를 공략하여 수륙 병진으로 조선을 석권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이 풍신 수길의 제일차 수륙군 계획이었고 또끝까지 계속된 계획이었다.

그래서 육군은 수군의 예상 이상으로 무인지경같이 경성. 평양을 점령 하였으나. 수군은 선봉이 옥포에서 부서지니 수군의 계획이 이에 틀어진것이었다.

그러하기 때문에 부산에 총본영을 둔 일본의 수군은 아무리 해서라도 조 선수군을 이겨 옥포의 패전의 수치를 씻고 조선의 제해권을 가지려고 애를 쓴것은 자연한 일이었다.

순신도 여러 번 수륙으로 적군의 정세를 염탐한 결과로 대강 이러한 서정을 알았다. 그러나 순신은 이번에 오는 싸움은 결코 요전번 싸움과 같이 단순한것이 아님을 짐작하였다. 왜 그런고 하면. 요전번에 깨뜨린 적의 함대는 선봉 대일 것이요. 이번에 오는 것이 필시 주력 함대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옥포 싸움에 쉽게 이긴 장졸들은 벌써 교만한 마음이 생겨서 적선을 만나기 만하면 곧 때려 부수고 그 속에 있는 물건을 나누어 가질 것을 상상하여 어서 싸우기만 재촉하나 순신이 자중하여 좀체로 움직이지 아니하고 병선과 병기와 군사의 준비를 마치 태평 시대같이 늘어지게 하려는 것이 이 때문이었다. 준비의 힘! 이것을 아는 것은 오직 이 순신 한 사람뿐인 것같았다. 적선의 작은 부대가 경상도 연해로 돌아 다니면서 여염에 불을 놓고 노략질을 하였다. 이것은 노략 그 물건이 목적인 것보다도. 조선의 수군에게 싸움을 돋구는 것인가 싶었다.

『유월 삼일 낮물을 기약하여 본영 앞바다로 모이라!』

하고. 순신이 관내 각 읍. 각 진에 발령한 것이 오월 이십 오일. 오월 이십칠일에 경상 우수사 원 균으로부터 적선 십여 척이 사천(泗川). 곤양( 昆陽) 등지에 출몰하여 여염을 불사르고 민가를 노략하여 작폐 무쌍이나 원 균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으니. 곧 출병하여 달라는 관문이 왔다.

2

『이봐라. 우도 주사가 아직 안 보이느냐?』

하고. 전선에 앉은 순신은 탐보군에게 물었다.

『아직 오는 배가 안 보이오.』

하는 것은 타보군의 대답이었다. 순신이 전라 우사사 이 억 기( 李億祺)에게 속히 좌수영에서 만나자고 기별한 지가 벌써 닷새가 되는 까닭이었다. 오월 이십구일! 적선이 사천. 곤양 등지에 횡항하므로 경상 우수사 원균이 적을 피하여 배를 남해 노량(南海露粱)에 옮겼다는 경보가 원 균에게서 왔다. 남해 노량진이면 경상 우도와 전라 좌도의 바로 접경이다. 이제는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행선하라!』

하고. 순신은 전 함대에 영을 내렸다. 일시에 돛이 달리고 노가 움직였다. 전 라우도 주사가 오기를 기다릴 사이도 없이 순신이 직접 거느린 전선 이십 삼척만을 거느리고 노량진을 향하여 떠났다.

순신의 함대가 오는 것을 보고. 원 균은 하동(河東)편 노량진 산 그늘 속에 숨었다가 배 세 척을 끌고 나와 순신을 맞았다.

『적선이 어디 있소?』

하는 순신의 물음에 원 균은 꼭 어디 있다고는 대답을 못하고 다만 손가락으로 노량 동쪽을 가리켰다. 함대가 노량진 목을 통과하매. 곤양( 昆陽) 쪽으로부터 사천(泗川)을 향하고 가는 듯한 적선 중선 한 척을 발견하였다. 그 중선은 바다 가운데를 나서는 것을 무서워하는 듯이 바닷가로 붙어서 살살 피하였다.

『적선이야!』

하는 소리가 장졸들의 입에서 나왔다.

『따라 잡아라!』

하는 순신의 명령이 내렸다. 전부장 방답 첨사 이순신(李純信). 남해 현령 기 효 근( 奇孝謹) 등이 북을 울리고 기를 두르며 노를 저어 따라 가고 다른 배들은 중류에 떠서 사천을 향하였다. 적선은 마침내 붙잡히게 되어 물에 배를 닿이고 군사들은 내려서 달아나고 배만 내어 버렸다. 이 배를 깨뜨려 불살랐다.

『이번에도 일수가 좋다.』

하고. 장졸들이 기뻐 뛰었다. 순신은 적병이 결코 우습게 볼 수 없음을 말 하고 교만 하지 말기를 경계하였다.

창선도(昌善島). 사량도(蛇粱島) 등 크고 작은 무수한 섬들을 띄워 놓은 남해.

고성 간의 바다 사량 바다는 호수와 같이 아름답고 고요하다. 잘 맑은 여름날의 고요한 바다로 소리 없이 미끌어져 가는 배들 그것이 싸움외 살기를 머 금은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적병이야!』

하고. 척후선에서 누런 기를 둘렀다. 과연 바라보니. 사천 선창에 굼틀굼틀 철판이나 달아난 험한 산 밑으로 사백여 명이나 될 듯한 적병이 기다 랗게 장사진( 긴 뱀과 같은 진형)을 벌이고 진에는 붉은 기와 흰 기를 많이 꽂이 현란하기 그지없고. 진 안에 제일 높은 봉우리에는 따로 장막을 치고 그리고 군사들이 분주히 왕래하는 것을 보니 장수의 지휘를 듣는 듯하며. 선창에는 누각처럼 생긴 배 십 이척이 바닷가에 매여 있고 진 친 데 있는 장수 같은 자가 칼을 내둘려 교만한 양을 보인다.

이편 장졸이 분개하여 활을 쏘나 살이 저편까지 및지를 못하고 또 달려 들어가 불지르려 하나 주수가 벌써 썰물이 되어 판옥선이 들어 갈 수가 없었다.

『뱃머리를 돌려라. 』 하고. 순신이 영을 내렸다. 순신의 함대는 바다를 향하고 일제히 달아났다.

3

『적병을 살려 두고 어디로 가오?』

하고. 군관 송 한련(宋漢蓮)이 순신에게 물었다. 녹도 만호 정 운. 과양 현감어 영담. 군관 송 희립 같은 이들도 싸우지도 아니하고 퇴군하는 것을 자못 불평하게 생각하였다. 경상 우수자 원 균 같은 이는 이것은 순신이 겁이 난 때문이라도 비웃었다.

그러나 순신은 무슨 결심이 있는 듯이 제장의 불평도들은 체 아니하고 배를끐으로 몰았다. 대개 육지 가까운 데서 싸우면. 적병이 물으로 올라서 도망 할 근심이 있기 때문이었다.

순신의 주사가 사천 육지의 진중에 있던 적병 이백여 명이 진으로부터 내려와 반은 배에 오르고 반은 육지에 모여서서 방포하고 날뛰며 싸우기를 청 할 뿐더러 마치 조선 병선이 물러 가는 것을 조롱하는 듯한 빛을 보였다.

이러한 광경을 보고 순신의 부하 제장은 모두 팔을 뽐내어 적병과 한번 싸우기를 청하였다. 제장이 스스로 싸울 마음이 나게 하는 것도 순신의 희망하 는바 였다.

순신이 보니. 장졸이 싸울 뜻이 강하고 또 적병이 심히 교만한 것이 모두 순신이 바라고 기다리던 바와 합하였다. 적이 교만하고 내가 싸울 뜻이 있는것은 반드시 이기는 비결이다. 게다가 저녁 밀물이 들기 시작하니. 징히 때를 만난 셈이었다.

『배를 돌렸라!』

하고. 순신의 명령이 또 한번 내렸다. 이십 삼척의 병선은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돛을 돌리고 키를 돌려 다시 사천 포구를 향하였다. 순신은 우선 거북선을 놓아 적선 중으로 돌진케 하여 천. 지. 현. 황. 각양 총통을 놓게 하였다.

적병들은 괴물과 같은 거북선이 입으로 불과 연기를 토하며. 전후 좌우로 갹 양 총포를 놓으며. 횡행하는 것을 보고 산상에 있는 군사. 해안에 있는 군사가. 모두 경 동하여 거북선을 향하고 철환을 빗발같이 내렸다.

적병들이 거북선 하나에 공격을 집하고 있는 틈에 다른 병선들은 점점 가까이 들어 왔다.

『사또. 저 배에는 조선 사람이 있소.』

하고. 어떤 군관이 순신을 보고 적선 하나를 가리켰다. 과연 그 배에는 조선옷을 입고 조선 상투를 짠 사람이 간단이 섞이러서 조선 편을 향하여 총을 놓고있었다. 그것을 볼 때에 순신은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가슴이 끓음을 깨달았다.

『이놈들! 조선의 우로를 먹은 놈들이! 네 저놈들부터 먼저 잡아라!』

하고. 순신은 소리쳤다. 그 소리가 우레와 같고 보통 사람의 음성 같지아니하였다. 순신은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몸소 조선 사람 있는 적선을 향 하였다.

『빨리 저어라!』

순신은 몸소 앞장을 서서 싸움을 보고 제장들도 그 뒤를 따라. 순신이 향 하는 배를 습격하여 순신을 도왔다.

철환. 장편전(長片箭). 피령전(皮翎箭). 화전(火箭).천지자총통(天地字銃筒) 등이 터지고 나는 소리가 풍우와 같았다. 적병은 화살을 가슴에 안고 자빠지는 자.

등에 지고 엎어지는 자. 팔이나 다리에 맞고 미처 빼어 낼 사이도 없이 비칠 거리고 달아나는 자. 피를 뿜고 물에 떨어 지는자. 그 부르짖는 소리가 실로 참담하였다. 마침내 적병들은 견디지 못하여 배를 버리고 물에 올라 달아나나 살아 난 자가 십에 일이 되지 못하였다. 적병 속에 끼어 적을 위하여 싸우던 조선 사람의 시체를 찾으려 하였으나. 배 속에서도 찾지 못하고 바닷물에 나 뜬 시체 중에도 보이지 아니하였다.

이 싸움에도 적병에게 사로잡혔던 조선 계집아이 하나를 찾았다. 사천에 있던 적선 십 이척은 모조리 깨뜨려 불사르니. 적병들이 멀리서 바라 보고 발을 구르며 통곡하였다. 이것이 사천 싸움이란 것이다.

4

사천 싸우이 끝이 나니 날이 저물었다. 순신은 모자랑개(毛自郞漑)로 가자 고명 하였다. 뱃머리를 돌려서 장졸이 의기 양양하였다. 다만 군관 나대용( 羅大用) 과 전봉사(前奉事) 이 설(李渫)이 적의 철환을 맞아서 장졸들에게 위문을 받았다. 그러나 그 상처도 대단치는 아니 하였다. 순신은 총 맞은 나대용과 이 설을 자기가 탄장선으로 옮겨 손수 그 상처를 살폈다.

우후 이 몽귀(李夢龜)이하로 춘천 부사 권 준. 광양 현감 어 영담. 녹도 만 호정 운. 군관 송 희립 등이 전승 축하 차로 순신의 배로 모였다. 원 균도 찾아왔다. 모시는 자가 순신의 갑옷을 벗기니. 적삼 등에 피가 흐는 것이 보였다.

『사또!』

하고. 곁에 모였던 장졸들이 놀랐다.

『왼편 어깨에 철환을 맞은 모양이야. 이쪽 어깨 쭉지가 조금 아프다.』

하고. 순신은 피 묻은 적삼을 벗었다. 적삼 밑에는 피가 더욱 많이 흘러서 고의까지 붉게 젖고 버선목까지 흘러들어 가 끈적끈적하게 선지피가 되었다.

『어깨를 맞으셨소.』

하고. 정 운이 대단히 근심하는 어조다.

『그 보선 사람 탔던 큰 배를 칠 때에 뒤에서 뜨끔하였거든. 그놈의 철환 이나를 맞혔기로 뼈까지 뚫겠느냐. 자 칼끝으로 살 속에 박힌 철환을 파내어라.』 하고. 사람들 앞에 등을 돌렸다. 녹도 만호 정 운이 꿇어 앉아 칼끝으로 순 신의 왼편 어깨에 밖힌 철환을 그리 힘들이지 아니하고 파내었다.

『그 철환이 여기 있소.』

하고. 정 운은 파내인 철환을 순신에게 주었다. 순신은 손에 받아 들고 두 어번 굴려 보더니 바다에 내어던지고 말았다.

『들어 가 누우시오.』

하고 부하가 권하였으나 순신은 태연히 옷을 갈아 입고 장선에 모인 부하들로 더블어 술을 나누었다.

이튿날 유월 일일 새벽에 원 균이 배를 끌고 순신에게는 말도 없이 어디로 가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같은 함대에 있으면서 말도 없이 먼저 행진 한다는 것은 심히 옳지 못한 일이었다.

순신은 군사를 시켜 원 균의 배를 향하여. 「어디로 가느냐. 」고 물으라고 명령 하였다. 원 균은 낭패하여 뱃머리에 나서며 순신의 배곁으로 자기의 배를 저어 대게 하고.

『영감. 어깨의 상처가 밤새에 과히 아프지나 아니하시오?』

하고. 아침 문안을 하였다. 순신이 역시 뱃삼에 나서며.

『상처는 대단치 아니 하오마는. 영감은 이렇게 이른 새벽에 어디를 가시오?』

하고. 원 균에게 물었다.

『어저께 적선 두 척 남겨 놓으신 것이 있지 아니하오? 혹시 적병이 계교에 빠져서 들어 왔는지도 알 수 없으니. 소인이 가 보려오. 어찌 영감이 몸도 불편하신데 몸서 가실 수가 있소. 소인이 가더라도 얻은 수급은 영감께 바치오리다. 소인이 패군지장으로 영감의 후의가 아니면 거접할 곳이 없을 것이아 니요?』 하고. 원 균은 정성이 넘치는 듯한 어조로 말한다.

『그러하시거든 가 보시오.』

하고. 순신은 좋은 낯으로.

『우리네가 국가의 중하신 부탁을 받아 가지고 저군과 싸우는 처지에 어디네요. 내요가 있소? 하나라도 적병을 없이하는 것이 상책이니까. 수급이 뉘것이요. 공이 뉘 것인 것은 말할 것이 있소? 혼자 가시기 단약하시거든 적선 몇 척을 드릴 테니 데리고 가시오.』 하였다. 얼마 전 옥포 싸움에 원 균이가 노획물을 빼앗기 위하여 순신의 군사두 사람을 살로 쏜 것을 순신도 기억하지 못함이 아니나. 인물이 없는 이때에 원균 같은 재주라도 아무쪼록 버리지를 말려는 정성이었다.

5

원 균은 순신의 허락을 받고 급히 배를 몰아 어제 저녁 싸우던 싸움터 인사천에 갔다. 거기는 순신이 적선 두척을 성하게 남겨 둔 곳이다. 그것은 육지로 올라서 도망하였던 적병이 필시 배를 찾아 들어오리라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원 균이 갔을 때에는 적병은 아마 육지로 멀리 달아났는지 배에는 하나도 없었다. 원 균은 분하여 비인 배에 불을 사르고 적군이 진 첬던 곳을 두루 찾아 적군이 도망할 때에 내어 버리고 간 시체 세 개의 목을 베어 가지고 면목 없이 본진으로 돌아 왔다.

원균이가 순신에게 물어 봄도 없이 자의로 행선하려한 것을 분개히 여겨 순신이 원 균으로 하여금 사천에 남겨 둔 배를 차지하게 한 것을 원망하였다.

그때에 순신은.

『나라를 생각하는 충성으로 싸우는 사람도 있고 공을세원 상급을 받자는 사욕으로 싸우는 사람도 있소. 공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공을 주어야 잘 싸우는것이요. 지금 나라 일이 급하고 싸울 사람이 적으니. 싸울 재주 있는 사람을 아끼는 것이 좋소.』 하며. 자기가 원 균을 우대하는 이유를 암시하였다. 원 균이 죽은 적병의 머리 셋을 베어 달고 돌아 오는 것을 기다려서. 순신은 모자랑개에서 행선 하여 사량 섬( 蛇梁 섬) 앞바다에이르러 닻을 주고 밤을 지내며 사방으로 탐보선을 놓아 적선이 있는 곳을 엄타하였다. 자고 나니. 유월 이일 새벽에 적선 이십여 척 이 당포( 唐浦)에 정박하고 있다는 탐보를 듣고 제장에게 곧 당포를 향하여 행선 할것을 명하였다. 전함대가 사량 바다를 떠난 것이 진시. 당포에 닿은 것이 사시였다. 당포는 미륵도(彌勒島) 서남단에 있는 포구로 만호(萬戶)를 두었던데다.

당포에 다다르니 과연 선창에는 적의 대선 구척과 중선과 소선과 소선 십 이척과 도합 이십 일척의 배가 정박하고 있는데. 대선은 크기가 조선의 판옥선만 하였다. 그중에 큰 배하나가 있는데. 배 위에 삼사십 척이나 될 듯한 높은 누가 있고 밖에는 붉은 김으로 장막을 두르고 장막의 사면에는 대자로 누를 황( 黃) 자를 쓰고 그 속에 수장 한 사람이 있는데 앞에는 분홍 일산을 받았다. 적병의 수효는 모두 삼백 명이나 될까? 반은 성안에 들어 가 노략하고 불을 놓고. 또 더러는 성 밖 요해처에 웅거하여 이편의 함대가 오는 것을 보고.

일제히 조총을 놓아 철환을 내려 부었다.

순신은 그 높은 누 있는 배가 적의 대장의 배인 것을 짐작하고 즉시 거북선을 명하여 그 층루선을 찌르게 하였다. 거북선은 살같이 달려 가 용구( 거북선의 입) 를 번쩍 들어 굉연한 소리와 함께 현자 철환(玄字鐵丸)을 충루선을 향 하여 올려 쏘고 또 천지 대자군전(天地大蔣軍箭 화살의 이름)을 쏘아 그 배를 깨뜨리니 뒤에 따르는 모든 배가 일제히 총과 활을 쏠 제. 중위장 순천 부사 권준( 權俊) 이 철환의 비를 무릅쓰고 배를 몰아 바로 그 충루선의 밑으로 달려 들어 활 한 방을 우러러 쏘니 그살이 바로 적장의 이마를 맞혀서 빨갛게 피가 쏟아지는 것이 보였으나 적장은 왼편 손을 들어 이마에 박힌 살을 빼어 던지고 태연 자약하게 여전히 칼을 두르며 싸움을 감독하였다.

그러나 군 준의 둘째 살이 그의 가슴에 박히매 그는 쿵 하는 소리를 내며충루 위에 떨어졌다. 적장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사도 첨사 김 완(金浣). 군관 진 무성( 陣武誠) 등이 그 배에 뛰어 올라 넘어진 적장의 머리를 베고. 우후 이 몽귀등은 배에 올라 남은 군사를 사로잡고 배를 점령하였다.

6

오후 이 몽귀가 적의 충루선을 수색할 때에 선상의 적장의 거실(있던 방) 인듯 한 방을 수색하였다.

배에 있는 방이라 그리 크지는 아니하나 심히 정결하고 또 바닥에 깐것이든지. 방안에 놓인 물건이든지 모두가 극히 사치하고 화려하여 마치 사치한 귀인의 침실을 보는 것 같고 무장의 방을 보는 것 같지 아니하였다.

이 몽귀는 책상 위에 놓인 금빛 부채 한 자루를 얻었다. 보니 부채 한편에는 한가운데.

『戮月 八日 이 吉』이라고 쓰고 오른편에.

『 () 』 리는 다섯 자를 쓰고 또 왼편에는.

『(

) 』이라는 여섯 자를 썼다. 그래서 이부채를 소중하게 칠한 각에 봉해 둔것이었다. 이 몽귀는 이것을 순신에게 바치었다.

또 소비포 권관(所非浦權管) 이 영남(李英男)은 이 층루선을 수색하다가 장수 있는 방 곁에서 어여쁜 여자둘을 발견하였다. 이 영남이 칼을 들어 치려 할 때에 그 여자는 두 손을 들어 비는 양을 하며.

『장군님 살려주오. 소인은 조선 사람이요.』

하고 외쳤다.

당포에 있는 이십 일척 배를 다 깨뜨리고 싸우이 끝난 때에(이때는 벌써 저녁때 였다) 순신은 몸소 그 여자를 심문하였다.

『네가 조선 사라이야?』

『예. 그러하오.』

하고. 한 여자가 대답하였다. 그 여자가 두 여자 중에 가장 아름다웠다.

『집이 어디냐?』

『울산(蔚山)이요.』

『울산서 무엇하던 계집이냐?』

『비자요.(남의 종이란 말이다.)』

『이름이 무엇?』

『상전은 김생원이옵고 소인은 억대(億代)라고 하오.』

『그럼 어찌하여 적장의 배에 탔어?』

『날은 어느 날인지 모르겠소. 상전댁을 따라 피난 가는 길에 오늘 여기서 활 맞아 죽은 장수한테 사로 잡혔소. 』『 그래서 적장에게 몸을 허하였느냐?』 『그리하였소. 언제나 그 장수와 함께 있었소.』

『적장의 이름이 무엇이냐?』

『소인은 이름은 모르오.』

『적장이 어떻게 생겼어?』

『키가 훌쩍 크고 기운이 세고 매우 잘났소.』

『나이는 몇 살이고?』

『서른 살이나 되었소.』

『적장이 날마다 하는 일이 무엇이던고?』

『낮에는 배 상층 누에 올라 가 누런 비단 전복에 금관을 쓰고 있고. 밤 이 면소인의 방에 들어 와 잠을 잤소.』

『그놈이 얼마나 높은 장수더나?』

『얼마나 높은지는 몰라도 모든 배에 있는 장수들이 다와서 꿇어 앉아서 영을 듣고. 혹시 영을 어기는 놈이 있으면 용서 없이 목을 베어 죽입데다.』 『적장이 무슨 말을 하였어?』

『예. 혹 술도 가지고 와서 대접하고 이야기도 하고 웃기도 하지마는.

오롤오롤하는 소리를 소인은 한 마디도 못 알아 들었소. 간혹 가다가 울산( 蔚山) 이니. 동래(東萊)니 전라도(全羅道)니 하는 말은 조선말과 같읍데다.』 『오늘 그놈이 죽기 전에는 어찌하였어?』

하고. 순신이 물을 때에는 억대는 낯이 붉어지고 눈물이 쏟아지며. 매우 흥분한 빛을 보였다.

7

적장의 바로 죽기전 행동에 대하여 그와 십 오일 간 부부 생활의 정을 바꾼 억대는.

『오늘 접전할 때에 그 충루선에 조선 화살과 탄환이 비오듯 떨어지는 때에야아! 소리를 치고 떨어졌소.』

하고. 적장이 죽을 때에 겁이 없이 태연하던 것을 자랑하는 듯하였다.

화살과 철환에 맞아 쓰러진 군사를 낭자하게 버리고 적병이 다 육지로 도망한 뒤에 적선에 있는 쓸 만한 물건을 수습하고 비인 배를 다 태워 버리고 장차 군사를 놓아 물으로 달아나는 적병을 소탕하려 할 즈음에. 탐망선이 들어 와서 적의 대선 이십여 척이 소선을 수없이 거느리고 거제로부터 당포를 향하고 온다는 말을 과하였다.

순신은 당포는 좁아서 잡전하기 불편하니 큰 바다로 나가자 하여 뱃머리를 돌렸다. 함대가 사량 바다에 나서매. 오리쯤 되는 곳에 과연 적전 대 소 오륙 십 척이 장사진으로 오다가 이편 함대를 보고 방향을 돌려 도망하려 하는것을 이편 배들이 따라 가 난바다로 쫓아 버렸다. 제장은 가는 데까지 따라 가서 때려 부수기를 주장하였으나. 순신은 날이 저문 것을 이유로 군사를 돌렸다.

대개 적선이 이편을 보고 싸우지도 않고 마치 미리 계획하였던 것닽이 어떠한 방향으로 달아나는 것이 반드시 무슨 흉계가 있을까 함이었다. 이날 밤은 창 신도( 昌信島)에서 군사를 쉬었다.

이튿날 유월 초삼일 이른 새벽에 배를 떼어 싸리 섬() 근방의 여러 섬들을 두루 찾았으나 적병의 그림자도 없었다. 이날 밤을 고성 땅 고 둔 개( 古屯漑)에서 쉬이고 초사일 조조에 그저께 싸우던 터인 당포 앞바다에 이르러 소선을 보내어 적선의 유무를 바라보게 하였다.

사시나 되어 웬 사람 하나가 산으로서 뛰어 내려와 순신의 주사를 보고 기쁜듯이 아뢰었다.

『그저께(초이일)접선 후에 적병이 죽은 자기네 편 군사들의 목을 베어 한 무더기로 모아 쌓고 불에 태워 버리고 그리고는 육로로 달아났소. 달아날 때에 우리 사람을 만자도 죽일 뜻은 없고 길에서도 통곡을 하며 달아났소.』\ 하였다.

『그때에 구원 오던 적선은 어디로 갔다더냐?』

하는 물음에 다하여서는 그는.

『당포 밖에서 쫓겨난 적선은 거제로 갔답디다.』

하였다.

이 사람은 강 탁(姜卓)이라고 부르는 토병이었다. 순신은 곧 거제로 가서 당포에서 달아난 적의 주사를 치고. 가덕. 부산의 적의 소굴을 소탕하고 싶으나.

아직도 전라 우수사 이 억기(李億棋)의 함대가 오지 아니하니 너무도 형세가 고약하였다. 게다가 순신의 왼편 어깨의 총맞은 자리가 여름살이라 용이하게 낫지를 아니하여 고통이 적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적이 있는 곳을 알고도 물러 갈 수는 없었다. 순신은 제장을 불러서 거제로 행선할 뜻을 말하고.

『이번 길에는 적의 소굴을 소탕할 터이니 제장은 각기 힘을 다하라.』

하고 약속을 선명하였다.

뒤로

제장도 첫째로는 번번이 이기는 싸움에 자신을 얻고 또 순신의 지혜와 용기에 신뢰 심이 굳어 기뻐 뛰며. 싸우러 갈 것과 죽을 힘을 다하여서 싸울 것을 약속 하였다. 저녁 들물을 기다려 막 배가 떠나려고 할 때에 멀리서 쪽으로 전 라우도 수사 이 억기가 거느린 이십 오척이 위풍 당당하게 오는 것이 보였다.

8

『사또. 우도 주사요.』

하고. 군관 송 희립이 순신에게 고하였다.

『우도 주사다!』

하고. 기쁨의 부르짖음은 장졸의 입으로 쏟아져 나왔다. 불과 이십 삼척의 고약한 주사로 날마다 싸움에 피곤한 장졸에게 우도 주사가 온다는 것은 비길데 없는 기쁨이었다.

순신이 몸소 뱃머리에 나와서 이 억기를 맞았다. 과연 전라 우도 수사 이억기는 전선 이십 오척을 거느리고 순풍에 돛을 달고 달려 왔다.

『영감 웬 일이시오? 왜 이렇게 늦으셨소?』

하고. 순신은 억기의 손을 잡았다.

『풍우에 막혀서 길이 늦었소. 그동안 연전 연승하신 소식은 좌우영서 들었소.

소인이 돕지 못한 것이 죄만하오.』

하고. 이 억기는 유감의 뜻을 표하였다. 이 억기는 자기보다 연치도 높고 지략도 많고 인격도 높은 순신을 속으로 깊이 존경하였다. 더구나 지난 사월에 적군이 국내에 발을 들여 놓은 이래로 대소 제장이 싸우기도 전에 다투어 달아나는 이때에. 오직 이 순신 한 사람이 단약한 주사를 가지고 담연히 적과 싸워 연전 연승하는 것을 볼 때에 억기는 더욱 순신을 흠모하였다.

좌우 양도 주사 연합 함대 오십척은 위풍이 당당하게 당포 앞바다를 떠나서 판데 목()에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밤을 지내는 동안에 순신은 억 기로 더블어 맹세코 적군을 소탕할 것을 약속하고. 억기는 기쁘게 순신의 절제를 받기를 자청하였다.

이튿날 유월 오일.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지척을 분별할 수가 없었다. 배를 놓아 적의 정체를 엄탐케 하면서 안개가 개이기를 기다렸다.

저녁때나 돠어서야 안개가 걷혔다. 순신은 배를 떼어 거제(거제)로 가기를 명 하였다. 당포에서 동망한 적선이 거제에 있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배가 한산도 앞에 다다랐을 때에 어떤 작은 배 하나가 마주 나오며 무에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것이 마치 무슨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배를 세워라.』

하고. 순신은 그 작른 배가 오기를 기다렸다. 작은 배는 노를 바삐 저어 순신이 타고 앉은 장선 곁으로 왔다.

그 작은 배에는 어민 칠팔인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순신의 배를 보고 대단히 기뻐하는 모양을 보였다. 그리고 순신을 향하여 연방.

『사또. 사또.』

하고. 반가움을 못 이겨 하는 양을 보였다.

『사또께서 이리로 오실 줄을 알았소. 그래서 소인네가 어저께부터 여기서 기다렸소. 』 하고. 김 모란 사람이 대표로 나서서.

『당포 싸우에 쫓겨 달아난 적선들이 거제에 와서 하루를 묵고는 어제 낮물에 당목개( 唐 목개) 로 갔소.』하고. 손을 들어 적선들이 수없이 가던 방향을 가리켰다. 이 말을 고하고는 김 모와 그의 동무들은 무수리 순신을 향 하여 수없이 절하고 배를 저어 한산도로 들어 가 버리고 말았다. 순신은 이 백성들 이 밤을 새워 가며 자기를 기다려서 적의 행동을 보고하는 그 충성과 그들 이 자기와 및 자기가 거느린 주사를 보고 잃었던 부모를 본 듯이 반가와하는 양을 보고 깊이 감동되었다.

『당목개로 놓아라.』

하고. 순신은 함대의 침로를 북으로 돌렸다. 견내도(見柰도) 를지나 고양이 바다를 건너 당목개 앞바다에 이르러 남을 바라 보니. 진해성 밖에 이삼 리쯤 되는 곳에 벌판에 갑옷 입고 말탄 군사 천여명이 기를 꽂고 진을 치고 있는것을 발견하였다. 순신은 사람을 보내어.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아 올리라. 』 하였다.

9

탐문 갔던 사람의 보고에 의하면. 함안군수(咸安郡守)유 숭인(柳乘仁)이 말 탄 군사 일천 일백명을 거느리고 적병을 따라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당목개 형세를 물으니 멀기는 여기서부터 십리나 되고. 넓이도 배가 자유로드나들 만 하다고하였다.

순신은 전선 세 척을 단목개로 보내어 당목개의 지리를 살피라 하고. 만일적이 따르거든 결코 응전치 말고 거짓 달아날 것을 엄칙하고. 다른 배들은 산 굽이에 숨어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이윽고 아까 보냈던 배가 포구 밖으로 달아 나오며 신 만일 이차돈이 그 잘쓰는 칼로 고구려 임금의 묵을 베인다 하면 .고구려가 필시 대군을 가지고 우리나라를 엄습할 것이니. 고구려가 비록 장수왕 이래로 약하여졌다 하니 마는 아직도 장수로는 메주한가 같은 사람이 있고. 옛날 한나라를 때려 부시던 기운이 아직도 다 스러지지 아니하였으니. 오늘날 우리 나라의 힘으로 고구려를 당해 내기는 어려운 일일뿐더러. 저편은 임금의 원수를 갚는 다는 의분심이 강할것 이 온 즉 더욱이 우리보다 기세가 높을 것이옵고. 또 만일 메주한가의 은란 한 솜씨에 저백제 장수들을 제 것을 만드는 모양으로 이차돈을 달래어 고구려 장수를 만드는 날이면 이것은 원수에게 보검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요. 이차돈 같은 재조를 고구려에 준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옵고. 또 고구려에는 지금 불법이 왕성하다 하온즉. 이차돈이 불법을 배우게 되면 우리 나라에 불법을 편 근심이 있사오니. 그 또한 무서운 후환이 아니오니까? 이런 모든 모로 보옵선댄.

이차돈을 고구려에 두는 것은 무서운 후환이 아니오니까? 이런 모든 모로 보 옵건댄. 이차돈을 고구려에 두는 것은 무서운 후환이 될 근심이 있는 줄로 아오.』 공목의 이 말에 임금은 고개를 끄떡끄떡하시며.

『공목 바돌손의 말씀이 옳소.』

하고는 한참 침음하시다가.

『그렇기로 한마로 이손의 손자 이차돈이 우리 나라를 배반하고 고구려에 가 붙기야 하겠소.』

하고 공목의 수염 많은 늙은 얼굴 경난도 지혜도 많은 듯한 얼굴을 바라보신다. 임금은 고옥이 한마로를 좋아하지 아니함을 아신다. 한 마로는 어디까지든지 옳은 것을 내세우는 의리의 사람이요. 공목은 옳은 것이란 다 무엇이냐. 이롭고 해로움이 있을 따름이라는 사람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나라 일에 대하는 의견은 서로 어그러지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임금은 어느 편에 치우친 성격인고 하면. 한마로와 같이 이해관계보다도 옳고 옳지 아니한 것을 따지는 편이었다. 그러나 임금은 공목의 싸늘한 지혜에는 매양 경의를 표하고 계시었다. 임금의 입에서 그러한 말씀이나 올 줄을 미리 알아 차렸던 듯이 공목은 곧.

『상감마마. 한마로 이손은 과연 충. 효. 신. 용. 인(忠孝信勇仁)다섯 가지를 겸한 우리 나라의 큰 스승이오. 그러하오나 이차돈은 아직 어린 아이. 비록 그 조부의 훈계를 받았다 하더라도 아직 뜻이 서지 못한 어린 아이옵고. 게다가 이마로 이손의 딸과 살지 못하게 된 것이 상감마마 처분이시라 하여 원망을 품고 있지 아니하오?

배로서 화전을 쏘아 충무선의 김 장막과 돛을 맞히니. 장막과 검은 돛에 불이 당기러 불길이 하늘에 달았다. 그래도 까딱 없이. 깨어지고 남은 충루 위에 칼을 짚고 앉아서 독전하던 적장까지도 마침내 살을 맞아 충루에서 굴러 떨어졌다.

10

충루선의 충루가 깨어지고 불이 붙고 또 장수가 활을 맞아 죽어 떨어지는 양을 보고 남은 적선 네 척이 이창황한 틈을 타서 돛을 달고 북으로 달아나려하였다. 순신이 이 억기로 더불어 제장을 거느리고 달아나는 적선을 딸 에 워 싸고 활과 불로 치고 적병들은 견디지 못하여 혹은 물에 뛰어 들어 헤어서 육지로 나가려 하고. 혹은 큰 배를 버리고 종선을 타고 달아나 산으로 기어 올라서 달아났다. 이편 군사들은 부실부실 내리기 시작하는 비를 무릅쓰고 혹은 창을 들고. 혹은 활을 끼고 적병을 따라 가혹은 물에서 혹은 발 가운데서 혹은 산에서 둘씩 셋씩 단병 접전을 하여 적병의 머리 사십 삼 급을 베어 가지고 피 흐르는 창과 칼을 두르며 돌아 왔다.

순신은 적선을 전부 불사르고 오직 배 한 척만을 남겨 푸구에 두어 상륙 하여 피신 하였던 적병들이 도망할 기회를 주게 하고 군사를 거두니. 이때에 벌써 날이 저물어 검은 그림자가 싸움 뒷바다를 덮었다.

그날 밤을 당목개 앞바당에서 지내고 이튿날 평명에 방답 첨사(防踏僉使) 이순신( 李純信) 이 순신의 명을 받아 그 부하에 달린 배를 거느리고 어젯밤 당목개 어귀에 남겨 둔 배에 적병이 탔나 아니 탔나를 보러 갔다.

방답 첨사 이 순신의 배가 다옥개 어귀에 다다르니 아니나 다를까. 적선 한 척이 당목개 어귀에서 빠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어제 싸움에 져서 배를 버리 고물으로 도망했던 적병들이 이편의 계교대로 밤 동안에 돌아 와서 한 척만 남겨놓은 배를 잡아 타고 장차 부산으로 도망하려 하는 것이었다.

방답 첨사 이 순신이 불의에 섬 그늘에서 나서서 그 배의 앞길을 막고 지 현자총통( 地玄字銃筒)을 놓아 아직도 어두운 당목개의 새벽을 흔들었다.

불의에 포향을 들은 적선은 창황하게 뱃머리를 돌려 동쪽으로 달아나려하였으나 동쪽으로서도 또 이편 배가 내달으며 우선 방포하여 적선의 기운을 지르고 연하여 장편전(長片箭). 철환(鐵丸). 질려포(蒺藜砲). 대발화(大發火) 등을 쏘고 던지었다.

적선은 좌우로 협공을 받으매. 달아나기 어려울 줄을알고 대적하여 싸우려하였으나. 이편의 공격이 자못 맹렬하여 다수의 군사가 사상하매. 도저히 견디지못 할 줄 알고 화전에 뚫어진 돚과 총통에 부서진 뱃머리로 죽기를 무릎 쓰고 달아나려 하였다. 방답 첨사 이 순신은 군사를 시켜 쇠갈고리를 던져 적선을 끌어 내었다. 적선은 그 쇠갈고리를 벗으려고 만단으로 애를 썼으나. 아무리 하여도 벗을 길이 없이 바다로 끌려 나갔다. 바다 가운데로 끌려 나갔으니.

물르로 내려서 도망하려 하나 도망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선중에 있던 적병들 이반이나 살은 맞아 죽고 반이나 물에 빠져 죽었다.

그중에 이십 사오 세나 되는 적장 하나가 부하 여덟 명을 데리고 끝까지 싸웠다.

그는 키가 크고 얼굴이 준수하고 화려한 군복을 입고 긴 칼을 짚고 우뚝 섰다.

이편에서 그 장수를 향하여 활을 쏘아 살을 칠팔 개나 맞아서 전신이 붉은핏빛이 되어도 그는 까딱 아니하고 여전히 칼을 짚고 섰다. 살아 남은 여덟 명부하도 죽기까지 그의 명령을 복종하여 싸웠다. 그러나 마침내 살십여 개를 맞으매. 그 장수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는 듯한「으흑」하는 한 소리를 지르 고물에 떨어졌다. 이편 군사들은 곧 그 장수의 머리를 베었다.

살아 남았던 여덟명 장수는 칼 짚은 장수가 죽은 뒤에 다 죽을 때까지 칼을 두르고 활을 쏘았다. 그들은 피를 흘리고 엎어졌다가는 다시 일어나서 비틀 거리며 싸웠다. 죽을지언정 사로잡히지는 아니할 결심인 듯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군관 김 성옥(金成玉)등의 손에 다 죽어 버리고 말았다. 싸움이 다 끝난 뒤에.

『괴시 용사다!』

하고. 방답 첨사 이 순신은 아홉 적장의 머리를 앞에 놓고 술을 따라서 혼을 위로 하였다.

11

진시나 되어서 전선을 불사를 때쯤 해서 경상 우수사 원 균(元均)과 남해 현령 기 효근(奇孝謹) 등이 배를 달려 와서 바당 빠져 죽은 적병의 세체를 건져 분주히 목을 잘랐다. 모두 오십개나 잘라 가지고 의기 양양하여 뱃머리를 돌렸다.

방답 첨사 이 순신은 몸소 적선에 올라 수험하였다. 뱃머리에 정결하게 꾸민 방 하나가 있는데. 방에는 화려한 장막을 둘렀고 방안에 조그마한 궤 하나가 놓였는데 열어 보니 무슨 문서가 들었다. 펴 본즉 사람의 성명을 적은 발기인데.

성명 밑에는 모두 피를 발랐다. 사람 수효가 모두 삼천 사십여 명이요. 군기를 갈라서 성명을 적었다. 아마 피를 내어 죽기로써 서로 맹세한 것인 듯하였다. 이 발기가 여섯 축이요. 그 밖에 갑주. 창검. 활총. 표피. 말한장 등물도 있었다.

방답 첨사. 창검. 활총. 표피. 말안장 등물도 있었다. 방답 첨사 이 순신은 이 물건들을 다 봉하여 순신에게 바치었다. 순신은 피로 수결된 삼천 사십여 명의 발기 여섯 축을 차례로 내려 본 두에.

『과시 독한 무리로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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